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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거짓 교사들에 맞서다(질문, 대다, 설명) 09/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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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9-11 05:31 조회1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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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거짓 교사들에 맞서다

(9월 19일 안식일/일몰 오후 6시 34분)

 

기억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후 10:4)

 

● 연구 범위 - 고후 10:1-17; 렘 9:24; 고후 11:1-15, 22-28; 12:20, 21; 13:5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듯이 바울은 해결해야 할 또 다른 문제에 맞닥뜨렸다. 바로 교회의 거짓 교사들이다. 이들은 바울과 그의 활동, 사역에 반대했다. 게다가 이 거짓 교사들은 고린도 교인들을 미혹하기까지 했다. 이 문제에 맞서는 싸움을 바울은 영적인 전쟁으로 표현했다.

 과한 표현 같다고? 절대로 아니다. 거짓 교사들은 궁극적으로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있는 것임을 바울은 간파했다. 바울은 추종자들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과 권위를 정당화하고자 평판 유지에 고심하는 자기도취적인 지도자가 아니었다.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는 삶과 죽음이라는 영원한 결과를 가르는 문제이며 그는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보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자기를 소개할 때 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나 바울”(고전 1:1, 쉬운)이라고 말한다.

 교회는 거짓 교사들에 대해 사랑을 잃지 않으면서도 성경의 권위에 기초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복음 기별은 사람들에게 영생의 소망을 선사할 수 있도록 흠 없고 순결하게 보존되어야 한다.

 

말씀 속으로

“4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가 전파한 것과 전혀 다른 예수님을 전파하는데도 여러분은 잘도 눈감아 주고 있습니다. 또 여러분은 전에 받은 것과 다른 영을 받아들이며 다른 복음을 잘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5나는 나 자신이 저 ‘가장 위대한 사도들’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6내가 비록 말에는 능숙하지 못하지만 지식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모든 면에서 내가 가진 지식을 여러분 모두에게 분명히 보여 주었습니다. 7내가 여러분에게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여러분을 높이기 위해 나를 낮춘 것이 죄가 된단 말입니까? …9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는 동안에 궁핍했지만 나는 여러분 중 어느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에게 짐을 지우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

…12그것은 우리와 똑같이 일을 한다고 자랑하려는 사람들에게 자랑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13이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들이며 속이는 일꾼들이며 그리스도의 사도들인 것처럼 가장하는 사람들입니다. …15사탄의 일꾼들이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다고 해서 크게 놀랄 것은 없습니다. 그들의 운명은 자기들이 행한 일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고후 11:4-15, 쉬운).

 

토의 질문

1. 교회에 어떤 잘못된 가르침과 이설이 나타날 수 있나요?

*답: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의 가르침이 예수 이름으로 나타날 수 있다.

2. 거짓 교사는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요?

*답: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그들이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사8:20), 율법과 증거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교훈과 사상을 드러내면 구별된다.

3. 사랑을 지니면서도 거짓 가르침에 단호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거짓 가르침은 예수께서 주신 생명을 잃게 한다. 그들에게 단호한 것이 사랑이다.

4. 거짓 교사들에 비해 바울은 무엇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답: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한다.

5. 거짓 가르침에 미혹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 말씀에 올바르게 서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실행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핵심 교훈

거짓 교사는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복음을 왜곡한다. 그러나 참된 복음은 사람을 높이지 않고 그리스도만을 드러낸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사랑과 온유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진리를 위해 단호하게 싸워야 하며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 늘 살펴야 한다.

 

9월 13일(일) 영적인 전쟁

 

고린도후서 10장 1-11절을 읽어 보라. 고린도 교인들을 대하는 바울의 온유함은 유약함으로 혼동될 때가 있었다. 고린도의 거짓 교사들에 대한 바울의 대담한 대처를 엿볼 수 있는 표현들은 무엇인가?

[고후10:1~11]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2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3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7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8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9 이는 내가 편지들로 너희를 놀라게 하려는 것 같이 생각하지 않게 함이라 10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11 이런 사람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것과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일이 같은 것임을 알지라.

*답: 여기 쓴 모든 구절이 그렇지만, 2절부터 6절 말씀과 10절 11절이 강하게 변호하는 말씀인 것 같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0장을 매우 사적인 어조로 시작한다. “나 바울은 이제…직접 너희에게 간청하노라”(고후 10:1, 킹흠정). 교회에 스며든 거짓 가르침에 대해 그가 얼마나 우려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절에서 그는 ‘멀리서 편지할 때는 무서운 폭군 같지만 직접 만나면 한심한 겁쟁이’라는 반대자들의 비난(고후 10:10, 11)을 역설적으로 인용하고 있다. 약해 보이는 모습이 사실은 강인한 온유함이자 그리스도와 같은 부드러움이라고 그는 반박한다.

