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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에덴에서의 위기(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1/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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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6-01-02 01:48 조회9,22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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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9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31분

 

기억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연구 범위: 창 1:28, 롬 8:17, 마 6:26, 창 2:15~17, 창 3:1~7 창 3:10~19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모든 것이 보기에 심히 좋다고 선언하셨다(창 1:31). 그러나 오늘날 만물이 분명히 아주 좋은 상태는 아니다. 수백 년 동안 다양한 사상과 이상주의가 상황을 바로잡고자 시도했지만 이 세상은 혼돈, 불안정, 폭력, 전쟁, 공해, 억압, 착취의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20세기는 미래를 개선할 인간의 역할에 대하여 온갖 낙관주의로 출발했지만 21세기는 그러한 낙관주의뿐 아니라 그 이유마저 상실하였다.

  어떻게 하다가 이런 상황까지 왔을까? 답은 대쟁투에 있다. 하늘에서 시작된 일이 불행히도 지구에까지 심지어 역사의 상당히 이른 시기에 이르렀다.

  이번 주에 우리는 사탄이 어떻게 인간의 자유를 남용하여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참담한 세계를 구축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타락의 기사는 인류의 유일한 안전책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뿐 아니라 더더욱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임을 뚜렷하게 상기시킨다.

 

※ 학습 목표

➊깨닫기 : 성경에 기록된 타락의 기사를 살펴본다.

➋느끼기 :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상속자임을 인식한다.

➌행하기 :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을 경감시키는 데 일조한다.

 

A.

❷아담과 하와에게는 어떤 특권과 의무가 있었습니까?

※ 스스로 의지를 활용할 수 있었고 영생을 누릴 수 있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❸그들의 특권에는 어떤 한계가 있었으며 어떻게 그들은 그 한계를 무시하였습니까?

※ 선악과를 먹지 않아야 하는 한계가 있었고 그것을 무시하였다. 

❹우리가 책임을 가진 청지기로서 명확히 인정해야 할 한계는 무엇입니까?

※ 하나님이 구분하신 것을 잘 유지하고 지키는 것이다. 

 

B. 

❷사탄은 어떻게 참과 거짓을 섞어서 아담과 하와를 속였습니까?

※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물었다. 먹지 말라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과실이라는 말은 거짓이다. 

❸하나님의 계획 밖에서 우리의 필요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은 왜 반역이 됩니까?

※ 하나님이 주신 구분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❹어떻게 해야 우리가 사탄이 세련된 논리로 제시하는 거짓에 속지 않게 될까요?

※ 말씀의 진리를 바르게 깨닫고 거기 굳게 서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결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상속자들입니다. 온전한 기업을 상속할 때까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누릴 특권과 환경을 보호하는 청지기로서 봉사할 의무가 있습니다.

 

 

첫째날(일) 1월 3일

세 가지 복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구절이 7번 등장한다. 하나님은 빛(4절), 땅과 바다(10절), 씨 가진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12절), 해와 달과 별(16절), 물고기가 가득한 바다와 새들이 나는 하늘(21절), 동물과 가축, 땅에 기는 것들(25절)을 만드시고 그렇게 평가하셨다. 그리고 창조 사업이 마무리되자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

  하나님은 창조하신 모든 것이 매우 좋다고 선언하셨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3가지 구체적인 영역에서 창조 세계에 복을 주셨다.

  첫째, 그분은 바다 동물들과 새에게 복을 주셨다. 그분은 바다 동물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창 1:22)고 하셨다. 둘째,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그들에게도 비슷한 격려의 말씀으로 복을 주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

  창 1:22, 28을 읽어 보라.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포는 두 경우 모두 비슷하게 시작하지만 아담과 하와에게는 무엇이 추가되는가? 인류는 물고기나 새와 마찬가지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격려를 공유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아담과 하와에게는 지구와 그 안의 모든 생물을 돌볼 책임이 부여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창조주께서는 피조물들의 세계를 관리하고 돌보는 일에 그분과 협력하도록 인류의 첫 조상을 섭정으로 초대하셨다(롬 8:17, 히1:2~3 참고).

  창조 기사에서 세 번째로 등장하는 복은 제칠일 안식일이다(창 2:3). 여기서 사람은 동물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사실이 확증된다. 그들은 다른 피조물들이 누릴 수 없는 방식으로 창조주와 교제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창조 세계 내에서 인간에게 특별한 지위가 부여되었다는 단적인 증거가 여기에 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고 강조하셨다. 하나님은 다른 생물들을 평가절하하지 않으셨지만 지구에서 인류가 특별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셨다.

