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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갈등과 위기의 사사 시대(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1/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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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6-01-16 09:32 조회8,6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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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3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45분

 

기억절: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삼상 2:1).

 

연구 범위: 삿 4, 6, 14장, 히 11:32, 삼상 2:12~25, 삼상 8:1~7

 

  사사시대는 성경의 역사에서 혼돈의 기간이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분의 백성들은 악을 행하였다. 그분은 압제자의 손에 그들을 넘기셨다. 백성들이 그분께 부르짖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는 그 땅에 평화를 가져다 줄 구원자를 일으키셨다. 그런데 그같은 형태의 불행한 과정은 되풀이되었다.

  이스라엘의 사사들 중에서 드보라는 주변의 남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는 확신으로 충만했던 사사였다. 그녀와 야엘은 믿음이 부족하고 소심한 남자들에게 용기를 주어야 했던 시대의 여걸이었다. 이 같은 대쟁투의 주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극복하기 어려운 곤경에 처했던 기드온 시대의 이야기에서도 반복된다.

  삼손은 최후의 사사 중 한 명이다. 그 이후에 이스라엘은 통제 불능과 절망에 빠졌다. 그는 하나님을 따르기보다 여인을 뒤쫓는데 관심이 많아서 여호와를 섬기기보다 우상숭배에 관심이 많았던 동족과 다를 바 없는 마뜩찮은 영웅이었다.

  사무엘은 민족에게 희망을 가져왔다. 그의 지도하에서 국왕을 가진 새로운 지도체계가 수립되었고 그의 마지막 임무 중 하나는 미래의 왕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것이었다.

 

※ 학습 목표

➊깨닫기 : 하나님이 억압받는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사용하신 방법을 이해한다.

➋느끼기 :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➌행하기 :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구원 안에서 기뻐한다

 

A. 

❷하나님이 사사를 세우셨던 시대는 어떤 시기였습니까?

※ 이스라엘이 국가로 견고하기 전 여명기로서 상당히 혼란한 시대였다.

❸사사로 부름을 받은 인물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었다. 기드온의 예를 보면 겸손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다. 

❹우리가 위기의 시대에 영적으로 승리하기 위해서 사사들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위기일수록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는 진리이다. 

 

B. 

❷사사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여성을 어떻게 사용하셨습니까?

※ 여성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셨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합당하다고 여기신 것이다.

❸이스라엘의 사사 중에서 기드온과 삼손은 어떤 면에서 매우 대조적인 인물입니까?

※ 삼손은 자기 능력을 좀 과신했고 기드온은 자기를 작게 여겨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다. 

❹지금 우리가 겸손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싸워야 할 영적 싸움은 무엇입니까?

※ 진리를 바르게 깨달아 진리를 따라 바른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결론: 사사기는 하나님이 도움을 간구하는 인간에게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칩니다. 이런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은 스스로 구원을 필요로 하는 겸손한 남녀를 사용하십니다. 그야말로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첫째날(일) 1월 17일

드보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삿 4:9).

 

  드보라 이야기는 대쟁투의 주제에 흥미롭고 상세한 면을 더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압제로 고통을 받고 극복하기 어려운 곤경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은 일곱 머리를 가진 용과 갓난아기 사이의 불공평한 대결이 펼쳐지는 계시록 12장의 장면과 유사하다(1과 목요일 참고).

  이야기의 핵심 인물은 가나안 왕 야빈, 그의 군대장관 시스라 그리고 그 당시 여인으로서는 비범한 권위와 영향력을 가졌던 선지자이자 사사(양측의 민사 분쟁을 해결하는 사람)였던 드보라였다.

 

1. 사사기 4장을 읽어 보라. 여기서 대쟁투의 주제는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가? 연약해 보였지만 결국 이스라엘에 승리를 가져온 한 사람은 누구인가?

