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과 투쟁중인 교회(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3/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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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6-03-12 02:32 조회7,742회 댓글0건본문
3월 19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43분
기억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연구 범위: 계 2:1~7, 호 2:13, 계 2:8~17, 계 2:18~3:6, 사 60:14, 계 3:14~22
열두 사도 중에서 마지막까지 생존한 사람은 요한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붙은 복음서와 서신 외에도 대쟁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수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계시록도 기록하였다. 그래서 이번 주 우리는 일곱 교회에 대한 그의 설명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우리는 요한의 언어로부터 최대한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 당시의 수신자들의 관점에서 일곱 교회를 연구하려고 한다.
눈에 띄는 한 가지 사실은 예수님이 각 교회에 개인적으로 다가 가신다는 점이다. 그들은 모두 다른 필요를 가지고 있으며 예수님은 그들의 필요를 다 만족시키신다.
이 교회들도 오늘날 우리처럼 정체성을 가지고 씨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신자들은 죽어가는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에 따라 예수님의 편에 분명하게 서 있는가? 아니면 양다리를 걸쳐놓고 기독교인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사적으로는 어둠의 권세를 훨씬 편하게 느끼는가? 우리는 스스로를 이 교회들 중 마지막 교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상황이 다를지라도 교회가 오랜 세월에 걸쳐 직면했던 난관을 오늘날 우리도 겪고 있다.
※ 학습 목표
➊깨닫기 : 일곱 교회에 보내는 기별이 각 시대의 교회뿐 아니라 오늘날의 신자들에게도 적용됨을 깨닫는다.
➋느끼기 : 개인과 교회의 영적 상태에 대한 그리스도의 동정어린 평가를 인식한다.
➌행하기 : 그분과 함께 승리자가 되라는 그리스도의 제안을 수용한다.
A.
❷에베소 교회로 하여금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이 주신 그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
❸교회를 혼란시키는 고난과 이설의 문제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 단호히 성경으로 그런가 연구하고 살펴서 진리를 옳게 분별해야 한다.
❹우리가 교회의 본질과 교리의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 겸손히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님께 굴복해야 한다.
B.
❷두아디라 교회와 사데 교회에 보내신 주의 편지는 영적 암흑기 또는 침체기에 빠진 자들에게 어떤 위로와 격려가 됩니까?
※ 주께서 말씀으로 주신 것을 굳게 붙잡을 때 새벽별을 얻을 것이고 흰 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다닐 것이다.
❸빌라델비아 교회는 어떤 면에서 주님으로부터 크게 인정을 받았습니까?
※ 적은 힘으로 주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이다.
❹마지막 시대의 교회로서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영적인 노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예수님을 마음과 가정과 교회에 진정으로 모시는 것이다.
결론 일곱 교회에 보내는 기별은 그리스도께서 역사를 통해 그분의 교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와 함께 거하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승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첫째날(일) 3월 13일
에베소 교회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
계 2:1에서 예수님은 일곱 별을 붙들고 촛대들 사이를 거니시면서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시는 것처럼 묘사된다. 이러한 상징은 중대한 실상을 가리킨다. 촛대들은 교회들이며 일곱 별은 교회를 돌볼 임무를 가진 사자들이다(계 1:20). 다시 말해서 교회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보좌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교회는 대쟁투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1. 계 2:1~7을 읽어 보라. 우리는 여기서 묘사하고 있는 대쟁투를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가?
[계2:1~7]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답: 교회 내부에 침투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어떻게 대처하는가 하는 관점으로 이해하면서 우리 자신이 이 권고를 따라 단호히 진리 아닌 것은 거절하고 사랑과 인내로 주님의 뜻을 행하는 자로 생활해야 한다.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기별은 그 교회의 특성에 대한 묘사로 시작한다. 예수님은 그 교회의 장단점을 모두 아신다. 그분은 그들의 행위와 인내심, 그들 중에 일어난 거짓 교사에 대한 단호함을 칭찬하신다(계 2:2~3, 6). 이는 거짓 교리가 교회 내에서 용인돼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경고이다. 처음에 어둠과의 전쟁에 하나님의 군대로 소집된 에베소 교회는 사탄의 반격에 시달렸다. 그것은 니골라 당이라는 거짓 사도의 형태로 왔다. 니골라는 아마도 일곱 집사 가운데 하나였지만 분파를 조직했던 것으로 보인다(행 6:5 참고). 그들의 이설이 무엇이었든지 예수님은 그것을 미워하신다(계 2:6).
