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빛 가운데서 행함: 그분의 계명들을 지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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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09-07-15 17:49 조회4,774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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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빛 가운데서 행함: 그분의 계명들을 지킴
(2009년 7월 25일 안식일)
<기억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요일 2:3)
<학습 목표>
1.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안다는 것의 의미를 배운다.
2.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으로 표현되는지에 대해 탐구한다.
<서론>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아신다. 하지만 그분이 아무리 우리를 아셔도 우리가 그분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분과 관계가 없다. 그분을 안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분을 알아야 한다. 그분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분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사랑은 어떤 것인지를 먼저 알아야겠다.
A. 하나님을 안다는 것 (일요일)
<도입> 토의에 들어가기 위해 먼저 ‘마음 문’을 연다.
1. 지식적으로 아는 것과 체험적으로 아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참고> 안다고 하는 것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체험적으로 아는 것이다. 갓난아기는 엄마의 성함이 무엇인지, 키가 몇인지, 혈액형이 무엇인지 등을 잘 모른다. 하지만 아기는 분명히 안다. 저분이 나의 엄마라는 것을!
<토의> 교과의 핵심적인 내용을 함께 토의한다.
1. (일요일) 하나님을 아는 것과 그분에 관해 아는 것은 어떻게 다릅니까?
<참고> 하나님에 관해 안다는 것은 그분을 지식적인 차원에서 아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을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말한다. 물론 둘 다 중요하지만 그분을 체험적으로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2. (일요일)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Michael Foucault)는 두 종류의 지식을 말하고 그 차이점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하나는 그것을 얻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않는 지식이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어떤 종류의 지식입니까?
<참고> 우리가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알 때 우리의 삶에는 반드시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을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알게 되면 그분을 닮아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기 원할 것이다.
<적용> 생활에 적용하고 실천할 계획을 세운다.
1. 만약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에 관해서만 안다면 나에게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그러한 변화는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참고> 하나님을 머리로가 아닌 가슴으로 알아야 한다. 그분을 체험적으로 알 때에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
B.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 (월-수-목-화요일)
<도입> 토의에 들어가기 위해 먼저 ‘마음 문’을 연다.
1.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행동으로 그 사랑을 증명해야 한다면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참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가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리게 될 것이고, 그것을 실행하기 원할 것이다.
<토의> 교과의 핵심적인 내용을 함께 토의한다.
1. (월요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실제적인 행동의 결과가 따르게 됩니까?
<참고>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알고 사랑한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짓밟는다면 그의 말은 거짓말인 것이다.
2. (수요일)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그들에게 '새 계명'을 주신 것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참고> 새 계명의 요지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이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섬김의 사랑이요, 편견과 차별이 없는 포용의 사랑이다.
3. (목요일) 요한의 서신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은 어떤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까?
<참고> 요한 서신에는 성도 간의 사랑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이웃과의 사랑, 그리고 원수를 사랑하는 것도 배제되지 않았다. 우리의 사랑은 성도 간에 먼저 실천되어야 한다.
4. (화요일) 예수님은 우리의 대속자이신 동시에 우리의 모본자이십니다. 이 두 역할은 서로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참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매사에 언제나 던져야 하는 질문이다. 그분은 우리의 대속자(칭의)이시며 동시에 모본자(성화)이시다. 우리의 매일의 신앙생활에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자.
<적용> 생활에 적용하고 실천할 계획을 세운다.
1. 어떻게 하면 우리는 계명들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함정을 피할 수 있으며, 이와 반대로 율법에 불순종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 함정을 피할 수 있을까요?
<참고> 계명들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것을 율법주의라고 하고,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무법주의라 한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구원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고 구원받은 자의 결과이다.
<요약 및 결론>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가 아무리 그분의 계명을 철저히 지켜도 그것으로 구원을 얻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크나큰 희생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자원하여 믿음으로 그분의 계명들을 지킬 것이다.
(2009년 7월 25일 안식일)
<기억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요일 2:3)
<학습 목표>
1.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안다는 것의 의미를 배운다.
2.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으로 표현되는지에 대해 탐구한다.
<서론>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아신다. 하지만 그분이 아무리 우리를 아셔도 우리가 그분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분과 관계가 없다. 그분을 안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분을 알아야 한다. 그분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분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사랑은 어떤 것인지를 먼저 알아야겠다.
A. 하나님을 안다는 것 (일요일)
<도입> 토의에 들어가기 위해 먼저 ‘마음 문’을 연다.
1. 지식적으로 아는 것과 체험적으로 아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참고> 안다고 하는 것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체험적으로 아는 것이다. 갓난아기는 엄마의 성함이 무엇인지, 키가 몇인지, 혈액형이 무엇인지 등을 잘 모른다. 하지만 아기는 분명히 안다. 저분이 나의 엄마라는 것을!
<토의> 교과의 핵심적인 내용을 함께 토의한다.
1. (일요일) 하나님을 아는 것과 그분에 관해 아는 것은 어떻게 다릅니까?
<참고> 하나님에 관해 안다는 것은 그분을 지식적인 차원에서 아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을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말한다. 물론 둘 다 중요하지만 그분을 체험적으로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2. (일요일)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Michael Foucault)는 두 종류의 지식을 말하고 그 차이점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하나는 그것을 얻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않는 지식이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어떤 종류의 지식입니까?
<참고> 우리가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알 때 우리의 삶에는 반드시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을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알게 되면 그분을 닮아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기 원할 것이다.
<적용> 생활에 적용하고 실천할 계획을 세운다.
1. 만약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에 관해서만 안다면 나에게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그러한 변화는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참고> 하나님을 머리로가 아닌 가슴으로 알아야 한다. 그분을 체험적으로 알 때에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
B.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 (월-수-목-화요일)
<도입> 토의에 들어가기 위해 먼저 ‘마음 문’을 연다.
1.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행동으로 그 사랑을 증명해야 한다면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참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가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리게 될 것이고, 그것을 실행하기 원할 것이다.
<토의> 교과의 핵심적인 내용을 함께 토의한다.
1. (월요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실제적인 행동의 결과가 따르게 됩니까?
<참고>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알고 사랑한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짓밟는다면 그의 말은 거짓말인 것이다.
2. (수요일)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그들에게 '새 계명'을 주신 것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참고> 새 계명의 요지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이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섬김의 사랑이요, 편견과 차별이 없는 포용의 사랑이다.
3. (목요일) 요한의 서신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은 어떤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까?
<참고> 요한 서신에는 성도 간의 사랑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이웃과의 사랑, 그리고 원수를 사랑하는 것도 배제되지 않았다. 우리의 사랑은 성도 간에 먼저 실천되어야 한다.
4. (화요일) 예수님은 우리의 대속자이신 동시에 우리의 모본자이십니다. 이 두 역할은 서로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참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매사에 언제나 던져야 하는 질문이다. 그분은 우리의 대속자(칭의)이시며 동시에 모본자(성화)이시다. 우리의 매일의 신앙생활에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자.
<적용> 생활에 적용하고 실천할 계획을 세운다.
1. 어떻게 하면 우리는 계명들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함정을 피할 수 있으며, 이와 반대로 율법에 불순종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 함정을 피할 수 있을까요?
<참고> 계명들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것을 율법주의라고 하고,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무법주의라 한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구원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고 구원받은 자의 결과이다.
<요약 및 결론>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가 아무리 그분의 계명을 철저히 지켜도 그것으로 구원을 얻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크나큰 희생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자원하여 믿음으로 그분의 계명들을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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