[삿4:1~24] 에훗의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2 여호와께서 하솔에 도읍한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는데 그 군대 장관은 이방 하로셋에 거하는 시스라요 3 야빈 왕은 철병거 구백 승이 있어서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한 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4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5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6 드보라가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 이르시기를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7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8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 9 가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10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게데스로 부르니 일만 인이 그를 따라 올라가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 11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 12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오른 것을 혹이 시스라에게 고하매 13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병거 구백 승과 자기와 함께 있는 온 군사를 이방 하로셋에서부터 기손 강으로 모은지라 14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이에 바락이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15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한지라 16 바락이 그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이방 하로셋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남은 자가 없었더라 17 시스라가 도보로 도망하여 겐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하솔 왕 야빈은 겐 사람 헤벨의 집과 화평이 있음이라 18 야엘이 나가 시스라를 영접하며 그에게 말하되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매 그 장막에 들어가니 야엘이 이불로 덮으니라 19 시스라가 그에게 말하되 청하노니 내게 물을 조금 마시우라 내가 목이 마르도다 하매 젖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우고 그를 덮으니 20 그가 또 가로되 장막문에 섰다가 만일 사람이 와서 네게 묻기를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거든 너는 없다 하라 하고 21 그가 곤비하여 깊이 잠든지라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취하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 살쩍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시스라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22 바락이 시스라를 따를 때에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아 가로되 오라 내가 너의 찾는 사람을 네게 보이리라 바락이 그에게 들어가 보니 시스라가 죽어 누웠고 말뚝은 그 살쩍에 박혔더라 4:23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패하게 하신지라 24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이기어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답: 여 사사 드보라, 장군 바락, 시스라를 죽인 야엘 등이 승리를 이끌었다. (‘드보라’는 ‘꿀벌’이라는 뜻이고, ‘야엘’은 ‘들 염소’라는 뜻이다.

 

  이야기 속의 영웅은 헤벨의 아내 야엘이다. 그는 하나님 백성의 편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그분의 원수들을 무찌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그녀의 행위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는 목적이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그녀의 행위를 핑계 삼아 속임수와 폭력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전쟁 직전의 대화중에서 드보라는 바락에게 전쟁은 하나님의 것임을 확신시켰다.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실지를 묘사하기 위해 두 동사가 사용되었다(삿 4:7). 그분은 시스라를 기손 강으로 ‘끌어내실’(원어는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행위를 암시함) 것이다. 거기서 하나님은 시스라를 바락의 손에 ‘넘기실’ 것이다. 드보라가 부른 감사의 노래(삿 5장)는 더 구체적인 사실을 보여준다. 폭우로 인해 시스라의 병거는 기손 강 근처의 좁은 통로에서 교착상태에 빠졌다. 하늘과 구름이 물을 퍼붓고 산이 물을 쏟아내자(4~5절), 순식간에 홍수가 발생해서 수많은 적군이 쓸려갔고(21절),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았다.

 

<부가설명> 드보라와 바락이 시스라와 싸우는 것을 드보라는 별들의 전쟁으로 표현하고 있다.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삿5:20) 아마도 영화 ‘스타워즈’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주석가들은 이 구절이 어려운 구절이라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이것은 하늘에 있었던 전쟁의 모형인 것이 아닌가 한다. 하늘에서 루시퍼가 반란을 일으켰다. 별 삼분의 일이 그의 편에 가담하였다. 계시록 12장에는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그의 천사들과 전쟁한 사건이 계시적 상징으로 기록되어 있다. 바로 별들의 전쟁이다. 결과는 루시퍼의 패배이다. 하늘에서 별들이 ‘시스라’는 ‘전투 정렬’이라는 뜻이다. 루시퍼는 하늘에서 하나님과 전쟁하려고 그의 추종 천사들과 전투정렬을 한 것이다. 여자의 후손에게 멸망하였다. 시스라와의 전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은 두 여자이다. 드보라와 야빈이다. 교회가 루시퍼의 세력을 이길 것을 암시하는 예언적 표상이 되는 사건인 것 같다. 

 

  교훈: 하나님은 드보라를 통해 바락이 군대를 일으키게 하셨고 헤벨의 아내 야엘의 손으로 원수 시스라를 제거하심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둘째날(월) 1월 18일

기드온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시니”(삿 6:1).

 

1. 삿 6:1을 읽어 보라.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삿 6:10 참고)

[삿6:1,10]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 10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 너희의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답: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기 때문에 미디안에 정복당했다. 그들의 이방신을 숭배하는 악을 행한 것이다. 

