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과 그리스도와 율법 그리고 언약(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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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4-05-30 23:11 조회8,541회 댓글0건본문
6월 7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51분
기억절 :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히 9:15).
연구 범위 : 창 9:12~17, 창 17:2~12, 갈 3:15~28, 신 9:9, 히 10:11~18, 히 9:15~28.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하나님의 결심은 오랜 세월 동안 언약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되었다. 성경은 언약을 복수 형태로 언급하지만(롬 9:4, 갈 4:24, 엡 2:12), 사실상 지금까지 존재한 언약은 모두 은혜의 언약이다. 그 언약 안에서 죄인은 인간의 공로가 아닌 믿음으로 주장하면 누구에게나 제공되는 예수님의 공로를 기초로 구원을 받는다.
언약이 복수 형태인 이유는 하나님이 여러 다른 시대와 환경 속에 있던 백성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언약을 재천명함으로써 구원의 목적을 발전시켜 오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언제나 한 언약, 즉 구원을 약속하는 영원한 은혜의 언약이다.
이 언약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신실하고 변함없는 사랑이 있다. 성경은 종종 이 사랑을 언약 자체와 동일시한다(신 7:9, 왕상 8:23, 단 9:4). 또한 구원의 수단이 아닌 구원의 결과로써 율법에 순종하라는 하나님의 요구는 언약의 한 부분이다. 율법과 은혜는 언제나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의 핵심이었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옛 언약과 새 언약이 모두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 기초해 있음을 깨닫는다.
➋ 느끼기 :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 속에 있는 특권을 인식한다.
➌ 행하기 :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한다.
A.
❷ 인간의 언약과 하나님의 언약은 어떻게 다릅니까?
※ 사람의 언약은 대체적으로 상호적이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며 인간은 언약을 지키지 못할 경우가 생길 수 있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지켜지는 것이다.
❸ 하나님은 어떻게 언약을 지키셨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그분과의 언약을 지켜야 합니까?
※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지켰다. 우리는 그 언약의 결과를 감사함으로 누려야 한다.
❹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 언약의 조건을 기억하고 그것이 생명의 도라는 것을 깨닫고 생명의 길로 걸어야 한다.
B.
❷ 하나님과의 언약에서 계명은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합니까?
※ 계명은 언약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생명을 얻었을 때 그 생명이 걸어가는 길이다.
❸ 하나님이 제안하시는 ‘은혜 언약’에서 우리는 어떤 복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언약이 우리에게 이루어진다는 복음이다.
결론 : 옛 언약과 새 언약은 모두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을 믿는 죄인들에게 구원을 약속하는 은혜의 언약에 대한 재천명입니다.
첫째날(일) 언약의 징표(창 9:12~17)
6월 1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창 9:16).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창 17:10).
언약이란 한쪽 또는 양쪽의 약속을 바탕으로 한 양자 간의 합의라고 정의할 수 있다. 언약을 성립시키는 두 가지 기본적인 방식이 있다. 첫째는 언약에 임하는 양측이 관계의 조건에 동의하고 서로에게 약속하는 방식이다. 결혼, 사업합병, 부동산 매매가 그 예이다. 둘째는 한쪽이 약속과 조건을 일방적으로 명시함으로 언약을 주도하고 상대측이 참여하도록 초청하는 방식이다. 세금 또는 교육 기관 등록비 납부가 이에 해당한다. 두 방식 모두 계약에서 철회할 자유가 있고 그 경우 대개 어떤 결과가 따른다. (예를 들어 융자금을 갚지 못한 사람은 집을 잃게 되고 세금 납부를 거부하는 사람은 형사처분을 받는다.)
언약은 적어도 하나의 상징으로 확정된다. 예를 들면 주택을 구입한 사람은 대출 기관과 융자계약서에 여러 번 서명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융자금을 완전히 상환할 때까지 부동산권리는 위탁된다. 결혼한 사람들은 정부에 의해 혼인증명서를 발행 받는다. 징표는 언약이 아니지만 그 사람이 언약을 지킬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1. 창 9:12~17과 17:2~12을 읽어 보라. 이 경우에 언약과 징표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또한 두 언약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창9:12~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창17:2~1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4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답: 언약은 하나님께서 해 주시겠다는 약속이고 징표는 하나님의 이 약속을 기억하게 하는 표이다. 노아와 언약은 온 인류에 대한 것이고, 아브라함과는 그에게서 형성될 민족과 한 약속이다. 이것이 두 언약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창 9:9에서 하나님은 땅을 다시 물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세상과 언약을 맺으신다. 그래서 공중에 무지개가 생길 때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게 되었다. 할례의 징표도 마찬가지이다. 할례는 모든 민족에게 복을 전하는 선민으로서의 역할을 유대인 남자에게 상기시켜야 했다. 전자는 모든 인류와 맺은 언약이고, 후자는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과 맺은 언약이다.
