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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사탄의 마지막 속임수(질문, 대답, 설명) 0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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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3-05-27 05:18 조회6,1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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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사탄의 마지막 속임수

(6월 3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49분)

 

연구 범위: 계 12:9, 계 16:13, 14, 살전 4:16, 17, 겔 8:16, 겔 20:1–20, 계 18:4, 5

 

기억절: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아침 해가 미시간 호수 위에 빛나는 시카고의 어느 화창한 9월의 아침이었다. 통근자들은 케네디, 아이젠하워 고속도로에서 교통 체증과 싸우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던 그 때, 시카고 시민들의 마음에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소름 끼치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많은 시민들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고 일부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들이 복용한 타이레놀 캡슐에 치명적인 독극물인 시안화칼륨이 들어 있었다. 어떤 미친 사람이 약물을 변조해 독을 넣은 것이었다. 이 사건의 범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요한계시록은 “땅의 거민들”이 “바벨론의 포도주”라고 불리는 치명적인 독약을 마실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 안에는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할 거짓 교리와 가르침이 있다.

그러나 세상은 이 영적 독극물에 대한 해독제와 예방약 없이 버려진 것이 아니다. 세 천사의 기별이 세상에 주어졌다. 이번 주 교과에서 우리는 바벨론의 속임수와 그 속임수로 당하게 되는 죽음,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우리를 구하려는 예수의 계획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학습 목표

- 깨닫기: 사탄은 마지막 때에 강력한 속임수를 동원해 불순종과 멸망에 이르게 할 것이다. 

- 느끼기: 사람의 양심이나 신념보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는 것이 안전함을 느낀다.

- 행하기: 사탄의 큰 기만 앞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 바른 길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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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과 악을 판단하고 그것을 자신의 양심을 따라 결정하는 것은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막 13:22) 

*답: 인간의 양심은 이미 죄로 물들어 있는 상태이므로 성경의 생명적 결정이 어렵다.

3. 죽음에 관하여 널리 받아들여진, 말씀에 기초하지 않은 오류는 어떤 것입니까? (전 9:5) 

*답: 영혼불멸설을 믿는 것이다. 

5. 격심한 어려움을 당해도 주님께 굳건하게 충성하는 힘은 어디에서 옵니까? (시 46:1)

*답: 성경의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6. 오류와 잘못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결단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계 18:4) 

*답: 바벨론에서 나오는 것이다. 조직적 바벨론만이 아니고 사고방식의 바벨론에서도 나와야 한다. 

 

결론 바벨론의 포도주는 치명적인 속임수로 영혼을 멸망으로 이끈다. 그 속임수는 강력하여 택하신 자라도 미혹케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지 않으면 사람의 길을 따라 영혼 불멸, 일요일 예배 등의 거짓된 교리들에 빠지기 쉽다. 거대한 기만과 압력이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 닥치지만 진리의 말씀을 따를 때 하나님은 순종의 은혜를 주시며 바벨론 가운데서도 택한 백성을 이끌어 내실 것이다. 

 

5월 28일(일) 사람이 보기에는 바른길 

 

마지막 때의 맥락에서 예수님은 강력한 경고를 하셨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막 13:22)

본문의 “택하신 자”는 누구인가? 그분은 나중에 “그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 24:31)고 말씀하셨다. 마지막 날에 미혹이 너무 커서 신실한 자들도 미혹되고 위험에 처하게 될 때가 온다니 두렵지 않은가?

 

요한계시록 12:9을 읽어 보라. 사탄에게 속은 것은 누구이며 우리는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계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답: 온 천하. 땅에 사는 모든 족속이다.

 

모든 시대를 통해 그러했던 것처럼 분명히 마지막 날에도 하나님께 신실한 백성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나오는 표현은 사탄의 속임수가 실제로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잠언 14:12을 읽어 보라. 여기에 어떤 강력한 경고가 나타나 있는가?

[잠14:12]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답: 사람이 보기에 바른 길이라도 사망의 길이 있다.

 

사람들은 종종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선한지 악한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그에 따라 살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따르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모두가 죄인이며, 모두 부패했(렘 17:9, 롬 3:9-18)기에 우리 자신의 감정을 신뢰하는 것은 조만간에 무언가 실수를 하거나, 심지어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거의 확실한 방법이라고 한다. 자신의 정당성을 완전히 확신하는 사람들에 의해 여러 시대에 걸쳐 많은 악행이 자행되었다. 그들이 “옳아 보이는 길”을 따른 결과였다. 

