제 8과 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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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폴쵸 작성일09-05-15 19:17 조회5,285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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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과 안식
5월 23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41분)
도입)
지난 수년 동안 <어드벤티스트 리뷰> 편집국에 전달된 놀라운 이야기들 가운데 젠 케네디가 그녀의 오빠 크래그에게 행한 생명의 선물보다 더 훌륭한 은혜의 예증은 없었다. 크래그는 급성 신장 부진으로 절망적인 상태였다. 누군가에게 신장을 기증받아야 했다. 젠은 오빠를 도와주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였다. ‘만일 검사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오면, 신장 하나를 떼 주어도 괜찮을까? 술과 담배에 찌든 누군가를 위해 신장을 기증한다면 남편과 딸들과 부모님은 무엇이라고 할까? 그리고 오빠는 평생 그 일을 고맙게 생각할까? 오랜 기도와 고민 끝에 젠은 신장을 기증하기로 결정하였다. 크래그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오빠에게 자신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과, 그 모든 일은 전적으로 그분의 지배하에 있는 일임을 믿는다고 말했다. “사랑과 두려움과 눈물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라고 그녀는 회상한다. “오빠는 ‘내가 네게 보답하기 위해서 평생 어떻게 하면 되겠니?’ 하고 물었지요.”라고 그녀는 씩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할 일을 다 적어 놨어.” 그런 다음 그녀는 덧붙였다. “내 신장은 말이야, 술도 담배도 좋아하지 않고, 매 안식일 교회에 가. 그러니 그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았으면 해.” 수술실에서 직원들은 젠과 크래그의 침대를 나란히 놓았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손을 잡았다. 그때 크래그가 진지하게 물었다. “그건 어딨어?” “어딨냐니? 뭐가?” 눈물이 크래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목록 말이야.” 이제는 눈물이 젠의 얼굴을 적셨다. “오빠, 목록은 없어. 이건 선물이야. 오빠를 사랑해. 하나님도 오빠를 사랑하셔. 그분께서 우리를 죽 지켜보실 거야.” 천 마디 말로도 크래그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묘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젠은 회상한다.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단지 젠의 손을 더 힘껏 꽉 쥐는 것이었다. 그는 눈물 속에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받은 후 크래그가 훌륭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가족들이 알았을 때, 더 큰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크래그의 몸이 젠의 신장을 거부하는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완전한 회복을 바라는 그들의 탄원을 들어주셨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핵심본문: 막 2:27-28
학습 목표
깨닫기: 안식일은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분리시켜 쉼과 하나님과의 교통을 가지도록 이끌어 주는 날임을 깨닫는다.
느끼기: 안식일을 통하여 주어지는 기쁨을 만끽한다.
행하기: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대로의 안식일을 경험한다.
교과 개요
I. 안식일을 기억함(레 23:3)
A. 우리는 분주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쉼의 하루를 갖는 것은 축복이다. 우리는 안식일을 어떻게 보내는가? 우리에게 쉼과 회복을 가져다주는 요소는 무엇인가? 이상적인 안식일이란 어떤 것인가?
B. 십계명은 우리에게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말한다. '거룩'이라는 말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II. 안식일을 누림(막 2:27)
A. 안식일은 우리의 창조주 안에서 기뻐하는 날이며, 세상의 일상적인 리듬에서 벗어나는 날이다. 그런데 왜 이 날은 예수님과 교통하는 날이기보다는 규율에 매이는 날이 되기 쉬운가?
B. 안식일에 합당한 활동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가운데, 안식일 준수는 율법적으로 흐르기가 아주 쉽다. 안식일에 합당한 일의 여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III. 안식일을 나눔(눅 4:16)
A.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의 안식일을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야 한다. 그분께서는 안식일에 무엇을 하셨는가?
B. 예수님의 안식일 준수를 어떻게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가?
요점: 안식일은 다른 날들과 구별된 거룩한 날이다. 그 날은 하나님과 교통하고 쉼을 누리도록 주어진 우리의 시간이다.
기억절: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7-28)
연구범위: 창 2:2-3, 신 5:12-15, 사 58:12-14, 겔 20:12, 히 4:9-11.
중심 사상: 안식일은 왜 우리에게 그토록 중요한가? 하나님께서는 왜 안식일을 제정하셨는가? 거룩한 시간이란 무엇인가? 누가 혹은 무엇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만드는가? 어떻게 하면 안식일을 기쁘게 지키고, 의미 있는 경험으로 만들 수 있는가?
안식일 오후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는 그리스도교 교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안식일이다. 그것은 스트레스와 심장 질환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약(藥)이다. 안식일은 현대 사회에서 끊임없이 밀려오는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다. 안식일은 우리의 소진된 배터리를 충전할 기회를 제공하고, 삶의 진정한 우선순위에 초점을 맞추게 해 준다. 안식일은 세상의 소란과 소음으로부터 우리 가정과 마음의 문을 닫고,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분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 있음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분주하고 분망한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명령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안식일이다. 우리는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을 섬기기에 너무 바빠서 하나님이 진정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시는 유일한 분이심을 잊어버린다. 우리는 그분의 날에 안식함으로써 그분 안에서 '쉼'을 누리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존 L. 딥달, 풍요로운 삶을 위한 성경 확대경: 출애굽기, 퍼시픽 프레스, 186)
일요일(5월 17일)
분주한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창 2:2-3)
도입)
안식일은 본래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다. 창 2:2를 보면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그래서 하나님은 제 칠일을 "나의 안식일"이라고 부르신다. 출 31:13을 보자. "...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 또한, 성경은 이날을"여호와의 안식일"이라고 부른다. 신 5:14 을 보자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이러한 표현들은 안식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Lordship)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본래 하나님의 것인 안식일을 이스라엘이 지키도록 명해진 것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주신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애굽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는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제도적 휴식 장치인 것이다. 안식일 계명은 그래서 하나님의 자비의 표현인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날
“우리가 특별히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날은 안식일이다. 안식일이 없다면, 모든 사람들은 끝없이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할 것이다. 매일이 똑같으며 세속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데 바쳐질 것이다. 그러나 안식일의 도래는 소망과 기쁨과 의미와 용기를 가져다준다. 그것은 예배와 기도와 찬미와 말씀에 대한 연구와 명상을 통하여, 그리고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줌으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355)
지구 역사의 첫 주부터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두 가지 기본 제도는 '결혼'과 '안식일'이다. 이 둘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매우 중요한 제도이다. 이 두 제도가 각 시대를 통하여 사단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 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고 엿새 동안의 '평범한' 날에 '특별한' 하루를 더하여 완전한 시간의 주기(週期)를 만드셨다. 그때 이후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이 시간의 리듬을 존중한 사람들은 축복을 받아왔다.
1.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후 왜 제 칠일에 친히 쉬셨습니까?(창 2:2-3)
답: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 2:2-3)
2. 선지자 에스겔은 안식일에 대해 어떤 특별한 용어를 사용하였습니까? 그 용어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출 20:12)
답: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겔 20:12)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하여 그날을 안식의 날로 성별하셨다. 창조주의 모본을 따라 사람은 이 거룩한 날에 휴식할 것이었는바, 이는 그가 하늘과 땅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사업을 회상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의 증거들을 바라볼 때 그의 마음이 창조주께 대한 사랑과 경외심으로 가득 찰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
하나님께서는 낙원에서라도 사람에게 안식일이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아셨다. 사람은 하나님의 작품들을 더욱 충분히 묵상하고 그분의 능력과 선하심을 명상할 수 있도록 칠일 중 하루 동안은 자신의 이익과 일을 제쳐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는 하나님을 더 명확하게 인식하고 자신이 누리고 소유한 모든 것이 창조주의 선하신 손에서 나온 것임을 상기시켜 줌으로 감사의 마음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안식일을 필요로 하였다.”(부조와 선지자, 47-48)
교훈: 오늘날과 같이 분주한 삶에 쫓기는 사람들에게는 안식일의 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행복을 위해 태초에 고안하신 특별한 날이다.
