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과 그리스도의 율법 그리고 복음(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5/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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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4-05-23 09:07 조회8,265회 댓글0건본문
5월 31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47분
기억절 :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
아 온 것이라”(개역, 요 1:17).
연구 범위 : 롬 7:7~12, 신 30:15~20, 마 7:24~27, 행 10:34~35, 요 15:10, 엡 2:1.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약 백 년 전에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는 중세시대까지 역사 속에 파묻혔던 ‘만물의 본성에 관하여(On the Nature of Things)’라는 유명한 시를 남겼다. 때로 무신론자라는 비난을 받지만 루크레티우스는 그의 시에서 신들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그들이 신이기 때문에 인간사에 전혀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성경은 세상에 유일신이 계시며 그분은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이 지대하시다고 주장한다. 인류에 대한 그분의 뜨거운 관심은 그분의 율법(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안내해 주는)과 그분의 은혜(율법을 범했을지라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편)를 통해 나타난다. 때로 은혜와 율법은 서로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둘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것들은 작용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지만, 의가 죄를 이길 것이라는 사실을 함께 보여준다. 하나님의 율법과 은혜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구원하여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려는 그분의 소망을 강력하게 증언한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율법과 은혜가 죄를 이기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함께 계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➋ 느끼기 :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뜨거운 관심을 감사하게 여긴다.
➌ 행하기 :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하나님과 협력한다.
A.
❷ 우리는 율법에서 하나님의 품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 율법은 사망이 된 사람들의 상태를 올바르게 깨닫게 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사모하여 얻도록 이끄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다.
❸ 예수님이 가져오신 은혜와 복음은 율법과 더불어 하나님의 품성을 어떻게 나타냈습니까?
※ 율법으로 자신의 실상을 깨달은 사람은 예수님께 나아와서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드러낸다.
❹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품성을 기초로 세 천사의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 복음의 핵심이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임을 깨달을 때에 생명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고 그 생명이 바로 사랑으로 드러나는 것임을 알 때 하나님의 품성을 기초로 증거할 수 있을 것이다.
B.
❷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율법을 깨닫게 됩니까?
※ 어렵지만 천연계와 인간관계 속에서 양심의 작용으로 희미하게나마 깨달을 수 있다.
❸ 율법을 알고 복음을 깨닫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부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 사람들에게 깨달은 복음을 전하도록 하셔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❹ 어떻게 하면 우리가 율법에 나타난 진리와 예수님이 가져오신 십자가 은혜 그리고 약속된 구원의 복을 전하는 훌륭한 통로가 될 수 있을까요?
※ 성경의 진리를 먼저 바르게 깨닫고 깨달은 진리대로 생활할 때 이루어질 것이다.
결론 : 하나님의 율법은 그분의 은혜와 함께 인류에 대한 그분의 사랑과 우리를 구원하여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려는 그분의 소망을 강력하게 증언합니다.
첫째날(일) 죄와 율법
5월 25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 7:7).
1. 롬 7:7~12을 읽어 보라. 여기서 바울은 죄와 율법의 관계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는가? 심지어 바울은 왜 ‘율법이 죄냐?’고 질문해야 했을까?
[롬7:7~1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9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답: 율법은 사람 속에 있는 죄를 밝히 드러내어서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율법의 기능을 확실히 알게 하기 위하여 그런 질문을 먼저 던진 것이다.
바울은 ‘율법이 죄냐?’는 수사적인 질문을 하면서까지 율법과 죄를 밀접하게 연결시킨다. 대답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바울은 끝부분에서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롬 7:12)다고 말한다. “이로 보건대”라는 표현은 그의 논증의 결론임을 말한다. 즉 율법은 절대 죄가 아니며 진실로 거룩하고 선한다.
여기서 바울의 논리는 형법과 범죄 사이의 관계와 유사하다. 어떤 것이 범죄가 되려면 법이 그것을 그렇게 명시해야 한다. 어떤 나라에서는 합법적인 행위가 어떤 나라에서는 감옥에 갈 일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한 나라에서는 그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금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똑같은 행동이라도 결과는 다르다. 무엇이 다른 차이를 만드는가? 법이다.
하지만 법이라고 다 선한 것은 아니다. 미국 초기에는 도망한 노예를 주인에게 돌려보내라는 법이 있었다. 법이긴 법이지만 전혀 공의롭지 못한 법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그분의 품성을 반영한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이 거룩하며 선하다고 말했다. 누가 그런 법을 제정하였는지 생각해 본다면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2. 율법에 대한 자신의 요점을 증명하기 위해서 바울이 롬 7:7에서 언급한 계명의 핵심은 무엇인가? 바울은 왜 “도둑질하지 말라” 같은 계명 대신에 그 계명을 사용했을까?
답: 탐내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의 본성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사용하였다.