 

  드보라 이후에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평화를 누리다가 다시 압제자들의 손에 넘어간다. 이번에는 미디안인들이 동맹군들과 함께 이스라엘로 쳐들어와 들판의 곡식들을 없애고 가축들을 빼앗아갔다(삿 6:3~5). 이스라엘은 극심한 빈곤 상태에 빠져 여호와께 부르짖었다(6~7절). 그들은 화려한 우상이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 삿 6:12~16을 읽어 보라. 여호와의 사자는 기드온에게 뭐라고 말했는가? 기드온은 그에게 어떻게 대답했는가? 그는 왜 이스라엘이 그런 곤경에 처했는지 몰랐던 것인가?(삿 6:7~10 참고)

[삿6:12~16]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14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15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답: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고 말했고, 기드온은 여호와가 함께 계시면 이런 고난이 왜 닥쳤는지 물었다. 또 자신은 이스라엘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대답했다. 그가 이스라엘에 닥친 환난의 이유를 몰랐다고 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불순종했기 때문에 압제를 받고 있었다. 따라서 기드온의 불평은 합당치 않았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기드온을 통해 그들을 다시 구원하시려고 한다. 흥미롭게도 하나님은 그를 “큰 용사”라고 부르셨다. 그러나 기드온은 자신에 대하여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삿 6:15)라고 평가했다. 기드온의 최고의 장점은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에 대한 자각이었다.

  삿 6:36~40에서 기드온이 여호와께 무엇을 구했는지 주목하라. 이스라엘이 처한 곤경과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할 수 있도록 특별한 이적을 청하였다. 그는 하나님께 철저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아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사사기 7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압제자들을 이긴 기드온의 놀라운 승리와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부가설명> ‘기드온’은 ‘벌목꾼, 또는 용사’라는 뜻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큰 용사여라고 불렀을 때 그 단어는 기드온과 다른 단어이지만 기드온의 이름에 근거해서 그를 그렇게 불렀을 것이며 또 그를 큰 용사로 사용하실 것을 암시하는 뜻으로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은 자기를 이스라엘 중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대답했다. 이런 그의 마음의 자세를 하나님께서 크게 보셨는지 모른다. 기드온은 자기의 연약을 확실히 인정했기 때문에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원했고 그의 그런 마음을 하나님께서 보증해주기를 원했다. 기드온이 요청한 표적들은 기드온의 이런 마음을 담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요청을 다 들어주셨다. 마침내 기드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확연히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못했다. 현실이 너무 크게 보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선대의 사람들이 후대에게 여호와 하나님 경배라는 바른 사상을 전달하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어쩌면 우리 시대 재림교회의 사정과 흡사하지 않을까? 아니면 후대가 배우기를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이런 모습은 우리 시대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교훈: 다시 압제로 고통 받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사사로 부름을 받은 기드온은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철저히 하나님께 의지함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셋째날(화) 1월 19일

삼손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삿 13:5).

 

  삼손의 이야기 속에서 선악 사이의 전선(戰線)은 모호해진다. 그의 생애는 날 때부터 나실인이 되어야 한다는 천사의 소식으로 시작해서 인상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 천사는 삼손의 부모에게 그들의 특별한 아이를 위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가르쳤다. 그의 어머니는 주정음료를 마시거나 금지된 음식을 먹지 말아야 했다(삿 13:4, 13~14, 레 11장 참고). 하나님은 진실로 삼손을 위해 특별한 계획을 세우셨다. 그러나 불행히도 모든 것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삼손은 성년이 된 바로 그때 곧 하나님께서 주신 그의 사명을 수행해야 할 때, 다시 말하면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그가 하나님께 충실해야 할 그때에 이스라엘의 원수들과 결합하였다. 삼손은 자기가 선택한 상대와 결합할 때에 하나님을 보다 더 영화롭게 할 수 있을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그의 생애를 통해 성취해야 할 목적을 이룰 수 없는 처지에 자신을 두게 되는 것이 아닌지를 물어 보지 않았다. 먼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지혜를 약속하셨으나 자신을 기쁘게 하려 하는 자들에게는 아무런 약속이 없다”(부조와 선지자, 563).

