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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예언의 기별(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12/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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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3-12-06 09:28 조회8,8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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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14분

기억절 :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6~7).

연구 범위 : 계 10장, 단 12:4~9, 계 14장, 계 11:17~18, 계 13장, 창 7:11, 창 11:1~9, 렘 50~51장.

다니엘 7~8장에 나오는 심판의 기별은 계시록 12~14장에 묘사된 대쟁투 장면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세 천사의 기별은 창조, 심판 그리고 복음의 주제를 포함하며(계 14:6~12)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라는 하나님의 긴급하고 최종적인 호소를 제시한다.
첫째 천사의 기별은 진정으로 “영원한 복음”이다. 왜냐하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행 14:15, 행 4:24 비교)라고 백성들에게 전했던 사도들의 기별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계시록에서 ‘복음’이라는 낱말이 여
기에만 등장한다는 사실은 기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종말의 사건에 대하여 무엇을 전하든지 ‘복음’이 핵심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세 천사의 기별로부터 현 시대에 맞는 복음의 의미를 탐색한다.
➋ 느끼기 :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다.
➌ 행하기 : 진리와 영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한다.

A.
❷ 다니엘을 이해한 백성들은 왜 큰 실망을 경험해야 했습니까?(계 10장)
※ 성소정결에 대하여 오해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늘성소에 대하여 몰랐다.
❸ 그들이 다시 예언해야 할 (세 천사의) 기별은 간단히 말해서 어떤 내용이라고 생각합니까?
※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기별이다. 즉 제7일 안식일을 준수해야 할 것이다.
❹ 우리가 사람들을 바벨론에서 이끌어 내기 위해 당장 함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 우리 자신이 우리 기별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접근하여 복음적으로 이 기별을 증거해야 할 것이다. 접촉하고 친교해야 할 것이다.

B.
❷ 여러분은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떻게 핍박한다고 알고 있습니까?
※ 진리를 옳게 분변하지 못하게 하여 잘못된 신앙생활로 이끌어 가는 것으로 가장 효과적인 핍박을 한다.
❸ 사탄의 핍박을 인내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를 믿는 믿음의 복음의 올바른 깨달음은 진리 안에 확실히 머물러 있게 한다.
❹ 그대는 세 천사의 기별을 어떤 복음의 기별로 사람들에게 제시하겠습니까?
※ 생명의 복음의 기별로 전해야 한다.

결론 : 세 천사의 기별은 마지막 시대의 큰 기만에 대비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도록 백성들을 준비시킵니다. 이 기별에 대한 태도에 따라 생명과 죽음의 문제가 결정됩니다.


첫째 날(일) 실망의 때
12월 8일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계 10:10~11).

