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기 1 과 사랑이 많은 우리 하늘 아버지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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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4-06-27 14:06 조회5,102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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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 1 과 사랑이 많은 우리 하늘 아버지
기억절: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일3:1)
*2014년 제 3 기의 총 제목은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생명력 충만한 교과 연구가 되길 소망합니다.
첫째 날(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도입질문: 예수님의 원래 위치가 아버지신데, 예수님이 아들이라 불려 지셨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아버지라 불려 지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예수님의 원래 위치는 창조주요 아버지였습니다. (요1:1-3, 눅3:38, 사9:6)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전의 이름은 야훼 즉 여호와였습니다.
여호와는 스스로 계신 자가 사용하는 이름으로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하시는 분은 세 분이었습니다.(민6:24-26)
삼위일체 하나님의 고유한 각각의 이름이 그들의 존재 양식에 따라 여호와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라는 고유한 이름 외에 필요에 의해 여호와하나님은 이름을 추가 하셨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예수입니다.
예수란 이름의 뜻에서 예수란 이름을 사용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됩니다.
그것은 “죄” 때문이었습니다.
“죄”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담을 창조하심으로 아버지가 되셨던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사망이 되었을 때, 창조 전의 삼위일체 하나님들의 회의인 평화의 의논의 결론대로 두 번째 아담으로서 이 땅에 오셔서 아담을 대신하여 영원한 죽음을 당하실 것을 창3:15에 발표하셨습니다.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해 아버지께서 아들의 위치로 이 땅에 오실 것이었습니다.
구속의 경륜 상 아버지의 위치에서 아들이 되셨던 여호와 하나님은 이름도 예수란 이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한 분이 스스로 아들의 위치가 되셨으므로 상대적으로 아버지의 위치가 필요하게 되었고, 그래서 한 분은 아버지의 위치를 갖게 된 것입니다.
(빌2:5-8)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이란 호칭은 상하의 호칭이 아닌 구속의 경륜에서 만들어진 호칭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구속의 경륜상 아들의 위치로서는 아버지가 나 보다 크다고 말씀하셨고(14:28), 본질상으로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하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요10:30)
하늘에 계신 하나님도 예수님처럼, 그리고 성령님처럼 똑 같은 품성을 가지고 계시므로 사랑이십니다.
둘째 날(월) 아들에 의해 계시됨
*도입질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큰 목적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루스벨이 사단이 되었던 가장 큰 원인은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오해와 하나님을 창조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피조물의 상대적 사랑으로 생각할 때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오해가 하나님과의 분리를 선택하게 하고, 하나님과의 분리가 바로 사망(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오해로 인해 사망이 왔으므로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바르게 깨닫게 함으로 다시금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으로 인해 생명을 주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가장 잘 보여 준 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이론적으로 잘 못한 사람이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사람의 잘 못에 대하여 대신 죽으심으로 하나님은 사람들의 창조주시면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시는 분임을 온 우주 앞에 드러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지구를 지켜보았던 우주 거민들은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보게 되었고, 사단이 말이 거짓임이 온 우주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요12:32-33)
셋째 날(화) 우리 하늘 아버지의 사랑
*도입질문: 예수님의 사랑 못지 아니한 아버지의 사랑임을 증거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롬5:8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건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삼위일체 하나님들은 서로가 사랑으로 늘 하나이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의 행복이 더 많은 행복을 나누기 위해 피조 된 생명체를 만들고자 하신 이유였을 만큼 삼위일체 하나님들의 사랑을 서로를 행복하게 하는 사랑이엇습니다.
한 번도 분리를 경험하지 못하셨던 삼위일체 하나님들은 예수님께서 두 번째 아담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죄인으로서 서셨을 때 처음으로 완전한 분리를 경험하셨습니다.
하나님들의 분리는 예수님의 심장을 파괴할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었고 그 고통은 하나님들 모두가 겪었던 고통이었습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 모두가 함께 고통을 경험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못지아니한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넷째 날(수) 우리 하늘 아버지의 동정어린 돌봄
*도입질문: 하늘 아버지의 사랑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아버지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모든 창조물에 대하여 책임지시는 절대적 사랑입니다.(마6:25-34)
하나님의 사랑에는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눅6:35)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무조건적인 사랑임을 가장 잘 증거합니다.
다섯째 날(목)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도입질문: 삼위일체 하나님은 인격체가 다른 분들이신데 어떻게 일체가 되실 수 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삼위일체 하나님은 각각의 인격체를 가지고 계십니다.
인격적으로 독립되고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품성과 생각과 뜻과 행동 등에 있어서는 완전히 일치하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예수님의 탄생(눅1:26-35)에도 함께 계셨고, 예수님의 침례(눅3:21-22)와 십자가에서도(히9:14, 마27:45-46) 언제나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사랑을 주시는데 있어서도 삼위일체 하나님은 협력하십니다.
우리의 인생길에 나를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더 많은 고민과 간구로 우리를 이끄신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이 우리에게 힘과 희망을 줍니다.
하나님을 아는 크기가 우리의 미래의 크기입니다.
