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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하 장로님의 제 6과 교사강해 3)의 오류지적에 대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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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춘호 작성일13-11-13 20:03 조회5,30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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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하 장로님께서 연합회 게시판에 지적하신 조춘호목사의 교사강해 3) 가 오류라는 말씀의 답변을 드립니다.

존경하는 박장로님~! 장로님께서 저의 강해에 대해 자세히 읽어주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연합회에서 제가 강해한 이 문제에 대해 답변을 해주실 것을 요청하였고, 박금하 장로님께서 아사셀 염소에 대한 저의 강해가 오류라고 말씀하셨기에 제가 강해한 말씀의 의미에 대해 답변을 해야 되겠기에 그 대답을 올려드립니다.
먼저 장로님께서 제기하신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레 16:22).

교사강해 3)
제비를 뽑아서 "여호와를 위하여" 드려진 염소는 붉은 줄을 그 목에 매어 표시하였다.
이 염소는 백성들의 속죄를 위해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이었다. 그리고 "아사셀을 위해" 드려진 염소는 붉은 줄을 그 염소의 두 뿔에 매어서 표시하였다. 이 염소는 나중에 안수와 죄의 고백을 통해 백성들의 모든 죄를 지고 광야로 가서 죽임을 당했다. 이 두 마리의 염소들은 이스라엘이 1년간 지은 모든 죄들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 드려진 희생 제물이었다. 이 두 염소는 인류의 죄를 지고 영문밖에 나가 나무 위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징한다. 침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침례를 통해 공적으로 메시야의 사역을 시작하였을 때에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소개하였다. 이스라엘의 죄를 지고 죽으러 가는 염소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마 3:13-17, 요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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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안교 교과토의자료에 조춘호 목사님이 아사셀에 대한 강해 내용에 오류가 있습니다.
위의 내용처럼 조춘호 목사님의 “아사셀”염소에 대한 강해는 개신교회의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성소기별에 대한 빛을 받은 재림교회 정통 해석은 개신교회의 해석과 완전히 다릅니다.

염소를 재림교회 성직자이신 조목사님이 진리교회의 정통 해석 방법을 지양하고 왜 개신교회의 해석을 그대로 적용했는지 의아하고 궁금합니다.
교과를 공부하는 신자들이 햇깔리지 않을 수 없고, 올바로 성경의 진리를 탐구하고 배워야할 신자들에게 해가 될까봐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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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셀"염소가 영문 밖에서 죽임을 당하신 그리스도를 표상하고 상징한다는 해석과
"아사셀"염소가 사단을 표상하고 상징한다는 해석과는 천지만큼이나 정반대의 개념입니다.
사실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속죄를 위해 희생을 당하지만,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희생당하지 않고 산채로 두었다가 죄를 짊어지고 아사셀에게 보내어지는 역할만 합니다.

아사셀을 그리스도로 표상하거나 상징하는 해석은 성경을 왜곡하는 수준을 넘어 그리스도의 사역을 곡해하는 아주 잘못된 해석이자 주장입니다.
또 대속죄일 원형과 모형의 근본적인 뜻과 목적과 성취를 훼손하는 일입니다.

본교 주석에서도 해석한 것처럼 일부 신학자들이 두 염소(여호와를 위한 염소, 아사셀을 위한 염소) 모두가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그분의 속죄 사역의 두 국면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대다수의 신학자들은 두 개의 반대되는 세력을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는 여호와를 것이므로 다른 하나는 분명 사단을 위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정 반대의 목적과 국면을 위한 염소들이기 때문에 탈무드에 의하면 제비를 뽑아 구별한 다음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아사셀 염소는 뿔에,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목에 붉은 줄을 칭칭 감아 표시를 하였겠습니까?
한 염소를 여호와를 위한 것으로 뽑아 구별하기 때문에 다른 한 염소는 서로 대립적인 반대 개념의 존재인 사단으로 해석함이 타당한 것입니다.

