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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그리스도의 죽음과 율법(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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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4-05-01 23:21 조회9,0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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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30분

기억절 :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롬 7:4).

연구 범위 : 롬 7:1~6, 롬 8:5~8, 롬 7:7~13, 롬 4:15, 행 13:38~39, 갈 3:10.

어떤 여인이 과속 운전 중이었다. 그런데 백미러에 경찰차 불빛이 보이고 익숙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지갑을 열어 운전면허증을 꺼냈다. 경찰이 와서 면허증을 가지고 경찰차로 돌아갔다.
그녀는 범칙금이 얼마나 많이 나올지 또 그것을 어떻게 지불할지 걱정했다. 몇 분 후에 경찰이 다시 와서 말했다. “아가씨, 걱정 마십시오. 아가씨가 다시 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우리가 법을 없애겠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과속에 대해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으신 뒤에 율법과 십계명이 폐지되었다고 가르치는 신학도 마찬가지다.
이번 주에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율법과의 관계를 살펴보려고 한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예수님의 죽음이 율법을 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➋ 느끼기 : 하나님 그리고 그분의 율법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필요성을 인식한다.
➌ 행하기 : 예수님의 용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하게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A.
❷ 배우자가 사망하여 재혼하는 경우와 달리 예수님과 결혼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입니까?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가 죽는 것이다.
❸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율법과 맺는 관계는 영접하기 전과 어떻게 다릅니까?
※ 예수를 영접하기 전에 율법은 죄와 사망의 법이 되지만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는 생명의 법이 된다.
❹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과 연합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까?
※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자가 된다.

B.
❷ 우리를 위한 율법의 기능과 한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지만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지는 못한다.
❸ 우리와 율법 사이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예수님의 죽음이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 율법을 범한 것은 사망이기 때문에 죽은 자가 스스로 율법을 행하여 살아날 수 없기 때문에 율법의 저주로 죽어야 하는 그 죽음을 율법의 저주 아래 있지 않는 분이 대신 받아 죽어주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채우셔야 하기 때문이다.
❹ 어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있을지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 서로 이야기해보자. 예수님이 사망을 폐하시고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드러내신 것을 확신하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딤후1:9~11 참고)

결론 : 예수님의 죽음은 율법을 폐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모든 신자는 율법을 범하므로 맞이해야 할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첫째날(일) 율법에 대해 죽음(롬 7:1~6)
5월 4일

“형제들아…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롬 7:1).

1. 롬 7:1~6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바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요약해 보라. 율법에 대한 다른 성경절들도 염두에 두고 자세히 읽어 보라.
[롬7:1~6]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답: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이제 자유롭게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 맺는 사람이 되었다고 가르친다.

어떤 성경은 롬 7:1을 율법이 죽음 이후에는 구속력이 없는 것처럼 잘못 번역하였다. 그러나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모든 살아있는 사람은 율법의 지배 아래에 있다.” 강조점은 죽은 자들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들에 있다.
결혼을 예로 들자면 기혼자가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은 율법에 어긋나며 간음죄가 된다. 한쪽 배우자가 죽어야 다른 쪽 배우자가 율법을 범하지 않고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로마서 7장이 율법의 죽음을 말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리스도의 육체를 통하여 사람이 율법에 대해 죽는다는 사실을 보여 줄 뿐이다(롬 7:4). 롬 6:6에 따르면 죽는 것은 “옛 사람”이다. 옛 사람과 연합한 자는 율법의 정죄를 받고 불행한 관계에 사로잡힌다(롬 7:9~11, 24). 그러나 옛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은 자유롭게 새 사람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들어간다(롬 7:4).
바울은 율법이 모든 살아있는 사람을 구속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이 새로운 연합을 지배한다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신자가 그리스도와 결혼했다는 사실은 율법이 더 이상 정죄의 수단이 아님을 뜻한다. 예수님 안에 있는 신자는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롭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의를 입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죄를 정의하는 십계명이 폐지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는 성경의 가르침과 너무나 어긋난다. 대신 그는 신자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 가져야 할 새로운 관계에 대해 말한다. 율법은 여전히 구속력이 있다. 그것은 단지 예수를 믿고 죄와 자아에 대해 죽은 자들을 더 이상 정죄 아래 붙잡아 두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새로운 분, 곧 예수님께 속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이 구절은 이해가 쉽지 않은 구절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이 구절은 율법이 우리에 대하여 죽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은 율법의 정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뜻이다. 말을 바꾸면, 그리스도인은 율법이 더 이상 정죄할 수 없는 상태에 들어갔다는 말이다. 이유는 율법이 폐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의 정죄에서 사유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율법의 정죄는 사망이라는 것이다. 그 정죄에서 사유 받은 것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이다. 이제는 예수 안에서 참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율법이 지켜지는 생활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의 생활이 곧 율법의 실현이 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성경은 십계명을 “생명의 도”라고 하였다.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행7:38) 모세가 받아 우리에게 준 것이 바로 생명의 도이다. 그것을 우리는 십계명이라고 부르는데, 원문을 직역하면 십계명이라는 말이 없다. 열마디 언약의 말씀이라고 하였다.(신4:13)