 

<부가설명> 창조 기사에서 선포된 복의 내면을 보면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것이다. 즉 생명력의 확장을 복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안식일에 복을 주신 것은 안식일이 생명력을 증진하는 은혜가 있는 날로 정하셨다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성경이 말하는 복의 핵심은 영생을 얻는 것이다. 창조당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셨다. 일반 생물들의 생명력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모든 생명은 영생하도록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안식일은 사람에게만 준 것이 아니다. 동물들에게도 주셨다. 제4계명은 네 육축도 쉴 것이라고 하신 것으로 알 수 있다. 성경은 “너는 육 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 칠 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출23:12)고 하셔서 안식일은 숨을 돌리는 날이라고 가르쳐주셨다. 숨을 돌리는 것은 생명력을 증진하는 것이다. 심폐소생술이 바로 숨을 돌리게 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아닌가. 안식일의 복은 생명의 복이고 생명력을 증진시키고 더욱 풍성하게 하는 복이다. 이것은 예수께로부터 온다. 예수님은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그래서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생명은 생명자체이신 창조주께로부터 온다. 안식일은 창조의 기념일이며 동시에 풍성한 생명이 창조주로부터 온다는 것과 그것을 누리는 복된 날이다. 

 

교훈: 하나님은 지구 안에 사는 모든 생물에게 복을 명하셨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창조주와 함께 창조 세계를 돌볼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셨다.

 

 

둘째날(월) 1월 4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6~17).

 

  하나님은 경계를 분명하게 정의하고 나눔으로써 만물을 창조하셨다. 빛과 어둠,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 뭍과 바다, 밤과 낮을 나누시고, 생물들을 그 종류별로 내셨으며, 남자에게서 여자를 분리시키셨고, 여러 날에서 한 날을, 다른 나무들로부터 한 나무를 구별하셨다.

 

1. 창 1:4, 6~7, 14, 18, 21, 24~25을 읽어 보라. 왜 인간이 창조되기 이전에 명확하게 정의된 경계를 요약해야 할 필요가 있었는가?

[창1:4,6,7,14,18,21,24,25]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6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14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18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21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24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답: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가 정한 자리에서 온전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과 육지 동물과 새들을 만드셨을 뿐 아니라(창 2:7, 19), 맛있는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나무들이 땅에서 자라게 하셨다(8~9절). 하나님은 또한 육지의 일부분을 선택해서 동산을 가꾸셨다. 우리는 그 동산의 아름다움을 상상해 볼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멋진 동산들은 분명히 에덴동산의 아름다움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특별하게 조성된 에덴동산의 중앙에는 두 그루의 독특한 나무 즉,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다. 두 번째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아야 했으며 먹었다가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었다(창 2:17).

 

2. 창 2:15~17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시험하는 상황에서 구별의 개념이 어떻게 나타났는가?

[창2:15~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답: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히 구분하여 주셨는데, 그것은 생명과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하여 분명히 가르치신 것이다. 

 

  구별은 명확하고 구체적이었다.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었지만 이 구별된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아야 했다. 그것은 다른 것들과 구별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모호하지 않았다. 아담과 하와는 도덕적인 존재로 창조되었다. 도덕성은 자유를 배제한 채 존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보는 시험이 주어졌다.

 

<부가설명> 성경에 나타난 구분을 보면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분, 천사들의 세계와 사람의 사계의 구분, 사람과 동물들, 식물들, 무생물들의 구분이 있다. 이런 구분들을 철학적으로는 차원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 같다. 창조주와 피조물로서의 사람의 구별은 안식일을 제정하신 것과 생명과와 선악과를 통하여 나타내셨다. 선악과를 먹는 것은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는 행동이다. 그것은 생명의 근원이시고 생명을 주시는 분을 부인하는 행동이다. 그것을 먹으면 생명을 거절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당연히 사망이 된다. 생명과 시망 곧 생명을 거절하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셨다. 생명을 거절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거절하는 것이다. 뱀은 여자를 유혹해서 예수님을 떠나게 하였다. 선악과를 먹는 것은 예수님, 곧 창조주이시며 그들에게 생명을 주신 말씀하나님을 거절하고 떠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11:3) 선악과를 먹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는 수단이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구분하신 것을 잘 알아서 생명 안에 있어야 할 것이다. 

 

  교훈: 경계를 정의하고 나눔으로 만물을 창조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선악과를 모든 나무의 열매로부터 구별하시고 그분께 대한 순종의 시금석으로 삼으셨다.

