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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요시야의 개혁(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11/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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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5-11-14 17:39 조회9,23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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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18분

 

기억절 :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23:25).

 

연구 범위 : 대하 33장, 합 1:2~4, 왕하 22장, 빌 2:3~8, 왕하 23:1~28, 고전 5:7

 

자녀들이 나이를 먹고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나서 그들에게 해로운 결정을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부모에게 고통스러운 일이다. 물론 이러한 심적 고통은 부모와 자녀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또한 친구나 친척, 지인들이 그들에게 유해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볼 때도 있다. 이는 자유의지의 불행한 측면이다. 사실 잘못된 결정을 내릴 자유가 없다면 자유의지 특히 도덕적 자유의지는 아무 의미가 없다. 오직 옳은 것만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진

정한 자유가 아니며 심지어 진정한 도덕도 아니다.

성경은 자기 백성에게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이다. 예레미야서의 내용도 대부분 자유의지와 선택을 존중하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보내는 호소이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이야기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주에 한 가닥의 희망을 볼 것이다. 즉 우리는 자유의지를 활용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행하기로 결정했던 소수의 왕 가운데 한 명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배도 가운데 단행되었던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에 대하여 배운다.

➋ 느끼기 : 어린 왕 요시야의 용기와 하나님을 따르려는 그의 열망을 이해한다.

➌ 행하기 : 신앙생활의 필수적인 영역을 개혁하기로 결심한다.

 

A. 

❷ 선조에게 악한 감화를 받은 아몬과 요시야가 어떻게 각각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요?

※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에 굴복하고 굴복하지 않는 반응이다. 

❸ 유다의 멸망을 막지 못할 것이라면 요시야의 개혁은 어떤 가치가 있었던 것입니까?

※ 개인적으로 바른 신앙에 설 기회를 주는 것과 또한 후세를 위한 교훈도 되며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 여부도 드러낸다. 

❹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공을 장담할 수 없지만 반드시 시도하고 노력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굴복하는 것이다. 

 

B. 

❷ 요시야가 영적 부흥을 위해 시도한 일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 교회와 교인 개인이 자기를 깊이 성찰하여 바른 신앙에 서도록 권고하는 의미이다.

❸ 영적 부흥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그것만이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❹ 오늘날 우리가 영적 부흥을 위해 집중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에 굴복하고 말씀대로 생활하는 것이다. 

 

결론 : 요시야의 통치와 개혁은 바벨론 유수 직전의 영적 암흑기에 찾아온 마지막 신뢰와 평화의 막간이었습니다. 이 젊은 왕의 열정과 결심은 비록 다가올 재난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첫째날(일) 므낫세와 아몬의 통치

11월 15일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모든 나라보다 더욱 심하였더라”(대하 33:9).

 

