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과 대가를 지불하는 사랑 -(한글)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11과 대가를 지불하는 사랑 -(한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1-03-09 02:57 조회1,737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안식일학교 교과는 재림성도님들의 자부심이다

https://youtu.be/x0mQQBsn-TQ


------------------------------------

제11과 대가(代價)를 지불(支拂)하는 사랑

  <3월 13일 안식일  日沒:오후 6시 37분>

 

(3월 7일(日) <돈 없이 사라? (사 55:1~7)>

(Q)~(이사야 55:1)에 “돈 없이 사라”는 말씀의 영적(靈的)인 의미(意味)는 ?

 

(A)~①<돈 없는 자>= 상징적(象徵的)인 언어(言語)로서, 여기에 언급(言及)된 “돈 없는 자”는 자신(自身)의 영적(靈的)인 필요(必要)를 깨닫는 자들을 의미(意味)하며, 그들은 구원(救援)의 귀한 선물(膳物)에 대한 대가(代價)로 하나님께 지불(支拂)할만 한 공로(功勞)가 자신(自身)들에게는 전혀 없음을 잘 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영적(靈的)인 빈곤(貧困)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들을 다 오라고 초청(招請)하신다. 그러한 자들이지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구원(救援)의 대가(代價)는 이미 구세주(救世主)께서 지불(支拂)하셨다는 말씀이다.

 

②<와서…사라>= 영적(靈的)인 축복(祝福)을 원(願)하는 자들은 그것에 대해 “배고파” 하고 “목말라”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얻기 위하여 노력(努力)해야 한다. 구원(救援)의 축복(祝福)은 거저 제공(提供)된다. 그렇지만 그것은 자기(自己)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내야만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은 구원(救援)에 대하여 무관심(無關心)하거나 그것을 얻기 위하여 노력(努力)하지 않는 자들에게 구원(救援)을 주겠다고 하나님께서는 약속(約束)하시지 않으셨다. (성경주석, 사 55:1)

 

◎. 이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죄인)들을 위하여 구원자(救援者)께서 상상할 수 없는 큰 값을 지불(支拂)하셨음을 믿고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救援)을 얻으라는 말씀이다.

 

(3월 8일(月) <높은 생각(生覺) 높은 길 (사 55:6~13)>

(Q)~(이사야 55:8~9)에서 하나님은 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그분의 생각과 길이 우리의 생각과 길보다 높다고 말씀하시는가?  그것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우주(宇宙)의 모든 신비(神秘) 중에서 최대(最大), 최고(最高)의 신비(神秘)는 ‘구원(救援)의 계획(計劃)’이다(엡 6:19 참고). 우주의 창조주(創造主)께서 자신(自身)을 낮춰 인간의 형상(形像)을 입으시고, 수고(愁苦)와 고난(苦難)의 삶을 사시며, 죄(罪)를 위한 희생제물(犧牲祭物)이 되어 우리를 위해 십자가(十字架)에 죽으신 것이 단지 우리를 용서(容恕)하시고 우리에게 자비(慈悲)를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은 영원(永遠)한 시대(時代)를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의 “생각과 길”은 높은 차이(差異)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고백(告白)하며 그분에 대하여 경외감(敬畏感)에 압도(壓倒)될 수밖에 없다.

 

(3월 9일(火) <금식(禁食) 친구(親舊)들 (사 58:1~8)> 

(Q)~⑴. (이사야 58:3)에서 말하는 ‘금식(禁食)’은 어떤 금식(禁食)을 가리키는가? 

   ⑵. 그들의 ‘금식(禁食)’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A)~⑴.(이사야 58:3)의 진정(眞情)한 금식(禁食)의 참 뜻은?

    ○. 종교(宗敎)의 진정(眞情)한 목적(目的)은 죄의 짐에서 사람들을 해방(解放)시키고, 편협(偏狹)과 억압(抑壓)을 제거(除去)하고, 정의(定義)와 자유(自由)와 평화(平和)를 증진(增進)하는 것이다. 