홍수 이후에 맺은 언약에서 백성들은 특별히 해야 할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사람의 행위와 상관없이 약속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은 그렇지 않았다. 백성들은 그들의 몫을 성취해야 했다. 언약은 일회성을 넘어 관계의 지속적인 특성을 말한다. 또한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방적이든 쌍방적이든 의무와 조건이 있음을 뜻한다. 만약 이런 개념이 희박하다면 언약 관계로 보기 어렵다.
<부가설명> 오늘 교과는 언약에 대하여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준 것 같다. 성경에 언약이라는 말이 창세기 6장 18절에 처음 나타난다. 노아와 세우겠다고 하신 언약이다. 노아와 그의 식구들이 방주에 들어갈 때에 생명을 보존할 것이라는 약속이다. 다음에는 9:9절 이후에 나타나는데 홍수가 지난 다음이다. 6장에 하신 언약을 실현하는 내용을 담았고 그 언약을 실천하시겠다는 표로 무지개를 하늘에 두셨다. 그리고 영원한 언약이라고 말씀하셨다. 교과 저자의 표현대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께서 제시한 언약은 은혜의 언약인데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보존하시겠다는 언약이다. 곧 영원한 구원의 언약이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이 제시한 언약은 옛 언약이나 새 언약이나 모두 영원한 구원의 언약이요 은혜이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사55:3)
교훈 : 무지개나 할례처럼 모든 언약에는 징표가 따르며 징표는 언약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둘째날(월) 언약의 약속
6월 2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언약은 약속을 기초로 한다. 사실 두 단어는 바꿔 써도 무방하다. 물론 언약을 맺을 때 약속(언약)을 한 사람은 약속(언약)을 이행할 능력이 있음을 전제한다.
구약에서 어떤 언약들은 지역적이고 제한적이었다(창 31:43~54 참고). 야곱과 라반의 경우는 언약이 두 사회 사이에 맺는 일종의 거래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미스바에 세워진 기념비는 오직 두 종족에게 해당되는 조약의 징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약의 당사자들이 죽은 뒤에는 조약의 조건이 무의미해진다.
이렇듯 인간 사이에 맺은 언약과 다르게 야훼 하나님이 노아나 아브라함과 수립하신 언약은 영원한 의의가 있었다.
1. 갈 3:15~28은 아브라함 언약의 의미를 어떤 식으로 더 폭넓게 설명하는가?
[갈3:15~28]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20 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답: 바울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확대 설명하였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몇 번 모든 인류와 관련된 약속을 하시면서 세계적인 언약을 맺으셨다. 온 세상이 홍수의 영향을 받은 사실을 보시고 야훼는 다시는 세상을 물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의 경우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의가 필요함을 보시고 아브라함의 “씨(후손)”를 통해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창 22:18).
물론 하나님은 한 민족과 시내 언약을 맺으셨지만, 그 언약은 세계적인 의미가 있었다. 하나님은 어떤 외국인이든지 선민에 참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사명은 온 세상을 위한 복음의 빛이 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출 12:48~49, 19:5~6).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제시하시는 언약은 일방적이다.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데, 언약의 수혜자(受惠者)는 사람이다. 사람이 언약의 수혜를 한다고 하나님께 이득이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베푸시는 분이시고 사람을 그것을 받아 누리는 것이다. 받지 않으면 사람이 해를 당할 것일 뿐 또 하나님께 손해가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시기를 갈망하신다. 사람들이 이것을 완전히 거절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에 슬픔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손해는 사람이 보는 것이다. 언약은 은혜이기 때문에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며, 그것을 어떻게 실현하는지를 가르쳐주는 내용이다. 우리의 할 몫은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우리에게 부탁한 조건을 수행하는 것일 뿐이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행하였고, 또 모세를 통하여서는 제사를 드리게 했고, 오늘 우리들에게는 예수님을 구주로 확신하라고 한 것이 부탁한 조건이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믿으면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하늘까지 이르게 할 것이다.
교훈 : 언약은 약속을 기초로 하며 인간의 언약에는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세계적이고 영원한 특성이 있다.
셋째날(화) 언약의 돌판
6월 3일
“그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며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니”(신 9:9).
물론 언약은 약속을 기초로 하지만, 일반적으로 약속이 성취되기 전에 만족시켜야 할 조건이 있다. 아브라함 언약에서는 아브라함이나 후손들이 낳은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는 것이 조건이다.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을 때, 하나님은 언약 관계의 의무 사항들을 친히 돌판에 새기셨다(신 9:8~11). 십계명에 보존된 이 요구사항들은 하나님이 모든 인류와 맺은 영원한 언약의 기초가 될 것이었다.
