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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과-권력투쟁(알기쉬운교과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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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폴쵸 작성일09-11-05 08:39 조회4,0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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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과 권력 투쟁
11월 14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22분)

도입)
옛날 임금이 타는 당나귀가 한 마리가 있었다. 임금이 당나귀를 타고 나라를 한 바퀴 순찰하면 온 국민들이 나와서 왕에게 환호하고 박수갈채를 보냈다. 임금을 등에 태운 나귀는 왕을 태운 역할에 걸맞게 온갖 아름다운 장식을 해서 멋지게 보였다. 국민들은 왕과 함께 그 나귀를 향해서도 갈채와 찬사를 보냈다. 이러한 갈채와 환호에 고무된 나귀는 어느 날 왕을 땅에다 내동댕이 쳐버렸다. 왜냐하면 국민들의 갈채와 환호를 혼자서 다 받기 위해서였다. 나귀는 왕이 없으면 그 모든 환호와 갈채를 자신이 모두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나귀가 왕을 땅에다 내동댕이치는 순간, 신하들은 그 나귀를 죽이고 대신 다른 나귀를 사용하여 그 나귀는 용도 처분되어 버렸다. 어리석은 당나귀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어리석었던 사람들이 성경의 고라의 이야기에서도 만날 수 있다. 바로 고라의 반역 사건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라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고라는 모세와는 사촌지간이다. 제사를 지낼 때에 향불을 운반하던 일을 감당하는 레위인이었다. 제사를 드릴 때에 소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의 마음에 모세와 아론에 대한 시기심이 들기 시작했다. 모세와 아론만 백성들로부터 인기가 높아지고 사랑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행하고 있는 소중한 임무를 망각하고 모세의 면전에 대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헤매고 있는 문제, 미래가 확실하지도 않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들어서 모세의 지도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점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기억절: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연구범위: 창 17:10~17, 민 16~17장, 수 4:3~9, 마 26:13, 눅 22:19.

안식일 오후
모세와 아론에 대한 분노가 여전히 군중의 마음에 사무치고 있었다. 애굽에서 나온 1세대가 다 죽을 때까지 광야를 방황해야 한다는 선고를 그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 중 몇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수용하는 대신 자기들을 이런 상황 속으로 끌어들인 책임이 모세와 아론에 있다고 판단하고 그들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이 반역의 주모자인 고라는 고핫 가족에 속한 레위 사람으로서 모세의 사촌이었으며 재능과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성막 봉사의 직분을 맡았으나 자신의 지위에 불만을 품고 제사장직을 갈망하였다. 전에 각 가족의 장자에게 줌으로 발전되어온 제사장 직분을 아론과 그의 집에만 준 처사에 대하여 질투와 불만을 품은 고라는 은밀하게 모세와 아론의 권위를 반대하였다. 마침내 그는 행정적 권위와 종교적 권위를 모두 전복하려는 대담한 계획을 세웠다.”(부조와 선지자, 395)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부패한 마음이 어떠한 것인지 분명히 보게 될 것이다. 교만, 시기, 권세욕 등 이런 것들은 내버려 두면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쓰디쓴 씨앗이 열매 맺도록 허용한 자들에게 어떤 고통과 상실의 열매가 맺히는지는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우리는 여기에 나타난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고 그들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겠다.

일요일(11월 8일)
또 다시 반역함(민 16:1~3)

도입)
키가 큰 나무가 바람을 많이 타듯, 사람도 높은 지위에 오르면 흔드는 사람이 많이 있다. 반역의 주동자들은 아론과 그의 집안에 제사장직제가 한정되었다는 것에 불만을 품고 대항하기 시작했다. 모세에 대해서는 “교만하다”, “분수에 지나치다”, “왕이 되려 한다”고 모함하고 비난하며 선동했다. 사실 모세가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야망이 있었다면 히브리인을 자처하고 애굽 왕궁을 뛰쳐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히브리인의 지도자가 됨으로 애굽의 모든 부귀영화를 잃었다. 그렇다고 해서 광야에서 특혜를 받은 것도 없다. 그는 늘 백성들의 원망에 시달렸고, 수많은 회중을 먹여 살리고 안전을 보살피는 일에 하루도 마음 편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고라 자손의 불평은 똑 같은 레위지파 사람이면서 왜 모세와 아론과 그 자손이 특별대우를 받는 자리에서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세를 세운 이는 하나님이요, 아론과 그 자손을 제사장으로 세운 이는 하나님이시다. 모세와 아론을 비방하고 대적하는 것은 곧 모세와 아론을 세우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같다.