우리가 사물을 아무리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고 싶어도 인간의 시각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세상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타락하고 부패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패는 우리 주변 세계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유다의 므낫세(기원전 686~643)와 같은 인물과 그의 끔찍한 배도의 시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가 유다 나라 안에서 유행하도록 허용했던 불경하고 혐오스러운 것들을 속으로 어떻게 정당화했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1. 대하 33장을 읽어 보라. 이 일화에 따르면 므낫세 왕은 얼마나 타락했는가? 여기서 우리는 기꺼이 용서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대하33:1~25] 므낫세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을 치리하며 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3 그 부친 히스기야의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하여 섬기며 4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영영히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전에 단들을 쌓고 5 또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단들을 쌓고 6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그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또 점치며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격발하였으며 7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목상을 하나님의 전에 세웠더라 옛적에 하나님이 이 전에 대하여 다윗과 그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이 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둘지라 8 만일 이스라엘 사람이 내가 명한 일 곧 모세로 전한 모든 율법과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면 내가 그들의 발로 다시는 그 열조에게 정하여 준 땅에서 옮기지 않게 하리라 하셨으나 9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열방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10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저희가 듣지 아니한 고로 1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장관들로 와서 치게 하시매 저희가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간지라 12 저가 환난을 당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 열조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비하여 13 기도한 고로 하나님이 그 기도를 받으시며 그 간구를 들으시사 저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거하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14 그 후에 다윗 성 밖 기혼 서편 골짜기 안에 외성을 쌓되 생선문 어귀까지 이르러 오벨을 둘러 심히 높이 쌓고 또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에 군대 장관을 두며 15 이방 신들과 여호와의 전의 우상을 제하며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산에와 예루살렘에 쌓은 모든 단을 다 성 밖에 던지고 16 여호와의 단을 중수하고 화목제와 감사제를 그 단 위에 드리고 유다를 명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하매 17 백성이 그 하나님 여호와께만 제사를 드렸으나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더라 18 므낫세의 남은 사적과 그 하나님께 기도한 말씀과 선견자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받들고 권한 말씀이 모두 이스라엘 열왕의 행장에 기록되었고 19 또 그 기도와 그 기도를 들으신 것과 그 모든 죄와 건과와 겸비하기 전에 산당을 세운 곳과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세운 곳들이 다 호새의 사기에 기록되니라 20 므낫세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궁에 장사하고 그 아들 아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21 아몬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 년을 치리하며 22 그 부친 므낫세의 행함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 부친 므낫세가 만든 아로새긴 모든 우상에게 제사하여 섬겼으며 23 이 아몬이 그 부친 므낫세의 스스로 겸비함같이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겸비치 아니하고 더욱 범죄하더니 24 그 신복이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이매 25 국민이 아몬 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 아들 요시야로 대신하여 왕을 삼으니라.

 

답: 므낫세는 자녀를 몰록에게 불살라 제사하는 지경까지 타락했다. 그러나 그가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 가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을 깨닫고 개혁을 단행하려고 했으나 너무 늦은 상태였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을 다 용서하신다. 얼마나 넉넉한 사랑인가?

 

갈고리와 족쇄를 차고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과정은 분명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했을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므낫세는 진정으로 회개하였고 왕좌를 되찾았을 때에 그가 저지른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 폐해가 너무나 컸다.

“이 회개가 비록 괄목할 만한 것이기는 하였으나 여러 해 동안 우상숭배의 행습으로 부패된 나라를 구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많은 사람들이 비틀거리다가 넘어져서 결코 다시 일어나지 못하였다”(선지자와 왕, 383). 안타깝게도 므낫세의 배도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은 그의 아들 아몬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죽자 왕좌에 올라 “그의 아버지 므낫세의 행함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만든 아로새긴 모든 우상에게 제사하여 섬겼”(대하 33:22)다. 심지어 그는 므낫세와 달리 회개조차 하지 않았다.

 

<부가설명> 열왕기와 역대기에 기록된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사적은 그것을 읽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한 사람이 없다. 예후가 잠깐 바알종교를 척결하는 일을 했지만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유다 왕들의 역사는 조금 다르다 때때로 선한 왕들이 있었다. 문제는 그 선한 왕 즉 하나님의 뜻을 수행한 왕들의 아들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떠난 상태로 통치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의 선한 통치가 아들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또 악한 왕들의 아들 중에 선한 왕이 일어났다. 아하스는 유대 열왕 중에 가장 악한 왕이다. 그러나 그 아들 히스기야는 가장 선한 왕 중에 하나이다. 그 아들 므낫세는 할아버지를 닮았는지 아하스보다 더 악한 왕이 되었다. 만년에 회개한 것이 아하스와 달랐을 뿐이다. 그리고 아몬은 여전히 악했는데 그 아들 요시야는 유다 역대 왕들 중에 가장 선한 왕이었다. 자녀교육 문제는 부모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탁하고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시는 은혜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부모는 스스로 진리를 따라 선한 감화로 생활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자녀가 그것을 배운다는 보장은 못한다. 오직 거듭나는 은사만이 영의 사람이 되게 할 것이다. 

