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과 사도들과 율법(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6/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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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4-06-06 06:23 조회8,201회 댓글0건본문
제11과 사도들과 율법
6월 14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54분
기억절 :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
연구 범위 : 롬 3:31, 롬 6:15, 행 10:9~14, 요 15:1~11, 약 2:1~26, 히 3:7~19, 유 5~7.
지속적인 율법의 유효성에 대한 수많은 증거를 보면서 왜 그토록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할까? 첫째, 어떤 이들은 율법의 기능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책망하는 일부 성경절을 보고 문제가 율법 자체에 있다고 결론짓는다. 그 결과 그들은 새 언약 아래 있는 자들에게 십계명은 의무 사항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둘째, 어떤 이들은 안식일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속력이 없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모든 계명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주장한다.
셋째, 어떤 이들은 다른 아홉 계명은 유효하지만, 제칠일 안식일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지키는 일요일로 대체되었다고 주장한다.
위의 견해들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번 주에 우리는 율법에 대한 사도들의 태도를 살펴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율법이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에 폐지되거나 수정되었다면, 사도들도 필히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사도들의 기록이 율법의 변경이나 폐지를 증명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➋ 느끼기 :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한다.
➌ 행하기 : 하나님의 율법을 증언하기 위해서 매일 사랑하는 삶을 산다.
A.
❶ 거짓이 사실로 둔갑하는 사례에는 무엇이 있을까요?(예, 크리스마스, 부활절 등등)
※ 영혼불멸설, 영원지옥설, 사제의 속죄 주장 등등
❷ 율법이 폐했다는 오해가 기독교 내에서 진실인 것처럼 자리를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유대인들의 지나친 율법주의에 집착한 결과 반작용이 있었고, 이런 사조에 편승하여 국가가 신앙과 교회에 간섭하면서 오류 신앙문화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이 인간본위의 신앙생활을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❸ 신약의 저자들은 이런 오해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합니까?(미리 요일별로 과제를 맡김)
※ 그것이 성경적이 아니라고 분명히 가르쳐준다.
❹ 진정으로 계명을 지키는 신자가 되기 위해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B.
❷ 율법이 폐했다는 말을 듣는다면 신약의 저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 그렇지 않다고 자세히 가르쳐주었을 것이다.
❸ 특히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오해하는 자들을 위해 어떤 설명을 주려고 할까요?
※ 율법을 준행하는 것은 산 믿음의 열매이기 때문에 열매가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❹ 마지막 때에 주의 형제 유다의 가르침대로 살려면 우리에게 어떤 믿음과 경건의 생활이 필요할까요?
※ 주님의 은혜로 성경이 가르치는 길로 충성스럽게 생활해야 한다.
결론 :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에 율법이 변경되거나 수정되었다고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다기보다 그리스도께로부터 온 은혜로 말미암아 율법에 순종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첫째날(일) 바울과 율법
6월 8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28, 31)
기독교의 진정한 설립자는 바울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틀린 말이다. 바울이 신약 27권에서 13권을 기록하는 등 기독교 교리와 신학적 이해에 많은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그의 기록에서 나타난 많은 교훈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다. 반면 어떤 이들은 바울이 ‘새 종교’를 설립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주된 이유는 그들이 율법과 은혜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을 오해하기 때문이다.
1. 다음의 성경절을 살펴보라. 롬 3:28, 6:14, 7:4, 갈 3:24~25. 사람들은 왜 이 말씀들이 율법을 무효화시킨다고 생각할까? 그 이유를 찾기란 왜 어렵지 않은가?
[롬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6:14]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롬7: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갈3:24,25]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답: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에 있다고 가르치고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다는 말과 몽학선생이라는 말을 오해하기 때문이다.
따로 읽으면 이 말씀들은 분명 율법이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미가 없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바울이 정말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우리는 이 성경절들을 포함하는 더 넓은 문맥을 살펴보아야 한다.
2. 위의 성경절들이 있는 본문을 검토하라. 롬 3:31, 6:15, 7:7~12, 갈 3:21을 특별히 주목하라. 이 말씀들을 문맥과 더불어 보면 우리는 율법에 관한 바울의 요점을 어떻게 더 잘 이해하게 되는가?
[롬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롬7:7~1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9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갈3: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답: 바울의 요점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능히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아 성령의 역사로 능히 율법을 수행하는 삶을 살게 된다고 가르친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개념을 모르는 자들을 위해 바울은 스스로 모순되려는 것처럼 보인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율법을 지킬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하나님이 자신과 관계를 맺기 원하는 자들에게 의를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율법이 의의 표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율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백성들은 의에 미치지 못하고 도리어 율법의 정죄를 받는다.
