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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퀴즈로 푸는 즐거운 교과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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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은혜로사는이 작성일10-01-06 23:30 조회4,4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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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글은 교사의 입장에서 반생들에게 직접 적용할 수 있도록 꾸민 것입니다. 지난 번 민수기는 역사적 사실이라 출제하기가 비교적 쉬웠으나 금번 기는 조금 힘들게 출제하고 있습니다. 기도많이 해주시고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답글을 달아주세요. 문항수가 많으니 교사분들께서 본 원고를 참조하실 때는 핵심적인 몇 문제만 내시기 바랍니다. 원고 길이상 2회에 걸쳐 싣습니다.


제2과 성령의 열매인 사랑
1월 9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31분)

기억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연구범위: 신 6:5, 마 5:43~48, 7:12, 22:39, 눅 10:25~37, 고전 13:4~7.

일요일(1월 3일) 사랑의 여러 측면들(신 6:5)

1. (토의)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심을 피부에 절감하고 계십니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더 실제적으로 느낄 수 있을까요?
(사례1) 아들이나 딸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유추
필자의 아들은 작년에 군대를 입대하여 가끔 외박을 나온다. 빡빡 깎은 머리에 집에서 잠을 자고 다시 부대로 향하는 그 모습이 안스럽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안쓰럽게 느끼실것이다.
(시103:13)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사례2) 약 10년전에 필자는 기러기 아빠를 2년 동안 한 적이 있었다.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외국에 가 있었고 나는 한국에 살면서 학비를 부쳤다. 혼자 있는 시간동안 당연히 가족들이 많이 그리웠고 특별히 막내딸이 무척 그리웠다. 막내딸은 필자가 집에 10번을 들어가면 10번 반갑게 달려와서 품에 안기는 그런 귀여운 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길을 걷다보니 앞에 걸어가는 한 여자아이의 뒷 모습이 필자의 딸과 너무나 흡사한 것이었다. 갈래머리를 땋은 것도 그렇고 키도 비슷하고 머리의 두상도 무척이나 같았다. “아니 우리 딸이 왜 여기있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래서 서둘러서 그 여자 아이의 앞을 지나쳐 얼굴을 보니, 나의 딸이 아니었다. 말도 안되는 그런 기대를 한 후 얼마나 우리 딸이 더 보고 싶은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나님도 우리를 보고 싶으실 것이다.
(눅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 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 사랑은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변한다.
(답) X
(해설) 아내가 큰 아들에게 보여주는 사랑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줄 느낄 수 있다. 아내는 처녀 시절에 여드름이 좀 있었는데, 현재 우리 아들도 여드름으로 조금 고생하고 있다. 아내는 그것조차도 ‘나 때문에 아들이 고생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갖고 가슴 아파하며 자기의 첫 태생인 아들을 불쌍히 여긴다. 아무리 자기가 피곤해도 아침 일찍 일어나 아들을 위해 장을 봐 오고 밥을 짓는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음성과 톤으로 아들을 대한다. 아들이 아무리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한다할지라도 아내의 그 마음은 변하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사랑은 충동적이고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원칙이며, 영원한 능력이다. 우리의 영혼은 결코 다함이 없는 샘물 같은 사랑 곧 그리스도의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순결한 사랑의 시냇물을 먹고 자란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5권, 1140)

3. 다음 사랑에 대한 빈칸을 채워 봅시다.

“십계명의 처음 네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______을 사랑하라’ 한 큰 계명으로 요약된다. 나머지 여섯 계명은 ‘네 ____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다른 계명 가운데 포함된다.
(답) 하나님, 이웃
(해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2:37~39, 참조 신 6:5)

4. 10계명 중 하나님을 사랑하는 네 계명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답) 1. 너는 나 이외에 다른 신들을 내 앞에 두지 말지니라 (출20:3)
2. 너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출20:4)
3.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출20:7)
4.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출20:8)

5. 십계명의 나머지 이웃을 사랑하는 여섯 계명은 무엇이 있을까요?
(답) 1. 네 부모를 공경하라 (12절)
2. 살인하지 말지니라 (13절
3. 간음하지 말지니라 (14절)
4.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15절)
5.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16절)
6.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17절)

6. 하나님을 무척이나 사랑하는데, 혹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답) X
(해설1) “십계명의 처음 네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한 큰 계명으로 요약된다. 나머지 여섯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다른 계명 가운데 포함된다. 이 두 계명이 다 사랑의 원칙의 표현이다. 둘째 계명을 범하면서 첫째 계명을 지킬 수 없으며, 첫째 부분을 범하면서 둘째 부분을 지킬 수 없다. 하나님께서 마음의 보좌에 바른 자리를 차지하고 계실 때에 우리 이웃에게도 바른 자리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처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할 때만 우리 이웃을 공평하게 사랑할 수 있다. 모든 계명이 사람과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요약되어 있으므로 한 계명을 범하면 이 원칙을 범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율법은 어떤 것은 크게 중요하고 다른 어떤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무시할지라도 벌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어떤 분리된 계율이 아니라고 예수께서는 청중들에게 가르치셨다. 우리 주님은 처음 네 계명이나 나머지 여섯 계명을 다 거룩하고 완전한 것으로 나타내시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그분의 모든 계명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가르치신다“ (시대의 소망 607)
(해설2)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온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의미이다. 이 “둘째 되는 계명”에 언급된 사랑도 “첫째 되는 계명”의 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것은 뜻과 의도가 내포된 행동하는 사랑이다. 우리의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은 자신의 몸을 돌보듯 다른 사람을 보살피라는 의미이다.“ (우리교재 일요일 소지 p.24 하단)