십계명은 언약의 조건들을 자세히 기술하기 때문에 종종 “언약의 돌판”(신 9:9)이라고 불린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들이 어렵게 살도록 만든 일종의 장애물 코스가 되도록 의도하지 않는다. 대신 십계명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으로서 그분과 언약 관계에 들어간 자들의 유익을 위해 주어졌다.
1.렘 31:31~34과 히 10:11~18은 어떤 방식으로 신약에 나오는 율법의 영원한 속성을 지지하는가?
[렘31:31~3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히10:11~18]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15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16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답: 새 언약은 하나님의 법을 우리 마음과 생각에 새기는 것이다. 인격이 하나님의 법과 일치하게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시내산에서 맺은 옛 언약 아래서 이스라엘 백성과 그 공동체에 연합한 자들은 십계명을 준수함으로써 언약에 대한 성실성을 증명할 의무가 있었다. 계명을 어길 경우에 죄 사함을 받기 원한다면 동물 희생을 바쳐야 했다.
갈보리에서 맺은 새 언약 아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여전히 십계명을 지킬 의무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죄를 짓고 매번 희생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의 완전한 제물이시기 때문이다(히 9:11~14). 새 언약은 옛 언약보다 훨씬 뛰어나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제공되는 용서의 약속을 믿음으로 주장하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돌에 새긴 언약을 주셨다. 우리가 십계명이라고 하는 언약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이루어주실 내용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하게 되는 인격으로 재창조를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십계명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성경에는 없다. 한글 성경에도 세 번밖에 없다. 출34:28과 신4:13과 10:4이다. 영어에도 이 세 곳 외에는 없다. 히브리어는 이 세 곳을 다 “에셰레트 하다바림”이라고 썼는데, “에셰르”는 10이고 “다바림”은 말씀들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언약의 열 말씀들”이라는 말이다. 이것을 번역하는 사람들이 십계명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십계명이 맞지만 원어를 직역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십계명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다. 스데반은 이것을 “생명의 도”라고 말했다. 헬라어로 “로기아 존타”이다. 로기아는 말씀이라는 말이고 존타는 생명이라는 말이다. 요즘 번역들은 생명의 말씀이라고 번역하였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아 백성들에게 전한 것은 언약의 열 말씀들인데, 그것이 곧 생명의 도라는 말이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 예수 안에서 생명으로 옮길 때 그들이 걸어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언약의 내용이다. 옛 언약이나 새 언약이나 다 내용은 바로 이 생명의 도이다. 우리가 생명을 가졌으면 이 길을 걷게 되어 있다. 생명이 없으면 이 길을 걸을 수 없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7)고 분명히 가르쳐주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생명이 있는가?
교훈 : 계명의 준수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의 의무이며 계명을 범한 사람은 희생 제물로 속죄해야 하는데 새 언약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제물이 되셨다.
넷째날(수) 언약과 복음(히 9:15~22)
6월 4일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히 9:15).
성경에서 어떤 언약을 어길 때는 심각한 결과가 따랐다. 야훼는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받지 않은 남자는 누구든지 선택받은 무리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경고하셨고(창 17:14), 시내 언약의 조건들을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는 장황한 저주가 쏟아졌다(신 27:11~26). 결과적으로 언약의 조건을 어기는 자들은 죽음의 형벌을 당해야 했다(겔 18:4). 이는 새 언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고 거부하는 자들은 영생에 이르는 접근이 거부당할 것이다(롬 6:23).
1. 히 9:15~28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복음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히9:15~28]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17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유언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 18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19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21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25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답: 제사제도에서 피 흘려 죽은 생축(牲丑)들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속죄를 위하여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희생을 지적하면서 피 흘림으로 사유함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예수께서 그렇게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재림을 기쁨으로 기다릴 수 있다고 가르친다.
히 9:15~28은 복음을 반복한다. 왜냐하면 복음이 신자들을 위하여 약속을 보증하는 그리스도의 역할을 선언하기 때문이다. 중보자가 없다면 영원히 멸망할 자들에게 예수님은 새 언약의 중보자로서 영생을 제공하신다(15절).
어떤 번역 성경은 16~17절에서 ‘언약’을 논의하다가 ‘유언’이란 단어를 소개한다. 그러나 그리스어로 두 단어는 같은 말이다. 이는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인다. 문맥을 봤을 때 이 말씀은 그리스도가 없다면 언약이 각 죄인의 죽음을 요구하리라는 사실을 신자들에게 상기시킨다. 그러나 죄인은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로 속죄와 정결함을 얻을 수 있고 그분의 재림을 열렬하게 기다리는 무리 가운데 설 수 있다(히 9:28).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의가 더러운 옷과 같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를 더러운 죄에서 깨끗이 씻어서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화(化)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정로의 계단, 29).
