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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바울의 선교와 기별(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9.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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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5-09-11 09:33 조회8,5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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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9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35분

 

기억절 :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

 

연구 범위 : 고전 1:22~24, 딤전 6:12, 딤후 4:7, 고전 15:12~22, 행 15:38~41

 

바울은 구약 예언과 유대 역사 그리고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활용하여 철저하게 그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에 초점을 맞춘 기독교 구속사 개념을 발전시켰다. 유대교뿐 아니라 그리스·로마 사회의 문화적 배경 덕분에 그는 복잡한 히브리인들의 시민 생활, 의식 제도, 도덕적 관습으로부터 복음을 끄집어내서 그것을 다문화 사회가 이해하기 쉽게 제시할 만큼 충분한 통찰력을 소유했다.

바울은 13편의 서신에서 믿음을 삶에 적용시켰다. 그는 교리뿐 아니라 실질적인 주제들도 다루었다. 그는 개인적인 신앙, 관계, 교회 생활에 대하여 조언을 주고 격려하며 훈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의 전체 서신들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고전 2:2)이었다.

그는 서신만 기록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시리아에서 이탈리아, 어쩌면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했던 탁월한 선교사로 알려졌다. 약 십 년 동안 그는 로마 제국의 네 개 지방에 교회들을 세웠다. 우리는 이번 주에 바울의 선교와 기별을 함께 살펴볼 예정이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하나님이 민족들에게 여러 방식으로 기별을 전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➋ 느끼기 : 민족들마다 문화와 이해 배경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➌ 행하기 : 전통에서 벗어난 이들을 위하여 새롭고 창의적인 선교 방식도 수용하기로 결심한다.

 

A. 

❶ 평소에 별로 말이 없는 사람에게 어떤 주제로 말을 건네면 적극적으로 반응할까요?

※ 그의 필요가 무엇인지 알고 그의 취미가 무엇인지 알면 합당한 말을 건넬 수 있을 것이다.

❷ 그리스도인의 삶을 군사와 운동선수로 비교해서 설명했던 바울의 접근방식에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 바울은 당시 문화를 잘 활용하였다. 우리도 이런 접근법을 배워야 한다.

❸ 문화적인 접근이 효과적일지라도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진리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성경이 가르치는 절대적인 진리이다. 

❹ 진리를 양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창의적으로 복음을 소개할 수 방법은 무엇일까요?

※ 진리를 따라 바르게 생활하는 것과 그런 사상이 생활사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 

 

B. 

❶ 그대가 북한에 선교사로 간다면 가장 먼저 어떤 방식으로 복음을 소개해야 할까요?

※ 지금 어떤 방법을 이야기할 처지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내가 믿는 진리에 대한 확신과 내가 서 있는 위치를 굳게 지키는 모습이다. 

❷ 바울은 유대인과 그리스인을 상대로 복음을 전할 때 어떻게 방법을 달리했습니까?

※ 유대인에게는 그들이 좋아하는 재료로, 그리스인들에게는 그들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했다.

❸ 교회를 개척하거나 팀으로 선교 사업을 펼칠 때에 중요한 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같은 사상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삶의 방법과 협력정신이다. 

❹ 우리가 함께 선교 사업을 이루기 위해서 현재 극복해야 하는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 진리를 올바르게 깨닫고 협력하는 정신이 아닐까?

 

결론 : 하나님은 우리가 여러 백성에게 매력적이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구원의 복음을 전하도록 권유하십니다.

 

 

첫째날(일) 그리스인과 유대인

9월 13일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4).

 

1. 고전 1:22~24을 읽어 보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어떻게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진리를 설명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가? 여러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관하여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고전1:22~24]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답: 어느 민족에게든지 전파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원의 복음이어야 하지만, 민족들의 특성을 따라서 합당한 방법으로 접근하도록 해야 한다.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탈출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그분이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신다는 사실을 놀라운 이적들을 통해 보여주셨다. 후대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새로운 기별자들이 이적과 기사와 기적으로 자신들을 알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면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철학과 과학적 유산에 따라 인간의 지혜가 요구하는 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신앙의 합리적 근거를 추구했다.

