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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 선지자들의 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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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9-03-05 14:06 조회5,6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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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03월07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31분)

제10과 선지자(先知者)의 기별(寄別)

<기억절(記憶節)>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딤전 4:16-5:)

(깨닫기) : 선지자들을 통해 드러나고, 엘렌 G. 화잇에 의해 확증(確證)된 성경의 주요교리들을 이해한다.
(느끼기) : 성경의 가르침을 더 잘 이해(理解)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는다.
(행하기) : 이 귀한 지식(知識)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확대경(擴大鏡)>
◉ 사람의 몸을 크게 5등분 한다면
① 몸통(머리(頭)포함)과, 사지(四肢)로,
② 우측 팔(手),
③ 좌측 팔(手),
④ 우측 다리(足,)
⑤ 좌측 다리(足,))로 크게 구분하는 것과 같이,
성경이 말하는 5가지의 핵심기별(核心寄別) 역시 크게 5가지로 농축하여 구분할 수가 있다.
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
② 성소(聖所)
③ 안식일(安息日)
④ 죽음자의 상태(狀態)
⑤ 예수님의 재림(再臨)
이상의 것을 하나님께서는 선지자(先知者)들을 통하여 어떻게 우리인간들에게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여 주었는지를 성경을 통해서 분명하게 깨달아 알고 바른 신앙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敬畏)하여야 하겠다.

☞ 우리들 주위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미명(美名)아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도 유전(遺傳)과 전통(傳統)과 관습(慣習)에 젖어 자기들 나름대로의 내가복음(?)을 경전으로 알고 고집하며 신앙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직시하고, 참으로 올바른 배움과 선택으로 신앙하여야겠다.

◉ <要點>
우리 재림교인들은 이 귀중한 교리들의 유일한 기초가 언제나 성경이 되어야 하며, 우리는 말씀의 백성으로서 성경 말씀의 토대 위에 서야 한다.
물론 엘렌 G. 화잇의 글들이 우리에게 귀한 통찰력을 제공하지만, 성경이 우리의 교리와 믿음의 근본적인 토대임을 기억해야 한다.

일(日) (3월 1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롬 3:21-28)>

◉ 신앙(信仰)에는 “미신(迷信)”과 “맹신(盲信)”과 “광신(狂信)”자들이 있다.
① “미신(迷信)” = 알지 못하고 믿는 것 (온갖 눈에 보이는 사물을 믿는 사람들)
② “맹신(盲信)” = 남들이 하면 그냥 따라하는 믿음
③ “광신(狂信)” = 광적(狂的)으로 입에 거품을 낼 정도나, 혹은 처(妻)남편(男便) 자식(子息)들도 아랑곳 하지 않고, 교주(敎主)나 집단(集團)만 보고 사리분별을 못하며 신앙을 하는 신앙인들이 있기에 가정(家庭)파탄(破綻)과 패가망신(敗家亡身)을 하고 있는 특별한 집단의 광신도(狂信徒)들이 주위에 있음을 생각하며 바르게 알고 바른 신앙을 하여야 되겠습니다.

◉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줄여서 쉽게 말해 본다면)
성경 전체에 논제(論題)된 주제는
“오직 죄인(罪人)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칭의(稱義))”된다는 복음(福音)이다.

☞ 죄인은 자신이 행하는 최선의 노력으로 구원(救援)을 얻는 것이 아니다.
타락(墮落)한 인간(人間)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구원(救援)사업은 율법주의나 인간의 그 어떠한 노력의 공로는 한 올(한 방울)도 섞일 수 없다.
구원(救援)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犧牲)을 믿음으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가 내안에 사실(居) 때에 일어나는 변화(變化)의 역사(役事)이다.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생명(生命)을 받아들이므로 되는 것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救援)을 받는 다는 주장은 복음의 능력을 부인(否認)하는 주장이다.
복음(福音)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贖罪)와 죄를 이기고 벗어남으로,
인간(人間)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재창조(再創造)하는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
이일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마음에 받아들여지므로 죄를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되는 것이다.
구속(救贖)의 경륜은 인간(人間)안에 하나님의 품성을 회복(回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갖지 못하면 하늘의 거룩한 분위기(雰圍氣)에 어울릴 수 없으므로 죄인은 하늘나라가 오히려 불편한 곳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죄인(罪人)은 하늘에 들어 갈수 없다.

◉ 1. 우리는 모두 죄(罪)아래 있다. 이는 우리가 죄에 의하여 지배(支配)를 받고 압제(壓制)를 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죄의 노예(奴隸)들이므로 우리가 우리자신의 선행(善行)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다시 반복해서 강조하는데 전혀 불가능하다.
2. 우리는 복음이란 하나님의 의를 말하는데 하나님의 의란 우리 죄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나님의 의(義)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그의 탄생(誕生), 생애(生涯), 죽으심과 부활(復活))안에서 이루신 의(義)이다.
3. 이 하나님의 의(義)는 순례(巡禮)여행이나 헌금(獻金)이나 교회에 입교(入敎)하는 것으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에 효력이 발생(發生) 한다.