7. 하나님은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보다 그분께 드리는 제사와 번제에 더 관심이 있으시다.
(답) X
(해설)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과의 교제를 통해 우리가 그분을 더 잘 알기를 바라신다. 그 분과의 교제를 통해 우리가 그를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신다.
(호6:6) “나는 인애(사랑)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교제)을 원하노라”
(마22:37-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니”

8. 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의 의미는 뇌의 모든 기능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라는 말이다.
(답) O
(해설1) “마태는 셋만 기록하였는데, 마가는 네 가지 사실을 기록하였다. 마음, 목숨, 뜻, 힘이 그것이다. 두뇌 과학을 하는 사람의 말을 빌리면 마음은 감성뇌의 작용인데, 곧 뇌의 중앙 부분의 기능이라고 한다. 목숨은 호흡과 관련되어 있는데, 그것은 간뇌의 기능이고, 힘은 소뇌의 기능이며 뜻은 뇌 전두엽의 기능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뇌의 모든 기능을 다 사용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생명 작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생명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에 사랑일 수밖에 없다.” <김명호목사님>
(해설2) “유대인들은 온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막 12:30에는 “힘을 다해”가 추가됨)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되는 계명임을 알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여기서 인간 존재의 네 가지 측면을 지적하신 것이다. 그분께서는 “너의 전 존재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교재 일요일 소지 중간부분 p.24)
(해설3) “신 6:5에서 사랑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아하브타는 고상하고 순결하며 희생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대개 인자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헤세드는 일방적인 사랑, 즉 조건 없는 사랑을 의미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도 그런 정신으로 그분을 섬기며,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교사자료에서)

월요일(1월 4일) “사랑은 … 하며”(고전 13:4~8)
(7가지 긍정적 표현)

1. (도입퀴즈) 고린도전서 13장 4절에서 8절까지 나오는 사랑의 조건은 몇가지 일까요?
(유치한 퀴즈 같지만 이러한 숫자에 관련된 퀴즈는 반생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습니다.)
(1) 8가지 (2) 10가지 (3) 12가지 (4) 15가지 (5) 17가지
(답) (4) 15가지
(해설) 다음 번호에 맞춰 세어봅시다.
“사랑은 (1)오래 참고 사랑은 (2)온유하며 (3)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4)자랑하지 아니하며 (5)교만하지 아니하며 (6)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7)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8)성내지 아니하며 (9)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10)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11)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12)모든 것을 참으며 (13)모든 것을 믿으며 (14)모든 것을 바라며 (15)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2. 고전13:4-8의 본문 중 긍정적인 표현(..하고)과 부정적인 표현 (..하지 않고)은 몇 가지 씩이 있는지 한번 세어봅시다.
(긍정적 표현) 오래참고, 온유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 (7가지)
→ 월요일 소지에 공부
(부정적 표현)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8가지)
→ 화요일 소지에 공부
(해설) “4-7절에서 바울은 사랑을 분석하는데 착수한다. 그는 탁월한 사랑의 특성 일곱 가지와 사랑의 본질과는 전혀 거리가 먼 행동과 태도 여덟 가지를 지적한다. 이 칭송에서 그는 적극적인 의미와 소극적인 의미 모두를 통해 사랑의 우수한 특성을 설명한다.” (본교성경주석 12권 298)

3. 우리가 하늘에 올라가면 진정한 사랑에 물든 모든 이들의 착함과 친절함을 맛볼 터인데 이 지상에서 이것들을 미리 실천함이 크리스쳔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답) O
(해설) “사랑의 활동은 하늘로부터 온 것이므로 기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분노를 쉬게”(잠 15:1) 하는 유순한 대답, “오래 참고 … 온유”(고전 13:4)하고, “허다한 죄를 덮”(벧전 4:8)는 사랑, 이런 교훈들을 배울 때에, 과연 우리 생애에는 얼마나 큰 치료의 능력이 선물로 주어지게 될 것인가!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바뀌어지고, 지상에 서린 하늘 분위기를 얼마나 미리 맛보게 될 것인가!“ (교육114; 가정195)

<사랑은 오래참고 (고전13:4)>
3. 오래 참으심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표적인 속성으로서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홍수 때에도 죄인들에게 대해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셨고 이들이 한 사람도 제외 되지 않고 다 돌아오기를 바라신다.
(답) O
(해설1) 다음 성경절을 참조
(벧후3:9)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1: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벧전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해설2) “오래참음은 성급함과 격렬한 표현과 생각 및 과민성과 반대된다. 이 단어는 압제받고 억울하게 고소당하며 핍박받을 때 조용히 견디고 오래 참을 수 있게 해 주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본교성경주석 12권 299)

