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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언약(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1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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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5-12-04 16:50 조회8,3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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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14분

 

기억절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렘 31:31).

 

연구 범위 : 창 9:1~17, 창 12:1~3, 갈 3:6~9, 갈 3:15~18, 출 24장, 렘 31:31~34, 고전 11:24~26

 

성경은 ‘언약(covenants)’을 복수 형태로 언급한다(롬 9:4, 갈 4:24 참고). 그러나 세상에는 단 하나의 언약, 즉 은혜의 언약만이 존재한다. 하나님은 그 언약을 통해서 믿음으로 구원을 요청하는 타락한 인류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신다. ‘언약’이 복수 형태로 제시되었던 이유는 다양한 시대와 환경 속에 살았던 백성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이 언약의 본질을 여러 방식으로 재천명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담 언약(창 3:15)이든, 아브라함 언약(창 12:1~3, 갈 3:6~9)이든, 시내 언약(출 20:2)이든, 다윗 언약(겔 37:24~27)이든, 새 언약(렘 31:31~33)이든 개념은 동일하다. 구원은 공로가 없고 합당치 않은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리고 그러한 선물에 대한(어떤 의미에서 거래를 수용하기 위한) 인간의 반응은 믿음과 순종이다.

새 언약은 예레미야가 이스라엘 포로들의 귀환과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푸실 복을 예언하는 과정에서 최초로 언급된다. 재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은 고집스러운 그분의 백성에게 회복과 소망의 기회를 주신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언약의 갱신과 궁극적인 언약의 갱신인 새 언약에 대해 살펴본다.

➋ 느끼기 :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통해 무조건적인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다.

➌ 행하기 : 구원의 은혜를 약속하는 영원한 무지개 언약 아래서 순종하는 생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다.

 

A. 

❷ 하나님이 노아, 아브라함과 그리고 시내산에서 맺으신 언약들은 어떤 특징들이 있습니까?

※ 보편적인 언약이면서 영원한 언약을 표상하는 언약이라고 할 수 있다. 

❸ 새 언약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에 대하여 우리에게 어떤 중요한 사실을 말해줍니까?

※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성취되는 것을 말해준다.

❹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에 반응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 예수를 믿고 거듭나면 된다. 

 

B. 

❶ 약속을 잘 지키려면 어떤 생각과 노력이 필요합니까?

※ 약속을 기억해야 하고 약속한 것을 이행하면 된다. 

❷ 시내 언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❸ 새 언약에서 하나님의 법은 어떻게 우리의 마음에 기록되며 그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예수께서 우리의 생명이 되는 것을 뜻한다. 금요일 핵심적 토의의 답을 읽어보라.

❹ 우리는 새 언약 아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율법 그리고 믿음과 행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 새 언약은 예수께서 성취하신 구원, 곧 사망을 폐하시고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낸 것인데 우리가 이것을 믿음으로 우리의 사망은 예수 안에서 폐한 바 되고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도 예수 안에서 부활하여 부활의 생명을 얻으면 그 생명이 우리 안에서 작용하는 것이 율법이 이루어지는 삶으로 나나타는 것이다.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결론 : 새 언약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최종적으로 표현될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재확증했습니다. 다양한 각도로 제시된 하나님의 언약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의와 구원을 제공합니다.

 

 

첫째날(일) 온 인류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

12월 6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창 9:13).

 

우리는 오늘날 세상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즉 그 안에 얼마나 죄가 가득한지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직도 우리를 참아 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온 세상을 홍수로 멸망시키셔야 했을 때 세상이 얼마나 타락했을지 상상만 해 볼 따름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당신의 계명을 생애의 법칙으로 주셨으나, 그분의 율법은 범해졌으며 그 결과 생각해 낼 수 있는 온갖 죄가 나타났다. 사람들의 사악함은 공공연하고 담대하였으며, 공의는 땅에 짓밟힌바 되고, 압제받는 자들의 부르짖음은 하늘에 상달되었다”(부조와 선지자, 91).