☞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의 교리는 단지 하나의 이론(理論)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하여 3가지 일을 한다.
1. 하나는 즉각적(卽刻的)인 것이며
2. 또 하나는 계속적(繼續的)인 일이며
3. 마지막 한 가지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궁극적(窮極的)인 열매이다. (껍질속의 복음 30-31p)

◉ 남녀(男女)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으며,
개성(個性)과 사고(思考)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과 자유를 부여받았다.
비록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되었지만 각 사람은 육체, 정신, 혼의 불가분적인 통일체로써 생명과 호흡,
그리고 다른 모든 것에 있어서 하나님께 의존되어있다.
우리의 시조(始祖)가 하나님께 불순종 했을 때 그들은 그분께 대한 자신의 의존성을 부인(否認)했으며,
하나님 아래에 있는 그들의 고귀한 지위에서 타락했다.
그들이 지닌 하나님의 형상은 훼손(毁損)되었고 그들은 사망에 예속(隸屬)되었다.
그들의 후손은 이런 타락한 본성과 그 결과를 물려받았다.
그들은 연약성과 악(惡)에 기울어지기 쉬운 경향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 통회할 때 그들 안에 조물주의 형상을 회복시키신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존재로써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간에 사랑하며 자신의 환경을 돌보도록 소명(召命)되었다. (기본 신조, 7)

◉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 죄는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이다.
애굽인들은 죽음이 인간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여,
미라를 만들고 그것을 보존하기 위해 피라미드를 세웠다.
헬라 철학자들은 무지(無知)가 인간의 참된 행복의 가장 큰 적(敵)이라고 생각하여 교육을 강조했다.
그러나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죄(罪)이다.
죄는 행복과 마음의 평화를 앗아간다.
현대 의학(醫學)도 죄와 그 결과인 죽음을 치료할 수 없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가기 시작한다.
유일(唯一)의 치료제(治療劑)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十字架)뿐이다.
“타락(墮落)한 인간의 어떤 선행(善行)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은 아무리 열렬하게 강조하고 자주 되풀이하며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아무리 각인(刻印)시켜 주어도 지나치지 않는다.
구원(救援)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엘렌 G. 화잇, 믿음과 행함, 19)

◉ <순종으로 나타나는 믿음>
“참된 믿음은 구원(救援)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신뢰(信賴)하는 한편 그 믿음은 그를 인도하여 하나님의 율법에 온전히 일치하게 할 것이다.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성경주석, 6권, 1072)

◉ 우리는 율법주의(律法主義)와 무법주의(無法主義)의 양극단(兩極端)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의 구원(救援)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며, 참된 믿음에는 반드시 선(善)한 행위가 따른다.

◉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란 ?
“그것은 인간의 영광을 티끌 속에 묻어버리고 인간이 자기 힘으로는 할 수없는 일을 인간을 위하여 해주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이다.” (목사에게 보내는 권면 456p)

◉ 죄인이 하나님 앞에 자기 죄를 통회하고 자복(自服)하여 그를 위한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을 깨닫고 그 구속(救贖)하심을 자신의 현 생애와 장차올 생애의 유일한 소망으로 받아들일 때 그의 죄는 용서 받는다.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이다. (본교 성경주석 6권 1070p)


월(月) (3월 2일)
<성소(聖所) (히 9:1-8)>

◉ (성소(聖所)의 중요성과 역사(歷史))
성소의 역사는 범죄(犯罪)한 인류의 역사(歷史)의 시작(始作)과 끝을 함께하고 있다.
창세기에서 시작되어 요한계시록에서 끝을 맺으면서 신구약(新舊約)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창 3:21) 사실에서 구속(救贖)을 위한 희생제도(犧牲制度)가 시작되었다.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르도는 화염검(火焰劍)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신” (창 3:24) 것에서 성소(聖所)의 동편 문을 찾게 되며, 성소에서 속죄소(贖罪所)와 그룹 사이에 좌정(坐定)하신 하나님(출 25:19-22)과 거기에 나타난 임재(臨在)의 영광인 쉐키나, 곧 화염검(火焰劍)의 형체를 본다.
아벨의 제사(祭祀)에서 “양(羊)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린” (창 4:40 제물이야말로 성소의 제사제도(祭祀制度)가 이미 확립되었음을 보여준다.
범죄 후(犯罪後)즉시 시작된 성소제도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형태만 바꾸며 원형인 하늘 성소에 이르게 된다.