바울은 자신이 목표로 삼은 사람들의 문화와 영적 유산을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진입 경로로 삼았다. 이적을 바라는 자들은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 그리고 초기 교회 안에서 그것들을 발견했다.

논리 정연함과 합리성을 원하는 자들은 복음 기별을 제시하는 바울의 논증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두 종류의 사람들은 결국 동일한 필요가 있었으니 바로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빌 3:10)을 아는 것이었다. 바울이 그러한 지식을 전하는 방법은 복음을 증언하는 대상에 따라 달랐다.

유대인 청중에게 설교할 때 그는 이스라엘 역사를 바탕으로 설교하며 그리스도를 다윗과 연관시켰고 구약성경이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을 예언하였음을 강조했다(행 13:16~41). 즉 그는 그들에게 익숙하고 그들이 믿고 숭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런 다음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고 노력했다.

이방인들을 위한 바울의 기별에는 창조주요 우주의 유지자요 심판자이신 하나님,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경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포함되었다(행 14:15~17, 17:22~31). 이들을 위해서 그는 유대인들(또는 유대교를 믿는 이방인들)에게 했던 것과는 출발점을 달리해야 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그의 목적은 이방인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것이었다.

 

<부가설명> 민족이 다양한 것처럼 개인적 상태는 더 다양하다. 우리는 대상의 상태를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상대방의 상태를 따라 복음을 그들에게 알맞도록 증거 하는 방법과 능력을 기르는 것은 중요하다. 또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하는 능력도 길러야 할 것이다. 어른이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아이들에게 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른에게는 어른에 합당하게 아이에게는 아이에게 합당하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전도자는 이런 다양한 상대를 만날 것을 예상하고 다양하게 복음을 드러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 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구변에 능하도록 하시고 모든 경우에 합당한 은사를 주실 것이다.(고전1:5~7) 성령의 인도를 간구하면서 이 은사를 잘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 모든 은사의 활용은 오직 예수님이 주 되시는 것과 구원이 예수님께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교훈 :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대상에 따라 출발점을 달리했다. 즉 그들에게 익숙한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들을 예수님께 인도하고자 노력했다.

 

 

둘째날(월) 군사와 운동선수들

9월 14일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2:3).

 

언변에 능한 바울은 선교 현장에서 익숙한 것을 이용해 익숙하지 않은 것을 설명했다. 그는 그리스·로마 사회의 일상적인 특성들을 택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새 생명의 실제성을 예증하였다. 그는 특별히 회심자들이 속한 사회의 두 분야에서 교육적 상징을 끄집어냈다. 그것은 경기장의 운동선수와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는 로마 군사들이었다.

바울이 살던 당시의 로마 사회도 오늘날처럼 스포츠에 매료되었다. 고대 그리스는 수백 년 동안 적어도 네 곳에서 각각 올림픽 형태의 대회를 개최하면서 운동 시합에 대한 그들의 애착을 확장시켰다. 로마인들은 그리스로부터 운동 경기의 관습을 물려받아 더욱 발전시켰다. 도보 경기는 가장 인기가 있는 종목이었고, 전투복 차림의 경주도 있었으며, 레슬링 또한 인기 종목이었다. 운동선수들은 열심히 훈련했고, 우승자에게는 푸짐한 상급이 주어졌다. 인내와 성취가 목표였기 때문에 종족, 국적, 사회적 신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1. 바울의 청중들은 다음의 성경절들에서 신자들을 위한 어떤 핵심 교훈들을 찾아야 했을까?(고전 9:24~27, 갈 5:7, 딤전 6:12, 딤후 2:5)

[고전9:24~27]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갈5:7] 너희가 달음질을 잘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 예수를 믿는 믿음은 경주하는 것과 같아서 방해받지 않고 끝까지 달려야 하는 믿음의 경주를 배울 것이다.