바울이 다른 계명 대신에 그 계명을 사용했던 이유는 그것이 잘못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탐심이 죄라고 믿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살인이나 절도는 그렇게 믿는다. 일반적으로 그것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 십계명까지 필요하지는 않다. 그러나 탐심은 경우가 다르다. 그래서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 보여준다는 바울의 논점을 증명하는 데 딱 들어맞는 예이다. 그렇지 않다면 탐심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그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부가설명> 사람의 마음에는 탐심이 가득하다. 다른 말로하면 이기심이다. 탐심은 자기를 이롭게 하려는 본성이 드러나는 형태이다. 이기심은 사망의 특성인데, 호흡이 있는 동안 자기를 유쾌하게 하고 즐기려는 성질인 것이다. 그것이 본성이기 때문에 죄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고 생각하고 거의 죄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탐내지 말라는 계명이 제정되었을 때 그것은 정죄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 정죄된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 태어나면서 탐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 결코 없다. 어떤 사람들은 갓난아이들은 탐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착각이요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성장하면서 그것도 성장한다. 아담 후손들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십계명의 열째 계명에서 바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탐심이 있는 한 다른 계명들도 준행될 수 없다.
교훈 : 사람이 만든 법은 때로 공의롭지 못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제정하신 법은 그분의 품성을 반영하기 때문에 선하고 의로우며 정확하게 죄를 가리킨다.
둘째날(월) 율법과 이스라엘(신 30:15~18)
5월 26일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신 30:15~16).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신 일은 특별한 행위였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기 직전에 그분의 백성들이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출 19:6)임을 상기시키셨다. 하나님이 지상의 모든 민족 가운데 그분의 율법을 특별하게 계시한 민족은 바로 이스라엘이었다(롬 9:4). 율법을 주신 의도는 백성에게 짐을 지우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선택 받은 민족이 하나님 정부의 기초인 도덕적 규범을 민중들에게 드러내도록 주신 도구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세계적인 선교 사명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과 협력자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은 그분의 대리자들을 확인할 수 있는 표지(標識)였다.
1. 신 30:15~20에 따르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주신 언약과 율법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러한 원칙들은 새 언약 아래 있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가?(마 7:24~27 참고)
[신30:15~20]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6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17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18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치 못할 것이니라 19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
[마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답: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면 생명과 생존과 번성을 이룰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반석 위에 집을 짓고 안전한 삶을 누린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그분의 대표자로 선택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민족에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된 복을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 복은 결코 저절로 전해지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선택 받은 민족으로서 여호와의 뜻과 조화롭게 행하여야 했다. 모세는 생명과 번영이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킬 때에만 이르러 오리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신 30:15~16).
이스라엘 역사를 그르친 여러 반역의 일화를 보면 이스라엘 민족은 언약의 조건대로 사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롬 3:23)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근래의 역사에서도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 민족들이 전쟁도발, 편견, 압제의 태도로 하나님의 대의를 잘못 나타냈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하여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려고 하셨다. 아브라함을 택한 목적을 그 후손을 통하여 이루시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철저히 실패했다.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바울은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롬9:31,32)고 설명하였다.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복음을 이루시고 그분 안에서 성취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보배로운 백성과 제사장이 되는 것은 옛날 이스라엘이 이루는 것이 아니고 예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계1:5,6, 5:10) 하나님의 계명을 성취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께서 우리 각자의 생명이 될 때만 가능하다. 그래서 예수님을 떠나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가르치신 것이다. 우리가 율법과 행위에 대하여 공부할 때 이 점을 십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교훈 :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선택 받은 민족으로 율법을 받고 그 뜻에 따라 행하여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 했다.
셋째날(화) 율법과 민족들(행 10:34~35)
5월 27일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34~35).
1. 행 10:34~35, 17:26~27, 롬 1:20, 2:14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이 가르치는 핵심 교훈은 무엇인가?
[행10:34,35]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행17:26,27]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롬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2: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답: 하나님께서는 천연계와 사람의 양심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나타내셨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은 실패했어도 하나님은 다른 나라의 백성들을 증거 없이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특권이 없었던 자들은 천연계에 나타난 광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기별을 받았다(롬 1:20). 천연계 속에 펼쳐진 하나님의 책은 사람을 그분께로 인도하기에 충분한 정보를 담고 있다.