       ①. <결박(結縛)을 풀어 주며>. 

진정(眞情)한 금식(禁食)은 동기(動機)를 순화(醇化)시키고 생애(生涯)를 개혁(改革)하기 위하여 고안(考案)되었다.

 

②. <네 식물(食物)을 나눠 주며>

진정(眞情)한 종교(宗敎)는 실제적(實際的)이다. 

물론 거기에는 교회의 의식(儀式)과 의례(儀禮)가 포함(包含)되지만 진정한 경건(敬虔)의 여부(與否)는 사람들 앞에 공개(公開)된 삶을 통(通)하여 나타난다. 음식(飮食)을 안 먹는 것은 굶주린 자들에게 음식(飮食)을 나누어 주는 것만큼 중요(重要)하지 않다. 실천적(實踐的)인 경건(敬虔)한 삶만이 하나님의 심판대(審判臺)에서 인정(認定)받는 종교(宗敎)이다. 

 

⑵. <잘못된 그들의 금식(禁食)>

①. 유대인들에게 종교 행사는 약한 자들을 억압하고, 과부와 고아의 물건을 강탈하고, 온갖 형태의 뇌물 수수와 사기와 부정행위를 가리는 가면이 되어 버렸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자유롭게 살도록 하셨는데,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그들을 노예(奴隸)와 빈민(貧民)으로 만들었다. 

②.위선(僞善)이 그들의 종교생활(宗敎生活)에 깊숙이 침투(浸透)되었다. 

이 위선자(僞善者)들은 여러 형태(形態)의 신체적(身體的) 고통(苦痛)을 가(加)함으로 하나님이 받아 주시기를 기대(企待)했다. 그들은 금식(禁食)이 그들의 죄악(罪惡)을 속(贖)할 줄로 믿었다. 그들의 어두워진 정신(精神)은 하나님의 의(義)로우심과 또한 그의 자녀들에게 의(義)를 요구(要求)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진정(眞情)한 종교(宗敎)의 본질(本質)은 공의(公義)와 자비(慈悲)와 겸손(謙遜)을 실천(實踐)하는 것임을 망각(忘却)하였다. 

 

(3월 10일(水) <금식(禁食) 투쟁(鬪爭) (사 58:1~12)>

(Q)~(이사야 58:6~12)에서 형식적(形式的)이고 잘못된 신앙(信仰)의 실상(實狀)에 대한 책망(責望)은 어떤 것들이며, 참된 금식(禁食)의 투쟁(鬪爭)으로 참된 신앙생활(信仰生活)을 하는 자들에게 약속(約束)된 내용(內容)은 ?

 

(A)~<형식적(形式的)인 신앙에 대한 책망(責望)>

①.예수님을 알기는 알되 믿지 않는 태도(態度)

②.하나님의 진리(眞理)와 정의(定義)를 무시(無視)하고 오직 하나님의 축복(祝福)만을 탐(貪)하는 종교적(宗敎的) 이기심(利己心)

③.종교(宗敎)라는 일종의 틀(frame)에 자신(自身)을 가두고 또한 남들까지 얽매여서 얄팍한 이기심(利己心)을 채우는 신앙(信仰).

④.하나님을 찾기는 찾되 하나님의 진리(眞理)의 본질(本質)을 망각(忘却)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求)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뜻이나 바램을 하나님께 강요(强要)하는 상태(常態)의 신앙(信仰).

⑤.습관적(習慣的)인 신앙생활로 영성(spirituality)이 마비(痲痹)되어 진리(眞理)와 비진리(非眞理)를 혼돈(混沌)하는 신앙(信仰).

⑥.종교적(宗敎的)인 신앙생활(信仰生活)을 통(通)하여 자기의 이익(利益)을 추구(追求)하는 신앙(信仰).

 

○.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참된 금식(禁食)의 투쟁(鬪爭)이란?>

①.진지(眞知)한 회개(悔改)가 없는 참회(懺悔)나 육체(肉體)의 고행(苦行)이나 계속적(繼續的)인 죄(罪)의 고백(告白)과 그리고 참된 헌신(獻身)이 따르지 않는 금식(禁食)이나 외적(外的)인 율법준수(律法遵守)등 이 모든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아무 가치(價値)가 없다. 