 

교훈 : 므낫세는 혐오스러운 이방의 문화를 수용하여 유다를 깊이 타락시켰다. 그는 나중에 진심으로 회개했으나 그의 아들 아몬에게 악한 영향을 남겼다.

 

 

둘째날(월) 새로운 왕

11월 16일

 

“백성들이 아몬 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의 아들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으니라”(대하 33:25).

 

어느 설교자가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기도 제목에 주의하라. 정말 응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주변의 민족들처럼 왕을 구하며 기다렸다. 그들의 간청은 응답되었다. 그리고 사사시대 이후에 이스라엘의 역사는 왕들이 어떻게 타락했으며 그 결과 나라가 어떻게 부패했는지를 기록한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요시야 왕처럼 예외가 있기 마련이다. 그는 기원전 639년에 즉위하여 608년까지 유다를 다스렸다.

 

1. 새 왕이 권좌에 오르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대하 33:25 참고)

[대하33:25] 국민이 아몬 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 아들 요시야로 대신하여 왕을 삼으니라.

 

답: 아몬이 반역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자 국민이 반역자들을 죽이고 요시야를 왕을 세웠다.

 

비록 민주주의는 백성들에 따라 지배하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보통 그것이 이렇게 작동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뜻을 드러냈다. 왕권의 교체는 그들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다. 젊은 왕은 정부의 최고층에서 벌어지는 큰 혼란과 배도와 폭력이 난무하는 시기에 왕위에 올랐다. 현실을 보고 그 땅의 신실한 자들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과연 성취될 수 있을 것인지 의심하였다. “인간의 견해로 볼 때에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거의 성취되기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선지자와 왕, 384).

 

2. 신실한 자들의 염려는 선지자 하박국의 언어로 표현되었다. 합 1:2~4을 읽어 보라. 선지자가 하려는 말은 무엇인가? 

[합1:2~4]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3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4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

 

답: 악이 선을 이기고 있는 세상을 하나님께서 그냥 두시느냐고 하는 것이다. 

 

죄악과 폭력, 불화와 불법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북쪽 즉 바벨론인들로부터 올 것이었다. 그들은 곁길로 빠진 자기 백성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꼭 그렇게 될 필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회개하기를 거부함으로 말미암아 죄가 그들에게 가져온 징벌을 맞이했다.

 

<부가설명>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처럼 이방인에 대하여 말씀하신 사실은 기록하지 않고 있다. 즉 이방인에게는 이스라엘에 하신 것처럼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말이다. 선지자를 보내시지 않았고 성소를 지어서 속죄 제사를 드리라고 하지도 않았다. 오직 이스라엘에게 그렇게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지 않는 것을 책망하시고 징계하셨다. 그렇게 하시면서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하셨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아브라함에 주신 사명은 이스라엘이 온 세상의 복의 기관이 되는 것이었다. 모든 족속이 이스라엘을 인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을 올바르게 경배하고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제사장 나라가 되고 열국의 보배가 될 것이었다. 그들이 이방과 가은 상태에 빠지면 온 세상이 소망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런 안타까움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대하셨다. 선지자를 보내시고 경고하시고 돌아오라고 호소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런 사명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결국 이방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징계해서라도 그들의 사명을 수행하도록 하시려고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은 결국 실패하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면서 교회에 사명이 넘겨졌다. 우리는 어떤가?

 

교훈 : 백성들은 아몬이 제거되자 그의 아들인 어린 요시야를 왕으로 삼았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 거의 없는 시절에 왕이 되었다.

 

 

셋째날(화) 왕위에 오른 요시야

11월 17일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디다요 보스갓 아다야의 딸이더라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왕하 22:1~2).

 

1. 요시야가 왕위에 오른 배경을 고려했을 때에 위의 말씀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무엇인가?

