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과 선교사 빌립(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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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5-08-29 06:12 조회8,603회 댓글0건본문
9월 5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56분
기억절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연구 범위 : 고후 4:18, 행 2:44~47, 행 4:34~37, 행 6:1~7, 행 8장, 행 21:7~10
십자가 사건과 승천 사이의 40일 동안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주된 관심사는 세계 선교였다. 신약성경은 적어도 5개의 대사명 진술을 수록하고 있다(마 28:18~20, 막 16:15, 눅 24:47~49, 요 20:21, 행 1:5~8). 그것들은 모두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여된 위대한 과제이다. 그 명령 중에는 지리적인 선교 확장 전략도 있다.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른다. 그들은 이 명령을 정말 진지하게 수용하고 성취해 나갔다.
이 지리적인 전략은 전도자 빌립의 선교 사역에서 두드러진다. 사도행전 8장에 따르면 그의 사역은 반경을 넓히면서 예루살렘 외곽으로 확장되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복음은 점점 더 멀리 퍼졌다.
전도자 빌립은 어떤 인물이었는가? 성경은 그에 대해 그리고 그가 초기 교회 시대에 이룬 사역에 대해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 초기 선교사에 대한 영감의 기록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선교를 위하여 평범한 사람에게도 주어지는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는다.
➋ 느끼기 : 하나님이 우리가 선교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할 지혜와 통찰을 주신다는 것을 확신한다.
➌ 행하기 : 하나님의 음성에 마음을 열고 봉사하라는 부르심에 반응하기로 결심한다.
A.
❶ 전도를 잘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사람을 잘 사교하는 성질이 필요하고 말씀을 잘 알아야 하며 친절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❷ 빌립이 사마리아 사람들과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성공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성령의 인도를 확실히 따랐기 때문이고 말씀에 익숙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❸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는 빌립의 모습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 우리도 성령의 인도를 깨닫고 순종하는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❹ 직분과 관계없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시도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말씀과 기도와 삶의 모습을 통하여 예수님을 드러내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증거하려는 정신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B.
❷ 빌립은 교회와 가정에서 어떤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 바른 믿음으로 생활한 모범적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이다.
❸ 빌립은 가장이자 집사로서 어떻게 성공적인 선교 활동을 펼칠 수 있었을까요?
※ 겸손히 성령의 인도를 잘 따랐기 때문일 것이다.
❹ 우리가 가정과 직장을 가지고 선교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 언어와 감정과 생활을 통하여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론 :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종류의 봉사와 사역에 적합하도록 준비시키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하나는 마음을 열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기꺼이 따르는 것입니다.
첫째날(일) 전도자 빌립
8월 30일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8).
1. 위 성경절에서 바울이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답: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육신의 눈으로 또 물리적 사실로 보이지 않지만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으로 바라보며 주님의 약속을 따라 충성하자는 것이 아닐까. 세상과 믿음의 세계를 대조해서 가르치는 것이다.
특히 성경에서 몇 번 언급되지 않아 우리가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전도자 빌립에 관해 공부할 때에 위의 말씀이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 보라. 그의 사역은 훌륭했지만 우리는 그가 이룬 일에 대하여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대가 아는 인물 중에 하나님을 위해 중요한 일을 했지만 거의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2. 만약 우리가 큰 찬사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일을 해야 한다면 왜 바울의 말 속에 나타난 원칙을 명심해야 하는가?(고전 4:13 참고)
[고전4:13]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답: 복음은 칭찬을 받으려고 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명이기 때문에 전하며 그것은 사람을 살려주는 능력이다. 보상은 그 사람이 생명을 얻는 것으로 드러나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것을 믿고 충성해야 한다.
빌립은 ‘말(馬) 애호가’라는 뜻의 흔한 그리스식 이름이다. 신약성경에는 네 명의 동명이인이 있다. 두 명은 신약시대에 이스라엘을 강압적으로 통치했던 헤롯 가문의 일원으로 ‘헤롯’이라는 가족명이 따라 붙었다. 다른 두 명은 선교적으로 뛰어난 역할을 한 인물들이다.