 

1. 창 9:1~17을 읽어 보라. 하나님은 인류와 어떤 언약을 맺으셨는가? 이는 피조물에 대한 그분의 은혜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

[창9:1~17]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3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 채 먹지 말 것이니라 5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8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한 아들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9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10 너희와 함께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답: 무지개 언약을 맺으셨다.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망하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언약이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설명하신 언약은 성경 언약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 그것은 모든 인류와 맺은 언약이며 심지어 동물들과 천연계도 포함한다(창 9:12). 그것은 또한 한쪽으로 치우친 약조였다. 하나님은 언약을 맺고자 하는 당사자들에게 어떤 요구조건도 부과하지 않으셨다.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는 것이 전부이다. 다른 언약과 같지 않게 아무 조건이 없었다.

그다음 하나님은 가시적인 신호를 보내 그분의 언약에 인을 치셨다. 무지개는 세상이 다시는 홍수로 멸망하지 않으리라는 언약을 상징한다. 그래서 우리가 무지개를 볼 때마다 여기서 그것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이 고대의 언약을 증언한다. (인류가 세계적인 홍수로 멸망했다면 무지개를 볼 수 없었을 것이 아닌가!) 지구상에서 끝없이 벌어지는 죄악 중에서도 때때로 우리는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인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 무지개를 바라볼 때, 우리는 단지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참혹한 지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기별임을 알기 때문에 소망을 얻는다.

 

<부가설명>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사람과 맺는 언약은 대체적으로 일방적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이고 사람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받아들이면 되는 언약이다. 히브리어로 ‘베리트’라고 한다. 이것을 쪼갠다, 자른다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언약을 맺을 때 짐승을 머리로부터 꼬리까지 한중간을 잘라서 벌려놓고 그 사이로 사람이 지나가는 형식에서 온 말일 것이다. “송아지를 둘에 쪼개고 그 두 사이로 지나서 내 앞에 언약을 세우고 그 말을 실행치 아니하여 내 언약을 범한 너희를”(렘34:18)이라는 말씀은 언약이 어떻게 맺어졌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그런데 무지개 언약은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그냥 발표하셨다.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지킬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으면 된다. 신약성경에서 언약은 ‘디아데케’이다. 이것도 일방적 언역을 나타내는 말이다. 상방 언약은 ‘순데케’라고 한다. 그래서 히브리서에는 이 말을 ‘유언’이라고 번역했다.(히9:16,17) 유언이라는 번역은 ‘디아데케’ 언약을 아주 잘 이해하게 하는 번역이다. 유언은 유언하는 사람의 일방적 통고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자녀들에게 재산분배에 대해 유언하면 그냥 집행하는 것이지 자녀들이 어떤 조건을 이행하면 유언대로 해라는 조항이 없는 한 유언은 조건 없이 자녀들에게 집행된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 언약은 인간들에게 조건이 없다. 예수께서 조건을 다 이루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진정으로 예수를 믿으면 되는 것이다. 아멘.

 

교훈 : 홍수 이후에 하나님이 노아와 맺은 언약은 온 인류와 지구의 모든 피조물을 포함하며, 무지개 상징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와 사랑을 나타낸다.

 

 

둘째날(월)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

12월 7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 3:6~7, 9).

 

1. 창 12:1~3, 15:1~5, 17:1~14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음으로 무엇을 이루려고 계획하셨는가?

[창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창15:1~5]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17:1~14]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4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답: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그 자손으로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 자손은 예수님이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은혜의 언약은 구원의 역사 전 과정의 토대가 되었다. 구원의 계획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바울이 아브라함 언약을 사용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2. 갈 3:6~9, 15~18을 읽어 보라. 바울은 아브라함 언약을 어떻게 예수님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연결시키는가?