 

답: 백성이 왕을 세웠기 때문에 백성들이 권리행사를 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왕이 하나님께 충성하기로 마음을 정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성경은 이 기특한 소년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설명도 제공하지 않는다. 이전 상황을 고려한다면 그는 아버지처럼 타락하고 악을 행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그는 비록 한계가 있었지만 국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열왕기하 22장은 요시야가 성전에 관하여 어떤 일을 행하였는지 언급한다.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했을 때부터 요시야의 개혁 때(기원전 622년)까지는 수백 년이 지났다. 이전 왕들은 성전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이전에 아름다웠던 그 건물도 세월을 이기지 못했다. 젊은 왕은 성전이 오랜 세월의 방치로 인해 더 이상 예배에 적합하지 않음을 보았다.

 

2. 요시야는 성전이 수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했는가?(왕하 22:3~7)

[왕하22:3~7] 요시야 왕 십팔 년에 왕이 므술람의 손자 아살리야의 아들 서기관 사반을 여호와의 전에 보내며 가로되 4 너는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올라가서 백성이 여호와의 전에 드린 은 곧 문 지킨 자가 수납한 은을 계수하여 5 여호와의 전 역사 감독자의 손에 붙여 저희로 여호와의 전에 있는 공장에게 주어 전의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하되 6 곧 목수와 건축자와 미장이에게 주게 하고 또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서 그 전을 수리하게 하라 하니라 7 그러나 저희 손에 붙인 은을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 행하는 것이 진실함이었더라.

 

답: 성전을 중수하도록 명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왕이 재무장관을 대제사장에게 보내서 그에게 계획을 세우고 성전 보수에 필요한 재료와 인력을 감독하도록 요구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신실하게 행하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맡겨진 돈을 회계할 필요가 없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요시야는 그들을 신뢰하였다. 성경 기록을 봤을 때 그러한 신뢰는 존중을 받았다.

 

<부가설명> 조선 역사를 살피면 반정으로 왕이 된 사람은 반정세력에게 휘둘리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요시야는 8세에 반정세력에게 왕으로 추대되었다. 반정세력이 바른 신앙과 하나님을 바르게 경배하지 않으면 어린 왕이 신앙적 통치를 하기가 심히 어렵다. 그런데 요시야가 개혁을 착수하고 신앙적인 통치를 했다는 것은 참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아버지가 하나님을 반역한 왕이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반정을 한 세력이 어떤 부류였는지 전혀 말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아몬의 악한 정치에 반기를 들었다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려는 사람들이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아스 왕을 보면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반정을 주도하여 왕으로 추대한 왕이다. 그가 외삼촌이며 대제사장인 여호야다가 살아 있을 동안 선한 정치를 하였다. 여호야다가 죽자 곧 악한 정치세력이 그를 둘러쌌을 때 그들을 따라 악행을 하였다. 요아스는 7세에 왕이 된 사람이다. 요시야와 비슷한 나이다. 그런데 요시야는 그를 추대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던지 간에 그가 헌신하고 신실한 신앙인으로서 개혁을 이루었다. 당시 정치적 상황을 보면 선한 세력이 거의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스스로 하나님께 자신을 바친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교훈 : 어린 왕 요시야는 선조의 악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했으며 영적 부흥을 위해 성전 보수와 예배 개혁을 단행했다.

 

 

넷째날(수) 율법책

11월 18일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왕하 22:11).

 

이스라엘 예배의 중심인 성전을 보수하는 일은 중요한 사업이었다. 그러나 건물의 보수만으로는 모든 것이 충족될 수 없었다. 예배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과 위대하심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된 최고의 미와 정교함을 갖춘 건축물도 그 자체로는 백성의 심령 속에 신앙심을 일깨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역사를 보면 잠시 동안 아름다운 교회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건물 밖으로 나가자마자 잔인한 행위를 일삼은 슬픈 이야기로 넘쳐난다. 그들은 아마도 바로 그 아름다운 교회에서 배운 것에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1. 성전을 보수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 일에 대한 요시야의 반응에는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는가?(왕하 22:8~11)

[왕하22:8~11]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9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돌아가서 복명하여 가로되 왕의 신복들이 전에 있던 돈을 쏟아 여호와의 전 역사 감독자의 손에 붙였나이다 하고 10 또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왕의 앞에서 읽으매 11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 옷을 찢으니라.