1. 민수기 16:1~3을 읽으십시오. 반역자들이 모세에게 한 말을 주의 깊게 읽으십시오. 어떤 네 가지 거짓말이 숨겨져 있습니까?
답:
이 공격에 대한 모세의 반응은, 그가 이처럼 왜곡된 비난에 대해 느꼈을 실망감을 보여 준다. “그들은 모세와 함께 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본 사람들 중에 속해 있었다. … 백성의 번영에 큰 관심을 표명하면서 처음에는 저들의 불만을 서로 주고받았으며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그들이 넌지시 던진 말은 너무나 잘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그들은 한걸음씩 더 담대하게 나아갔고 마침내 자신들이 하나님을 위한 열심으로 그 일을 하고 있다고 참으로 믿게 되었다.”(부조와 선지자, 396~397)
여기서 우리는 사단이 최초에 하늘에서 범한 죄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된다. 이 사람들과 족장들은 비록 존귀하고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원했던 것이다.
우리도 조심해야 되지 않겠는가?

2. 그들의 반역 이면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이러한 비난이 완전히 거짓임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민 16:12~14)
답:
정말로 믿어지지 않는 것은 이들이 한 말이다. 그들은 애굽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불렀다. 그들이 종살이하면서 억압받던 나라를 가리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라고 언급한 사실은 죄가 그들의 판단력을 얼마나 심하게 왜곡시켰는지를 잘 보여 준다.

교훈: 고라와 250명 족장의 모세에 대한 반역은 사단이 하나님에 대해 일으킨 반역과 흡사하다. 반역의 정신에 물들면 시야는 심하게 왜곡된다.

부가적용)
레위 지파내에서 영향력이 있었던 고라는 광야 유랑 시절에 르우벤 지파의 다단과 아비람과 온 및 족장 250인과 당을 짓고 모세와 아론의 지도 체제에 대하여 반역을 일으켰다. 명분은 모세와 아론이 분수에 지나치도록 교만하고 또한 독선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모세와 아론에 대한 질투와 세속적인 명예심 때문이었다(민 16:8-14) 고라는 아론과 모세에 대하여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어찌하여 여호와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민 16:3)라고 힐난 했지만 정작 교만한 마음으로 스스로 높인 자는 고라 자신이었다. 진정 권위와 명예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러나 고라는 그것을 스스로 쟁취하려다 오히려 비참한 종말을 맞고 말았다. 고라가 중심이 된 250인의 반역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 중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다. 고라의 반역은 제 분수를 알지 못하고 사심과 허욕으로 인한 교만에서 비롯된 일이다. 이스라엘 각 지파는 모세가 친형인 아론과 그 직계 가족들에게 사사로운 감정으로 제사장의 직분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나님은 이러한 오해를 불식시켜서 다시는 이러한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할 필요가 있으므로 어느 지파가 하나님이 택한 지파인지 백성들 앞에 분명히 알려 둘 필요가 있었다.