[갈3:6~9, 15~18]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5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답: 아브라함과 하신 언약은 그의 자손인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사실을 예표(豫表)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아브라함의 자손, 즉 그의 많은 후손이 아닌 오직 한 후손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은 온 세상에 복을 주시고자 하셨다(갈 3:16 참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자들은(갈 3:29) 모두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됨을 깨달을 것이었다. 그 옛날에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갈 3:6). 아브라함도 십자가의 강도와 마찬가지로, 행함으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었다. 구원은 언제나 그랬듯이 오직 그것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이르러온다. 아브라함은 언약의 목적을 성취했다. 그의 순종은 구원의 약속을 붙든 믿음을 드러냈다. 그의 행위는 그를 의롭게 하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그가 이미 의롭게 됐음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행위가 어떻게 믿음의 생애를 통해 표현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언약의 본질이다(롬 4:1~3 참고).

 

<부가설명> 하나님의 언약은 일방적이다. 하나님께서 해 주시겠다고 하신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사망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와 의논하지 않고 생명으로 회복하시겠다고 발표하셨다. 여자의 후손을 보내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아담이 그것을 믿었을 때 그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다. 너희가 믿겠다고 하면 내가 구주를 보내겠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믿음이 요구되는 것이다. 믿지 않아도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신다. 다만 믿지 않는 사람은 그 언약이 자기에게 적용되지 않을 뿐이다. 

  야고보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만 아니고 행함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하였다.(약2:21~24) 그래서 야고보서는 행함을 강조하고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를 가르친다고 오해한다. 야고보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야고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야고보는 말한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이 문장을 잘 읽어보라. 이것은 살았는가 죽었는가를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죽은 자는 행함이 없다. 그러나 산 자는 행함이 있는 것이다. 야고보는 생명이 있는가, 없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 있는 자가 생활한다. 생활은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과 그 말씀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 생명을 받았는가?

 

교훈 :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이 받을 구원을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은 은혜에 대한 반응이 순종임을 보여주었다.

 

 

셋째날(화) 시내 언약

12월 8일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 24:3, 7).

 

1.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어떻게 언약이 맺어졌는가?(출 24장)

[출24:(1~18)3~11]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십이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6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7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9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10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11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너로 그들을 가르치려고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답: 모세가 언약의 말씀을 발표할 때 그들이 다 준행하겠다고 대답했고 희생의 언약을 기록한 언약서를 읽었을 때에도 준행하겠다고 그때 피를 뿌려서 언약을 체결하였다. 

 

모세와 몇 명의 지도자들은 시내산을 향해 갔다. 그 중에는 제사장들을 대표하는 아론과 그의 두 아들도 있었고 민족 전체를 대표하는 70인 장로와 지도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모세와 동행하던 그들은 멀찌감치 길을 멈춰야 했다. 모세만이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곳에 오르도록 허용되었다.

모세는 나중에 돌아와서 민족 전체와의 언약을 확증했다. 모세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말씀을 선포하자 이스라엘 민족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 24:3).

 

2. 히 4:2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실패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동일한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히4:2]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답: 모세를 통하여 주신 말씀을 듣는 자들이 믿음으로 그 말씀과 화합하지 않았다. 우리도 듣는 말씀을 믿음으로 화합하지 않으면 동일한 실패에 이를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약속을 붙잡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충성으로 나타나는 순종을 실현할 수 있다. 율법에 대한 순종은 우리 시대와 마찬가지로 모세의 시대에도 영원한 율법과 전혀 모순되지 않았다. 바울의 서신을 읽는 사람들이 쉽게 율법과 언약에 대해 잘못된 관념을 갖게 되는 이유는 유대화를 주장하는 반대자들을 다뤄야 했던 바울 서신들의 기록 배경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율법과 율법에 대한 순종을 신앙의 중심으로 삼고자 했지만, 반대로 바울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중심 요소로 삼길 원했다.