<부가설명> 여기 인용한 성경구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를 이루셨다는 것을 강력하게 가르치는 것이다. 옛날 짐승을 잡아 속죄제를 드린 것은 그 자체로서는 속죄가 되지 않고 오히려 죄를 생각나게 하는 것을 지적한다.(히10:1~4) 죄를 생각나게 하여 구주가 오셔서 희생하지 않으면 짐승으로 드린 제사가 아무 효력이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드디어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피를 흘려 돌아가심으로 죄를 속하시고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서 죄와 상관없이 오시는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도록 하신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그의 피를 힘입어 죄 사함을 받았을 때 영광중에 우리 주님의 재림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다. 이 언약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중보로 인해 멸망을 피하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복음을 발견한다.
다섯째날(목) 언약의 축복(엡 2:6)
6월 5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6).
우리는 많은 경우 조건을 만족시키기 전에 언약이 보증하는 약속을 경험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주택을 구입한 사람은 매입금을 다 지불하기 전부터 그 집에서 살 수 있다. 또 시민들은 세금을 납부하기 전에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들어간 자들은 미래에 그 약속들이 실현되기 전에 미리 언약의 축복을 경험할 수 있다.
십계명을 예로 들자면 단순히 계명을 따르기만 해도 사람들이 얼마나 큰 고통과 아픔을 피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 개인적으로 십계명을 범할 때 심적 고통을 느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심지어 고통은 율법을 범한 사람에게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 그 죄인과 근접한 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1. 아래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예수님과의 언약 관계에서 현재 찾을 수 있는 축복들은 무엇인가?
[고후 4:16~18]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 날로 새로워지는 속 사람을 경험하게 된다.
[요일 5:11~13]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누리고 영생을 소유하게 된다.
[빌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 하나님께서 우리로 예수 재림하실 때에 맞을 수 있도록 이루어주시는 것을 경험한다.
[요 5:24]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고 심판에 이르지 않게 된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매우 강한 어조로 자신을 영접한 자들은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고 말씀하셨다. 신자들은 비록 이 땅에 얽매여 있지만, 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엡 2:6).
<부가설명> 언약을 받아들이고 예수 안에서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은 이미 영생을 확보한 사람이다. 그들은 사망의 근심이 없어진 사람들이다. 사망이 그들을 주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호흡이 끊어지더라도 영원한 생명의 부활이 기다리고 있다. 비록 의식이 없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명을 보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가장 확실한 생명 은행이시다.(골3:1~4) 우리 생명이신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하나님의 언약을 받고 예수를 믿은 모든 사람들은 영광중에 예수님을 맞을 것이다. 옛 언약이나 새 언약이나 다 이것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언약이 우리의 인격이 되도록 굴복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언약에는 미래에 성취될 약속뿐 아니라 지금부터 누릴 수 있는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 131~137 “은혜의 언약”을 읽어 보라.
“이 같은 언약이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창 22:18)라는 약속 가운데 아브라함에게 되풀이 되었다. 이 약속은 그리스도를 가리켰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이해하고 죄의 용서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신뢰하였다. 그가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은 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갈 3:8, 16 참조) 아브라함과의 언약은 하나님의 율법의 권위도 보존하였다.…아브라함과의 언약은 그리스도의 피로 비준되었고 그것을 비준시킨 피가 처음 언약의 피보다 후에 흘려진 까닭에 그것은 ‘둘째’ 또는 ‘새’ 언약이라고 불린다”(부조와 선지자, 370~371).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출 31:16과 사 56:4~6은 언약에 있어서 안식일의 중요성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겔 20장 참고)
[출31:16]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사56:4~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를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5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치지 않게 할 것이며 6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 안식일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영원한 언약의 표이다. 그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피조물이 창조주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주장을 하는 것과 같이 된다.
➋ 사람들은 종종 아브라함과 맺은 옛 언약은 행위 언약이며, 반대로 새 언약은 은혜 언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이 잘못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언약이 언제나 은혜 언약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성경절은 무엇입니까? 왜 언약은 절대 행위가 아닌 은혜로 성립되어야 합니까?
※ 히9:18~26을 읽어보라. 사55:3은 영원한 언약이 은혜라고 직접 계시하였다. 행위를 주장한다면 구원은 인간의 공로와 관계된다. 그러나 구원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것이다.
➌ 에베소서 1장에 ‘영원한 언약’이라는 말은 없지만 그 장이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인간의 구원이 영원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게시하기 때문이다.
➍ 하나님은 무지개를 표징으로 세상을 다시는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하지만 혹자의 말대로 노아 홍수가 지엽적인 사건이었다면 그런 생각은 하나님의 약속을 어떻게 변질시킵니까? 노아 홍수가 전 세계적인 사건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성경 진리에 큰 위협을 가져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후에 발생했던 지역적인 홍수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노아 홍수가 단지 지역적인 사건이었다면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 지엽적이라고 하면 전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을 지역적인 것을 한정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복음을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일몰:오후 7시 51분
기억절 :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히 9:15).
