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과 -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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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9-05-28 23:17 조회6,221회 댓글0건첨부파일
- 2009년05월30일(안) 이봉주 (제9과) 천국.hwp (32.0K) 83회 다운로드 DATE : 2009-05-28 23: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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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5월30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46분)
제9과 천국(天國) Heaven
<기억절(記憶節)>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깨닫기: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는다.
느끼기: 이 땅에서의 삶이란 일시적인 것이라는 사실에서 용기를 얻는다.
행하기: 이 땅에서의 삶이 다하는 날, 창조주 하나님과 대면하게 될 것을 고대한다.
요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을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라'고 말씀하셨다. 낙담과 좌절이 엄습해 올 때, 나의 창조주께서 나를 위해 하늘에 처소를 예비하러 가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일요일(5월 24일)
<우리는 언제 천국(天國)에 가는가? (요 14:1-3)>
◉ 기독교인들 중에 잘못된 교리(敎理)나 용어(用語)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사람이 죽으면 소천 하셨다는 용어이다.
이 말은 사람이 죽으면 즉시 하늘나라(천국)로 가셨다는 말인데 참으로 잘 모르고 사용하는 용어이다.
▶ 인간은 즉 사람이 만들어진 본질(本質)이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를 알아야 한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의 유기체(有機體)라고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분리된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몸과 영혼(네페쉬)은 오직 함께 존재한다. 그것들은 하나의 보이지 않는 연합을 이룬다.
인간을 창조할 때 흙(땅의 요소)과 생기와의 연합이 산 사람, 혹은 영혼(네페쉬)을 만들었다.
그리고 죽을 때에는 반대 형상이 생긴다.
곧 땅의 흙으로 이루어진 사람에게서 생기(生氣)가 제거(除去)되면, 의식이 전혀 없는 죽은 사람 혹은 죽은 영혼(네페쉬)이 된다. (시 146:4)
몸을 이루었던 요소는 본래 그대로 땅으로 돌아간다.(창 3:19)
영혼(네페쉬)은 육체를 떠나서 의식적 존재로 생존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진실로 "범죄하는 그 영혼(네페쉬)은 죽" (겔 18:20)는다.
그 원리(原理)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生氣)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이" 되었다고 (창세기 2:7)에 기록하고 있으며, 창조(創造)의 이야기는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을 받았다고 말한다. (참조 :사도행전 17:25, 28 ; 골로새서 1:16-17)
그러므로 죽음은 그의 반대로 진행되는 것으로 "생령(生靈) 즉 혼(魂)이 떠나면 육체(肉體)는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을 일컬어 "돌아 가셨다고" 한다.
그러므로 숨을 거둔 후(後) 즉시 천국(天國)이나 지옥(地獄)으로 즉시(卽時)가는 것이 아니고,
무덤에 머물러 무의식상태(無意識狀態)로 있는 것을 성경에서는 잠자는 것으로 묘사(描寫)한다.
(참조 : 왕상 2:10, 11:43; 14:20, 31, ; 15:8 ; 대하 21:1, 26:23)
욥은, 다윗(시 13:3)과 예레미야 (렘 51:39, 57)와 다니엘(단 12:2)과 똑 같이 죽음을 잠이라고 불렀다. (욥 14:10-12)
신약성경에도 동일한 비유적 표현을 사용한다.
죽은 야이로의 딸의 상태를 묘사(描寫)하면서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잔다고 말씀하셨다. (마 9:24; 막 5:39)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도 같은 표현으로 말씀하셨다. (요 11:11-14)
마태는 예수님의 부활 후에 "자던 성도(聖徒)들의 몸이 많이 일어"(마 27:52)났다고 기록 했고,
스데반의 순교를 기록 하면서 누가는 그가 "자니라." (행 7:60)고 했다.
바울과 베드로 역시 죽음을 잠이라고 불렀다. (고전 15:51-52; 살전 4:13-17; 벧후 3:4)
▶ 죽음을 잠이라고 한 성경의 표현은 다음의 증거들과 비교해 볼 때, 그 상태와 분명히 일치 된다.
1). 죽은 자는 의식(意識)이 없다. →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전 9:5)
2). 잘 때는 의식적사고(意識的思考)가 중단된다.→
그 호흡이 끊어지면 . 당일에 그 도모(圖謀)가 소멸(消滅)하리로다"(시 146:4)
3). 잠은 일상의 모든 활동을 그치게 한다. →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전 9:10)
4). 잠자는 자들은 깨어있는 자들과 그들의 활동에서 완전히 분리된다. →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에 저희가 다시는 영영히 분복이 없느니라." (전 9:6)
5). 정상적인 잠은 정서적(情緖的)활동을 그치게 한다. →
"그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진 지 오래니" (전 9:6)
6). 잘 때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다. →
"죽은 자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니" (시 115:17)
7) 잠은 깨어날 것을 전재로 한다. →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나오리라" (요 5:28-29)
▶ 남녀(男女)인간은 하나님의 형상(形象)으로 만들어 졌으며, 개성(個性)과 사고(思考)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과 자유를 부여받았다. 비록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되었지만 각 사람은 육체(肉體), 정신(情神), 혼(魂)의 불가분적(不可分的)인 통일체(統一體)로써 생명과 호흡(呼吸), 그리고 다른 모든 것에 있어서 하나님께 의존(依存)되어 있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무의식(無意識) 상태가 된다.
우리의 생명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부활한 의인들과 살아있는 의인(義人)들은 영광(榮光)스럽게 변화(變化)되어 공중(空中)으로 끌어올려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둘째 부활(復活), 즉 불의(不義)한 자들의 부활(復活)은1,000년(年)후에 있게 될 것이다.
◉ <죽은 자의 거처(居處)>
구약성경(舊約聖經)은 사람들이 죽을 때에 가는 곳을 "스올"(sheol 히브리어)이라 하고,
신약성경(新約聖經)은 "하데스"(hades 헬라어)라 한다.
성경에서는 "스올"이 가장 빈번히(하게) 무덤을 의미(意味)한다.
"하데스"의 의미(意味)는 "스올"의 의미(意味)와 유사(類似)하다.
죽은 자는 의인(義人)이나 악인(惡人)을 막론(莫論)하고 모두 이곳으로 간다.
야곱은 "내가 ……. 음부(스올)에 내려 . 가리라" (창 37:35)고 말했다.
땅이 고라와 그의 일당들을 삼키고자 "입을" 열었을 때 그들은 "산체로 음부(스올)에 (민 16:30)내려 갔다.
죽을 때 전체로써의 사람이 "스올"에 들어간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을 때 그 분은 무덤(하데스)으로 내려 가셨지만 부활(復活)때에 그분의 혼은 무덤(하데스, 행 2:27, 31, 혹은 "스올", 시 16:10)을 떠났다.
다윗이 치료(治療)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때 그는 그의 혼(魂)이 "음부(스올)" (시 30:3)에서 구원(救援) 받았다고 증언했다. 무덤은 의식(意識)이 있는 장소가 아니다.