월요일(11월 9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민 16:15~35)

도입)
고라의 반역은 모세와 아론에 대한 반역이 아니라, 그들이 수행하고 있는 임무, 곧 구속사적 섭리에 대한 반역이며,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반역이므로, 하나님을 떠나겠다는 불신앙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네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권위에 대한 도전이요, 둘째는 하나님의 총회를 분열 조장한 것이요, 셋째는 약속의 땅에 대한 불신이요, 넷째는 하나님께서 임명한 지도자 모세에 대한 도전이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고라당의 반역을 엄히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고라당의 심판은 크게 세 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무시했기 때문이요, 둘째는 하나님의 계획을 훼방하였기 때문이요, 셋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 사람들에게 한 모세의 반응을 보라(민 16:4~11). 그들에게 주어진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더 높아지기를 원했다. 모세는 그것을 간파했던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의 말을 들어 보면 모세와 아론이 모든 권력을 빼앗고 자신들의 영역을 침해하여 스스로를 높이고 그 백성을 광야로 끌어내어 죽게 한 것인 양 그들에게 대적했던 것이다.

1.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누구를 대적하고 있었습니까?(민 16:11)
답:
이 사람들의 비난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지 확인해 보자. 홍해를 가른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었는가, 모세와 아론의 능력이었는가? 매일 아침 만나를 내린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었는가, 모세와 아론의 능력이었는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나타나신 분은 하나님이셨는가, 모세와 아론이었는가? 이 모든 사실을 목격한 그들이 이렇게 행동했다는 것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2. 민수기 16:15~35을 읽으십시오. 특히 28~30절에 나오는 모세의 말을 주목해 보십시오. 이 말에서 핵심적 내용은 무엇입니까?
답:
그들이 처한 상황을 생각해 보라. 만약 그들이 더 광범위한 반역을 조장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더 끔찍한 결과가 초래되었겠는가? 이스라엘 백성은 마땅히 해야 할 만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너무나도 쉽게 타락에 빠지고 말았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제어하신다는 것과 그분께서 그들을 인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만 했다. 모세와 아론은 단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위해 명하시는 대로 행하고 있을 뿐임을 이해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죄는 사람의 마음을 흐리게 만드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번 반역의 정신이 일어나면 그것을 가라앉히기가 어렵고 무서운 기세로 퍼져나간다.

교훈: 고라와 그의 추종자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한 반역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었다. 사단의 정신에 물든 그들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징벌을 받았다.

부가적용)
‘반역’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메리(ירמ)는 구약성경에 모두 23회 나온다. 메리가 사무엘상 15:23에서는 ‘거역하는 것’으로, 욥기 23;2에서는 ‘혹독히’로, 그 외에는 20회 모두 ‘패역’으로 번역되고 있다. 특히 에스겔서에서 16회 나오는데 모두 ‘패역’이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욥기를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성경에서 이 단어가 ‘패역’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패역은 하나님의 사랑과 노고에 반비례하여 불순한 악을 저지르며 대적하는 행위이다. 반역(패역)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을 불신하여 불순종하고 대적한다면 그것은 곧 반역이요 패역이다. 민수기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에 대한 반역 행위를 패역으로 간주한다. 모세와 고라는 사촌지간인데(출 6:18-21), 어느 순간 고라가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여 반역을 도모한다. 그것은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자 패역이다(17:10). 하나님께서는 땅을 가르시고 고라와 그 일당을 모조리 삼켜버리게 함으로써 징벌하신다(16:32). 산 채로 음부에 내려간 셈이다. 모세는 이들의 폭동을 하나님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했다. 사실 그들은 모세가 아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반기를 든 것이다. 이에 모세는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라고 그들의 비난에 역습하는 한편 하나님 앞에 엎드려 사정을 고하고 자기 직무의 정당성을 확신하면서 그 판결을 하나님께 맡겼다. 그 결과 그 일당과 가족들은 하나님의 엄청난 징계로 땅에 함몰되는 최후를 맞이했다.

화요일(11월 10일)
기념물(민 16::36~40)

도입)
민수기 16장은 우리에게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불순종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말씀을 보면 반역을 주동하는 인물들은 사회 언저리에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자들이 아니었다. 평상시 문제를 일으켰던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의 귀족들이었다. 책임 있는 사람들이었다. 고라는 레위의 후손이다. 그와 함께했던 250명은 거의 모든 지파에서 모였다. 그런데 사회 귀족들만 불순종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41절 이후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까지도 불순종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수기 16장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는 습성인 이 불순종은 누구나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팔레스틴 지역에서 많은 고고학적 발굴 작업이 있었지만 사해사본 외에는 별다른 '기록된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기 위한 다양한 가시적 기념물들이 있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창세기 28:11~22에는 야곱이 하나님의 언약 곧 자기와 자기 후손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기 위해 기념의 돌기둥을 세운 기록이 나온다.