에베소 교회의 문제는 그들이 “처음 사랑”(계 2:4)을 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배도를 그릇된 정부(情夫)를 좇는 여인으로 비유했던 구약 선지자들의 언어와 비슷하다(예, 호 2:13).
상황이 절망적이어 보이지만 예수님은 절망적인 상황을 반전시키는 데 전문가이시다. 우선 그분은 자기 백성들에게 어디에서부터 떨어졌는지 기억하고 처음 행위로 돌아가라고 격려하신다(계 2:5). 이것은 좋았던 시절로 시계를 돌려놓으라는 요구가 아니라 미래로 이끌기 위해 과거의 경험을 활용하는 하나의 사례이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일곱 촛대를 일곱 교회라 하시고 그 손에 있는 일곱별을 일곱 교회의 사자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네 본 것 곧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고 하셨는데, 네가 본 것은 내 오른 손에 있는 일곱별과 일곱 금 촛대라고 하셨다. 요한이 본 것은 계시록 전체이다. 그러므로 일곱 교회는 계시록 전체의 틀(프레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에베소 교회는 초기 교회 시대를 상징하면서 당시 에베소에 있는 교회의 사정도 가르쳐준다. 이 교회는 거짓을 잘 분별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초기 교회 바울과 요한은 거짓 사도와 교사들을 어떻게 분별하는지 편지서에 밝혀주었다. 요한 서신과 바울의 골로새서가 그것을 보여준다. 여기 지적된 것은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교회에 이설이 침투할 때 교회의 사자들은 단호하게 이를 밝혀서 교인들이 속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교인들은 스스로도 이설을 분별할 수 있는 말씀을 깨달아 바르게 아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설은 유능한 사람, 똑똑한 사람들을 통하여 들어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눈을 부릅뜨고 이설을 구별하려고 하다가 첫 사랑을 잃어버릴 수 있다. 우리는 사랑도 실천하고 이설도 분별하도록 베레아 교회 성도들처럼 날마다 말씀을 깊이 연구하여 깨닫고 또 말씀대로 사랑도 실천할 수 있도록 성령의 지도에 날마다 굴복해야 할 것이다.
교훈: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보내시며 그들의 수고와 인내를 칭찬하셨지만 처음 사랑에서 떠난 점을 책망하시며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요구하셨다.
둘째날(월) 3월 14일
서머나와 버가모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계 2:16).
1.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에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계 2:8, 1:18 참고)로 소개되며, 버가모 교회에는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계 1:16, 2:12참고)로 소개된다. 이 두 교회에서 예수님을 묘사하는 모습은 각각 어떤 의미인가?
[계2:8~17]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13 네가 어디에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답: 서머나 교회는 고난을 받는 교회이며 또 그런 시대의 교회를 나타낸다. 고난으로 순교를 당할지라도 부활의 능력을 의지하고 충성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버가모는 타협하는 교회이다. 그가 처음에는 순교자가 나오도록 믿음을 잘 지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타협해서 발람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용납했다. 그들에게 말씀의 검으로 오류를 갈라내실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죽도록 충성하는 믿음으로 진리를 굳게 지켜야 할 것이다.
계 2:8~17을 읽어 보라. 서머나 교인들은 그들의 고생으로 유명했지만 아마도 그들 가운데 있었던 “사탄의 회당” 때문에 그들의 고생에 대해 보여줄 것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계 2:9). 마찬가지로 버가모 신자들 역시 그들 가운데 “사탄의 권좌”가 있었지만 그들의 믿음을 고수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계 2:13). 여기서도 대쟁투의 실재성이 나타나고 있다.