 

 

셋째날(화) 1월 5일

타락 1

 

  다른 동물들보다 “간교”(창 3:1)했던 뱀은 성경 역사에서 하나의 뚜렷한 상징이 되었다. 모세는 출애굽 과정에서 치명적인 독사의 재앙으로 죽어가는 자들을 살리기 위해서 놋뱀을 장대에 매달아 들어올렸다(민 21:5~9). 칠백 년 후에 이 놋뱀은 우상숭배와 주술 행위의 대상이 되어 히스기야에 의해 부서졌다(왕하 18:4). 요한계시록을 보면 “옛 뱀”은 확실하게 “마귀” 곧 “사탄”(계 12:9)이다.

 

1. 창 3:1~5을 읽어 보라. 사탄은 하와를 속이기 위해 어떤 전략을 사용했는가?

[창3:1~5]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답: 하나님의 말씀을 문제 삼아 하나님을 의심하게 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사탄은 처음부터 냉소주의와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말을 사용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 하와는 뱀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이유를 파악하기보다 곧바로 믿음을 약화시키는 조롱에 휩쓸렸다. 원어를 보면 뱀의 말은 하나님이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도록 금지하신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하나님이 전체를 금지하신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하나님의 품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것은 그분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었다. 뱀은 하와를 혼동에 빠뜨렸다. 그녀는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 3:2~3)고 대답하였다(창 2:17 참고).

  이 시점까지 성공을 거둔 사탄은 더욱 대담하게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였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열매를 직접 만져도 살아있음을 보여주면서 그는 자신의 진술에 신빙성을 더했다. 그러고 나서 드디어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유혹자는 하나님이 정직하지 않으며 게다가 뭔가 좋은 것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부가설명> 뱀은 사단이다.(계12:9) 사단이 하늘에서 쫓겨 와서 이 지구에 이르러 처음 여자에게 접근했다. 우리는 이 기사를 읽을 때 선악과를 주목하게 된다. 바로 이런 시각에 문제가 있다. 뱀이 문제 삼은 핵심을 선악과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문제 삼았다. 선악과가 아니고 다른 것을 두고 말씀하셨어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들지 않았으면 죄가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말씀은 어디든지 있다. 사단은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문제 삼아 사람을 유혹하고 공격한다. 사단은 선악과를 두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것으로 유혹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것으로 그들이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주장을 하도록 한 것이다.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 관계없이도 스스로 생명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와 그분이 공급하시는 생명으로만 생명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한 것이다. 하나님과 상관없이도 스스로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한 것인데 루시퍼의 주장이다. 루시퍼는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없이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다가 그 존재를 반납하고도 존재해보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그는 하늘에서 도망쳤을 것이다. 하늘의 전쟁은 이와 같은 형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존재를 반납하면 그는 없어진다. 그러면 자기의 주장이 완전히 거짓이라는 것이 폭로된다. 결국 그는 지구의 사람을 인질로 삼는 것으로 자기의 주장과 존재를 좀 더 연장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을 구원하는 사업이 끝날 때 그는 불가불 존재를 반납하고 소멸하고 말 것이다. 

 

  교훈: 사탄은 교묘한 질문으로 하와에게 혼동을 일으켜서 그들이 선악과를 먹어도 죽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좋은 것을 감추고 계신다고 속였다.

 

 

넷째날(수) 1월 6일

타락 2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창 3:6).

 

  아담과 하와의 창조를 결심하셨을 때 하나님은 그들이 그분의 형상을 따라 지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분을 닮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창 1:26). 금지된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말은 유혹자의 바늘에 꿰어 놓은 미끼였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과 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그분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유혹에 휩쓸려 그들은 그 중요한 사실을 잊고 말았다.

  더구나 하나님은 원래 그들의 양식 공급자이셨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범위 밖에서 먹을 것을 선택하는 반역을 범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의 초대를 받아서 그 집의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먹는 대신 자기 마음대로 찬장이나 냉장고를 뒤져서 먹는 것과 같다. 그런 행동은 집주인에 대한 모욕일 뿐 아니라 그와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1. 창 3:4~7을 읽어 보라. 유혹자는 하와에게 그 열매를 먹으면 눈이 밝아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눈이 밝아지자 무엇이 보였는가? 새로운 시선은 무엇을 상징했는가?

[창3:4~7]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답: 그들이 벌거벗은 것을 알았다. 