 

[딤전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 믿음의 삶은 선한 싸움을 하는 것과 같은데 끝까지 싸워서 승리해야 한다는 것을 배울 것.

 

[딤후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 경주는 법대로 해야 하듯이 믿음에도 믿는 법이 있다는 것을 배울 것이다. 

 

마우리스 치세 때부터 로마 황제들은 한시적으로 복무하는 군인들을 직업 군인들로 대체시키고 그들을 제국 전역에 주둔시켰으며 갑옷과 병기를 개선하고 표준화시켰다. 바울의 시대에 로마 군인들은 로마 시민이든 아니든 다양한 민족과 나라에서 모집되었다. 복무를 마치고 받을 상급의 대가로 군인들은 전쟁 시에 전투를 지휘하는 황제에게 전적인 충성을 맹세했다.

바울의 마지막 서신으로 보이는 디모데후서에서 그는 군인과 운동선수들의 삶을 들어 기독교 선교사로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2. 고후 10:4~5, 엡 6:10~18, 딤전 6:12, 딤후 2:3~4을 읽어 보라. 바울은 군인의 삶과 그리스도인의 삶을 어떻게 비교했는가?

[고후10:4,5]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엡6:10~18]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딤전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딤후2:3,4]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4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답: 군인들은 적군을 대치하고 필승을 위하여 싸운다.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고 사상과 생활에 대한 것이다. 좋은 군사가 되어 선한 증거를 하며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예수님을 기쁘게 하는 삶으로 승리하는 군사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부가설명> 군인들은 국가를 위하여 개인의 삶을 희생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들을 구원하신 구주를 위하여 충성하는 군인들이라고 바울은 가르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5:14,15)고 하였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이렇게 생활할 때 선교가 힘 있게 이루어진다. 전도하는 것을 전투에 비유해서 얼마 전에 설명하였다. 사령관이 적군을 섬멸하라고 명령을 내렸을 때 군인 한 사람이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전 부대에게 내린 명령이다. 군인 각 사람은 자기 시양에 들어오는 적을 책임지면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이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교훈 : 바울은 로마 제국에서 활동하는 운동선수들과 군인들의 삶을 통해 고난을 견디고 인내하며 충성을 다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설명하였다.

 

 

셋째날(화) 바울과 율법

9월 15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

 

1. 여기서 바울은 어떤 율법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답: 이것은 십계명이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바울서신에서(신약성경에서 개역한글판 140번, 바울 서신에는 히브리서까지 해서 84회, 빌레몬까지는 74회) ‘율법’이라는 단어는 약 130번 정도 등장하며 사도행전에서만 약 20번(16번 개역한글) 등장한다. 바울은 특히 그의 청중 또는 독자들에게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율법’이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십계명과 같은 법은 만민에게 항구적으로 적용된다. 그러나 바울은 구약성경과 유대 문화에 속한 다른 율법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의 기록에서 바울은 ‘율법’이란 말을 광범위하게 종교적인 의식법, 시민법, 건강법, 정결법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했다. 그는 “율법 아래”(롬 3:19)에 놓인 상태와 “율법에서 벗어”(롬 7:6)난 상태에 대해 기록했고 “죄의 법”(롬 7:25)과 ‘거룩한 율법’(롬 7:12)에 대해 설명했으며 “모세의 율법”(고전 9:9)과 “하나님의 법”(롬 7:25)에 대해 언급했다.

이런 구절들은 비유대인들에게는 복잡해 보였지만 히브리 문화 속에서 성장한 유대인 신자들은 그 문맥이 어떤 율법을 말하는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2. 롬 13:8~10, 롬 2:21~24, 고전 7:19, 엡 4:25, 28, 5:3, 6:2을 읽어 보라. 우리는 이 말씀들을 통해 하나님의 율법 즉 십계명이 십자가에서 폐하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롬13:8~10]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2:21~24]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 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고전7:19] 할례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요 할례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엡4:25,28]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엡5:3, 6:2]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답: 이 구절들은 십계명의 여러 조항들을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준수해야 할 것으로 가르친다. 그러므로 십계명이 폐했다는 것은 엄청난 오해인 것이다. 그것은 폐할 수 없다. 