율법이 구원의 수단이라면 영생을 기대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소망을 찾는다. 그분은 율법을 완전하게 지켰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으로 신자들이 자신의 의를 나누어 갖게 한다(롬 8:3~4). 한편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정죄를 제거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자유로운 양심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따른다(롬 7:25~8:2).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은혜는 우리를 율법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지키도록 강권한다.
<부가설명> 사단은 태초부터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도록 유혹하였다. 결과로 사람이 생명을 잃고 육신이 되었다. 육신이 된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다.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사망이 되었다는 것과 같은 뜻인데, 죽은 자가 스스로 하나님의 법을 어떻게 지킬 수 있겠는가! 이 사실을 바울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6~8)고 분명이 가르쳤다. 이제 예수를 믿음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때, 즉 거듭날 때 그는 영이 된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3:6)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영이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이 그 생태가 되는 사람이다. 그들이 율법의 정신을 떠나는 것은 곧 생명을 잃는 것을 뜻하는 사람이다. 이런 상태를 바울은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3:31)고 가르쳐주었다.
교훈 : 우리는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지만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는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라고 강권한다.
둘째날(월) 베드로와 율법(벧전 2:9)
6월 9일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베드로는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제자였다. 처음 선택된 제자들 가운데서도 베드로는 예수님이 사역하셨던 수많은 주요 사건 현장에 있었다.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선포했던 것도 베드로였다. 그는 예수님이 체포되고 심문을 받으셨던 밤에 가야바의 집까지 구주를 따라갔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갈릴리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아침,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하여 특별한 지침을 받은 사람도 베드로였다. 첫 신자들의 무리가 오순절에 모였을 때 베드로는 선임 대표자였다. 만약 율법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변경되었다면 베드로는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1. 행 10:9~14를 읽어 보라. 베드로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도 어떻게 유대인들의 율법을 고수하였는가? 베드로가 음식에 관련된 율법을 이런 방식으로 생각했다면 십계명의 영속성에 대해서 그가 어떤 견해를 가졌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겠는가?
[행10:9~14]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 시더라 10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 대.
답: 베드로는 유대인이 지켰던 부정한 음식을 결코 먹지 않은 율례를 준수하고 있었다. 이로 미루어 십계명은 철저히 준수했음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몇 년 뒤에 이상을 받았다. 제자들의 전도 활동의 결과 수천 명의 유대인들이 이미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한 때였다. 하지만 성경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의 기별 가운데 율법을 거부하라는 어떤 지시가 포함되었음을 암시할 만한 내용이 없다. 사도행전 10장의 사건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유대교적 기원에 매우 충실하였다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증명한다.
베드로가 그의 독자들을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로 불렀을 때, 그들은 바로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던 기사를 떠올렸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상속자로서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명시되어 있는 언약의 조건을 따라야 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들의 지위를 상기시킨 다음에 즉시 그들에게 의로운 삶을 살라고 촉구한다(벧전 2:11~12). 그는 또한 율법 없는 복음을 퍼트리는 거짓 교사들을 조심하도록 자신의 독자들에게 경고한다(벧후 2:21, 3:2).
2.벧전 2:9을 출 19:6과 비교해 보라. 출 19:6의 배경은 무엇인가?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출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답: 출19:6의 배경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반포하신 사건이다. 베드로가 이 구절을 인용하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십계명을 준수하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였다.
<부가설명> 베드로는 철저한 유대인이었다. 그는 다른 유대인들과 같이 율법의 준수 자였다. 만일 예수께서 율법을 폐하였다는 언질을 하셨다면 베드로가 그 사실을 설교했을 것이고 그의 편지에 기록했을 것이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언행이 기록되어 있는데, 어디에도 십계명을 준수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곳이 없다. 베드로는 베드로후서에서 불법한 자들에 대하여 몇 번이나 언급하였다.(벧후2:7,8,16) 마침내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계명을 저버리는 것은 알지 못했던 것보다 못하다고 가르친다.(벧후2:21) 개역성경에는 명령이라고 번역되었는데, 헬라어로 “엔톨레”인데 계명이라는 말이다. 한글 킹제임스 역과 새번역에는 다 계명이라고 번역하였다. 의의 도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의의 도를 받지 않은 사람만 못하다고 하였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가르친 것이다.
교훈 : 베드로는 예수님의 최측근이었고, 승천하신 이후에도 교회의 대표자 역할을 감당했지만 여전히 율법에 충실한 언약 중심의 신앙을 강조하였다.
셋째날(화) 요한과 율법
6월 10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
요한은 바울 다음으로 신약 성경에 많은 책을 남기는 데 기여하였다. 복음서와 세 편의 서신 그리고 계시록의 저자가 모두 같은 요한이다.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그도 예수님께 부름을 입은 첫 제자에 속했으며 그분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 예수님과의 친밀성 때문에 그는 종종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불린다. 요한복음 말미에서 미뤄볼 때(요 21:25), 요한은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인 사실을 많이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의 율법을 폐지하셨다면 요한처럼 예수님과 가까웠던 사람은 그 사실을 반드시 알았을 것이다.