연구 범위 : 창 9:12~17, 창 17:2~12, 갈 3:15~28, 신 9:9, 히 10:11~18, 히 9:15~28.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하나님의 결심은 오랜 세월 동안 언약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되었다. 성경은 언약을 복수 형태로 언급하지만(롬 9:4, 갈 4:24, 엡 2:12), 사실상 지금까지 존재한 언약은 모두 은혜의 언약이다. 그 언약 안에서 죄인은 인간의 공로가 아닌 믿음으로 주장하면 누구에게나 제공되는 예수님의 공로를 기초로 구원을 받는다.
언약이 복수 형태인 이유는 하나님이 여러 다른 시대와 환경 속에 있던 백성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언약을 재천명함으로써 구원의 목적을 발전시켜 오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언제나 한 언약, 즉 구원을 약속하는 영원한 은혜의 언약이다.
이 언약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신실하고 변함없는 사랑이 있다. 성경은 종종 이 사랑을 언약 자체와 동일시한다(신 7:9, 왕상 8:23, 단 9:4). 또한 구원의 수단이 아닌 구원의 결과로써 율법에 순종하라는 하나님의 요구는 언약의 한 부분이다. 율법과 은혜는 언제나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의 핵심이었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옛 언약과 새 언약이 모두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 기초해 있음을 깨닫는다.
➋ 느끼기 :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 속에 있는 특권을 인식한다.
➌ 행하기 :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한다.
A.
❷ 인간의 언약과 하나님의 언약은 어떻게 다릅니까?
※ 사람의 언약은 대체적으로 상호적이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며 인간은 언약을 지키지 못할 경우가 생길 수 있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지켜지는 것이다.
❸ 하나님은 어떻게 언약을 지키셨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그분과의 언약을 지켜야 합니까?
※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지켰다. 우리는 그 언약의 결과를 감사함으로 누려야 한다.
❹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 언약의 조건을 기억하고 그것이 생명의 도라는 것을 깨닫고 생명의 길로 걸어야 한다.
B.
❷ 하나님과의 언약에서 계명은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합니까?
※ 계명은 언약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생명을 얻었을 때 그 생명이 걸어가는 길이다.
❸ 하나님이 제안하시는 ‘은혜 언약’에서 우리는 어떤 복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언약이 우리에게 이루어진다는 복음이다.
결론 : 옛 언약과 새 언약은 모두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을 믿는 죄인들에게 구원을 약속하는 은혜의 언약에 대한 재천명입니다.
첫째날(일) 언약의 징표(창 9:12~17)
6월 1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창 9:16).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창 17:10).
언약이란 한쪽 또는 양쪽의 약속을 바탕으로 한 양자 간의 합의라고 정의할 수 있다. 언약을 성립시키는 두 가지 기본적인 방식이 있다. 첫째는 언약에 임하는 양측이 관계의 조건에 동의하고 서로에게 약속하는 방식이다. 결혼, 사업합병, 부동산 매매가 그 예이다. 둘째는 한쪽이 약속과 조건을 일방적으로 명시함으로 언약을 주도하고 상대측이 참여하도록 초청하는 방식이다. 세금 또는 교육 기관 등록비 납부가 이에 해당한다. 두 방식 모두 계약에서 철회할 자유가 있고 그 경우 대개 어떤 결과가 따른다. (예를 들어 융자금을 갚지 못한 사람은 집을 잃게 되고 세금 납부를 거부하는 사람은 형사처분을 받는다.)
언약은 적어도 하나의 상징으로 확정된다. 예를 들면 주택을 구입한 사람은 대출 기관과 융자계약서에 여러 번 서명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융자금을 완전히 상환할 때까지 부동산권리는 위탁된다. 결혼한 사람들은 정부에 의해 혼인증명서를 발행 받는다. 징표는 언약이 아니지만 그 사람이 언약을 지킬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1. 창 9:12~17과 17:2~12을 읽어 보라. 이 경우에 언약과 징표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또한 두 언약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창9:12~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창17:2~1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4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답: 언약은 하나님께서 해 주시겠다는 약속이고 징표는 하나님의 이 약속을 기억하게 하는 표이다. 노아와 언약은 온 인류에 대한 것이고, 아브라함과는 그에게서 형성될 민족과 한 약속이다. 이것이 두 언약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창 9:9에서 하나님은 땅을 다시 물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세상과 언약을 맺으신다. 그래서 공중에 무지개가 생길 때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게 되었다. 할례의 징표도 마찬가지이다. 할례는 모든 민족에게 복을 전하는 선민으로서의 역할을 유대인 남자에게 상기시켜야 했다. 전자는 모든 인류와 맺은 언약이고, 후자는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과 맺은 언약이다.