4. (토의) 주위에 자식에 대해 오래 참음으로 그 후손이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되는 예가 있습니까? 여러분은 자녀들에 대해 얼마나 오래 참을 수 있습니까? 사실 자식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하늘 아버지는 윗 성경절에서 우리를 향해 아주 오랫동안 참으시는 분으로성경은 묘사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 대해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해봅시다.
(사례1) 나와 같은 죄인이 교회에 그냥 다닐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오래참으심의 결과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는 벌써 멸망해서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사례2) 인류역사가 6,000년이라고 하는데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옛날에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악했으면 악했지 덜 악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직전에 아브라함이 중보가 있었듯이 예수님의 중보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이 세상이 아직도 멸망받지 않고 있다.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고전13:4)>
3. (도입문제) 산상보훈에서 예수님은 온유한 자는 어떤 유익이 있을 것이라고 했나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________________ 것임이요
(1) 배부를
(2) 긍휼히 여김을 받을
(3) 땅을 기업으로 받을
(4) 하나님을 볼
(5)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답) (3) 땅을 기업으로 받을
(해설)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우리의 첫 조상이 아름다운 이 지상 곧 그들의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권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자아를 높이고자 한 욕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린 것을 속량하는 것은 자기 희생을 통해서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그러신 것처럼 우리도 승리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요한계시록 3장 21절).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시편 37편 11절)게 될 때, 우리는 겸손과 극기를 통하여 그분의 후사가 될 수 있다.“ (산상보훈 16)

4. ‘온유’하면 떠 오르는 성경상의 인물은 누구입니까?
(사례) ‘모세’이다.
(해설) 모세가 얼마나 온유했든지 민12:3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과 그 형인 아론이 모세의 아내인 십보라에 대해 불만을 표할 때도 모세는 이 문제를 온유하게 대했다.

5. 온유는 사려깊은 동정심으로 늘 노력하는 자비로운 본성이다.
(답) O
(해설1) “온유는....하나님의 영으로 움직이는 자,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감지하고 말고 행동으로 사려 깊은 동정심을 나타내고자 늘 노력하고 있는 자의 자비로운 본성을 묘사한다....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자는 그에게 친절하고 너그럽고 부드럽고 예모 있게 대하고 싶어하는데, 이는 상대방의 감정에 상처내기를 원치 않고 상대의 행복을 증진시켜 주고자 애쓰기 때문이다.” (본교성경주석 12권 299)
(해설2) “가정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온유는 집안 식구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다툼을 방지해 주며, 화를 내며 대답하지 않게 해줄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흥분을 진정시켜 주며, 그 매력을 감지할 수 있는 반경에 거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온유는 그것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세상의 가정들을 하늘에 있는 큰 가정의 한 부분이 되게 해준다.” (산상보훈 16)

6. 가끔씩 싸울 때 싸우는 것이 정신건강에 오히려 좋다.
(답) X
(해설) 싸움도 하게 되면 싸움이 늘게 되고 이것은 본인의 정신세계를 부정적으로 만드는데 원인이 되며 그만큼 정신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 한번 싸운 사람은 언제 어디서 또 싸울지 모르는 법이다. 시작을 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딤후2:24에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또 딤후2:25에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라고 하였다. 이 온유라는 말은 ‘유용한, 은혜로운, 친절한’ 등의 의미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을 함에 있어서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갖고 도저히 온유할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친절하고 은혜롭고 유용하게 대하고 도우라는 의미이다.

7. 온유한 마음보다 복수의 정신을 품는 것은 훨씬 더 큰 불행이 초래될 뿐이다.
(답) O
(해설1) “원수진 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보다는 무고(誣告)를 견디는 쪽이 훨씬 낫다. 증오와 복수의 정신은 원래 사단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정신을 품는 자에게는 불행이 초래될 뿐이다. 마음의 겸비, 곧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얻는 온유는 진정한 축복의 비결이다.” (전게서 16)
(해설2) “온순한 방법과 부드러운 대답과 유쾌한 말들이 엄격함과 가혹함보다는 개혁하고 구원하는 데 더 적합하다. 너무 많은 불친절은 사람들을 그대가 다다를 수 없는 곳에 두게 하는 한편, 달래는 정신은 그들을 그대에게 묶어 두는 방책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그대는 그들을 바른 길에 세우게 될 것이다. 그대는 또한 용서하는 정신으로 움직여야 할 것이며, 그대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선한 목적과 행위에 대해 합당한 신뢰를 주어야 할 것이다. ” (교회증언4 65)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13:6)>
8. 올바른 사랑은 때론 그 사랑하는 자가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기쁨을 누린다 할지라도 그가 기뻐하면 같이 기뻐하게 되어있다.
(답) X
(해설) “여기서 ‘진리’는 ‘불의’와 대비를 이루어 선행과 의와 미덕을 의미한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죄악이 아니라 선행에서 기쁨을 발견한다. 사랑은 진리의 발전과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기에 진리의 대의가 유지될 때면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한다. (참조 막9:35~40;빌1:14~18)” (본교성경주석 12권 301)