1. 요 15:1~11과 요일 2:3~6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요15:1~1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일2:3~6]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답: 하나님의 계명은 일차적으로 십계명이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신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그 계명을 지켜야 한다. 계명을 지키는 여부로 하나님을 아는 여부가 드러난다고 하였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그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거짓말하는 자가 된다.
지상 생애의 막바지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아버지의 계명에 충성하였고 그 결과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였다고 증언하실 수 있었다(요 15:10). 예수님은 계명을 잊거나 폐기해야 할 부정적인 장애물로 여기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분은 계명을 하나님 그리고 타인과의 사랑의 관계를 위한 지침으로 여기셨다. 실제로 요한은 사랑이 언제나 율법의 본질이었다고 이해했다(요이 6 참고). 그래서 하나님 또는 다른 사람과 사랑의 관계를 맺지 않는 사람은 율법을 지킨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가 우리의 동료를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기를 요구한다. 그래서 정신의 모든 힘과 활동은 그 목적에, 즉 많은 선을 행하는 일에 바쳐져야 한다.… 고귀한 영혼의 선물을 소유함으로 타인에게 능력을 가지고 증언하게 될 자들은 그 시여자를 얼마나 기쁘시게 하겠는가!”(원고 20권, 138).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는 고리이며 그리스도의 정신과 하늘의 속성을 드러낸다. 과시하지 않는 거룩함의 능력은 가장 유능한 설교보다 더 웅변적으로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며 단순한 언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사람들에게 그들의 의무를 공개한다”(원고 20권, 138).
<부가설명> 요한은 복음서와 편지서와 계시록에서 아주 철저히 하나님의 계명의 영속성을 기록하였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생명의 성질이기 때문이다. 스데반은 순교하기 직전에 변론하면서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우리에게 준 것은 생명의 도라고 하였다.(행7:38) 그것이 곧 십계명이다. 하나님의 생명,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을 받은 사람들은 그 생명이 걸어가는 길이 십계명이라는 것을 계시한 말씀이다. 요한은 이 사실을 잘 설명하고 있다. 요일 3장~5장을 자세히 읽으면 어렵지 않게 그 사실을 깨달을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 곧 성도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라고 분명히 가르쳐주었다.
교훈 :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친근한 제자로서 계명의 정신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반복하여 가르침으로 계명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넷째날(수) 야고보와 율법
6월 11일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약 2:7~9).
성경에 야고보가 남긴 기록은 야고보서뿐이다. 저자는 야고보가 누구인지 명시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그 서신의 발신자는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라고 알려져 있다. 야고보는 처음에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의심했을 것이다(요 7:5). 그러나 마침내 신약 교회에서 영향력 있는 지도자의 위치에 오른다(행 15:13, 갈 1:19).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의 율법을 폐지할 의도가 있었다면 그분의 형제는 필히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1. 약 2:1~26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의 바탕 기별은 무엇인가? 왜 야고보는 7~9절에서 율법을 요약하고 나서 바로 모든 계명을 다 지켜야 한다고 말했는가? 이 말씀은 사랑과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의 관계를 어떻게 보여주는가?
[약2:1~26] 8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답: 야고보 2장 전문은 반생들이 찾아 일기 바란다. 8~12이 교과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한다. 야고보는 십계명을 직접 말하면서 모든 율법을 다 지켜야 하고 그 계명이 심판의 기준이 된다고 설명한다. 후반부에 믿음과 행함에 대하여 말하는데, 그 행함이 바로 십계명을 준수하는 것과 연관된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율법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을 오해하다보니 율법의 역할에 대하여 야고보와 바울의 입장이 정반대라고 주장한다. 핵심 쟁점은 구원에 있어서 행위의 위치이다. 바울은 우리가 행위가 아닌 은혜로 구원 얻는다고 선언한다(엡 2:8~9). 반면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강조한다(약 2:26).
하지만 이 두 진술은 서로 상반되지 않는다. 바울이 율법을 무효화하지 않는 은혜에 대하여 여러 번 이야기했던 것을 야고보는 단지 조금 강한 방식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롬 13:9에서 바울이 설명했던 것과 같이 야고보도 하나님의 율법의 본질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약 2:8). 사랑을 실천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진실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고 주장할 수 없다.
<부가설명> 야고보는 믿음이 생활에 나타나는 상태를 중심으로 가르치고 있다. 믿음을 공언하면서 생활이 공언하는 믿음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생명이 있는 믿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야고보도 생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였다. 행함이 있는 믿음은 산 믿음이라는 말이다. 결국 생명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생명은 생활이 있게 되어 있는데, 그 생활이 나타나는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삶이고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없어도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구원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인데,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니 생명이 없어도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교훈 : 주의 형제인 야고보는 그의 서신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이 모순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계명의 본질인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을 강조하였다.