 그 대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맡기고 성령께 굴복하여, 말씀을 통해 오류에서 진리를, 그름에서 바름을, 악에서 선을 배워야 한다. 우리 자신의 생각이나 혹여 감각을 따르면 사탄의 속임수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 

 

<교훈> 사람이 보기에 바른 길인 양심이나 지혜를 따르기보다 유일한 안전의 길인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적용>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일인데도 그 결과가 비극적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런 일들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답: 인간 자신이 심피 부패한 존재이므로 그들이 옳다고 믿었던 일도 부패한 사고방식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부가설명> 사람이 보기에 바른 길은 대표적으로 도덕과 윤리와 도덕적 종교들의 길이 아닐까? 이것은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 마음이 심히 부패한(렘17:9) 아담의 모든 후손들이 보기에 바른 길로 보인다. 이것은 부패한 세상에서 부패한 사고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유익하다. 도덕적 성취와 일반적인 종교의 가르침으로 이룬 인격은 존경할만하고 성인, 현인, 위인 등으로 불리며 선망의 대상이 된다. 문제는 이런 성취가 사람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데 전적으로 무력하다는 것이다. 성경의 계시 밖의 종교나 도덕은 그것이 가르치는 도덕적 윤리적 선으로 마치 생명을 얻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그들은 영혼불멸설을 믿으며 이것을 기초로 도덕과 윤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을 선하게 속이는 악이다. 인간 자체가 이미 영원한 생명을 잃어서 사망이 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결코 죽지 않는다’라는 사탄의 기만을 근본적인 교리로 성립된 것들이다. 인간 생활의 도덕적 상태로는 권장할만하지만 거기 빠져 있으면 결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받지 않게 된다. 

 

 

5월 29일(월) 영혼 불멸이라는 오래된 거짓말

 

요한계시록 16:13, 14과 요한계시록 18:2, 23을 읽어 보라. 이 구절에서 강신술에 대한 어떤 암시를 찾을 수 있는가?

[계16:13,14]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14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계18:2,23]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비치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답: 귀신의 영이 이적으로 활동할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복술(卜術)이라고 했다.

 

“귀신의 거처”나 “귀신의 영”, “주술”과 같은 표현은 모두 마귀의 활동을 나타낸다. 마지막 날에 있을 두 가지 큰 속임수 중 하나가 “영혼 불멸”(각 시대의 대쟁투, 588)일 것이라는 경고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기독교계에서조차 영혼 불멸이라는 개념이 기독교의 주요 교리로 자리 잡고 있는 지경이다. 많은 기독교인은 죽으면 구원받은 자는 하늘로 솟아 올라가고 잃어 버림을 받은 자는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위대한 복음 전도자 빌리 그래함이 죽은 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빌리 그래함은 이제 하늘에 있으며, 예수님의 사랑의 품에 안겨서 안전하다"는 말을 들었는가? 이런 종류의 내용이 강단에서 교실에서 그리고 특히 장례식에서 항상 가르쳐진다. 

 

전도서 9:5, 욥기 19:25–27, 데살로니가전서 4:16, 17, 계시록 14:13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에게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어떤 분명한 교훈을 주셨으며, 우리는 어디에서 소망을 찾을 수 있는가?

[전9:5]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욥19:25~27]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

[살전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계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부활, 생명의 부활이 소망이다. 

 

바벨론의 속임수의 큰 기둥은 죽음에 대한 그릇된 이해인데, 그것은 영혼 불멸 사상에 중심을 두고서 강신술의 기만적인 영향력에 길을 열어준다. 그대가 사람이 죽은 후에도 어떤 형태로든 계속 살아있고 우리와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사탄이 가지고 있는 온갖 속임수로부터 어떤 보호를 받을 수 있겠는가? 죽은 어머니나 자식, 또는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나 말을 건다면 그런 경험에 얼마나 쉽게 속겠는가? 

