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과 예수의 탄생(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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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5-03-27 04:33 조회8,843회 댓글0건본문
4월 4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57분
기억절 :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7).
연구 범위 : 눅 1:2~3, 딤후 3:16, 눅 1:5~22, 신 18:15, 눅 2:9~12, 눅 2:25~32
누가복음은 주로 이방인을 위해 기록되었다. 누가 자신도 이방인이었고(골 4:10~14 참고), 복음을 전해 듣는 데오빌로도 이방인이었다.
누가는 의사였을 뿐 아니라 꼼꼼한 역사가였다. 그는 복음을 소개하면서 예수님을 실제 역사 속의 인물로 묘사하였다. 그는 예수님에 관한 기사들을 당시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다루었다. 당시 유다 지방의 왕은 헤롯이었고(눅 1:5), 로마 제국의 황제는 아우구스투스였다(눅 2:1). 게다가 성전에서 당번 제사장으로 봉사했던 사가랴의 이름도 등장한다(눅 1:5, 9). 누가복음 3장에서 누가는 예수님보다 앞서 활동했던 침례 요한의 사역과 관련하여 여섯 번의 역사적인 연대를 언급한다.
누가는 예수님에 관한 기사가 설화라는 주장을 일축하기 위해 그분을 역사와 시간 속에 존재하는 실존 인물로 묘사한다. 누가복음을 읽는 자들은 하나님이 “구주”와 “그리스도”가 되신 예수님을 통해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셨다는 사실에 경탄하게 된다(눅 2:11).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예수님이 실존적이고 역사적이며 우주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➋ 느끼기 :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시다는 약속을 마음에 간직한다.
➌ 행하기 : 예수님과의 친밀한 삶을 통해 구원을 경험한다.
A.
❷ 예수님의 탄생에 관하여 누가복음에만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십시오.
※ 침례요한의 출생, 예수님 탄생에 대한 천사의 방문 고지(告知),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들, 목자들의 방문, 베들레헴 여행, 구유에 누인 일, 등등.
❸ 우리가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이 있는 인물들로부터 배워야 하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 예수께서 역사적 사건으로 이 세상의 역사 속에 친히 오셨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❹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기 위해 실천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B.
❷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이 ‘설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어떻게 입증하고 있습니까?
※ 역사적 사실들을 분명히 기록하여 탄생 당시의 역사적 사건 속에 있었던 사건이라는 것을 증명하였다.
❸ 예수님의 겸손한 탄생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구주의 발자취를 따라야 할 것을 배워야 한다.
❹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이 역사적인 인물일 뿐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소개할 수 있을까요?
※ 우리의 믿음을 간증하고 성경의 기록을 증명하며 우리가 예수님 앞에서 생활하는 모습으로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 하나님께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약속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말씀을 듣고, 우리를 위한 그분의 목적이 성취되기를 기도하게 합니다.
첫째 날(일) 차례대로
3월 29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눅 1:3).
행 1:1에서 사도행전의 저자는 “먼저 쓴 글”이 있음을 밝힌다. 두 글의 수신자가 모두 데오빌로인 점으로 미뤄볼 때 우리는 두 책의 저자가 동일하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두 책은 ‘기독교의 기원과 역사’의 전·후편처럼 보인다. 전편(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에 대한 글이고 후편(사도행전)은 예수님의 복음과 초기 교회의 확장을 다룬 글이다.
1. 복음은 어떻게 기록되었는가?(눅 1:2~3, 딤후 3:16)
[눅1:2,3]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답: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것을 목격하고 말씀의 일꾼 된 자들 중에 이것을 글로 쓴 사람들이 많은데 누가는 그 일을 근원부터 미루어 차례대로 기록하였는데 성령의 감동으로 이렇게 기록하였다.
누가는 예루살렘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들과 예수님에 관한 사건들을 기록한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그와 같은 저술들의 출처는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 즉 예수님의 제자들과 당시의 인물들(눅 1:2)을 포함했다. 누가는 그러한 목격자들과 동역자들(바울과 다른 사도들)뿐 아니라 마가와 마태가 기록한 복음서에도 친숙했다. 비록 누가는 예수님과 관련된 사건들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진실하고 믿음직한 회심자였다.