다섯째날(목) 유다와 율법
6월 12일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유 4).
신약 성경에서 가장 짧은 책 가운데 하나인 유다서는 예수님의 또 다른 형제의 기록으로 여겨진다. 저자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언급하면서 자신이 야고보의 형제임을 밝힌다. 마태복음이 예수님의 네 형제 가운데 야고보와 유다를 언급하기 때문에(마 13:55) 이 짧은 서신은 일반적으로 주의 형제 유다의 기록으로 인정된다. 앞에서 공부한 성경의 다른 저자들과 마찬가지로 유다도 예수님이 율법을 폐했다면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비록 유다는 율법이나 계명을 언급한 적이 없지만, 전체 서신은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율법을 범한 결과에 대해 다루고 있다.
1. 유다서 4절을 읽어 보라. 우리의 전체 토론 주제와 관련하여 그가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유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답: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다. 색욕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 7계명을 언급하고 있다. 유다는 계명을 범하는 것은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세상에 죄가 없었다면 은혜가 불필요하기 때문에 은혜를 말한다는 것은 율법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롬 5:18~6:15). 거짓 교사들이 말하는 것은 너무도 그릇된 것이어서 유다는 그것을 주를 부인하는 것과 동일시하였다.
유다는 사람들이 정말 배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배도하는 자들은 심판을 당할 것이다. 믿음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순종의 생애로 믿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에서 유다서는 성경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입장이 분명하다.
2. 히 3:7~19은 유 5~7을 조명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 이 두 성경 말씀은 순종과 믿음의 관계를 우리에게 어떻게 보여주는가?
[히3:7~19]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 12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16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17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19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유5~7]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답: 순종은 믿음의 열매인 것을 확실하게 가르치고 있다.
유다는 자신만의 고어체로 독자들에게 이집트의 속박에서 벗어난 이스라엘의 경험을 상기시킨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능력을 나타내시고 그분의 율법을 주셨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불순종했을 때 그들은 그분과 분리되는 상태에서 비롯된 끔찍한 결과를 맞이해야 했다.
<부가설명> 성경의 순종은 교회론과 함께 연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고 예수님은 그 머리이고 교인들은 그 몸의 지체들이다. 성도들의 순종은 지체의 도리를 행하는 것이다. 건강한 지체는 머리의 지시를 잘 따른다. 순종하지 않는 지체는 병든 지체이거나 신경이 단절되어 머리와 관계가 없어진 지체인데 잘라내어야 하는 것이다. 머리이신 예수님의 지시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 십계명이다. 다른 말로 율법이다. 순종하는 것은 생명이 있고 건강한 것을 드러낸다. 순종하지 않는 것은 병들었거나 신경이 단절된 상태를 나타낸다. 병든 것은 회복될 수 있다. 그러나 신경 줄이 끊어져서 이을 수 없게 되면 더 이상 지체노릇을 하지 못한다. 우리는 건강한 지체들인가?
교훈 : 주의 형제 유다는 그의 짧은 서신에서 구원의 은혜를 빌미로 방종하고 불순종하는 것은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경건한 삶을 촉구했다.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6월 13일
“사도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가 회개하라고 가르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죄인이 하늘 아버지와 마찰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율법을 범하였으므로 자신의 죄를 직시하고 회개해야 한다. 그다음에 할 일은 무엇인가? 예수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분의 피만이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율법에는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율법은 정죄할 뿐 범죄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죄인은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의지해야 한다. 자비로운 우리의 구주께서는 ‘그로 하여금 나와 화목할 수 있도록 내 팔을 붙잡게 하라. 그러면 그가 나와 화목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많이 용서 받은 사람일수록 많이 사랑할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자신이 죄로 오염됐고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는 자신에게 단지 용서가 필요함을 느낄 것이다”(영문시조, 1886년 8월 5일).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위의 엘렌 G. 화잇의 글을 천천히 읽어 보십시오. 이 인용문은 우리가 이번 기에 배우는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 어떤 빛을 비춰줍니까? 죄인은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의지해야 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 율법은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없고 사람의 허물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어서 구원자이신 예수께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잘 설명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을 때 정죄에서 사유함을 받을 수 있다.
➋ 유다서 4절에 기록된 경고를 다시 묵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신자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그들이 주님을 부인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율법을 폐했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얼마나 심각한 의미입니까? 율법이 폐지되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실제 무엇을 제거하려는 것입니까?
※ 율법이 폐지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예수의 은혜가 필요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과 같다. 결국은 예수의 은혜를 제거하는 것이 될 것이다.
➌ 사탄이 하나님의 율법을 파괴하려고 시도하는 때에 율법을 부인하거나 심지어 계명 가운데 하나를 부인하는 사람은 얼마나 사탄의 손에 놀아나는 것입니까?
