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과 계속 되는 투쟁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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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6-01-25 12:53 조회3,754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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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과 계속 되는 투쟁
기억절: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느2:18)
첫째 날(일) 다윗, 골리앗, 밧새바
*도입질문: 다윗의 인생 중 가장 극적인 사건과 그것에서 배울 교훈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다윗의 일생을 생각하면 그는 입지전적인 인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무명의 시골 목동에서 일약 한 나라의 왕이 되었던 인물이었고, 그 과정의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다윗의 생애는 비범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의 생애에 있어서 그를 더 잘 알게 하는 뚜렷한 몇 가지의 사건을 살펴볼 때, 우리는 큰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블레셋 장군 골리앗과의 싸움이었습니다. 기골이 장대하고 싸움 경험이 많은 골리앗과 전투에 참가할 자격도 안될 만큼 어렸던 다윗, 전쟁에 참가한 형들을 격려하기 위해 아버지의 분부로 전쟁터에 와서야 겨우 전투의 분위기를 느꼈던 다윗이었습니다. 골리앗의 기세에 사울을 비롯한 모든 장수들이 두려움 속에 떨고 있을 때,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방인 장수에 맞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싸움에 나서겠다는 다윗의 모습은 그의 신앙의 중심에 누가 있는 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였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주셨고, 자신을 책임지시는 아버지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역사하셨던 과거의 경험을 통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만으로 골리앗과 맞설 수 있었고 그 싸움의 결과는 다윗의 일방적인 승리였습니다. 소년이었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그를 골리앗보다 더 큰 용사가 되게 하였습니다. 이때의 다윗의 모습은 다윗다운 최고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다윗은 믿음의 대장부였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사울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 이스라엘을 나라가 강대하여졌습니다. 나라가 강대하여지자 다윗은 다소 교만해졌고, 하나님을 최우선 순위에 두었던 신앙도 퇴색하기 시작하였습니다.(삼하11:1)
그때 사단이 주는 영의 영향으로 인해 밧새바를 범하게 되고,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밧새바의 남편인 우리야도 죽이고 이일로 인해 모든 것을 알게 된 요압에게 매이는 신세가 됩니다. 이일은 오래 동안 다윗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이미 용서하신 사랑을 받아들이고 다시금 회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벗어나는 순간 사단의 영향력 속에 들어가게 되고, 그것은 불행의 결과가 이르러 오지만 그때에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금 받아들이게 될 때 다시금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게 됨으로 사단이 주는 사망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넘어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할 때 다시금 하나님께로 돌아갈 용기와 믿음을 얻게 됩니다.(24:16)
그리고 다윗의 생애 중 빼놓을 수없는 장면은 그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왕상1장에서 보여 지고 있는 다윗의 마지막은 다윗을 가장 다윗답게 만들었던 장면입니다.
다윗이 나이가 많아 늙었을 때, 그의 퇴장이 가까운 때에 신하들은 늙은 다윗을 위해 아리따운 동녀 아비삭을 다윗의 침소에 함께 들어 봉양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비삭과 동침하지 아니하였습니다.(왕상1:4)
이 장면을 깊이 생각해보면 다윗의 행동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어진 멋진 다윗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비삭과의 동침은 신하들의 뜻이 드러난 어쩌면 매우 합법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신하들의 뜻을 따른다 할지라도 크게 비난 받지 않을 상황일 수도 있지만 다윗은 과거에 밧세바로 인한 넘어졌던 경험의 때에 자신을 새롭게 세워주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의 은혜로 인해 사단이 주는 악한 영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성령의 생명적 인도하심을 선택하여 살았던 그대로의 모습대로 그 상황에서 그대로 선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된 다윗의 모습을 온 우주에 드러낸 것입니다. 한 사람 전체의 인생을 평가하는 때인 퇴장의 때에 다윗은 확실하게 그가 믿고 신뢰하던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키셨는지를 온 우주 앞에 드러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고 그 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로 인해 퇴장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날(월)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도입질문: 갈멜산에서 있었던 엘리야와 이방신의 선지자들 간의 대결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당시 바알을 신으로 믿는 사람들은 바알이 풍요의 신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철저히 기복신앙이었습니다. 바알에게 정성을 다하고 제사하고 순종하면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철저히 조건적 품성의 신이었습니다.