원래 “아사셀”은 히브리어 음역입니다.
이 말은 ‘염소’를 가르키는 <에즈>와 ‘가버리다’ ‘사라지다’ 등의 뜻이 있는 <아잘>의 합성어입니다.  어원적 의미로는 ‘아사셀’은 ‘내어 보냄을 위한 염소’ 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과 현대 신학자들과 그 중에 ‘카일’ 같은 학자는 귀신이나 악령을 나타내는 원어 <아잘젤>이 발음상 유음화 된 것이므로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악령에게 보내는 보내어지는 염소' 라고도 하며, 또는 ’아사셀‘이 인격적 존재 즉 사악하고 초인간적인 영을 가리킨다고 말하기도 하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죄의 세력인 우두머리인 아사셀에게 구별된 염소를 내어 보내는 것은 염소에게 백성들이 지었던 죄를 짊어지게 하여 모든 죄악을 악의 근거인 아사셀에게 되돌려 준다는 상징적인 의미라고도 합니다.

본교 28 교리에서도, "히브리어 아사셀(azazel)을 영어로 '스케입고웃'(scapegoat)(쫓겨난 염소, escape goat)로 번역한 것은 불가타역(Vulgate)의 카페르 에미사리우스(caper emissarius), 곧 '보내버린 염소'에서 유래된다"(레 16:8, RSV, KJV 난외 주)고 하였습니다.

[[레위기 16장을 주의깊이 살펴보면, 아사셀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사단을 나타낸다. 그 사실을 입증하는 이론은 다음과 같다.
"(1) 아사셀은 희생 제물로 죽음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용서를 가져다주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기 때문이다(히 9:22).
(2) 성소는 아사셀이 의식에 참여하기 전에 여호와께 드려진 염소의 피에 의하여
완전히 정결해졌다(레 16:20).
(3) 성경 기록은 아사셀을 하나님께 대하여 반대되고 상반되는 존재로 취급한다.
(레위기 16장 8절은 글자 그대로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소 비유의 배경에서 보면,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아사셀은 사단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라고 부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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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 정결의식에서, 여호와께 드릴 염소를 바침으로 대제사장은, "그 지성소와 회막(성소)과 단(뜰의)"을 위하여 속죄했으며, 그리스도의 피를 대표하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의 피를 지성소 안으로 가져간 대제사장은,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면전에서 율법이 들어 있는 법궤의 뚜껑인 속죄소 앞과 위에, 분향단 위에 그것을 직접 뿌렸습니다.
그런 다음 대제사장은 성소를 더렵혀왔던 죄를 자기 자신이 짊어지고 살아 있는 염소, 곧
아사셀에게로 그 죄들을 옮겨 하나님 백성의 진영에서 준비된 사람을 통해 광야로 보냈습니다.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레 16:21, 22).

이 의식은 상징적으로 매일의 용서의 의식에 사용된 희생 제물의 피나 고기를 통하여 회개한 신자들에게서 성소로 옮겨진 백성들의 죄를 제거했습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성소는 정결함을 받고 다음 한 해의 봉사 사업을 위하여 준비되었습니다.

-----각 시대의 대쟁투 422쪽에서도 아사셀을 사단으로 상징하였습니다.
“속죄 제물은 희생 제물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가리켰고, 대제사장은 중보자 되시는 그리스도를 대표하였고, 아사셀은 참으로 회개한 자들의 죄를 마침내 지게 될 죄의 창시자, 사단을 나타냈다.”

“또한 제사장이 성소에서 죄를 옮길 때에 아사셀을 위한 염소의 머리 위에 그 죄들을 고백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모든 죄를 죄악의 창시자요 선동자인 사단에게 씌울 것이다.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이스라엘 족속의 죄를 지고 “무인 지경”(레 16:22)으로 쫓겨난 것처럼 사단 역시 그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범하게 한 죄를 지고 천년 동안 세상에 감금될 것이다.“ -각 시대의 대쟁투 ! p.485

(조춘호목사의 변증)