 거짓 교사들을 상대할 때는 담대하고 확신에 차 있어야 하지만 그리스도의 온유함도 지녀야 한다(고후 10:1, 2). 예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셨다(마 11:29). 그럼에도 그분은 성전에서 환전상들의 탁자를 뒤엎고 그들을 강도라고 부르며 담대하게 맞서셨다(마 21:12, 13). 또 바리새인들에게는 대놓고 위선자,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다(마 23:23-27). 예수님처럼 바울도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착용해야 하는 영적 전쟁 속에 있음을 알았다(엡 6:12, 17).

 고린도후서 10장에서 바울은 군사 용어를 사용한다. 생명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3-6절). 이것은 단순히 인간적인 갈등이 아니라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신성한 싸움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 온갖 거짓 이론과 교만한 사상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해야 한다(5절).

 이 영적인 싸움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권위를 행사한다. 이 권위는 파괴가 아니라 세우는 데 목적이 있다(8절). 영적인 지도자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권위로 행동한다고 단언하기 쉽지만 그들은 자신의 권위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임을 명심하면서 그분처럼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야 한다. 바울이 그리스도께 권위를 부여받았다고 주장한 이유는 고린도 교인들이 잘못된 가르침에 귀를 기울인 결과로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심이 위태로워질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나의 삶 속으로: 어떻게 하면 거짓 교사들을 부드럽고 단호하게 상대할 수 있을까요?

위의 두 가지 태도를 함께 지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은 전사(戰士)다(딤후2:3,4). 비진리와 투쟁하고 죄와 싸우고 악의 세력과 싸운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예비해 주셨다(엡6:11~18). 우리는 언제든지 그 갑옷을 입고 생활해야 한다. 그것은 빛의 갑옷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옷입는 것이다(롬13:12~14). 옷은 사람의 알몸을 감싸서 보이지 않게 한다. 생활할 때 옷이 보인다. 그리스도인은 생활에서 그리스도가 보여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단언했다(롬8:9).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의 주장으로 생활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악의 세력과 싸워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긴다. 즉 증거하는 말씀으로 이긴다(계12:11). 그리스도인은 바울의 말처럼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것과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일이 같은 것임을 알지라”(고후10:11)라고 단호히 말할 수 있도록 생활해야 한다. 바울은 그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는 전사로 살았다.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없겠는가?

 

9월 14일(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어제 보았듯이 바울과 동역자들은 영적인 전쟁을 치르면서 사역에 힘썼고 하나님의 무기를 사용했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은 인간의 기준에 따라 행동한다. 그들은 불순하게 자랑한다. 바울은 오직 주 안에서만 자랑한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고후 10:17)라고 말한 그대로다.

 

고린도후서 10장 13-17절을 읽어 보라. 경쟁적인 분위기는 복음 전파에 어떤 해를 끼치는가?

[고후10:13~17] 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그 범위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4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5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자랄수록 우리의 규범을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라노라 16 이는 남의 규범으로 이루어 놓은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역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답: 경쟁적 태도를 취하면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과 자기가 드러난다. 그러면 복음이 전파되지 않는다.

 

 바울이 자기 자랑에 사용한 표현은 수 세기 동안 해석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자기 자랑은 고대 세계에서 흔한 관행이었는데 청중을 불쾌하게 하지 않는 정도로 사회적 관습에 의해 제어됐다. 바울은 이런 관습을 알았고 그 관습을 따랐다. 덧붙여 바울은 자신의 자랑이 거짓 교사들의 자랑과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는 주님 안에서 자랑한다(고후 10:17). 이것은 구약 성경에서 인용한 표현이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렘 9:24). 바울은 예레미야의 말을 인용해 자랑의 핵심이 그리스도 즉 그리스도의 사랑, 정의, 공의임을 밝힌다. 말하자면 바울의 자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이루신 일에 초점을 둔다. 따라서 그의 자랑은 성경적이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면에 그의 반대자들은 자신을 남과 비교하면서 경쟁적인 분위기를 조장한다. 이것은 어리석은 일이다(고후 10:12).

 고린도후서 10장 14-16절에서 바울은 고린도에 있을 때나 다른 지역에 있을 때나 자신의 사역에서 핵심은 복음 전파라고 암시한다. 예수를 향한 사랑에 이끌렸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담긴 구원의 기쁜 소식을 끊임없이 전한 것이다. 스스로를 자랑하는 고린도의 거짓 교사들과 달리 바울은 하나님께 칭찬받고 인정받은 사람이다(고후 10:12, 18).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고(고전 1:1) 마지막까지 이 부르심에 충성했다(딤후 4:7).