 이것은 과거에 있었던 일이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며, 그리고 그 마지막 날이 가까워질수록 분명히 다시 일어날 일이다. 유일한 보호책은 성경의 가르침에 굳게 뿌리를 내리고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죽음은 잠과 같다는 그 가르침을 굳게 붙잡는 것이다. 

 

<교훈> 성경은 재림 때까지 죽음을 잠과 같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사탄은 영혼 불멸이라는 큰 속임수를 통해 마지막 때에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다. 

 

<적용> 현대 문명과 과학이 발달한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드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보호책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창조주 만이 사람의 생사의 상태를 가장 확실히 아시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 말씀이 바로 성경이다. 

 

<부가설명> 성경에 영혼과 몸, 또는 영과 혼과 몸이라는 표현들이 있어서 신학계에서 이것을 사람의 구성 본질로 해석한다. 사탄이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한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진리인 것처럼 교회가 받아들였다. 그래서 성경을 경전으로 믿는 교회가 앞장서서 영혼불멸설을 세상에 주입 시켰다. 교회 밖의 세상의 종교와 무속들은 이미 이 사상을 신봉하고 있는데 성경 진리를 세상에 증언해야 할 교회가 이것을 더욱 강하게 믿도록 만든 것이다. 영혼 불멸이 거짓이라는 것은 창세기 사람 창조하신 기사와 아담 부부가 선악과를 먹은 후에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신 말씀을 분명히 깨달으면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사람이 생령이 되게하셨다(창2:7).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하셨다(창2:16,17). 그런데 창세기 3:17~19에는 죽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주신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설명해주신 죽는 것의 상태다. 흙으로 돌아간다. 영혼은 하늘로 간다거나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창조되기 전으로 돌아간다는 말씀이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이 영혼을 창조해서 사람에게 넣었다는 말씀이 없다. 죽는 것은 창조되지 않은 것과 같이 되는 것이다. 

 

5월 30일(화) 바벨론: 태양 숭배의 중심

 

태양 숭배는 이집트, 앗수르, 페르시아, 그리고 바벨론에서 확실히 두드러졌다. 제임스 프레이저는 그의 저서 “자연 숭배”에서 “고대 바벨론에서는 태고부터 태양을 숭배했다”(James G. Frazer, 529)고 말했다. 놀랍게 들릴지 모르지만 때때로 바벨론의 태양 숭배는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예배에 영향을 미쳤다. 

 

에스겔 8:16과 열왕기하 23:5, 11을 읽어 보라. 선지자들은 이스라엘과 유다에 미친 태양 숭배의 영향에 대해 무엇을 기록했는가? (롬 1:25 참조) 

[겔8:16]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성전 안뜰에 들어가시니라 보라 여호와의 성전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스물다섯 명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더라.

[왕하23:5,11] 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 주위의 산당들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달과 별 떼와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 11 또 유다 여러 왕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렸으니 이 말들은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곳의 근처 내시 나단멜렉의 집 곁에 있던 것이며 또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

[롬1: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답: 태양을 신으로 섬긴 사실을 기록했다. 

 

다니엘과 동시대의 선지자인 에스겔은 하나님의 성전을 등지고 동쪽의 태양을 숭배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 기록했다. 그들은 태양을 창조하신 분을 숭배하는 대신 태양을 숭배했다.

요한계시록 17장에서 요한은 타협의 시대에 태양 숭배를 포함한 바벨론의 이설들이 기독교 교회로 들어오는 때를 묘사했다.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뜻밖에 개종한 것은 로마 제국에 큰 기쁨을 주었다. 콘스탄티누스는 태양 숭배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저명한 역사가인 에드워드 기번은 "태양은 콘스탄티누스의 불굴의 인도자이자 보호자로 널리 찬양을 받았다"(Edward Gibbon, 로마 제국 쇠망사, 12)고 기록했다. 서기 321년 콘스탄티누스는 최초의 "일요일법령"을 제정하였다. 이 칙령은 “존엄한 태양의 날에 행정관들과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쉬게 하고 모든 작업장을 닫게 하라”고 반포했다. 이 법은 황제의 신민들에게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지 않았지만, 로마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요일 준수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황제와 교황은 계속해서 국가 법령과 교회 평의회를 통해 일요일을 유일한 예배일로 제정했으며 그런 결과로 오늘날에도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일요일을 예배일로 지키고 있다. 이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믿거나 실천한다고 해서 그것이 옳은 것은 아니라는 엄중한 진리를 보여주는 강력한 예이다.