1. 계시록 10장을 읽어 보라. 작은 두루마리를 가진 천사의 기별은 무엇인가? 다시 예언하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계10:1~11]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2 그 손에 펴놓인 작은 책을 들고 그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3 사자의 부르짖는 것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외칠 때에 일곱 우뢰가 그 소리를 발하더라 4 일곱 우뢰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5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6 세세토록 살아 계신 자 곧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7 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1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답: 그 손에 펴 놓인 작은 책을 갖다 먹으라는 기별이며, 그것을 먹었을 때 입에서는 달지만 배에서는 쓰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잘못 깨달은 것을 다시 예언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천사의 모습은 다니엘의 마지막 이상에 등장하는 세마포 옷을 입은 사람(단 10:5~6, 12:5~7)의 모습과 계시록 1장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기시키며 그들이 동일한 인물임을 암시한다. 단 12:6~7에서 그는 영원히 사시는 분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1,260년)를 예언한다. 이것은 단 7:25에 주어진 중대한 예언의 반복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맞이할 끔찍한 핍박을 일러준다. 이러한 사실은 단 12:7에도 반복된다.
다니엘서는 마지막 때까지 봉인되어야 했다. 그리고 언젠가 개봉되어 많은 사람이 그것으로부터 지식을 얻을 것이었다(단 12:4~9). 1,260년이라는 예언적 기간이 끝났을 때, 책이 열리고 심오한 지식이 공개되었다. 계시록 10장에서 천사가 들고 있던 열린 책은 바로 이런 의미를 상징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다니엘의 예언들은 더욱 분명하게 이해되었다.
반면 계시록 10장은 그 경험이 완전히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밝힌다. 요한이 명령을 받아 그 책을 먹었을 때 입에는 달았지만 뱃속에서는 썼다. 요한은 다니엘서를 내면화한 백성들을 상징하였다. 우리는 이 예언이 19세기 초 종말론적 관심에서 비롯되었던 재림운동을 통해 성취되었다고 믿는다. 그런데 다니엘서에 기록된 그 긴 기간의 예언이 그들의 시대에 성취된다고 이해했던 자들은 쓰라린 실망을 경험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처음 생각했던 방식대로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천삼백 주야”의 끝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 다니엘 7장에 기록된 큰 심판의 시작을 의미했다.
쓴 경험 이후에 요한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계 10:11)는 말을 들었다. 이 명령은 전 세계에 “영원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에 의하여 성취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실망은 낯선 경험이 아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죽음을 잘못 이해하여 그분이 부활하시기 전까지 실망을 경험해야 했다. 1844년 밀러주의자들이 경험한 실망도 그와 같았다. 실망을 당해도 믿음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가설명> 다니엘서는 구약성경에서 유일하게 마지막 때까지 봉해두라고 명을 받은 예언서이다. 그리고 계시록 10장에서 그것이 예수님의 손에 펴 놓인 작은 책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다니엘서인 것은 그 책을 들고 계신분이 다니엘 12장 6절에 나타나신 분과 흡사한 분이라는 것으로도 증거되고 또 동일하게 때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증거된다. 다니엘서에서는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면 끝이 온다고 했고, 여기서는 시간이 다시없으시라고 했다. 그러니까 끝때가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우리 번역에 지체치 아니하리라고 한 것은 시간이 다시없으리라고 번역하는 것이 원문의 뜻이다. 1260일이 지난 후에 끝 때가 이르렀고, 2300주야 후에는 정한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계시해주신 것이다. 다니엘서를 연구하여 하늘성소에 대한 진리를 깨달았고, 이제는 그 깨달은 진리를 다시 예언해야 하게 된 것이다. 이 사명을 맡은 무리가 바로 재림교회이다. 실망의 때를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로 사용하였고 결과로 남은 백성들이 형성되고 성경적 진리를 증거하는 사명을 알게 된 것이다.

교훈 : 계시록 10장은 다니엘서의 예언을 이해한 사람들이 실망을 경험할 것이며 다시 예언해야 할 사명이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둘째 날(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12월 9일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7).

1. 첫째 천사의 기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한다.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시 34:7~22 참고)
[시34:7~22]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11 너희 소자들아 와서 내게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함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12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13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 14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16 여호와의 얼굴은 행악하는 자를 대하사 저희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17 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저희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20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21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죄를 받으리로다 22 여호와께서 그 종들의 영혼을 구속하시나니 저에게 피하는 자는 다 죄를 받지 아니하리로다.

답: 시34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여호와를 무서워하는 것을 대조하여 기록하였다.