마태는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을 기록하며 예수님을 위대한 교사요, 예언의 성취자 그리고 유대인의 왕으로 제시하였다. 그는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구약의 예언을 자주 언급했다. 마가는 로마인들을 위해 복음을 기록하며 예수님을 행동하는 인물로 묘사하였다. 이방인 의사였던 누가는 그리스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을 전 인류를 위한 구세주로 제시했다. 그는 복음서를 기록한 두 가지 목적이 예수님의 생애를 “차례대로” 설명하고, 그다음 새로운 시대를 연 위대한 가르침에 대해 확신을 더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즉 예수님과 진리에 대한 확신을 더하는 것이 누가복음의 중요한 목적이다.
<부가설명> 누가는 예수님의 일생을 기록하면서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펴서 기록하였다. 이런 태도는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취해야 할 태도이다. 예수님 이야기는 근원이 있는 이야기이다. 더듬어 올라가면 그 근원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인 것이다. 그것은 역사적 사건이다. 전설도 설화도 신화도 아니다. 인간 사회에서 역사적 사건으로 일어난 사건인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누가는 이것을 확인하도록 하기 위하여 침례요한과 예수님 탄생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였다. 역사는 기록을 부인하면 역사의 한 장면은 역사에서 없어지게 된다. 예수님 탄생과 생애는 이 세상 시간 역사 속에 일어난 분명한 사건이다. 그것을 기록한 역사적 기록이 복음서이다. 특히 누가복음이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이 예수 전기를 보냈는데 데오빌로를 각하라고 부른 것을 보면 지위가 높은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고 지위가 높았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당한 지식인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누가는 자기의 글을 이런 지식인이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이해할 수 있게 논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쓴 것이다. 우리는 복음 기록을 분명한 역사적 사건으로 확인하고 확신할 수 있다.
교훈 : 누가는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예수님의 생애를 직접 목격한 사도들의 증언과 그들의 저술을 바탕으로 복음서를 기록했다.
둘째 날(월)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3월 30일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눅 1:13).
말라기 선지자 이후 거의 사백 년 동안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침묵하셨다. 그러나 그 침묵은 침례 요한과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면서 깨졌다.
요한과 예수님의 탄생 일화에는 유사한 점이 많다. 먼저 두 사건 모두 기적이다.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가임기가 훨씬 지난 나이였다. 예수님의 어머니도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했다. 탄생의 약속을 알려준 천사가 모두 가브리엘이었다. 부모들은 그 약속을 모두 놀람과 기쁨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대해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두 아이 모두 성장하면서 심령이 강해졌다(눅 1:80, 2:40).
그러나 기적적으로 탄생한 두 아이의 사명과 사역은 달랐다.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가 되어야 했고(눅 1:13~17),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아 예언의 성취였다(31~33, 35절).
1. 눅 1:5~22을 읽어 보라. 사가랴는 흠이 없는 자로 묘사되었지만 천사의 말을 믿지 못해 책망을 받았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볼 때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흠이 없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눅1:5~22]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7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 8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새 9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10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11 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12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13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15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17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18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 19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입었노라 20 보라 이 일의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어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하더라 21 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의 성소 안에서 지체함을 기이히 여기더니 22 그가 나와서 저희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 성소 안에서 이상을 본 줄 알았더라 그가 형용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벙어리대로 있더니.
답: 흠이 없다는 말은 완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 단어 ‘아멤프토스’는 결백하다는 말이다. 또 비난할만한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흠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주위에서 비난 받을 일이 없는 생활을 하고 성품도 그랬다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마리아의 아들의 출생처럼 사가랴에게 아들의 출생은 큰 영적 진리, 곧 우리가 느리게 배우고 쉽게 잊어버리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 스스로는 아무런 선을 행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도 순복하고 믿는 영혼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이다. 약속의 아들을 얻은 것은 믿음을 통하여 된 것이었다. 영적 생명을 낳게 하고 우리로 의로운 행실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는 것도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다”(시대의 소망, 98).
<부가설명> 흠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소망이다. 그런데 성경에 흠이 없다고 기록된 사람들이 몇 사람 있다. 또 완전한 자라고 기록된 사람도 있다. 사람들이 완전하다든지 흠이 없다고 하는 것은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또 예수님이 완전한 것처럼 완전하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비난받을 일을 하지 않고 성경말씀이 말하는 대로 생각하고 그 사상대로 생활하려는 정직한 마음으로 생활하는 것을 뜻한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빌3:12~15) 예수께 잡힌 자 된 것이 온전히 이룬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기 위하여 좇아가는 것이 완전한 것이다. 사라랴나 또 흠이 없다, 완전하다고 기록된 구약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기로 자기를 굴복한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노아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했는데, 노아는 홍수 후에 술에 취하여 추태를 벌린 일도 있었다. 이런 기록들은 사람들을 완전하다, 또는 흠이 없다는 말이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교훈 : 침례 요한은 이스라엘 역사에 선지자가 없었던 사백 년의 침묵을 깨고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백성들을 준비시키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셋째 날(화)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월 31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1).