 

  하와는 자신의 감각에 압도당했다(창 6:3). 그 나무는 아름다웠다. 그래서 하와는 그 열매를 한 입 베어 물면서 더 높은 경지에 이르리라 상상했다. 아담도 그녀의 경험에 동참하였다. 그들의 눈이 열렸다(7절). 그러나 보이는 것들로 인해 당황하게 되었다.

  여기서 핵심적인 문제는 인간이 모든 좋은 것의 공급자이신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신의 필요(이 경우에는 식욕)를 위해 인간이 만든 해결책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그들에게 양식을 보장하셨고 메뉴를 제공하셨다.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먹은 행위는 하나님이 마련하신 계획 밖으로 이탈하는 것이었으며 하나님에 대한 신뢰심의 결여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부가설명> 뱀은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눈이 밝아졌을 때 자신들이 벌거벗은 것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뱀이 한 말 눈이 밝아진다는 것이 사실을 말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벌거벗은 것은 2:25에도 나오는 말이다. 그런데 그들이 부끄러워 아니 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벌거벗을 것을 알고 치마를 두른 것을 보면 부끄러운 줄 알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벌거벗었다는 말은 생명을 잃었다는 뜻이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빛의 옷을 입히셨는데(시8:5, 부조 45, 56) 빛은 사람의 생명이라고 성경이 가르친다.(요1:4) 그러므로 빛이 사라지고 벌거벗은 상태로 된 것은 생명이 떠났다는 증거였다. 그들은 하나님과 같이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영생의 생명을 잃어버린 것이다. 사단이 노린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들을 대할 것인가 그는 흥미를 가지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았을 것이다. 루시퍼 자신이 하나님과 같다고 주장했을 때 그는 하늘에서 있을 곳을 잃었다. 이제 아담부부도 땅에서 있을 곳을 잃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계속 생명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일을 발표하신다.

 

교훈: 아담과 하와가 우리의 공급자이신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분의 계획 밖에서 스스로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해결책을 찾은 것은 반역이었다.

 

 

다섯째날(목) 1월 7일

죄의 결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우리는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 나무에서 벌어진 사건이 미친 피해가 얼마나 큰지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 주간에 만드신 모든 것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세우신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숨고, 아담이 하와에게 책임을 돌리며, 뱀이 인간의 원수가 되고,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며 인간이 땀을 흘려야만 양식을 내주게 되면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인간과 환경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

 

1. 창 3:10~19을 읽어 보라. 아담과 하와의 핑계로 미뤄보건대 이미 그들이 죄로부터 받은 영향은 얼마나 심각했는가?

[창3:10~19]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답: 책임을 회피하고 다른데 책임을 돌리는 성질을 나타내었다. 

 

  하나님이 이러한 핑계를 어떻게 다루시는지 주목하라.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구원하시기 전에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들에 대하여 책임을 인정해야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저지른 행위의 결과를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먼저 뱀은 저주를 받고 흙을 먹고 살며 여인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고 머리에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었다(창 3:14~15).

  그다음 여호와께서는 하와가 해산의 큰 고통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창 3:16). 반면 아담은 왕으로 살기보다는 양식을 얻기 위해 땀으로 수고해야했다(창 3:17~19).

  여기서 아담과 하와는 반역의 길로 계속 나아갈지 아니면 하나님께 돌아올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그들의 과오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께 돌아오는 첫걸음이었으나 그것만으로는 죄가 인류에게 야기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불충분했다.

  인류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자를 예표하는 동물 제사를 마련하셨다(창 3:21).

  뱀은 인류에게 죄와 상실, 관계의 파손을 가져왔지만 양은 회복과 화해와 미래를 약속하실 구원자를 가리켰다(창 3:15 참고).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섭정왕으로 지구를 다스리기보다는 이제 땅에 의존하고 서로에게 의지해야 했다. “아담은 그보다 못한 피조물들 중에서 왕이었으며, 그가 하나님께 충성하는 동안 온 천연계는 그의 통치를 인정했다. 그러나 그가 범죄하자 이 통치권은 박탈되었다”(교육, 26).