<모든 것을 참으며 (13:7)>

9.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의 과거의 비리를 일단 드러내어 다 정산한 다음에 새로운 관계를 가지고 싶어 하게 되는 것이다.
(답) X
(해설) “(모든 것을) 참으며란 뜻은 헬라어로 스테고(stego)로서 ‘철저하게 덮다’, ‘덮개로 보호하다’, ‘유지하다’, ‘지탱하다’란 뜻. 사랑은 다른 사람의 결점을 비밀로 하고 침묵하지만 본성적인 이기심은 이를 즐겨 폭로하려고 한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약점을 조사하기를 바라지 않거나 다른 사람이 누군가에게 조사받도록 허용하지도 않는다.” (본교성경주석 12권 301)
(벧전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하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모든 것을 믿으며(13:7)>
10. (토의)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녀가 오늘 학교를 안 간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자녀에 대해 어떤 생각 혹은 기대를 하십니까?
(사례1) 그럴 아이가 아닌데 틀림없이 무슨 일이 생겼다고 그 자녀를 끝까지 신뢰한다.
(사례2) 설사 어떤 유혹 때문에 학교를 안 갔다 할지라도 충분히 잘 설명하고 설득하고환경을 바꿔주면 우리 아이는 다시는 그렇게 할 아이가 아니다.
(사례3) 나는 매질을 해서라도 그의 마음을 바꾼다. 처음에는 누구나 그런 유혹에 빠질 수 있지만 그가 정신차리고 철이 들게 되면 우리 아이는 제대로 갈 것을 믿는다.
(결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은 끝까지 기대를 끊지 아니한다. 이것이 사랑의 한 단면이다. 우리 하늘 아버지도 우리에 대한 기대를 끊지 않고 계심에 감사하자.


11. 모든 것을 믿는다는 것은 상대방을 사랑하게 되면 그렇지 않은 것을 진리로 믿고자 한다는 뜻이다.
(답) X
(해설1)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좋지 못한 일에 관련되어 있다는 소문이 들었을 때 그를 사랑하는 사람 (부모나 애인)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가 그 악한 일을 행한 것이 사실이라고 했을 때도 아마 소문대로 그렇게 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끝까지 믿음의 끈을 놓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사실임이 밝혀졌을 때에도 분명히 어떤 불가피한 상황이 있어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 사람이 그렇게 악하지 않음에 대한 기대를 끝까지 버리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들이 그를 몹쓸 사람으로 정죄한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은 그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구원에 품에 다시 안길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해설2) “이 구절은 동료 인간을 사랑하는 자가 불합리한 수준에 이를 정도로 경솔하게 믿어버리고 믿어야 할 것들 사이에 구분을 하지 않으므로 거짓을 진리로 믿을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사랑은 다른 사람의 해위를 가능한 가장 좋게 해석하여 그들에게 좋은 동기를 불어넣어 주고 싶어 한다. 이것이야말로 사랑의 태도인데 이는 사랑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자 애쓰고 반박할 수 없는 증거에 근거한 것 외에는 다른 사람에게 손해가 되는 것은 어떤 것도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교성경주석 12권 302)

<모든 것을 바라며 (13:7)>
12. 우리가 사랑하면, 상황이 아무리 암담할지라도 모든 일이 결국 잘 풀릴 것이라고 바라게 된다.
(답) O
(해설) “상황이 아무리 암담해도 다른 사람의 신실함을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을지라도 사랑은 모든 일이 결국 잘 풀릴 것이라고 여전히 바라며, 확실했던 모든 간틍성이 사라지더라도 이 입장을 견지할 것이다. 사랑이 고취시키는 이웃에 대한 믿음은 반대에 직면하더라도 자기의 주장을 옹호해주도록 해준다.” (본교성경주석 12권 302)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13:7)>
13.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곤란한 시련과 핍박이 올지라도 이를 조용히 견디게 된다.
(답) O
(해설) “사랑은 사람이 가하는 모든 곤란과 시련과 핍박과 손상은 물론, 하나님이 허락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신 원수의 모든 공격도 조용히 견딘다. (참조 욥13:15). 사랑에 관한 이 진술에는 언제나 사랑의 지배를 받는 사람에게 있는 무한한 인내가 드러난다.” (본교성경주석 12권 302)