 

답: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여 왕에게 전하였고 왕은 그 내용을 듣고 곧 마음을 찢었다. 

 

그들은 율법책을 발견했다. 그것이 어느 부분이었는지 또는 책 전체였는지 성경은 언급하지 않는다. 아마도 성전 내부의 벽에 감춰져 있던 책이 발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2. 왕하 22:12~20을 읽어 보라. 훌다는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기별을 받아 요시야 왕과 백성에게 전했는가? 우리에게 이 기별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왕하22:12~20] 왕이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신 아사야에게 명하여 가로되 13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열조가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발하신 진노가 크도다 14 이에 제사장 힐기야와 또 아히감과 악볼과 사반과 아사야가 여선지 훌다에게로 나아가니 저는 할하스의 손자 디과의 아들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라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거하였더라 저희가 더불어 말하매 15 훌다가 저희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너희를 내게 보낸 사람에게 고하기를 16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곳과 그 거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의 읽은 책의 모든 말대로 하리니 17 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 손의 모든 소위로 나의 노를 격발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나의 이 곳을 향하여 발한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18 너희를 보내어 여호와께 묻게 한 유다 왕에게는 너희가 이렇게 고하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들은 말을 의논컨대 19 내가 이 곳과 그 거민에게 대하여 빈 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하여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20 그러므로 내가 너로 너의 열조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 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사자들이 왕에게 복명하니라.

 

답: 훌다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주신 같은 기별을 전하였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스스로 형벌에 들어가게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배워야 한다. 

 

훌다는 이미 예레미야가 여러 차례 예언했던 동일한 기별을 전했다.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졌던 백성들은 그들의 행위로 말미암아 자신의 무덤을 팠으며 그들은 그 결과를 거둘 것이었다. 요시야는 환난을 보지 않고 평화롭게 죽을 것이었다.

“여호와께서는 훌다를 통하여 예루살렘의 멸망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요시야에게 전달하셨다. 이제는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다 할지라도 그들은 형벌을 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매우 오랫동안 행악으로 인하여 그들의 감각이 둔하여졌으므로 만일 그들에게 형벌이 이르지 아니한다면 그들은 곧 동일한 죄악의 길로 돌아갈 것이었기 때문이다”(선지자와 왕, 399).

 

<부가설명> 심판은 하나님께서 형벌하시는 것이기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의 울타리를 벗어날 때 사단의 영역에 스스로 떨어지는 결과를 나타낸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렘2:19) 결국 그들을 보호하시고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의 보호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때문에 사망의 세력에게 그대로 노출 되는 것이며 사망의 세력은 그들을 사망으로 이끌어가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이런 사실을 분명히 가르친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고 그들의 종말의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종류요 무신한 자녀임이로다.”(신32:2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열조와 함께 자려니와 이 백성은 들어가 거할 그 땅에서 일어나서 이방 신들을 음란히 좇아 나를 버리며 내가 그들과 세운 언약을 어길 것이라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임함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뇨 할 것이라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을 좇는 모든 악행을 인하여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신31:16~18)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떠나면 곧 사망의 세력이 압도할 것이다. 그것이 환난이고 형벌이 되는 것이다. 

 

교훈 : 성전 보수로는 진정한 영적 부흥을 이룰 수 없었다. 마침 성전 벽에 감춰져있던 율법책을 발견하고 그 글을 읽은 요시야는 진정한 참회를 표현했다.

 

 

다섯째날(목) 요시야의 개혁

11월 19일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23:25).