 

<부가설명> 아담부부는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자신들에게서 떠난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벌거벗은 몸이 보이지 않았는데, 그것이 보이는 것은 빛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빛이 바로 생명의 빛이었다. 그들은 두려웠다. 생명이 없어진 것이 무엇인지 느끼게 된 것이다. 이제 그들은 존재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처음부터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전3:11) 그들은 생명을 얻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무화과 잎으로 옷을 해 입었고 죽기를 무서워하여 숨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소망을 주셨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황송한 말씀을 들은 것이다. 여자의 후손이라는 번역을 직역하면 ‘여자의 씨’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생명의 씨를 남자에게만 주셨다. 여자는 이 씨를 받아 기르는 돕는 배필이었다. 또 여자 자신도 남자에게서 났다. 남자가 없으면 여자는 없다. 여자의 신체와 생명(생기)은 남자인 아담으로부터 받았다.(고전11:8) 그러므로 여자에게는 생명을 줄 씨가 없다. 그런데 창조주께서 여자의 씨로 사람이 태어나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셨다. 남자인 아담에게 준 생명의 씨는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때 그 씨 자체가 죽은 씨가 되었다. ‘썩어질 씨’(벧전1:23)가 되었다. 그에게서 출생하는 사람은 다 썩어질 씨로 태어난다. 그래서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들이 된다.(엡4:22) 그러므로 남자의 씨로 오는 사람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수 없다. 이미 뱀에게 물려서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죽은 자로 태어나기 때문이다.(고전15:22) 그래서 남자의 씨와 상관없는 한 생명의 씨가 사람으로 와서 아담을 대신해야 하기 때문에 여자의 씨로 온다고 하신 것이다. 아담은 이것을 믿었다. 그 믿음을 자기 아내 이름을 짓는 것으로 고백했다. 이때 비로소 아담이 자기 아내 이름을 ‘하와’라고 지었다. 그것은 ‘생명’이라는 뜻이다. 자기는 사망이 되었지만 이 여자를 통하여 생명이 온다는 것을 믿는 믿음을 고백한 이름이다. 이 고백을 따라 어떻게 여자의 씨를 통하여 생명이 회복되는 지 보여주신 것이 가죽옷을 입힌 것이다. 여자의 씨가 이렇게 피를 흘려 죽어서 아담의 죽음을 대신하고 부활하여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드러내므로 뱀의 머리를 상할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우리는 이 의미를 바르게 깨닫고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할 것이다. 

 

교훈: 죄는 인류에게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구원자를 약속하셨으며 그를 예표하기 위해 동물 제사를 마련하셨다.

 

 

여섯째날(금) 1월 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비록 우리는 에덴과 본래의 창조 질서에서 멀어졌지만 세상에는 아직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말해 주는 것들이 많다. 주변을 둘러보면 황홀한 아름다움뿐 아니라 뛰어난 설계를 찾아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창조주의 사랑을 증언한다. 예를 들어 사과, 오렌지, 귤, 딸기, 블루베리, 아보카도, 토마토, 레몬, 라임, 수박, 아몬드, 피칸, 배, 자두, 당근, 케일, 방울양배추, 양파, 산딸기, 체리, 셀러리, 파파야, 가지, 대황, 시금치, 멜론 등을 생각해 보라. (어떤 사람은 방울양배추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모든 것들이 그토록 맛있고 건강에 좋은 것이 그냥 우연일까? 그것들이 우연히 흙에서 자라 씨를 맺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그러나 모두가 이런 풍성함을 누리지는 못한다. 세상에는 홍수와 기근과 전염병이 발생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굶주린다. 이것은 세상이 죄로 인해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됐는지 증언한다. 그러나 우리가 잠시라도 창조 세계가 입은 피해를 가리고 그 자체만을 볼 수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증거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소망이 창조 세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안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인류는 죽도록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죽음은 인류가 절대 경험하지 말아야 할 비정상적인 현상입니다. 우리 모두가 죽음에 대하여 느끼는 혐오감은 우리가 에덴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들의 자취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모든 영생의 약속들에 대해 묵상해 보십시오. 그 말씀들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사별의 고통을 해결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잠시 잠을 자다가 예수님 재림하시는 아침에 불멸의 몸과 생명으로 부활할 것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희망이 넘치는가! 

 

➋그대는 창조 세계의 어떤 영역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우리를 위한 그분의 사랑을 깨닫습니까?

※ 천연계의 모든 피조물을 볼 때마다 깨닫는다.

 

➌아담과 하와가 자신들의 죄를 어떻게 정당화했는지 창세기 3장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왜 이렇게 되기가 쉬울까요? 우리도 어떤 방법으로 그 같은 일을 시도하려고 합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다른 사람이나 유전과 환경을 탓하지 않고 우리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인정할 수 있을까요?

※ 우리 모두는 창조주 앞에서 동등하고 아담 안에서 죽은 사실도 동등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당연히 인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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