홍수 이후에 맺은 언약에서 백성들은 특별히 해야 할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사람의 행위와 상관없이 약속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은 그렇지 않았다. 백성들은 그들의 몫을 성취해야 했다. 언약은 일회성을 넘어 관계의 지속적인 특성을 말한다. 또한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방적이든 쌍방적이든 의무와 조건이 있음을 뜻한다. 만약 이런 개념이 희박하다면 언약 관계로 보기 어렵다.
<부가설명> 오늘 교과는 언약에 대하여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준 것 같다. 성경에 언약이라는 말이 창세기 6장 18절에 처음 나타난다. 노아와 세우겠다고 하신 언약이다. 노아와 그의 식구들이 방주에 들어갈 때에 생명을 보존할 것이라는 약속이다. 다음에는 9:9절 이후에 나타나는데 홍수가 지난 다음이다. 6장에 하신 언약을 실현하는 내용을 담았고 그 언약을 실천하시겠다는 표로 무지개를 하늘에 두셨다. 그리고 영원한 언약이라고 말씀하셨다. 교과 저자의 표현대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께서 제시한 언약은 은혜의 언약인데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보존하시겠다는 언약이다. 곧 영원한 구원의 언약이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이 제시한 언약은 옛 언약이나 새 언약이나 모두 영원한 구원의 언약이요 은혜이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사55:3)
교훈 : 무지개나 할례처럼 모든 언약에는 징표가 따르며 징표는 언약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둘째날(월) 언약의 약속
6월 2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언약은 약속을 기초로 한다. 사실 두 단어는 바꿔 써도 무방하다. 물론 언약을 맺을 때 약속(언약)을 한 사람은 약속(언약)을 이행할 능력이 있음을 전제한다.
구약에서 어떤 언약들은 지역적이고 제한적이었다(창 31:43~54 참고). 야곱과 라반의 경우는 언약이 두 사회 사이에 맺는 일종의 거래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미스바에 세워진 기념비는 오직 두 종족에게 해당되는 조약의 징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약의 당사자들이 죽은 뒤에는 조약의 조건이 무의미해진다.
이렇듯 인간 사이에 맺은 언약과 다르게 야훼 하나님이 노아나 아브라함과 수립하신 언약은 영원한 의의가 있었다.
1. 갈 3:15~28은 아브라함 언약의 의미를 어떤 식으로 더 폭넓게 설명하는가?
[갈3:15~28]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20 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답: 바울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확대 설명하였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몇 번 모든 인류와 관련된 약속을 하시면서 세계적인 언약을 맺으셨다. 온 세상이 홍수의 영향을 받은 사실을 보시고 야훼는 다시는 세상을 물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의 경우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의가 필요함을 보시고 아브라함의 “씨(후손)”를 통해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창 22:18).
물론 하나님은 한 민족과 시내 언약을 맺으셨지만, 그 언약은 세계적인 의미가 있었다. 하나님은 어떤 외국인이든지 선민에 참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사명은 온 세상을 위한 복음의 빛이 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출 12:48~49, 19:5~6).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제시하시는 언약은 일방적이다.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데, 언약의 수혜자(受惠者)는 사람이다. 사람이 언약의 수혜를 한다고 하나님께 이득이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베푸시는 분이시고 사람을 그것을 받아 누리는 것이다. 받지 않으면 사람이 해를 당할 것일 뿐 또 하나님께 손해가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시기를 갈망하신다. 사람들이 이것을 완전히 거절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에 슬픔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손해는 사람이 보는 것이다. 언약은 은혜이기 때문에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며, 그것을 어떻게 실현하는지를 가르쳐주는 내용이다. 우리의 할 몫은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우리에게 부탁한 조건을 수행하는 것일 뿐이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행하였고, 또 모세를 통하여서는 제사를 드리게 했고, 오늘 우리들에게는 예수님을 구주로 확신하라고 한 것이 부탁한 조건이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믿으면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하늘까지 이르게 할 것이다.
교훈 : 언약은 약속을 기초로 하며 인간의 언약에는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세계적이고 영원한 특성이 있다.
셋째날(화) 언약의 돌판
6월 3일
“그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며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니”(신 9:9).
물론 언약은 약속을 기초로 하지만, 일반적으로 약속이 성취되기 전에 만족시켜야 할 조건이 있다. 아브라함 언약에서는 아브라함이나 후손들이 낳은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는 것이 조건이다.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을 때, 하나님은 언약 관계의 의무 사항들을 친히 돌판에 새기셨다(신 9:8~11). 십계명에 보존된 이 요구사항들은 하나님이 모든 인류와 맺은 영원한 언약의 기초가 될 것이었다.