하나님을 힘써 알므로 확신의 크기를 키우셔서 더 큰 미래를 만들어나가시길 바랍니다.
기억절: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일3:1)
*2014년 제 3 기의 총 제목은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생명력 충만한 교과 연구가 되길 소망합니다.
첫째 날(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도입질문: 예수님의 원래 위치가 아버지신데, 예수님이 아들이라 불려 지셨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아버지라 불려 지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예수님의 원래 위치는 창조주요 아버지였습니다. (요1:1-3, 눅3:38, 사9:6)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전의 이름은 야훼 즉 여호와였습니다.
여호와는 스스로 계신 자가 사용하는 이름으로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하시는 분은 세 분이었습니다.(민6:24-26)
삼위일체 하나님의 고유한 각각의 이름이 그들의 존재 양식에 따라 여호와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라는 고유한 이름 외에 필요에 의해 여호와하나님은 이름을 추가 하셨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예수입니다.
예수란 이름의 뜻에서 예수란 이름을 사용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됩니다.
그것은 “죄” 때문이었습니다.
“죄”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담을 창조하심으로 아버지가 되셨던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사망이 되었을 때, 창조 전의 삼위일체 하나님들의 회의인 평화의 의논의 결론대로 두 번째 아담으로서 이 땅에 오셔서 아담을 대신하여 영원한 죽음을 당하실 것을 창3:15에 발표하셨습니다.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해 아버지께서 아들의 위치로 이 땅에 오실 것이었습니다.
구속의 경륜 상 아버지의 위치에서 아들이 되셨던 여호와 하나님은 이름도 예수란 이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한 분이 스스로 아들의 위치가 되셨으므로 상대적으로 아버지의 위치가 필요하게 되었고, 그래서 한 분은 아버지의 위치를 갖게 된 것입니다.
(빌2:5-8)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이란 호칭은 상하의 호칭이 아닌 구속의 경륜에서 만들어진 호칭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구속의 경륜상 아들의 위치로서는 아버지가 나 보다 크다고 말씀하셨고(14:28), 본질상으로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하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요10:30)
하늘에 계신 하나님도 예수님처럼, 그리고 성령님처럼 똑 같은 품성을 가지고 계시므로 사랑이십니다.
둘째 날(월) 아들에 의해 계시됨
*도입질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큰 목적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루스벨이 사단이 되었던 가장 큰 원인은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오해와 하나님을 창조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피조물의 상대적 사랑으로 생각할 때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오해가 하나님과의 분리를 선택하게 하고, 하나님과의 분리가 바로 사망(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오해로 인해 사망이 왔으므로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바르게 깨닫게 함으로 다시금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으로 인해 생명을 주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가장 잘 보여 준 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이론적으로 잘 못한 사람이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사람의 잘 못에 대하여 대신 죽으심으로 하나님은 사람들의 창조주시면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시는 분임을 온 우주 앞에 드러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지구를 지켜보았던 우주 거민들은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보게 되었고, 사단이 말이 거짓임이 온 우주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요12:32-33)
셋째 날(화) 우리 하늘 아버지의 사랑
*도입질문: 예수님의 사랑 못지 아니한 아버지의 사랑임을 증거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롬5:8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건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삼위일체 하나님들은 서로가 사랑으로 늘 하나이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의 행복이 더 많은 행복을 나누기 위해 피조 된 생명체를 만들고자 하신 이유였을 만큼 삼위일체 하나님들의 사랑을 서로를 행복하게 하는 사랑이엇습니다.
한 번도 분리를 경험하지 못하셨던 삼위일체 하나님들은 예수님께서 두 번째 아담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죄인으로서 서셨을 때 처음으로 완전한 분리를 경험하셨습니다.
하나님들의 분리는 예수님의 심장을 파괴할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었고 그 고통은 하나님들 모두가 겪었던 고통이었습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 모두가 함께 고통을 경험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못지아니한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넷째 날(수) 우리 하늘 아버지의 동정어린 돌봄
*도입질문: 하늘 아버지의 사랑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아버지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모든 창조물에 대하여 책임지시는 절대적 사랑입니다.(마6:25-34)
하나님의 사랑에는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눅6:35)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무조건적인 사랑임을 가장 잘 증거합니다.
다섯째 날(목)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도입질문: 삼위일체 하나님은 인격체가 다른 분들이신데 어떻게 일체가 되실 수 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삼위일체 하나님은 각각의 인격체를 가지고 계십니다.
인격적으로 독립되고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품성과 생각과 뜻과 행동 등에 있어서는 완전히 일치하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예수님의 탄생(눅1:26-35)에도 함께 계셨고, 예수님의 침례(눅3:21-22)와 십자가에서도(히9:14, 마27:45-46) 언제나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사랑을 주시는데 있어서도 삼위일체 하나님은 협력하십니다.
우리의 인생길에 나를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더 많은 고민과 간구로 우리를 이끄신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이 우리에게 힘과 희망을 줍니다.
하나님을 아는 크기가 우리의 미래의 크기입니다.
하나님을 힘써 알므로 확신의 크기를 키우셔서 더 큰 미래를 만들어나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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