화요일(1월 5일) “사랑은 … 아니하며”(고전 13:4~8)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13:4)>
1. 성경상에서 투기함으로서 그 특권을 상실한 자는 누구일까요? (단답형)
(답) 사탄 (루시퍼)
(설명) “투기나 질투는 인간의 모든 결점 중에서 가장 잔인하고 비열한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 곁에서 덮는 구룹에 속하는 특권을 누린 고상한 천사 루시퍼는 투기에 넘어가서 높은 지위를 상실했다.” (본교성경주석 12권 299)
(사14:12~15)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2. 남이 가지고 있는 특권을 시기하는 것(=투기)은 교회로 하여금 분열을 일으킨다.
(답) O
(해설1)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우리 속담처럼 투기는 상대방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으로 ‘배가 아픈 것, 속이 끓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남 잘되는 것이 배가 아픈 악한 마음이다. 이런 마음 상태는 주님께서 미워하신다. 교회에서 귀한 직분과 은사 주었는데 시기 질투 때문에 남 잘되는 것 싫어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 된다. 예수님은 섬기려 이 세상에 오셨다. 따라서 우리도 남을 섬겨야 한다. 남이 잘 되는 것을 기뻐하여야 한다.
(막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해설2) “헬라어 젤로우(zeloo). 좋은 혹은 나쁜 의미로 ‘질투하다’이지만, 여기서는 나쁜 의미로 ‘투기하다’, 즉 ‘다른 사람이 소유한 특권 때문에 그에 대해 좋지 않은 혹은 불쾌한 감정을 드러낸다’라는 뜻이다. 그런 감정 때문에 예수의 교훈과 정반대되는 분란과 분열이 일어나는데 이는 그 분이 사람들에게 서로 사랑하고 연합해서 함께 살라고 권면하셨기 때문이다.” (본교성경주석 12권 299)
(요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일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3. (토의) 교회에서도 종종 일어납니다만, 수석장로나 수석집사 등 어떤 교회 직분에 대한 투기 때문에 교회가 분파가 되어 미움이 존재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사례1) 우리 재림교회들은 이런 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이 든다.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 예수님의 교훈을 실천하고 있는 교회에 이러한 미워하는 감정이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교회는 절대 발전하지 못한다. 반대로 사랑이 넘치는 교회는 반드시 발전한다. 목회자를 중심으로 장로들이 솔선수범하여 교회를 봉사하고 사랑의 분위기로 이끌어 가야만 교회가 성장한다. 새벽기도만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 불신앙의 쓴 뿌리가 없는지를 항상 살펴보아야 한다.
(히12:15)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자랑하지 아니하며 (13:4)>

4. 교회는 하나의 가족이니까 좋은 일이 있으면 조금 과장이 있더라도 좀 자랑하는 것도 괜찮다.
(답) X
(해설1) 여기 자랑한다는 것은 자만하고 허세를 부리며 실재보다 부풀리는 것을 의미한다. 귀한 직분과 은사를 받을수록 자기를 대단한 사람으로 착각하고 허세 부리면 안된다. 사람은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지 아무 것도 아님을 명심하여야 한다. 아울러 자랑할 때 남이 낙심하고 시험 들거나 남에게 시기를 유발하기 때문에 조심하여야 하고, 자랑하면서 아무래도 과장이 들어가게 마련이니 이는 거짓말이나 마찬가지다. 예수님만 자랑하도록 하자.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달리신 것 외에는 말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고전2:3-5)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해설2) “헬라어 페르페류오마이(perpereuomai), ‘허영심이 강하다’, ‘스스로 뽐내다’” 사랑은 자기의 자랑을 말하지 않고 겸손하며, 자아를 높이고자 하지 않는다. 마음 속에 진정한 사랑이 있는 자는 예수의 생애와 죽음을 기억하고 자기 칭송에 이르게 할 모든 생각과 암시를 즉시 물리친다. 성령의 은사인 사랑은 각양 선한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그분에게 받는 것이라고 여기기에, 하나님이 주신 어떤 은사를 소유했다는 이유로 헛된 자랑을 할 근거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본교성경주석 12권 299)