교훈 : 율법은 죽지 않는다. 단지 옛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예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율법의 정죄로부터 자유롭게 될 뿐이다.

둘째날(월) 죄와 사망의 법(롬 8:1~8)
5월 5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7~8).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이렇게 확신시킨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이 말씀을 문맥과 상관없이 읽으면, 바울이 ‘생명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을 두 개의 다른 법으로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법이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의 전과 후가 다를 뿐이다.

1. 롬 7:7~13에서 바울은 율법의 역할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는가?
[롬7:7~13]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9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

답: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게 한다.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하기 때문에 율법이 잘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죄 사함을 받고 죄를 버린 사람들에게는 율법이 자유의 보증이 된다.

율법의 기능은 그것과 관계하는 사람에 따라 좌우된다. 예를 들면 똑같은 칼이라도 외과의사가 들면 치료의 수단이 되고 살인자가 들면 죽이는 수단이 된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지갑을 훔쳐서 법을 어긴 강도는 법을 보호의 의미로 여기는 자(지갑 주인과 같은)와는 다른 법적 관계에 서게 될 것이다. 성경은 율법이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롬 7:12)다고 설명하기도 하고 때로 “죄와 사망의 법”(롬 8:2)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하나님이 응보(應報)의 심판을 하신다고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처럼 율법이 죄를 듯]-ㅔ0 사망을 요구하는 기능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죄로 여길 수는 없다.
롬 8:5~8에 따르면 율법은 “육신의 일을…생각하는 자들”에게 “죄와 사망”의 도구가 된다. 이 말씀은 과거의 관계를 끊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할 뚜렷한 욕구가 없이 여전히 “옛 사람”과 결혼 관계에 머문 사람을 묘사한다. 이런 죄악된 연합의 결과, 그는 자신과 반대편에 계신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에 대하여 원수가 된다(롬 8:7).
바울은 육신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율법에 굴복할 수도, 그분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다고 강조한다(롬 8:7~8). 이것은 롬 7:13~15에서 번민하는 자에 대한 언급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긴다고 했기 때문이다(롬 7:25). 아마도 바울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롬 1:18)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 같다. 이렇게 하나님의 권위를 거스르는 자들에게 율법은 죄와 사망의 도구가 된다(롬 2:12).

<부가설명> 교과 저자는 죄와 사망의 법과 생명의 성령의 법은 동일한 법인데, 그 법을 대하는 사람들의 상태에 따라서 법의 기능이 달라지는 것을 가르쳐주는 말씀이라는 것을 잘 지적해주었다. 교과 저자가 처음에 든 예처럼 교통법규를 예로 든다면, 과속하는 자에게는 티켓이 발부되고 교통법원에 출두해서 재판을 받아야한다는 교통규정은 과속하는 사람들에게는 법원에 출도하고 재판을 받아야하는 법이지만 속도를 잘 지키는 운전자들에게는 안전을 보장하는 법이다. 이런 예가 죄와 사망의 법과 생명의 성령의 법이 동일한 법이지만 그 법을 대하는 사람들의 상태에 따라서 기능과 적용이 달라진다는 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예수 안에서 생명을 얻은 사람들은 그 생명을 잃지 않도록 지켜주는 하나님의 계명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사망 선고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참된 생명에 상처를 입지 않으려면, 또 그 생명을 잃지 않으려면 이 생명의 법, 곧 생명의 도를 따라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올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구원의 복음을 오해하지 않을 것이다.