예수님의 탄생은 범상치 않은 사건이었다. 그 일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갈 4:4)셨다. 예수님의 탄생은 죄가 에덴에 들어온 직후에 하나님이 주신 첫 번째 약속에 대한 성취였다(창 3:15).
1. 아래의 성경절들을 읽어 보라. 예수님의 탄생은 이 예언들을 어떻게 성취하였는가? 우리는 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신뢰해야 하는가?(신 18:15, 행 3:22~24, 사 7:14, 마 1:21~23, 미 5:2, 눅 2:4~7)
[신18: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
[행3:22~24]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23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받으리라 하였고 24 또한 사무엘 때부터 옴으로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사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마1:21~23]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미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눅2:4~7]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답: 구약 구절들은 메시아 탄생에 대한 예언들이고 신약 구절들은 구약의 예언이 예수님에게 다 성취된 것을 증명한다.
가브리엘은 사가랴에게 요한의 탄생을 알리고 6개월 후에 다시 나사렛의 마리아에게 나타나 더 큰 이적을 알려 주었다. 처녀인 그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1)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처녀 탄생은 만물의 원리를 초월한 것이어서 어떤 천연계의 이치로도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마리아도 이렇게 질문하였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34절). 천사는 마리아에게 이것이 성령의 일이며(35절),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의 일이라고 보증하였다(37절). 마리아는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 하며 즉각적으로 순종하였다. 우리가 아무리 정당하고 논리적인 질문을 제기할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대답이 주어지면 우리는 그 말씀에 굴복해야 한다. 창조든 십자가든, 성육신이든 부활이든, 만나를 부어주시는 일이든 오순절 성령을 부어주시는 일이든 하나님의 주도적인 역사는 인간의 굴복과 수용을 요구한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통치와 영원한 목적에 순종하자 가브리엘은 또 다른 약속을 주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 1:35).
침례 요한의 탄생에는 자기 백성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선지자가 없었던 사백 년이 지난 뒤에 요한은 특별한 기별과 능력으로 역사에 등장했다. 요한의 사명과 기별은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눅 1:17)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메시아의 사명을 위해 길을 예비할 자가 되어야 했다.
<부가설명> 이 교과 저자는 침례요한의 출생과 예수님의 탄생을 “요한과 예수님의 탄생 일화에는 유사한 점이 많다. 먼저 두 사건 모두 기적이다.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가임기가 훨씬 지난 나이였다. 예수님의 어머니도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했다. 탄생의 약속을 알려준 천사가 모두 가브리엘이었다. 부모들은 그 약속을 모두 놀람과 기쁨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대해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두 아이 모두 성장하면서 심령이 강해졌다(눅 1:80, 2:40). 그러나 기적적으로 탄생한 두 아이의 사명과 사역은 달랐다.”(월요일 서론)고 기록하였다. 이것은 기록된 대로 사실이다. 그러나 모두 기적인 것은 확실하지만 예수께서 탄생하신 것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이, 사가랴에게 요한이 탄생한 것과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지 못하고 있다. 이삭이나 요한은 다 아담의 씨로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아담과 상관없는 당신 자신의 생명으로 잉태하신 것이다. 교과 저자가 어쩌면 예수님의 탄생의 구원 사건적, 복음적 이해를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처녀에게 탄생하셨는데 성령으로 잉태하셨다. 예수님은 아담의 자손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아담의 죽은 생명과 관계없이 자기 자신의 생명자체로 탄생하셨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사망과 상관없는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동정녀에게 탄생하신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의 탄생은 만물의 원리를 초월한 하나님의 일이었다. 마리아는 믿음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수용하였다.
넷째 날(수) 베들레헴의 축사(畜舍)
4월 1일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눅 2:7).
누가는 역사에 대한 언급으로 베들레헴 축사(畜舍)의 일화를 시작한다. 구레뇨가 수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에 황제 아구스도가 로마 전체의 인구조사를 명령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호적지인 베들레헴을 향해 길을 떠났다. 성경을 읽은 자들은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 누가가 성령의 지도를 따라 역사의 틀 속에서 성육신에 관한 소상한 일들을 기록했다고 이해하게 된다.
1. 눅 2:7에서 예수님의 빈곤을 생각해 보라. “강보”, “구유”,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라는 말과 예수님의 낮추심을 묘사한 빌 2:5~8을 비교해 보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어떤 길을 걸으셨는가?
