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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과 하나님의 위대한 그리스도 중심의 계획 -(핵심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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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3-07-04 09:28 조회1,4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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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하나님의 위대(偉大)한 그리스도 중심의 계획(計劃)

                                           (7월 8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56분)

 

기억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엡 1:3)

 

<서언(緖言)>

 하나님은 창세전(創世前)부터 그리스도의 고귀(高貴)하신 삶과 희생(犠牲)을 통해서 구원(救援)의 계획을 예비(豫備)하셨으며, 죄인을 구속(救贖)하시고 구원(救援)의 인(印)을 치시며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시기를 바라신다. 그런데 성경을 잘못 알거나 이해(理解) 못 하는 많은 사람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미래(未來)를 미리 정하셔서 어떤 사람은 영생으로, 어떤 사람은 멸망(滅亡)으로 예정하신다고 가르치거나 그렇게 잘못 알고 있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이번의 에베소서 공부를 통하여 하나님의 본뜻을 확실히 알고 증거(證據)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됩시다.

 

7월 2일(일)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되고 받아들여짐 

 

(Q)~.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전(創世前)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 안에서 택(擇)함을 받았다는 말씀의 의미(依微)는? (엡1:4)

 

(A)~(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는 선택(選擇)이 이뤄질 수 있는 영역인데, 이는 모든 신령한 생애가 그분 안에 중심을 두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에게 나오는 자가 구원(救援) 얻도록 택함. 받는 것은 합창단(合唱團)에 가입(加入)하는 사람이 노래 부르도록 택(擇)함 받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임의로 하는 선택이 아니다. 하나님은 구속주(救贖主)인 그리스도 안에 믿음을 두기로 선택하는 모든 자를 구원(救援)하려는 의도(意圖)를 갖고 계신다. (엡 1:4, 재림교주석)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救援)이 선택여부(選擇與否)에 따라 진행(進行)되고 이루어진다는 의미(意味)이다. 

 

이것은 창세전(創世前)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우리를 택하셨음을 시사한다. 

즉 이 구절(句節)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선택(選擇)이 

(1) 하나님 자신을 위한 사역이며

(2)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恩惠)하에서 이루어졌음을 시사해 주는 표현이다(Wood). 

그리스도인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며,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됨을 시사한다(Lincoln). 한편 ‘창세전(創世前)에’는 하나님의 선택하심이 영원전(永遠前)에 이루어진 것임을 나타낸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인간(人間)의 공적(功績)이나 일시적 환경(環境)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本性)에서 비롯된 주권적(主權的) 은혜임을 시사하며 동시에 ‘창세전(創世前)에’는 그리스도의 선재성(先在性)을 나타낸다. (골 1:15-17, Lincoln)..

 

7월 3일(월) 값비싼 구속(救贖): 아낌없는 용서(容恕) 

 

(Q)~구속(救贖)의 값비싼 대가(代價)로 구원(救援)받을 수 있었으며, 그 값비싼 구속(救贖)을 아낌없이 용서(容恕)하여 주시는 분을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여야 할까?

 

(A)~죄인(罪人)인 우리가 구속(救贖) 받았다는 의미는 “허물과 죄”로 죽은 자(者)를 용서(罪赦)함 받은 것은 그리스도 고귀한 희생으로 십자가(十字家)의 대가(代價)를 치르시고 구속(救贖)하셔서 자유와 존엄성(尊嚴性)을 회복한 하늘의 시민(市民)이 되게 한다. 

 

7월 4일(화) 하나님의 위대(偉大)한 그리스도 중심의 계획 

 

(Q)~하나님의 위대(偉大)한 계획(計劃)은 무엇이며, 그리스도 중심(中心)의 계획은 어떤 것일가? (에베소서 1:17~23절)

 

(A)~하나님의 위대(偉大)한 계획은 타락(墮落)한 인류를 구원(救援)하기 위하여 저들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계획(計劃)된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는 창조(創造) 때로부터 중보자(仲保者)의 직분에 임명(任命)되었으며 영원전(永遠前)부터 우리들의 대리자(代理者)요 담보(擔保)로 설정(設定)되었다.

 

7월 5일(수) 그분의 영광(榮光)을 찬양(讚揚)하는 삶 

 

(Q)~만물(萬物)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統一)시키려는 하나님의 더 넓은 계획과 목적과 뜻을 그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엡 1:14)

 

(A)~구원(救援)받은 자들은 그분의 영광을 찬양(讚揚)하는 삶을 통하여 구원(救援)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기업(基業)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讚美)하게 하는 것으로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유업(遺業)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사는 것이다.

 

7월 6일(목) 성령(聖靈) : 인장(印章) 그리고 계약금(契約金) 

 

(Q)~성령의 임재(臨在)는 무엇으로 표현(表現)하며, 성령을 표현된 그것은 어떤 기능(機能)의 의미(意味)를 대표하고 있습니까? (겔 28:12, 렘 32:10~14절, 44절, 왕상 21:8절)

 

(A)~성경(聖經) 말씀의 표현에 어느 곳에서 인장(印章)은 성령의 임재로 표현되며, 인장(印章)은 법률 및 계약서(契約書)의 사본(寫本)을 인증(認證)하거나 거래(去來)를 확인할 때 또는 우수성(優秀性) 나타낼 때나 소유권(所有權)과 보호(保護)를 약속(約束)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의 임재는 인장(印章)처럼 하나님의 소유권과 보호를 약속하므로 성령은 우리의 유업(遺業)을 보증하시고 그것이 온전히 주어질 순간(瞬間)들을 바라보게 하신다. 