첫째는 벳새다의 빌립이다. 그는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소개한 제자였고 후에 그리스인들을 주님께 데리고 왔다(요 1:43~46, 12:20~21).
둘째는 행 21:8에서 전도자라고 불리는 빌립으로 제자 빌립과는 구별된다. 그는 처음에 접대하는 봉사를 맡은 자로 예루살렘 교회에 등장하지만 후에 전도자와 선교사가 된다(행 6:2~5, 8:12). 사도행전은 그의 선교적 봉사가 20년 넘게 지속되었고 네 명의 선지자 딸들의 사역으로 이어졌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그의 배경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파한 사람도 빌립이었고 용기를 발휘하여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침례를 준 사람도 빌립이었다. 잠시 동안 이 두 사람(빌립과 바울)의 역사는 밀접하게 뒤엉켰다. 예루살렘 교회를 흩고 일곱 집사의 조직적인 효율성을 파괴한 것은 바리새인 사울의 잔인한 박해였다. 예루살렘으로부터의 탈출은 빌립으로 하여금 사업의 방식을 바꾸게 했고 바울이 목숨을 건 동일한 부름을 추구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바울과 빌립이 각자의 사회에서 보낸 날들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들은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는 순간 그의 얼굴을 비치던 빛이 하늘을 환히 밝혔던 그날을 기억하며 전율하였다. 그 영광의 섬광은 박해자 사울을 속절없는 탄원자로 그리스도의 발 앞에 데려다 놓았다.” - Ellen G. White, Sketches From the Life of Paul , 204.
<부가설명> 성경에는 이름 없는 충성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미 우리가 공부한 나아만 집의 이스라엘 여자 종도 이름 없이 충성한 선교사이다. 그 외에도 단순히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로만 기록된 선지자들이 있다. 바벨탑 정신은 ‘우리 이름을 내고’이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의 이름을 내라고 가르친다. 빌립은 자기 봉사와 충성의 결과는 하나님께 맡겼다. 그의 행사가 성경에 기록된 것만으로도 엄청난 보상을 받은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세상과 세상의 것을 사랑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분을 따르고 오직 기록된 말씀으로만 진리를 깨닫고 이해하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우리는 진리를 증거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진리를 이해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성경의 원리와 다른 이야기를 전하면 안 된다. 이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이다.
교훈 : 빌립은 일곱 집사 중 하나로 임명되었지만 박해를 피하는 동안 전도자와 선교사로 역할을 바꿔서 사마리아 땅과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했다.
둘째날(월) 접대하는 일
8월 31일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행 6:2).
1. 행 2:44~47, 4:34~37을 읽어 보라. 여기서 초기 교회의 모습은 어떻게 비추어지는가?
[행2:44~47]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4:34~37]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 (번역하면 권위자) 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답: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며 유무상통하는 생활을 나타내었다.
물론 얼마 동안은 상황이 꽤 좋았다. 그러나 모두가 죄인이다 보니 곧 긴장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2. 행 6:1~7을 읽어 보라.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가? 교회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
[행6:1~7]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답: 교인들의 수가 급증하자 교회 내에 분쟁과 불평이 일어났다. 교회는 집사들을 선택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예루살렘 교회의 급성장은 사회적 긴장을 불러왔다. 빌립은 그것을 해결할 팀의 일원으로 임명됐다. 회심자들 중에는 혜택을 못 누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었다. 매일 그들에게 양식을 나눠주는 일은 교회 지도자들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양식 배분이 불공평하다는 헬라파 과부의 불평이 생겼다. 과부와 고아를 무시하지 말라는 구약 선지자들의 충고를 감안하면 이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2사도는 신자들을 모아서 문자적으로 ‘상을 돌볼(섬길)’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명을 임명하도록 제안했다. 그리고 12사도는 ‘말씀을 돌보는(섬기는)’ 일에 전념하고자 했다(행 6:3~4). 일곱 집사는 모두 그리스식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아마도 그동안 소홀했던 헬라파 과부를 배려한 복지의 균형을 암시한 듯하다. 이 칠 인 가운데 빌립이 포함됐고 여기서 처음으로 그가 언급되었다.