무덤(하데스)이 그 죽은 자를 내어주는(계20:13)부활(復活)때까지 무의식상태(無意識狀態)로 무덤 속에 머물러있게 될 것이다.
▶ <신(영(靈), spirit)은 하나님께로 돌아감>
몸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신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솔로몬은 죽을 때에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 (전 12:7)간다고 말했다. 이것은 의인과 악인을 막론하고 모두가 똑같다.
※ 많은 사람들은 이 성경절(聖經節)이 죽은 후(後)에도 사람의 본질(本質)은 계속살아있다는 증거를 제공해 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경은 신(영(靈))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루하흐(ruach)와 헬라어 "프뉴마(pneuma)"그 어느 것도 육체(肉體)를 떠나서 의식적(意識的)존재(存在)가 될 수 있는 하나의 지성적(知性的)실체라고 언급(言及)하지 않는다. 대신에 이 용어(用語)들은 "호흡", 곧 개인의 생존에 필수적인 생명의 기운(氣運), 동물들과 인간을 살리는 생명의 소인(素因)을 의미한다.
▶ 솔로몬은 이렇게 기록했다.
"인생에게 임(臨)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들에게 임하는 일이 일방(一方)이라 다 동일(同一)한 호흡(영(靈)=루아흐)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魂)(루아흐)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魂)(루아흐)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전 3:19-21).
그러므로 솔로몬에 의하면 사람의 혼(루아흐)과 짐승의 혼(루아흐)과는 구분이 없다.
성경에는 "spirit"(루아흐)과 "soul"(네페쉬)이 일관성(一貫性)있게 번역(飜譯)되어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spirit"은 "영(靈)"으로 "soul"은 "혼(魂)"으로 번역된다.
성경에는 "soul"을 "영혼"으로 많이 번역되었고 "spirit"은 때때로 "혼"으로도 번역되었다.
독자(讀者)들의 편의를 위하여 필요시에는 번역된 용어 옆에 원어를 표기해 놓았다.
"혼(魂)"(루아흐)이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솔로몬의 말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생명의 소인(素因)을 가리킨다.
혼(魂)(루아흐)혹은 호흡(呼吸)이 육체를 떠난 하나의 의식적(意識的) 실체(實體)라는 뜻은 없다.
이 "루아흐"는 하나님이 생명(生命)없는 육체를 살리기 위하여 최초의 인간에게 불어 넣으신 "생기(生氣)"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창 2:7 참조)
▶ 요약해서 정리를 해 본다면 사람이 죽으면 즉시 천국이나 지옥(地獄)으로 직행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죽으면 죽음의 깊은 잠을 자다가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부활의 아침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聖徒)의 부활(復活)과 변화(變化)>
이것은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소망(所望)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 <성도의 영광스러운 미래 >
그리고 살아 있는 의인들은 '순식간에 홀연히'(고전 15:51) 변화된다. 그들은 영화롭게 되고, 불멸을 얻어 부활한 의인들과 함께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영원토록 그분과 함께 살기 위하여 하늘로 끌려 올라간다.(살전 4:16-17)”(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455)
◉ 우리는 죽음의 순간에 몸에서 분리된 영혼이 즉시 천국(天國)이나 지옥(地獄)에 가는 것이 아니다.
죽은 후에 무의식(無意識) 상태로 있다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활(復活)하여 천국에 들어간다.
월요일(5월 25일)
<천국(天國)인가, 지옥(地獄)인가?(마 25:46)>
◉ 천국(天國)과 지옥(地獄)은 실재(實在)하는 곳이다.
지식(知識)을 습득(習得)하는 과정은 아는 것을 통하여 아는 만큼만 알게(더하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거나 경험하지 않는 곳을 말이나 글로 설명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즉 태어나면서부터 시각장애인(視覺障碍人)에게 무지개의 색깔을 설명한다고 하면 그 일곱 가지의 아름다운 색깔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요?
그와 마찬가지로 가보지도 않은 천국과 지옥을 설명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천국을 쉽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본다면
천국은 이 세상에서 "나쁜 것"이나 "불편한 것"이나 "해(害)로 운 것"이나 "무서움"이나 "두려움"이나 "고통(苦痛)과 질병(疾病)"이나 사망(死亡)이 없는 곳을 천국이라고 설명할 수가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지옥(地獄)은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영원한 불이 지글지글 평생토록 죄인들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곳으로 천국에 간 가족이나 친지들의 고통을 보며 영원토록 사는 그런 곳이 아니다.
성경에서 지옥이나 영원한 불을 인용한 배경이나 설명을 다음에서 참고합시다.
◉ "지옥(地獄)불"
문자적으로 "불의 게헨나"(헬라어 "게엔나"(geenna)즉 "불의 지옥" 지옥을 뜻하는"게엔나"는 "힌놈의 골짜기"를 뜻하는 히브리어 "게 힌놈" (ge′ hinnom) 또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를 뜻하는 "게 벤 힌놈"(ge′ gen hinnom 수 15:8)의 음역으로 그 골짜기는 다윗성 남쪽의 기드론 골짜기와 실로암 연못이 직접 만나는 예루살렘의 남서쪽에 있다.
악(惡)한 왕 아하스는 이사야시대에 힌놈의 골짜기에 있는 도벳(Tophet)이라 불린 산당(山堂)(대하 28:3참조)에서 몰렉에게 어린아이를 태워 제사(祭祀)드리는 야만적인 이교(異敎)의식(儀式)을 소개한 것 같다.
이러한 반역적인 의식(儀式)들들에 대한 좀 더 상세한 묘사(描寫)에 대하여는 레위기18:21; 신명기18:10; 32:17 왕하 16:3; 23:10; 렘 7:31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수년(數年)후에 선(善)한 왕 요시야가 이런 섬뜩한 형식의 예배가 행해졌던 힌놈의 골짜기에 있는 산당들을 공식적으로 더럽힘(왕하 23:10)으로 그것을 정지시켰다.
이것과 기타 악(惡)에 대한 징벌(懲罰)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힌놈의 골짜기가 언젠가는 "이 백성(百姓)들의 시체(屍體)"로 인해 "살육(殺戮)의 골짜기"가 될 것이라고 예고(豫告)했다.
(렘 7:32-33; 19:6 참조: 이사야 30:33) 따라서 힌놈의 불은 마지막 큰 심판의 날에 있을 소멸(消滅)하는 불과 악인(惡人)의 징벌에 대한 상징이 되었다. (참조 이사야 66:24).
부분적으로는 헬라철학에서 유래한 유대인의 종말론적(終末論的)사상에서 "게헨나"(Gehenna)는 불 경건(不敬虔)한 자들의 영혼이 마지막 심판(審判)과 보상(報償)의 날까지 형벌(刑罰)아래 머물러있는 장소였다.
"게헨나"(Gehenna)골짜기를 쓰레기 소각(燒却) 장소로 마들어 마지막 날의 불의 전형이 되게 한 전승은 12세기와 13세기 유대인 학자 랍비 킴히(Kimchi)에게서 비롯된 것 같다.