그리스도의 공로(功勞)가 없는 인간(人間)의 노력(努力)은 무가치(無價値)하다. 

우리는 이 노선(路線)을 택(擇)함으로써 하나님께 욕(辱)을 돌릴 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재(現在)와 미래(未來)의 유용성(有用性)을 파괴(破壞)한다. (3기별, 190)

 

②. 하나님이 원(願)하시는 참된 금식(禁食)은 굶주린 자들을 먹이는 것이며, 어렵고 고난(苦難)에 처(處)해 있는 이웃(도움이 필요(必要)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實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서 원(願)하시는 참된 안식일(安息日) 준수(遵守)는 도움이 필요(必要)한 자들을 돕는 것이다

 

(3월 11일(木) 우리 모두를 위(爲)한 시간(時間) (사 58:13~14)> 

(Q)~(이사야 58:13~14)에서  왜 이사야는 안식일(安息日)에 관하여 논(論)하는가?

 

(A)~①.안식일(安息日)을 지키는 것은 창조주(創造主)께 경의(敬意)를 표하는 행위(行爲)다. 

 ②.안식일을 무시(無視)하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되며 할려고 계획(計劃)해서도 안 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매우 귀(貴)하게 하셨는데 우리가 그것에 대해 천박(淺薄)한 생각을 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안식일에 우리의 발을 금(禁)해야만 한다(13절). 

또한 세속적(世俗的)인 무신론자(無神論者)들처럼 그날을 짓밟아서는 안 되며, 여행을 해서도 안 된다. ③.우리는 그날을 영예(榮譽)롭게 하고 그날에 대한 우리의 높은 생각(生覺)을 표현(表現)하는 일만 행(行)해야 한다. 우리는 그날을 즐거운 날이라고 불러야만 한다. 

 

Ⅰ.<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킴으로써 얻는 상(賞)은 무엇인가?(14절)>

만약 우리가 이와 같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킨다면 다음과 같은 축복을 주실 것이다.

①. 우리는 위로(慰勞)를 받을 것이다. 

②. 우리는 영광(榮光)을 얻을 것이다. 

"나는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릴 것이라" (14절). "그는 높은 데 거할 것이라" (33:16). 그 말은 아주 안전한 곳을 지적해 줄 뿐만 아니라, 커다란 위엄(威嚴)과 진전(進展)을 말해 준다.

③. 우리는 그로 인해 이익(利益)을 얻게 될 것이다. 

그의 입이 말한 것은 그의 손이 주실 것이다. 그의 손이면 족할 것이다. 그의 선한 약속(約束)은 일점일획(一點一劃)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평화(平和)롭게 지키고 더럽히지 않는 자는 커다란 축복을 받을 것이다." 

④.안식일은 ‘나’만을 위한 날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날이다. 

  하나님은 그날에 우리가 예배(禮拜)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는 기쁨을 경험(經驗)하기를 바라신다.

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지(依支)와 욕심(慾心)을 모두 내어버리는 것, 그것이 참된 금식(禁食) 우리 모두를 위한 날이며 그날에 하나님을 예배(禮拜)하는 날이다.

 

<요약(要約)>

(이사야 55장과 58장)에서 선지자(先知者)는 그의 백성에게 그들의 생각(生覺)과 길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호소(呼訴)합니다. 그들의 행복(幸福)을 위(爲)한 하나님의 이상은 그들 자신의 이상보다 훨씬 더 높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비(慈悲)롭게 용서(容恕)하시며, 용서받은 자들에게 속죄일(贖罪日)과 안식일(安息日)의 정신(精神)이 조화(調和)를 이루도록 자비(慈悲)를 베풀라고 권유(勸諭)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정(眞情)으로 하나님의 용서(容恕)의 선물(膳物)을 받아들인다면 심령(心靈)이 변화(變化)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