서머나 교회는 고난의 때가 닥칠 것이며 투옥, 심지어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경고를 받는다(계 2:10). 버가모에서는 이미 믿음 때문에 죽은 자들이 있었다(계2:13). 그러나 고난의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악은 일정한 시점 너머까지 활동을 지속하도록 허용되지 않는다(계 2:10).
하나님은 버가모 교회에 두어 가지 책망하실 것이 있었다(계 2:14~16). 그들은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을 용인하고 있었다(계 2:14~15).
“니골라와 발람은 유사어로 보인다. ‘니콜라스’는 ‘니카오’와 ‘라오스’의 합성어로서 ‘백성을 정복한 자’라는 뜻이다. ‘발람’은 ‘암(백성)’과 ‘바알’(‘벨라’에서 파생, 파괴하다, 삼키다)이라는 두 히브리어에서 비롯됐으며 ‘백성의 파멸’이라는 뜻이다.”―Ranko Stefanovic, Revelation of Jesus Christ: Commentary on the Book of Revelation (Berrien Springs, Mich.: Andrews University Press, 2002), p. 111.
예수님은 교회가 계속 이설을 가르치면 직접 오셔서 그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실 것이라고 모든 교회에 경고하신다(계 2:16). 그러나 이러한 경고 중에서도 예수님은 두 교회에 큰 용기를 주신다(계 2:11, 17).
<부가설명> 교회가 역사적으로 발전할 때에 세상은 핍박의 몽둥이를 휘둘렀다. 물론 배후는 루시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이 세상에 전파되면 사망이 생명에게 삼키게 되고 루시퍼는 영원히 그 존재를 상실하게 될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복음이 바르게 전파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쓴다. 서머나 시대가 대표적 핍박의 시대였는데 실제 서머나 교회에도 핍박의 손길이 거세었던 것 같다. 유명한 폴리갑이 서머나 교회의 감독으로 순교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와 함께 체포되고 죽임을 당했던 것 같다. 이런 시대를 지나면서 교회는 타협의 손길에 문을 열게 되고 세상과 연합하는 길을 걷게 되었다.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 교훈의 핵심을 음행이다. 곧 세상과 타협하고 교권과 정치권력이 손을 잡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을 간음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가르쳤다.(약4:4) 그렇게 해서 교회는 세상에서 높임을 받는 권좌에 올라서고 진리를 변질시키는 앞 잡이가 되어 루시퍼의 하수인이 되었다. 우리는 이점을 생각하고 이 시대에 오직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바른 진리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
교훈: 서머나 교회와 버가모 교회에서도 대쟁투는 계속되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고난을 두려워 말도록 권면하셨고 거짓 교훈을 허용하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셋째날(화) 3월 15일
두아디라와 사데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계 2:18).
1. 계 2:18~3:6을 읽어 보라. 이 두 교회의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는 개인적으로 또는 교회적으로 어떻게 그들과 동일한 문제로 씨름하고 있는가? 이러한 갈등 속에서 대쟁투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계2:18~3:6]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답: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을 용납하였고 발람의 교훈을 받아들여 실천하였다. 실제 두아디라 교회에 거짓 여선지자가 교회를 주관하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 거짓 여선지자는 가짜 하나님의 아들을 소개한 것이다. 그래서 두아디라 교회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셨다. 역사적으로 이 시대는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고 하는 자가 전성기를 누리는 시대였다. 그가 바로 가짜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대리자라는 이름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참 교회는 지하로 내려앉았다. 이 시대가 지나면서 사대 교회 시대가 되었는데 그 교회는 신앙의 열정이 없었다. 살아 있는 것 같은데 죽은 상태에 가까운 교회였다. 종교개혁시대가 지나가면서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주장을 강하게 하여 교회가 거룩한 삶을 잃어버린 시대이다. 성령께서 교회 지도자에게 나타나셔서 강력한 교훈을 주실 것을 보여준다.