 

<부가설명> 시내산에 채결한 언약은 그 시작점이 출애굽기 19장에 있다. 5, 6절에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고 하셨고 8절에서 백성들이 일제히 대답하기를 “우리가 다 행하 리이다.”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산으로 부르시고 20장의 십계명을 백성들이 다 듣도록 친히 말씀을 반포하셨다. 그리고 24장에서 언약을 체결하는데 그때도 백성들을 ‘우리가 다 준행 하리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19:4을 보면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고 하셔서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는 것을 먼저 알려주신다. 그러므로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셨을 때 백성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분도 여호와시오, 홍해를 건너게 하신분도 여호와시며 광야에서 만나를 주신분도 여호와이시오니 우리가 능히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도록 해 주옵소서. 그러면 우리가 지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했어야 옳았다. 성경은 말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7)이라고 단언한다. 사람은 소위 말하는 자연인의 상태로 율법을 준행해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 존재하게 하는 것이 안 된다. 물론 법에 굴복하지도 않는데 이유는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 상태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는 것이다. 바울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빌3:6)라고 했고,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한다.’고 했다. 그가 율법을 다 지켰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를 의롭게 하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왜 그럴까? 오늘 교과는 마치 사람이 스스로 율법을 지키면 의롭게 되는 것처럼 오해할 소지가 있게 말한 것 같이 보인다. 다만 하나님을 믿지 않고는 율법을 지킬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 자신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했다. 율법을 흠 없이 완전히 지켜도 그것이 의롭게 하지 않는다. 이유를 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의는 하나님의 의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드러내신 생명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을 흠 없이 완벽히 지켜도 그것이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게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오직 믿음으로 이 생명을 얻는 것이다. 요3:16이 이것을 가르치고 1:12,13도 이것을 가르친다. 우리는 오해하지 않아야 한다. 영원한 생명이 없는 자가 도덕적 능력으로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지킬지라도 그것이 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것을 예수 안에서만 얻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믿는 믿음이다. 출애굽기 언약의 성취는 예수 안에서 비로소 이루어졌다. 계시록 1;5,6과 5:10을 읽어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생명의 도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행7:38 참고)

 

교훈 :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은 스스로 율법을 준행하리라 다짐했지만 율법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했다.

 

 

넷째날(수) 새 언약 1

12월 9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렘 31:31).

 

1. 렘 31:31~34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그 당시와 오늘날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렘31:31~3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답: 애굽에서 나올 때 체결한 언약은 백성들이 파하였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새 언약을 맺으셔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있게 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예레미야는 백성들이 아직 극한 시련을 겪지 않았을 때에 이것을 말했다. 바벨론의 침입이 코앞에 닥쳤고 유다는 패망의 위기에 있었다. 그럼에도 여호와는 다른 곳에서처럼 그들에게 이것이 완전한 끝이 아니며,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번영을 누릴 기회를 다시 얻게 될 것이라는 약속과 소망을 주셨다.

성경에서 ‘새 언약’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할 것이며 그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는 문맥 속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시내 언약의 파기가 그들을 포로로 이끌었듯이 (렘 31:32) 이 언약의 재체결은 그들과 미래의 소망을 보존해 줄 것이었다. 시내 언약처럼 새 언약도 관계적일 것이었다. 그것은 동일한 율법 즉 십계명을 포함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돌비에 새겨지지 않고 율법을 언제나 떠올려야 할 그들의 심령과 마음에 새겨질 것이었다.

“돌판에 새겨진 같은 율법이 성령에 의하여 마음판에 기록된다. 자신의 의로움을 세우려 하는 대신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인다. 그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속하고 그분의 순종이 우리를 위해 수용된다. 그러면 성령으로 새롭게 된 심령은 ‘성령의 열매들’을 맺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 마음에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생애를 살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의 임재로서 우리는 그분께서 행하셨던 것처럼 행할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372).