아담으로부터 노아 때까지는 기본성소(基本聖所)이며,
노아 때부터 모세 때까지는 제단성소(祭壇聖所)이다.
모세 때부터 구체적인 성막을 지으면서 솔로몬 때까지는 성막성소(聖幕聖所)였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때부터 예루살렘이 멸망(滅亡)한 때까지는 성전성소(聖殿聖所)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이후부터 재림 때까지는 하늘 성소(聖所)시대이다.
(가서가르쳐 지키게 하라 406p 인용)

◉ 성소제도(聖所制度)는 ?
범죄(犯罪)함으로서 하나님과 단절(斷切)된 인간을 화목(和睦)시키기 위하여 “그들 중에” 거(居)하신(출 25:8)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제사장의 봉사와 희생제도(犧牲制度), 성소기구들과 구조를 통하여 구속(救贖)의 내용과 과정을 설명하며 보여주고 있다.
속죄(贖罪)의 원리가 구체적으로 설명된 구속(救贖)의 계획의 청사진이며, 십자가(十字架)로 나타난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慈悲)를 가장 분명하게 설명한 것이 성소제도이다.

◉ 구약 성소의 모든 구조와 기구들과 봉사들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계획을 나타내는 실물교훈이었다. (히 9:1-8)

◉ 하나님께서는 죄인으로 하여금 위대한 구원의 계획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성소 봉사를 통해 시각적인 교훈을 베풀어 주셨다. 자백, 희생, 용서, 믿음, 화목, 성결 등 이 모든 것들이 지상 성소에서의 매일의 봉사와 매년의 봉사를 통해 생생하게 설명되었다.

◉ 히브리서 8:1-2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하늘에 있는 것들은 짐승의 피가 아니라 더 좋은 제물로 정결케 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 구약(舊約)에서 죄인은 약속된 후손(창 3:15)의 속죄(贖罪)하는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용서를 받았는데, 그 약속된 후손은 성소 봉사의 동물희생을 통해 예시되었다.
지상 성소의 봉사에서, 한 해가 마쳐질 때에 성소가 정결케 되는 속죄일 즉 심판의 날이 있었던 것처럼 하늘 성소의 봉사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심판의 날이 있다.

◉ <하늘 성소와 지상 성소 >
신약 성경은 새 언약에도 성소, 곧 하늘의 성소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거기서 그리스도께서는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대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신다.
이 성소는,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히 8:1-2)다.
시내산에서 모세는 하늘 성소의 ‘식양’, 사본, 축소판 모델을 보았다(출 25:9, 40).
성경은 모세가 지은 성소를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 혹은 ‘참것의 그림자’(히 9:23-24)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지상 성소와 그 의식들은 하늘 성소의 역할에 대한 특별한 통찰을 우리에게 준다.” (기본교리, 2007년, 428-429)

◉ 지상성소(地上聖所)와 그 봉사는 우주(宇宙)에서 죄를 제하시고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즉 하늘성소의 정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생생한 실물교훈이었다.

화(火) (3월 3일)
<안식일(安息日) (출 20:1-17)>

◉ 두 모조품(模造品)
모조품은 진짜 같으나 진짜가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큰 가짜가 두 가지가 있는 데,
첫째는 안식일(安息日)과, 주일(일요일)의 진짜와 가짜가 있고
둘째는 죽음에 대하여 영혼멸설(靈魂滅說)과, 영혼불멸설(靈魂不滅設)의 진짜와 가짜가 있다.
그래서 금(金)의 가짜를 구별(區別)하는 데에는 시금석(試金石)으로 분석(分析)을 해서 그 진위여부를 확인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시금석(試金石)은 오로지 성경, 성경말씀으로 분석을 해봄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 안식일(安息日)(Sabbath) (출 20:8-11), (신 5:11-21)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制定)하신 바 하늘 정부(政府)의 헌법(憲法)인 십계명(十誡命)중의 4번째 계명(誡命)이다.
십계명은 영원불변(永遠不變)한 하늘 정부의 헌법으로써 그 불변의 상징이며 권위(權威)의 표현이 되는 한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表)가되며(요일 5:3),의무(義務)가되며(전 12:13),선악(善惡)의 표준이 된다.(약 2:12)
안식일(安息日)이 이러한 십계명중의 한 부분인 것을 생각 할 때 그 중요성과 불변성(不變性)은 확실해 진다.