 

1. 삿 14:1~4을 읽어 보라. 하나님이 여자에게 약한 삼손의 특성을 ‘틈타서’ 블레셋을 치는 기회로 삼으신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삿14:1~4]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딸 중 한 여자를 보고 2 도로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 중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취하여 내 아내를 삼게 하소서 3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취하려 하느냐 삼손이 아비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를 데려오소서 하니 4 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관할한 고로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서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답: 삼손은 비록 자기 방법을 동원했지만 블레셋을 치는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가 나실인으로서 머리를 깎지 않은 것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것이다. 그가 그 언약에 머물러 있을 때에 여러 약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힘을 거두지 않으셨다. 

 

  삼손은 개인적인 모욕에 대해 분노하며 여러 방법으로 블레셋인들을 쳤다. 먼저 그는 빚을 갚기 위해 30명의 남자를 죽이고 그들의 옷을 벗겨 혼인 잔치에 가져왔다(삿 14:19). 그의 아내가 친구에게 넘겨지자 블레셋인들의 곡식을 불태웠다(14:20, 15:1~5). 그리고 그의 아내와 장인을 죽인 자들에 대한 앙갚음으로 많은 블레셋 사람을 죽였다(15:6~8).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 복수하려고 하자(15:9~10) 나귀의 턱뼈를 가지고 천 명을 죽였다(15:14~15).

   최종적으로 그는 자신의 눈을 멀게 한 원수를 갚기 위해 그들의 성전을 무너뜨리고 삼천 명을 죽였다(삿 16:21, 28, 30). 흠이 많은 영웅이라니. 비록 삼손이 히 11:32에서 추앙 받는 인물의 목록에 들었지만 그에게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분명 이 이야기에는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삼손을 통해서 무슨 일을 하실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보라. 우리는 어떤가? 우리가 우리의 잠재력에 맞게 산다면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겠는가?

 

<부가설명> 삼손 사건은 우리에게 엄청 용기를 주는 은혜의 기별을 가득히 담고 있다. 삼손은 출생 전에 출생과 나실인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것이 예정된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나실인으로서 자기 방법으로 블레셋을 칠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래도 그가 나실인으로서의 서약을 머리에 가지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신 것이다. 그에게서 능력을 거두지 않으셨다. 우리가 허물이 많고 실수가 많을지라도 예수 안에 있을 때 그의 은혜를 거두지 않으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다. 바울은 히브리서에서 삼손을 하나님의 일꾼 열전에 포함시켰다. 그가 실수 덩어리였지만 회개하고 그의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고 신전에 놀림을 받을 자리로 끌려나왔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삼손과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일꾼 열전에 포함되는 사람으로 인정하신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우리는 예수님을 붙들고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주 안에 있어야 할 것이다. 

 

  교훈: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사명을 위해 구별되었지만 그는 하나님보다는 원수와 연합하였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마침내 그를 통해 큰일을 행하셨다.

 

 

넷째날(수) 1월 20일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삿 1:16).

 

  룻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거대한 적군에 대해 말하기보다 씨가 마를 뻔 했던 한 가족의 생존이라는 사소한 사실에 대해 언급한다. 룻기는 파괴되고 있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와 위험에 처한 그의 백성이라는 두 가지 큰 주제를 포함하는 동시에 개인 차원에서 항상 벌어지고 있는 대쟁투에 대해서도 말한다.

  유다 지역은 사사시대 동안 가뭄을 겪었다(룻 1:1, 신 28:48, 32:24, 삿 17:6, 21:25 참고). 이것은 언약의 백성이 하나님을 저버렸다는 징조였다. 죄와 반역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메마른 토기 그릇같이 만들었다. 그러나 룻기를 보면 하나님은 그 땅에 찾아오셔서 생명력을 불어넣으심으로 그들에게 다시 “양식을 주셨다”(룻 1:6).

  엘리멜렉이 아내 나오미와 두 어린 아들을 데리고 모압으로 내려갔을 때는 미래를 내다보고 그랬던 것이다. 그러나 원수의 땅은 임시적인 피신처를 제공했을 뿐이었다. 남편과 두 아들이 죽자 나오미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했다.

 

1. 룻 1:8, 16~17을 읽어 보라. 나오미와 함께 가기를 원했던 룻의 결심에는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는가?

[룻1:8,16,17]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16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답: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하였다. 