 

바울은 사람이 어떻게 제사장과 성전과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지를 규정하는 의식법이 십자가 이후에 폐지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것들은 정해진 기간 동안 목적을 이루기 위해 존재했지만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이 점은 특히 성전의 파괴 이후에 명백해질 것이었다.)

그러나 십계명으로 불리는 도덕법은 다른 문제였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십계명의 일부를 인용하기도 했고 십계명을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하여 만민에게 해당하는 보편적인 윤리적 요구로 제시하기도 했다. 죄악의 행습에 반대하는 글을 쓸 때에도 그는 죄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십계명을 어떤 식으로든지 약화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그것은 속도 제한 표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속도를 위반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부가설명> 우리는 십계명이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이라고 배운다. 하나님의 품성은 곧 생명의 성질이다. 하나님은 존재 자체시며 생명 자체이시다. 이 생명은 사랑으로 역사하고 사랑으로 드러난다. 십계명은 죄인 된 사람들에게 사랑이 나타나는 모습을 최소한으로 구체화 한 것이다.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면 이런 조문이 필요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그 생명의 성질이 바로 사랑으로 역사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조문을 쓸 필요가 없다. 거기는 살인, 간음, 도적질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 십계명이라는 말이 없다. 계명, 율법이라는 말은 많이 나오지만 십계명이라는 말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사도행전 7:38을 읽으면 십계명을 ‘생명의 도’라고 한 것을 읽을 수 있다. 하나님의 생명, 예수님의 부활의 그 생명을 받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길이 바로 십계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생명의 도이다. 그러므로 생명이 없어지면 생명의 도인 십계명이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생명이신데 어떻게 생명의 도가 폐지되겠는가.

 

교훈 : 율법이란 말은 다양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율법과 달리 도덕법인 십계명은 십자가 이후에도 폐지되지 않았다.

 

 

넷째날(수) 십자가와 부활

9월 16일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물론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바울의 모든 삶과 가르침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만을 가르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것을 다른 것들과 더불어 가르쳤다. 그 중에 십자가와 가장 복잡하게 얽혀있는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부활일 것이다. 부활이 없다면 십자가는 헛될 것이었다.

 

1. 고전 15:12~22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복음의 핵심 요소라는 사실을 어떻게 보여주는가?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죽음을 잠으로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다시 말해 만약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이미 하늘에 가 있다면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고전15:12~2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답: 부활이 없으면 십자가의 죽음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도 망하였다고 가르친다. 예수님의 부활이야말로 복음을 복음 되게 한 것이다. 

 

불행히도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기독교 종파는 사람의 영혼불멸을 철저하게 신봉한다. 그러나 이러한 신념과 반대로 바울은 다음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1. 오직 하나님만 불멸성을 소유하신다(딤전 6:16).

2. 불멸성은 하나님이 구원받은 자들에게 주시는 선물이다(살전 4:16).

3. 죽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의 잠과 같다(살전 4:13~15, 고전 15:6, 18, 20).