[Ⅰ] 안식일의 목적
1. 창조(創造)의 기념 (창 2:1-3, 출 20:11)
2. 인류(人類)의 행복 (막 2:27-28, 창 2:3)
3. 성별(聖別)의 표(表) (겔 31:13, 16), (출 31:12-14, 16)
4. 구속(救贖)의 표(表) (신 5:15, 겔20:20)
5. 만물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심을 상기 시켜 주기 위하여 (출 20:11, 시 111:4)
6.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敬拜)하도록 하기위하여 (출 20:8, 사 66:23, 출31:17)
7. 우상숭배(偶像崇拜)에서 보호(保護)하기위하여 (레 26:1-2)
※ 가). 언약(言約)관계의 표징(表徵) (출 31:16-17)
나). 충성(忠誠)의 시금석(試金石) (출 16:23-30) (계 14:12)
다). 시간(時間)속의 성소(聖所) (사 58:12-14)
라). 하늘 안식(安息)을 맛보는 것입니다. (히 4:1- 히 4:9-11)

[Ⅱ] 안식일은 어느 날인가?
(1) 안식일은 주일중 일곱째 날이다. (창 2:2-3, 출 20:8-11)
(2) 안식일은 어느 날인가? (막 16:1-2, 눅 23:53-55, 눅 24:1)

6일 7일 1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예비일 안식일 첫째 날

1) 웹스터사전 (1968년도 판)= (토요일은 주일(週日)중 일곱째 날이다)라고 답변(答辯)해 주고 있다.
2) 공동번역 성경(1971년도 판)이 증거(證據)해 준다.
마르코 16장2절에 “안식일 다음날인 일요일 이른 아침에” 라고 기록되어 있다.
“안식일 다음날이 일요일 이른 아침이면 안식일은 분명히 토요일이다”
3) 달력의 순서가 그렇고
(3) 안식일 시간은 해질 때부터 해질 때까지다. (레 23:32, 눅 23:54)
1) 성경상의 하루의 시간은 저녁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창 1:5)=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2) 예수의 시체를 무덤에 장사(葬事)지낸 시간이 증거(證據)해준다.
(눅 23:54)= 이 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로 기록되어 있다.
 ☆ 그러므로 안식일은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이다.

[Ⅲ] 안식일 준수(遵守)의 모본자(模本者)들
(창 2:1-3) ①하나님께서 친히 안식일을 지키셨다
(눅 4:16) ②그리스도께서 친히 안식일을 지키셨다.
(행 18:4) ③ 바울이
(눅 23:55-56) ④ 예수님의 제자들도 (행 13:14, 44. 16:13, 17:2, 18:4)
(마 24:20) ⑤ 초대(初代) 그리스도인들이
(계 1:10) ⑥ 사도 요한이 (주의 날) (주님의 날= Lord's day) 주인은 예수님이시기 때문에(막 2:28)
(사 66:22-23) ⑦ 신천신지(新天新地)에서도 구원(救援)받은 자들이 안식일을 지킬 것이다.
◎ 구약(舊約)의 안식일 준수
① 창조(創造)때 (창 2:1-3)
② 아브라함도 계명(誡命)을 지킴 (창 26:5)
③ 시내산 이전에 (출 16:23-30)
④ 십계명 반포(頒布) 당시 (출 20:8-11)
⑤ 시내산 이후 (겔 20:13-15), (암 8:4-10) (사 56:1-7) (렘 17:19-27) (느 13:15-22)

※일요일 준수의 유래
① 주후 321년 콘스탄틴 황제의 칙령이다.
원래 로마 콘스탄틴 황제는 태양신을 섬기던 이교도(異敎徒)였는데 태양신의 축제일인 일요일제도를 교회 안으로 수입(遂入)하게 되었다.
② 주후 336년 라오디게아 총회의 결정
(천주교 교리문답 50쪽)
질문: 어느 날이 안식일인가?
대답: 토요일이 안식일이다.
질문: 왜 우리는 토요일 대신에 일요일을 지키는가?
대답: 천주교회가 라오디게아 총회(336년)에서 그 신성성(神聖性)을 일요일로 옮겼기 때문에 우리는 토요일 대신에 일요일을 지킨다.

[결론]
우리는 왜 제7일 토요일(안식일)을 지켜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명(命) 하셨고 우리 구주(救主) 예수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날을 지키셨으며 사도들도 계속 지키어 우리에게 모본을 보여 주셨으니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로써 이날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사58:13) (요일 2:3-4)
(계 14:6-7) 인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마지막 기별은 창조자(주)를 경배하라는 부르심이다.
(계 14:11) 경배의 기초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이다.
(엡 3:9) 예수님은 창조사업에 참여했기 때문에(계 14:11은) 예수님에게 영광을 돌리라는 부르심이다.
(출 20:8-11) 안식일을 지킴으로 그분을 창조주(創造主)로 경배한다.
(창 2:1-3) 안식일 창조시(創造時)에 따로 구별하여 만들어 놓았다.
(막 2:27-28) 유대인이 있기 2,300년 전에 온 인류의 기념일로 안식일이 주어졌다.
(겔 20:12, 20)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표징이며 인류를 위하여 설정(設定)되었다.
(눅 4:16) 예수님께서 충성스럽게 ㅍ을 지키셨다.
(마 24:20) 예수님은 자신이 죽은 지 35년 지나서 예루살렘의 멸망시 AD70년 에도 안식일을 지킬 것이라고 예언 하셨다.
(행 13:42-44) 바울은 안식일을 지켰고 유대인과 이방인과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여 그 날에 모였다.
(행 16:13) 빌립보에는 교회건물이 없기 때문에 안식일에 문밖 강(江)가에서 신자들을 만나 예배드렸다. (계 1:10, 마 12:8, 눅 23:54-56, 24:1, 히 13:8, 사 66:22-23)