십계명은 언약의 조건들을 자세히 기술하기 때문에 종종 “언약의 돌판”(신 9:9)이라고 불린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들이 어렵게 살도록 만든 일종의 장애물 코스가 되도록 의도하지 않는다. 대신 십계명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으로서 그분과 언약 관계에 들어간 자들의 유익을 위해 주어졌다.
1.렘 31:31~34과 히 10:11~18은 어떤 방식으로 신약에 나오는 율법의 영원한 속성을 지지하는가?
[렘31:31~3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히10:11~18]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15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16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답: 새 언약은 하나님의 법을 우리 마음과 생각에 새기는 것이다. 인격이 하나님의 법과 일치하게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시내산에서 맺은 옛 언약 아래서 이스라엘 백성과 그 공동체에 연합한 자들은 십계명을 준수함으로써 언약에 대한 성실성을 증명할 의무가 있었다. 계명을 어길 경우에 죄 사함을 받기 원한다면 동물 희생을 바쳐야 했다.
갈보리에서 맺은 새 언약 아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여전히 십계명을 지킬 의무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죄를 짓고 매번 희생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의 완전한 제물이시기 때문이다(히 9:11~14). 새 언약은 옛 언약보다 훨씬 뛰어나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제공되는 용서의 약속을 믿음으로 주장하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돌에 새긴 언약을 주셨다. 우리가 십계명이라고 하는 언약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이루어주실 내용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하게 되는 인격으로 재창조를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십계명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성경에는 없다. 한글 성경에도 세 번밖에 없다. 출34:28과 신4:13과 10:4이다. 영어에도 이 세 곳 외에는 없다. 히브리어는 이 세 곳을 다 “에셰레트 하다바림”이라고 썼는데, “에셰르”는 10이고 “다바림”은 말씀들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언약의 열 말씀들”이라는 말이다. 이것을 번역하는 사람들이 십계명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십계명이 맞지만 원어를 직역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십계명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다. 스데반은 이것을 “생명의 도”라고 말했다. 헬라어로 “로기아 존타”이다. 로기아는 말씀이라는 말이고 존타는 생명이라는 말이다. 요즘 번역들은 생명의 말씀이라고 번역하였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아 백성들에게 전한 것은 언약의 열 말씀들인데, 그것이 곧 생명의 도라는 말이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 예수 안에서 생명으로 옮길 때 그들이 걸어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언약의 내용이다. 옛 언약이나 새 언약이나 다 내용은 바로 이 생명의 도이다. 우리가 생명을 가졌으면 이 길을 걷게 되어 있다. 생명이 없으면 이 길을 걸을 수 없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7)고 분명히 가르쳐주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생명이 있는가?
교훈 : 계명의 준수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의 의무이며 계명을 범한 사람은 희생 제물로 속죄해야 하는데 새 언약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제물이 되셨다.
넷째날(수) 언약과 복음(히 9:15~22)
6월 4일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히 9:15).
성경에서 어떤 언약을 어길 때는 심각한 결과가 따랐다. 야훼는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받지 않은 남자는 누구든지 선택받은 무리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경고하셨고(창 17:14), 시내 언약의 조건들을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는 장황한 저주가 쏟아졌다(신 27:11~26). 결과적으로 언약의 조건을 어기는 자들은 죽음의 형벌을 당해야 했다(겔 18:4). 이는 새 언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고 거부하는 자들은 영생에 이르는 접근이 거부당할 것이다(롬 6:23).
1. 히 9:15~28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복음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히9:15~28]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17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유언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 18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19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21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25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답: 제사제도에서 피 흘려 죽은 생축(牲丑)들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속죄를 위하여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희생을 지적하면서 피 흘림으로 사유함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예수께서 그렇게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재림을 기쁨으로 기다릴 수 있다고 가르친다.
히 9:15~28은 복음을 반복한다. 왜냐하면 복음이 신자들을 위하여 약속을 보증하는 그리스도의 역할을 선언하기 때문이다. 중보자가 없다면 영원히 멸망할 자들에게 예수님은 새 언약의 중보자로서 영생을 제공하신다(15절).
어떤 번역 성경은 16~17절에서 ‘언약’을 논의하다가 ‘유언’이란 단어를 소개한다. 그러나 그리스어로 두 단어는 같은 말이다. 이는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인다. 문맥을 봤을 때 이 말씀은 그리스도가 없다면 언약이 각 죄인의 죽음을 요구하리라는 사실을 신자들에게 상기시킨다. 그러나 죄인은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로 속죄와 정결함을 얻을 수 있고 그분의 재림을 열렬하게 기다리는 무리 가운데 설 수 있다(히 9:28).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의가 더러운 옷과 같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를 더러운 죄에서 깨끗이 씻어서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화(化)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정로의 계단, 29).