※ 그는 자기도 모르게 사단에 편에 서 있는 사람이 된다.
6월 14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54분
기억절 :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
연구 범위 : 롬 3:31, 롬 6:15, 행 10:9~14, 요 15:1~11, 약 2:1~26, 히 3:7~19, 유 5~7.
지속적인 율법의 유효성에 대한 수많은 증거를 보면서 왜 그토록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할까? 첫째, 어떤 이들은 율법의 기능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책망하는 일부 성경절을 보고 문제가 율법 자체에 있다고 결론짓는다. 그 결과 그들은 새 언약 아래 있는 자들에게 십계명은 의무 사항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둘째, 어떤 이들은 안식일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속력이 없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모든 계명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주장한다.
셋째, 어떤 이들은 다른 아홉 계명은 유효하지만, 제칠일 안식일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지키는 일요일로 대체되었다고 주장한다.
위의 견해들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번 주에 우리는 율법에 대한 사도들의 태도를 살펴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율법이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에 폐지되거나 수정되었다면, 사도들도 필히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사도들의 기록이 율법의 변경이나 폐지를 증명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➋ 느끼기 :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한다.
➌ 행하기 : 하나님의 율법을 증언하기 위해서 매일 사랑하는 삶을 산다.
A.
❶ 거짓이 사실로 둔갑하는 사례에는 무엇이 있을까요?(예, 크리스마스, 부활절 등등)
※ 영혼불멸설, 영원지옥설, 사제의 속죄 주장 등등
❷ 율법이 폐했다는 오해가 기독교 내에서 진실인 것처럼 자리를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유대인들의 지나친 율법주의에 집착한 결과 반작용이 있었고, 이런 사조에 편승하여 국가가 신앙과 교회에 간섭하면서 오류 신앙문화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이 인간본위의 신앙생활을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❸ 신약의 저자들은 이런 오해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합니까?(미리 요일별로 과제를 맡김)
※ 그것이 성경적이 아니라고 분명히 가르쳐준다.
❹ 진정으로 계명을 지키는 신자가 되기 위해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B.
❷ 율법이 폐했다는 말을 듣는다면 신약의 저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 그렇지 않다고 자세히 가르쳐주었을 것이다.
❸ 특히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오해하는 자들을 위해 어떤 설명을 주려고 할까요?
※ 율법을 준행하는 것은 산 믿음의 열매이기 때문에 열매가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❹ 마지막 때에 주의 형제 유다의 가르침대로 살려면 우리에게 어떤 믿음과 경건의 생활이 필요할까요?
※ 주님의 은혜로 성경이 가르치는 길로 충성스럽게 생활해야 한다.
결론 :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에 율법이 변경되거나 수정되었다고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다기보다 그리스도께로부터 온 은혜로 말미암아 율법에 순종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첫째날(일) 바울과 율법
6월 8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28, 31)
기독교의 진정한 설립자는 바울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틀린 말이다. 바울이 신약 27권에서 13권을 기록하는 등 기독교 교리와 신학적 이해에 많은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그의 기록에서 나타난 많은 교훈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다. 반면 어떤 이들은 바울이 ‘새 종교’를 설립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주된 이유는 그들이 율법과 은혜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을 오해하기 때문이다.
1. 다음의 성경절을 살펴보라. 롬 3:28, 6:14, 7:4, 갈 3:24~25. 사람들은 왜 이 말씀들이 율법을 무효화시킨다고 생각할까? 그 이유를 찾기란 왜 어렵지 않은가?
[롬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6:14]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롬7: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갈3:24,25]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답: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에 있다고 가르치고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다는 말과 몽학선생이라는 말을 오해하기 때문이다.
따로 읽으면 이 말씀들은 분명 율법이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미가 없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바울이 정말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우리는 이 성경절들을 포함하는 더 넓은 문맥을 살펴보아야 한다.
2. 위의 성경절들이 있는 본문을 검토하라. 롬 3:31, 6:15, 7:7~12, 갈 3:21을 특별히 주목하라. 이 말씀들을 문맥과 더불어 보면 우리는 율법에 관한 바울의 요점을 어떻게 더 잘 이해하게 되는가?
[롬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롬7:7~1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9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갈3: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답: 바울의 요점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능히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아 성령의 역사로 능히 율법을 수행하는 삶을 살게 된다고 가르친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개념을 모르는 자들을 위해 바울은 스스로 모순되려는 것처럼 보인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율법을 지킬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하나님이 자신과 관계를 맺기 원하는 자들에게 의를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율법이 의의 표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율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백성들은 의에 미치지 못하고 도리어 율법의 정죄를 받는다.
율법이 구원의 수단이라면 영생을 기대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소망을 찾는다. 그분은 율법을 완전하게 지켰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으로 신자들이 자신의 의를 나누어 갖게 한다(롬 8:3~4). 한편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정죄를 제거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자유로운 양심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따른다(롬 7:25~8:2).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은혜는 우리를 율법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지키도록 강권한다.