[안식일의 변경과 일요일 준수의 유래]
<1> 성경에는 하나님의 안식일이 폐지될 수 있다고 말 한곳이 있는가?
① 성경에는 안식일을 폐지될 수 있는 사실에 대하여 언급한곳이 하나도 없다.
ⓐ (마 5:17-18)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율법을 폐하려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눅 4:16)
ⓑ (행 17:2-3) 사도들과 안식일과의 관계
“바울이 자기 규례대로……. 새 안식일에 성경(聖經)을 가지고 강론 하며”
(행 13:14, 42, 16:13)

② 하나님의 안식일은 왜 변경되었으며 성경은 이 사실에 대하여 어떻게 예언 하고 있는가?
(단 7:25, 벧후 1:19-21, 살후 2:3-4, 살후 2:7-8)
ⓐ 성경에는 하나님의 안식일을 변경시킬 배도(背道)의 세력이 나타날 것을 예언하고 있다.
배도의 세력이 하는 일 은 (그가 말로 지극(至極)히 높으신 자를 대적(對敵) 하며.)
ⓑ 배도한 세력의 정체
먼저 배도 한 세력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눅 5:20-21)
ⓒ (단 7:25, 겔 4:6) 때(時)와 법을 변경시킬 것임.
그가 또 때(時)와 법을 변경코자 할 것이며.

③ 성경에 기록된 예언대로 하나님의 안식일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경되어 왔는가?
ⓐ 천주교회는 스스로가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경시켰다고 주장한다.
(사 8:20)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행 20:29-30) 안식일 변경에 대한 역사적 증언.
“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나니…….”

④ 성경에는 교회(敎會)안에서의 태양신 숭배정신과 안식일 회복운동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 교회 내에 태양신 숭배의 정신이 편만할 것을 성경은 예언 하고 있다
(겔 8:16) “동방 태양에게 경배함” 약 25인이.
㉯ 안식일 회복운동이 일어날 것을 성경은 예언 하고 있다.
㉠(사 58:12) 안식일 회복운동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修補) 하는지라 할 것이며” (사 58:13-14)
㉡ (막 7:6-9) 참된 선택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敬拜)하는 도다”
(요 14:6)
㉢(계 2:10) 믿는 자의 태도 = “죽도록 충성하라 ”

※ 안식일(安息日)= (요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 인간에게 주어진 제도는 안식일과 결혼 제도뿐이었다.
그래서 이 두 제도는 낙원의 쌍둥이 자매라 불리기도 한다.
◉ 오늘날 세상을 바라볼 때 사단이 얼마나 이 제도들을 훼손시키고 더럽히려고 부지런히 일해 왔는지를 분명히 보게 된다.
넷째 계명은 어떤 의미에서 시금석과 같은 계명(誡命)이다.
이 계명은 인간의 영적 상태를 시험한다.
이 계명은 만질 수 없고 보이지도 않는 시간을 다루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태도를 측정하기에 아주 적합하다.
우리가 안식일을 어떻게 취급하느냐 하는 것은 그분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나타낸다.
이 계명은 사람이 그것을 어기고도 좋은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행세할 수 있는 유일한 계명이다.

어떤 의미에서 안식일은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일곱째 날은 왜 다른 날보다 귀한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이다.
도둑질하지 말고, 살인하지 말며, 탐내지 말아야 할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한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반드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비(非)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어떤 자연 현상에 근거하지 않고, 단순히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믿음의 행동이다. 우리가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 아니고, 인기가 있기 때문도 아니며, 어떤 자연의 주기와 맞아떨어지기 때문도 아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하셨고, 우리는 그분의 계명들에 순종함으로 믿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약 2:10-11, 요일 5:2-3, 계 14:12).

우리는 안식일에 쉼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된 쉼을 세상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쉼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참조 히 4:1-11).

◉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날 >
“우리가 특별히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날은 안식일이다.
안식일이 없다면, 모든 사람들은 끝없이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할 것이다.
매일이 똑같으며 세속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데 바쳐질 것이다.
그러나 안식일의 도래는 소망과 기쁨과 의미와 용기를 가져다준다.
그것은 예배와 기도와 찬미와 말씀에 대한 연구와 명상을 통하여, 그리고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줌으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다.”
(기본교리, 2007년, 355)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 사실을 명백하게 전하신 것은 감사할 일이 아닐 수 없다.

◉ 안식일 준수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과 믿음을 나타내는 중요한 열쇠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쉼을 밖으로 드러내는 하나의 방편이 된다.