두아디라 교회에 기별을 보내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고난과 혼란이 증가하는 시대를 암시한다. 불꽃 같은 눈과 빛난 주석 같은 발이라는 은유적인 표현은 계 1:14~15뿐 아니라 다니엘서 10장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다니엘은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단 10:6)은 분을 보았다. 후에 종말이 되면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셔서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암담한 상황이 이를 때에 하나님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직접 개입하실 것이다(단 12:1).
예수님은 사데 교회에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분으로 소개된다(계 3:1, 5:6 참고). 여기서도 배후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시고 하늘의 권능을 동원하여 교회의 안전을 보장하시는 분은 구주시다.
교회에 대한 묘사는 매우 걱정스럽다. 두아디라 교회의 상황은 개선되고 있지만(계 2:19) 그들은 마치 이세벨 시대의 이스라엘 같다. 사데 교회의 백성들도 영적으로 죽었다(계 3:1).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을 격려하신다. 그분은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많은 자들을 인정하시며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고 격려하신다(계 2:24~25). 사데에도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있다(계 3:4).
예수님은 이러한 신실한 자들에게 특별한 복을 약속하신다. 그분은 두아디라 교회에 “새벽 별”(계 2:28)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그분 자신이다(계 22:16). 사데 교회에는 하늘의 지위를 약속하시며 그들의 이름을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약속하신다(계 3:5).
<부가설명> 두아디라와 사데 두 도시에 있던 교회의 형편에 대하여서는 계시록에 기록된 것 외에 정보가 없다. 전설적 정보도 거의 없다. 두아디라에는 자주 장사 루디아가 있었다. 바울의 전도로 예수를 믿은 여신도이다.(행16:14) 아마도 그가 두아디라 교회 개척에 크게 수고하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그 교회가 어떤 거짓 여자 선지자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역사적 시대에는 정권과 교권이 연합하여 교권국가를 형성하는 것으로 교회에 루시퍼의 보좌를 놓게 하였다. 이 시대에도 그 권세는 세상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면서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여 대중을 미혹하고 있다. 이런 시대가 지나가면서 개혁의 불꽃을 높이 들었지만 그들은 진리로 연합하지 못하고 사분오열해서 각각 자기들의 주장이 성경적이라고 하면서도 두아디라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재림교회는 내부적으로 두아디라의 거짓을 단호히 성경으로 분별하여 바른 진리에 굳게 서도록 해야 하고 사데 교회의 잃어버린 열정을 찾아서 생명의 복음을 전하여 이 시대에 밝은 빛을 비추어야 할 것이다.
교훈: 두아디라와 사데 교회의 영적 형편은 매우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자들에게 영광스러운 구원을 약속하셨다.
넷째날(수) 3월 16일
빌라델비아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계 3:7).
1. 계 3:7을 읽어 보라. 이 교회에서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소개되는가? 이러한 설명을 통해 우리는 그분에 대해 무엇을 알게 되는가?
[계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답: 다윗의 열쇠를 가지시고 열면 닫을 사람이 ㅇ벗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권세를 가진 분으로 묘사하였다. 예수님은 복음을 바르게 깨닫도록 하시는 권세가 있음을 나타내시고 그분이 열어놓은 길을 따라 진리를 깨닫도록 하시는 분으로 나타내신다.
이 교회는 힘이 매우 미약해 보이지만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키고 그분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칭찬을 받는다(계 3:8). 예수님은 사탄의 회당 신자들이 곧 와서 빌라델비아 신자들에게 경의를 표할 것이라는 흥미로운 약속을 주신다(계 3:9). 이 약속은 이전에 하나님의 백성을 가혹하게 취급했던 것과 정반대로 엎드려 굴복하는 압제자들의 모습을 묘사한 사 60:14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사탄의 회당이 초기 기독교인들의 삶을 어렵게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앞서 보았듯이 이전의 몇 교회들은 거짓을 가르치고 문제를 야기하는 자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것이 교회를 해치기 위한 사탄의 사업 방식이다. 그런데 빌라델비아 교회는 마침내 이런 악의 원천이 되는 교회를 제거했던 것으로 보인다.