1. 모세와 아론을 대항하는 이 무서운 반역은 어떤 식으로 기념되었습니까?(민 16:36~40). 이 기념물은 특별히 백성에게 무엇을 상기시켜줄 것이었습니까?
답:
구약에 언급된 대부분의 기념물들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총과 언약의 복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 기념물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해 주었다. 예를 들어, 홍수 후의 무지개(창 9:13)나 할례(창 17:10~17), 유월절 축제(민 9:1~14)나 옷단 귀에 술과 함께 단 청색 끈(민 15:38~41), 혹은 요단강을 건넌 후에 여호수아가 세운 기념의 돌단(수 4:3~9)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번제단을 감싼 편철(片鐵)은 아론의 후손이 아닌 타인이 제사장 직분을 범하지 못하도록 '방지하기 위한' 경고의 기념물이었다. 넓은 의미에서 그것은 백성으로 하여금 인간이 자신의 탐욕과 권력에 대한 야망을 채우기 위해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고 하나님을 대항한 사건을 기억나게 해 줄 것이었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고라와 그 무리와 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민 16:40)

2. 성경에서 우리는 또 어떤 기념물들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예, 출 20:8~11, 민 31:54, 마 26:13, 눅 22:19). 특히 동물의 희생은 무엇을 상기시켜주었습니까?

교훈: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기념물들을 통해 그분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셨는데, 향로를 쳐서 만든 제단의 편철은 제사장 직분을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한 기념물이었다.

부가적용)
하나님께서는 공동체의 질서를 세우시기 위해 반역자들에게 무서운 형벌을 가하셨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가족들은 산 채로 음부에 빠지는 무서운 형벌을 받았다. 그리고 고라의 반역에 동조한 250명의 분향하던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불에 소멸했다. 하나님은 태워 없애는 불이시다(히 12:29). 하나님은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명하셔서 향로를 모두 거두게 하셨다. 그리고 그 향로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기념물을 만들게 하셨다. 이는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였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질서에 대한 순종’과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을 가르쳐 주셨다(40절). 하나님의 알은 내 뜻과 방법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방법과 질서대로 해야 한다. 직접 목격하고도 깨닫지 못한다면 어리석은 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심판을 지켜본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그들의 탓으로 돌렸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는 백성 전체에 미치게 되었다. 모세와 아론의 중재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진로로부터 백성을 구원했다. 250명의 향로는 하나님의 심판과 죽음을 가져왔지만 아론의 향로는 백성에게 속죄와 생명을 선물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제사장의 권위와 사명을 다시 확인시켜 주셨다. 제사장으로 백성을 위한 중보자의 사명을 지닌 사람으로서 때로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아론의 모습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님을 닮았다.

수요일(11월 11일)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서(민 16:41~50)

도입)
미국이 노예해방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데에는 두 사람의 업적이 있었다. 한 사람은 4년간의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링컨 대통령이고, 다른 한 사람은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라는 소설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스토우 부인이었다. 나중에 노예해방을 이루고 나서 두 사람이 만났다. 링컨은 스토우 부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선생님이 정말로 스토우 부인입니까? 저는 이렇게 위대한 소설을 쓰신 분은 아주 강한 분인 줄 알았습니다.” 이 때 스토우 부인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사실 그 소설을 쓴 것은 제가 아닙니다. 노예제도를 보고 분노하신 하나님께서 쓰신 것입니다. 저는 단지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이지요”라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스토우 부인이 말했다. “각하의 모습도 제가 상상한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의외로 인자하시군요.” 그러자 링컨도 똑같은 대답을 했다. “사실은 제가 싸운게 아닙니다. 저 또한 하나님의 작은 도구였을 뿐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한다.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속성은 겸손이다. 그러나 이미 권력을 가진 자에 대하여는 그 권위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250명의 족장들에게 내린 심판은 광야의 백성으로 하여금 정신을 번쩍 차리고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몇을 소멸하고, 땅이 갈라져 나머지를 삼켜버리지 않았는가? 공공연한 반역과 배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이보다 더 명백히 나타날 수 있었겠는가?