* 저는 먼저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의 입장인 아사셀이 사단을 의미한다는 입장에 대해 그 일차적인 의미가 아닌 제 2차적인 의미로서 사단을 예표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의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교회 성경연구는 더 깊이 있게 연구하여 그 빛을 밝히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우리가 주장하는 현재까지의 이해하고 있는 진리가 전부라고 하는 생각에 매여 있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빛이 주어지면 그 빛을 더 연구하는 교회요 틀리면 틀린 점들을 더 보완하는 교회가 재림교회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한 개인으로서 장로님께서 알고 계신대로 아사셀이 사단을 의미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사셀 염소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셨다면 아사셀에 대한 일차적인 의미는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차적인 의미로서 아사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족속의 죄를 지고 “무인지경”으로 쫒겨 났던 염소처럼 마지막 때에 사단의 운명이 곧 하나님의 백성에게 범하게 한 죄를 지고 천년 동안 세상에 감금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면 관계상 교사강해 3)에서 일차적인 의미만 기록해 놓아 오해를 할 수 있는 소지가 있었습니다. 장로님께서 제기하신 문제로 말미암아 우리 교인들도 아사셀 염소에 대한 보다 더 높은 식견을 가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박장로님께서 본교회 주석을 이용하시어 “그러므로 성소 비유의 배경에서 보면,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아사셀은 사단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라고 부연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예~! 아사셀은 사단의 상징으로 생각한 것에 저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아사셀에 대한 문제는 신학적 오해와 신학적 이해를 달리하고 있고 매우 첨예하게 대립된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의 입장에서 아사셀을 사단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라고 말씀을 했을 뿐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어떤 기록도 아사셀은 사단이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한 기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사셀의 염소의 정황으로 아사셀의 일차적인 의미가 그리스도에게 적용되고 이차적인 의미가 사단에게 적용해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작은 빛인 예언의 신의 말씀을 보면 이 사실을 보다 확실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사장이 성소에서 죄를 옮길 때에 아사셀을 위한 염소의 머리 위에 그 죄들을 고백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모든 죄를 죄악의 창시자요 선동자인 사단에게 씌울 것이다.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이스라엘 족속의 죄를 지고 “무인 지경”(레 16:22)으로 쫓겨난 것처럼 사단 역시 그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범하게 한 죄를 지고 천년 동안 세상에 감금될 것이다.“ -각 시대의 대쟁투 ! p.485

* 각시대의 대쟁투 485p의 이 말씀 중에서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이스라엘 족속의 죄를 지고 무인지경으로 쫓겨난 것처럼” 이라고 먼저 이것이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죄를 위임하고 죄를 옮길 때, 제 일차적인 대속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족속의 죄를 지고 무인지경으로 쫓겨난 염소의 운명의 일차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였을까요? 사단이었을까요? 이 말씀에서 무인지경, 곧 광야로 쫓겨난 것은 염소인데 그 일차적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광야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 곧 죽음의 땅을 의미합니다. 곧 무인지경(곧 광야 곧 무인지경에 이르면 이 염소를 놓았습니다. 레위기 16:22절)에 이 염소를 놓은 이유는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문 밖, 영문 밖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족속의 죄를 지고 무인지경(곧 영문 밖), 곧 광야(사람이 살지 못하는 땅)로 쫓겨난 것이지요. 렘17:5-6절에는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렘17: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건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난 사람들이 갈 곳은 광야 건조한 곳,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 곧 무인지경에 거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말씀 히13:11-14절에 말씀하신 대로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히13: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13:13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서 히13:14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한 마리의 염소의 피로는 성소를 정결케 하였고, 또 한 마리의 염소인 아사셀 염소를 광야, 무인지경으로 보낸 것은 예수께서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고 했는데, 이 성문 밖이란 사람이 살지 않는 곳, 죽음의 땅, 광야, 무인지경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예수께서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고 하셨는데 예수께서 바로 사람이 거하지 않는 영문 밖으로 나아가 해골의 골짜기 골고다(라틴어 갈바리)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먼저 광야라는 곧, 사람이 거하지 않는 무인지경의 땅이 의미하는 죽음을 경험하신 것입니다.

