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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과 전 우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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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6-02-15 13:19 조회3,6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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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과 전 우

 

 

기억절: “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눅24:32)

 

 

첫째 날(일) 베드로를 부르심

 

*도입질문: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베드로는 솔직하고 급하고 과단성이 있는 성격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말이 앞섰고, 계획보다 행동이 앞섰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메시야에 대한 소망과 메시야와 함께 큰일을 하고 싶은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부의 일을 하고 있었지만 구약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메시야가 자기 시대에 오리라는 강한 믿음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였기에 동생인 안드레와 함께 그물을 던지다가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 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동안 준비해 온대로 그는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성격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업에 필요한 성격들입니다. 어떤 성격이 좋고, 어떤 성격이 나쁘다고 규정할 수 없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각자의 성격과 취향에 따라 하나님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방법과 시기가 다 다르고, 하나님을 증거 하는 방법 역시 각자의 성격과 취향에 따라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업에는 다 필요합니다.

 

성격이나 취향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부여하신 귀한 선물인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또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무엇보다 하나님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자 하는 마음의 태도가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내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자 결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성격과 취향에 맞는 사업에 부르시고, 하나님을 위해 그 일을 즐겨 행하게 하십니다.

 

나와 하나님만이 알고 있는 내면의 영역에서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가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모든 것보다 더 나의 하나님을 최우선 순위로 생각할 때 베드로처럼 직업도, 도구도, 자신까지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고,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릴 때 하나님은 나의 성격과 취향과 경험과 믿음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내십니다.

 

 

둘째 날(월) 그 분과 함께

 

*도입질문: 열 두 제자들을 부르시고 행하신 예수님의 첫 번째 교육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을 부르신 후 공생애 기간 동안 가장 심혈을 기울인 사업은 제자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제자들과 공유함으로 제자들에게 삶은 나누셨습니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사는 지, 자신이 어떤 사람들을 만나 어떤 일을 하시는 지, 자신이 구약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시는 지는 제자들과 함께 함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런 모습은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인격을 드러내고, 자신과 같은 제자들을 만들고자 하신 예수님의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꿈꾸신 제자의 모습은 자신이 가진 지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생각과 자신과 같은 희망과 자신과 같은 열정과 자신과 같은 행동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삼년 반 동안을 함께 하셨습니다.

 

삼년 반 동안의 기간 동안 제자들과 함께 있었지만 삼년 반이 지난 후에 변화되지 않을 제자들임을 알면서도, 제자들을 믿고 바라며 성령께서 최종적으로 그들을 이끄실 것임을 확신하시고 함께 하셨습니다.

 

십자가 사건으로 제자들은 예수님을 다 잊어버리고 다 도망갔지만,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의 성경연구와 성령하나님의 조명하심으로 예수님을 창조주와 구원자로 받아들이게 되자 그들은 삼년 반 동안 함께 하셨던 예수님처럼 변화되었고,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셋째 날(화) 천연계를 다스리심

 

*도입질문: 천연계를 통한 선과 악의 대쟁투는 어떤 모습으로 드러났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천연계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심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천연계는 하나님의 지배아래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사단도 자신의 영적인 힘으로 천연계를 다스리고자 하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오해하게 하는 일들을 합니다. (예를 들면, 욥의 자녀들을 죽이고, 재산을 없앱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풍랑들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을 죽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단이 행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한도 내에서의 일이고 궁극적인 권한은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연계를 주관하심으로 천연계의 창조주가 하나님이심을 밝혀 보여주시고, 사단의 행하는 모든 일들도 하나님의 영향력 속에 있음을 증거 하심으로 사단의 일시적 행위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고 궁극적인 창조주께 마음이 향하도록 역사하십니다.

 

 

넷째 날(수) 누가 더 큰가?

 

*도입질문: 제자들 사이에 있었던 누가 더 큰가의 문제를 통해 사단이 노린 것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누가 더 크냐?의 논쟁의 핵심은 누구의 영향력 속에 있는 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마20:28에서 설명하시길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품성은 받고자 하시거나 섬김을 받고자 하심이 아니라 자기의 목숨까지 바치면서 섬기는 품성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작은 자의 자리에 서고자 했던 것이 예수님의 품성이었는데, 삼년 반의 기간 동안 예수님과 함께 살았던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의 품성이 아닌, 사단의 품성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사단이 제자들의 마음속에 누가 크냐?는 교만의 논쟁 속에 빠져 들어가게 한 이유는 누가 크냐의 논쟁에 빠져들수록 사망의 생각이 더욱 자극을 받게 되어, 예수님을 떠나 사단의 영향력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교만과 이기심의 본성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이 문제에 집중하게 되면 본성적인 힘이 크게 작용하여 성령께서 주시는 세미한 음성은 들리지가 않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감지하지 못하게 되면, 그것은 사단의 영향력 속에 깊이 빠지게 되고 허망한 것에 관심이 집중됨으로 하나님과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되어 사망 속에 빠져있게 됩니다.

 

예수님과 늘 함께 있었던 제자들에게도 이런 죄의 본성의 문제가 해결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도 성령의 은혜와 사랑이 아니면 똑 같은 모습과 똑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매일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일이 필요합니다.(히4:16)

 

 

다섯째 날(목) 말씀과의 거룩한 만남

 

*도입질문: 엠마오 마을로 실망 가운데 내려가는 두 제자들에게 희망과 생명력이 회복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제자들에게 큰 두려움과 실망과 좌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예수님의 부활이야기는 혼란만 가중될 뿐이었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명의 제자들은 슬픔과 혼란 속에 서로의 마음을 드러내면서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들과 동행하던 한 사람이 이미 그들이 알고 있었던 구약성경을 기초로 메시야가 당할 고난과 영광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였을 때, 그들의 눈이 환하게 밝혀졌고 그들에게 설명하신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이미 알고 있던 구약 성경을 문자적 혹은 지식적인 성경연구가 아닌 하나님 중심의 성경연구를 통해 그들의 마음에 빛이 들어왔습니다. 그제서야 성경의 글자가 성령의 도우심 속에 생명력을 갖게 되었고, 그 빛이 그들의 불신과 혼란과 두려움의 어두움을 몰아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증거 하는 책입니다.(요5:39) 그런데 그 성경에서 예수님에 관한 행적이나 지식을 얻고자 성경을 연구하거나, 무엇을 행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지(눅10:25)에 관한 지식을 얻고자 연구한다면 그곳에는 예수님이 보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지식을 알게 됨으로 인한 교만으로 치우치든지, 아니면 행위를 통해 구원얻고자 함으로 조건적 사랑을 하시는 분으로 오해하여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게 됩니다.(요5:41)

 

그런 모습은 생명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율법을 지키는 것도 아닙니다.(요7:19) 왜냐하면 율법은 순종하면 구원을 주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말씀하신 하나님의 품성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말씀)에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품성을 발견함으로 그 사랑으로 인한 감동으로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는 성경연구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에게 생명에너지가 됩니다. 그 사랑에 반응할 때 하나님과 생명으로 연결됩니다. 성경을 통해 성경에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셔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그 말씀이신 그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그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선택하게 되고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생명입니다.(요일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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