 

<교훈> 고대 바벨론이 태양 숭배의 중심이었던 것처럼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바벨론도 하나님의 교회 안으로 태양의 날 숭배와 그 관련된 것들을 들여왔다. 

 

<묵상> 오늘날 기독교 교회에서 일요일 예배가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적용> 사탄의 속임수가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 위 사실을 통해 알게 됩니다. 이런 일들 가운데서 그대는 어떤 안전장치를 가지고 있습니까?

*답: 오늘날 성경대로 신앙생활하지 않는 기독교 교회는 다 일요일을 예배일로 지킨다. 이것의 안전장치는 제칠일 안식일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다. 

 

<부가설명>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문화사상이다. 우리가 조선시대 살았다면 유교 사상으로 젖지 않았겠는가? 신라나 고려시대 살았다면 불교사상으로 물들었을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사회 환경과 풍속을 벗어나는 것이 결단코 쉽지 않다. 여기에 호응하지 않으면 왕따가 된다. 사회생활에서 왕따 당하면 생활현장에서 매장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옛 이스라엘이 여러 신들 숭배에 자주 빠지게 된 것은 그들보다 강하고 수가 많은 국민의 나라들이 우상을 숭배했으므로 국제 환경에 적응하는 삶의 방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솔로몬은 무역을 많이 했기에 그 대상국들과 무역을 잘하려고 그들의 신들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일요일 예배가 기독교의 예배 문화가 되어서 종교개혁 하기까지 1200년 이상 계속되었다. 그래서 종교개혁을 했어도 1200년 이상 주장해온 오류가 합리화된 교리로 자리잡았기에 개혁자도 그 사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때가 이르렀을 때 남은 자손을 일으키시고 예배일 개혁을 하도록 성령께서 주장하셨다. 역사적으로 예배일을 변경할 것이라고 단7:25에 예언했고 또 계시록에 하나님의 인을 받는 일이 있을 것도 예언했는데, 이런 모든 상황을 처음부터 보신(사46:10) 하나님은 제4계명에 ‘기억하라’는 말을 맨먼저 기록하여 기억을 강조하셨다.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물론 안식일이다. 어떤 안식일인가?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출20:10)이라고 하여 제칠일 안식일을 기억하라고 명하신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재림성도들은 기억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그것은 제칠일 안식일이다. 아무날이나 일주일에 하루를 예배일로 하여 그날을 기억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제7일 안식일을 기억해서 구별하고 그렇게 명령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해야 한다.

 

5월 31일(수) 충성하도록 부르심

 

요한계시록 14장에 있는 둘째 천사의 기별은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이다. 요한계시록 17장에서 영적 바벨론으로 신원이 밝혀진 여인은 자주색과 붉은색 옷을 입고 붉은 짐승을 타고 포도주 잔을 돌려 세상을 오류로 취하게 한다. 교회와 국가가 연합하고, 오류가 창궐하며, 마귀는 속이기 위해 기적을 행한다. 세계는 최후의 쟁투에 돌입한다. 

그때, 하나님의 백성은 비방과 조롱과 압제와 박해를 받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과의 약속에 굳게 선다. 음부의 모든 권세와 악의 세력도 그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꺾을 수 없다. 그들은 그분 안에서 안전하다. 그분은 그들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시 46:1)이시다.

하나님은 마지막 시대의 백성을 다시 당신의 말씀에 충성하도록 부르신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인간의 의견이나 전통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는 지구 역사의 이 중대한 시기에 우리를 인도하는 북극성이다.

침례교회 표준요람의 저자인 에드워드 히스콕스(Edward T. Hiscox) 박사는 1893년에 수백 명의 침례교 목사들에게 일요일이 기독교 교회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강의하면서 다음과 같은 주목할만한 설명을 남겼다. 

“[일요일이] 이교주의의 표로 낙인되고 태양신의 이름으로 지명된 후 교황의 배도에 의해 채택되어 개신교회의 신성한 유산으로 전수된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1893. 11. 13, 뉴욕 목회자 협의회)

 

에스겔 20:1-20을 읽어보라. 여기에서 에스겔이 전하는 기별의 요점은 무엇이며, 안식일은 충실하라는 이 부르심에 어떻게 부합하는가?