이러한 사상은 고대 유대 문헌에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초기 랍비들은 마지막 날의 불의 전형으로서 "게헨나"(Gehenna)사상의 근거를 이사야 31:9에 둔다.
(본교 한글주석 9권 241 참조)
◉ <영원(永遠)한 불>
성경에는 ① "영원한 불"(마 25:41)과 ② "꺼지지 않는 불"(마 3:12)과 ③ "지옥(地獄) 불"(마 5:22)로 묘사(描寫)되어 있다.
이 세 가지 표현은 모두 마지막 날에 악인(惡人)들과 그들의 모든 업적을 삼켜버릴 불을 가리킨다.
(벧후 3:10-12절 ; 계 20:10절 14-15절)
"영속적인" 또는 "영원한" 이라는 말은 한 번은 "끝없이"라고 번역된 "아이오니오스"(aionios)는 문자적으로는 "한시대 동안 지속되는"을 뜻하며, 이것은 변덕스런 변화에 지배(支配)받지 않고 지속됨을 의미한다.
고대 헬라의 파피루스 문서들에는 로마의 황제들을 '"이오니오스"라고 묘사한 수많은 사례가 들어있다.
이것은 종신(終身)직을 가리키는 말로써 그들은 평생 그 직분을 유지했다.
그러므로 영어 단어 "everlasting"(영속적인)과 "eternal"(영원한)은 "이오니오스"의 의미를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볼 수 없다. "이오니오스"는 문자적으로 "지속적인"이라는 의미로 어떤 한계(限界)내에서의 영구성(永久性)이나 지속성을 나타내지만, "everlasting"과 "eternal"은 한정(限定)되지 않은 영속(永續)을 뜻한다.
이오니오스가 의미하는 지속기간은 경우마다 그 말이 묘사하는 사람이나 사물의 성격에 따라 결정된다.
▶ "불."은 죄에 대한 형벌을 가하는 수단이다. (마 18:8 , 마 25:41).
"불"이 "영원하다" 곧 "아이오니오스"(aionios)하다는 말은 불이 끝없이 영속 된다는 것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것은 유다서 1장7절에서 분명해진다. 분명히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킨 "영원한 불"은 얼마동안 타다가 꺼졌다.
성경의 다른 곳에는 마지막 날의 불이 "꺼지지 않는" (마3:12)불로 언급되어있는데 그것은 그 불이 죄와 죄인들을 마지막 흔적가지 태워버리기 전에는 꺼지지 않을 것을 뜻한다.
"아이오니오스"(aionios)에 해당하는 구약의 용어 "울람"(′ olam)에 대해서는 (출애굽기21:6)을 참조.
(본교 한글주석 9권 484p 참조)
◉ 예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주어질 두 가지 선택적 운명에 대해 말씀하셨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9).
결국에는 영벌(永罰)에 들어갈 자와 영생(永生)에 들어갈 자들로 나뉠 것이다.
우리는 어느 한 편에 속하게 될 것이며 중립은 없다.
◉ <실제적인 장소인 천국(天國)>
“성경의 최초의 두 장은 하나님이 완전한 세상을 창조하셔서 인간의 본향으로 주신 것에 관하여 알려준다. 성경의 마지막 두 장 역시 하나님이 인류를 위하여 완전한 세상을 창조하심에 관하여 말해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재창조, 곧 죄가 초래한 폐허에서 지구를 회복시키는 것에 대한 것이다. 거듭거듭 성경은, 구속받은 자들의 영원한 이 본향은, 실제적인 장소, 육체와 두뇌를 가진 실제적인 사람들이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고, 재어보고, 묘사하고, 조사해 보고,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장소라고 선언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실제적인 하늘나라를 이 새 땅위에 두실 것이다.”(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508)
※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인간 그 누구도 태어나고 싶어서 선택하여서 이 세상에 출생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예외 없이 둘 중의 하나인 천국이나 지옥으로 갈 것이다. 그 누구도 자신의 믿음의 선택 여하에 따라서 정반대의 천국이나 지옥으로 갈 것이다.
천국(天國)과 지옥(地獄)은 모두 실제이며, 우리는 자신의 믿음에 따라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을 누릴 수도 있고, 정죄를 받아 영원한 멸망을 당할 수도 있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중간지대의 연옥(煉獄)은 없다.
화요일(5월 26일)
<하나님의 왕국(王國) - 지금과 그 때 (눅 17:21)>
◉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무엇일까요?
① 돈이나 재물이 많은 것 ② 명예가 높은 것 ③ 얼굴이나 몸매가 아주 예쁜 것, ④ 권력이 쌘 사람, ⑤ 출세 한 것, ⑥ 유명한 연예인, ⑦ 아무 직업이나 하는 일 없이 빈둥대며 여행만 다니는 것, ⑧ 노래 잘 부르는 유명인이 되는 것, ⑨ 춤 잘 추는 것, ⑩ 장끼가 많은 것 ⑪ 남들이 가지지 못한 좋은 외제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 ⑫ 최신형 고급 가전제품과 첨단 기기를 많이 소유 하는 것, 등등
☞ 이상(以上)과 같은 것들이 충족되는 것이 천국(天國)일까요?
천국은 이러한 분들만 살고 있는 곳도 아니요, 이러한 것들이 천국의 시민권에 대한 자격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왕국인 천국은 나의 죄를 모두 담당하시고 나를 대신하여 갈바리 십자가에 달리시어 돌아가신 나의 구주(救主)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생명의 구주(救主)로 영접하고 그에 감사하여 육신(肉身)으로 태어난 삶에서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에서 그분 예수님 안에 사는 것이 이 땅에서의 하늘시민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천국 백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에 ①번에서 ⑫까지 외의 소유(所有)함이 아니며,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 때에는 하늘 왕국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에
(눅 12: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貪心)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生命)이 그 소유(所有)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행 16:31) 그러므로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救援)을 얻으리라 하고"
(막 5: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救援)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 할 지어다"
(눅 1:28)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 할 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 도다 하니"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롬 8:6) "육신(肉身)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靈)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몬 1:20)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를 인하여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 “이 세상의 어떤 친구와의 교제보다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자들과의 친교가 더 낫다. 이 땅의 가장 훌륭한 왕궁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보다 우리 주께서 예비하신 하늘 집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더 낫다. 그리고 세상에서 듣는 어떤 칭찬의 말보다도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신실한 종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 25:34)고 하시는 말씀이 더욱 낫다.”(실물교훈, 374)
◉ <지금 미리 맛보는 천국(天國) >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이미 하늘의 궁전에 있다(골 3:1-4).
'성령에 참예한바'된 사람들은 실제로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히 6:4-5).
주님의 영광을 깊이 생각하고 우리의 시선을 매력적인 그리스도의 사랑스런 품성에 고정시킴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른다(고후 3:18).