하나님은 또한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일정한 영적 갈망을 주입하신다. 바울에 따르면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느끼는 자들은 그분을 찾아 나설 것이다(행 17:27). 수많은 사람이 세상이 주는 명성, 권력, 돈, 섹스 그 무엇도 궁극적인 만족을 주지 못함을 깨닫고 인생의 허무함을 느낀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전도서의 기별이다. 이런 허무와 불만족은 종종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적인 것을 초월하는 존재를 찾도록 이끈다. 그들은 영혼의 갈망과 공허함을 진정시키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계시된 진리로 이끌림을 받는다. 하나님의 뜻이 문서나 천연계 어디에 계시되었든지 그것을 받은 사람은 그 계시대로 살 책임이 있다. 진리를 전달하는 매체와 관계없이 진리는 진리이기 때문에 그 진리를 억압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살 것이다(롬 1:18). 따라서 많은 사람이 성경 말씀 또는 십계명을 받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이 수집한 진리의 분량만큼 책임을 물으신다. 결국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되 하나님이 선지자 모세를 통해 분명하게 계시하신 율법이든, 또는 성문화된 율법은 모르지만 천연계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계발된 양심의 법이든 율법이 심판의 기준이 될 것이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당신에 계시는 것과 경배를 받으실 수밖에 없는 진실을 성경에 계시해주셨다. 그분이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이심을 창조로 증명하시고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가 그들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모든 조처를 하셨다. 사람에게는 양심을 통하여 알게 하셨고 그 외의 생물에게는 그것들의 생명을 보존하시는 것을 통하여 알게 하셨다. “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주께서 주신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시104:27~29) 욥기에서는 “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 생물들의 혼과 인생들의 영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욥12:7~10)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계신다는 것을 생명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 알 수 있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핑계하지 못한다. 오직 사람들만 사특한 생각으로 창조주를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성도들은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는 자가 되었으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교훈 : 율법은 천연계를 통해서도 계시된다. 그래서 누구든지 영적 갈망에 반응하여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그들이 깨달은 양심의 법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
넷째날(수) 은혜와 진리(요 1:17)
5월 28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17).
요한은 구속의 역사를 한 절로 압축하였다(요 1:17). 아담이 지은 죄의 결과로 모든 인류는 죽음의 저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예수님을 제외하면 인간 부모에게 태어난 그 누구도 죄를 짓는 성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이 저주는 강화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백성을 택하셔서 그들을 통해 다른 백성에게 빛을 비추시려는 의도로 그들에게 자신의 율법을 계시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 의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는 수단으로 율법을 제공하셨다.
1. 빌 2:8, 요 15:10, 마 26:39은 예수님이 사셨던 생애에 대하여 어떤 사실을 말하는가?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요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답: 철저하고 절대적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생애를 하셨다.
첫째 아담은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온 세상을 혼란과 속박에 빠뜨렸다. 반면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순종의 생애를 통하여 첫째 아담이 불러온 속박에서 세상을 건지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은 지구에 계셨을 때 자원하여 자신의 뜻을 아버지의 뜻에 굴복시키셨으며 죄를 짓지 않기로 결심하셨다. 저주와 거짓을 불러온 첫째 아담과 다르게 예수님은 이 세상에 “은혜와 진리”를 불러오셨다. 은혜와 진리는 율법을 대체하지 않는다. 대신 예수님은 율법만으로는 구원을 주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셨다. 그분이 가져오신 진리는 은혜에 대한 더 완전한 이해였다.
‘은혜’로 번역된 그리스어 ‘카리스(charis)는 ‘선물’을 뜻하며 ‘기쁨’을 의미하는 ‘카라(chara)’와도 관련이 있다. 예수님이 인류에게 주시는 선물은 영생이다. 또한 은혜는 그리스도의 내주(內住)를 나타내는데 그것은 율법이 장려하는 의에 신자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한다. 바울은 예수님이 육신의 죄를 정죄하면서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롬 8:4)지게 하셨다고 진술한다. 은혜는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시킬 뿐 아니라, 우리가 부르심에 따라 율법을 지킬 수 있도록 해 준다.
2. 롬 6:23, 엡 2:8에 따르면 예수님에게서 기원한 은혜의 속성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어떻게 인간에게 은혜를 공급하시는가?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답: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다.
<부가설명> 은혜와 진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임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첫째로 모세 오경과 관련된 말로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서 십계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우리에게 전한 것을 뜻하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다. 요1:14은 말씀이 육신에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데 그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다. 육신이 되어 거하신다는 말은 예수께서 성소라는 것을 뜻하는 표현이다.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있다. 언약궤 안에는 언약의 두 돌비가 있다. 언약의 돌비는 밖에서는 볼 수 없다.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은 순금으로 입혀놓은 궤와 뚜껑이다. 뚜껑은 시은좌(施恩座)라고 한다. 즉 순금 같은 은혜만 보이게 하였다. 그러나 궤 안에는 언약의 돌비가 있다. 그 언약은 은혜로 우리들에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돌비의 내용은 생명의 진리를 표상한다. 생명의 진리는 하나님의 은혜인 예수님에 의하여 우리들에게 성취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언약궤의 구조이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계명이 성취되고 예수를 믿을 때 우리에게도 성취되는 생명력이 주어진다는 것을 가르친다. 생명이 주어지면 그 생명의 기능과 능력이 우리로 하나님의 언약의 열 마디 말씀(십계명)을 이루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훈 : 예수님이 가져오신 은혜와 진리는 율법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내주로 말미암아 율법을 지키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주기 위한 것이다.
다섯째날(목) 율법과 복음(롬 1:16~17)
5월 29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6~17).
생활이 아무리 훌륭해도 끊임없이 죄를 상기시키는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질병, 죽음, 재난이 행복을 가로막는다. 개인의 입장에서 영적 안정감은 과거의 죄에 대한 기억, 심지어 다시 죄를 짓고자 하는 충동에 의해 위협을 받는다.