두려움이란 두 가지로 이해된다. 첫째는 존경과 경외의 뜻을 가진 두려움이다. 첫째 천사가 우리의 주의를 끌려고 했던 두려움이란 바로 이런 종류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분 안에 있는 진실한 신자들이다(계 11:18).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곧 그분께 영광을 돌리며(계 14:7), 그분을 찬양하고(19:5), 그분께 순종하며(계 14:12),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계 15:4). 또한 첫째 천사의 기별에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그분을 재판장과 창조주로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별은 우리에게 그분을 경배하도록 요구한다.
둘째로 하나님이 조만간 이 세상을 심판하시리라는 공포심에서 비롯된 두려움이다. 신앙이 없는 자들에게 심판의 기별은 공포의 기별과 같다. 우리가 세 천사의 기별을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와 같다. ‘경고’라는 개념 속에는 어떤 두려움이 내재해 있다. 멸망당할 자들이 맞이할 운명에 대해 읽어보면 그들이 정말 두려워할 만하다.
그러나 자비가 유효할 때까지 하나님은 잃은 자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그들을 감화시키려고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그분을 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계 11:13 참고). 물론 궁극적으로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사랑에 기초해 있지만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해줄 적당한 두려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경고가 필요하다면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이시며 십자가만큼 그분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안다. 또한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죄가 야기한 일들을 볼 때 얼마나 심한 고통을 겪으셨을지 짐작할 수 있다. 반면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은 앉아서 죄악을 내버려 두실 수 없다.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히 10:31)은 두려운 일이라고 했다.

<부가설명> 두려워한다는 말은 헬라어로 “포베오”이다. 이것은 “무서워하다”라는 말도 같은 말이다. 히브리어로는 “야레”도 있고 “파하드”도 있다. 그러나 역시 무서워하다는 말도 된다. 그러나 경외라고 번역하는 때와 무서워하다고 번역하는 때는 전후 문맥과 그 말이 사용된 장면과 분위기 등에 의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단어가 사용된 곳에서 자세히 살펴서 적용해야 하고 또 경외라고 했을 때에도 교과에 지적한 대로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은 올바를 이해를 위하여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경배해야 할 것이다. 요즘 너무 경외심 예배에 참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우리의 창조주요 우리의 구속자이신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 앞에 정말 경외하는 마음으로 감사와 찬양과 기도와 영광을 돌리는 예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그분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을 의미하지만 때로 죄인들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한 공포와 경고의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셋째 날(화) 이방들의 분노
12월 10일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계 11:18).

1. 계 14:7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어떤 심판에 대하여 말하는가?
[계14: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답: 이것은 정해진 때가 있는 심판을 말한다. 이것은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선포된 심판은 계 14:14~20에 묘사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시작된다. 따라서 그것은 다니엘 7장에 묘사된 재림 전 심판과 동일한 심판이다.
단 8:14에 따르면 재림 전 심판은 1844년에 시작한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세 천사가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배하고 짐승과 그 우상(형상)으로부터 돌아서라는 기별을 전한다. 이 우상(형상)은 기원후 1798년에 끝나는 예언적 42달, 즉 1,260일 이후에 등장한다(계 13:3~5, 12~14).
계 14:6~12의 최후의 호소가 선포될 때, 자비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아직도 바벨론에서 나와 참하나님께 경배하라는 호소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심판에는 어떤 대상이 포함되는가?(계 11:17~18)
[계11:17,18]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답: 죽은 자들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이 포함된다.

하나님은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심으로 이방의 분노에 대응하신다. 계시록 13장은 사탄의 분노(계 12:17)가 조장한 이 분노를 묘사한다. 하나님의 심판을 요청하며 끝없이 탄원하는 억압된 신자들의 관점에서 보면(계 6:10) 심판의 때가 벌써 지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심판은 예언된 시간에 시작된다. 종말론적 속죄일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정확히 전개되고 있다.
계 11:17~18은 하나님의 심판을 개괄적으로 보여 준다. 그것은 하늘에서 시작해서 땅으로 확장된다. 그때 하나님은 인류를 타락시킨 악한 세력들을 멸망시키신다(계 19:2). 하나님의 진노는 하늘 성소에서 발현하여 일곱 재앙의 형태로 쏟아진다(계 15~18장).
재림의 때에 하나님은 신실한 자들에게 상급을 주실 것이다(계 22:12). 그리고 최종적으로 죽은 자들을 심판하고 악을 제거하실 것이다(계 20:11~15). 모든 것이 끝나면 하나님의 품성은 대쟁투를 지켜보는 우주 앞에서 옹호를 받을 것이다. 모든 존재가 그분이 의롭고 모든 일에 공정하신 분임을 볼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온 마음과 영혼과 생각을 다하여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일어나리라는 사실을 믿으며 그분께 매달리는 것이다.