우리는 재림 때 경험하게 될 변화를 위해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177)
※ 천국은 이 땅에 살면서 품성의 변화가 없이 이기심(利己心)과 욕심과 주님의 말씀 밖에서 살던 그대로 의 품성을 가지고 천국에 가더라도 살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고 그분께 충성을 바치기로 한 자들은 그분의 영원한 왕국에 들어가기 전에 이 땅에서도 이미 그 왕국의 시민(市民)임을 기억(記憶)해야 한다.
수요일(5월 27일)
<우리의 기대를 훨씬 능가(凌駕)함 (마 22:23-28)>
◉ 대가(代價)는 보상(報償)인 것이다. 당연히 받는 것을 받을 때에는 감사함도 없고 기쁨도 없다.
마태복음 20:1-16절의 포도원의 일꾼들의 비유(譬喩)에서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낸 자와
제3시(時)에 들어와 일한 사람과, 제6시(時)와, 제9시(時)와, 제11시(時)에 각각 와서 일 한사람들이 똑같은 일당인 같은 금액의 품삯을 주인으로부터 받은 후에 나타나는 일꾼들의 반응을 보자.
처음 제3시(時)에 일하러 온 사람은 주인과의 하루에 합당한 금액으로 약정하고 하루의 일을 한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타인과의 비교(比較)함으로 감사하여야할 감사(感謝)가 오히려 화(禍)를 내는 경우(境遇)를 생각하여 봅시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은 위에서 본바와 같이 자신의 처지를 망각(妄覺)하고 살기 때문에, 즉 이기적(利己的)인 삶을 살고 생존경쟁(生存競爭)에서 약육강식(弱肉强食)에서 석차(席次)(등수(等數))의 삶 모든 것은 주님이 없는 사탄이 만들어 놓은 걸작(傑作)중의 걸작인 것들입니다.
그러나 천국과 새 하늘 새 땅에서는 지금의 우리들의 삶을 통하여 보고 배우고 듣고 경험했던 것들의 그 모든 어떤 것들보다 우리의 기대(期待)를 훨씬 능가(凌駕)할 것이다.
즉 우리의 노력이나 우리의 행위로써가 아닌 100%의 하나님의 은혜(恩惠)로 천국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를 떠나서 아마도 졸도의 단계까지 기대 이상의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눈물이나 사망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어떤 것도 그곳에는 없을 것이다.
◉ <모든 가능성(可能性)이 증진(增進)될 것임 >
“영원은 무한한 지적 시야를 제공해 준다. 새 땅에서는 불멸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결코 쇠하지 않는 기쁨으로 창조력의 경이, 속죄의 사랑의 신비를 탐구할 것이다. 거기에는 하나님을 잊어버리도록 유혹하는 잔인하고 기만적인 원수가 없을 것이다. 모든 능력은 계발되고, 모든 가능성은 증진될 것이다.”(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513)
※ 이 땅에서의 하루하루의 삶은 잠시 잠깐 동안은 좋은 일들도 더러 있는 삶이지만, 우리의 주위에는 언제든지 엄습(掩襲)하여오는 불안과 고통과 슬픔과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죄와 죽음이 없겠고, 슬픔의 그림자도 없을 것이다.
우리를 위협(威脅)하는 모든 것은 더 이상 존재(存在)하지 않으므로 영원히 안전(安全)할 것이다.
목요일(5월 28일)
<하늘에서 주님(主任)을 만남 (살전 4:16-17)>
◉ 군대(軍隊)에 입대(入隊)하여 아주 혹독(酷毒)한 훈련을 감수(甘受)하는 이유는 일정 기간만 고생하고 인내(忍耐)하고 참으면 그 이후에는 좋은 결과가 보장되기 때문에 그 엄청남 훈련을 고진감래(苦盡甘來)하는 것이다. 이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불편하고 힘들고 억울하고 불이익을 당하며 고생하며 심지어 죽음까지 감수하여 순교당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하늘에서 즉 천국에서 의 영원한 감격스러운 영생의 그곳이 예수님으로부터 보장되어있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최후에 최고의 소망은 바로 하늘나라라는 사실에 오늘도 세상 사람들이 생각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으며 죽음에 와도 부활의 소망으로 낙망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참고 주님을 믿고 바라고 기쁨으로 사는 것이다.
비록 죽음을 맞이해도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뵙는 일은 얼마나 감개무량한 일이겠는가? 우리는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이다.(살전 4:16-17)
◉ 천국에서 우리는 우주를 여행하고, 우주의 신비를 탐험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구속의 과학을 탐구할 것이다. 그 외에도 많은 일들을 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일 것이다.
◉ 우리는 영원토록 만왕의 왕을 찬양하고 경배할 것인데, 그 까닭은 그분이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기 때문이다. “온 우주의 창조자시며 심판자이신 그분께서 인류를 향한 사랑 때문에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스스로를 낮추셨다는 것은 영원히 우주의 경이와 존경을 자아낼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51-652)
◉ 지난주에는 저희교회에서 두 분의 두 장례식을 참석하여 말씀과 찬송으로 위로하고 위로받고 소망(所望)중에 그날을 기다리시기로 참석자 모두는 믿고 아멘 하였다.
<찬미가 567장의 "나의 죄를 대신하여" >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린 주 대면하여 만날 때에 나의 기쁨 어떠랴?
후일 주를 대면하여 만날 때가 오리니 영광중에 대면할 때 기쁨 한량없겠네.
짙은 안개 가리운 듯 희미하게 보이나 후일 복된 날이 오면 주의 영광 보겠네.
근심 고통 사라지고 죄의 뿌리 뽑히면 주의 낯을 뵈오리니 기쁨 한량없겠네.
나를 심히 사랑하사 대속하신 주님을 처음 대면하게 될 때 감격 무한하겠네.”
◉ “악인들을 태우는 불은 세상을 정결하게 한다. 저주의 흔적이 다 사라졌다. 구속을 받은 자들에게 죄의 무서운 결과를 기억나게 하는 영원한 지옥불은 없다. 단 하나의 흔적이 남는다. 곧 우리 구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그 흔적만이 언제까지나 남는다. 구주의 상한 머리와 손과 발에 죄악이 저지른 참혹한 흔적은 남아 있다.”(살아남는 이들, 430)
※ 우리는 천국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감격스런 재회(再會)의 기쁨을 나눌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목숨을 버리신 주님을 만나 뵐 것이다.
<요약(要約)>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짧은 경험을 훨씬 초월하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하늘 왕국의 시민들이다. 이 왕국은 현재와 미래에 함께 존재한다. 그것은 이미 우리와 함께 있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본향으로 데려가시기 위해 영광중에 다시 오실 때 완전히 실현될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영생은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초점(焦點)>
1. 천국과 지옥은 동화책이나 상상의 곳이 아니라 실제이며 자신의 믿음의 선택에 따라 그곳에 갈 것이다.
2. 천국과 지옥을 가시적(可視的)이고 물질적(物質的)으로 사단은 사람들을 유혹(誘惑)하고 있음을 분명히 깨닫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신갑주(全身甲冑)를 삼고 흔들리지 말고 믿어야 한다.