1. 롬 6:23, 7:24과 엡 2:1은 죄의 영향력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하는가?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엡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답: 죄는 사망이라고 말한다.
죄와 불의(不義) 가운데 사는 사람은 마지막 숨을 거두는 날이 되기를 기다리는 걸어가는 송장에 불과하다. 바울은 인간의 상태를 평가하면서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고 절규하였다. 이것은 불의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외침이다. 바울은 구원이 예수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재빠르게 깨닫는다(롬 7:25).
이것이 복음이다. 복음이란 불의의 육신에 갇혔던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을 수 있다는 소식이다. 복음은 이제 우리가 율법이 장려하는 의를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보증이다(롬 8:1).
바울이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할 때에 예수님의 죽음의 소식은 아직 제국에 회자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자들은 그분이 돌아가신 방법이 수치스러웠음을 충분히 이해하였다. 극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자들은 여생을 수치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러나 바울과 수많은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그 ‘수치스러운’ 죽음을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이해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고 선언하였다. 복음의 핵심은 종국에 죽음이 최후의 승리를 거두지 못할 것이며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자들이 새 땅에서 영원히 살리라는 위대한 약속에 있다.
<부가설명> 성경은 이 세상에 있는 아담의 후손들이 죄인이 아니고 다만 죄의 영향을 받고 있어서 죄를 지을 가능성이 너무나 농후한 죄인이 아닌 사람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단호하게 아담의 후손들은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라고 가르친다.(고전15:22) 그들은 아담에게서 썩어질 씨로 태어난 존재들이라고 가르친다.(벧전1:23)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이라고 단정한다.(엡4:22)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도덕적으로 최선을 행한다고 해도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일 뿐이다. 이런 사실이 사람이 선행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는 이유이다. 죽은 사람, 썩어질 씨로 태어난 썩어져가는 존재가 그들이 행하는 선행으로 썩어질 씨에서 썩지 않을 씨로 될 수 없고, 죽은 사람이 자기의 선행으로 살아날 수 없다. 생명이신 분이 그들에게 생명을 주지 않으면 결코 생명으로 일어설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아담의 후손으로서 인류의 진실한 상태이다. 이것을 깨닫고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자기의 선행의 공로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서 생명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영접하라고 성령께서 계속 권고하신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사망을 폐하시고 부활하셔서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셨다.(딤후1:10) 누구든지 예수 안에서 생명을 비로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다. 율법은 사람을 사망이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복음이신 예수님께 가면 생명을 얻는다고도 가르친다.
교훈 : 복음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음으로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 죽음을 이기고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보증한다.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5월 30일
<복음전도>, 231~232 “특수한 진리를 전파함”를 읽어 보라.
“피조물의 공로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거나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 일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주제를 분명하게 밝히도록 하자. 믿음과 행함으로 어떤 사람이 구원의 선물을 살 수 있다면 창조주는 피조물에 대하여 의무 아래 놓이게 된다. 여기서 거짓이 진리로 받아들여질 기회가 주어진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행하는 어떤 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그는 자신의 죄 때문에 고해성사를 해야 하는 가톨릭과 동일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구원은 품삯처럼, 일해서 얻을 수 있는 채무의 일부분이 된다. 그러나 만일 자신의 선한 행위 중 어떤 것으로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면, 구원은 오로지 한 사람의 죄인으로서 그가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믿기 때문에 받은 은혜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완전히 값없는 선물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자신의 선한 행실 안에 있는 타락한 인간의 공로로는 자신을 영생으로 이끌 수 없다는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이 모든 논쟁은 끝이 난다”(믿음과 행함, 19~2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위의 엘렌 G. 화잇의 글을 묵상해 보십시오. 이 글 가운데서 가장 심각한 죄인도 받을 수 있는 위대하고 희망적인 진리를 숙고해 보십시오.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위해 이 약속을 주장하며 또 어떻게 그 믿음대로 살아야 합니까?
※ 자신의 선한 행실 안에 있는 타락한 인간의 공로로는 자신을 영생으로 이끌 수 없다는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이 모든 논쟁은 끝이 난다. 인간의 선행이나 어떤 공로도 구원을 받는데 티끌만큼도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전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자신을 굴복할 때 믿음으로 사는 것이 확립될 것이다.
➋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기록된 계시를 접할 수 없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 그분의 뜻을 알리신다고 설명합니다(롬 1:20, 2:14, 행 17:26~27). 만약 하나님이 모든 백성에게 말씀하고 계신다면 선교사와 전도자들이 있어야 할 목적은 무엇입니까?
※ 첫째는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고, 다음은 전도하는 사람들이 구원받을 영혼들에 대한 사랑을 실천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고, 다음은 천연계의 계시나 양심은 구원의 도리를 밝게 깨닫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➌ 요 1:17은 “은혜와 진리”가 예수님에게서 나왔다고 진술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 말씀을 보고 ‘은혜와 진리’를 율법의 반대편에 둡니다. 왜 이것이 이분법적인 오류입니까? “은혜와 진리”는 어떻게 율법과 함께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냅니까?