[눅2: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답: 예수님은 부요하신 분으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고후8:9) 그래서 우리를 그의 부요함에 이르게 하셨다. 말로 다할 수 없는 희생이요, 말로 다할 수 없이 감사한 일이다.
열악한 조건에서 태어난 예수님의 이야기 다음에 그 축사를 가장 먼저 방문한 목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눅 2:10)은 부자나 유력자, 서기관이나 제사장, 통치자나 권세자들이 아닌 비천한 목자들에게 전해졌다. 단순하지만 장엄한 기별을 보라. ‘너희에게 구세주가 나셨다. 다윗 성이다. 그분은 그리스도 주시며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다. 너희는 강보에 싸여 있는 그분을 발견할 것이다.’ 하늘의 가장 존귀한 선물이 그 같은 소박한 꾸러미로 내려왔다. 하지만 그 선물은 “하나님께 영광”을,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를 가져왔다(14절).
천사에 대한 누가의 기록은 다음과 같이 기독교 신학의 세 가지 핵심 사항을 드러냈다. 첫째, 기쁨의 좋은 소식은 ‘온 백성’을 위한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은 모두 한 하나님의 백성이다. 둘째, 예수님은 구주시다. 다른 이는 없다. 셋째, 예수님은 ‘그리스도 주’시다. 누가복음 서론부에 확고하게 수립되어 있는 이 세 주제는 후에 사도들, 특히 바울의 가르침의 토대가 된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구유에 뉘어졌다. 구유는 짐승의 우리에 있는 것이다. 어쩌면 양의 우리였을는지 모른다. 성경은 다만 구유라고 했을 뿐이다. 이것은 상징하는 바가 있다. 구주가 오신 세상이 짐승의 우리 같다는 암시가 있는 것이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다고(시49:20)하셨는데, 아담으로 인해서 사망의 존재가 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고 짐승의 우리 같은 세상에 구주가 오신 것이다. 깨닫지 못한 짐승 같은 사람들, 사망에 매인 존재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기 위하여 친히 사람이 되어 오신 말씀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사망의 존재들의 사망을 친히 대신 지시고 친히 사망으로 사망을 폐하기 위하여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들의 실상을 절묘한 상징으로 드러내시는 모습으로 구유에 누우셨고 또 교과 저자의 말대로 가난하고 소외되고 별로 대접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론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이 되는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런 모습으로 오셨다. 그분은 빈부귀천 상관없이 모든 사람의 구주이시다.
교훈 : 세상의 구주 되시는 예수님은 축사에서 태어나셨지만 천사들은 그분의 오심이 하나님께 영광, 사람에게 평화가 되리라고 노래하였다.
다섯째 날(목) 구주에 대한 증언
4월2일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눅 2:34).
누가는 비록 이방인을 대상으로 글을 썼지만 구약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유대교 유산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는 신약의 일화를 구약과 조심스럽게 연결시켰다. 그리고 마리아와 요셉이 유대법에 따라 아기 예수에게 8일 만에 할례를 행하고 그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데리고 간 장면을 소개했다(눅 2:22~24).
1. 눅 2:25~32을 읽어 보라. 시므온이 제시한 구원 신학의 세 요소를 주목하라. ⑴ 구원은 예수님을 통해 이르러온다. ⑵ 구원은 하나님이 준비하신다. ⑶ 구원은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포함하여 만민을 위한 것이다. 이 진리들은 계 14:6~7에 나타나는 첫째 천사의 기별과 어떻게 일치하는가?
[눅2:25~32]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계14:6,7]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답: 첫째 천사의 기별은 만민을 위한 기별이다. 또 창조주를 경배함으로 구원은 창조주로부터 이른다. 다음은 이것은 영원한 복음이다라는 것이다. 또 예수님은 심판의 표준이 되신다고 했다. 시므온의 증언과 같은 내용이다.
시므온의 예언은 예수님의 사역에 나타날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말하였다. 첫째,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눅 2:34) 할 것이다. 맞다. 그리스도는 만민에게 빛과 구원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선택 없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그리스도에게 중립 지대란 없다. 한 사람의 구원은 그분을 영접하느냐 거절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스도는 배타적인 선택을 요구하신다.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물든지 머물지 않든지 둘 중 하나다. 그분 안에 머무는 자는 흥하여 하늘나라의 일원이 되지만 그분을 거절하거나 그분에게 무관심한 자는 패하여 소망 없이 멸망할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협상할 사항이 아니다.