부가적용)
본래 안식일은 단어 뜻 그대로를 살리자면 '쉬는 날'이다. 종종 목사님들이 주일을 안식일이라 부르면서도 안식일은 절대로 노는 날이나 쉬는 날이 아니라고 역설하는 것을 듣는다. 안식일이 적극적으로 놀이를 하는 '오락일'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쉬는 날이 아니라 할 수는 없다. 히브리 동사 '샤바트'는 '쉰다'는 뜻이다. 안식일의 가장 오래된 기원은 창조에 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 2:3). '쉼' 때문에 생긴 날이 안식일임은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이 일곱째 날을 축복하셨다. 복 있는 날이 되게 하셨다는 말이다. 이 날은 지긋지긋하고 무서운 날이 아니라 복이 넘치는 날이다. 복이 넘치는 날이 되어야만 한다. '거룩하게 하다'는 말의 히브리 동사('카다쉬')는 본래 '구별하여 분리시킨다'는 뜻이다. 그러니 일곱째 날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특별히 구별해 놓은 날이다. 그 날에 복을 주심은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함일까? 이에 대해 브루스(F. F. Bruce)의 설명 논리가 호소력이 있다. 과연 하나님께서 '휴식'을 필요로 하실까? 하나님은 엄밀한 의미에서 휴식이 필요하신 분이 아니시다. 그렇다면 안식일 제정의 목적은 명약관화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휴식을 위하여 제정된 것이 아니고 인간의 휴식을 위해 복을 주셔서 구별한 날이다. 안식일은 허구한 날 쉬고 놀 수 있는 유한계급(有閑階級)을 위해 복을 준 날도 아니다. 직, 간접으로 강요된 일의 부담과 압박으로 지치고 지칠 수밖에 없는 노동계급을 살인적 피곤으로부터 구원하는 합법적인 보호 장치이다.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신 5:12-14). 기본 정신은 분명하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날에게 복을 준다는 것은 그 날로 인해 혜택을 입는 인간에게 복을 준다는 뜻이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하나님의 은혜의 날이다.
월요일(5월 18일)
거룩한 시간(사 58:13)
도입)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시간과 공간에 대한 두 가지를 특별히 구별을 하도록 지시하셨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허락해 주셨다. 이것은 공간을 거룩하게 구분한 것이다. 이 세상 그 어느 곳과 달리 거룩하게 하나님과 영적 만남을 이룰 수 있는 공간을 구분해서 만들어 주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안식일은 시간을 구분한 것이다. 일주일 중 다른 날과 구분해서 하나님과 영적 만남을 이룰 수 있도록 시간을 구분해 주신 것이다. 이것은 당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표현으로서 구분된 장소에서 구분된 시간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긴 세월 하나님을 떠나있던 세상의 노예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탈바꿈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축복의 표현인 것이다.
성화의 표징인 안식일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안식일을 따로 구별하신 것과 꼭 마찬가지로 당신의 백성들을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즉 당신의 특별한 증인들이 되도록 구별하셨다. 그들은 그 날에 그분과 교통함으로 거룩함에 이른다. 즉 그들은 그들 자신의 수단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성결케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운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2007년, 354)
성경에서 '거룩'이라는 단어는 여러 대상에게 적용되었다. 때때로 사람들이 거룩한 것으로 언급되며, 물건이나 시간도 거룩한 것으로 구분된다. '거룩'이라는 말은 '특별한 용도를 위해 구별해 두다'라는 중심적인 의미를 지닌다. 제사장들은 오직 성소를 위해 봉사하도록 구별되었기 때문에 거룩하였다. 그들은 세속적 목적을 위해서는 쓸 수 없고 오직 특별한 의식(儀式)을 위해서만 사용될 수 있는 거룩한 기명(器皿)과 기구(器具)를 다루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거룩한 날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지정하신 날이다. 이 모든 것들은 일단 거룩한 것으로 구별되면 더 이상 일상적인 용도로 사용될 수 없었다. 이와 같이 거룩한 날들에 행해지는 활동은 하나님께서 그 날에 부가하신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했다.
1. 우리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야 합니다. 그날을 거룩하게 만드는 이는 누구입니까?(창 2:3, 사 58:13)
답: 안식일을 거룩하게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날을 일컬어 '내 성일' 혹은 '여호와의 성일'이라고 하셨다.(사 58:13)
"안식일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강력한 증거이다. 오직 그분만이 창조하실 수 있고, 거룩하게 하실 수 있으시다. 이러한 까닭에 재림교인들은 그리스도인의 휴식과 예배의 날인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경하는 것을 그처럼 강하게 반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이 없이 함부로 변경하는 것은 그분께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다."(리처드 라이스, 하나님의 통치, 앤드루스 대학교 출판사, 1997년, 403)
2. 매주 다가오는 거룩한 제칠일 안식일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출 31:12-13)
답: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안식일을 순종하여 지키는 당신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출 31:13)
안식일을 지키는 데에는 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이 있다. 우리가 단지 규범에 따라 외적으로만 그 날을 지킨다면 참된 의미를 놓쳐버리게 된다. 그러나 외적인 부분도 중요한데, 이는 안식일 준수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그날의 거룩함을 알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안식일 준수는 우리의 창조주와 구속주께 대한 충성의 표시이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구별된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신다. 우리는 거룩한 백성으로서 그분께서 친히 제정하신 거룩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부가적용)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은 구분하셨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다른 날과 다르게 취급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구분해야 할 것인가? 엿새는 세상일에 몰두하며 살았다면 이 날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몰두하며 보내는 날이다. 성전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 구별된 장소라면 이 안식일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 구별된 시간이다. 그러니까 엿새 동안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땀을 흘렸다면 이 날만큼은 우리의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위해 땀을 흘려야 할 것이다. 예배에 전념하고, 하나님 말씀 묵상하는 일에 몰두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선한 일 행하기를 위하여 이 날을 구별하여야 할 것이다.
화요일(5월 19일)
안식일의 즐거움을 경험함(신 5:12-15)
도입)
사람이 죄를 지은 후 에덴에서 쫓겨났다. 에덴에서 추방된 아담에게 벌이 내려졌다.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手鼓)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에덴에서는 먹을 것이 풍족하였다. 그러므로 걱정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수고(手鼓)해야 먹을 수 있다. 수고(手鼓)란 뜻이 무엇인가? 손으로 북을 친다는 뜻이다. 북은 북채로 쳐야 쉽게 소리가 난다. 손으로 북을 치면 소리도 잘 안 나고 힘이 곱절로 든다. 힘들게 일을 했는데도 수확은 에게게- 굶지 않을 정도이다. 그리고 어떤 날은 그나마도 수확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걱정’이라는 것이 생겨난다. 내일은 굶지 않을까?’ 걱정이 연속되는 상황에서 자연스레 ‘욕심’이 생겨난다. ‘벌 때 벌어야 되’‘ 일단 챙기고 봐야지’ 이렇게 되면 남의 몫도 살짝 쳐다보게 된다. 욕심이 죄를 낳는다. 그리고 죄는 사망을 초래한다. 수고(일)은 걱정을 만들고 그 걱정과 염려를 만들고 그 걱정은 사망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어 내 안에 즐거움을 모조리 파괴시켜버린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다시 걱정 없는 즐거운 존재로 만드시고 싶으신 것이다. 하나님의 목표는 사람이 다시 아무 염려하지 않고 사는 존재로 만드시는 것이다.