* 각시대의 대쟁투 485장에 나타난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먼저 이스라엘 족속의 죄를 지고 “무인지경”으로 쫓겨났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의 죄를 지고 무인지경 곧 영문 밖으로 쫓겨난 것은 일차적으로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경험인 것처럼 훗날 “사단 역시 그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범하게 한 죄를 지고 천년 동안 세상에 감금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직 사단은 무인지경에 갇히지는 않았지요. 지금은 이 땅에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까요. 아사셀의 일차적 적용의 의미는 광야, 곧 무인지경, 사람이 살지 않는 죽음의 땅을 의미하는데 사도 바울이 히2:9에 말씀하신 것처럼“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고 하셨던 것처럼, 예수께서 바로 무인지경, 사람이 살지 않는 건건한 땅 광야 같은 죽음을 맛보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런 광야와 무인지경에 갇히는 죽음의 경험을 당하신 것처럼 사단도 하나님의 심판의 날 1000년 동안 이렇게 이 세상에 감금이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이곳에 말씀드린 아사셀 염소는 일차적 그 의미가 그리스도께 적용되어야 하며 이차적으로는 사단에게도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이런 동일한 경험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속죄 제물의 피의 공로로 이스라엘의 모든 죄가 성소에서 옮겨지면, 아사셀 염소가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끌려나왔다. 그때 대제사장은 회중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레 16:21)었다.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하늘 성소의 속죄 사업이 완성되면 하나님과 천사들과 구속받은 큰 무리들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죄는 사단에게 놓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유혹하여 범하게 한 모든 죄의 책임을 사단이 져야 할 것으로 선고될 것이다. 마치 아사셀 염소가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으로 쫓겨났던 것처럼 사단도 쓸쓸한 지구, 곧 거민이 없고 황량한 광야로 추방당할 것이다.“ -각 시대의 대쟁투 ! p.658

이곳 각시대의 대쟁투 658p에서도 아사셀 염소가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으로 쫓겨났던 것처럼, 먼저 죽음을 경험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사단은 죽음, 황량한 광야 거민이 없는 황량한 광야로는 아직 추방당하지 않았으니 이 사건은 그리스도께서 먼저 당하신 사건 후에 일어날 사건이 명백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저의 교사강해를 이렇게 주석을 덧붙이면 좋겠습니다.

교사강해 3)
제비를 뽑아서 "여호와를 위하여" 드려진 염소는 붉은 줄을 그 목에 매어 표시하였다.
이 염소는 백성들의 속죄를 위해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이었다. 그리고 "아사셀을 위해" 드려진 염소는 붉은 줄을 그 염소의 두 뿔에 매어서 표시하였다. 이 염소는 나중에 안수와 죄의 고백을 통해 백성들의 모든 죄를 지고 광야로 가서 죽임을 당했다. 이 두 마리의 염소들은 이스라엘이 1년간 지은 모든 죄들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 드려진 희생 제물이었다. 이 두 염소는 인류의 죄를 지고 영문밖에 나가 나무 위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징한다. 침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침례를 통해 공적으로 메시야의 사역을 시작하였을 때에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소개하였다. 이스라엘의 죄를 지고 죽으러 가는 염소는 일차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마 3:13-17, 요 1:29). 그러나 그 이차적인 의미는 아사셀 염소는 “하늘 성소의 속죄 사업이 완성되면 하나님과 천사들과 구속받은 큰 무리들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죄는 사단에게 놓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유혹하여 범하게 한 모든 죄의 책임을 사단이 져야 할 것으로 선고될 것이다. 마치 아사셀 염소가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으로 쫓겨났던 것처럼 사단도 쓸쓸한 지구, 곧 거민이 없고 황량한 광야로 추방당할 것이다.“ -각 시대의 대쟁투 ! p.658 고 말씀하면 보완이 될 듯 싶습니다.

장로님께서 “끝으로 성경 교사는 신자들에게 진리를 올바로 대변하고 가르쳐야 할 사명을 받았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장로님~! 저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성경연구에 매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장로님께서 앞으로도 교과강해 하는 교사들에게 예리한 지적을 해주셔서 이 교회가 더 깊고 넓은 성경의 지식들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 장로님께 충분한 대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박금하님의 댓글

박금하 작성일

조목사님의 변증(자료실) 잘 읽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변증 내용에 대하여 전혀 이해할수도 없고 납득할 수도 없습니다.
도데체 1차적 2차적 적용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요. 첨 들어 봅니다.

너무 오버하시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대상물에 정 반대의 두 가지 개념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입니까?
있을 수 없는 억지 해석입니다.
은혜를 오히려 반감시키는 것입니다.

