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과-내가 일어나는 때에 -(핵심Q&A)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4-02-08 00:35 조회1,610회 댓글0건첨부파일
- 제6과 내가 일어나는 때에-이봉주 장로.hwp (99.0K) 15회 다운로드 DATE : 2024-02-08 00:35:35
본문
제6과 내가 일어나는 때에
(02월 10일) (안) / 일몰: 오후 6시 4분)
<기억절(記憶節)>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可憐)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窮乏)한 자들의 탄식(嘆息)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願)하는 안전(安全)한 지대(地帶)에 두리라 하시도다"(시편 12:5).
<맥(脈)>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셨습니다(창 1:26).
이는 우리가 도덕적(道德的) 양심(良心)을 가진 지적(知的)인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苦痛)받는 사람들, 낯선 사람들, 궁핍(窮乏)한 사람들을 지원(支援)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역(營域)이 무엇이든(이웃이든 직장이든)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의 원천(源泉)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피난처(避難處)이자 피난처이시지만, 또한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싸우는 신성(神聖)한 전사(戰士)이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적극적인 리더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우리 지역 사회와 우리 주변의 약하고 억압받는 사람들, 즉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박해받는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02월 4일) (日) <권능(權能)의 전사(戰士)>
(Q)~하나님은 왜 자신을 권능의 전사(戰士)이시며 심판자로 표현하십니까? (시 18:13~15)
(A)~<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들은 이처럼 그들의 것이신 하나님 안에서 개가를 부를 수 있으며 확신을 갖고 하나님께 전사(戰士)로 심판자(審判者)로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의 구원(救援)에도 사용해야 하며,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할 그뿐만 아니라 시인(詩人)처럼 기도(祈禱)를 더욱 생활화(生活化)하여야 할 것이다.>
⑴.하나님의 백성을 위협하는 악한 세력을 물리치시는 놀라운 능력자이심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⑵.하나님 백성들의 울분과 고통에 대한 긴급하고 엄중(嚴重)한 응답을 뜻한다..
⑶.결단(決斷)은 의지력(意志力)을 강화(强化)시키는 것이다.
⑷.그대가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믿는 그대의 믿음을 고백할 때에 전능자 하나님은 그대에게 특별한 힘을 나누어 주신다.
⑸.확고한 결심을 하면 의지력은 강화되고 그대는 곧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⑹.하나님은 시인(詩人)의 힘의 근원(根源)이었다
⑺.모든 악과 죄를 즉 사단을 정복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救援)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⑻.우리의 영적(靈的) 전쟁도 주님께서 대신 싸우시고 구원하심을 신뢰할 수 있다.
⑼.시인(詩人)은 하나님을 택하고 그 밖의 다른 것들을 모두 버렸으며, 나를 보호하는 일에 있어서 오직 그에게만 의지했다.
⑽.시인(詩人)(다윗) 원수(怨讐)들로부터 구출(救出) 받은 자신의 경험을 바로의 딸의 손으로 구출(救出) 받은 모세의 경험에 견주어 인용하여,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건져냄을 받듯이 하나님에게 건져냄을 받은 간증의 표현이다.
(02월 5일)(月) <압제(壓制)당하는 자(者)를 위(爲)한 공의(公義)>
(Q)~하나님은 가난한 사람, 궁핍한 사람, 억압당하는 사람, 고아, 과부, 홀아비, 나그네와 같이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들을 향한 공의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신다. 우리에게 주는 기별은 무엇인가?
(시편 9:18, 12:5, 40:17, 113:7, 146:6~10, 41:1~3)
(A)~<억압(抑壓)받고, 가난하고 압제(壓制)당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시 41:1~3)은 하나님의 속성(屬性)이자 그분의 백성들에게 신실함을 보여주신다.>
⑴.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보편적(普遍的)인 돌보심과 성도(聖徒)들에게 그들을 향한 의무를 포함하고 있음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⑵.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들을 향한 공의(公義)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신다..
⑶.하나님은 고통받는 자들을 일으켜 세우시고 공의를 행하셔서 신실함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⑷.이는 모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돌보심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⑸."가난하고 궁핍(窮乏)"하다는 표현은 물질적(物質的) 빈곤(貧困)만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취약성(脆弱性)과 무력(無力)함까지 의미한다.
⑹.고통받는 사람을 도우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라는 생각을 나타낸다.
⑺.이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연결(連結)된다..
⑻.약자(弱者)에 대한 악행(惡行)은 성경시대(聖經時代)에 특히 가증스러운 죄악이었다. (신 15:7~11).
⑼.시편은 신실한 사람들이 모든 압제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도록 권면한다.
⑽.하나님의 백성은 인간 지도자(指導者)와 제도(制度)가 궁극적(窮極的)인 구원(救援)을 주는 것처럼 생각하는 유혹(誘惑)을 물리쳐야 하며 그들의 방법이 하나님의 길과 다를 때에 더욱 그러하다.
(02월 6일) (火) <너희는 언제까지 불의(不義)하게 판단(判斷)하려 하느냐?>
(Q)~하나님께서 왜 인간 지도자(指導者)들을 심판(審判)하시며 그것은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시 72:2)
(A)~<하나님의 공의(公義)가 왕에게 필요한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백성을 공의(公義)로 통치(統治)해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歷史)의 왕들은 사람들을 더 쉽게 통치하기 위해 신(神)을 만들고 자신을 신(神)의 대리인(代理人)으로 칭(稱)하며 스스로 신(神)이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이 참된 왕이시고 이 땅의 왕은 진정한 의미에서 신(神)의 대리인이 되어야 함을 분명히 하셨다. 왕은 신(神)이 아니고 신(神)이 왕이시다. 하나님이 왕이시다. 따라서 백성들은 인간 왕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다. 따라서 인간 왕은 자기 공의로 그들을 다스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 그들을 다스려야 한다. 자기 기준(基準)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이 더 중요하다. 자기 영향력(影響力)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향력을 확장시키는 것이 그의 역할(役割)이다.>
⑴.인간 지도자(指導者)에게 하나님의 공의(公義)로 다스림을 위탁(委託)된 것이지 인간 지도자(人間指導者)가 재판관인 것처럼 남용해서는 안 된다.