<부가설명> 사단은 태초부터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도록 유혹하였다. 결과로 사람이 생명을 잃고 육신이 되었다. 육신이 된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다.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사망이 되었다는 것과 같은 뜻인데, 죽은 자가 스스로 하나님의 법을 어떻게 지킬 수 있겠는가! 이 사실을 바울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6~8)고 분명이 가르쳤다. 이제 예수를 믿음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때, 즉 거듭날 때 그는 영이 된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3:6)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영이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이 그 생태가 되는 사람이다. 그들이 율법의 정신을 떠나는 것은 곧 생명을 잃는 것을 뜻하는 사람이다. 이런 상태를 바울은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3:31)고 가르쳐주었다.
교훈 : 우리는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지만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는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라고 강권한다.
둘째날(월) 베드로와 율법(벧전 2:9)
6월 9일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베드로는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제자였다. 처음 선택된 제자들 가운데서도 베드로는 예수님이 사역하셨던 수많은 주요 사건 현장에 있었다.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선포했던 것도 베드로였다. 그는 예수님이 체포되고 심문을 받으셨던 밤에 가야바의 집까지 구주를 따라갔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갈릴리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아침,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하여 특별한 지침을 받은 사람도 베드로였다. 첫 신자들의 무리가 오순절에 모였을 때 베드로는 선임 대표자였다. 만약 율법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변경되었다면 베드로는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1. 행 10:9~14를 읽어 보라. 베드로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도 어떻게 유대인들의 율법을 고수하였는가? 베드로가 음식에 관련된 율법을 이런 방식으로 생각했다면 십계명의 영속성에 대해서 그가 어떤 견해를 가졌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겠는가?
[행10:9~14]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 시더라 10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 대.
답: 베드로는 유대인이 지켰던 부정한 음식을 결코 먹지 않은 율례를 준수하고 있었다. 이로 미루어 십계명은 철저히 준수했음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몇 년 뒤에 이상을 받았다. 제자들의 전도 활동의 결과 수천 명의 유대인들이 이미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한 때였다. 하지만 성경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의 기별 가운데 율법을 거부하라는 어떤 지시가 포함되었음을 암시할 만한 내용이 없다. 사도행전 10장의 사건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유대교적 기원에 매우 충실하였다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증명한다.
베드로가 그의 독자들을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로 불렀을 때, 그들은 바로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던 기사를 떠올렸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상속자로서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명시되어 있는 언약의 조건을 따라야 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들의 지위를 상기시킨 다음에 즉시 그들에게 의로운 삶을 살라고 촉구한다(벧전 2:11~12). 그는 또한 율법 없는 복음을 퍼트리는 거짓 교사들을 조심하도록 자신의 독자들에게 경고한다(벧후 2:21, 3:2).
2.벧전 2:9을 출 19:6과 비교해 보라. 출 19:6의 배경은 무엇인가?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출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답: 출19:6의 배경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반포하신 사건이다. 베드로가 이 구절을 인용하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십계명을 준수하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였다.
<부가설명> 베드로는 철저한 유대인이었다. 그는 다른 유대인들과 같이 율법의 준수 자였다. 만일 예수께서 율법을 폐하였다는 언질을 하셨다면 베드로가 그 사실을 설교했을 것이고 그의 편지에 기록했을 것이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언행이 기록되어 있는데, 어디에도 십계명을 준수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곳이 없다. 베드로는 베드로후서에서 불법한 자들에 대하여 몇 번이나 언급하였다.(벧후2:7,8,16) 마침내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계명을 저버리는 것은 알지 못했던 것보다 못하다고 가르친다.(벧후2:21) 개역성경에는 명령이라고 번역되었는데, 헬라어로 “엔톨레”인데 계명이라는 말이다. 한글 킹제임스 역과 새번역에는 다 계명이라고 번역하였다. 의의 도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의의 도를 받지 않은 사람만 못하다고 하였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가르친 것이다.
교훈 : 베드로는 예수님의 최측근이었고, 승천하신 이후에도 교회의 대표자 역할을 감당했지만 여전히 율법에 충실한 언약 중심의 신앙을 강조하였다.
셋째날(화) 요한과 율법
6월 10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
요한은 바울 다음으로 신약 성경에 많은 책을 남기는 데 기여하였다. 복음서와 세 편의 서신 그리고 계시록의 저자가 모두 같은 요한이다.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그도 예수님께 부름을 입은 첫 제자에 속했으며 그분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 예수님과의 친밀성 때문에 그는 종종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불린다. 요한복음 말미에서 미뤄볼 때(요 21:25), 요한은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인 사실을 많이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의 율법을 폐지하셨다면 요한처럼 예수님과 가까웠던 사람은 그 사실을 반드시 알았을 것이다.