안식일 계명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출애굽기 20장을 언급한다. 거기서는 천지창조가 그 계명의 근거로 제시되었다. 안식일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시요,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임을 상기하게 된다. 그러나 신명기에 나오는 십계명에는 다른 내용이 부가되어 있다. 매 안식일은 또한 이스라엘이 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따라서 이날은 인류가 하나님의 은혜로 온갖 종류의 속박에서 자유를 얻었음을 상징한다.
구원에 대한 표징으로서의 안식일
“안식일 준수는 그들이 죄의 속박으로부터 구원함을 받았으며 그분의 완전한 의를 받았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칭의와 성화를 통해 나타나는 그분의 의의 산물이다. … 마찬가지로 안식일은 죄로부터 하나님의 안식에로의 구원에 대한 표징으로 구속받은 자들을 세상과 분리시킨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356)
1. 신명기 5:12-15을 주의 깊이 읽고 출애굽기 20:8-11과 비교해 보십시오. 이 두 구절들은 어떻게 상호보완이 됩니까?
답: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5)
안식일은 창조와 구속의 상징이다. 그날은 우리를 지금 재창조하실 뿐 아니라(고후 5:17, 갈 6:15),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영생의 소망을 주시는(벧후 3:13) 예수님 안에서 갖는 구원을 표상한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상징으로 보았다. 안식일은 우리가 영원토록 누릴 행복을 미리 맛보는 날이며, 예수님 안에서 주어진 특별한 소망을 상기시켜주는 날이다.
실제적인 의미에서, 안식일은 우리로 하여금 시간과 세월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많은 사람들은 컴퓨터와 휴대전화의 노예가 되어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은 노동 시간에서 여가 시간을 떼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현대 생활은 우리로 하여금 항상 움직이고, 언제든지 업무로 전환할 수 있기를 요구한다. 안식일은 육체적, 영적인 쉼을 갖지 못하게 하는 모든 병폐에 대한 완전한 해독제가 된다.
"거룩한 안식일을 구별한다는 것은 우리가 일주일 중 하루 동안 생산과 업무를 멈출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얻는 흥미로운 결과는, 우리가 다른 날들에도 산출량에 대해 염려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무익하게 바람을 쫓는 일을 그만 둠으로써 참으로 새로운 방법으로 쉼을 누리고 기쁨을 배울 수 있게 된다."(마버 J. 돈, 안식일을 온전히 지킴, 윌리엄 B. 이어드만 출판사, 1996년, 19)
교훈: 안식일은 창조의 기념일이며, 구속의 축제일이다. 우리는 이날을 지킴으로써 우리를 위협하는 온갖 종류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부가적용)
안식일은 특별한 날이다. 안식일의 기원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신 하나님의 모델적인 행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창2:1-3). ‘안식’의 원리는 창조와 구속과 완성과 관련된다. 첫째. 안식일은 하나님의 천지창조기념일이다. 창조기념일로서의 안식일은 개인과 단체와 나라와 민족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기념일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하나님의 창조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을 축하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이다. 둘째, 안식일은 하나님의 구원기념일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기념(출20:8-11)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노릇에서 해방시켜 주신 구원기념일로 지키도록 명하셨다(신5:12-15). 출애굽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표였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은 곧 기독교인의 구원기념일로서의 안식일이 되었다. 죄와 죽음과 사탄의 종노릇에서 해방된 구원 사건이야말로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시대의 교회가 가장 크게 경축해야 할 일이다. 셋째, 안식일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될 영원한 안식을 대망하는 날이다. 우리가 지금 받은 구원이 전부는 아니다. 장차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우리의 구원은 우리 몸의 부활을 통해 완성될 것이다. 또한 그 날에는 모든 피조물들이 새롭게 되며 옛 하늘과 땅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이러한 온 우주적인 구속의 날은 곧 영원한 안식의 날이기도 하다. 매 안식일은 이러한 영원한 안식을 대망하며 미리 맛보기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처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자요 구원자이며, 우리를 영원한 구원과 안식으로 이끄실 완성자라는 사실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따라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예배의 날로 삼는 것은 신자와 불신자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가 된다.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과 종말의 완성에 대한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내용이다.
수요일(5월 20일)
안식일의 쉼을 세상에 본보임(사 58:12-14)
도입)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하루를 안식하셨다. 이 안식, 참된 쉼이 구분의 핵심 개념이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들에게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 노동을 하도록 하셨다. 노동을 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을 하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루만은 이 일로부터 해방되게 하신 것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이 안식이란 에덴동산의 삶의 회복을 뜻한다.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관계 안에서의 쉼을 말한다. 먹고 사는 문제, 이 세상 염려 근심으로부터 떠나서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다 책임지시고 해결해 주신다는 에덴동산의 아담의 믿음으로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단지 이 안식은 육체적인 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지키고 곤고한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자아가 주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며 온전한 회복을 맛보는 것을 말한다. 안식일은 단지 세상일을 쉬는데 그 의미가 있지 않다. 엿새 동안 소홀히 했던 하나님과의 만남을 보다 깊이 하고, 주 안에서 내 영혼이 참된 안식을 누리고, 그 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던 주님을 섬기는 일에 전념할 수 있는 날이다. 보다 깊이 기도하고, 보다 철저하게 말씀을 묵상하고, 주의 일을 성실히 감당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안식일을 예배드리는 날로만 규정하고 이것만을 지키는 것은 바로 율법적인 신앙이 되는 것이다.
안식일과 일
“하나님께서는 병자와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돌봐야 한다고 지시하셨다. 그들을 안락하게 하는 데 요구되는 노동은 자비의 일이므로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불필요한 모든 일은 피해야 한다. 예비일에 할 수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부주의하게 안식일이 시작될 때까지 미루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안식일이 시작될 때까지 게을리한 일은 안식일이 지날 때까지 하지 말고 미루어 두어야 한다.”(부조와 선지자, 296)
1. 이사야 58:12-14에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대한 어떤 원칙이 나타나 있습니까? 이 원칙을 따라 안식일을 합당하게 기억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어떻게 더 잘 경험하게 됩니까?
답: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사 58:13-14)
많은 재림교인들이 하나님의 안식일을 참으로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이들은 어린 시절에 부모님 밑에서 안식일을 지키던 매우 불만스런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교회 기관들에서도 안식일을 지키는 일은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 규제와 단속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게 해 준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이 규범들 중 어떤 것은 성경의 원칙에 기초하고 있지만, 그 중 많은 것들은 "주께서 말씀하신 것"보다는 사실상 전통이나 문화에 기초한 것들이다.
안식일은 결코 금지와 제한으로 일관하는 날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우리가 따라야 할 모본이 있다면 바로 예수님의 모본일 것이다.
2. 다음 구절들을 주의 깊이 읽으십시오(막 2:23-3:6, 눅 4:16, 6:1-11). 우리의 최고 모본이신 예수님은 어떻게 제칠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셨습니까?
답: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만들어 놓은 안식일에 관한 전통과 규율에 얽매이지 않으시고 그 날의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셨다. 그분께서는 그 날에 병자를 고치시고, 선한 일을 행하시며,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셨다.