⑵.왕은 율법서를 자기 손으로 기록하고 평생 자기 옆에 두고 읽어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고 그 말씀을 지켜야 했다. (신명기 17:18~20절)
⑶.궁극적(窮極的)으로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리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했던 것이다.
⑷.자기 뜻대로, 자기가 생각하는 공의대로 백성을 다스려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⑸.그의 통치는 하나님의 공의(公義)가 특징적(特徵的)으로 드러나야 했다.
⑹.왕(인간 지도자)을 위해 구(求)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판단력(判斷力), 하나님의 공의(公義)다.
⑺.솔로몬의 초기에는 바르게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해서 주님의 판단력(정의)과 주님의 공의를 주시기를 요청했습니다.
⑻.솔로몬왕은 처음에는 참으로 신실하였지만, 나중에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⑼.땅을 다스리는 지도자(指導者)도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다는 사실을 망각(忘却)하지 말라.
⑽.오늘도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 주신 삶의 자리에서 공의(公義)와 정의(正義)를 행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를 느슨하지 않고 온전하게 만들어 가시는 우리의 왕 예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02월 07일) (水) <주(主)의 분노(忿怒)를 부으시며>
(Q)~원수(怨讐)들을 향(向)한 시편기자(詩篇記者)의 분노(忿怒)와 그들을 위한 기도(祈禱)는 어떻게 조화(調和)를 이룹니까? (렘 29:7) (시편 58:6~8, 69:22~28, 83:9~17, 94:1, 2, 137:7~9)
(A)~<하나님은 통치자(統治者)이십니다. 하나님은 왕(王)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대신할 통치자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우신 통치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통치자들이 하나님과 같이 정의(正義)롭고 올바른 판결(判決)을 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정의(正義)와 정직(正直)이 그렇게 보기 힘든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公義)에 안도(安堵)하고 오늘도 힘내야 할 것입니다.>
⑴.저주(詛呪)의 시편은 개인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좀 더 공적인 차원에서의 기도다.
⑵.개인의 이기적인 동기에서 이기적인 방법으로 이기적인 목적을 이루려는 기도가 아니다.
⑶.쉽게 말해, 어떻게든 복수(復讐)를 하고 싶은데 내가 할 힘이 없으니까 저주(詛呪)라도 퍼부어야겠다는 기도(祈禱)가 아니라는 것이다
⑷.의인(義人)으로서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의로운 분노(忿怒)의 표현이다.
⑸.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를 미워하기 때문에 드리는 기도이다
⑹.하나님께서 그런 세상의 불의(不義)를 바로 잡으시고 하나님의 이름이 찬양(讚揚)받기를 원하는 기도(祈禱)가 저주(詛呪)의 시편(詩篇)이다.
⑺.시편기자(詩篇記者)가 하고자 하는 말씀은, 다수(多數)를 따라서 결정하기도 하고, 약자(弱者)에 대한 동정심(同情心)을 따라서 결정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것은 정의(正義)가 아닙니다. 통치자(統治者)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결정(決定)해야 합니다.
⑻.통치자(統治者)들은 자신들의 권력(權力)을 이용하여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거짓된 공약(公約)으로 인기를 얻고자 하였습니다.
⑼.인간은 완전히 부패(腐敗)한 존재입니다. 통치자들은 이런 자신의 죄악(罪惡)을 인정(認定)하고,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통치자로 영접(迎接)해야 정의(正義)로운 통치자가 될 수 있습니다
⑽.시편기자(詩篇記者)는 하나님께서 정의(正義)를 상실(喪失)한 지도자들을 심판하도록 기도합니다. 인간 통치자 위에 진정한 통치자가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02월 08일) (木) <주님(主任)의 심판(審判)과 성소(聖所)>
(Q)~하나님의 심판(審判) 장소는 어디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意味)는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악(惡)을 어떻게 다루시는지 이해(理解)하는 데 성소(聖所)는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시편 96:6~10, 99:1~4, 132:7~9, 13~18)
(A)~<시편기자(詩篇記者)는 성소(聖所)에서 심판(審判)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죄 문제(罪問題)에 대한 올바른 견해(見解)를 가지게 되었다. 죄인(罪人)의 유일(唯一)한 길과 방법은 구원자(救援者)가 필요하고 그 원리는 성소(聖所)이며 이를 실제로 완성하신 것이 구원자(救援者) 예수님의 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이다.>
⑴.성소(聖所)는 구원(救援)의 모형(模型)이다.
⑵.성소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곳이다.
⑶.성소는 희생(犧牲)을 통하여 (대속(代贖)) 용서(罪赦함)를 받는 곳이다.
⑷.성소는 하나님의 용서(容恕)를 보여준다.
⑸.성소는 거룩함을 보여준다.
⑹.성소는 하나이며 죄(罪)를 사(赦)하고 의(義)를 이루게 하는 것을 가르치는 곳이다
⑺.성소는 하나님의 통제본부(統制本部)이다..
⑻.성소는 하나님의 임재장소(臨在場所)이다….
⑼.성소는 판독(判讀)이 필요하다.
⑽.성소는 은혜(恩惠)를 베풀고 또한 심판(審判)을 베푸는 곳이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