 

  룻은 여러 번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고 했던 원수 국가의 백성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그들의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심했다. 게다가 그는 제2의 고향에서 은혜를 받았다. 보아스뿐 아니라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들도 그녀에게 친절했다(룻 2:10~11). 보아스는 그녀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고 있음을 확신하고(룻 2:21) 한층 더 그녀를 흠모하여 그녀와의 결혼에 동의한다(룻 3:10~11).

  하지만 그녀에게는 죽은 이의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더 가까운 친척이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아내를 더 두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의 재정 계획을 복잡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룻4:6). 그때 증인들은 룻을 축복하면서 그녀를 이스라엘 역사의 위대한 여인에 비유했다(룻 4:11~12). 그들의 축복은 그녀가 메시아의 선조가 됨으로 성취되었다(룻 4:13, 17, 마 1:5~6). 그러나 불행히도 행복하게 결말을 맺는 이야기가 성경 속에는 그렇게 많지 않다. 성경 밖의 이야기는 물론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룻기서에서 인생의 흥망성쇠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마침내 승리하는지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믿는 모든 자에게 기쁜 소식이다.

 

<부가설명> 4과는 선악간의 대쟁투의 역사적 사건을 취급하는 중에 사사기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드보라, 기드온, 삼손 등, 사사들의 활동이 선악의 대쟁투의 모형이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이스라엘 역사는 그 자체가 선악의 대쟁투의 모형이다. 이 기록들을 통하여 말세를 만난 우리가 마땅히 배울 교훈을 배워야 한다. 룻은 모압 여자이다. 모세를 모압 사람은 영원히 이스라엘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선언하였다.(신23:3) 그런데 모압 여자인 룻이 이스라엘 회중에 들어왔다.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보시는 것이 분명하다. 그가 혈통으로 모압인이었지만 시어머니 나오미의 감화로 라합처럼 마음이 이스라엘이 된 것이다. 그는 보아스를 만나서 다윗의 조상이 되고 예수님의 육신적 조상으로 족보에 이름을 올렸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백성 중에 있어도 개인적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릴 수 있는 사건이다. 

 

  교훈: 나오미는 원수의 땅에서 남편과 아들을 잃고 믿음의 며느리와 함께 고향에 돌아왔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방 여인 룻을 통해 구속의 계획을 이루셨다.

 

 

다섯째날(목) 1월 21일

사무엘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삼상 2:17).

 

1. 사무엘서의 서두는 대쟁투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창조 질서에 심각한 위험 요소는 없었고 국경에 거대한 군대의 대열도 없었다. 그러나 악의 공격은 실제보다 훨씬 교묘하다. 삼상 2:12~25을 읽어 보라. 이 안타까운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선과 악의 실상은 무엇인가?

[삼상2:12~25]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13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습관은 이러하니 곧 아무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14 그것으로 남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서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취하되 실로에서 무릇 그 곳에 온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 15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치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16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취하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18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 19 그 어미가 매년제를 드리러 그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20 엘리가 엘가나와 그 아내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드린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니 그들이 그 집으로 돌아가매 21 여호와께서 한나를 권고하사 그로 잉태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22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23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24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25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

 

답: 사단은 제사장 가정을 공략해서 엘리의 두 아들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엘리는 비록 온 백성을 다스리도록 임명을 받았으나 자기 가족들을 잘 다스리지 못하였다. 엘리는 아이들을 너무 귀여워하는 아버지였다. 평화와 안일을 사랑하는 그는 자녀들의 악한 습관과 정욕을 시정하는 데 자기의 권위를 행사하지 않았다. 그는 자녀들을 나무라거나 벌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뜻에 굴복하여 그들이 마음대로 하도록 방임하였다”(부조와 선지자, 575).

  그들과 대조적으로 제사장처럼 옷 입은 소년이 보인다(삼상 2:18~19). 그는 예수님처럼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삼상 2:26)았다(눅2:52 참고). 물론 사무엘은 강하고 충직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간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삼상 3:20).

  그러나 모든 것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엘리의 두 아들은 전장에서 숨졌다. 블레셋인들은 하나님의 법궤를 탈취하였고 98세의 엘리는 그 소식을 듣고 죽었다(삼상 4:14~18).