<교만하지 아니하며 (13:4)>

5. 자랑과 교만의 차이점은 교만은 자기를 높인다는 점에서 다르다.
(답) O
(해설1) “헬라어 퓌시오오(phusioo). '부풀어 오르다‘, ’공기가 꽉 차다‘, ’부풀리다‘라는 뜻이며 은유적으로는 ’자랑하다‘. 퓌시오오는 ’풀무‘라는 뜻의 퓌사(phusa)에서 파생했다. 사랑은 사람을 허영심으로 부풀리지 않으며, 자만과 자기 칭송하는 상태를 초래하지 않는다. 이 표현은 자주 우월한 지식과 재능을 가진 자들의 특징을 이루는 자만(自慢)과 자부(自負)라는 주관적인 상태를 가르킨다. 사랑은 가장 좋은 은사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방식으로 허영심을 부추기면서 정신적 자만에 빠지지 않는다. 사랑은 자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거나 자기의 성취한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아첨을 구하지도 않는다. (참고 교회증언5 124)” (본교성경주석 12권 299)
(해설2) “교만은 자랑과 비슷한 점이 있다. 그러나 자랑이 겉으로 떠벌리는 것이라면 교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를 높이는 것이다. 아무리 공로를 세웠어도 내 공로가 아니니 겸손해야 한다. 어떤 할머니는 천문학적인 자기 재산을 바치고 그 교인들이 자기를 지나치게 떠받들까 봐서 교회를 옮기고 아무도 모르게 조그만 교회를 다닌다는 간증을 그 교회 목사님에게 들었다. 하나님의 일은 이렇게 겸손하고 깨끗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시험 들게 된다. 우리는 수십 년이 지나도 어떤 자리에 있든지 어떤 일을 했든지 한결 같이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나는 무익한 종이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사역에 임해야 한다. 그래야 실족하지 않는다. 이 자세가 갖추어지지 않고서 주의 일한다고 하다가 얼마나 큰 시험에 드는가? 자기 자랑을 방치하면 교만으로 발전하게 되고 교만을 방치하면 무례히 행함으로 연결된다.” (한 인터넷 글에서)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6.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예의바르게 행동하여야 하나 가끔 본성의 충동이 나오는 것은 막을 도리가 없다.
(답) X
(해설1) “무례라는 말은 헬라어 아스케모네오(ascheoneo)이며, ‘부당한 행동을 하다’, ‘수치스럽게 행동하다”란 뜻이다. 70인역에서는 ’벌거벗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참조 겔16:7,22) 사랑은 결코 난폭하거나 무례하거나 버릇없이 행동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감수성을 상하게 하는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지상에 거할 때 사람들의 감정을 언제나 염두에 두셨고, 모든 사람을 향해 늘 예의와 예절을 갖춰 행동하셨다. 진실로 주를 따르는 모든 자들은 언제나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무례함과 난폭함에 보복하고자 본성의 충동대로 해서는 안될 것이다.“ (본교성경주석 12권 300)
(해설2) “그리스도교는 사람으로 신사가 되게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핍박하는 자들에게까지도 예의를 나타내셨다. 참으로 주를 따르는 자들은 그와 같은 정신을 드러낼 것이다. 여러 높은 관리들 앞에 끌려 나갔던 때의 바울을 보라. 그가 아그립바 왕 앞에서 행한 연설은 대적을 설득시킬 수 있었던 좋은 웅변인 동시에 참된 예의를 보여 준 한 실례이다. 복음은 세상에서 널리 행하여지고 있는 형식적인 예의를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의 참 사랑에서 우러나는 예의를 장려한다.” (복음교역자 123)
(롬16:2)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7. 외양적 예절을 잘 지키다보면 모든 불평과 합당치 않은 말을 억제할 수 있다.
(답) X
(해설) “아무리 외양적 예절을 잘 지킬지라도, 그것만으로는 모든 불평과 비평과 합당치 않은 말을 억제할 수가 없다. 자기를 최고의 목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한, 참된 예의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사랑은 마음 속에 있어야 한다. 철저한 그리스도인은 주님께 대한 마음 속 깊은 사랑에서부터 모든 행동을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애정의 깊은 뿌리로부터 동포에 대한 이기심 없는 관심이 솟아나게 된다. 사랑은 그 소유자에게 우아함과 예절과 단정한 품행을 심어 준다. 사랑은 얼굴을 밝게 해주며, 음성을 부드럽게 하며, 그의 전 인격을 향상시키며 고상하게 해준다.” (전게서 123)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13:5)>
8. 사람은 본성적으로 먼저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지만, 사랑의 정신으로 뭉친 참된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을 첫째에 둔다.
(답) O
(해설1) “(자신의 유익을 구치아니하는 것은) 사랑의 모든 특성가운데서도 성화되지 못한 사람이 이해하기에 가장 어려운 것이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머저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런 관심으로 인해 번번이 다른 모든 사람이 가려져 버리지만, 그리스도의 길, 사랑의 길에서는 자아를 마지막에 두고 다른 사람을 첫째에 둔다. 사람의 이기적인 본능은, 죄로 인해 인류의 경험 가운데 하나님의 명령이 완전히 뒤집혀서 사람들이 애정과 관심을 자신에게로 집중하게 됐다는 또 다른 증거이다. (렘17:9;롬7:14-18, 20;8:5-8;약4:4)
(해설2) “사도 바울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행 22:21)는 기별을 받았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위하여 부름을 받은 자들은 주님을 따르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옛 교제도 끊어 버리고, 평생의 계획도 포기하며, 이 땅의 희망도 내어 버려야 한다. 씨를 뿌리는 자는 자신을 희생하며 외로이 수고와 눈물로 씨를 뿌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온 몸과 마음과 영혼을 하나님께 바친 자는 항상 새로운 육체적, 정신적 능력과 영적 능력을 받는다.“ (복음교역자 112)
(해설3)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진정 사랑했기 때문에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자기를 희생하며 최선을 다했다. 물질이 부족했을 때는 장막을 만들어 팔며 자기 생계비를 스스로 벌기도 했다. 누구를 위해서였을까?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였다. 마치 어머니와 같은 사랑으로 주의 일을 감당했다.
(살전2:7-8)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성내지 아니하며(13:5)>