1. 요 15:1~11과 요일 2:3~6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요15:1~1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일2:3~6]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답: 하나님의 계명은 일차적으로 십계명이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신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그 계명을 지켜야 한다. 계명을 지키는 여부로 하나님을 아는 여부가 드러난다고 하였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그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거짓말하는 자가 된다.
지상 생애의 막바지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아버지의 계명에 충성하였고 그 결과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였다고 증언하실 수 있었다(요 15:10). 예수님은 계명을 잊거나 폐기해야 할 부정적인 장애물로 여기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분은 계명을 하나님 그리고 타인과의 사랑의 관계를 위한 지침으로 여기셨다. 실제로 요한은 사랑이 언제나 율법의 본질이었다고 이해했다(요이 6 참고). 그래서 하나님 또는 다른 사람과 사랑의 관계를 맺지 않는 사람은 율법을 지킨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가 우리의 동료를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기를 요구한다. 그래서 정신의 모든 힘과 활동은 그 목적에, 즉 많은 선을 행하는 일에 바쳐져야 한다.… 고귀한 영혼의 선물을 소유함으로 타인에게 능력을 가지고 증언하게 될 자들은 그 시여자를 얼마나 기쁘시게 하겠는가!”(원고 20권, 138).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는 고리이며 그리스도의 정신과 하늘의 속성을 드러낸다. 과시하지 않는 거룩함의 능력은 가장 유능한 설교보다 더 웅변적으로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며 단순한 언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사람들에게 그들의 의무를 공개한다”(원고 20권, 138).
<부가설명> 요한은 복음서와 편지서와 계시록에서 아주 철저히 하나님의 계명의 영속성을 기록하였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생명의 성질이기 때문이다. 스데반은 순교하기 직전에 변론하면서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우리에게 준 것은 생명의 도라고 하였다.(행7:38) 그것이 곧 십계명이다. 하나님의 생명,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을 받은 사람들은 그 생명이 걸어가는 길이 십계명이라는 것을 계시한 말씀이다. 요한은 이 사실을 잘 설명하고 있다. 요일 3장~5장을 자세히 읽으면 어렵지 않게 그 사실을 깨달을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 곧 성도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라고 분명히 가르쳐주었다.
교훈 :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친근한 제자로서 계명의 정신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반복하여 가르침으로 계명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넷째날(수) 야고보와 율법
6월 11일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약 2:7~9).
성경에 야고보가 남긴 기록은 야고보서뿐이다. 저자는 야고보가 누구인지 명시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그 서신의 발신자는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라고 알려져 있다. 야고보는 처음에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의심했을 것이다(요 7:5). 그러나 마침내 신약 교회에서 영향력 있는 지도자의 위치에 오른다(행 15:13, 갈 1:19).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의 율법을 폐지할 의도가 있었다면 그분의 형제는 필히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1. 약 2:1~26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의 바탕 기별은 무엇인가? 왜 야고보는 7~9절에서 율법을 요약하고 나서 바로 모든 계명을 다 지켜야 한다고 말했는가? 이 말씀은 사랑과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의 관계를 어떻게 보여주는가?
[약2:1~26] 8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답: 야고보 2장 전문은 반생들이 찾아 일기 바란다. 8~12이 교과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한다. 야고보는 십계명을 직접 말하면서 모든 율법을 다 지켜야 하고 그 계명이 심판의 기준이 된다고 설명한다. 후반부에 믿음과 행함에 대하여 말하는데, 그 행함이 바로 십계명을 준수하는 것과 연관된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율법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을 오해하다보니 율법의 역할에 대하여 야고보와 바울의 입장이 정반대라고 주장한다. 핵심 쟁점은 구원에 있어서 행위의 위치이다. 바울은 우리가 행위가 아닌 은혜로 구원 얻는다고 선언한다(엡 2:8~9). 반면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강조한다(약 2:26).
하지만 이 두 진술은 서로 상반되지 않는다. 바울이 율법을 무효화하지 않는 은혜에 대하여 여러 번 이야기했던 것을 야고보는 단지 조금 강한 방식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롬 13:9에서 바울이 설명했던 것과 같이 야고보도 하나님의 율법의 본질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약 2:8). 사랑을 실천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진실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고 주장할 수 없다.
<부가설명> 야고보는 믿음이 생활에 나타나는 상태를 중심으로 가르치고 있다. 믿음을 공언하면서 생활이 공언하는 믿음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생명이 있는 믿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야고보도 생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였다. 행함이 있는 믿음은 산 믿음이라는 말이다. 결국 생명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생명은 생활이 있게 되어 있는데, 그 생활이 나타나는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삶이고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없어도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구원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인데,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니 생명이 없어도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교훈 : 주의 형제인 야고보는 그의 서신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이 모순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계명의 본질인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을 강조하였다.