교훈 : 같은 율법이라도 사람이 그리스도와 맺는 관계에 따라 ‘생명의 법’이 되기도 하고 ‘죄와 사망의 법’이 되기도 한다.

셋째날(화) 율법의 권능
5월 6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55~56).

1. 롬 4:15, 5:13, 7:7에 따르면 율법의 기능은 무엇인가? 롬 7:8~11은 율법을 어긴 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롬4: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롬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롬7:7,8~1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9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답: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기능이다. 율법을 어기는 자들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

모든 도구는 목적이 있다. 열쇠는 자물쇠를 열고 칼은 물건을 자르는 데 사용되는 것처럼 율법은 죄를 정의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하나님의 율법이 없었다면, 어떤 행동이 그분께 용납될지 또는 용납되지 않을지 알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율법 없이는 죄도 존재하지 않겠지만, 바울은 율법이 죄와 단짝이 아님을 명확히 한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롬 7:13).
위의 말씀은 어떻게 고전 15:54~58의 말씀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가?
따로 읽는다면 고전 15:54~58은 하나님의 법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권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울의 요점은 율법이 죄를 정의하기 때문에 죄를 더욱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물론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 6:23). 율법이 없다면 죄를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죽음도 없었을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의 목적은 율법을 악마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모든 신자가 어떻게 율법을 어김으로 이르러온 죽음을 이길 수 있는지 증명하는 것이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율법의 입법자이시다.(약4:12) 법적으로 표현한다면 그분은 존재 자체가 법이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창조주이시고 생명이시 스스로 계시는 분이신 그분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분과 관계없이 있게 된 것은 우주에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말하면 죄와 사망도 그분에게서 나왔느냐고 반문할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분이 죄와 사망을 창시한 것은 아니지만 그분과의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분의 창조를 거절하는 것이 죄와 사망이기 때문이다. 루시퍼가 창조주와 동등하겠다고 주장한 것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 관계없이도 자기가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과 같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런 루시퍼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해준 그의 존재를 여호와께 반납하고도 루시퍼가 존재할 수 있다면 그도 여오화 하나님과 관계없이 존재하는 자가 된다고 대답하셨을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해준 루시퍼의 존재를 반납하면 그는 존재를 상실하게 된다. 스스로 없는데서 있게 된다면 그도 여호와 대열에 참여할 것이다. 그것은 피조물인 루시퍼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다. 자기 존재를 반납하지 않고 여호와와 상관없이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결과가 사단이 된 것이고, 지구로 도망와서 지구의 시조를 자기 사상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롬5:12) 창조주께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율법을 제정해 주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바울은 율법의 효용(效用)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딤전1:9~11) 자기의 처지를 바르게 깨달아서 창조주께 돌아와서 생명의 도를 따라 영생하라고 권고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이다.

교훈 : 율법은 죄를 정의하는 것이기 때문에 율법의 존재는 죄를 더욱 부각시킨다. 하지만 율법의 이러한 목적은 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의를 위한 것이다.

넷째날(수) 연약한 율법
5월 7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롬 8:3).

앞에서 보았듯이 어떤 면에서 율법은 죄를 ‘강화’시키지만, 실제로는 끔찍할 정도로 연약하다. 어떻게 같은 주체가 동시에 강력하면서도 연약할 수 있는가?
그러나 차이점은 율법에 있다기보다는 사람에게 있다. 율법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사람에게 그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있으며 죽음에 이르는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도록 강요한다. 자신의 죄악을 발견함에 따라 그 죄인은 율법을 철저하게 따르기로 결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이미 죄를 지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

1. 행 13:38~39, 롬 8:3, 갈 3:21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은 율법과 구원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가?
[행13:38,39]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롬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갈3: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답: 율법은 죄를 사하는 능력도 기능도 없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서만 얻는다.