※ 율법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주어서 은혜와 진리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하여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는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율법과 함께 일하는 하나님의 도구이다.
일몰:오후 7시 47분
기억절 :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
아 온 것이라”(개역, 요 1:17).
연구 범위 : 롬 7:7~12, 신 30:15~20, 마 7:24~27, 행 10:34~35, 요 15:10, 엡 2:1.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약 백 년 전에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는 중세시대까지 역사 속에 파묻혔던 ‘만물의 본성에 관하여(On the Nature of Things)’라는 유명한 시를 남겼다. 때로 무신론자라는 비난을 받지만 루크레티우스는 그의 시에서 신들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그들이 신이기 때문에 인간사에 전혀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성경은 세상에 유일신이 계시며 그분은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이 지대하시다고 주장한다. 인류에 대한 그분의 뜨거운 관심은 그분의 율법(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안내해 주는)과 그분의 은혜(율법을 범했을지라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편)를 통해 나타난다. 때로 은혜와 율법은 서로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둘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것들은 작용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지만, 의가 죄를 이길 것이라는 사실을 함께 보여준다. 하나님의 율법과 은혜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구원하여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려는 그분의 소망을 강력하게 증언한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율법과 은혜가 죄를 이기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함께 계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➋ 느끼기 :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뜨거운 관심을 감사하게 여긴다.
➌ 행하기 :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하나님과 협력한다.
A.
❷ 우리는 율법에서 하나님의 품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 율법은 사망이 된 사람들의 상태를 올바르게 깨닫게 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사모하여 얻도록 이끄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다.
❸ 예수님이 가져오신 은혜와 복음은 율법과 더불어 하나님의 품성을 어떻게 나타냈습니까?
※ 율법으로 자신의 실상을 깨달은 사람은 예수님께 나아와서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드러낸다.
❹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품성을 기초로 세 천사의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 복음의 핵심이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임을 깨달을 때에 생명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고 그 생명이 바로 사랑으로 드러나는 것임을 알 때 하나님의 품성을 기초로 증거할 수 있을 것이다.
B.
❷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율법을 깨닫게 됩니까?
※ 어렵지만 천연계와 인간관계 속에서 양심의 작용으로 희미하게나마 깨달을 수 있다.
❸ 율법을 알고 복음을 깨닫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부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 사람들에게 깨달은 복음을 전하도록 하셔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❹ 어떻게 하면 우리가 율법에 나타난 진리와 예수님이 가져오신 십자가 은혜 그리고 약속된 구원의 복을 전하는 훌륭한 통로가 될 수 있을까요?
※ 성경의 진리를 먼저 바르게 깨닫고 깨달은 진리대로 생활할 때 이루어질 것이다.
결론 : 하나님의 율법은 그분의 은혜와 함께 인류에 대한 그분의 사랑과 우리를 구원하여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려는 그분의 소망을 강력하게 증언합니다.
첫째날(일) 죄와 율법
5월 25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 7:7).
1. 롬 7:7~12을 읽어 보라. 여기서 바울은 죄와 율법의 관계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는가? 심지어 바울은 왜 ‘율법이 죄냐?’고 질문해야 했을까?
[롬7:7~1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9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답: 율법은 사람 속에 있는 죄를 밝히 드러내어서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율법의 기능을 확실히 알게 하기 위하여 그런 질문을 먼저 던진 것이다.
바울은 ‘율법이 죄냐?’는 수사적인 질문을 하면서까지 율법과 죄를 밀접하게 연결시킨다. 대답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바울은 끝부분에서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롬 7:12)다고 말한다. “이로 보건대”라는 표현은 그의 논증의 결론임을 말한다. 즉 율법은 절대 죄가 아니며 진실로 거룩하고 선한다.
여기서 바울의 논리는 형법과 범죄 사이의 관계와 유사하다. 어떤 것이 범죄가 되려면 법이 그것을 그렇게 명시해야 한다. 어떤 나라에서는 합법적인 행위가 어떤 나라에서는 감옥에 갈 일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한 나라에서는 그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금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똑같은 행동이라도 결과는 다르다. 무엇이 다른 차이를 만드는가? 법이다.
하지만 법이라고 다 선한 것은 아니다. 미국 초기에는 도망한 노예를 주인에게 돌려보내라는 법이 있었다. 법이긴 법이지만 전혀 공의롭지 못한 법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그분의 품성을 반영한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이 거룩하며 선하다고 말했다. 누가 그런 법을 제정하였는지 생각해 본다면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2. 율법에 대한 자신의 요점을 증명하기 위해서 바울이 롬 7:7에서 언급한 계명의 핵심은 무엇인가? 바울은 왜 “도둑질하지 말라” 같은 계명 대신에 그 계명을 사용했을까?
답: 탐내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의 본성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사용하였다.