 

********<말미부록(末尾附錄)>***************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가 세상을 움직임 (시 85:10)

갈바리의 십자가는 모든 땅의 권세와 지옥(地獄)의 권세에 도전(挑戰)하여 종내에는 그것들을 완전히 추방(追放)할 것이다. 십자가 안에 모든 감화가 집중되어 있고 거기에서 모든 감화가 흘러나간다. 그것은 매력의 큰 중심이다. 이는 그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가 인류를 위하여 그의 생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 희생제물(犠牲祭物)을 드리신 것은 인간을 본래의 완전한 상태로 회복(恢復)시키실 목적으로 그리하셨다. 그렇다. 인간에게 품성의 완전한 변화를 주셔서 정복자(征服者) 이상의 존재가 되게 하시려고 제물(祭物)을 바치신 것이다. (6BC 1113) 

 

참 과학이 되는 복음(福音).(요 1:12; 골 1:26, 27; 2:2, 3, 10)

(엡 1:3-6 인용) 참된 신자는 이 거룩한 높이에 다다를 수가 있다. 원하는 자는 모두 다 경건의 오묘를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받으실 때 그분 안에서 완전하게 될 가능성이 우리의 손이 닿는 곳에 있게 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하신 일과 그의 使命(사명)을 정확히 이해함으로써이다. 그분의 기다란 人性(인성)의 한쪽 팔이 인간 가족들을 안으시고 그의 신성의 팔이 무한하신 분의 보좌를 붙잡으신 것은 그가 사람을 위해서 치르신 무한하신 희생의 은혜를 우리로 입게 하려 하심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그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곧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에게까지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權勢)를 주신다. (6BC 1113.9) 

 

아버지께서 그 큰 속죄(贖罪)를 받으실 때 그의 아들에게 보여주신 모든 사랑이 그의 백성들에게도 나타났다. 사랑으로 그들의 관심을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한 사람들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받으시는 바 된다. 그들은 가장 깊은 치욕(恥辱) 속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겪었고, 그분의 영광이 그들의 최고의 관심사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받으신 바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사랑하심같이 그들을 사랑하신다. 임마누엘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믿는 자 사이에 서셔서 그의 택하신 자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시고, 그분의 점 없는 의(義)의 두루마기로 그들의 허물과 죄를 가려 주신다. (원고 128, 1897). (6BC 1115)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힌 분은 그리스도이지 율법이 아님. (롬 3:31)

십계명은 살아 있고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표상(表象)이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그 원형을 만났을 때 희생과 헌물(獻物)로 예배를 드릴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림자는 그 실체에 도달한 것이다. 하나님의 어린양은 완전한 제물(祭物)이었고, 충분한 제물이었다. (6BC 1116) 

 

그리스도의 이름의 공로(功勞)들(엡 1:6; 3:12; 히 4:15, 16; 9:14)

우리는 예수의 이름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간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모든 시련과 시험들을 그리스도께 가져가라고 하신다. 이는 그가 그 모든 것을 이해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가 우리의 모든 불행을 인간의 귀에다 쏟아 놓지 않기를 바라신다.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을 수가 있다. 우리는 확신을 하고 나아가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나를 받으신다.”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엡 2:18).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膽大)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엡 3:12). 마치 땅의 부모가 자녀들에게 언제든지 오라고 하시는 것같이 주께서 우리에게 우리의 부족한 것들, 곤란한 문제들, 우리의 기쁨과 사랑을 그분 앞에 갖다 놓으라고 하신다. 모든 약속은 확실하다. 예수는 우리의 보증인이요, 중보자시며, 우리가 완전한 품성을 갖게 하려고 모든 자원을 우리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곳에다 두셨다. 그리스도의 피의 공효는 항상 살아 있고 그것은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시다. 이는 우리가 그분의 공로를 통해서만 용서와 평화를 갖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이 그 영혼에게 현실로 나타날 때, 그 신자는 선(善)한 행실과 의의 열매를 맺음으로 그의 빛을 비출 것이다(청년 지도자 1892.9. 22). (6BC 1116)

 

은혜(恩惠)란 무엇인가?. (엡 1:7; 2:7, 8; 롬 3:24; 딛 2:11)

주님은 우리의 타락(墮落)한 상태를 보신다. 우리에게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그분이 우리 영혼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은혜와 평화를 주셨다. 은혜란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고 잃어버린 바 된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죄인들이라는 그 사실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서 우리를 제외(除外)하는 대신에 우리에게 그의 사랑을 적극적(積極的)으로 활동하게 하여서 구원(救援)받게 하신다. (사인즈 1893.6. 5).  (6BC 1117) 