거의 대부분의 종교에서 예배는 영혼불멸이라는 거짓 사상에 기초한 수많은 거짓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다. 환생, 성자에게 바치는 기도, 조상신 숭배, 영원한 지옥 불뿐 아니라 영적 교신 또는 유체이탈과 같은 여러 뉴에이지 행위가 이런 오류에 속한다. 죽음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만이 이러한 큰 기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그럼에도 이런 진리의 수용에 대해 가장 거부감을 보이는 자들이 다른 교단의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부가설명> 참 생명은 사망이 없는 삶이다. 이 세상은 사망이 생명을 이기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사망이 생명을 일기는 것이 아니고 이미 사람은 사망이기 때문에 생명이 없는 존재들이다. 지금 생명이라고 누리는 것은 참 생명의 그림자인데 일정기간 은혜로 허락된 것이다. 이 그림자 생명이 있는 동안 참 생명을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날이 죽는 날인데 그림자 생명이 있는 동안 참 생명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그림자 생명이 끝나면 영원히 존재를 상실하게 된다. 둘째 부활이 있지만 그것은 생명의 부활이 아니고 영원한 사망이 집행되는 부활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지금 참 생명을 얻지 않으면 그런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참으로 죽는 다는 것은 존재를 영원히 상실하는 것을 뜻한다. 성경은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 되어서 천국이나 극락의 행복을 누리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서 산 자의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산 자로 살아가자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와 부활의 기별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성경의 복음을 깨닫는 것이다. 

 

교훈 : 부활은 십자가와 함께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핵심 기별이었다. 보편적으로 유행하는 영혼불멸 사상은 기독교 복음에 전혀 맞지 않는다.

 

 

다섯째날(목) 함께함

9월 17일

 

바울은 강한 개성을 가지고 하나의 목적에 집중하는 근면한 일꾼이었다. 그런 인물들은 존경의 대상은 될 수 있을지언정 친구는 적어서 외로울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바울의 여정에는 종종 두세 명의 동역자들이 함께했다. 이렇게 가까운 동료 중 적어도 여덟 명의 이름이 언급된다(행 13:2, 15:22, 37, 16:1~3, 19:22, 골 4:7, 10~11, 몬 24). 여기에 로마서 16장에서 바울이 안부를 전하는 24명과 각 가정에게 전하는 안부가 추가되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특별히 교회를 개척하는 환경에서 협력을 중시했다. 그러나 때로는 동역자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1. 행 15:38~41을 읽어 보라.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큰 일꾼들에게서 어떤 인간적인 측면을 보는가?

[행15:38~41]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 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답: 바울이 바나바와 심히 다투었다. 마가가 바울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울의 인간성이 잘 드러났다. 

 

“마가가 공포와 낙담에 억눌려 한동안 전심으로 주의 사업에 헌신하려던 그의 목적에서 흔들린 것도 이곳에서였다. 고난에 익숙하지 않은 마가는 그 길의 위험과 궁핍으로 낙심하였다.… 이러한 이탈은 바울로 하여금 한동안 마가를 나쁘게 생각하여 혹독하게 비판하게 하였다. 한편 바나바는 그가 경험이 없는 까닭이라고 그를 변호해 주었다. 그는 마가가 목회 사업을 포기하지나 않을까 염려하였는데, 이는 그가 마가에게서 그리스도를 위한 유용한 일꾼이 될 자격이 있음을 발견한 까닭이었다”(사도행적, 169~170).

바울은 그의 동료들이 선교의 수고와 위험을 견딜 수 있기를 기대했다. 바울에게 친밀한 팀은 축소형 교회와 같았다. 그는 좋은 선례와 선교 모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팀 안에서 의무에 충실하면서 서로를 사랑하는 관계는 가족 단위를 기초로 하는 교회에 하나의 모본이 된다. 팀은 또한 새로운 전도자와 선교사를 양성하는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물론 때로 요한 마가의 경우처럼 모든 일이 순조롭지는 않다.

우리는 모두 실수를 저지른다. 실수로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가? 반대로 우리가 우리의 실수로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라. 그대는 그러한 상황을 치유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당연히 해야 할 것이다.)