 

나의 삶 속으로: 교회 지도자나 교인들이 경쟁적인 분위기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제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쉽게 사로잡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부가설명> 경쟁 심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루시퍼는 경쟁 심리의 발원(發源)자다. 그가 말씀 하나님 여호와이신 그리스도와 비교하며 경쟁하는 마음이 그리스도를 떠나게 했다. 경쟁 대상인데 그를 공경하고 그를 닮으려고 하겠는가? 견제하고 무소(誣訴)하고 싸우려고 한다. 교회에서 이런 정신을 나타낸다면 당연히 예수님 편이 아니다. 그는 루시퍼 편이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과 동등이신데 동등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여 세상에 오셨다(빌2:5~8). 이런 분에게 경쟁 심리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그분을 믿고 그분처럼 되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경쟁 심리가 생기겠으며 경쟁 구도를 만들 수 있겠는가? 만일 누군가가 그렇다면 그는 루시퍼에게 속한 자이다. 우리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드러나게 살자.  

 

9월 15일(화) 거짓 교사들을 밝혀내다

 

 신약 성경에는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같은 경고를 하셨다(마 7:15-20). 사도들도 이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웠다(갈 1:6-9; 딤전 6:3-5; 벧후 2:1-3).

 

고린도후서 11장 1-15절을 읽어 보라. 바울은 거짓 교사들 때문에 자신이 겪는 문제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고후11:1~15]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5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6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7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8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 9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 10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11 어떠한 까닭이냐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12 나는 내가 해 온 그대로 앞으로도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이 그 자랑하는 일로 우리와 같이 인정 받으려는 그 기회를 끊으려 함이라 13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답: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을 전하면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가장했기 때문에 진리가 대단한 피해를 입고 있었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실상을 드러내는 동시에 자신의 사역이 그리스도 중심적이라고 밝힌다. 그는 고린도 교회를 신부에 비유하고 자기는 그 신부를 그리스도께 드릴 책임이 있는 아버지로 비유한다(고후 11:2).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이다(11절). 그래서 심지어 그는 재정적인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는데도 그런 부담조차 주지 않으려고 했다(7-12절).

 그와 반대로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거짓 교사들을 일컫는 역설적인 표현)은 하와를 속인 뱀으로 비유된다(고후 11:3). 에덴동산의 사탄처럼 고린도의 거짓 교사들은 미혹하고 부패시키는 것이 특징이다(3, 4절). 바울은 그들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향한 참된 헌신과 충성을 저버리지 않을까 깊이 우려했다.

 이 침입자들은 바울이 전한 것과는 다른 메시지,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을 전했다(고후 11:4). 예수를 전한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여기서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말씀하셨다. 갈라디아서 1장 6-9절에서 바울은 누구든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는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고린도 교인 일부는 이 잘못을 범하고 말았다.

 바울은 이 거짓 사도들을 밝혀내면서 그들은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라고 말한다(고후 11:13). 그들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도로 위장한다. 사탄이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사탄의 일꾼들이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14, 15절)과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주장하면서 사탄의 앞잡이로 활동하다니 이 얼마나 기가 찰 노릇인가!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15절)고 바울은 결론적으로 말한다.

 

나의 삶 속으로: 바울은 교회의 잘못에 대해 얼마나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이 사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무엇입니까?

 

<부가설명> 오늘날도 교회라는 이름으로 진리를 왜곡해서 전하는 것이 너무 많다. 소리는 많은데 진리의 소리는 거의 없다. 작은 뿔의 거짓이 온 교회를 속이고 다스리고 있다. 그 여자의 후손의 남은 자,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은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다. 이 거대한 홍수, 계시록의 표현대로는 뱀이 그 입으로 토한 물에 떠내려가고(계12:15) 있지 않은가? 소위 문명의 이기들이 세상을 지배하니까 그것을 이용하여 진리를 더 잘 증거하려고 운영하려 하지 않는가? 성경은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라고 분명히 계시했다. 디지터 시대라고 아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날로그로 복음을 전하면 안 되는가? 우리는 우리가 깨달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정죄하는 교회들을 안타까워하고 답답해한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보고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거짓 교사들에 대하여 가진 그런 마음은 없을까를 생각해보는지 모르겠다.