“하늘의 사업은 결코 중단되지 않으므로 사람들도 선한 일을 결코 중단해서는 안 된다. 안식일은 쓸모없는 무위(無爲)의 시간이 되도록 고안된 것이 아니다. 율법은 주의 안식일에 세속적인 일을 금지하고 있다. 생계를 위한 일은 중지되어야 한다. 세속적인 향락이나 이익을 위한 노동은 그날에 적법하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창조하시는 역사를 쉬시고 안식일에 쉬심으로 그날을 거룩하게 하신 것처럼 사람도 일상 생애의 과업에서 떠나 이 거룩한 시간을 건전한 안식과 예배와 거룩한 행위를 위해 바쳐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병자를 고치신 사업은 율법에 완전히 일치하였다. 그 행위는 안식일을 존귀하게 하였다.”(시대의 소망, 207)
교훈: 안식일은 규제와 단속의 날이나 향락의 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 그날을 예배와 섬김과 돌봄의 날이 되게 해야 한다.
부가적용)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와 나 사이의 "표징"이라고 하신 것은 "너희들의 구원은 완전히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하신 것과 같다. 이 사실을 신명기 5장 15절에서 설명하신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하나님께서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을 때를 지적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구원하시는 일의 상징으로 삼으신 것이다. 애굽에서 사는 것은 우리가 죄의 노예가 되어 사단에게 속해 있음을 성경에서는 상징한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던 일을 생각하더라도 그 일이 완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우리가 사단의 속박에서 구원 받고 자유를 얻는 것은 완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에서 자유를 얻은 것이 완전히 하나님의 사역으로만 된 것 같이,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 우리의 사역이 우리 구원의 일부분이 될 수 없고, 완전히 하나님의 사역으로만 되는 것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히브리어 안식일은 히브리어의 "쉼"이 된다. 이 단어가 대개의 경우 우리의 영혼이 구원 받고 쉼을 얻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안식일에 쉬어야 하는 법이 특별히 강조되었음을 민수기 15장을 읽으면 알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가 안식일에 나뭇가지 몇 개를 주었을 때 모세는 하나님께 이 사람을 어떻게 하면 되는가를 물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돌로 쳐 죽이라고 하셨다. 나뭇가지 몇 개를 안식일에 주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돌을 던져 그는 쳐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오시는 메시아만을 의지함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실질적인 원리를 제 7일 안식일을 지키는 일을 통하여 가르치신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에게만 의지할 것이며, 아주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 자신의 행함을 의지하여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을 믿으면 안된다. 비단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을지라도,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음을 가리킨다. 이것은 갈라디아서 5장에서 육신의 할례를 지적하여 가르치신 것과 동일하다. 이 구절에서 말하기를 누구든지 육신이 할례 받은 것으로 하나님 앞에 바른 사람이 된다고 믿는다면, 그는 아직도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지 못함을 지적하셨다.
목요일(5월 21일)
안식의 증표(히 4:9-11)
도입)
안식일을 지킴으로 <성도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항상 정상적 관계로 유지하고 살려면 ‘안식일 지킴’을 통하여 이를 확인해야만 한다. “표징”이 사라진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 수 없다. 안식일에 드려지는 예배는 단순히 종교적 행위라고 치부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안식일예배에 신경 쓰라!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하늘의 안식에 들어가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여 지상 가나안의 안식으로 인도하신 일에 대한 기념일인 안식일은 그 당시의 구속받은 자들을 주변 나라의 백성들과 구별시켰다. 마찬가지로 안식일은 죄로부터 하나님의 안식에로의 구원에 대한 표징으로 구속받은 자들을 세상과 분리시킨다.
하나님께서 초청하시는 안식에 들어가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같이(자기)일을 쉬'었다(히 4:10).”(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357)
1. "안식일 준수자들은 그날을 지킴으로써 구원 얻고자 한다"라는 비난을 들을 때, 우리는 어떻게 답변해야 합니까?
답: 안식일 준수는 행함의 의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주님 안에서 참된 쉼을 누리는 믿음의 의의 상징이다.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안식일 계명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그 구절은 우리의 자녀나 종이나 육축이나 심지어 객이라도 쉬라고 말한다. 이것이 진정한 안식인 것이다.
그런데 특별히 쉼에 관해 언급한 계명이 어떻게 '행함의 상징'으로 전락하고 말았는가? 본질적으로 쉼에 관해 말한 계명이 왜 많은 사람들에게 행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표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안식일은 분명 행함의 상징과는 거리가 먼,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 안에서 항상 누리는 쉼의 영원한 상징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2. 히브리서 4:9-11에서 우리는 안식일에 관한 어떤 기별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답: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 4:9-11)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전부터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누리게 될 새 언약의 쉼에 이르기까지 안식일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하신 쉼의 실제적인 체험이 되어 왔다. 마태복음 11:28-30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쉼으로 우리를 초청하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쉼을 주실 것이며, 그 쉼은 그분의 안식일 속에 표현되어 있다.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그 쉼에 동참하는 가시적인 표현이며 그분의 은혜로 보호를 받는다는 것에 대한 생생한 예증이 된다. 우리가 매주 세상의 일로부터 쉬는 것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완성하신 일 안에서 누리는 쉼의 상징인 것이다.
이 계명에 순종함으로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의 구원을 분명히 확신하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에 대해 안심하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의 모든 일로부터 쉴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류를 위해 성취하신 일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교훈: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원의 확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며, 영원한 안식에 들어감을 확신하는 하나의 증표가 된다.
부가적용)
안식일을 주신 이유는 세상의 모든 짐으로부터 이 날만이라도 자유 하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 5:15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일은 애굽에서 출애굽된 것을 기억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씀한다. 그러니까 이 날은 우리가 죄로부터 해방됨을 기억하고 우리 영혼의 자유를 누리는 날이고, 죄의 삯으로 우리가 짊어지고 가는 세상의 모든 무거운 짐으로부터 자유를 누리는 날인 것이다. 우리가 이 험악한 세월을 살면서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이 날만이라도 꿈꾸고 바라보며 성령의 인도를 따르며 부분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는 복된 날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면서, 성도들과의 특별한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며 봉사하면서,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서 내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다시금 체험하고 그 삶을 누리는 것이다.
금요일(5월 22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제27장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303-314), 시대의 소망, 제29장 '안식일'(281-289).
추가적인 귀중한 자료로 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안식일(케네스 A. 스트랜드 편, 오만규 역, 시조사)의 제5장(90-111)을 읽으라.
"마가복음에서도 예수님은 안식일의 목적이라고 하는 주제를 제기하셨다(막 2:27). 안식일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날은 사람에게 축복이 되고, 육신의 쉼을 주며, 영적인 활동을 위해 고안된 날이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이 사람의 필요를 공급하는 날이 아니라 마치 사람이 안식일을 섬기기 위해 창조된 것처럼 생각했다. 주후 180년경에 랍비 시몬 벤 므나샤(R. Shim'on ben Menasya )도 예수님의 말씀과 비슷한 진술을 하였다. '안식일이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지, 인간이 안식일에 예속된 것이 아니다.'"(95쪽)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온전한' 안식일이란 어떤 것입니까? 교과반에서 토의해 보십시오. 그 이상(理想)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합니까?
2. 이번 주에 공부한 대로 우리가 안식일에 적용하는 규제와 단속 중 어떤 것이 성경이 아닌 관습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까? 성경이 말한 바와 반대되는, 인간이 만든 규율들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3.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특별한 안식일의 쉼을 통해 어떻게 우리 삶에 베푸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 잘 드러낼 수 있을까요?
4.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요약: 안식일은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것은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분망(奔忙)함에 대한 완전한 해독제이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만드신 '거룩함'을 매주 맛보는 아주 특별한 시간이다. 바르게 사용되기만 한다면, 그날은 육체적 및 영적인 쉼과 기쁨을 주는 시간이 될 것이다. 참된 안식일 준수의 최고 모본은 그 날의 주인이신 예수님이시다.