새 언약 아래서 그들의 죄는 사함을 받고 그들은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그들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통해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할 것이다. 그림자와 상징으로 주어진 옛 언약에서나 실체로 제시된 새 언약에서나 구원은 언제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제공되었고 믿음은 ‘성령의 열매’를 드러냈다.

 

<부가설명> 새 언약이나 시내산 언약이나 하나님의 의도는 동일하다.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원했다면 그때 새 언약용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백성들이 스스로 준행하겠다고 대답했기 때문에 그들이 준행하는지 보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철저히 실패한 상태로 드러났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 언약이 얼마나 실패하게 되었는지를 밝히 보여주는 역사이다. 새 언약은 생명의 언약이다. 예수께서 사망을 폐하시고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드러내셔서, 하나님의 율법이 준행되는 것은 곧 영생의 생명으로 이루어지는 생명작용의 상태라는 것을 확실히 드러내시고 누구든지 예수를 믿음으로 예수 안에서 이 생명을 얻을 때 준행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을 얻지 못하면 스스로 계명을 완벽하게 지켜도 그것은 의가 되지 않는다. 이유는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기 때문이다. 부활하심으로 드러낸 영생의 생명이기 때문이다.(롬4:17~25 참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망을 폐하시고 부활하셔서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드러내셨다. 이것이 복음이다.(딤후1:9,10) 하나님의 계명을 준행하는 것은 예수를 믿을 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고 예수께서 우리의 생명이 되심으로 그 생명이 내 안에서 작용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간단하게 생명작용인 것이다. 예수 안에서 이 생명을 얻지 못하면 아담 안에서 죽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아무리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도 그것은 사망 작용일 뿐이다. 이 생명을 예수를 믿고 물과 성령을 거듭날 때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서 얻는 것이다. 우리는 이 복음의 도리를 깨달아야 한다.

 

교훈 : 옛 언약이나 새 언약 모두 동일한 하나님의 율법을 포함한다. 그러나 새 언약에서 하나님의 법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과 심령에 새겨진다.

 

 

다섯째날(목) 새 언약 2

12월 10일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4~26).

 

새 언약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은 이중으로 적용된다(렘 31:31~34). 첫째로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이킬 것이며 그분이 그들을 고향으로 인도하시리라고 언급한다. 둘째로 그것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언급한다. 그분의 죽음은 그 언약을 승인했으며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켰다. 우리는 새 언약 안에서 구원의 계획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이전에 그림자와 표상으로만 계시되었다(히 10:1).

 

1. 눅 22:20과 고전 11:24~26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은 예레미야의 예언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눅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고전11:24~26]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답: 예수께서 마지막 만찬에서 새 언약을 기념하도록 만찬예식을 제정하셨는데 그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속죄를 하시고 부활하시고 재림하실 때까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새 언약 안에 있게 되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직접 성취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상한 몸과 피 흘림은 구약성경에서 유월절 양의 희생을 통해 계시되었다. 신약성경에서 포도즙은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한다. 예수님의 사역은 신약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그것은 구약시대를 포괄한다. 우리는 성만찬 예식에서 예수님이 구속의 역사를 통해 이루신 모든 것을 결합시키는 연결고리를 볼 수 있다.

따라서 떡과 잔은 구원의 역사를 가장 단편적으로 요약한다. 비록 그것들이 상징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그 상징들을 통해 우리를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업적들을 이해할 수 있다.

성만찬 예식은 그리스도의 죽음뿐 아니라 그분의 재림을 가리킨다. 재림이 없다면 그분의 죽음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무덤에서 부활할지라도 그분의 재림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초림이 무슨 소용이겠는가?(살전 4:16, 고전 15:12~18)

예수님이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마 26:29)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그러한 연결 고리를 만드셨다. 물론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초림의 궁극적 성취는 오직 재림을 통해서만 나타난다.