 

9월 16일(수) 복음을 위한 고난

 

 거짓 교사들을 사탄의 앞잡이라고 폭로한 뒤(고후 11:1-15) 바울은 이제 어리석은 사람처럼 자기를 조금 자랑하는 시늉을 하면서(16-21절), 거짓 교사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개념 없는 행동인지를 고린도 교인들에게 일깨워 주려고 한다. 고린도 교인들이 거짓 교사들을 높인다면 바울은 더 큰 인정을 받아 마땅하다. 복음을 위한 그의 고난이 곧 그가 그리스도의 충성스러운 종임을 입증하기 때문이다(고후 11:22, 23).

 

고린도후서 11장 22-28절을 읽어 보라. 바울의 요점은 무엇인가?

[고후11:22~28]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답: 바울은 거짓교사들의 자랑과 자기의 신분을 대조하여 바울 자신이 그들보나 세상의 신분과 경험도 훨씬 뛰어나다고 말한다.

 

 바울의 신분은 거짓 교사들과 똑같이 유대인이었지만 그리스도께 바친 그의 봉사는 그들의 봉사보다 훨씬 뛰어나다(고후 11: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라고 그는 답한다. 그는 훨씬 더 넘치게 수고했다. 더 많이 옥에 갇히고 더 심한 매질을 당했다. 그뿐이 아니다. 서른아홉 대 맞는 태형을 다섯 번이나 당했고(24절) 몽둥이로 맞고 돌에 맞고 배가 난파되고 깊은 바다에서 위험을 겪었다(25절).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도시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거짓 형제들의 위험을 당했고(26절)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수없는 밤을 뜬눈으로 새웠으며 주리고 목마르고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기까지 했다(27절). 그것도 모자라 그는 교회에 대한 깊은 시름으로 정신적인 고통까지 겪어야 했다(28절).

 오직 그리스도의 참된 종만이 복음을 위해 이런 고난을 기꺼이 감수할 것이다. 자신의 고난에 대해 자랑하자면 바울은 할 말이 참 많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단락에서 바울은 자랑하는 이유가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이 한 일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훨씬 더 두드러진 것은 하나님의 능력임을 그는 알았다(고후 12:9, 10). 바울이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고후 12:7). 그로 인해 그는 겸손해졌고 자신의 약함을 깨달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했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더 깊이 체험할 수 있었다.

 

나의 삶 속으로: 복음을 위해 고난당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습니까?

고난을 대하는 바울의 태도는 우리가 고난을 받아들이는 데 어떤 도움을 주나요?

 

<부가설명> 복음 전파의 초기 사정을 지금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은 극악한 죄인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외치고 그분이 부활하셔서 하늘에 올라가시고 하늘에서 인류를 위해 봉사하시며 다시 와서 그분을 구주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모든 사람을 하늘로 데려가신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믿었겠는가? 황당무계한 신화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런 내용을 복음이라고 전하는 지성인 바울을 사회 지식인 층이나 부유층 고위층 사람들이 비웃고 비난하고 핍박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중에 복음이 편만하게 전파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인 것은 성령님의 감동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 그런 황당하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고 순교하는 사람까지 있다는 것은 놀랄일이 아닌가? 이것은 인간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적이다. 우리는 기록된 말씀을 하나님의 무오한 진리의 말씀으로 믿는다. 성령님의 역사와 감동이다. 그렇게 믿을 수 있으니 감사하지 않은가? 복음에 순복하고 그대로 살아가는 것은 세상에서는 핍박과 멸시의 가시밭길을 가는 것인데, 기독교가 세상에서 인정을 받은 후에는 오히려 대우 받게 되었으니 주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이 헤아리지 못한다(전3:11 하단). 

 

9월 17일(목)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향한 호소

 

 고린도후서 12장 14절-13장 10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세 번째 방문을 교인들에게 알린다(고후 12:14; 13:1). 그는 자신이 어떤 거짓 사도에게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주었고 이제 자신 있게 고린도에 다시 찾아가 회개하지 않은 교인들을 돌이키고자 한다. 이것이야말로 세 번째 방문의 주된 목적이었다. 바울이 행하고 말한 모든 것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였다(고후 12:19).

 

고린도후서 12장 20, 21절을 읽어 보라. 고린도 교회의 영적 상태를 위태롭게 한 죄는 무엇인가?

[고후12:20,21]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21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답: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은 것을 포함해서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과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 등등이다. 

 

 고린도후서 12장 20, 21절에 나열된 죄는 바울의 다른 서신들에 진술된 목록과 유사하다(롬 1:29-31; 갈 5:19-21). 첫 두 가지 항목은 고린도전서 3장 3절에서도 볼 수 있는데 고린도 교회 내의 시샘과 분쟁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세 번째 방문할 때도 상황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까 걱정한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내가 가서 여러분을 만나게 될 때 혹시 여러분이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까” 하는 점이며 또 역으로 “내가 여러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고후 12:20, 공동번역). 이는 그들을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고후 10:1)으로 대하기보다 이제 “모든 불순종을 처벌할 준비”(6절)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에 빠진 이들이 여전히 회개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고후 12:21). 바로 이런 죄 때문에 교회가 분열된다.