바울이 다른 계명 대신에 그 계명을 사용했던 이유는 그것이 잘못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탐심이 죄라고 믿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살인이나 절도는 그렇게 믿는다. 일반적으로 그것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 십계명까지 필요하지는 않다. 그러나 탐심은 경우가 다르다. 그래서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 보여준다는 바울의 논점을 증명하는 데 딱 들어맞는 예이다. 그렇지 않다면 탐심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그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부가설명> 사람의 마음에는 탐심이 가득하다. 다른 말로하면 이기심이다. 탐심은 자기를 이롭게 하려는 본성이 드러나는 형태이다. 이기심은 사망의 특성인데, 호흡이 있는 동안 자기를 유쾌하게 하고 즐기려는 성질인 것이다. 그것이 본성이기 때문에 죄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고 생각하고 거의 죄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탐내지 말라는 계명이 제정되었을 때 그것은 정죄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 정죄된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 태어나면서 탐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 결코 없다. 어떤 사람들은 갓난아이들은 탐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착각이요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성장하면서 그것도 성장한다. 아담 후손들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십계명의 열째 계명에서 바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탐심이 있는 한 다른 계명들도 준행될 수 없다.
교훈 : 사람이 만든 법은 때로 공의롭지 못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제정하신 법은 그분의 품성을 반영하기 때문에 선하고 의로우며 정확하게 죄를 가리킨다.
둘째날(월) 율법과 이스라엘(신 30:15~18)
5월 26일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신 30:15~16).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신 일은 특별한 행위였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기 직전에 그분의 백성들이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출 19:6)임을 상기시키셨다. 하나님이 지상의 모든 민족 가운데 그분의 율법을 특별하게 계시한 민족은 바로 이스라엘이었다(롬 9:4). 율법을 주신 의도는 백성에게 짐을 지우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선택 받은 민족이 하나님 정부의 기초인 도덕적 규범을 민중들에게 드러내도록 주신 도구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세계적인 선교 사명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과 협력자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은 그분의 대리자들을 확인할 수 있는 표지(標識)였다.
1. 신 30:15~20에 따르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주신 언약과 율법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러한 원칙들은 새 언약 아래 있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가?(마 7:24~27 참고)
[신30:15~20]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6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17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18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치 못할 것이니라 19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
[마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답: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면 생명과 생존과 번성을 이룰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반석 위에 집을 짓고 안전한 삶을 누린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그분의 대표자로 선택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민족에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된 복을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 복은 결코 저절로 전해지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선택 받은 민족으로서 여호와의 뜻과 조화롭게 행하여야 했다. 모세는 생명과 번영이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킬 때에만 이르러 오리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신 30:15~16).
이스라엘 역사를 그르친 여러 반역의 일화를 보면 이스라엘 민족은 언약의 조건대로 사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롬 3:23)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근래의 역사에서도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 민족들이 전쟁도발, 편견, 압제의 태도로 하나님의 대의를 잘못 나타냈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하여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려고 하셨다. 아브라함을 택한 목적을 그 후손을 통하여 이루시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철저히 실패했다.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바울은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롬9:31,32)고 설명하였다.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복음을 이루시고 그분 안에서 성취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보배로운 백성과 제사장이 되는 것은 옛날 이스라엘이 이루는 것이 아니고 예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계1:5,6, 5:10) 하나님의 계명을 성취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께서 우리 각자의 생명이 될 때만 가능하다. 그래서 예수님을 떠나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가르치신 것이다. 우리가 율법과 행위에 대하여 공부할 때 이 점을 십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교훈 :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선택 받은 민족으로 율법을 받고 그 뜻에 따라 행하여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 했다.
셋째날(화) 율법과 민족들(행 10:34~35)
5월 27일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34~35).
1. 행 10:34~35, 17:26~27, 롬 1:20, 2:14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이 가르치는 핵심 교훈은 무엇인가?
[행10:34,35]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행17:26,27]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롬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2: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답: 하나님께서는 천연계와 사람의 양심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나타내셨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은 실패했어도 하나님은 다른 나라의 백성들을 증거 없이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특권이 없었던 자들은 천연계에 나타난 광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기별을 받았다(롬 1:20). 천연계 속에 펼쳐진 하나님의 책은 사람을 그분께로 인도하기에 충분한 정보를 담고 있다.