5월 23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41분)
도입)
지난 수년 동안 <어드벤티스트 리뷰> 편집국에 전달된 놀라운 이야기들 가운데 젠 케네디가 그녀의 오빠 크래그에게 행한 생명의 선물보다 더 훌륭한 은혜의 예증은 없었다. 크래그는 급성 신장 부진으로 절망적인 상태였다. 누군가에게 신장을 기증받아야 했다. 젠은 오빠를 도와주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였다. ‘만일 검사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오면, 신장 하나를 떼 주어도 괜찮을까? 술과 담배에 찌든 누군가를 위해 신장을 기증한다면 남편과 딸들과 부모님은 무엇이라고 할까? 그리고 오빠는 평생 그 일을 고맙게 생각할까? 오랜 기도와 고민 끝에 젠은 신장을 기증하기로 결정하였다. 크래그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오빠에게 자신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과, 그 모든 일은 전적으로 그분의 지배하에 있는 일임을 믿는다고 말했다. “사랑과 두려움과 눈물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라고 그녀는 회상한다. “오빠는 ‘내가 네게 보답하기 위해서 평생 어떻게 하면 되겠니?’ 하고 물었지요.”라고 그녀는 씩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할 일을 다 적어 놨어.” 그런 다음 그녀는 덧붙였다. “내 신장은 말이야, 술도 담배도 좋아하지 않고, 매 안식일 교회에 가. 그러니 그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았으면 해.” 수술실에서 직원들은 젠과 크래그의 침대를 나란히 놓았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손을 잡았다. 그때 크래그가 진지하게 물었다. “그건 어딨어?” “어딨냐니? 뭐가?” 눈물이 크래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목록 말이야.” 이제는 눈물이 젠의 얼굴을 적셨다. “오빠, 목록은 없어. 이건 선물이야. 오빠를 사랑해. 하나님도 오빠를 사랑하셔. 그분께서 우리를 죽 지켜보실 거야.” 천 마디 말로도 크래그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묘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젠은 회상한다.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단지 젠의 손을 더 힘껏 꽉 쥐는 것이었다. 그는 눈물 속에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받은 후 크래그가 훌륭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가족들이 알았을 때, 더 큰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크래그의 몸이 젠의 신장을 거부하는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완전한 회복을 바라는 그들의 탄원을 들어주셨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핵심본문: 막 2:27-28
학습 목표
깨닫기: 안식일은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분리시켜 쉼과 하나님과의 교통을 가지도록 이끌어 주는 날임을 깨닫는다.
느끼기: 안식일을 통하여 주어지는 기쁨을 만끽한다.
행하기: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대로의 안식일을 경험한다.
교과 개요
I. 안식일을 기억함(레 23:3)
A. 우리는 분주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쉼의 하루를 갖는 것은 축복이다. 우리는 안식일을 어떻게 보내는가? 우리에게 쉼과 회복을 가져다주는 요소는 무엇인가? 이상적인 안식일이란 어떤 것인가?
B. 십계명은 우리에게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말한다. '거룩'이라는 말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II. 안식일을 누림(막 2:27)
A. 안식일은 우리의 창조주 안에서 기뻐하는 날이며, 세상의 일상적인 리듬에서 벗어나는 날이다. 그런데 왜 이 날은 예수님과 교통하는 날이기보다는 규율에 매이는 날이 되기 쉬운가?
B. 안식일에 합당한 활동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가운데, 안식일 준수는 율법적으로 흐르기가 아주 쉽다. 안식일에 합당한 일의 여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III. 안식일을 나눔(눅 4:16)
A.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의 안식일을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야 한다. 그분께서는 안식일에 무엇을 하셨는가?
B. 예수님의 안식일 준수를 어떻게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가?
요점: 안식일은 다른 날들과 구별된 거룩한 날이다. 그 날은 하나님과 교통하고 쉼을 누리도록 주어진 우리의 시간이다.
기억절: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7-28)
연구범위: 창 2:2-3, 신 5:12-15, 사 58:12-14, 겔 20:12, 히 4:9-11.
중심 사상: 안식일은 왜 우리에게 그토록 중요한가? 하나님께서는 왜 안식일을 제정하셨는가? 거룩한 시간이란 무엇인가? 누가 혹은 무엇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만드는가? 어떻게 하면 안식일을 기쁘게 지키고, 의미 있는 경험으로 만들 수 있는가?
안식일 오후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는 그리스도교 교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안식일이다. 그것은 스트레스와 심장 질환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약(藥)이다. 안식일은 현대 사회에서 끊임없이 밀려오는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다. 안식일은 우리의 소진된 배터리를 충전할 기회를 제공하고, 삶의 진정한 우선순위에 초점을 맞추게 해 준다. 안식일은 세상의 소란과 소음으로부터 우리 가정과 마음의 문을 닫고,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분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 있음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분주하고 분망한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명령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안식일이다. 우리는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을 섬기기에 너무 바빠서 하나님이 진정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시는 유일한 분이심을 잊어버린다. 우리는 그분의 날에 안식함으로써 그분 안에서 '쉼'을 누리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존 L. 딥달, 풍요로운 삶을 위한 성경 확대경: 출애굽기, 퍼시픽 프레스, 186)
일요일(5월 17일)
분주한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창 2:2-3)
도입)
안식일은 본래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다. 창 2:2를 보면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그래서 하나님은 제 칠일을 "나의 안식일"이라고 부르신다. 출 31:13을 보자. "...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 또한, 성경은 이날을"여호와의 안식일"이라고 부른다. 신 5:14 을 보자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이러한 표현들은 안식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Lordship)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본래 하나님의 것인 안식일을 이스라엘이 지키도록 명해진 것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주신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애굽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는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제도적 휴식 장치인 것이다. 안식일 계명은 그래서 하나님의 자비의 표현인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날
“우리가 특별히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날은 안식일이다. 안식일이 없다면, 모든 사람들은 끝없이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할 것이다. 매일이 똑같으며 세속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데 바쳐질 것이다. 그러나 안식일의 도래는 소망과 기쁨과 의미와 용기를 가져다준다. 그것은 예배와 기도와 찬미와 말씀에 대한 연구와 명상을 통하여, 그리고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줌으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355)
지구 역사의 첫 주부터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두 가지 기본 제도는 '결혼'과 '안식일'이다. 이 둘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매우 중요한 제도이다. 이 두 제도가 각 시대를 통하여 사단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 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고 엿새 동안의 '평범한' 날에 '특별한' 하루를 더하여 완전한 시간의 주기(週期)를 만드셨다. 그때 이후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이 시간의 리듬을 존중한 사람들은 축복을 받아왔다.
1.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후 왜 제 칠일에 친히 쉬셨습니까?(창 2:2-3)
답: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 2:2-3)
2. 선지자 에스겔은 안식일에 대해 어떤 특별한 용어를 사용하였습니까? 그 용어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출 20:12)
답: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겔 20:12)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하여 그날을 안식의 날로 성별하셨다. 창조주의 모본을 따라 사람은 이 거룩한 날에 휴식할 것이었는바, 이는 그가 하늘과 땅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사업을 회상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의 증거들을 바라볼 때 그의 마음이 창조주께 대한 사랑과 경외심으로 가득 찰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
하나님께서는 낙원에서라도 사람에게 안식일이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아셨다. 사람은 하나님의 작품들을 더욱 충분히 묵상하고 그분의 능력과 선하심을 명상할 수 있도록 칠일 중 하루 동안은 자신의 이익과 일을 제쳐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는 하나님을 더 명확하게 인식하고 자신이 누리고 소유한 모든 것이 창조주의 선하신 손에서 나온 것임을 상기시켜 줌으로 감사의 마음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안식일을 필요로 하였다.”(부조와 선지자, 47-48)
교훈: 오늘날과 같이 분주한 삶에 쫓기는 사람들에게는 안식일의 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행복을 위해 태초에 고안하신 특별한 날이다.