 

<부가설명> 새 언약은 인간이 율법을 준행해서가 아니라 삼위 하나님 사이에서 인간을 위하여 인간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법을 성취하는 것을 가리킨다.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에게 제시된 것은 인간이 스스로 이룰 수 없다. 이유는 인간은 생명 있는 존재가 아니라 아담 안에서 죽은 존재이기 때문이다.(고전15:22) 죽은 자는 사망이 작용하여 부패하게 된다. 아무리 선을 행하고 율법을 지킨다고 해도 그것은 부패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들이다.(엡4:22) 아담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다 썩어질 씨로 태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에(벧전1:23) 썩을 수밖에 없다. 오직 예수님께서 사망 자체를 처리하시고 부활하셔서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드러내셔서 그분 안에서 이 생명을 얻어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의 생명, 곧 예수님이 친히 사람의 생명이 되지 않으면 그는 생명이 없는 존재이다.(요일5:12) 새 언약은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아담 안에서 죽은 모든 아담의 후손의 생명이 되신다는 것을 가리키고 이 생명을 얻을 때 이 생명작용으로 하나님의 법을 지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생명의 도리를 깨달아야 한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다고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요5:24) 이 복음을 올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새 언약의 진짜 내용이다. 이 생명은 예수를 믿고 거듭남으로 얻는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산 소망이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벧전1:3)

 

교훈 : 구약의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을 통해 구원의 계획이 계시되었던 것처럼 새 언약 아래서 성만찬 예식은 예수님의 죽음뿐 아니라 재림까지 상기시킨다.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12월 11일

 

알다시피 성경은 무지개가 세상을 다시 물로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의 상징이라고 가르친다. 과학 덕분에 우리는 이제 빛이 작은 물 입자에 굴절되고 반사되면서 여러 각도로 분산될 때 무지개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빛이 빗방울에 진입하면 일부는 다른 점으로 반사되고 일부는 또 다른 점으로 통과한다. 그때 우리가 볼 수 있는 빛이 발생한다. 시인 존 키츠는 과학이 ‘무지개’를 분해할까봐 우려했다. 설령 우리가 무지개를 분석하고 측량하며 예견하고 각 광자의 내부 구조와 각 쿼크의 이면까지 모든 것을 수량화할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이 언약의 상징을 창조하시기 위해 사용하였던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는 것 이상의 무엇을 더 증명할 수 있겠는가? 과학은 언젠가 무지개가 생기는 과정을 소수점 이하 25자리까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절대 그것이 왜 창조되었는지는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유를 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그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햇빛과 물안개가 어우러지면, 안개가 다른 각도로 빛을 굴절시키고 반사시켜 일정 대역의 전자파를 발생시킨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눈에 이를 때에 우리의 뇌 속에는 그것이 무지개 형상으로 보인다. 과학은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인류가 다시는 세상을 물로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그분의 언약을 기억할 수 있도록 그것을 만드셨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이 외에 성경에는 계시되어 있지만 과학은 절대 알지 못하는 중대한 진리들은 무엇입니까? 그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들을 과학이 절대 밝혀낼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들이 무엇인지 말해 보십시오.

※ 사망과 생명이다. 이것은 과학이 올바르게 밝힐 수 없다. 생명은 하나님이시고 사망은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떠난 것이기 때문이다.

 

➋ 구원의 계획 속에서 믿음과 행위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토의해 보십시오. 믿음과 행위의 역할은 각각 무엇이며 그것들은 우리의 신앙생활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습니까?

※ 믿음으로 예수님이 믿는 자의 생명이 되고 이 생명은 당연히 행위를 만든다. 그것은 생명작용이다. 행위가 없는 것은 생명이 없다는 것을 드러낸다. 

 

➌ 하나님의 법이 우리의 심령 속에 새겨진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런 개념은 새 언약 아래에서도 율법이 항구적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보여줍니까?

※ 하나님의 법이 우리의 심령 속에 새겨진다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 생명이 영생의 생명이기 때문에 이 생명이 있는 한 하나님의 법은 당연히 생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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