2. 계 3:10을 읽어 보라. 그대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인내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예수님은 그들의 시험이 끝날 것임을 어떻게 약속하셨는가?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계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답: 빌라델비아 교회가 예수님의 말씀을 인내로 잘 지켰기 때문에 시험의 때를 면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오늘날 우리도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서 바르게 신앙한다면 예수 안에서 능히 시험을 이길 것이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이전의 교회와 똑같이 험난한 시기를 통과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는 달랐던 것 같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시정해야 할 잘못을 구체적으로 지목 받지 않은 첫 번째 교회이다. 구주께서는 작은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보여준 믿음과 하나님과의 협력을 주목하며 인정하셨다(8절).
이 교회의 승리자에게 주어진 약속은 더 이상 떠돌 필요가 없도록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는 것을 포함한다(계 3:12).
그들에게 주어진 새 이름으로 그들은 온전히 하나님께 속한 자로 판명된다. 물론 그들은 이전부터 삶의 모든 측면에서 하나님과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부가설명> 빌라델비아 교회는 개혁시대 끝 부분에 일어난 교회이다. 이 시대는 성소 진리를 깨닫는 시대이다. 열린 문은 진리를 바르게 깨달을 수 있게 열린 문이다. 이 시대에 계몽운동이 일어나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교육이 보편화 되었다. 교육의 문이 열렸고 말씀이 많이 출판되어서 누구나 쉽게 사서 읽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예수께서 진리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문을 열었기 때문에 아무도 닫을 수 없다. 그러나 빌라델비아에 유대인의 회라는 이름으로 사단의 회가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도 교회라는 이름으로 사단의 회당이 많은 것 같다. 루시퍼는 이들을 통하여 아무나 읽고 연구할 수 있는 진리의 말씀을 왜곡시킨다. 성경은 가지고 있지만 읽고 연구하지 않고 연구할지라도 말씀대로 연구하지 않고 신학과 기독교 문화와 전통에 의지하여 연구하기 때문에 진리를 왜곡시키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먹이고 있다. 유대인의 회가 하는 일이다. 재림교회는 적은 힘으로 이것을 이겨야 한다. 오직 기록된 말씀에 근거하여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바르게 깨닫는 지혜를 구하며 성령의 인도로 바른 말씀의 진리 길을 걷고 증거해야 할 것이다.
교훈: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주님의 칭찬을 받았고 원수가 와서 굴복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
다섯째날(목) 3월 17일
라오디게아 교회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라오디게아 교회에 소개된 예수님의 모습은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계 3:14)다. 이러한 묘사는 그리스도의 신성의 핵심 측면을 보여준다. 사 65:16에서 ‘아멘’은 ‘진리의 하나님’으로 번역되며 언약과 연관된다. 예수님은 언약을 지키는 위대한 하나님, 구원과 회복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다. 예수님은 또한 하나님이 정말 어떤 분인지 백성들에게 증언하는 신실한 증인이시다(계 1:5, 22:16, 요 1:18, 14:8~10). 그리고 그분은 창조주이시다(골 1:16~17).
1. 계 3:14~22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이 교회에게 무엇을 행하라고 말씀하시는가? 오늘날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계3:14~22]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원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답: 차든지 덥든지 하고 예수님에게서 금을 사고 흰 옷을 사서 입고 안약을 사서 발라 확실히 보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진정한 회개를 경험하고 예수님을 모셔 들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에게도 같은 권면을 하시기 때문에 권고대로 수행해야 한다.
먼저 이 말씀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 말한다. 그다음 이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밝힌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비로소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이 교회의 신자들은 자신들의 현 상태를 정반대로 생각할 만큼 어리석었다(계 3:17). 예수님은 그들이 정말 어떤 상태인지 보고, 고쳐야 할 것은 고치기 위해 안목의 정확성을 갖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하신다(계 3:18).
둘 중 하나이다. 약간 구식 부모들이 주는 것 같은 징계를 받든지(계 3:19) 아니면 마치 썩은 물처럼 하나님의 입에서 내쳐질 것이다(계 3:16).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에서 쫓겨나기 직전의 이 교회에 가장 위대한 약속이 주어졌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기를 원하신다(계 3:20). 이런 자리는 가까운 친구들을 위해 잡아 놓기 마련이다.