<부가설명> 여기 인용한 성경구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를 이루셨다는 것을 강력하게 가르치는 것이다. 옛날 짐승을 잡아 속죄제를 드린 것은 그 자체로서는 속죄가 되지 않고 오히려 죄를 생각나게 하는 것을 지적한다.(히10:1~4) 죄를 생각나게 하여 구주가 오셔서 희생하지 않으면 짐승으로 드린 제사가 아무 효력이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드디어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피를 흘려 돌아가심으로 죄를 속하시고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서 죄와 상관없이 오시는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도록 하신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그의 피를 힘입어 죄 사함을 받았을 때 영광중에 우리 주님의 재림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다. 이 언약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중보로 인해 멸망을 피하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복음을 발견한다.
다섯째날(목) 언약의 축복(엡 2:6)
6월 5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6).
우리는 많은 경우 조건을 만족시키기 전에 언약이 보증하는 약속을 경험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주택을 구입한 사람은 매입금을 다 지불하기 전부터 그 집에서 살 수 있다. 또 시민들은 세금을 납부하기 전에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들어간 자들은 미래에 그 약속들이 실현되기 전에 미리 언약의 축복을 경험할 수 있다.
십계명을 예로 들자면 단순히 계명을 따르기만 해도 사람들이 얼마나 큰 고통과 아픔을 피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 개인적으로 십계명을 범할 때 심적 고통을 느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심지어 고통은 율법을 범한 사람에게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 그 죄인과 근접한 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1. 아래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예수님과의 언약 관계에서 현재 찾을 수 있는 축복들은 무엇인가?
[고후 4:16~18]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 날로 새로워지는 속 사람을 경험하게 된다.
[요일 5:11~13]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누리고 영생을 소유하게 된다.
[빌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 하나님께서 우리로 예수 재림하실 때에 맞을 수 있도록 이루어주시는 것을 경험한다.
[요 5:24]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고 심판에 이르지 않게 된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매우 강한 어조로 자신을 영접한 자들은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고 말씀하셨다. 신자들은 비록 이 땅에 얽매여 있지만, 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엡 2:6).
<부가설명> 언약을 받아들이고 예수 안에서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은 이미 영생을 확보한 사람이다. 그들은 사망의 근심이 없어진 사람들이다. 사망이 그들을 주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호흡이 끊어지더라도 영원한 생명의 부활이 기다리고 있다. 비록 의식이 없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명을 보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가장 확실한 생명 은행이시다.(골3:1~4) 우리 생명이신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하나님의 언약을 받고 예수를 믿은 모든 사람들은 영광중에 예수님을 맞을 것이다. 옛 언약이나 새 언약이나 다 이것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언약이 우리의 인격이 되도록 굴복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언약에는 미래에 성취될 약속뿐 아니라 지금부터 누릴 수 있는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 131~137 “은혜의 언약”을 읽어 보라.
“이 같은 언약이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창 22:18)라는 약속 가운데 아브라함에게 되풀이 되었다. 이 약속은 그리스도를 가리켰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이해하고 죄의 용서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신뢰하였다. 그가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은 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갈 3:8, 16 참조) 아브라함과의 언약은 하나님의 율법의 권위도 보존하였다.…아브라함과의 언약은 그리스도의 피로 비준되었고 그것을 비준시킨 피가 처음 언약의 피보다 후에 흘려진 까닭에 그것은 ‘둘째’ 또는 ‘새’ 언약이라고 불린다”(부조와 선지자, 370~371).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출 31:16과 사 56:4~6은 언약에 있어서 안식일의 중요성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겔 20장 참고)
[출31:16]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사56:4~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를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5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치지 않게 할 것이며 6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 안식일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영원한 언약의 표이다. 그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피조물이 창조주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주장을 하는 것과 같이 된다.
➋ 사람들은 종종 아브라함과 맺은 옛 언약은 행위 언약이며, 반대로 새 언약은 은혜 언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이 잘못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언약이 언제나 은혜 언약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성경절은 무엇입니까? 왜 언약은 절대 행위가 아닌 은혜로 성립되어야 합니까?
※ 히9:18~26을 읽어보라. 사55:3은 영원한 언약이 은혜라고 직접 계시하였다. 행위를 주장한다면 구원은 인간의 공로와 관계된다. 그러나 구원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것이다.
➌ 에베소서 1장에 ‘영원한 언약’이라는 말은 없지만 그 장이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인간의 구원이 영원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게시하기 때문이다.
➍ 하나님은 무지개를 표징으로 세상을 다시는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하지만 혹자의 말대로 노아 홍수가 지엽적인 사건이었다면 그런 생각은 하나님의 약속을 어떻게 변질시킵니까? 노아 홍수가 전 세계적인 사건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성경 진리에 큰 위협을 가져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후에 발생했던 지역적인 홍수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노아 홍수가 단지 지역적인 사건이었다면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 지엽적이라고 하면 전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을 지역적인 것을 한정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복음을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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