9. 어쨌든 간혹 살면서 성내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거의 불가능하다.
(답) X
(해설1)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성경은 사랑으로 뭉쳐진 사람은 성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거꾸로 말하면 성을 내는 사람은 아직 사랑으로 덜 성화되었다는 증거이다. (이글을 쓰면서 육신이 연약하여 화를 잘 내는 필자도 무척 마음이 아프다....)
(해설2) 교회의 청년들이 여럿이 있는데 그 중 현명한 남편이나 아내를 구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교회에서 주최하는 캠핑을 가면서 이들이 얼마나 짜증을 잘 내는지, 화를 잘 내는지를 보는 것이다. 캠핑을 하면서 즐거운 일도 있을 것이나 육체적인 피로나 힘든 일도 있을 것인데 이때 자기 감정을 얼마나 잘 다스리느냐의 문제가 곧 그 사람의 내면세계의 영적상태를 말해주기 때문에 이 방법은 적절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1:1데이트로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면을 쓰고 대하기가 쉽기 때문에 그 사람의 본질에 대해 알기가 힘들다.
(해설3) “사랑은 쉽게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성내지 않으며, 아무것도 완전한 사랑의 평정심을 방해하지 못하고 곤혹이나 초조나 분노를 일으키지 못한다...자아 곧 본성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며 자기를 주님에게 바치면 죄에 대해서 죽는 것임을 아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안달하거나 불쾌해 할 이유가 없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자기의 유익을 위해 모든 것을 통제하는 분의 배려와 사랑의 눈길 아래 있음을 알기에 모든 것을 단순히 하나님께 맡긴다.” (본교성경주석 12권 301)

10. 회심한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것중 놀랄만한 것은 그가 화를 내지 아니하고 친절해진다는 것이다.
(답) O
(해설) “가장 두드러진 회심의 결과는 본성적으로 기질이 불안하고 성마르며 쉽게 화를 내던 사람의 품성에 나타나는 현저한 변화이다. 성령의 감화 아래 그런 사람이 온화하고 친절하고 침착해진다. 그를 괴롭혀 성 잘 내던 옛 정신으로 돌이키려는 사단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다.” (전게서 301)

<악한것을 생각지 아니하며(13:5)>

11. 그리스도의 사랑에 지배를 받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찾아내거나 좋은 동기를 왜곡시키지 않는다.
(답) O
(해설)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다는 것은 문자적으로 ‘악한 것을 헤아리지 않으며.’란 뜻이다. 헬라어 단어에는 저질러진 잘못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개념이 들어있는데, 곧 그것은 그 잘못을 헤아리거나 덮어 씌우지 않고, 어떤 사람의 계정에 그 잘못을 부과하지 않는다는 뜻이 실려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아름답고 그리스도인다운 사랑의 속성이다. 사랑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비판적이지 않으며 결점을 찾아내거나 다른 사람의 동기를 왜곡시키지 않는다.” (본교성경주석 12권 301)
(잠17:9)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벧전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13:6)>
12. 아무리 사랑을 실천해도 누군가가 실수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의 맘 깊은 곳에서 은근히 즐거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답) X
(해설1) 혹 우리의 대화에 누군가 실수를 하였다거나 손해를 입었을 때 ‘그것 참 셈통이다’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는가?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누군가가 실수했을 때 기뻐하는 사람이라면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안에 아직 차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필자를 포함해서...
(해설2) “불의는 헬라어 아디키아(adikia)이다. 사랑은 친구든 적이든 간에 불의를 행할 때 기뻐하지 않는다. 불의(不義) 곧 죄는 거룩한 사랑의 본질과는 전혀 관계가 없기에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것을 기뻐할 수 없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악을 보고 기뻐하거나 행복해 하지 않는데, 이는 그가 악행으로 인해 유죄 판결을 받기 때문이다. 사랑은 누군가가 실수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 심술궂게 기뻐하지 않는다.” (본교성경주석 12권 301)

13. 성화되지 못한 자들은 다른 사람의 악행에서 기쁨을 발견할지 모르지만 사랑에 감동된사람은 혹시 원수가 어려움에 처해있다 할지라도 도와주려고 한다.
(답) O
(해설) 성화되지 못한 마음은 원수가 죄를 범할 때 혹은 반대자가 자기 명예에 먹칠을 하는 실수를 저지를 때 기뻐하지만 사랑은 그렇지 않다. 사랑은 정반대의 길을 취하여 심지어 원수가 어령무에 처하더라도 도와주려고 한다. 진리로 성화되지 못한 자들만이 다른 사람의 악행에서 기쁨을 발견한다.“ (전게서 301)
(잠24:17-18)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 아니하사 그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
(잠25:21-22)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
(마5:44-46)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수요일(1월 6일) 사랑의 시금석(마 5:43~48)

1. (토의) 다음의 글은 고전13:4~7의 글에 나온 15가지 사랑의 요소들과는 반대되는 사항들을 적은 것입니다. 나의 모습을 표시한 것은 몇 개인지 체크해보시기 바랍니다. X표가 많을 수록 바울선생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그리스도의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재에는 사랑에 대한 시금석이 한 가지 사항을 중심으로 나와 있지만 오늘 필자는 아래 모든 것이 사랑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안식일학교 순서에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회가 되면 손질을 해서 안교 순서에 올려 놓도록 하겠습니다)