어떤 사람은 율법을 엄격히 고수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율법은 죄를 정의할 뿐 그것을 용서하지는 않는다(롬 7:7, 갈 2:21). 그런데 바울은 죄를 강화시키는 동일한 법이 또한 연약하다고 말한다(롬 8:3). 율법은 죄인의 죄를 깨닫게 하지만 그를 의롭게 하지는 못한다. 거울이 우리의 잘못을 보여주지만, 그것을 교정해 주지는 못하는 것과 같다. 엘렌 G. 화잇도 이렇게 말했다. “율법은 그것의 정죄를 받은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 율법은 멸망하는 자들을 건져낼 수 없다”(영문 시조, 1890년 11월 10일).
우리가 율법의 목적을 온전하게 이해한다면 예수님이 왜 인류를 위한 속죄 제물이 되셨는지 이해하기 쉽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죄 많은 인류는 하나님과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한(롬 7:12) 법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었다.
동시에 그분의 죽음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노력이 허사임을 보여 주였다. 만약 율법을 지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사실은 율법에 대한 순종으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극단적인 조치가 필요했다.

<부가설명> 율법의 목적은 화요일 교과와 또 부가설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죄가 없을 때에는 죄를 깨닫게 하는 율법이 필요가 없지 않았겠는가. 그 사실을 바울은 딤전 1:9~11에서 설명했다. 그러면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는 율법이 없었는가? 그런데 하나님의 율법은 영원하다고 했다.(시119:160) 여호와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다고도 했다.(시119:89) 그런데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 율법이 없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죄를 지적하는 것이 율법의 목적이라고 하면 율법은 죄가 들어오기 전에 이 세상에 있어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은 생명의 도이기(행7:38)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곳에는 그 생명이 생활하는 길이 있게 되어 있다. 이 길을 벗어나는 것이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고 그것은 곧 사망이며 존래를 상실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생명의 도이다. 이 생명의 도를 죄가 세상에 들어온 후에 사망이 된 사람들에게 그 사망이 된 죄를 깨달아서 다시 생명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제시하시고 그 길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셨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생명의 길에 들어설 수 있고 생명을 얻은 다음에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롬6:4)

교훈 :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지만 우리를 구원할 능력은 없다. 예수님의 죽음은 율법에 대한 순종으로 우리가 구원 얻을 수 없음을 보여 준다.

다섯째날(목) 율법의 저주(갈 3:10~14)
5월 8일

1.아래의 성경절들은 인간의 본성에 어떤 사실들을 말하는가? 우리는 이러한 실상을 매일 어떻게 확인하는가? 시 51:5, 사 64:6, 롬 3:23.
[시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사64:6]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답: 사람은 본성적으로 죄를 범한 사람으로서 날마다 생활에서 이런 본성이 드러나게 된다. 더러운 옷 같고, 잎사귀 같이 시드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예수님을 제외한다면 모든 인류는 아담의 죄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자신이 완전히 의롭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물론 엘리야나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특별하게 가까웠던 인물도 있었다. 그러나 흠 없이 완전하게 산 사람은 없었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바울은 이렇게 단언하였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 율법은 총체적이고 전적인 순종을 요구한다. 하지만 예수님 외에 과연 누가 항상 순종할 수 있겠는가?

2. 롬 6:23는 “율법의 저주”의 의미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창 2:17과 겔 18:4 참고)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겔18: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답: 율법의 저주는 사망이다.

모든 사람은 선천적으로 율법의 저주 아래에 있다. 율법은 과오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과거의 죄를 돌이키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야고보는 율법의 하나를 어기는 것도 모든 율법을 어기는 것처럼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킴으로써 상황을 더 절망적으로 묘사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죽음에는 경중이 따로 없다.
저주 아래 있는 절망적인 상황을 인식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규모를 쉽게 인정하게 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자신의 죽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갈 3:13)다.