하나님은 또한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일정한 영적 갈망을 주입하신다. 바울에 따르면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느끼는 자들은 그분을 찾아 나설 것이다(행 17:27). 수많은 사람이 세상이 주는 명성, 권력, 돈, 섹스 그 무엇도 궁극적인 만족을 주지 못함을 깨닫고 인생의 허무함을 느낀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전도서의 기별이다. 이런 허무와 불만족은 종종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적인 것을 초월하는 존재를 찾도록 이끈다. 그들은 영혼의 갈망과 공허함을 진정시키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계시된 진리로 이끌림을 받는다. 하나님의 뜻이 문서나 천연계 어디에 계시되었든지 그것을 받은 사람은 그 계시대로 살 책임이 있다. 진리를 전달하는 매체와 관계없이 진리는 진리이기 때문에 그 진리를 억압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살 것이다(롬 1:18). 따라서 많은 사람이 성경 말씀 또는 십계명을 받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이 수집한 진리의 분량만큼 책임을 물으신다. 결국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되 하나님이 선지자 모세를 통해 분명하게 계시하신 율법이든, 또는 성문화된 율법은 모르지만 천연계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계발된 양심의 법이든 율법이 심판의 기준이 될 것이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당신에 계시는 것과 경배를 받으실 수밖에 없는 진실을 성경에 계시해주셨다. 그분이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이심을 창조로 증명하시고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가 그들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모든 조처를 하셨다. 사람에게는 양심을 통하여 알게 하셨고 그 외의 생물에게는 그것들의 생명을 보존하시는 것을 통하여 알게 하셨다. “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주께서 주신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시104:27~29) 욥기에서는 “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 생물들의 혼과 인생들의 영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욥12:7~10)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계신다는 것을 생명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 알 수 있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핑계하지 못한다. 오직 사람들만 사특한 생각으로 창조주를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성도들은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는 자가 되었으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교훈 : 율법은 천연계를 통해서도 계시된다. 그래서 누구든지 영적 갈망에 반응하여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그들이 깨달은 양심의 법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
넷째날(수) 은혜와 진리(요 1:17)
5월 28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17).
요한은 구속의 역사를 한 절로 압축하였다(요 1:17). 아담이 지은 죄의 결과로 모든 인류는 죽음의 저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예수님을 제외하면 인간 부모에게 태어난 그 누구도 죄를 짓는 성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이 저주는 강화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백성을 택하셔서 그들을 통해 다른 백성에게 빛을 비추시려는 의도로 그들에게 자신의 율법을 계시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 의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는 수단으로 율법을 제공하셨다.
1. 빌 2:8, 요 15:10, 마 26:39은 예수님이 사셨던 생애에 대하여 어떤 사실을 말하는가?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요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답: 철저하고 절대적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생애를 하셨다.
첫째 아담은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온 세상을 혼란과 속박에 빠뜨렸다. 반면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순종의 생애를 통하여 첫째 아담이 불러온 속박에서 세상을 건지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은 지구에 계셨을 때 자원하여 자신의 뜻을 아버지의 뜻에 굴복시키셨으며 죄를 짓지 않기로 결심하셨다. 저주와 거짓을 불러온 첫째 아담과 다르게 예수님은 이 세상에 “은혜와 진리”를 불러오셨다. 은혜와 진리는 율법을 대체하지 않는다. 대신 예수님은 율법만으로는 구원을 주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셨다. 그분이 가져오신 진리는 은혜에 대한 더 완전한 이해였다.
‘은혜’로 번역된 그리스어 ‘카리스(charis)는 ‘선물’을 뜻하며 ‘기쁨’을 의미하는 ‘카라(chara)’와도 관련이 있다. 예수님이 인류에게 주시는 선물은 영생이다. 또한 은혜는 그리스도의 내주(內住)를 나타내는데 그것은 율법이 장려하는 의에 신자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한다. 바울은 예수님이 육신의 죄를 정죄하면서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롬 8:4)지게 하셨다고 진술한다. 은혜는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시킬 뿐 아니라, 우리가 부르심에 따라 율법을 지킬 수 있도록 해 준다.
2. 롬 6:23, 엡 2:8에 따르면 예수님에게서 기원한 은혜의 속성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어떻게 인간에게 은혜를 공급하시는가?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답: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다.
<부가설명> 은혜와 진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임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첫째로 모세 오경과 관련된 말로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서 십계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우리에게 전한 것을 뜻하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다. 요1:14은 말씀이 육신에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데 그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다. 육신이 되어 거하신다는 말은 예수께서 성소라는 것을 뜻하는 표현이다.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있다. 언약궤 안에는 언약의 두 돌비가 있다. 언약의 돌비는 밖에서는 볼 수 없다.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은 순금으로 입혀놓은 궤와 뚜껑이다. 뚜껑은 시은좌(施恩座)라고 한다. 즉 순금 같은 은혜만 보이게 하였다. 그러나 궤 안에는 언약의 돌비가 있다. 그 언약은 은혜로 우리들에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돌비의 내용은 생명의 진리를 표상한다. 생명의 진리는 하나님의 은혜인 예수님에 의하여 우리들에게 성취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언약궤의 구조이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계명이 성취되고 예수를 믿을 때 우리에게도 성취되는 생명력이 주어진다는 것을 가르친다. 생명이 주어지면 그 생명의 기능과 능력이 우리로 하나님의 언약의 열 마디 말씀(십계명)을 이루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훈 : 예수님이 가져오신 은혜와 진리는 율법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내주로 말미암아 율법을 지키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주기 위한 것이다.
다섯째날(목) 율법과 복음(롬 1:16~17)
5월 29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6~17).
생활이 아무리 훌륭해도 끊임없이 죄를 상기시키는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질병, 죽음, 재난이 행복을 가로막는다. 개인의 입장에서 영적 안정감은 과거의 죄에 대한 기억, 심지어 다시 죄를 짓고자 하는 충동에 의해 위협을 받는다.
1. 롬 6:23, 7:24과 엡 2:1은 죄의 영향력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하는가?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엡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답: 죄는 사망이라고 말한다.