사도들은 그들이 공동생활에 필요한 자원의 배분 때문에 과로하지 않으려면 추가적인 지도자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그들의 부르심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가설명> 초대교회는 역사적으로 이어온 모든 교회가 선망하는 교회이다. 많은 사람들이 초대교회라고 하면 위에 기록한 사도행전 2장과 4장의 내용을 생각한다. 그러나 6장에 가면 우리가 선망하는 이상적 교회가 항상 유지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이 많으면 문제가 생긴다. 교회는 이런 문제를 안고 발전해왔다. 문제가 생긴다고 낙망할 이유가 없다.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지도를 구하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하면 된다. 문제는 교회를 지도해야할 직원들이 서로 다투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지양(止揚)되어야 한다. 성령의 지도를 받는 지도자들이 되어야 한다. 스데반이나 빌립은 성령의 지도를 받아 맡겨준 직무를 수행하였다. 그렇게 하면 말씀 봉사와 일하고 돌보는 봉사가 조화를 이루어 교회가 평안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다. 집사들은 돌보는 봉사를 위하여 선택되었지만 또한 전도봉사도 아울러 했다. 스데반이 그렇고 빌립이 그렇다. 오늘날 교회가 이 모본을 잘 배우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초기 교회는 말씀과 기도 중심의 사역에 필요한 지도력과 자원을 배분하고 돌보는 사역에 필요한 지도력을 분리하기 위해 일곱 집사를 임명했다.
셋째날(화) 사마리아 속의 빌립
9월 1일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행 8:5~6).
미래에 사도와 선교사가 될 사울은 스데반 집사가 투석형을 당하며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가 되는 장면에서 처음으로 성경에 등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박해의 파장은 복음의 확산을 부추길 뿐이었다.
1. 행 8:1~6을 읽어 보라.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박해의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행8:1~6]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답: 신도들이 예루살렘에서 흩어지면서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였다. 빌립은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였다.
사마리아는 기독교의 지리적 확산의 첫 정거장이었다. 사마리아인들은 스스로를 앗시리아가 기원전 722년 대부분의 백성을 포로로 끌고 간 뒤에 남은 이스라엘 백성의 후손으로 여겼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앗시리아가 이스라엘 땅에 강제로 정착시킨 이방인의 후예라고 생각했다. 신약시대의 유대와 사마리아의 관계는 긴장과 폭력으로 얼룩졌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 후 마을로 돌아가 자기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그분은 이미 그곳에서 선교 사업의 길을 닦으셨다.
접대를 위한 빌립의 부르심은 이제 사마리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의 부르심이 되었다.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을 떠난 난민으로서 그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그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이 기다려온 메시아가 당도했다고 선포하였다(행 8:5, 12).
1. 행 8:6~15을 읽어 보라. 사마리아에서 빌립의 사역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
[행8:6~15]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저희가 청종하더니 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받기를 기도하니.
답: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고 마술사까지 받아들였다.
빌립은 이러한 초기 외방 선교 현장에서 주님께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요 4:9)고 했던 우물가 여인의 말은 이제 과거사가 되었다.
<부가설명> 순교의 피는 복음의 씨앗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과연 예루살렘의 핍박이 복음을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퍼져나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만일 예루살렘에 핍박이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핍박이 복음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도록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순서대로 복음을 전파되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된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도 영원한 복음이 들어왔다. 빌립에 대핸 별다른 기록이 없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복음의 일꾼이 되어 충성했다. 결과는 사마리아에 기쁨이 있게 하였고 구스 내시가 복음을 깨닫고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였다. 정말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인정하실 것이다. 세상의 인정에 연연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다만 충성하면 된다.
교훈 :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뿌려놓은 복음의 씨는 전도자 빌립의 사역이 거둔 큰 성공의 발판이 되었다.