 

멸망이 사전에 경고됐음에도 불구하고 요시야는 여전히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옳은 것을 행하기로 작정하였다. 재난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하늘의 응보의 형벌을 선고하시면서도 여호와께서는 회개와 개혁의 기회를 거두지 아니하셨다. 요시야는 이 일에 있어서 하나님 편에서 기꺼이 당신이 선고하신 형벌을 은혜로 경감시키실 것을 깨닫고 단호한 개혁을 일으키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로 결심하였다”(선지자와 왕, 400).

 

1. 왕하 23:1~28을 읽어 보라. 신실한 왕 요시야가 타락한 나라에 일으키기를 원했던 부흥의 핵심은 무엇이었는가? 이러한 행위는 선민 국가의 상황이 얼마나 악화되었는지 말해주는가?

[왕하23:1~28] 왕이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자기에게로 모으고 2 이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거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무론 노소하고 다 왕과 함께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3 왕이 대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좇기로 하니라 4 왕이 대제사장 힐기야와 모든 버금 제사장들과 문을 지킨 자들에게 명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기명을 여호와의 전에서 내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그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하고 5 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고을과 예루살렘 사면 산당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달과 열두 궁성과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 6 또 여호와의 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어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가 거기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 7 또 여호와의 전 가운데 미동의 집을 헐었으니 그 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이었더라 8 또 유다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오고 또 제사장이 분향하던 산당을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더럽게 하고 또 성문의 산당들을 헐어 버렸으니 이 산당들은 부윤 여호수아의 대문 어귀 곧 성문 왼편에 있었더라 9 산당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단에 올라가지 못하고 다만 그 형제 중에서 무교병을 먹을 뿐이었더라 10 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사람으로 몰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그 자녀를 불로 지나가게 하지 못하게 하고 11 또 유다 열왕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렸으니 이 말들은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곳의 근처 시종 나단멜렉의 집 곁에 있던 것이며 또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 12 유다 열왕이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세운 단들과 므낫세가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세운 단들을 왕이 다 헐고 거기서 빻아 내려서 그 가루를 기드론 시내에 쏟아 버리고 13 또 예루살렘 앞 멸망산 우편에 세운 산당을 더럽게 하였으니 이는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것이며 14 왕이 또 석상들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들을 찍고 사람의 해골로 그 곳에 채웠더라 15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16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묘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묘실에서 해골을 취하여다가 단 위에 불살라 그 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17 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성읍 사람들이 고하되 왕께서 벧엘의 단에 향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 18 가로되 그대로 두고 그 뼈를 옮기지 말라 하매 무리가 그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더라 19 전에 이스라엘 열왕이 사마리아 각 성읍에 지어서 여호와의 노를 격발한 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하되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대로 행하고 20 또 거기 있는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단 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해골을 단 위에 불사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21 왕이 뭇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22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열왕의 시대에든지 유다 열왕의 시대에든지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23 요시야 왕 십팔년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24 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박수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25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26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진노하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케 한 그 모든 격노를 인함이라 2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뺀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 두리라 한 이 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 28 요시야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답: 우상을 타파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는 신앙을 회복하려는 것이었다. 여기 기록된 내용을 통하여 당시 이스라엘이 온전히 이방화된 신앙을 가졌던 것을 알 수 있다. 

 

요시야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을 소집하였다. 근래에 발견된 율법책을 낭독하자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따르겠노라고 서약했다.

왕은 이 사업을 직접 집행하지 않았다. 대신 영적 책임이 있는 자들에게 필요한 일을 하도록 요구하였다. 일례로 수백 년 동안 이스라엘 안에 유행했던 이방 신앙의 상징과 조각상 같은 여러 사물들이 성전 안에 수집되었다. 때로 그것들은 유다에 부과된 평화의 조건이었고 때로는 강화와 굴복의 표시로 진열되었다. 이유야 어쨌든 그것들은 성전에 속한 물건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요시야는 그것들을 제거하고 파괴하도록 명령했다.