(1) 나는 억울하게 취급당하면 결코 가만 있지 못합니다.
(즉, 나는 오래 참지 못합니다.)
(2) 나는 사람들을 대할 때 더러 그 사람들의 감정에 상처를 냅니다.
(즉, 나는 100% 온유하지 못합니다.)
(3) 나는 남이 잘 되는 것을 보면 솔직히 배가 아픕니다.
(즉, 나는 투기하는 성질이 남아 있습니다.)
(4) 나는 나에게 무엇인가 잘 된 일이나 기쁜 일이 일어날 때, 때론 듣는 사람의 기분을 생각지 않고 자랑함으로써 듣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불쾌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즉, 나는 가끔씩 나 자신을 자랑합니다.)
(5) 위 (4)번 사항에서 나 자신을 자랑하다가 과장을 조금 하면서 자기를 칭송하는 단계로 갈 때가 있습니다. (즉, 나는 때론 교만합니다)
(6)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무례하게 행동할 때 나도 그에게 무례하게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즉, 나는 아직 무례히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7) 나는 어떤 유익거리가 생겼을 때 일단 내 것을 확보해 놓은 다음 남으면 다른 사람에게 조금 양보해줍니다.
(즉, 나는 아직 자기의 유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합니다.)
(8) 아직도 가끔씩 사람들이 내가 화내는 모습을 본다고 합니다.
(즉, 나는 아직도 성을 냅니다.)
(9) 나는 사람을 만날 때 이 사람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먼저 생각하고 비판적이 될 때가 많습니다. (즉, 나는 가끔 악한 것을 생각합니다.)
(10) 나는 누군가가 실수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셈통이다’라고 생각하든지 아니면 은근히 기분 좋아질 때가 있으며 나에게는 아직 원수가 있어서 이들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결코 기꺼이 도와줄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즉, 나는 아직 불의를 보고 조금은 기뻐하는 것 같습니다.)
(11) 나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관심을 그다지 갖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이 착한 일을 했을 때 기쁘기 보다는 그 사람이 ‘위선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즉, 나는 아직 진리와 함께 기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12) 나는 다른 사람의 결점을 비밀로 하고 침묵하기 보다는 적절한 기회가 되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것을 부탁한 후’ 그 비밀을 말하는 편입니다. 그래야 직성이 풀립니다.
(즉, 나는 참지 못합니다)
(13) 나는 어떤 사람이 옳지 못한 일을 했다고 들었을 때 ‘그도 별 수 없군’ 하면서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바로 내려 버립니다.
(즉, 나는 모든 것을 믿지 않습니다.)
(14) 나는 내가 아는 누구가 신실치 못함이 드러났을 때 나는 끝까지 그가 잘 할 수 있으리란 믿음을 쉽게 포기합니다.
(즉, 나는 그 사람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지’ 않습니다.)
(15) 나는 나를 괴롭히려고 계산되었을지도 모를 다른 사람의 비호적인 행동이 나에게 가해지면 바로 사실을 (다소 과격할지라도) 이를 뒤집어 엎고 곧장 문제를 시정하려고 합니다. (즉, 나는 잘 견디질 못합니다.)

2. (토의) 얼마만큼의 큰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졌을 때 비로소 나는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원수들)이 잘 되기를 바라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도움을 그들에게 베풀 수 있을까요?
(사례1)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누룩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외부로부터의 힘’이 밀가루에게 작용하여 밀가루가 전에는 가지지 못했던 전혀 다른 상태로의 변화를 말씀하시면서 우리 모두에게도 이러한 외부로부터의 누룩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며, 우리는 이 성령에게 온전히 모든 것을 맡겼을 때 위의 15가지의 변화는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사례2)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도, (눅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정도의 사랑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우리가 우리의 이웃들을 우리 자녀같이 아가페적인 무조건적 사랑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다만 예수님 같은, 우리 육신의 부모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사랑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이 사랑을 달라고 기도하며 또 이를 얻도록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사례3) 필자의 외삼촌에게는 아주 못된 아들 (필자에게는 사촌 형)이 있었다. 열 다섯 살 때 우리 집인 고모집에 놀러와서는 고모인 우리 어머님 시계를 훔쳐 달아나곤 할뿐더러 가출을 밥 먹듯이 하고, 학교에 입학시켜 놓으면 공부에 도저히 취미가 없어 며칠 다니다가 포기하곤 하였다. 여러차례 무엇을 훔치다가 들키는 등, 소년원에도 갔었고, 여러 가지 말썽을 부렸던 참 골치아픈 형이었다. 그런데 이 형이 또 한 차례 가출을 해서 제주도에 놀러갔는데 음주를 하면서 배를 타고 놀다가 그만 수영을 한다고 바다에 다이빙을 했는데 그만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 잠수부들이 간신히 바다 속을 뒤져 시신을 찾았는데 바닷물 속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얼굴로서는 확인을 할 수가 없었고 다만 발가락을 보고 아들 것인줄 알 정도로 시신확인이 어렵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듣고 모든 사람들이 ‘차라리 잘 된 일이니 빨리 잊으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외삼촌에게 하였다. 하지만 육신의 어머님이셨던 우리 외숙모님은 이 소식을 듣고 맥이 풀려 방바닥에 누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이 세상에 그 형의 죽음에 울어주는 사람은 육신의 어머니 단 한분과 육신의 아버지, 그리고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신 그리스도였을 것이다. 이런 외숙모 같은 육신의 어머니의 사랑, 아가페적인 사랑이 있어야만이 누구나 골치 아프게 여기는 이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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