넷째날(수) 에티오피아인과 함께
9월 2일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행 8:35~36).
행 8:26~39에 따르면 빌립의 그 다음 접촉자는 에티오피아 국고 관리자였다. 이 만남으로 땅 끝까지 나아가야 할 사명에 한 걸음 더 다가선다. 빌립은 사마리아와 가사 선교의 연결고리였다. 빌립은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한 사마리아에서부터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한 가사로 가도록 부름을 받았다. 북쪽에서는 집단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다. 사마리아에서 빌립은 오직 모세오경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선포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인들은 히브리 성경 가운데 모세오경만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마도 그리스어로 번역된 이사야서를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1. 행 8:26~39을 읽고 다음의 질문에 답하라.
[행8:26~39]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아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31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귀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혼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1) 그 에티오피아인은 이사야 53장에서 어떤 말씀을 읽고 있었는가? 그 말씀으로 인해 빌립은 어떻게 그에게 복음을 전할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됐는가?
답: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라는 구절이다. 이사야 53:7의 70인 역이다. 이 말씀이 바로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예언이었기 때문에 빌립은 이 말씀에 근거하여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였다.
2)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기적을 일으킨 사역과 대조적으로 그 에티오피아인과는 단지 성경을 연구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가?
답: 복음은 성경말씀을 차근차근 바르게 설명해주는 것으로 전파될 수 있다는 원리를 배운다.
주의 영께서는 빌립이 예수에 관한 복음을 설명하고 에티오피아인에게 침례를 베풀자마자 그곳을 떠나도록 요구하셨다. 빌립은 새로운 회심자에게 그의 믿음과 교훈을 전달할 기회가 없었다. 그 에티오피아인은 이미 여호와를 숭배하고 말씀을 신봉했기 때문에 그의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과 구약성경의 인도를 받아 아프리카 문화적 배경 속에서 기독교 신앙을 홀로 터득해야 했다.
<부가설명> 복음은 공중 적으로 전파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으로도 전파되어야 한다. 사실 공중 전도로 관심을 표한 구도자를 개인 접촉으로 말씀을 차분히 가르쳐서 말씀에 굳게 서는 믿음을 확정하도록 이끌어야 할 것이다. 구스 내시는 스스로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빌립의 가르침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그가 돌아가서 성경에서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났을 것이다. 스스로 말씀을 연구하고 깨닫도록 이끄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바른 전도활동이 아닌가 생각된다. 전도자는 개인적으로 성경을 바르게 가르칠 수 있도록 말씀에 익숙한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 : 오직 성경을 통해 복음을 듣게 된 에티오피아 내시는 빌립의 추가적인 도움 없이 성경과 성령의 지도를 따라 기독교 신앙을 터득해야 했다.
다섯째날(목) 아버지이자 집주인 빌립
9월 3일
빌립은 분명 주의 사업을 하도록 임명되었다.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행 8:39)의 의미에 대해 그가 단지 아소도로 가라는 명령을 받은 것인지(40절) 아니면 기적적으로 그곳까지 옮겨졌는지에 대해서는 주석가들 사이에 의견이 갈린다. 사실이 무엇이든 핵심은 빌립이 성령께 순종하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여 위대한 일을 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1. 행 8:40을 읽어 보라. 우리는 여기서 빌립이 ‘전도자’라고 불리게 된 이유에 대해 어떤 사실을 알 수 있는가?
[행8: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답: 빌립은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주어졌다.
2. 행 21:7~10을 읽어 보라. 이 짧은 말씀에서 우리는 빌립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는가?