또한 요시야의 개혁 기간에 개최된 유월절 행사는 이전의 관습처럼 가족 단위로 기념하지 않고 민족 전체가 기념하였다. 그 유월절은 유다 백성들이 과거의 시대를 떠나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언약하신 대로 부족들에게 땅을 분배하시며, 그들의 삶에 매일 함께하시는 참하나님을 섬기기로 서약한 새로운 시대로 진입했다는 상징적인 의미였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 5:7).

 

<부가설명> 유다나라가 얼마나 타락의 길을 걸었는지 열왕기와 역대기를 읽으면 느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제사장 나라를 삼겠다고 하셨다. 제사장은 이방을 하나님께 드려 그들도 하나님의 복을 누리도록 하는 역할이다. 바울이 이 사실을 잘 나타내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롬15:16)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은 이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이방에 섞여서 이방화 했다. 철저히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알지 않았기 때문에 주위의 문화와 풍속이 너무 좋아 보인 것이다. 왕을 원할 때 그들은 열방과 같이 왕을 원했다. 열방 중에 하나가 되기로 생각한 것이다. 결과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나타났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우상의 전각으로 변질시키고 열국의 보배와 제사장 나라가 되라고 한 것을 열국의 치욕거리가 되어버렸다. 

이런 문제는 현재 재림교회의 처지를 돌아보게 하는 역사의 거울이 아닐까? 재림교인들의 사상이 열방의 종교를 흉내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개신교회가 부흥하는 것 같아 보이니까 그들의 방법을 도입하려고 하고 그들이 열광적이니까 우리도 그 흉내를 내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옛 이스라엘의 변질된 모습을 탓할 만한지 우리는 스스로 물어보고 올바른 신앙의 길에 굳게 서야 할 것이 아닌가.

 

교훈 : 예고된 멸망을 되돌릴 수는 없었지만 요시야 왕은 유다 안에 있던 우상숭배의 잔재를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11월 20일

 

이스라엘을 타락시켰던 부패의 깊이는 요시야가 단행해야 했던 개혁의 형태를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그 나라는 그렇게까지 타락했던 것일까? 어떤 의미에서 대답은 단순하다. 인류가 그만큼 타락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실시되었던 한 유명한 실험은 인간성이 얼마나 후퇴했는지를 보여주었다.

실험의 참여자들은 신문 광고를 통해 무작위로 모집되었다. 그들은 의자에 묶여있는 옆방의 사람에게 전기 자극을 주어야 했다. 충격 장치의 스위치에는 각각 ‘약간의 충격’, ‘위험’, ‘심각한 충격’이라는 표시와 왠지 불길한 ‘XXX’ 표시가 두 개 더 있었다. 참가자들은 실험을 주도하는 과학자의 명령에 따라 충격을 가해야 했다. 스위치를 올릴 때마다 옆방에서 비명과 자비를 애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실제 옆방에 있는 사람은 단지 연극을 할 뿐 전혀 전기 자극을 받지 않았다. 실험의 핵심은 평범한 참가자들이 단지 명령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까지 고통을 가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비록 많은 참가자들이 갈등하고, 혼란스러워하며, 심지어 분노했지만 누군가에게 고통을 가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중 65%는 가장 심각한 충격을 가하는 조작을 멈추지 않았다. 그 실험을 주도한 과학자는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 특정한 적대의식 없이도 단순히 그들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끔찍하고 파괴적인 과정의 대리인이 될 수 있다.”라고 기록했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공할 만행을 저지르는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왜? 기독교 신자들은 답을 알고 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요시야의 개혁은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줍니까? 다가올 재앙을 피하기에 너무 늦었다면 구태여 회개와 부흥과 개혁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모든 것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국가 전체에 임할 재난과 달리 그러한 부흥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하면서 그 이유를 찾아보십시오.

※ 우리는 스스로 결코 선을 행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선은 참 생명의 작용을 뜻한다. 우리는 이미 아담 안에서 사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사망이 되어 있을 때 참된 회개를 통하여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다. 아무리 재앙이 닥치는 그 현장이라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는 순간은 있다. 단체가 안 되어도 개인은 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구원은 완전히 개인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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