[겔20:1~20] 12절 ‘또 내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고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노라’ 20절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리라 하였노라’ (다른 구절들은 찾아서 직접 읽어보기 바란다).

*답: 여호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여호와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생활이다. 

 

 에스겔 20장은 이스라엘이 이교의 관습을 버리고 거짓 신들(본문에서는 "이집트의 우상들") 대신에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간절한 호소이다. 세 천사의 기별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벨론이 무너졌”기 때문에 “창조주를 경배하라”고 비슷한 호소를 하신다. 다시 말하지만, 안식일과 그에 대한 충실함은 마지막 사건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교훈> 하나님의 백성들은 압제와 박해 가운데서도 오류로 변질케 하는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지 말고 하나님의 진리에 충성하도록 부름 받았다. 

 

<묵상> 에스겔 20장 1~20절에 기록된 내용에서 그대 개인을 위한 어떤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고전 10:11)

*답: 성경의 하나님 창조주 여호와를 올바르게 섬기고 경배하는 표는 제7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현상이나 종교 현상이 어떻든지 온지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표를 기억하여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부가설명> 루시퍼는 자기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경배받으려는 야망을 위하여 지구로 쫓겨난 후에 아담을 속여서 지구 통치권을 빼앗고 영혼 불멸론과 우상숭배 종교를 많이 만들어 창조주를 대적한다. 그는 자기 왕국이 된 이 지구에서 아담에게 주신 하나님의 생명을 비생명(非生命), 곧 사망이 되게 하고 창조를 비창조(非創造)가 되게 했다. 지구는 흑암의 세상이 되고 어두움의 구덩이가 되었다(엡6:12, 벧후2:4). 그것이 탈타로스(지옥)다(벧후2:4). 이 지구는 사탄에게 넘어가면서 흑암의 지옥(탈타로스)이 되었다. 세상 자체가 이렇게 되었으므로 사람이 스스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계시를 주시고 그것을 기록하게 하여 사람들이 읽고 깨닫기를 원하셨다. 그렇게 성경말씀이 우리 손에 들어왔고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기록한 말씀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말씀이 가르치는 대로 신앙생활 해야 한다. 교회가 말씀 밖으로 나간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제7일 안식일을 제1일 일요일로 바꾸고 그날을 주일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상숭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가 아니다. 사람이 만든 우상이다. 

 

6월 1일(목) 순종을 위한 은혜

 

붉은색과 자주색 옷을 입은 여자가 붉은 짐승을 타고 포도주 잔을 권했고 세상은 바벨론의 거짓 교리에 취했다. “바벨론의 포도주”에 대해 엘렌 G. 화잇은 이렇게 분명히 말한다. “그 포도주는 과연 무엇인가? 그녀의 거짓 교리이다. 그녀는 넷째 계명인 안식일 대신에 거짓 안식일을 세상에 주었고, 사탄이 처음 에덴에서 하와에게 말한 자연적인 영혼불멸을 반복해서 이야기 했다”(나팔이 분명한 소리를 내게 하라, 리뷰 앤드 헤럴드, 1892. 12. 6,)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은 수백만 명을 속여왔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오류에 빠져 있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최후의 호소를 하고 계신다.

 

계시록 18:4, 5을 읽어 보라. 여전히 배도한 종교 조직에 속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호소는 무엇인가?

[계18:4,5]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5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답: 바벨론에서 나오와서 그들이 받을 재앙을 면하라는 것이다.

 

반복해서 말하건대 하나님의 백성 중 많은 이들이 성경적 가르침을 타협한 종교 단체에 속해 있다. 그들은 성경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에 찬 호소는 분명하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 

 

요한일서 3:4을 읽고 로마서 14:23과 비교해 보라. 성경은 죄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이 성경절들은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요일3: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롬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답: 죄는 불법이다. 예수님을 믿을 때 그 믿음은 하나님의 법으로 살게 한다.

 

죄는 하나님의 법을 고의로 어기거나 망가뜨리는 것이다. 누구든지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이다. 우리는 연약하고 나약하고 흔들리고 죄 많은 인간이다.