1. 민수기 16:41~50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그들의 비난은 고라와 그의 추종자들이 했던 비난과 얼마나 비슷합니까?
답:
이 어처구니없는 말은 사람들 속에 있던 반역의 정신이 고라에게서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 반역의 정신은 무서운 심판이 내린 후에도 진영에 남아 있었다. 반역적인 행동의 결과가 어떠한 것임을 목격한 후에도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일단 반역과 배교로 기울어지게 되면 얼마든지 무모하고 분별없는 행동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그러한 반역의 정신이 우리를 파멸로 이끌지 않도록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그분의 약속을 붙잡고(고전 10:13, 빌 1:6) 그것을 버려야 한다.

2. 민수기 16:48을 읽으십시오. 아론이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섰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장면에서 예수님의 어떤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까?
답:
이 세상에는 오직 산 자와 죽은 자(육체적으로 죽은 자가 아닌 영적으로 죽은 자) 두 부류의 사람들만이 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 예수께서는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서 계신다. 그분은 경계이시며 전환점이시다. 오직 그분을 통해서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다.

교훈: 아론이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 염병이 그친 사실(민 16:48)은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표상한다.

부가적용)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심판의 결과를 백성들 사이에 널리 알게 하기 위하여 기념물을 만들게 하였다.(36-40절) 그러나 백성들은 끝내 모세와 아론을 그들의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의 완악함을 돌이킬 수 없게 되어 심판이 임하였으며 온 회중에게 염병이 퍼지게 되었다. 여기에서도 모세와 아론의 중보기도가 끊이지 않았다. 여호와의 진노는 여호와께서 친히 제정하신 대제사장의 직분에 의해 멈출 수가 있게 된다.(46-48절) 여기서 아론의 향로를 가지고 백성을 구한 것은 대제사장의 중보의 기능을 구체적으로 나타낸다.(47절) 그러나 이것은 아론의 믿음이 진실하고 열심히 있어서가 아니라 대제사장의 속죄기능을 제정하신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제사장의 권능이 백성에게 나타났다.(48절) 고라의 일로 죽은 자 외에 염병에 죽은 자가 14,700명이었다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가 없이는 결코 우리가 심판의 자리에 설 수 없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예증일 것이다.

목요일(11월 12일)
아론의 싹 난 지팡이(민 17장)

도입)
실제로 하나님의 일꾼들을 보면 완벽한 사람이 없다. 저마다 결격 사유를 다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모세가 그랬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의 압제에 시달릴 때 모세는 바로의 궁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자신만을 위해서 살았던 사람이다.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만한 사람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모세를 선택하셨다.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셨다. 모세와 함께 해 주셨고 하나님께서 모세의 권위를 세워주셨다. 바울도 마찬가지다. 바울은 성도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고 성도들을 핍박한 인물이다. 그것도 부족해 다메섹까지 좇아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들이려고 했다. 도저히 교회의 지도자가 될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바울을 선택하셨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권위를 세워주신 것이다. 권위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이 점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이 나라의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자들의 권위 역시 하나님이 세우신다. 내가 볼 때 형편없이 보인다고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다고 권위를 인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기준에 맞게 세우신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수천 명의 사람이 고라가 일으킨 반역으로 죽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제사장 직분의 구별성 문제가 여전히 정립될 필요가 있음을 아셨다. 하나님께서 강력하고 고통스러운 심판을 반역의 무리에게 쏟으셨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 모두를 정당하게 쓸어버리실 수도 있었으나 그것은 그분이 원하시는 바가 아니었다. 심지어 이 모든 일이 일어난 후에도 그분께서는 여전히 이 백성과 함께 일하고자 하셨고, 당신의 구원하는 은혜를 그들에게 나타내고자 하셨다.