수(水) (3월 4일)
<죽은 자의 상태(시 146:4)>

◉ 많은 사람들은 사람이 죽고 나면 극락(極樂)이나 천당(天堂)으로 죽음과 동시 즉시 들어간다고 생각하며 말하고 있다. 심지어 기독교인들도 사람이 죽고 나면 즉시 소천(所天)하였다고 한다,
한술 더 떠서 지옥(地獄)을 다녀왔다고 간증을 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지옥에 대한 너무나 많은 책들이 우리주위에 퍼지고 있다.
또한 많은 개신교 목사님들은 설교나 말씀이나 서적을 통해서 지옥에 대한 올바르지 않는 성경의 해석으로 많은 사람들을 현혹(眩惑)시키고 있다.
앞으로는 강신술로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迷惑)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과연 성경에서는 죽음에 관하여 어떻게 정의(定義)하고 있는지 꼼꼼히 살피고 공부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친히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 (문) 죽은 자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답) 죽은 자는 존재자체가 없는 것이다.
생명체인 산 사람의 존재가 완전히 파괴되어 무 존재(無存在)가 된다.
사망은 하나님 앞에서 상급이 아니요 죄의 값이다.

◉ 죄의 삯은 사망이다. 그러나 유일한 불멸의 존재이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속(救贖)받은 자들에게 영생을 주실 것이다. 그날이 되기까지는 죽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무의식(無意識)상태가 된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부활한 의인들과 살아있는 의인들은 영광스럽게 변화 되어 공중으로 끌어올려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둘째부활, 즉 불의한 자들의 부활은 1,000년 후에 있게 될 것이다. (기본신조25)

◉ <죽음; 죄의 삯>
불순종 하면 죽음이 온다는 하나님의 경고와는 반대로 사단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창 3:4)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후에 그들은 죄의 삯이 정말로 사망(롬 6:23)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의 죄는 너희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 3:19)는 선고를 받게 했다.
이 말은 생명의 계속을 가리키지 않고 생명의 단절을 가리킨다.
이 선고를 하신 후 하나님은 범죄(犯罪)한 부부가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차단시켜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고 영생 하지(창 3:22)못하게 하셨다.
그분의 행동은 순종을 조건으로 약속된 불멸성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바 된 사실을 분명히 밝혔다.
그들은 이제 죽을 수밖에 없이 되었고 죽음에 굴복하였다.
아담은 그가 더 이상 소유하지 못한 것을 물려줄 수 없었고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 (롬 5:12)
오직 하나님의 자비가 아담과 하와에게 즉각적인 죽음을 면하게 해주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그들은 다른 기회, 곧 두 번째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은, “창세(創世)때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계 13:8 영어성경 참조)이셨다. (기본교리27, 324p)

◉, <죽음의 본질>
죽음이 생명의 중단이라면, 성경은 죽은 사람의 상태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성경의 교훈을 이해하는 것이 왜 요긴한가?

1. <죽음은 잠자는 것임>
죽음은 완전히 절멸(絶滅)이 아니고, 그 사람이 부활을 기다리는 동안의 일시적인 무의식 상태에 불과하다.
성경은 이 상태를 거듭거듭 잠이라고 부른다.
(성경 참조 : 왕상 2:10, 11:43, 14:20, 31, 15:8 ; 대하 21:1, 26:23)
욥은 다윗(시 13:3)과 예레미야 (렘 51:39, 57)와 다니엘 (단 12:2)과 똑 같이 죽음을 잠이라고 불렀다. (욥 14:10-12).
신약 성경도 동일한 비유적(比喩的) 표현을 사용한다.
죽은 야이로의 딸의 상태를 묘사하면서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잔다고 말씀하셨다. (마 9:24; 막 5:39)
주님은 죽은 나사로도 같은 표현으로 말씀하셨다(요 11:11-14),
마태는 그리스도의 부활 후에 “자던 성도들의 몸이 많이 일어”(마 27:52)났다고 기록 했고,
스데반의 순교를 기록 하면서 누가는 그가 “자니라”(행 7:60)고 했다.
바울과 베드로 역시 죽음을 잠이라 불렀다. (고전 15:51-52 ; 살전 4:13-17 ; 벧후 3:4)
죽음을 잠이라고 한 성경의 표현은 다음의 증거들과 비교해볼 때 그 상태와 분명히 일치 된다.
① 죽은 자는 의식이 없다. =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전 9:5)
② 잘 때는 의식적사고(意識的思考)가 중단 된다
“그 호흡이 끊어지면…….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消滅)하리로다” (시 146:4)
③ 잠은 일상의 모든 활동을 그치게 한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전 9:10)
④ 잠자는 자들은 깨어 있는 자들과, 그들의 활동에서 완전히 분리된다.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에 저희가 다시는 영원히 본복이 없느니라.” (전 9:6)
⑤ 정상적인 잠은 정서적 활동을 그치게 한다.
“그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진 지 오래니” (전 9:6)
⑥ 잘 때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다.
“죽은 자가 여호와를 찬양 하지 못한다.” (시 115:17)
⑦ 잠은 깨어날 것을 전재로 한다.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나오리라.” (요 5:28-29)