믿음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 그분의 은혜는 우리의 과거를 속죄하고 우리의 현재에 능력을 주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순종케 하신다(롬 1:5).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교회에 속해 있는 그분의 백성들에게 하늘이 호소하는 것은 거기에서 믿음으로 나오라는 것이다. 안식일을 준수하는 재림교인들에게 호소하시는 것은 모든 자기중심적이고, 인간적인 시도를 버리고 죄의 정죄와 속박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믿음으로 경건한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러면 계명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실함(신 4:6)이 세상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되었을 것처럼, 우리의 신실함도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으며 인류가 바벨론에서 나오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교훈> 요한계시록은 바벨론의 죄에 참여하지 말 것을 호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여 그것을 믿는 믿음으로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그대를 부르고 있다. 

 

<부가설명> 사람들은 창조주의 창조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들의 존재가 있는 한 창조주를 몸과 의식에 모시고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자녀들은 그 존재와 생명으로 부모님을 자신 안에 모시고 있다. 부모님이 없었으면 자녀가 없다. 그들이 부모를 부인해도 그들 존재가 부모님의 존재를 증명한다. 모든 사람은 부모님의 존재 증명서이다. 그들의 언어, 사고방식, 생활 모습 등을 보면 부모님을 아는 사람들이 그들이 누구 자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부모님을 닮은 모습을 생활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면 창조주 하나님의 정신을 생활하게 된다. 그것은 그들이 누구로부터 존재와 생명을 받았는지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 삶으로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드러낸다. 그의 사고방식과 생활 방식은 그의 소속을 드러낸다. 가인은 악한 자에게 속해 있었기 때문에 악한 자의 일을 했다. 우리가 제칠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를 비창조(非創造)가 되게 한 존재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고 호소하신다. 

 

6월 2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요한계시록의 '큰 바벨론'은 특별한 의미로 종말에 존재하는 배교한 종교들의 연합체를 가리킨다... '큰 바벨론'은 영감이 삼중의 큰 종교적 연합체인 교황권, 배교한 개신교, 그리고 강신술을 언급하는 이름이다... '바벨론'이라는 말은 구성원들이 그렇다는 것보다는 조직 그 자체와 지도자들이 그렇다고 언급한다. 그 구성원들은 '많은 물'(계 17:1, 15)과 ”땅에 거하는 자들“(계 17:2)로 언급 되었다(SDA 성경주석, 14권, 600).

“사단은 두 큰 오류, 영혼 불멸설과 일요일 신성설을 통하여 사람들을 그의 기만 아래 들어오게 할 것이다. 영혼불멸설은 강신술의 기초가 되고 일요일 신성설은 로마교회에 대해 공감하게 한다”(각 시대의 대쟁투, 588).

구약시대에서 죽은 자의 영혼은 바벨론 종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바벨론 사람들은 영혼 불멸을 굳게 믿었다. 그들은 죽으면 영혼이 영혼의 세계에 들어간다고 믿었다. 영혼 불멸의 개념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조화되지 않는 것이다. “유대인 백과사전”은 영혼 불멸에 대한 그릇된 생각의 기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몸이 사라진 후에도 영혼이 계속해서 존재한다는 믿음은… 성경 어디에서도 명시적으로 가르치지 않았다… 영혼 불멸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 사상과의 접촉을 통해 유대인들에게 전해졌는데, 주로 바벨론과 이집트의 견해가 이상하게 혼합된 오르페우스와 엘레우시스의 신비주의를 따라 그것의 주요 주창자가 된 플라톤의 철학을 통해 전해졌다”(Kaufmann Kohler, "영혼의 불멸성", 1906).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죽음에 대한 진실을 이해하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그것은 우리를 무엇으로부터 보호하는가? 그것이 큰 위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 강신술에서 보호받고 부활의 소망으로 위로받는다.

2. 마귀의 속임수 중 일부는 명백하지만 다른 일부는 더욱 교묘하다. 어떻게 하면 이 두 가지 속임수에 속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답: 기록된 말씀 안에 충실하는 것이다. 

3. 일요일 교과에서 살펴본 것처럼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다고 믿으면서 악을 행하는 사람들에 대해 토의해 보라.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의 율법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답: 사람의 해석을 따라 신앙하면 그렇게 된다. 기록된 말씀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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