부가적용)
본래 안식일은 단어 뜻 그대로를 살리자면 '쉬는 날'이다. 종종 목사님들이 주일을 안식일이라 부르면서도 안식일은 절대로 노는 날이나 쉬는 날이 아니라고 역설하는 것을 듣는다. 안식일이 적극적으로 놀이를 하는 '오락일'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쉬는 날이 아니라 할 수는 없다. 히브리 동사 '샤바트'는 '쉰다'는 뜻이다. 안식일의 가장 오래된 기원은 창조에 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 2:3). '쉼' 때문에 생긴 날이 안식일임은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이 일곱째 날을 축복하셨다. 복 있는 날이 되게 하셨다는 말이다. 이 날은 지긋지긋하고 무서운 날이 아니라 복이 넘치는 날이다. 복이 넘치는 날이 되어야만 한다. '거룩하게 하다'는 말의 히브리 동사('카다쉬')는 본래 '구별하여 분리시킨다'는 뜻이다. 그러니 일곱째 날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특별히 구별해 놓은 날이다. 그 날에 복을 주심은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함일까? 이에 대해 브루스(F. F. Bruce)의 설명 논리가 호소력이 있다. 과연 하나님께서 '휴식'을 필요로 하실까? 하나님은 엄밀한 의미에서 휴식이 필요하신 분이 아니시다. 그렇다면 안식일 제정의 목적은 명약관화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휴식을 위하여 제정된 것이 아니고 인간의 휴식을 위해 복을 주셔서 구별한 날이다. 안식일은 허구한 날 쉬고 놀 수 있는 유한계급(有閑階級)을 위해 복을 준 날도 아니다. 직, 간접으로 강요된 일의 부담과 압박으로 지치고 지칠 수밖에 없는 노동계급을 살인적 피곤으로부터 구원하는 합법적인 보호 장치이다.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신 5:12-14). 기본 정신은 분명하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날에게 복을 준다는 것은 그 날로 인해 혜택을 입는 인간에게 복을 준다는 뜻이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하나님의 은혜의 날이다.
월요일(5월 18일)
거룩한 시간(사 58:13)
도입)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시간과 공간에 대한 두 가지를 특별히 구별을 하도록 지시하셨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허락해 주셨다. 이것은 공간을 거룩하게 구분한 것이다. 이 세상 그 어느 곳과 달리 거룩하게 하나님과 영적 만남을 이룰 수 있는 공간을 구분해서 만들어 주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안식일은 시간을 구분한 것이다. 일주일 중 다른 날과 구분해서 하나님과 영적 만남을 이룰 수 있도록 시간을 구분해 주신 것이다. 이것은 당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표현으로서 구분된 장소에서 구분된 시간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긴 세월 하나님을 떠나있던 세상의 노예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탈바꿈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축복의 표현인 것이다.
성화의 표징인 안식일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안식일을 따로 구별하신 것과 꼭 마찬가지로 당신의 백성들을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즉 당신의 특별한 증인들이 되도록 구별하셨다. 그들은 그 날에 그분과 교통함으로 거룩함에 이른다. 즉 그들은 그들 자신의 수단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성결케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운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2007년, 354)
성경에서 '거룩'이라는 단어는 여러 대상에게 적용되었다. 때때로 사람들이 거룩한 것으로 언급되며, 물건이나 시간도 거룩한 것으로 구분된다. '거룩'이라는 말은 '특별한 용도를 위해 구별해 두다'라는 중심적인 의미를 지닌다. 제사장들은 오직 성소를 위해 봉사하도록 구별되었기 때문에 거룩하였다. 그들은 세속적 목적을 위해서는 쓸 수 없고 오직 특별한 의식(儀式)을 위해서만 사용될 수 있는 거룩한 기명(器皿)과 기구(器具)를 다루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거룩한 날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지정하신 날이다. 이 모든 것들은 일단 거룩한 것으로 구별되면 더 이상 일상적인 용도로 사용될 수 없었다. 이와 같이 거룩한 날들에 행해지는 활동은 하나님께서 그 날에 부가하신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했다.
1. 우리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야 합니다. 그날을 거룩하게 만드는 이는 누구입니까?(창 2:3, 사 58:13)
답: 안식일을 거룩하게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날을 일컬어 '내 성일' 혹은 '여호와의 성일'이라고 하셨다.(사 58:13)
"안식일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강력한 증거이다. 오직 그분만이 창조하실 수 있고, 거룩하게 하실 수 있으시다. 이러한 까닭에 재림교인들은 그리스도인의 휴식과 예배의 날인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경하는 것을 그처럼 강하게 반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이 없이 함부로 변경하는 것은 그분께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다."(리처드 라이스, 하나님의 통치, 앤드루스 대학교 출판사, 1997년, 403)
2. 매주 다가오는 거룩한 제칠일 안식일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출 31:12-13)
답: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안식일을 순종하여 지키는 당신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출 31:13)
안식일을 지키는 데에는 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이 있다. 우리가 단지 규범에 따라 외적으로만 그 날을 지킨다면 참된 의미를 놓쳐버리게 된다. 그러나 외적인 부분도 중요한데, 이는 안식일 준수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그날의 거룩함을 알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안식일 준수는 우리의 창조주와 구속주께 대한 충성의 표시이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구별된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신다. 우리는 거룩한 백성으로서 그분께서 친히 제정하신 거룩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부가적용)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은 구분하셨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다른 날과 다르게 취급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구분해야 할 것인가? 엿새는 세상일에 몰두하며 살았다면 이 날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몰두하며 보내는 날이다. 성전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 구별된 장소라면 이 안식일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 구별된 시간이다. 그러니까 엿새 동안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땀을 흘렸다면 이 날만큼은 우리의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위해 땀을 흘려야 할 것이다. 예배에 전념하고, 하나님 말씀 묵상하는 일에 몰두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선한 일 행하기를 위하여 이 날을 구별하여야 할 것이다.
화요일(5월 19일)
안식일의 즐거움을 경험함(신 5:12-15)
도입)
사람이 죄를 지은 후 에덴에서 쫓겨났다. 에덴에서 추방된 아담에게 벌이 내려졌다.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手鼓)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에덴에서는 먹을 것이 풍족하였다. 그러므로 걱정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수고(手鼓)해야 먹을 수 있다. 수고(手鼓)란 뜻이 무엇인가? 손으로 북을 친다는 뜻이다. 북은 북채로 쳐야 쉽게 소리가 난다. 손으로 북을 치면 소리도 잘 안 나고 힘이 곱절로 든다. 힘들게 일을 했는데도 수확은 에게게- 굶지 않을 정도이다. 그리고 어떤 날은 그나마도 수확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걱정’이라는 것이 생겨난다. 내일은 굶지 않을까?’ 걱정이 연속되는 상황에서 자연스레 ‘욕심’이 생겨난다. ‘벌 때 벌어야 되’‘ 일단 챙기고 봐야지’ 이렇게 되면 남의 몫도 살짝 쳐다보게 된다. 욕심이 죄를 낳는다. 그리고 죄는 사망을 초래한다. 수고(일)은 걱정을 만들고 그 걱정과 염려를 만들고 그 걱정은 사망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어 내 안에 즐거움을 모조리 파괴시켜버린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다시 걱정 없는 즐거운 존재로 만드시고 싶으신 것이다. 하나님의 목표는 사람이 다시 아무 염려하지 않고 사는 존재로 만드시는 것이다.