2. <사람이 흙으로 돌아감>
죽을 때 사람에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이해하려면 사람의 본질이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를 알아야 한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의 유기체(有機體)라고 한다.
때로는 성경이 전인적(全人的)인 사람을 나타내기 위하여 “영혼”(네페쉬)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애정과 정서를 나타내기 위하여 그 말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이 분리된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몸과 영혼(네페쉬)은 오직 함께 존재한다.
그것들은 하나의 보이지 않는 연합을 이룬다.
인간을 창조 할 때 흙(땅의 요소)과 생기와의 연합이 산 사람, 혹은 영혼(네페쉬)을 만들었다.
아담은 하나의 분리된 단위로서의 영혼(네페쉬)을 받지 않고 생령이 되었다.(창 2:7참조)
그리고 죽을 때에는 반대 현상이 생긴다.
곧 땅의 흙으로 이루어진 사람에게서 생기가 제거(除去)되면, 의식이 전혀 없는 죽은 사람 혹은 죽은 영혼(네페쉬)이 된다. (시 146:4)
몸을 이루었던 요소는 본래그대로 땅으로 돌아간다.9창 3;19).
영혼(네페쉬)은 육체를 떠나서 의식적 존재로 남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죽을 때 영혼(네페쉬)이 하나의 의식적 존재로 생존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진실로 “범죄(犯罪)하는 그 용혼(네페쉬)은 죽” (겔 18:20)는다. (기본교리27. 326p).

◉ <성경 전체와의 조화>
죽음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포괄적으로 연구하지 않은 많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이 부활할 때까지 계속되는 하나의 잠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 들은 영(靈)이나 영혼이 죽음 후에 의식적 실체를 가지고 있다는 사상(思想)을 여러 성경절들이 지지한다고 단정해왔다.
그러나 주의 깊이 연구해보면 죽으면 작용이 중단된다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임을 밝혀준다.
☞ 그러므로 최후의 기만인 “강신술(降神術)”에 대하여 특별히 경고(警告)해주셨고,
그 유혹에 넘어가지 말기를 간곡히 권면하고 있다.

◉ <영원히 불타는 지옥은 없음 >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
악인(惡人)을 태우는 불은 땅을 정결케 한다. 모든 저주의 흔적은 일소(一掃)된다.
구원(救援)받은 사람들에게 죄의 무서운 결과를 언제나 생각나게 해줄 영원히 불타는 지옥(地獄)은 없다.
오직 한 가지 기념물(記念物)은 남게 된다.
우리 구주께서는 십자가의 표를 영원히 언제나 간직하실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73-674)

◉ 죽은 자의 상태에 관한 진리는 사단에 의해 심하게 왜곡되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대로 죽음은 잠이며,
그 후에는 두 부활(復活)(1. 생명의 부활이나. 2.심판의 부활)중 하나에 참여하게 된다.

목(木) (3월 5일)
<예수님의 재림(再臨)(마 24:5, 24-31)>

◉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없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리스도인들의 복스러운 소망이며, 위대한 복음의 절정이다.
구주(救主)의 오심은 실제적(實際的)이며 직접적(直接的)이요 가시적(可視的)이며 세계적(世界的)이다.
그분이 오실 때 죽었던 의인들은 부활하여 살아있는 의인들과 함께 영광스럽게 변화되어 하늘로 승천(昇天)것이다.
그러나 불의한 자들은 죽을 것이다.
세상의 현실적 상태와 함께 거의 모든 예언들의 성취는 그리스도의 오심이 임박했음을 알려준다.
재림의 시간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권면을 받고 있다. (기본신조 24)

◉ <예수님의 재림의 성경의 증언>
예수님의 재림은 믿을 수 있는 성경의 보증에 근거(根據)한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직전에 제자들을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기 위하여 당신의 아버지께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내가 다시 오”(요 14:3)겠다고 약속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초림하실 것이 예언되었던 것처럼 그 분의 재림도 모든 성경을 통하여 예언(豫言)되어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1,000년 전에 시편 기자는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모으기 위하여 오실 것이라고 말했다.
(시 50:3-5)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분의 재림의 약속을 믿고 기뻐하였다.
그들은 모든 난관을 꿋꿋하게 견뎌냈고, 이 약속이 가져다주는 보증은 그들의 용기와 힘을 새롭게 해주었다.
그들의 주님은 그들을 아버지 집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이었다.