반면에 엘리야가 제시하는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순종의 조건이 아니어도 같은 사랑으로 생명을 주시는 창조주였습니다. 삼년 반의 가뭄으로 인해 풍요의 신을 여겨졌던 바알신에 대한 의심이 커질 무렵 엘리야는 어떤 신이 참된 신인지, 어떤 신이 살아 있는 신인지를 갈멜산에서 대결을 펼치자고 제안합니다. 방법은 누가 하늘에서 제단위의 제물에 불을 내려 태울 것인지를 확인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바알을 믿는 제사장들이 온 종일 자신의 몸을 상해하고 뛰놀고 주문을 외워도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지 않았지만, 엘리야는 단 한번의 기도로 하나님께서 불을 하늘에서 내려 제단위의 제물을 태우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오, 온 우주를 주관하시는 참된 하나님임을 분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풍요로움도 사실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의 행위인데(행17:25),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고 오해하니까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고 신뢰하는 대신 행위를 통해 풍요로움을 얻고자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보다는 조건적 행위를 통해 풍요로움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이방신에게 사람들은 더 끌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품성이 조건적이기 때문입니다.
갈멜산의 대결을 통해 깨달아야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시며, 우리의 존재와 삶의 필요를 책임지시는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롬8:32) 그 하나님을 신뢰할 때 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인생의 풍요로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셋째 날(화) 비방의 말
*도입질문: 낙담케 하는 비방의 말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앗수르의 산헤립이 유다를 에워쌌습니다. 이미 몇 성을 점령하였기에 산헤립의 에워쌈은 모든 유다인들을 두려움에 몰아넣었습니다. 산헤립은 지금의 상황에서 유다의 신이 절대로 도와줄 수 없을 것이고 반드시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낙담케 하는 말을 매일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강한 군대의 지도자의 이런 낙심케 하는 말은 유대인들의 마음에 패배의식을 갖게 하였고 절망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유다의 왕은 히스기야였는데 이런 상황에 대처한 히스기야의 방법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을 다 이야기 하였고, 이때를 위한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물어보았을 때 그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강력한 능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동시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앗수르의 공격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이란 기별을 듣게 하셨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사람들의 말로 인해 낙담케 될 수 있지만 그것에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대화할 때, 하나님께 내 생각을 집중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믿음과 용기로 사람의 말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얻게 됩니다.
기도할 때 용기를 얻게 됩니다.
넷째 날(수) 사망의 조서
*도입질문: 에스더 당시 페르시아에서 내린 유대인을 죽이라는 조서와 유대인의 역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페르시야에서 있었던 유대인을 한 날 다 죽이라는 조서의 이면에는 사단의 음모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을 다 죽이므로 유대인들을 통해 태어날 메시야가 태어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폐하기 위한 사단의 음모였습니다.
그때 죽음의 고통 속에 빠졌던 유대인들은 말세에 있을 야곱의 환란의 예표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 편에 속한 사람들이 속절없이 죽을 것 같은 위협 속에서도 결국은 그 위기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렘30:5-7)
사단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예수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을 다 죽이기 위해 세상의 모든 동맹과 힘을 이용하여 합법적으로 죽이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하나님 편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죽음의 위협 속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고, 이런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남은 자녀들은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확증하게 되어, 내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의존의 가능성을 완전히 걸러내게 됩니다. 사단이 의도했던 모든 것들은 오히려 하나님만이 구원임을 가르쳐 주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다섯째 날(목) 느헤미야
*도입질문: 느헤미야의 좌절과 도전과 성취를 통해 배울 교훈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예루살렘 중건령이 사마리안 사람들의 조직적인 방해로 인해 중단되었습니다. 페르시야의 궁중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였던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중건이 메시야의 오심을 준비하는 매우 중요한 일임을 알았기에 그는 페르시야의 왕인 아닥사스다에게 나아가 자신을 예루살렘을 보내주고 예루살렘을 중건하는 일을 마무리 짓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느헤미야의 이런 담대함은 하나님과의 기도로 인해 용기를 얻을 결과였습니다. 담대한 느헤미야의 요청에 아닥사스다 왕은 예루살렘 중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지원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돌아온 느헤미야는 상황을 보니까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 놓여 있었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고, 상황을 면밀히 살펴본 후 기도함으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한 답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는 방해꾼들의 위협에 한 손에는 무장을 하고, 또 다른 손에는 망치 등의 연장을 들고 마침내 예루살렘을 중건하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말씀의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는 사람이었고, 그 뜻을 위해 장애물이 있다면 걷어내고 돌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인생의 길과 신앙인으로서의 길에는 언제나 반대의 세력과 사단의 공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을 말씀과 기도를 통해 신뢰할 때에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한 답을 주시고 그 일을 이룰 능력도 주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전진할 때 모든 장애물들이 걷어질 것입니다. 선과 악의 대 논쟁이 거의 끝나가는 이때에 다시금 느헤미야와 같은 불굴의 신앙이 요구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크기가 우리의 믿음의 크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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