안식일 계명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출애굽기 20장을 언급한다. 거기서는 천지창조가 그 계명의 근거로 제시되었다. 안식일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시요,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임을 상기하게 된다. 그러나 신명기에 나오는 십계명에는 다른 내용이 부가되어 있다. 매 안식일은 또한 이스라엘이 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따라서 이날은 인류가 하나님의 은혜로 온갖 종류의 속박에서 자유를 얻었음을 상징한다.
구원에 대한 표징으로서의 안식일
“안식일 준수는 그들이 죄의 속박으로부터 구원함을 받았으며 그분의 완전한 의를 받았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칭의와 성화를 통해 나타나는 그분의 의의 산물이다. … 마찬가지로 안식일은 죄로부터 하나님의 안식에로의 구원에 대한 표징으로 구속받은 자들을 세상과 분리시킨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356)
1. 신명기 5:12-15을 주의 깊이 읽고 출애굽기 20:8-11과 비교해 보십시오. 이 두 구절들은 어떻게 상호보완이 됩니까?
답: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5)
안식일은 창조와 구속의 상징이다. 그날은 우리를 지금 재창조하실 뿐 아니라(고후 5:17, 갈 6:15),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영생의 소망을 주시는(벧후 3:13) 예수님 안에서 갖는 구원을 표상한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상징으로 보았다. 안식일은 우리가 영원토록 누릴 행복을 미리 맛보는 날이며, 예수님 안에서 주어진 특별한 소망을 상기시켜주는 날이다.
실제적인 의미에서, 안식일은 우리로 하여금 시간과 세월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많은 사람들은 컴퓨터와 휴대전화의 노예가 되어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은 노동 시간에서 여가 시간을 떼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현대 생활은 우리로 하여금 항상 움직이고, 언제든지 업무로 전환할 수 있기를 요구한다. 안식일은 육체적, 영적인 쉼을 갖지 못하게 하는 모든 병폐에 대한 완전한 해독제가 된다.
"거룩한 안식일을 구별한다는 것은 우리가 일주일 중 하루 동안 생산과 업무를 멈출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얻는 흥미로운 결과는, 우리가 다른 날들에도 산출량에 대해 염려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무익하게 바람을 쫓는 일을 그만 둠으로써 참으로 새로운 방법으로 쉼을 누리고 기쁨을 배울 수 있게 된다."(마버 J. 돈, 안식일을 온전히 지킴, 윌리엄 B. 이어드만 출판사, 1996년, 19)
교훈: 안식일은 창조의 기념일이며, 구속의 축제일이다. 우리는 이날을 지킴으로써 우리를 위협하는 온갖 종류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부가적용)
안식일은 특별한 날이다. 안식일의 기원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신 하나님의 모델적인 행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창2:1-3). ‘안식’의 원리는 창조와 구속과 완성과 관련된다. 첫째. 안식일은 하나님의 천지창조기념일이다. 창조기념일로서의 안식일은 개인과 단체와 나라와 민족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기념일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하나님의 창조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을 축하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이다. 둘째, 안식일은 하나님의 구원기념일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기념(출20:8-11)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노릇에서 해방시켜 주신 구원기념일로 지키도록 명하셨다(신5:12-15). 출애굽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표였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은 곧 기독교인의 구원기념일로서의 안식일이 되었다. 죄와 죽음과 사탄의 종노릇에서 해방된 구원 사건이야말로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시대의 교회가 가장 크게 경축해야 할 일이다. 셋째, 안식일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될 영원한 안식을 대망하는 날이다. 우리가 지금 받은 구원이 전부는 아니다. 장차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우리의 구원은 우리 몸의 부활을 통해 완성될 것이다. 또한 그 날에는 모든 피조물들이 새롭게 되며 옛 하늘과 땅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이러한 온 우주적인 구속의 날은 곧 영원한 안식의 날이기도 하다. 매 안식일은 이러한 영원한 안식을 대망하며 미리 맛보기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처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자요 구원자이며, 우리를 영원한 구원과 안식으로 이끄실 완성자라는 사실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따라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예배의 날로 삼는 것은 신자와 불신자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가 된다.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과 종말의 완성에 대한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내용이다.
수요일(5월 20일)
안식일의 쉼을 세상에 본보임(사 58:12-14)
도입)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하루를 안식하셨다. 이 안식, 참된 쉼이 구분의 핵심 개념이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들에게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 노동을 하도록 하셨다. 노동을 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을 하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루만은 이 일로부터 해방되게 하신 것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이 안식이란 에덴동산의 삶의 회복을 뜻한다.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관계 안에서의 쉼을 말한다. 먹고 사는 문제, 이 세상 염려 근심으로부터 떠나서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다 책임지시고 해결해 주신다는 에덴동산의 아담의 믿음으로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단지 이 안식은 육체적인 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지키고 곤고한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자아가 주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며 온전한 회복을 맛보는 것을 말한다. 안식일은 단지 세상일을 쉬는데 그 의미가 있지 않다. 엿새 동안 소홀히 했던 하나님과의 만남을 보다 깊이 하고, 주 안에서 내 영혼이 참된 안식을 누리고, 그 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던 주님을 섬기는 일에 전념할 수 있는 날이다. 보다 깊이 기도하고, 보다 철저하게 말씀을 묵상하고, 주의 일을 성실히 감당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안식일을 예배드리는 날로만 규정하고 이것만을 지키는 것은 바로 율법적인 신앙이 되는 것이다.
안식일과 일
“하나님께서는 병자와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돌봐야 한다고 지시하셨다. 그들을 안락하게 하는 데 요구되는 노동은 자비의 일이므로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불필요한 모든 일은 피해야 한다. 예비일에 할 수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부주의하게 안식일이 시작될 때까지 미루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안식일이 시작될 때까지 게을리한 일은 안식일이 지날 때까지 하지 말고 미루어 두어야 한다.”(부조와 선지자, 296)
1. 이사야 58:12-14에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대한 어떤 원칙이 나타나 있습니까? 이 원칙을 따라 안식일을 합당하게 기억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어떻게 더 잘 경험하게 됩니까?
답: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사 58:13-14)
많은 재림교인들이 하나님의 안식일을 참으로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이들은 어린 시절에 부모님 밑에서 안식일을 지키던 매우 불만스런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교회 기관들에서도 안식일을 지키는 일은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 규제와 단속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게 해 준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이 규범들 중 어떤 것은 성경의 원칙에 기초하고 있지만, 그 중 많은 것들은 "주께서 말씀하신 것"보다는 사실상 전통이나 문화에 기초한 것들이다.
안식일은 결코 금지와 제한으로 일관하는 날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우리가 따라야 할 모본이 있다면 바로 예수님의 모본일 것이다.
2. 다음 구절들을 주의 깊이 읽으십시오(막 2:23-3:6, 눅 4:16, 6:1-11). 우리의 최고 모본이신 예수님은 어떻게 제칠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셨습니까?
답: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만들어 놓은 안식일에 관한 전통과 규율에 얽매이지 않으시고 그 날의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셨다. 그분께서는 그 날에 병자를 고치시고, 선한 일을 행하시며,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셨다.