<부가설명> 2번 질문은 하나님의 심판에 포함되는 대상을 묻는다. 세상에 살고 간 모든 사람들이라고 대답하면 간단하다. 그러나 성경구절에는 죽은 자들과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말하였고, 선지자, 성도,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상을 준다고 기록하였다. 당연히 상을 주기 전에 상 받을 만한가를 판단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믿는 모든 사람들도 심판에 포함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구절은 그들이 심판을 받는다고 하지 않고 상을 받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 구절이나 다른 성경구절에서 심판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상을 받는다고 하였다. 이것을 신원이라고 번역하였다. 죽은 자들이 심판을 받는 것은 계시록 20:11~15에 기록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심판의 대상이지만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은 상급을 받는 것으로 종결되는 것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심판은 기쁜 소식이요 복음인 것이다.

교훈 : 세상은 사탄의 분노에 자극을 받아 하나님을 대적하며 그분의 백성들을 박해한다. 그러나 때가 이르면 하나님의 진노가 악의 세력을 멸하실 것이다.


넷째 날(수) 창조주를 경배하라
12월 11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계시록의 핵심 쟁점은 경배이다. 용과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힘을 합하여 온 세상이 그들을 경배하도록 강요할 때(계 13:4, 8, 12, 15, 14:9, 11 참고), 하나님은 인류로 하여금 창조주를 경배하도록 호소하신다(계 14:7).
“짐승의 우상”을 경배하지 않는 자들은 그들의 일시적인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계 13:15, 단 3장 참고). 반면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잃는다(계 14:9~11). 얼마나 중요한 선택인가!
1. 계 14:12을 읽어 보라. 최후의 투쟁에서 하나님의 계명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계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답: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가 성도이다. 최후에도 역시 이 사실이 사단의 공격 대상이 될 것이다.

경배는 하나님의 계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계시록 13장과 14장은 십계명을 암시하는 요소로 가득하다. ‘형상’(계 13:14~15, 14:9, 11), ‘우상숭배’(계 13:4, 8, 12, 15, 14:9, 11), ‘신성모독’(계 13:1, 5~6), ‘안식일’(계 14:7), ‘살인’(계 13:10, 15), ‘간음’(계 14:4, 8).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계명과 사람의 계명 사이에 투쟁이 있을 것이다”(선지자와 왕, 188).
진화론이 생긴 이후로 6일간의 창조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고 확신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6일간의 창조는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경배의 기초이다. 성경을 믿는다고 주장하는 유신론적 진화론일지라도 성경이 지지하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신앙을 파괴한다. 창조가 없다면 우리는 “영원한 복음”뿐 아니라 안식일과 같은 다른 교리까지 심각하게 타협하거나 무시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하늘과 땅과 바다”를 “만드신 이”로 묘사한 구절은 안식일 계명을 연상시킨다(출 20:11). 안식일은 하나님의 계명을 둘러싼 쟁투의 핵심 문제이다.
다른 계명과 같지 않게 예배일을 지정하는 안식일 계명은 충성을 시험하기에 적합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논리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식일을 단지 하나님이 지키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지킨다. 창조 또한 심판과 관련이 있다. “물들의 근원”(계 14:7)이라는 구절은 홍수를 연상케 하며(창 7:11) 하나님을 의로운 세상의 심판자로 가리킨다(벧후 3:5~11).