<부가설명> 성경은 세상에 사망이 들어온 것이 인류의 시조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은 결과라고 가르친다.(창2:17, 창3:17~19) 그런데 죄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것이라고 한다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이 하나님의 율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에 기록된 창조주 하나님의 최조의 명령은 바로 창세기 2:16,17이다. 이것은 여자를 만들기 전에 아담에게 하신 명령이다. 우리는 창세기1:28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땅을 다스리라고 한 것이 첫 명령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여자를 창조하신 후에 하신 말씀이고, 또 명령하신 것이 아니고 복을 주시며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창2:16,17을 명하여 가라사대라고 기록되었다. “명하여”라는 말은 원어로 “차와, 또는 차바”이다. 창세기 2,3장에서 선악과와 관련된 구절이 세 번 나오는데, 창2:16,17, 창3:11, 3:17 모두 차와라는 말이 있다. 개역한글판 3:17에는 명한이라는 말을 번역하지 않았지만. 이런 기록을 볼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태초에 아담 부부에게 명령으로 주신 것이 바로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을 먹은 결과 사망이 되었다. 죄의 삯이 사망이라고 했으니 선악과를 먹은 것이 죄요, 죄는 불법이라고 했으니(요일3:4)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명한 것이 태초에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법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동산 안에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으라는 것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한 명령은 우리가 생각하는 십계명이 명문화 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명령은 생명관리법이라는 것이다. 선악과를 먹지 않으면 죽지 않고, 그것을 먹으면 죽는다. 그러므로 최초의 계명은 생명관리법이 분명하다. 그런데 스데반은 모세가 시내산에 받아 우리에게 준 것은 생명의 도라고 하였다.(행7:38)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면 이 생명의 도를 따라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되는 것이다.(롬6:4) 율법의 저주는 한 마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마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율법적 선포인 것을 넉넉히 알 수 있다. 아담이 그것을 먹었기 때문에 그가 사망이 되고 그의 후손에게 끼쳐줄 생명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모든 아담의 후손은 사망의 자식으로 출생하게 된 것이다.

교훈 : 죽음은 아담 이후의 죄 지은 모든 인류가 피할 수 없는 율법의 저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대신 이 저주를 받으시고 우리를 속량해 주셨다.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5월 9일

<시대의 소망>, 758~764, “다 이루었다”를 읽어 보라.

“율법은 의, 즉 의로운 생애, 완전한 품성을 요구하지만 인류는 그 요구에 미칠 수 없다. 인류는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으로서 지상에 오셔서 거룩한 생애를 사시고 완전한 품성을 계발시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받고자 하는 모든 자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신다. 그분의 생명은 사람들의 생명을 대신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관용하심을 통하여 과거의 죄를 용서받는다.… 그리하여 바로 이 율법의 의가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서 성취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롬 3:26)실 수 있으시다”(시대의 소망, 762).

요약하면,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법의 항구성을 효과적으로 증명했다. 인류의 첫 조상이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은 율법을 폐지하거나 처벌을 거두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면 지구의 거주자들은 법 없는 세상에서 사는 불행한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대신 하나님은 우리의 대속자로서 아들을 보내셨고, 그분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율법이 요구하는 죄의 형벌을 받으셨다.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온 인류는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누구든지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완전하게 설 수 있음을 뜻한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많은 종교가 사람이 죽으면 신이 그 사람의 선행과 악행을 비교해서 내세에 어떤 상을 베풀지 결정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런 종류의 생각에는 얼마나 끔찍한 오류가 있습니까?
※ 이런 사상은 사람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뱀의 거짓말에 기초하고 있다.

➋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율법에 대한 순종이 우리를 구원하는 데에 어느 정도 보탬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효능을 어떻게 본다는 말일까요?
※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데 100% 효과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믿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희생을 무시하기 때문에 생명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요8:23,24 참고)

➌ 율법이 폐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정말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폐지되었다고 생각하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 정말 의미하는 것은 제7일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폐지되었다고 생각하는 계명이 바로 제7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제4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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