“하늘의 사업은 결코 중단되지 않으므로 사람들도 선한 일을 결코 중단해서는 안 된다. 안식일은 쓸모없는 무위(無爲)의 시간이 되도록 고안된 것이 아니다. 율법은 주의 안식일에 세속적인 일을 금지하고 있다. 생계를 위한 일은 중지되어야 한다. 세속적인 향락이나 이익을 위한 노동은 그날에 적법하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창조하시는 역사를 쉬시고 안식일에 쉬심으로 그날을 거룩하게 하신 것처럼 사람도 일상 생애의 과업에서 떠나 이 거룩한 시간을 건전한 안식과 예배와 거룩한 행위를 위해 바쳐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병자를 고치신 사업은 율법에 완전히 일치하였다. 그 행위는 안식일을 존귀하게 하였다.”(시대의 소망, 207)
교훈: 안식일은 규제와 단속의 날이나 향락의 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 그날을 예배와 섬김과 돌봄의 날이 되게 해야 한다.
부가적용)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와 나 사이의 "표징"이라고 하신 것은 "너희들의 구원은 완전히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하신 것과 같다. 이 사실을 신명기 5장 15절에서 설명하신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하나님께서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을 때를 지적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구원하시는 일의 상징으로 삼으신 것이다. 애굽에서 사는 것은 우리가 죄의 노예가 되어 사단에게 속해 있음을 성경에서는 상징한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던 일을 생각하더라도 그 일이 완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우리가 사단의 속박에서 구원 받고 자유를 얻는 것은 완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에서 자유를 얻은 것이 완전히 하나님의 사역으로만 된 것 같이,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 우리의 사역이 우리 구원의 일부분이 될 수 없고, 완전히 하나님의 사역으로만 되는 것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히브리어 안식일은 히브리어의 "쉼"이 된다. 이 단어가 대개의 경우 우리의 영혼이 구원 받고 쉼을 얻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안식일에 쉬어야 하는 법이 특별히 강조되었음을 민수기 15장을 읽으면 알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가 안식일에 나뭇가지 몇 개를 주었을 때 모세는 하나님께 이 사람을 어떻게 하면 되는가를 물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돌로 쳐 죽이라고 하셨다. 나뭇가지 몇 개를 안식일에 주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돌을 던져 그는 쳐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오시는 메시아만을 의지함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실질적인 원리를 제 7일 안식일을 지키는 일을 통하여 가르치신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에게만 의지할 것이며, 아주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 자신의 행함을 의지하여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을 믿으면 안된다. 비단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을지라도,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음을 가리킨다. 이것은 갈라디아서 5장에서 육신의 할례를 지적하여 가르치신 것과 동일하다. 이 구절에서 말하기를 누구든지 육신이 할례 받은 것으로 하나님 앞에 바른 사람이 된다고 믿는다면, 그는 아직도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지 못함을 지적하셨다.
목요일(5월 21일)
안식의 증표(히 4:9-11)
도입)
안식일을 지킴으로 <성도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항상 정상적 관계로 유지하고 살려면 ‘안식일 지킴’을 통하여 이를 확인해야만 한다. “표징”이 사라진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 수 없다. 안식일에 드려지는 예배는 단순히 종교적 행위라고 치부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안식일예배에 신경 쓰라!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하늘의 안식에 들어가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여 지상 가나안의 안식으로 인도하신 일에 대한 기념일인 안식일은 그 당시의 구속받은 자들을 주변 나라의 백성들과 구별시켰다. 마찬가지로 안식일은 죄로부터 하나님의 안식에로의 구원에 대한 표징으로 구속받은 자들을 세상과 분리시킨다.
하나님께서 초청하시는 안식에 들어가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같이(자기)일을 쉬'었다(히 4:10).”(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357)
1. "안식일 준수자들은 그날을 지킴으로써 구원 얻고자 한다"라는 비난을 들을 때, 우리는 어떻게 답변해야 합니까?
답: 안식일 준수는 행함의 의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주님 안에서 참된 쉼을 누리는 믿음의 의의 상징이다.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안식일 계명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그 구절은 우리의 자녀나 종이나 육축이나 심지어 객이라도 쉬라고 말한다. 이것이 진정한 안식인 것이다.
그런데 특별히 쉼에 관해 언급한 계명이 어떻게 '행함의 상징'으로 전락하고 말았는가? 본질적으로 쉼에 관해 말한 계명이 왜 많은 사람들에게 행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표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안식일은 분명 행함의 상징과는 거리가 먼,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 안에서 항상 누리는 쉼의 영원한 상징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2. 히브리서 4:9-11에서 우리는 안식일에 관한 어떤 기별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답: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 4:9-11)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전부터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누리게 될 새 언약의 쉼에 이르기까지 안식일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하신 쉼의 실제적인 체험이 되어 왔다. 마태복음 11:28-30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쉼으로 우리를 초청하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쉼을 주실 것이며, 그 쉼은 그분의 안식일 속에 표현되어 있다.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그 쉼에 동참하는 가시적인 표현이며 그분의 은혜로 보호를 받는다는 것에 대한 생생한 예증이 된다. 우리가 매주 세상의 일로부터 쉬는 것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완성하신 일 안에서 누리는 쉼의 상징인 것이다.
이 계명에 순종함으로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의 구원을 분명히 확신하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에 대해 안심하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의 모든 일로부터 쉴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류를 위해 성취하신 일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교훈: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원의 확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며, 영원한 안식에 들어감을 확신하는 하나의 증표가 된다.
부가적용)
안식일을 주신 이유는 세상의 모든 짐으로부터 이 날만이라도 자유 하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 5:15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일은 애굽에서 출애굽된 것을 기억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씀한다. 그러니까 이 날은 우리가 죄로부터 해방됨을 기억하고 우리 영혼의 자유를 누리는 날이고, 죄의 삯으로 우리가 짊어지고 가는 세상의 모든 무거운 짐으로부터 자유를 누리는 날인 것이다. 우리가 이 험악한 세월을 살면서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이 날만이라도 꿈꾸고 바라보며 성령의 인도를 따르며 부분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는 복된 날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면서, 성도들과의 특별한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며 봉사하면서,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서 내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다시금 체험하고 그 삶을 누리는 것이다.
금요일(5월 22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제27장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303-314), 시대의 소망, 제29장 '안식일'(281-289).
추가적인 귀중한 자료로 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안식일(케네스 A. 스트랜드 편, 오만규 역, 시조사)의 제5장(90-111)을 읽으라.
"마가복음에서도 예수님은 안식일의 목적이라고 하는 주제를 제기하셨다(막 2:27). 안식일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날은 사람에게 축복이 되고, 육신의 쉼을 주며, 영적인 활동을 위해 고안된 날이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이 사람의 필요를 공급하는 날이 아니라 마치 사람이 안식일을 섬기기 위해 창조된 것처럼 생각했다. 주후 180년경에 랍비 시몬 벤 므나샤(R. Shim'on ben Menasya )도 예수님의 말씀과 비슷한 진술을 하였다. '안식일이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지, 인간이 안식일에 예속된 것이 아니다.'"(95쪽)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온전한' 안식일이란 어떤 것입니까? 교과반에서 토의해 보십시오. 그 이상(理想)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합니까?
2. 이번 주에 공부한 대로 우리가 안식일에 적용하는 규제와 단속 중 어떤 것이 성경이 아닌 관습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까? 성경이 말한 바와 반대되는, 인간이 만든 규율들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3.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특별한 안식일의 쉼을 통해 어떻게 우리 삶에 베푸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 잘 드러낼 수 있을까요?
4.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요약: 안식일은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것은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분망(奔忙)함에 대한 완전한 해독제이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만드신 '거룩함'을 매주 맛보는 아주 특별한 시간이다. 바르게 사용되기만 한다면, 그날은 육체적 및 영적인 쉼과 기쁨을 주는 시간이 될 것이다. 참된 안식일 준수의 최고 모본은 그 날의 주인이신 예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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