<부가설명> 성경을 아주 주의 깊게 살피면 사단이 하나님을 공격하는 주 사상이 하나님의 존재성에 대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루시퍼는 하나님이 여호와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도 집회의 산에 보좌를 놓겠다는 주장으로 표현된 것이다.(사14:12~14) 집회의 산은 여호와 하나님의 회의 장소이다.(렘23:18) 거기는 여호와 외에는 참석할 수 없는 곳이다.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이다. 자존자(自存者)들 만이 회합하는 자리인 것이다. 그곳에 자기 보좌를 놓겠다는 것은 자기도 자존자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피조물이다. 에스겔은 그가 지음을 받던 날에 완전했다고 분명히 계시하고 있다.(겔28:12~15) 그는 지음을 받은 자인 것이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스스로 계신 것을 부인하며 자기도 동등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때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그분이 창조했기 때문에 존재하는 루시퍼에게 여호와께서 창조해준 존재와 생명을 반납하고도 루시퍼가 존재하면 루시퍼도 여호와의 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고 제안했을 것이다. 그때 루시퍼는 전쟁을 벌인 것이다. 그 창조된 존재를 반납하면 그는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을 우상에게 주지 않으신다.(사42:8) 심판으로 온 우주는 물론 루시퍼와 그와 동조한 세력들에게도 여호와 하나님이 여호와시라는 것이 옹호될 것이다. 심판의 가장 중심 되는 사안이라고 생각된다. “야훼께서 공정한 재판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시고 악한 자는 자기가 한 일에 걸려 들리라.”(시9:16, 공동번역) 여호와 하나님의 성품이 옹호된다는 핵심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자존성이 옹호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성경적인 것 같다. 하나님의 선한 형상에 바로 여호와라는 이름이 선포된 것을 보아서 확신할 수 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33:19)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실새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출34:5,6) 하나님의 선한 형상에 여호와의 이름이 선포된 것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교훈 : 계시록의 쟁점인 경배는 하나님의 계명 특히 안식일 계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계시록은 마지막 때에 창조주를 경배하라고 호소한다.


다섯째 날(목) 성도의 인내
12월 12일

둘째와 셋째 천사의 기별은 첫째 천사의 기별에 주의하지 않은 모든 사람에게 보내는 경고이다. 만약 백성들이 잘못된 길을 고집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계 14:10)로 묘사된 일곱 재앙을 당할 것이다. 이 포도주는 바벨론에 남아 있는 자들에게 쏟아진다.
성경에서 바벨론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을 상징한다(창 11:1~9, 렘 50~51장). 바벨론은 교만하게 하나님의 도성으로 가장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한다. 신약 시대에 바벨론은 로마를 상징하는 암호가 되었다(벧전 5:13). 계시록에서 음녀 바벨론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적대시하고 전 세계를 조정하려는 어떤 종교적, 정치적 세력을 의미한다. 계 13:15~17은 바벨론이 몰고 올 위기를 묘사한다. 그때에 짐승의 세력은 힘을 합하여 하나님의 남은 백성을 박해할 것이다. 여기서 바벨론은 부패한 세상 정치 세력과 타락한 교회 간 최후의 동맹을 상징한다.
세 천사의 기별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바벨론에서 나와서 가시적인 하나님의 남은 무리에 동참하라고 호소한다(계 18:4~5). 맞다. 바벨론에는 여전히 신실한 백성이 남아 있다. 그들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마지막 기별을 들을 필요가 있다.
어제 보았듯이 계 14:12은 하나님의 신실한 남은 백성을 묘사한다. 성도의 “인내”는 적대적인 행위에 대한 수동적인 인내라기보다는 변함없이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세를 말한다. 참신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뿐 아니라 그것을 세상에 선포한다.
동시에, “예수 믿음”은 예수님에 대한 신자들의 믿음을 의미할 수도 있고, 신자들을 신실하게 이끄는 예수님의 믿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우리의 시선을 곧장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한다. 그분의 공로와 충성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은 인내하며 그분의 계명을 지킬 수 있다.

