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그릇 교과묵상] 제 12과 투쟁중인 교회 (3월 18일 교과묵상/일~금 매일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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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작성일16-03-13 08:46 조회3,281회 댓글0건첨부파일
- 12과 통합-20160318.hwp (35.5K) 170회 다운로드 DATE : 2016-03-18 07:5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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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일(금) 12과 전체 요약
이번 주 교과는 계 2~3장에 기록된 일곱 교회에 보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편지의 대상이 되는 일곱 교회를 그 당시의 교회들로 보기도 하고, 역사의 연속적인 다른 시기의 교회들로 보는 관점도 있지만, 교과의 저자는 모든 시대, 모든 장소의 교회에 적용하는 상징적인 교훈을 중심으로 이 편지들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그들의 수고함과 인내심으로 인하여 칭찬을 받았습니다. 구원받은 자는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니골라당’의 주장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거짓 가르침과 싸우고, 그 결과로 맞게 된 박해까지도 견디며 믿음을 지키는 인내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으로 인하여 책망을 받았습니다. 열정적으로 교리적 투쟁을 벌여 승리했지만, 마땅히 가져야 할 형제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어디서 떨어진 것을 기억하여, 회개하고, 처음에 가졌던 사랑과 열정으로 돌아오라고 호소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회복되어야 할 ‘처음 사랑’이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황제 숭배를 거절한 결과로 로마로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은 교회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탄의 회당’으로 표현된 유대인들의 조직적인 방해로 인하여 이중고를 겪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그들의 순수한 믿음을 지켰고, 어떠한 책망도 없이 ‘실상은 부요한 자’라는 인정과 함께 영광의 면류관을 약속 받았습니다. 반면에, 버가모 교회는 주님의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교회의 세속화를 허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입의 검’으로 심판받을 것을 경고하시면서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그리고 회개한 자들에게는 감춰진 만나와 새 이름이 새겨진 흰 돌을 주어, 영원한 생명과 확실한 구원의 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교회를 괴롭혔던 니골라당의 유혹과 세상이 주는 어려움은 여전히 현대를 살아가는 교회 안에서 재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며 충성을 다하심으로 영원한 상급의 주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다”는 칭찬을 받을 만큼 영적인 향상을 인정받은 교회였지만, 이세벨로 표상된 니골라당의 활동을 용인한 결과로, 성도들이 무분별하게 이교의 관습과 식탁 교제에 참여하여 교회가 오염되는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사데 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라는 책망을 받을 정도로 과거의 명성만 유지한 채 현재는 영적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러한 혼란과 어려움에 빠진 교회를 위하여 직접 일하셨습니다. 이들에게 회개를 호소하시면서, 끝까지 믿음을 붙드는 두아디라의 남은 자들에게는 새벽별, 곧 자신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셨고, 사데 교회의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이기는 자들에게는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시인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혼란과 타락 속에서도 당신의 자녀들을 끝까지 찾아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세속화로 물들어가는 현대의 교회가 여전히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임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고 연약한 능력을 가진 교회였지만, 영적으로 탁월한 모범이 되는 교회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되심을 부정하는 ‘사단의 회’로 불릴만한 유대인들이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임을 주장하며 그들의 믿음을 흔들려 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 안에 거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도 책망이 없는 칭찬만이 주어졌고, 주님께서는 이들을 칭찬하시면서 그들을 핍박하는 유대인들이 오히려 그들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절대적인 권세로 열어놓으신 이 구원의 길로 향하는 ‘열린 문’은 결코 닫을 수 없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는 축복이 약속되었습니다. 이 약속은 지진으로 인하여 고통당하던 그들에게 너무나도 큰 소망이 되었고, 그들 위에 새 예루살렘 성과 그리스도의 새 이름을 기록해 주시겠다는 약속은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되고 영원히 예수님께 속한 자로 살 것을 보장하는 놀라운 축복이 되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고 연약할지라도 예수님께 충성되이 나아가는 모든 자들은 이러한 축복을 경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우리에게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풍족한 그들의 삶으로 인해 영적 교만에 빠짐으로, 미지근하고 역겨운 물처럼 토하여 내치겠다는 책망을 들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부자라 부르며 부족함이 없다고 여겼지만, 주님의 눈에 그들은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불쌍한 처지의 사람들이었고, 냉담한 이방인들보다도 못한 자들이라는 평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아멘’이시고, ‘충성된 증인’이시며, ‘창조의 근본’이신 우리 주님께서는 영적 자만에 빠져 죽어가는 이들을 진리를 가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재창조하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주님에게서 사랑으로서 역사하는 믿음인 금과,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인 흰 옷,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그들의 죄된 상태를 깨닫게 해주시는 안약을 사서 소유할 때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타락한 그들의 마음 문을 회개의 초청으로 두드리셨던 주님께서는, 현대의 라오디게아 교회인 우리의 마음 또한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초청에 반응할 때, 그들에게 주셨던 주님과 함께 먹고 즐기며, 하늘에서 왕 노릇 하게 되는 특권은 우리의 것이 된다는 사실이 우리의 결심을 새롭게 하는 귀한 동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교회를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들로 씨름하던 일곱 교회를 향하여 주신 예수님의 편지는, 여전히 다양한 형편 속에 있는 현대의 교회들에게 주시는 위로와 격려, 때로는 책망의 기별입니다. 그러나, 기별 속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책망 받을 만한 교회에도, 칭찬받을 만한 교회에도 동일하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다양한 형편 속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예수님을 믿음의 주로 붙드시면서 계속되는 선악의 싸움에서 승리하시는 주의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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