[행21:7~10] 두로로부터 수로를 다 행하여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답: 빌립의 가정 사정을 알 수 있다. 네 딸이 모두 예언하는 사람들로 성장한 것은 빌립이 믿음으로 자녀를 양육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 단계에 우리는 빌립이 결혼하지 않은 네 딸을 둔 가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집사에서 전도자로 부름을 받은 빌립은 출장이 많았다. 우리가 아는 것만 해도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그다음 가사로 그리고 아소도에서 가이사랴까지 80킬로미터에 이르는 해변을 따라 모든 성을 여행했다. 분명 기록되지 않은 여정도 있었을 것이다. 모든 개척 선교사들처럼 그도 그와 같은 헌신이 동반하는 기복과 불편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딸들이 성령으로부터 예언의 은사를 받기에 합당하다고 인정을 받을 만큼 그는 가정도 잘 건사했다. 이는 이 개척 선교사 가정에서 이루어진 자녀양육의 탁월성과 경건의 진실성을 증명한다.
성경은 사도 바울이 빌립의 집에 여러 날 머물렀음을 보여준다(10절). 25년 전 당시의 사울은 공격적이고 사나운 기독교 박해자였다(행 9:1~2). 예루살렘 신자에 대한 그의 박해는 빌립으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떠나 사마리아로 가게 했다(행 8:1~5). 그러나 이제는 박해를 받은 빌립이 박해를 가했던 바울을 자신의 집에서 맞이한다. 비유대교 사회에 복음을 전하려는 위대한 목적을 가지고 그들이 형제와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돼서 만나다니 얼마나 흥미로운가!
<부가설명> 빌립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전도자의 직무를 수행하면서도 가정을 믿음으로 이끈 귀한 주님의 종이었다. 그가 자주 출장하여 전도했지만 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잘 양육하였다. 그리스도인이 자기 가정을 올바르게 이끄는 것은 가장 먼저 해야 할 임무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정말 쉽지 않다. 사무엘도 그 일에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엘리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가정을 올바르게 다스리고 자녀들이 믿음으로 굳게 서도록 기도하고 이끄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목회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가정을 진리로 채우도록 주님께 기도하며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들에게 생활의 모본이 되는 것이다. 언어와 삶이 일치하고 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쉽지 않지만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져야 할 사항이다. 빌립에 대한 짧은 기록이지만 이런 사실을 암시적으로 가르쳐주는 기록이라고 생각된다.
교훈 : 전도자 빌립은 자녀를 신앙 안에서 훌륭하게 양육할 만큼 모범적인 가장이었으며 한때 박해자였던 바울을 동역자로서 자기 집으로 영접하였다.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9월 4일
<사도행적>, 103~111 “복음이 사마리아에”를 읽어 보라.
“핍박 때문에 흩어졌을 때, 그들은 선교적 정신으로 충만하여 나아갔다. 그들은 그들의 사명의 책임을 깨달았다. 그들은 굶주린 세상을 위한 생명의 떡을 받았음과, 그 떡을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떼어 주도록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심을 알았다.… 그분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쫓겨났을 때에, 어떤 이들은 사마리아에서 안전한 피난처를 발견하였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 복음의 사신들을 환영하였고, 유대인 개심자들은 한때 철천지원수였던 사람들 중에서 귀중한 수확을 거두었다”(사도행적, 106~10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우리가 아는 것처럼 복음은 사람들 사이의 장벽을 허뭅니다. 적어도 그것이 이상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때로 완전히 다릅니다.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입니까?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실을 알고 또한 십자가가 인류를 평등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아는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문화적, 사회적, 기타 장벽이 우리를 분리시키도록 허용하니 말입니다. 세계적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어떻게 그와 같은 편견을 불식시킬 수 있을까요?
※ 진리의 말씀을 따라 성령의 역사로 그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에 인간적 생각을 성령께 굴복시키면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➋ 우리가 아는 것처럼, 초기 교회의 박해는 신자들의 탈출을 초래했고 그 결과 박해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방식으로 복음이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하나님은 박해를 통해서도 좋은 결실을 맺으셨지만, 우리는 종교적 박해가 절대 선하지도 옳지도 정당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설령 우리가 그들의 종교적 신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종교적인 박해를 당하는 자들에게 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합니까?(눅 6:31 참고)
※ 그들을 이해하고 보호하려는 정신을 나타내야 할 것이다.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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