<부가설명> 바벨론은 루시퍼의 작품이다. 혼잡이라는 뜻인 것은 창세기 11:9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혼잡이라는 말은 묘한 표현이다. 이것은 전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바른 것과 틀린 것이 섞여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루시퍼는 하나님을 인정한다. 그런데 자기가 바로 그 하나님이라고 드러내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라는 말에 속도록 하는 것이다. 속은 사람이 하나님이라고 믿고 경배했는데, 결국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다른 하나님을 믿은 것을 후에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알았을 때는 너무 늦은 때이다. 그러나 루시퍼는 온 세상을 영혼불멸설과 도덕적 선악 사상으로 아주 튼튼하게 장악하고 있다. 교육과 종교들과 심지어 성경을 가지고 신앙한다는 예수교의 이름으로도 이 두 사상으로 장악하고 있다. 지금 대부분의 예수교, 또는 기독교가 이 사상의 올가미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고 있으며 그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요 복음인 줄 속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영원한 복음을 깨달음으로 이 속임수를 알아차린 성도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외친다.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기별은 자존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올바르게 예배하는 것이 피조물인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경배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며 그 중심에 제7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있는 것이다.

교훈 : 둘째와 셋째 천사의 기별은 마지막으로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호소하며 하나님의 남은 백성의 특징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이라고 강조한다.


여섯째 날(금)
12월 13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세 천사의 기별에 대한 엘렌 G. 화잇의 설명을 보고 싶다면 첫째 천사의 기별은 <각 시대의 대쟁투>, 299~374쪽, 둘째 천사은 391~432쪽 그리고 셋째 천사의 기별은 433~460쪽을 읽어 보라.
“모든 믿는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세상에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에 선봉이 되어야 한다. 세 천사의 기별 가운데는 안식일 진리를 소개하여야 할 사명이 포함되어 있다. 이 기별 속에 있는 다른 진리들과 함께 이 안식일 진리를 전하되, 주목하여야 할 가장 위대한 중심인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빼놓아서는 안 된다. 긍휼과 진리가 서로 사귀고 공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는 곳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죄인으로 하여금 반드시 갈보리의 십자가를 쳐다보도록 인도하여야 하며, 죄인은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한 믿음으로써 구세주의 공로를 의지하며, 그의 자비하심을 믿고 그 의를 받아들여야 한다”(복음교역자, 156~15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경고는 우리 사회와 일상생활에서 서로에게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대개 경고는 경고를 받은 자들에게 이롭습니다. 어떻게 하면 두려운 경고를 담고 있는 세 천사의 기별을 놀라운 희망으로 제시할 수 있을까요?
※ 경고가 생명을 확보하라는 것임을 확신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확인하게 하는 방법으로 전달되면 희망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➋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교리와 진화론은 선천적으로 대립됩니다. 근본주의적인 무신론자의 말을 빌리자면 진화론은 그것이 닿는 모든 것을 부식시키는 일종의 ‘산(酸, acid)’과 같습니다. 그 가운데는 계시록 14장에 나오는 세 천사의 기별도 포함됩니다. 왜냐하면 진화론, 심지어 유신론적인 진화론이 세 천사의 기별의 핵심 주제, 즉 창조와 구속의 진리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그렇게 만든 신을 누가 경배하고 싶겠습니까?) 우리 교회는 왜 거짓 과학이 우리의 가르침에 유입되는 것을 허용하지 말아야 합니까?
※ 그것은 창조주를 부인하는 루시퍼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서 세 천사의 기별은 우리가 선포해야 할 최후의 기별을 요약해 놓은 소중한 횃불과 같습니다. 물론 대다수의 신자들은 이 기별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지만, 아직도 어떤 이들은 그것의 의미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대는 세상에 보내는 하나님의 마지막 호소와 그 의미를 어떻게 요약하여 설명하겠습니까?
※ 창조주를 올바르게 경배하고 영원한 생명을 확실하게 붙잡으라고 설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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