죄와 불의(不義) 가운데 사는 사람은 마지막 숨을 거두는 날이 되기를 기다리는 걸어가는 송장에 불과하다. 바울은 인간의 상태를 평가하면서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고 절규하였다. 이것은 불의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외침이다. 바울은 구원이 예수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재빠르게 깨닫는다(롬 7:25).
이것이 복음이다. 복음이란 불의의 육신에 갇혔던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을 수 있다는 소식이다. 복음은 이제 우리가 율법이 장려하는 의를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보증이다(롬 8:1).
바울이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할 때에 예수님의 죽음의 소식은 아직 제국에 회자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자들은 그분이 돌아가신 방법이 수치스러웠음을 충분히 이해하였다. 극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자들은 여생을 수치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러나 바울과 수많은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그 ‘수치스러운’ 죽음을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이해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고 선언하였다. 복음의 핵심은 종국에 죽음이 최후의 승리를 거두지 못할 것이며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자들이 새 땅에서 영원히 살리라는 위대한 약속에 있다.
<부가설명> 성경은 이 세상에 있는 아담의 후손들이 죄인이 아니고 다만 죄의 영향을 받고 있어서 죄를 지을 가능성이 너무나 농후한 죄인이 아닌 사람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단호하게 아담의 후손들은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라고 가르친다.(고전15:22) 그들은 아담에게서 썩어질 씨로 태어난 존재들이라고 가르친다.(벧전1:23)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이라고 단정한다.(엡4:22)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도덕적으로 최선을 행한다고 해도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일 뿐이다. 이런 사실이 사람이 선행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는 이유이다. 죽은 사람, 썩어질 씨로 태어난 썩어져가는 존재가 그들이 행하는 선행으로 썩어질 씨에서 썩지 않을 씨로 될 수 없고, 죽은 사람이 자기의 선행으로 살아날 수 없다. 생명이신 분이 그들에게 생명을 주지 않으면 결코 생명으로 일어설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아담의 후손으로서 인류의 진실한 상태이다. 이것을 깨닫고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자기의 선행의 공로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서 생명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영접하라고 성령께서 계속 권고하신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사망을 폐하시고 부활하셔서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셨다.(딤후1:10) 누구든지 예수 안에서 생명을 비로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다. 율법은 사람을 사망이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복음이신 예수님께 가면 생명을 얻는다고도 가르친다.
교훈 : 복음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음으로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 죽음을 이기고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보증한다.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5월 30일
<복음전도>, 231~232 “특수한 진리를 전파함”를 읽어 보라.
“피조물의 공로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거나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 일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주제를 분명하게 밝히도록 하자. 믿음과 행함으로 어떤 사람이 구원의 선물을 살 수 있다면 창조주는 피조물에 대하여 의무 아래 놓이게 된다. 여기서 거짓이 진리로 받아들여질 기회가 주어진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행하는 어떤 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그는 자신의 죄 때문에 고해성사를 해야 하는 가톨릭과 동일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구원은 품삯처럼, 일해서 얻을 수 있는 채무의 일부분이 된다. 그러나 만일 자신의 선한 행위 중 어떤 것으로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면, 구원은 오로지 한 사람의 죄인으로서 그가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믿기 때문에 받은 은혜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완전히 값없는 선물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자신의 선한 행실 안에 있는 타락한 인간의 공로로는 자신을 영생으로 이끌 수 없다는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이 모든 논쟁은 끝이 난다”(믿음과 행함, 19~2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위의 엘렌 G. 화잇의 글을 묵상해 보십시오. 이 글 가운데서 가장 심각한 죄인도 받을 수 있는 위대하고 희망적인 진리를 숙고해 보십시오.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위해 이 약속을 주장하며 또 어떻게 그 믿음대로 살아야 합니까?
※ 자신의 선한 행실 안에 있는 타락한 인간의 공로로는 자신을 영생으로 이끌 수 없다는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이 모든 논쟁은 끝이 난다. 인간의 선행이나 어떤 공로도 구원을 받는데 티끌만큼도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전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자신을 굴복할 때 믿음으로 사는 것이 확립될 것이다.
➋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기록된 계시를 접할 수 없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 그분의 뜻을 알리신다고 설명합니다(롬 1:20, 2:14, 행 17:26~27). 만약 하나님이 모든 백성에게 말씀하고 계신다면 선교사와 전도자들이 있어야 할 목적은 무엇입니까?
※ 첫째는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고, 다음은 전도하는 사람들이 구원받을 영혼들에 대한 사랑을 실천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고, 다음은 천연계의 계시나 양심은 구원의 도리를 밝게 깨닫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➌ 요 1:17은 “은혜와 진리”가 예수님에게서 나왔다고 진술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 말씀을 보고 ‘은혜와 진리’를 율법의 반대편에 둡니다. 왜 이것이 이분법적인 오류입니까? “은혜와 진리”는 어떻게 율법과 함께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냅니까?
※ 율법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주어서 은혜와 진리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하여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는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율법과 함께 일하는 하나님의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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