너무늦게 올려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꾸 - 벅 ^^
제9과 천국(天國) Heaven
<기억절(記憶節)>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깨닫기: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는다.
느끼기: 이 땅에서의 삶이란 일시적인 것이라는 사실에서 용기를 얻는다.
행하기: 이 땅에서의 삶이 다하는 날, 창조주 하나님과 대면하게 될 것을 고대한다.
요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을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라'고 말씀하셨다. 낙담과 좌절이 엄습해 올 때, 나의 창조주께서 나를 위해 하늘에 처소를 예비하러 가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일요일(5월 24일)
<우리는 언제 천국(天國)에 가는가? (요 14:1-3)>
◉ 기독교인들 중에 잘못된 교리(敎理)나 용어(用語)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사람이 죽으면 소천 하셨다는 용어이다.
이 말은 사람이 죽으면 즉시 하늘나라(천국)로 가셨다는 말인데 참으로 잘 모르고 사용하는 용어이다.
▶ 인간은 즉 사람이 만들어진 본질(本質)이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를 알아야 한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의 유기체(有機體)라고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분리된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몸과 영혼(네페쉬)은 오직 함께 존재한다. 그것들은 하나의 보이지 않는 연합을 이룬다.
인간을 창조할 때 흙(땅의 요소)과 생기와의 연합이 산 사람, 혹은 영혼(네페쉬)을 만들었다.
그리고 죽을 때에는 반대 형상이 생긴다.
곧 땅의 흙으로 이루어진 사람에게서 생기(生氣)가 제거(除去)되면, 의식이 전혀 없는 죽은 사람 혹은 죽은 영혼(네페쉬)이 된다. (시 146:4)
몸을 이루었던 요소는 본래 그대로 땅으로 돌아간다.(창 3:19)
영혼(네페쉬)은 육체를 떠나서 의식적 존재로 생존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진실로 "범죄하는 그 영혼(네페쉬)은 죽" (겔 18:20)는다.
그 원리(原理)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生氣)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이" 되었다고 (창세기 2:7)에 기록하고 있으며, 창조(創造)의 이야기는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을 받았다고 말한다. (참조 :사도행전 17:25, 28 ; 골로새서 1:16-17)
그러므로 죽음은 그의 반대로 진행되는 것으로 "생령(生靈) 즉 혼(魂)이 떠나면 육체(肉體)는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을 일컬어 "돌아 가셨다고" 한다.
그러므로 숨을 거둔 후(後) 즉시 천국(天國)이나 지옥(地獄)으로 즉시(卽時)가는 것이 아니고,
무덤에 머물러 무의식상태(無意識狀態)로 있는 것을 성경에서는 잠자는 것으로 묘사(描寫)한다.
(참조 : 왕상 2:10, 11:43; 14:20, 31, ; 15:8 ; 대하 21:1, 26:23)
욥은, 다윗(시 13:3)과 예레미야 (렘 51:39, 57)와 다니엘(단 12:2)과 똑 같이 죽음을 잠이라고 불렀다. (욥 14:10-12)
신약성경에도 동일한 비유적 표현을 사용한다.
죽은 야이로의 딸의 상태를 묘사(描寫)하면서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잔다고 말씀하셨다. (마 9:24; 막 5:39)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도 같은 표현으로 말씀하셨다. (요 11:11-14)
마태는 예수님의 부활 후에 "자던 성도(聖徒)들의 몸이 많이 일어"(마 27:52)났다고 기록 했고,
스데반의 순교를 기록 하면서 누가는 그가 "자니라." (행 7:60)고 했다.
바울과 베드로 역시 죽음을 잠이라고 불렀다. (고전 15:51-52; 살전 4:13-17; 벧후 3:4)
▶ 죽음을 잠이라고 한 성경의 표현은 다음의 증거들과 비교해 볼 때, 그 상태와 분명히 일치 된다.
1). 죽은 자는 의식(意識)이 없다. →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전 9:5)
2). 잘 때는 의식적사고(意識的思考)가 중단된다.→
그 호흡이 끊어지면 . 당일에 그 도모(圖謀)가 소멸(消滅)하리로다"(시 146:4)
3). 잠은 일상의 모든 활동을 그치게 한다. →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전 9:10)
4). 잠자는 자들은 깨어있는 자들과 그들의 활동에서 완전히 분리된다. →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에 저희가 다시는 영영히 분복이 없느니라." (전 9:6)
5). 정상적인 잠은 정서적(情緖的)활동을 그치게 한다. →
"그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진 지 오래니" (전 9:6)
6). 잘 때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다. →
"죽은 자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니" (시 115:17)
7) 잠은 깨어날 것을 전재로 한다. →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나오리라" (요 5:28-29)
▶ 남녀(男女)인간은 하나님의 형상(形象)으로 만들어 졌으며, 개성(個性)과 사고(思考)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과 자유를 부여받았다. 비록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되었지만 각 사람은 육체(肉體), 정신(情神), 혼(魂)의 불가분적(不可分的)인 통일체(統一體)로써 생명과 호흡(呼吸), 그리고 다른 모든 것에 있어서 하나님께 의존(依存)되어 있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무의식(無意識) 상태가 된다.
우리의 생명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부활한 의인들과 살아있는 의인(義人)들은 영광(榮光)스럽게 변화(變化)되어 공중(空中)으로 끌어올려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둘째 부활(復活), 즉 불의(不義)한 자들의 부활(復活)은1,000년(年)후에 있게 될 것이다.
◉ <죽은 자의 거처(居處)>
구약성경(舊約聖經)은 사람들이 죽을 때에 가는 곳을 "스올"(sheol 히브리어)이라 하고,
신약성경(新約聖經)은 "하데스"(hades 헬라어)라 한다.
성경에서는 "스올"이 가장 빈번히(하게) 무덤을 의미(意味)한다.
"하데스"의 의미(意味)는 "스올"의 의미(意味)와 유사(類似)하다.
죽은 자는 의인(義人)이나 악인(惡人)을 막론(莫論)하고 모두 이곳으로 간다.
야곱은 "내가 ……. 음부(스올)에 내려 . 가리라" (창 37:35)고 말했다.
땅이 고라와 그의 일당들을 삼키고자 "입을" 열었을 때 그들은 "산체로 음부(스올)에 (민 16:30)내려 갔다.
죽을 때 전체로써의 사람이 "스올"에 들어간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을 때 그 분은 무덤(하데스)으로 내려 가셨지만 부활(復活)때에 그분의 혼은 무덤(하데스, 행 2:27, 31, 혹은 "스올", 시 16:10)을 떠났다.
다윗이 치료(治療)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때 그는 그의 혼(魂)이 "음부(스올)" (시 30:3)에서 구원(救援) 받았다고 증언했다. 무덤은 의식(意識)이 있는 장소가 아니다.
무덤(하데스)이 그 죽은 자를 내어주는(계20:13)부활(復活)때까지 무의식상태(無意識狀態)로 무덤 속에 머물러있게 될 것이다.