 이어 바울은 죄에 빠진 이들을 되돌려 놓기 위한 교회 징계의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고후 13:1-4). 연약함은 부도덕한 삶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 승리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능력이 주어지기 때문이다(4절). 고린도 교인 일부가 음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의 삶에 나타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바울은 그들이 회개하여 순종에 이르는 능력을 경험하기를 바랐다. 그는 징계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여러분이 악한 일을 행하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옳은 일을 행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온전해지기를 기도합니다”(고후 13:7-9, 쉬운). 얼마나 아름다운 기도인가! 자신들이 믿음 안에 있는지를 스스로 시험해 보라고 바울은 그들에게 요청한다.

 

나의 삶 속으로: 고린도후서 13장 5절을 읽어 보십시오. 믿음 안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나요?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부가설명>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그리스도께서 신자들 안에 거하지 않으면 믿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 이 질문을 자신에게 해야 한다. 그리고 확증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는가? 우리의 언어에는, 감정에는, 결정과 실천에는? 생활의 모든 분야에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으면 그는 버려진 자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매일 매순간 이 질문을 자신에게 하면서 확증하는 삶이 필요하다. 그래서 존재 자체가 그리스도 예수의 영광의 찬송이 되도록 성령께서 전적으로 주장하도록 해야 한다(엡1:12, 갈2:20). 우리의 오감이 그리스도 예수께 집중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고후10:5에 있는 말씀대로 모든 생각을 사로잡에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하루하루의 삶이 되도록 성령께서 전적으로 주장해 주시도록 자아를 굴복시키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자. 

 

9월 18일(금) 더 깊은 묵상을 위해

 

『리뷰 앤드 헤럴드』 1873년 9월 30일 자 ‘라오디게아 교회’(125쪽)를 읽어 보라.

 “주께서는 과거의 잘못과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자기 백성을 지키고 계신다. 그릇된 교리와 불경한 행실을 옹호하며 가장 그럴싸하고 은밀하고 기만적인 방식으로 거짓 원칙에 따라 행동하면서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도 미혹하려는 거짓 교사들이 언제나 넘쳐난다”(리뷰 앤드 헤럴드, 1904. 1. 7.).

 “주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시험받게 하신다. 살아 있는 말씀을 면밀히 검토해 가면서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진리를 믿는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라면서 안심하는 사람이 많다”(저자와 편집자에게 보내는 권면, 36).

 진리가 분명히 드러났는데도 오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 자신의 이론을 하나님 말씀에 맞추기로 마음먹는다면 또 자기 생각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자기의 이론에 비추어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는다면 그들은 어둠과 무지 속에서 헤매거나 오류에 집착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자기 입맛대로 성경 말씀에 의미를 부여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자신도 길을 잃고 남들까지 미혹하는 이가 많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할 때는 겸손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 이기심, 독창적인 것을 추구하려는 마음은 모조리 버려야 한다. 오랫동안 간직한 의견이 틀릴 리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저자와 편집자에게 보내는 권면, 36, 37).

 

함께 나누기

1. 고린도후서 10장 1-6절을 읽어 보라. 하나님의 ‘진리’를 위한 싸움에서 바울은 어떤 전략을 사용하는가? 이것을 우리의 영적 싸움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답: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이다.

2. 마지막 때가 이르기 전에 수많은 거짓 교사가 사람들을 현혹해 진리를 떠나게 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우리 교회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거짓 교사들에게 교인들이 미혹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왜 이것이 교회의 사명 완수에 필수적인 요소인가?

*답: 오직 성경이 계시한 진리를 하나님의 해석으로(창40:8) 깨닫고 굳게 서야 한다. 주석이나 교리책의 해설들은 성경으로 철저히 검증되어야 한다. 베레아 사람의 본을 따르는 것이 필수적이다. 

3. 바울은 왜 고난의 긴 목록을 자랑해야 한다고 생각했는가?(고후 11:16-33) 또 주 안에서 자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답: 믿음으로 사는 것이 세상적으로 평안한 삶이 아닌 것을 깨닫게 하고 주님 안에 있는 소망을 자랑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을 권고한 것이다. 주님이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4. 교인들은 왜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 점검하고 확인해야 하는가?(고후 13:5) 그렇게 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답: 사탄과 세상을 연합해서 매일 매 순간 성도를 유혹하고 공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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