아사셀이
1차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2차적으로는 사단을 상징한다는 논리가 비 논리적인 해괴한 억지 주장입니다.

아사셀이 성소 밖, 광야 무이지경으로 내보내져 스스로 객사하는데
어떻게 우리 죄 때문에 예루살렘 성 밖 갈바리 언덕 십자가에서
로마 군병에게 타살 당하신 그리스도가 아사셀을 상징한다는 것입니까?

아사셀 염소는 오로지 사단 외에는 상징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1. 한 염소는 여호와를 위한 것이고 한 염소는 아사셀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셀을 위한 염소가 여호와(그리스도)를 위한 염소로 신분이 바뀔수 없습니다.
아사셀을 그리스도로 중복 상징하는 것은 예수님을 사단으로 취급하는 신성 모독 행위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가 없으셨지만 죄인을 구속하기 위해 죄가 되신 예수님이
죄의 존재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미안하지만, 예수님은 사단이 최종적으로 책임져야 할 몫까지 책임져야 하는 분이 아닙니다.

2.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속죄 제물로 희생 당하므로 그리스도를 대표하지만,
아사셀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산채로 죄의 처리를 위해 정해져 있다가 속죄가 끝난 후
죄를 가지고 좌와 함께 광야에 버려지는 염소이므로 1000년 후에 무저갱에서 죄와 함께
멸망당할 사단을 대표하기 위해 대속죄일에 제비뽑힌 염소에 불과합니다.

3. 적어도 예수님의 사역을 상징하려면 대속적인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 짐승을 죽이고 피를 받아 그 피로 성소에 뿌려지는 절차가 선행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사셀은 그런 대속물이 아니라 산채로 죄속물로 구별되어 죄와 함께
황폐한 무인지경에 버려져 죽어 없어지는 무속죄 동물에 불과합니다.

성소에서 희생 제사 후 성소 밖에서 고기와 기름과 내장을 불사르는 것만
영문 밖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4. 영문 밖이란 군사 용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영문 밖에서 죽으신 것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기 때문에 에덴에서 추방당한 것처럼
주님께서도 거룩한 장소의 경계선 밖에서 고난을 당하도록 되어 있었기에
중죄인들이 처형 당하는 곳에서 우리가 당할 형벌을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영문 밖 갈바리에서 대속의 죽음을 위해 나가신 것은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전 인류를 위해서
생명을 주셨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의미라고 엘렌 화잇은 말씀했습니다(청년 지도자 1900.6.28)
그래서 그리스도의 군병들도 복음을 들고 순교의 정신으로 영문 밖 세계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사셀을 그리스도로 상징하는 것은 얼토당토 않는 위험한 적용입니다.
아사셀이 인류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황폐한 광야에 버려졌습니까?

영문 밖에서 죽었다고 모두 그리스도를 표상한다면
십자가 두 강도도 예수님을 상징한다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5. 대속죄일 사건은,
그리스도의 마지막 심판의 세 국면(조사심판, 천년기 심판, 삼림후 집행심판)을 표상합니다.
1년 동안의 성소에 옮겨진 죄의 최종적 정결과 죄의 도말과 죄의 처리를 나타내 줍니다.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오직 성소 정결을 위해 사용되고
아사셀를 위한 염소는 오직 죄의 처리를 위해 사용될 뿐입니다.
다른 용도로는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사셀 염소는 1년에 단 한차례, 대속죄일때만 구별되어 활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사셀을 그리스도의 대속의 제물로 비유하거나 상징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절대 아세셀 염소는 성소 정결을 위한 속죄 염소가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제가 보기에 조목사님이 무리한 해석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억지로 적용하지 마시고 명백하게 드러난 문제에 대해서
겸손히 인정하고 시정하는 자세가 용기있는 태도입니다.

교회 지도자로서 신자들에게 논란과 피해를 양산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최종적인 주석으로 예언의 신의 주석과 해석을 받아들이고 영감의 기별에 순응하십시오.

조목사님의 해석은
성소 기별이 주어진 정통 재림교회 해석에 오류을 섞는 반교리적 주장임을 명심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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