▶ <신(영(靈), spirit)은 하나님께로 돌아감>
몸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신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솔로몬은 죽을 때에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 (전 12:7)간다고 말했다. 이것은 의인과 악인을 막론하고 모두가 똑같다.
※ 많은 사람들은 이 성경절(聖經節)이 죽은 후(後)에도 사람의 본질(本質)은 계속살아있다는 증거를 제공해 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경은 신(영(靈))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루하흐(ruach)와 헬라어 "프뉴마(pneuma)"그 어느 것도 육체(肉體)를 떠나서 의식적(意識的)존재(存在)가 될 수 있는 하나의 지성적(知性的)실체라고 언급(言及)하지 않는다. 대신에 이 용어(用語)들은 "호흡", 곧 개인의 생존에 필수적인 생명의 기운(氣運), 동물들과 인간을 살리는 생명의 소인(素因)을 의미한다.
▶ 솔로몬은 이렇게 기록했다.
"인생에게 임(臨)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들에게 임하는 일이 일방(一方)이라 다 동일(同一)한 호흡(영(靈)=루아흐)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魂)(루아흐)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魂)(루아흐)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전 3:19-21).
그러므로 솔로몬에 의하면 사람의 혼(루아흐)과 짐승의 혼(루아흐)과는 구분이 없다.
성경에는 "spirit"(루아흐)과 "soul"(네페쉬)이 일관성(一貫性)있게 번역(飜譯)되어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spirit"은 "영(靈)"으로 "soul"은 "혼(魂)"으로 번역된다.
성경에는 "soul"을 "영혼"으로 많이 번역되었고 "spirit"은 때때로 "혼"으로도 번역되었다.
독자(讀者)들의 편의를 위하여 필요시에는 번역된 용어 옆에 원어를 표기해 놓았다.
"혼(魂)"(루아흐)이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솔로몬의 말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생명의 소인(素因)을 가리킨다.
혼(魂)(루아흐)혹은 호흡(呼吸)이 육체를 떠난 하나의 의식적(意識的) 실체(實體)라는 뜻은 없다.
이 "루아흐"는 하나님이 생명(生命)없는 육체를 살리기 위하여 최초의 인간에게 불어 넣으신 "생기(生氣)"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창 2:7 참조)
▶ 요약해서 정리를 해 본다면 사람이 죽으면 즉시 천국이나 지옥(地獄)으로 직행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죽으면 죽음의 깊은 잠을 자다가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부활의 아침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聖徒)의 부활(復活)과 변화(變化)>
이것은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소망(所望)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 <성도의 영광스러운 미래 >
그리고 살아 있는 의인들은 '순식간에 홀연히'(고전 15:51) 변화된다. 그들은 영화롭게 되고, 불멸을 얻어 부활한 의인들과 함께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영원토록 그분과 함께 살기 위하여 하늘로 끌려 올라간다.(살전 4:16-17)”(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455)
◉ 우리는 죽음의 순간에 몸에서 분리된 영혼이 즉시 천국(天國)이나 지옥(地獄)에 가는 것이 아니다.
죽은 후에 무의식(無意識) 상태로 있다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활(復活)하여 천국에 들어간다.
월요일(5월 25일)
<천국(天國)인가, 지옥(地獄)인가?(마 25:46)>
◉ 천국(天國)과 지옥(地獄)은 실재(實在)하는 곳이다.
지식(知識)을 습득(習得)하는 과정은 아는 것을 통하여 아는 만큼만 알게(더하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거나 경험하지 않는 곳을 말이나 글로 설명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즉 태어나면서부터 시각장애인(視覺障碍人)에게 무지개의 색깔을 설명한다고 하면 그 일곱 가지의 아름다운 색깔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요?
그와 마찬가지로 가보지도 않은 천국과 지옥을 설명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천국을 쉽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본다면
천국은 이 세상에서 "나쁜 것"이나 "불편한 것"이나 "해(害)로 운 것"이나 "무서움"이나 "두려움"이나 "고통(苦痛)과 질병(疾病)"이나 사망(死亡)이 없는 곳을 천국이라고 설명할 수가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지옥(地獄)은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영원한 불이 지글지글 평생토록 죄인들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곳으로 천국에 간 가족이나 친지들의 고통을 보며 영원토록 사는 그런 곳이 아니다.
성경에서 지옥이나 영원한 불을 인용한 배경이나 설명을 다음에서 참고합시다.
◉ "지옥(地獄)불"
문자적으로 "불의 게헨나"(헬라어 "게엔나"(geenna)즉 "불의 지옥" 지옥을 뜻하는"게엔나"는 "힌놈의 골짜기"를 뜻하는 히브리어 "게 힌놈" (ge′ hinnom) 또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를 뜻하는 "게 벤 힌놈"(ge′ gen hinnom 수 15:8)의 음역으로 그 골짜기는 다윗성 남쪽의 기드론 골짜기와 실로암 연못이 직접 만나는 예루살렘의 남서쪽에 있다.
악(惡)한 왕 아하스는 이사야시대에 힌놈의 골짜기에 있는 도벳(Tophet)이라 불린 산당(山堂)(대하 28:3참조)에서 몰렉에게 어린아이를 태워 제사(祭祀)드리는 야만적인 이교(異敎)의식(儀式)을 소개한 것 같다.
이러한 반역적인 의식(儀式)들들에 대한 좀 더 상세한 묘사(描寫)에 대하여는 레위기18:21; 신명기18:10; 32:17 왕하 16:3; 23:10; 렘 7:31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수년(數年)후에 선(善)한 왕 요시야가 이런 섬뜩한 형식의 예배가 행해졌던 힌놈의 골짜기에 있는 산당들을 공식적으로 더럽힘(왕하 23:10)으로 그것을 정지시켰다.
이것과 기타 악(惡)에 대한 징벌(懲罰)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힌놈의 골짜기가 언젠가는 "이 백성(百姓)들의 시체(屍體)"로 인해 "살육(殺戮)의 골짜기"가 될 것이라고 예고(豫告)했다.
(렘 7:32-33; 19:6 참조: 이사야 30:33) 따라서 힌놈의 불은 마지막 큰 심판의 날에 있을 소멸(消滅)하는 불과 악인(惡人)의 징벌에 대한 상징이 되었다. (참조 이사야 66:24).
부분적으로는 헬라철학에서 유래한 유대인의 종말론적(終末論的)사상에서 "게헨나"(Gehenna)는 불 경건(不敬虔)한 자들의 영혼이 마지막 심판(審判)과 보상(報償)의 날까지 형벌(刑罰)아래 머물러있는 장소였다.
"게헨나"(Gehenna)골짜기를 쓰레기 소각(燒却) 장소로 마들어 마지막 날의 불의 전형이 되게 한 전승은 12세기와 13세기 유대인 학자 랍비 킴히(Kimchi)에게서 비롯된 것 같다.