민수기 17장을 읽고 다음 질문들에 답하십시오.

1. 이와 같은 시험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답:

2. 이 시험은 또 다른 반역과 그 결과로 이르러 오는 심판을 어떻게 예방해 주었습니까?
답:

3. 백성의 반응을 볼 때, 그들이 비로소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깨달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답: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고 살구 열매가 맺혔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기적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성소 안에서 이 기적을 베푸셨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아론과 그의 자손들만이 여호와의 성소에서 제사장이 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비극적인 사실은, 사람들이 이것을 깨닫기까지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바로 세우시기 위해 더 많은 일들을 기꺼이 행하고자 하셨다는 것이다.

교훈: 아론의 싹 난 지팡이의 기적은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의 자손들에게만 제사장 직분을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백성에게 분명히 각인시켜 주었다.

부가적용)
권위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권위의 출처이다. 권위가 어디로부터 나왔는가 하는 것이다. 권위의 출처가 인정될 때 그 권위가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권위의 출처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바로 권위자 자신이다. 사람들이 가진 어떤 특별한 능력 때문에 권위를 인정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아인쉬타인 같은 경우 그의 탁월한 지적인 능력 때문에 모두가 그분의 권위를 인정한다. 파바로티 역시 그의 노래 솜씨 때문에 권위를 인정한다. 하지만 그를 능가하는 또 다른 실력자가 나타나면 그 권위는 더 이상 인정받을 수 없다. 지금 아론에게도 이런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레위 자손 가운데 고라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고라는 아론의 사촌이다. 성막 봉사의 고위책임을 맡았다. 광야생활 38년 동안 성막 봉사를 하면서 대제사장 아론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지켜보니까 자기가 아론보다 못할 게 없어보였다. 오히려 아론보다 더 잘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아론을 비판하면서 흠집 내기 시작하였다. 아론의 영적인 권위에 도전하고자 공격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가진 능력을 권의 출처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론을 선택해서 대제사장으로 세우신 것은 그가 남다른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특별한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기준에 의해서 아론을 선택하신 것이다.

금요일(11월 13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제35장 "고라의 반역"(395~405).

“반역과 배도는 바로 우리 주변과 환경 속에 잠재해 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의지 없는 영혼을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붙들어 매지 않는다면 우리는 곧 그 영향을 받고 말 것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쉽게 그릇된 길로 휩쓸린다면 사단이 그리스도로 가장하고 나타나서 기적을 행할 때에는 어떠하겠는가? … 교리들은 분명하게 이해되어야 한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공부를 시작한 사람은 진리 안에 닻을 내릴 때까지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러면 그들의 배는 폭풍이 와도 든든할 것이니 이는 닻이 그들을 꼭 붙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1권, 111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우리는 어떻게 죄로부터 속임을 당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이 질문에 대해 어떤 답을 제공해 줍니까?

2. 이번 주에 살펴본 대로 반역은 공공연하게 진행되기도 하지만, 은밀한 중에 일어날 수도 있습니까? 우리는 은밀하게 진행되는 반역과 배교를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3. 우리 주변에는 어떤 세속적 기념물이 있으며, 그 상징은 무엇입니까? 종교적이든 세속적이든 간에 기념물은 왜 중요합니까?

4.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요약: 고라와 그의 동료들이 모세와 아론에 대항하여 일으킨 반역은 너무나도 뿌리가 깊어 하나님께서 그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을 지진과 불과 염병으로 파멸시키셔야만 했다. 이 사건은 기념물로 만들어진 번제단의 편철과 같이 시기와 질투에 대한 경고가 되어야 했다. 만일 우리가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소중히 여긴다면 우리는 고라의 반역을 통해 고대 이스라엘이 겪었던 내적인 분쟁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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