  불행히도 사무엘은 엘리가 마주했던 동일한 문제에 직면해야 했다. 그는 최후의 사사였고, 확대되는 대쟁투의 핵심 인물이었다. 매우 중요한 시기에 그는 안정적인 감화로 백성들을 인도했다(삼상 8:1~7).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최후의 사사이자 대쟁투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다. 단지 그의 아들들은 그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 왕조에 의존하지 않으신다. 그들의 배도의 결과 장로들은 왕을 요구했다. 그러나 후대의 역사는 그것이 최선의 길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부가설명> 엘리의 두 아들은 제사장이었다. 제사장은 세습제이기 때문에 제사장 아들은 자동으로 제사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 아들들은 여호와를 알지 않는 제사장들이었다.(삼상2:12) 그들의 제사는 종교적 형식을 시행하는 것뿐이었다. 제물을 드렸고 의식을 행하였다. 그러나 전혀 하나님과 상관없는 종교행사에 불과하였고 종교행사를 빌미로 죄를 물마시듯 범했다. 사단은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는 성소봉사를 종교행사로 전락시킨 것이다. 이스라엘은 성소봉사를 통하여 구원의 도리를 깨달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것은 사단이 가장 성공한 공략 방법이었다. 하나님께서 어린 사무엘을 양육하셔서 이스라엘을 통하여 가르쳐주시려고 한 구원의 경륜을 재정립하시기로 하였다. 그러나 백성이 그것을 깨닫는데 너무 어려웠고 거기 더하여 사무엘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봉사를 바르게 깨닫지 못하였다. 마침내 백성들이 왕을 원했는데, 그들의 요구가 ‘우리도 열방과 같이 왕을 세우자.’는 것이었다.(삼상8:5,6) 이스라엘은 스스로 열방 중에 하나 같이 되기를 요구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열방 중 하나 같이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 백성은 홀로 처할 것이라 그를 열방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민23:9) 그런데 그들 스스로 열방과 같이 되기를 택한 것이다. 사단이 얼마나 성공했는지 알 만한지 않는가. 이것은 오늘날 역사의 종말에 남은 자손으로서 재림교회의 상태에 경고가 된다. 우리는 경성해야 한다. 

 

  교훈: 엘리의 두 아들뿐 아니라 사무엘의 두 아들도 영적인 대쟁투에서 선의 편에 서지 못했다. 결국 여호와 대신 왕을 요구하는 불행한 역사가 시작된다.

 

 

여섯째날(금) 1월 22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성경은 절대 인간의 죄를 대충 넘어가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인류의 상태를 어떻게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겠는가? 삼상 2:12~25은 인간의 죄악을 매우 날카롭게 묘사한다. 엘리의 두 아들은 사무엘과 대조된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삼상 2:12). 먼저 대조점을 주목하라. 성경 시대에 혈통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원어를 보면 엘리의 아들들은 ‘벨리알’의 아들들라고 표현되었다.(‘불량자’라고 번역된 말이 벨리알) ‘벨리알’은 여러 문맥에서 다양한 형태로 그것도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단어이다. 사실 이 말은 ‘없다’ 또는 ‘아니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블’ 또는 ‘블리’와 관계가 있다. 벨리알은 ‘쓸모없다’, ’소용없다’라는 뜻이다. 그 말은 엘리의 아들들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던 것처럼 다른 곳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즉 다른 인물들도 ‘벨리알의 아들들(난봉 또는 불량자)’이라고 불렸다(대하 13:7, 왕상 21:13). 잠 6:12에서 그 말은 악인과 같은 말이다. (고대 근동 문학 속에서 벨리알은 사탄의 다른 이름으로 보인다.) 성경 대부분의 용례에서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로서 그들은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그들은 전혀 쓸모없는 ‘무가치함의 아들’이 되었다. 얼마나 헛된 인생의 낭비인가! 우리도 하나님 편에서 그분을 위해 의미와 목적을 이루든지 아니면 결국 쓸모없는 인생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전 존재와 삶의 목적이 오직 그분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맞는 말이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대쟁투에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성경은 이 점을 분명히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 아니면 사탄의 편입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삶은 항상 그렇게 분명하고 선명하게 전개되지 않습니다. 때로 우리는 도덕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결정인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기란 항상 쉽지 않습니다. 무엇이 옳은 결정인지 알기가 쉽지 않은 때에 우리는 어떻게 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진다.)딤전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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