이러한 사상은 고대 유대 문헌에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초기 랍비들은 마지막 날의 불의 전형으로서 "게헨나"(Gehenna)사상의 근거를 이사야 31:9에 둔다.
(본교 한글주석 9권 241 참조)
◉ <영원(永遠)한 불>
성경에는 ① "영원한 불"(마 25:41)과 ② "꺼지지 않는 불"(마 3:12)과 ③ "지옥(地獄) 불"(마 5:22)로 묘사(描寫)되어 있다.
이 세 가지 표현은 모두 마지막 날에 악인(惡人)들과 그들의 모든 업적을 삼켜버릴 불을 가리킨다.
(벧후 3:10-12절 ; 계 20:10절 14-15절)
"영속적인" 또는 "영원한" 이라는 말은 한 번은 "끝없이"라고 번역된 "아이오니오스"(aionios)는 문자적으로는 "한시대 동안 지속되는"을 뜻하며, 이것은 변덕스런 변화에 지배(支配)받지 않고 지속됨을 의미한다.
고대 헬라의 파피루스 문서들에는 로마의 황제들을 '"이오니오스"라고 묘사한 수많은 사례가 들어있다.
이것은 종신(終身)직을 가리키는 말로써 그들은 평생 그 직분을 유지했다.
그러므로 영어 단어 "everlasting"(영속적인)과 "eternal"(영원한)은 "이오니오스"의 의미를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볼 수 없다. "이오니오스"는 문자적으로 "지속적인"이라는 의미로 어떤 한계(限界)내에서의 영구성(永久性)이나 지속성을 나타내지만, "everlasting"과 "eternal"은 한정(限定)되지 않은 영속(永續)을 뜻한다.
이오니오스가 의미하는 지속기간은 경우마다 그 말이 묘사하는 사람이나 사물의 성격에 따라 결정된다.
▶ "불."은 죄에 대한 형벌을 가하는 수단이다. (마 18:8 , 마 25:41).
"불"이 "영원하다" 곧 "아이오니오스"(aionios)하다는 말은 불이 끝없이 영속 된다는 것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것은 유다서 1장7절에서 분명해진다. 분명히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킨 "영원한 불"은 얼마동안 타다가 꺼졌다.
성경의 다른 곳에는 마지막 날의 불이 "꺼지지 않는" (마3:12)불로 언급되어있는데 그것은 그 불이 죄와 죄인들을 마지막 흔적가지 태워버리기 전에는 꺼지지 않을 것을 뜻한다.
"아이오니오스"(aionios)에 해당하는 구약의 용어 "울람"(′ olam)에 대해서는 (출애굽기21:6)을 참조.
(본교 한글주석 9권 484p 참조)
◉ 예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주어질 두 가지 선택적 운명에 대해 말씀하셨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9).
결국에는 영벌(永罰)에 들어갈 자와 영생(永生)에 들어갈 자들로 나뉠 것이다.
우리는 어느 한 편에 속하게 될 것이며 중립은 없다.
◉ <실제적인 장소인 천국(天國)>
“성경의 최초의 두 장은 하나님이 완전한 세상을 창조하셔서 인간의 본향으로 주신 것에 관하여 알려준다. 성경의 마지막 두 장 역시 하나님이 인류를 위하여 완전한 세상을 창조하심에 관하여 말해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재창조, 곧 죄가 초래한 폐허에서 지구를 회복시키는 것에 대한 것이다. 거듭거듭 성경은, 구속받은 자들의 영원한 이 본향은, 실제적인 장소, 육체와 두뇌를 가진 실제적인 사람들이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고, 재어보고, 묘사하고, 조사해 보고,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장소라고 선언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실제적인 하늘나라를 이 새 땅위에 두실 것이다.”(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508)
※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인간 그 누구도 태어나고 싶어서 선택하여서 이 세상에 출생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예외 없이 둘 중의 하나인 천국이나 지옥으로 갈 것이다. 그 누구도 자신의 믿음의 선택 여하에 따라서 정반대의 천국이나 지옥으로 갈 것이다.
천국(天國)과 지옥(地獄)은 모두 실제이며, 우리는 자신의 믿음에 따라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을 누릴 수도 있고, 정죄를 받아 영원한 멸망을 당할 수도 있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중간지대의 연옥(煉獄)은 없다.
화요일(5월 26일)
<하나님의 왕국(王國) - 지금과 그 때 (눅 17:21)>
◉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무엇일까요?
① 돈이나 재물이 많은 것 ② 명예가 높은 것 ③ 얼굴이나 몸매가 아주 예쁜 것, ④ 권력이 쌘 사람, ⑤ 출세 한 것, ⑥ 유명한 연예인, ⑦ 아무 직업이나 하는 일 없이 빈둥대며 여행만 다니는 것, ⑧ 노래 잘 부르는 유명인이 되는 것, ⑨ 춤 잘 추는 것, ⑩ 장끼가 많은 것 ⑪ 남들이 가지지 못한 좋은 외제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 ⑫ 최신형 고급 가전제품과 첨단 기기를 많이 소유 하는 것, 등등
☞ 이상(以上)과 같은 것들이 충족되는 것이 천국(天國)일까요?
천국은 이러한 분들만 살고 있는 곳도 아니요, 이러한 것들이 천국의 시민권에 대한 자격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왕국인 천국은 나의 죄를 모두 담당하시고 나를 대신하여 갈바리 십자가에 달리시어 돌아가신 나의 구주(救主)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생명의 구주(救主)로 영접하고 그에 감사하여 육신(肉身)으로 태어난 삶에서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에서 그분 예수님 안에 사는 것이 이 땅에서의 하늘시민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천국 백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에 ①번에서 ⑫까지 외의 소유(所有)함이 아니며,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 때에는 하늘 왕국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에
(눅 12: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貪心)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生命)이 그 소유(所有)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행 16:31) 그러므로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救援)을 얻으리라 하고"
(막 5: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救援)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 할 지어다"
(눅 1:28)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 할 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 도다 하니"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롬 8:6) "육신(肉身)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靈)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몬 1:20)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를 인하여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 “이 세상의 어떤 친구와의 교제보다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자들과의 친교가 더 낫다. 이 땅의 가장 훌륭한 왕궁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보다 우리 주께서 예비하신 하늘 집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더 낫다. 그리고 세상에서 듣는 어떤 칭찬의 말보다도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신실한 종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 25:34)고 하시는 말씀이 더욱 낫다.”(실물교훈, 374)
◉ <지금 미리 맛보는 천국(天國) >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이미 하늘의 궁전에 있다(골 3:1-4).
'성령에 참예한바'된 사람들은 실제로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히 6:4-5).
주님의 영광을 깊이 생각하고 우리의 시선을 매력적인 그리스도의 사랑스런 품성에 고정시킴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른다(고후 3:18).