둘째, 시므온은 마리아에 대하여 예언했다.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눅 2:35). 물론 이 말은 마리아가 목격할 십자가에 관한 것이다. 마리아와 그녀의 뒤를 이을 모든 세대는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모든 구원의 계획은 십자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부가설명> 시므온의 증언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예언적으로 말한 것이다. 예수님은 구원을 사람들의 눈에 보게 하신 분이시고 그 구원은 만민에게 예비 된 것이며 이방과 이스라엘에 다 빛이 되시는 분이심을 선언하였다. 또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한다고 한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든지 거절하든지 할 때 이르는 결과를 말한 것이다. 이것은 심판이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의 존재 자체가 사람들의 심판이 된다. 그분을 받아들이고 믿으면 영생을 얻지만 거절하면 완전히 존재를 상실하는 사망을 당한다. 예수께서 이런 일을 행할 때 그 모친에게는 칼에 찔리는 듯한 고통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눅2:31~35) 또한 예수님에 대한 태도에 따라서 사람의 마음의 생각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정말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느냐 거절하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사상이 생명을 사랑하느냐 생명을 무시하느냐 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되는 것이다.
교훈 : 누가는 유대 법에 따라 아기 예수가 할례를 받고 성전에서 봉헌된 사실을 기록하면서 구주에 대한 시므온의 예언을 소개하였다.
여섯째 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4월 3일
“그의 이름으로 된 복음서의 기자, 누가는 의료 선교사였다. 그는 성경에서 ‘사랑을 받는 의원’(골 4:14)이라고 불리고 있다. 사도 바울은 의사로서의 그의 기술에 대한 소문을 듣고 주께서 그에게 특별한 사업을 맡겨 주신 사람으로 알고 그를 찾았다. 그는 그의 협력을 얻게 되었으며, 얼마 동안 누가는 이곳저곳으로 다니는 바울의 여행에 동행하였다. 얼마 후에 바울은 누가를 마게도냐에 있는 빌립보에 남겨두었다. 여기에서 그는 여러 해 동안 의사와 복음의 교사로서 계속해서 일하였다. 의사로서 일을 하면서 그는 병자들에게 봉사하였고,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치료의 능력이 임하도록 기도하였다. 그리하여 복음 기별을 위한 길이 열렸다. 의사로서 누가가 거둔 성공은 이방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언할 많은 기회를 그에게 주었다. 제자들이 일한 것처럼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치료봉사, 140~141).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누가가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먼저 나온 자료들을 참고했다면 우리는 성경의 영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딤후 3:16) 영감은 어떻게 성경의 기자들에게 작용합니까? <가려 뽑은 기별 1권>, 15~23에서 ‘예언서 저자들의 영감’을 읽어 보십시오.
※ 영감은 다른 자료들에서 필요한 것을 선택하도록 이끄신다. 영감으로 된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이다. 구약 역사서도 다른 역사서에서 취사선택하였다. 그렇게 할 때 성령께서 바르게 취사선택하도록 영감하시고 인도하신다. 물론 친히 말씀하시는 것도 있다.
➋ 처녀 탄생은 하나님이 이루신 일이며 그분의 신비와 위엄과 사명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진정으로 인간의 이해력을 초월합니다. 물론 인간의 이해력이 미치지 못하는 세속적 사물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우주를 창조하고 유지할 능력이 있다면 처녀 탄생과 같은 일이 그분의 능력 밖의 일이 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자연법칙에 제한된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만이 처녀 탄생 개념을 배척할 뿐입니다. 반면 초자연적인 존재를 포괄하는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그 같은 개념을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마리아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한 뒤에 천사가 한 말을 보십시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7).
※ 예수께서 처녀에게서 탄생하신 이유는 화요일 부가설명을 보라. 그분은 기적적으로 탄생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하여 처녀에게 탄생하신 것이 아니다. 아담의 씨로 탄생하신 것이 아니고 자신의 생명으로 생명의 씨가 되어 탄생하신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것이다. 다른 생명의 시작을 나타내는 것이다. 아담으로부터 이어오는 생명의 씨는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씨, 썩어질 씨(고전15:22, 벧전1:23)이기 때문에 남자를 통하여 태어나는 사람은 어떤 누구도 결토 구주가 될 수 없는 것이다.
➌ 한 미국 방송인은 기회가 있다면 예수님에게 정말 처녀에게서 탄생했는지 묻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예수께서 정말 구주가 되시는가 하는 질문과 대답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정말 구주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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