 

<부가설명> 사람은 개성이 있고 그것이 강하게 나타날 환경이 되면 무의식적으로 그런 성질이 드러난다. 바울은 예수님께 모든 것을 바친 사람이었다. 죽음도 불사한다고 고백하였다. 자기의 그런 각오와 정신을 동역자들에게도 기대한 것이다. 마가는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이다. 당시의 바울은 용납하는 정신이 모자랐던 것 같다. 그러나 후에 마가를 자기에게 유익한 사람이라고 고백한다.(딤후4:11) 아마도 바울이 훗날 마가에게 한 자기의 태도를 고쳤을 것이고 마가에게 화해의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바나바가 옳았다고 인정했을 것이다. 우리의 개성은 예수님을 위하여 바르게 활용되어야 한다. 바울은 예수를 핍박하는 일에 열정을 다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깨달은 후에는 그 열정이 없어진 것이 아니고 예수를 증거하는데 그 열정을 다 쏟은 것이다. 우리의 특성들이 예수를 위하여 바쳐지면 바울처럼 아름다운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교훈 : 개척 선교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의 협력 관계는 매우 중요하며 그런 모본은 교회의 중요한 기초가 된다.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9월 18일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은 ‘카오스 이론’(무질서해 보이는 현상에도 나름의 법칙이 있다고 전제하는 이론)의 ‘나비 효과’에 비교할 수 있다. 즉 지구 한편에서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반대편의 태풍을 일으킬 수 있는 것처럼 저자와 설교가로서 바울의 활동은 로마 제국의 변방에 있었던 한 유대교 분파를 세계 종교로 변화시켰다. 그가 기록한 13개의 서신에 담긴 사상들은 비슷한 분량의 어떤 고대 그리스 문학보다도 세상에 훨씬 큰 감화를 끼쳤다. (바울서신을 13개로 보는 것은 히브리서를 바울서신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잇 부인은 히브리서를 바울이 기록했다고 확언했다. 그래서 바울서신은 모두 14권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바울은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지성의 중심지로 알려진 아테네로 떠나 순교를 면했습니다. 도시들은 기독교인과 다른 난민들을 위한 피난처를 제공했습니다. 바울은 아테네의 종교 기념물들을 관찰한 후에 지체하지 않고 유대인들을 설득했으며 시장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행 17:16~31을 읽어 보십시오. 바울은 그들에게 어떤 접근 방법을 썼습니까? 이를 통해 우리는 특정 집단에 맞춤형 기별을 전해야 할 필요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동시에 바울은 그들을 얻기 위해서 조금도 진리를 양보하거나 희석시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 우리의 중심 교리를 양보하지 않을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 전도자는 자기가 믿는 성경 사상을 확인하고 확신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이 가르치는 바른 진리일 때에 결코 한 치의 양보도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가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여 일해야 할 것이다. 

 

➋ 죽은 자의 상태를 다룬 교리가 매우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진리에 대한 이해는 우리를 어떤 오류와 기만으로부터 보호해줍니까? 그대의 문화 속에는 그와 관련된 어떤 오류가 있습니까? 이 진리는 어떤 진리들을 위한 방호벽이 될 수 있을까요?

※ 영혼불멸설이나 환생설 등의 종교적 오류에서 보호하고 예수님 재림의 소망과 부활의 확신을 확실하게 한다.

 

➌ 믿음에 대해서 그리고 표적의 역할, 논리와 이성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교과반에서 자신이 어떻게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 말할 사람이 있습니까? 그대의 경험에서 표적과 논리와 같은 요소들은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또한 그것들은 그대가 믿음을 받아들이거나 유지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해 왔습니까?

※ 각자 이야기해보자. 성경의 논리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험하는 이적은 진정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사단에게로부터 온 것인지 분별하지 못하게 한다. 이적을 경험했다고 해도 그것은 성경의 검증을 거쳐서 이해되어야 한다.

 

➍ 여러분이 사는 사회의 주류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떤 종류의 신앙이 가장 흔합니까? 그대가 알고 있는 그들의 신앙과 배경을 바탕으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최적의 접근법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그들과 접촉할 수 있는 방법들은 무엇일까요?

※ 한국은 불교와 유교적 사상이 문화와 전통의 바탕이다. 우리는 바울처럼 그들에게 알맞은 방법으로 진리를 증거하도록 훈련하고 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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