우리는 재림 때 경험하게 될 변화를 위해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177)
※ 천국은 이 땅에 살면서 품성의 변화가 없이 이기심(利己心)과 욕심과 주님의 말씀 밖에서 살던 그대로 의 품성을 가지고 천국에 가더라도 살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고 그분께 충성을 바치기로 한 자들은 그분의 영원한 왕국에 들어가기 전에 이 땅에서도 이미 그 왕국의 시민(市民)임을 기억(記憶)해야 한다.
수요일(5월 27일)
<우리의 기대를 훨씬 능가(凌駕)함 (마 22:23-28)>
◉ 대가(代價)는 보상(報償)인 것이다. 당연히 받는 것을 받을 때에는 감사함도 없고 기쁨도 없다.
마태복음 20:1-16절의 포도원의 일꾼들의 비유(譬喩)에서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낸 자와
제3시(時)에 들어와 일한 사람과, 제6시(時)와, 제9시(時)와, 제11시(時)에 각각 와서 일 한사람들이 똑같은 일당인 같은 금액의 품삯을 주인으로부터 받은 후에 나타나는 일꾼들의 반응을 보자.
처음 제3시(時)에 일하러 온 사람은 주인과의 하루에 합당한 금액으로 약정하고 하루의 일을 한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타인과의 비교(比較)함으로 감사하여야할 감사(感謝)가 오히려 화(禍)를 내는 경우(境遇)를 생각하여 봅시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은 위에서 본바와 같이 자신의 처지를 망각(妄覺)하고 살기 때문에, 즉 이기적(利己的)인 삶을 살고 생존경쟁(生存競爭)에서 약육강식(弱肉强食)에서 석차(席次)(등수(等數))의 삶 모든 것은 주님이 없는 사탄이 만들어 놓은 걸작(傑作)중의 걸작인 것들입니다.
그러나 천국과 새 하늘 새 땅에서는 지금의 우리들의 삶을 통하여 보고 배우고 듣고 경험했던 것들의 그 모든 어떤 것들보다 우리의 기대(期待)를 훨씬 능가(凌駕)할 것이다.
즉 우리의 노력이나 우리의 행위로써가 아닌 100%의 하나님의 은혜(恩惠)로 천국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를 떠나서 아마도 졸도의 단계까지 기대 이상의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눈물이나 사망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어떤 것도 그곳에는 없을 것이다.
◉ <모든 가능성(可能性)이 증진(增進)될 것임 >
“영원은 무한한 지적 시야를 제공해 준다. 새 땅에서는 불멸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결코 쇠하지 않는 기쁨으로 창조력의 경이, 속죄의 사랑의 신비를 탐구할 것이다. 거기에는 하나님을 잊어버리도록 유혹하는 잔인하고 기만적인 원수가 없을 것이다. 모든 능력은 계발되고, 모든 가능성은 증진될 것이다.”(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513)
※ 이 땅에서의 하루하루의 삶은 잠시 잠깐 동안은 좋은 일들도 더러 있는 삶이지만, 우리의 주위에는 언제든지 엄습(掩襲)하여오는 불안과 고통과 슬픔과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죄와 죽음이 없겠고, 슬픔의 그림자도 없을 것이다.
우리를 위협(威脅)하는 모든 것은 더 이상 존재(存在)하지 않으므로 영원히 안전(安全)할 것이다.
목요일(5월 28일)
<하늘에서 주님(主任)을 만남 (살전 4:16-17)>
◉ 군대(軍隊)에 입대(入隊)하여 아주 혹독(酷毒)한 훈련을 감수(甘受)하는 이유는 일정 기간만 고생하고 인내(忍耐)하고 참으면 그 이후에는 좋은 결과가 보장되기 때문에 그 엄청남 훈련을 고진감래(苦盡甘來)하는 것이다. 이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불편하고 힘들고 억울하고 불이익을 당하며 고생하며 심지어 죽음까지 감수하여 순교당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하늘에서 즉 천국에서 의 영원한 감격스러운 영생의 그곳이 예수님으로부터 보장되어있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최후에 최고의 소망은 바로 하늘나라라는 사실에 오늘도 세상 사람들이 생각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으며 죽음에 와도 부활의 소망으로 낙망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참고 주님을 믿고 바라고 기쁨으로 사는 것이다.
비록 죽음을 맞이해도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뵙는 일은 얼마나 감개무량한 일이겠는가? 우리는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이다.(살전 4:16-17)
◉ 천국에서 우리는 우주를 여행하고, 우주의 신비를 탐험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구속의 과학을 탐구할 것이다. 그 외에도 많은 일들을 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일 것이다.
◉ 우리는 영원토록 만왕의 왕을 찬양하고 경배할 것인데, 그 까닭은 그분이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기 때문이다. “온 우주의 창조자시며 심판자이신 그분께서 인류를 향한 사랑 때문에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스스로를 낮추셨다는 것은 영원히 우주의 경이와 존경을 자아낼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51-652)
◉ 지난주에는 저희교회에서 두 분의 두 장례식을 참석하여 말씀과 찬송으로 위로하고 위로받고 소망(所望)중에 그날을 기다리시기로 참석자 모두는 믿고 아멘 하였다.
<찬미가 567장의 "나의 죄를 대신하여" >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린 주 대면하여 만날 때에 나의 기쁨 어떠랴?
후일 주를 대면하여 만날 때가 오리니 영광중에 대면할 때 기쁨 한량없겠네.
짙은 안개 가리운 듯 희미하게 보이나 후일 복된 날이 오면 주의 영광 보겠네.
근심 고통 사라지고 죄의 뿌리 뽑히면 주의 낯을 뵈오리니 기쁨 한량없겠네.
나를 심히 사랑하사 대속하신 주님을 처음 대면하게 될 때 감격 무한하겠네.”
◉ “악인들을 태우는 불은 세상을 정결하게 한다. 저주의 흔적이 다 사라졌다. 구속을 받은 자들에게 죄의 무서운 결과를 기억나게 하는 영원한 지옥불은 없다. 단 하나의 흔적이 남는다. 곧 우리 구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그 흔적만이 언제까지나 남는다. 구주의 상한 머리와 손과 발에 죄악이 저지른 참혹한 흔적은 남아 있다.”(살아남는 이들, 430)
※ 우리는 천국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감격스런 재회(再會)의 기쁨을 나눌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목숨을 버리신 주님을 만나 뵐 것이다.
<요약(要約)>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짧은 경험을 훨씬 초월하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하늘 왕국의 시민들이다. 이 왕국은 현재와 미래에 함께 존재한다. 그것은 이미 우리와 함께 있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본향으로 데려가시기 위해 영광중에 다시 오실 때 완전히 실현될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영생은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초점(焦點)>
1. 천국과 지옥은 동화책이나 상상의 곳이 아니라 실제이며 자신의 믿음의 선택에 따라 그곳에 갈 것이다.
2. 천국과 지옥을 가시적(可視的)이고 물질적(物質的)으로 사단은 사람들을 유혹(誘惑)하고 있음을 분명히 깨닫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신갑주(全身甲冑)를 삼고 흔들리지 말고 믿어야 한다.
너무늦게 올려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꾸 - 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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