☞ (초림이 보증하는 보증)
예수님의 재림은 그리스도의 초림(初臨)과 밀접히 관련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초림(初臨)하셔서 죄와 사단에 대한 결정적 승리를 얻지 못하셨을 것 같으면 (골 2:15),우리는 그분께서 마침내 오셔서 이 세상에 대한 사단의 지배를 종식시키고 이 세상을 그 본래의 완전한 상태로 회복시키실 것을 믿을 근거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께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나타나”신 증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분께서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 (히 9:26, 28)실 것을 믿을 근거(根據)가 있다.

◉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모습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며, 그 사실을 아는 것은 왜 그렇게도 중요합니까?
예수께서는 당신께서 오시는 광경에 관한 어떤 기만이 있을 것을 미리 경고하셨습니까? (마 24:5, 24-31, 계 1:7)

☞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비밀스럽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보고 들을 수 있게 임할 것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 4:16),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27)

◉ <재림은 공개적인 사건 >
“그리스도의 재림을 온 세계가 알게 된다는 묘사에 덧붙여 그분의 재림이 눈으로는 물론이요 소리에 의해서 알려진다는 것이 성경상 주장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살전 4:16). ‘큰 나팔 소리’(마 24:31)가 그분의 백성들을 모으는 일에 수반된다. 비밀리에 오시는 일이란 없다.”(기본교리, 2007년, 457-458)

◉ 성경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단 한 번의 실제적인 사건으로서 모든 사람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게 이루어질 것이다.

◉ 우리 교회의 초창기 선구자들은 율법에 관한 그들의 설교에 있어 불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1890년에 엘렌 화잇은 기록하기를,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이슬도 비도 내리지 않는 길보아 산처럼 건조하게 율법을 설교해 왔다.
우리는 율법을 통해 그리스도를 설교해야 한다.(리뷰 앤드 헤럴드, 1890년 3월 11일자)고 했다.
1888년 미네아폴리스 대총회 기간에 와그너(E. J. Waggoner)와 존스(A. T. Jones)가 바로 그렇게 하였다.
그들은 기별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의를 얻을 수 있는 유일의 방법은 오직 세상 죄를 속량하기 위해 갈바리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하나님의 어린양에 대한 살아 있는 믿음을 통해서라는 진리를 확증하였다.
그리스도의 흠 없는 의의 두루마기를 입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 두루마기는 금이나 은으로 살 수 없고, 선행으로도 획득할 수 없다.
이 기별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우리 모두의 삶과 설교의 중심에 두라는 호소였다.
그것은 단순한 이론이기보다는 참된 개인적 경험인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었다.”
(A. V. 올슨, 위기를 통하여 승리까지: 1888-1901, 리뷰 앤드 헤럴드, 1966년, 35)


<초점(焦點)>

1. 몇 연(年)전에 불교계의 거장 성철스님이 돌아가셨을 때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들이 그의 청빈한 삶에 많은 관심과 호응을 얻었고 불교(佛敎)의 관심과 포교(布敎)에 많은 반향(反響)을 일으켰다.

2. 얼마 전엔 천주교 추기경 한 분이 돌아 가셨다.
그야말로 대단한 추모(追慕)의 행렬(行列)과 장례(葬禮)와 그분의 삶에 대하여 지금까지도 대단한 반향(反響)들이 연속되고 있다.

3. 이 두 분들은 개인(個人)에 대하여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생애에 대하여 사람들로부터 추앙(推仰)과 흠모(欽慕)를 받는 분들이다.
그러나 그 분들께서는 자기가 신앙하는 종교의 창시자(創始者)들의 말씀이나 뜻을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일보다는 그 개인들이 그 영광을 받는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나 비(非)그리스도인들에게 창조주 하나님께 초점(焦點)을 맞추도록, 그분들의 삶에서 즉 생애가 확대경(擴大鏡)이나 돋보기의 역할보다는 자신들이 크게 확대(擴大)되어서 많은 사람들은 그 두 분을 하나님이나 예수님(해당 종교)보다 더욱 자신들에게 초점(焦點)을 맞추는 결과가 되고 있음을 보면서,
금번의 교과 는 하나님의 기별을 선지자들이 어떻게 전달하며, 전달되고 있는지의 여부가 참으로 중요함을 깨닫게 하고 있다.

4. “엘렌 G. 화잇”은
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칭의(稱義)에 대하여
② 성소(聖所)에 대하여
③ 안식일(安息日)에 대하여
④ 죽음에 대하여
⑤ 예수님의 재림(再臨)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조금도 이탈(離脫)하거나 그녀에게 만분의 일이라도 그녀를 추앙(推仰)하거나 그녀를 흠모(欽慕)하거나 어느 교파(敎派)에만 소속(所屬)되어야만 한다거나 인간적(人間的)인 면모(面貌)에 추호(推戶)도 시선(視線) 돌리게 하는 그녀의 사상(思想)이 전혀 들어있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에 한 올이라도 인간의 노력이나 대가(代價)가 첨가(添加)되여서는 안 된다는 그분의 사상(思想)임을 그동안 살펴보았고 확인하였음을 명심(銘心)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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