 

매일(每日) 매 순간(瞬間)마다 필요한 은혜(恩惠). (고후 3:18)

영혼의 성화는 믿음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그리스도를 확고부동하게 바라봄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진리의 능력은 마음과 품성을 변화시킨다. 그 결과는 화판 위에다 여기저기 물감을 조금씩 묻혀 놓는 것과 같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품성 전체가 변화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모습이 말과 행동에 나타나는 것이다. 새로운 본성을 나누어 받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좇아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매일 매시간 꼭 필요하다. 만약 그리스도의 은혜가 계속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면 타고난 마음의 이중성이 드러날 것이며, 생활에는 이중 봉사의 징후가 나타날 것이다. 품성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역사하는 곳은 어느 곳에서나 그것은 땅에 있는 기쁨보다 더 많은 기쁨, 땅에 속한 평화보다 더 차원 높은 평화로써 생활의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밝게 하고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편지 2a, 1892). (6BC 1117) 

 

완전한 표적(標的)에 이름(골 2:10; 계7:2, 3; 14:1-4)

성령의 강력한 힘이 인간 대리자의 품성 속에 완전한 변화를 일으켜서 그 사람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다. 어떤 사람이 성령이 충만해졌을 때 그가 심한 시련과 시험을 당하면 당할수록 그만큼 더욱 분명하게 그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임을 입증한다. 영혼 속에 있는 평화가 얼굴에 나타난다. 말과 행동은 구주의 사랑을 나타낸다.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고자 애쓰지 않는다. 자아를 포기하고 그가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 위에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적힌다. (6BC 1117)

 

자비로 충만하신 주님께서는 당신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다. 그러므로 그분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자. 왜냐하면, 바로 그분이 우리의 구주가 되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가득히 채우고 우리 생애에서 그 풍성한 은혜의 조류가 흘러나가게 하자. 우리가 불의와 죄 가운데서 죽어 있었을 때, 그분께서는 우리를 영적 생명으로 살리셨다. 그분께서는 은혜와 용서를 가져오셨고, 우리의 영혼을 새 생명으로 채우셨다. 그리하여 죄인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바 되었다. 그 뒤 죄인은 이제 그리스도를 섬기는 그의 새로운 의무를 짊어지며, 그의 삶은 진실하고 강하며, 선한 행실들로 가득 차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신다.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요 14:19).... (AG 319) 

 

인간의 정신이 갈바리의 십자가에 이끌리게 될 때 불완전한 안목으로 보면 그 십자가는 수치스러운 그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과연 그리스도께서 왜 죽으실 수밖에 없었을까? 그것은 죄의 결과 때문이었다. 그러면 죄란 무엇인가? 율법을 범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칠 때 인간의 눈은 죄의 특성을 밝히 보게 된다. 비록 율법은 깨어진 바 되나 죄를 범한 자를 용서할 수는 없다. 율법은 우리들의 몽학 선생이며 형벌을 받도록 정죄한다. 그러면 이에 대한 구제책은 어디에 있는가? 율법은 타락하고 죄지은 인간에게 당신의 의를 나누어 주시며 당신의 의로운 품성을 통하여 하늘 아버지를 인간에게 나타내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에게로 우리를 인도한다. (1 SM 341) 

 

쳐다보고 그리고 살라(사 45:21, 22; 마 16:24; 요 1:29)—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기 때문에 그는 복음이었다. 이제 우리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요 1:29)는 기별하고 있다. 우리 교회의 신자들은 못 박히신 구주를 쳐다보지 않을 것인가? 영생의 소망 중심이 되신 부활하신 구주를 바라보지 않을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기별이며, 우리의 논리이며, 교리이다. 그리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주는 우리의 경고이며,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우리의 위로이며, 모든 믿는 자들의 소망이다. 만약 우리가 사람들의 관심을 일깨워서 그들의 시선을 그리스도께 고정시키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옆으로 비켜설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의 시선을 하나님의 어린양께 계속 고정하라고 요청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들은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서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 16:24; 막 8:34).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시킨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릴 것이다. 이기심에 대하여 죽을 것이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을 것이며, 그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매우 놀랍고도 영광스럽게 높임을 받을 것이다. (6BC 1113)

 

(엡1:4) 곧. 어떤 사람은 구원받고 어떤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도록 선택되었기에 개인이 결코 그 결과를 좌우할 수 없다는 교리를 지지하는 데 (앱 1:4~6절)이 때때로 사용됐다. 사실 그 구절은 창세 전에 선택받아 자녀로 입양되도록 예정되거나 택함. 받은 어떤 이들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구원(救援)받지 못하도록 선택된 존재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더욱이 택함 받은 자들은 “우리”라고 지칭되는데, 이는 그리스도인들, 곧 믿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자들을 의미한다. 창세 전, 곧 구원의 계획이 세워졌을 때 그 계획의 섭리를 받아들인 자들에게는 자녀의 신분이 회복되도록 정해졌다. 모든 사람이 그 계획을 받아들이고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다. (딤전 2:4; 벧후 3:9).  <아멘>

 

<필리핀 민다나오 오지(奧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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