그분은 그들에게 자신의 보좌에 자신과 함께 앉을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하신다(계 3:21). 일곱 교회를 통해 추적해 보면 흥미롭게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서서히 냉담해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현상이 나타난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비록 전쟁에서 승리했어도 일부의 백성들은 여전히 악과 어둠의 권세를 고집스럽게 붙잡고 있다. 역시 우리는 이 교회들의 역사를 통해서 각 시대에 드러나고 표면화된 대쟁투를 볼 수 있다. 결국 대쟁투는 예수님의 재림의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부가설명> 라오디게아 교회는 역사의 종말의 교회를 표상하는 것을 우리 교회는 잘 알고 있다. 계시록에 이 교회는 칭찬을 받지 못한 교회이다. 그것이 바로 재림교회가 아닌가. 우리는 스스로 라오디게아 교회라고 주장한다. 기록대로 오늘날 재림교회는 칭찬할만하지 않은 교회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부하다고 생각하면서 진리의 가난을 겪고 있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하여 말하면서도 그 진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예언신의 증언과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있어도 제대로 보는 눈이 없다. 이것이 현재의 우리 상태가 아닌가. 사단은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공격하는데 시대를 따라 각각 다른 형태로 공격하는 것을 일곱 교회 상태를 통하여 가르쳐주었다. 지금 우리는 정말 정신을 차리고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뜨거운 열정으로 바르게 신앙생활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속히 모셔 들여서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경험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주님은 아직도 문 밖에서 두드리고 계신다. 그 소리를 듣고 속히 모셔 드리자.
교훈: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현실을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열심히 회개하며 그분께 문을 열라고 호소하신다.
여섯째날(금) 3월 1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우리는 목요일 교과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다뤘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엘렌 G. 화잇은 이렇게 기록했다.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 자신처럼 거룩하므로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만이 범법을 속죄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 밖에는 아무도 타락한 사람을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여 하늘과 조화시킬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책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매우 가증하므로 아버지와 아들을 틀림없이 분리시킬 죄의 수치를 자진해서 떠맡으실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비참의 심연(深淵)에까지 내려가실 것이었다”(부조와 선지자, 63). 단순한 논리이다. 율법은 하나님만큼 거룩하다. 따라서 하나님만큼 거룩한 존재만이 율법을 범한 죄를 속할 수 있다. 천사들은 죄가 없지만 창조주만큼 거룩하지는 않다. 어떤 피조물이 그것을 창조하신 분처럼 거룩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성경이 반복적으로 그리스도께서 바로 하나님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은 율법의 거룩성을 중심에 둔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죽으셔야 했던 이유는 율법, 더 정확하게는 율법을 어긴 범죄 때문이었다. 죄의 심각성은 그것을 속하기 위해 필요했던 무한한 희생 속에서 가장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즉 그러한 심각성 자체가 율법의 거룩함에 대해 말한다. 율법이 그렇게 거룩하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의 희생만이 그것의 요구에 응할 수 있었다. 율법이 얼마나 숭고한지를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증거가 여기에 있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근래에 내가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의 추종자들을 찾기 위하여 주위를 살펴보았을 때 내 마음은 심히 괴로웠다. 그리스도의 신속한 재림을 기다린다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의 조류를 따라가고 있다. 그들은…이름뿐인 교회들처럼 냉랭하고 형식적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기별의 말씀은 그들의 현재 형편을 잘 묘사해 주고 있다”(초기문집, 107). 비록 이 말씀이 약 150년 전에 기록되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적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글은 초기 재림 교회가 어느 정도 ‘좋았던 시절’이라는 가정에 대해 어떤 사실을 말해주나요?
※ 교회의 상태는 역사를 이어오면서 항상 대쟁투의 상태에 있기 때문에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이 함께 있다. 계시록의 일곱 교회의 장단점이 현재의 교회에도 여전히 공존한다. 우리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잘 듣고 회개하고 항상 진리에 굴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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