다섯째날(목) 유다와 율법
6월 12일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유 4).
신약 성경에서 가장 짧은 책 가운데 하나인 유다서는 예수님의 또 다른 형제의 기록으로 여겨진다. 저자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언급하면서 자신이 야고보의 형제임을 밝힌다. 마태복음이 예수님의 네 형제 가운데 야고보와 유다를 언급하기 때문에(마 13:55) 이 짧은 서신은 일반적으로 주의 형제 유다의 기록으로 인정된다. 앞에서 공부한 성경의 다른 저자들과 마찬가지로 유다도 예수님이 율법을 폐했다면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비록 유다는 율법이나 계명을 언급한 적이 없지만, 전체 서신은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율법을 범한 결과에 대해 다루고 있다.
1. 유다서 4절을 읽어 보라. 우리의 전체 토론 주제와 관련하여 그가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유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답: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다. 색욕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 7계명을 언급하고 있다. 유다는 계명을 범하는 것은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세상에 죄가 없었다면 은혜가 불필요하기 때문에 은혜를 말한다는 것은 율법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롬 5:18~6:15). 거짓 교사들이 말하는 것은 너무도 그릇된 것이어서 유다는 그것을 주를 부인하는 것과 동일시하였다.
유다는 사람들이 정말 배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배도하는 자들은 심판을 당할 것이다. 믿음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순종의 생애로 믿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에서 유다서는 성경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입장이 분명하다.
2. 히 3:7~19은 유 5~7을 조명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 이 두 성경 말씀은 순종과 믿음의 관계를 우리에게 어떻게 보여주는가?
[히3:7~19]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 12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16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17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19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유5~7]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답: 순종은 믿음의 열매인 것을 확실하게 가르치고 있다.
유다는 자신만의 고어체로 독자들에게 이집트의 속박에서 벗어난 이스라엘의 경험을 상기시킨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능력을 나타내시고 그분의 율법을 주셨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불순종했을 때 그들은 그분과 분리되는 상태에서 비롯된 끔찍한 결과를 맞이해야 했다.
<부가설명> 성경의 순종은 교회론과 함께 연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고 예수님은 그 머리이고 교인들은 그 몸의 지체들이다. 성도들의 순종은 지체의 도리를 행하는 것이다. 건강한 지체는 머리의 지시를 잘 따른다. 순종하지 않는 지체는 병든 지체이거나 신경이 단절되어 머리와 관계가 없어진 지체인데 잘라내어야 하는 것이다. 머리이신 예수님의 지시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 십계명이다. 다른 말로 율법이다. 순종하는 것은 생명이 있고 건강한 것을 드러낸다. 순종하지 않는 것은 병들었거나 신경이 단절된 상태를 나타낸다. 병든 것은 회복될 수 있다. 그러나 신경 줄이 끊어져서 이을 수 없게 되면 더 이상 지체노릇을 하지 못한다. 우리는 건강한 지체들인가?
교훈 : 주의 형제 유다는 그의 짧은 서신에서 구원의 은혜를 빌미로 방종하고 불순종하는 것은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경건한 삶을 촉구했다.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6월 13일
“사도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가 회개하라고 가르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죄인이 하늘 아버지와 마찰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율법을 범하였으므로 자신의 죄를 직시하고 회개해야 한다. 그다음에 할 일은 무엇인가? 예수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분의 피만이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율법에는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율법은 정죄할 뿐 범죄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죄인은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의지해야 한다. 자비로운 우리의 구주께서는 ‘그로 하여금 나와 화목할 수 있도록 내 팔을 붙잡게 하라. 그러면 그가 나와 화목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많이 용서 받은 사람일수록 많이 사랑할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자신이 죄로 오염됐고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는 자신에게 단지 용서가 필요함을 느낄 것이다”(영문시조, 1886년 8월 5일).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위의 엘렌 G. 화잇의 글을 천천히 읽어 보십시오. 이 인용문은 우리가 이번 기에 배우는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 어떤 빛을 비춰줍니까? 죄인은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의지해야 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 율법은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없고 사람의 허물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어서 구원자이신 예수께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잘 설명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을 때 정죄에서 사유함을 받을 수 있다.
➋ 유다서 4절에 기록된 경고를 다시 묵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신자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그들이 주님을 부인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율법을 폐했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얼마나 심각한 의미입니까? 율법이 폐지되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실제 무엇을 제거하려는 것입니까?
※ 율법이 폐지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예수의 은혜가 필요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과 같다. 결국은 예수의 은혜를 제거하는 것이 될 것이다.
➌ 사탄이 하나님의 율법을 파괴하려고 시도하는 때에 율법을 부인하거나 심지어 계명 가운데 하나를 부인하는 사람은 얼마나 사탄의 손에 놀아나는 것입니까?
※ 그는 자기도 모르게 사단에 편에 서 있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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