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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의로운 삶을 위한 지혜(질문, 대답, 설명) 02/2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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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4-02-15 22:55 조회3,7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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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의로운 삶을 위한 지혜

(2월 24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19분)

 

연구 범위: 시 119:1~16, 90:, 요 3:16, 시 95:7~11, 141:, 128:

 

기억절: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편 90:12).

 

하나님의 은혜는 죄를 용서해 주고 이제 믿음으로 살아가는 회개한 죄인에게 새 마음을 창조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의로운 삶을 위한 지침을 제공한다(시 119:9~16).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은 결코 율법주의적인 규칙 준수가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속에서 축복이 가득한 삶을 누리는 것이다(시 119:1, 2, 시 128:).

그러나 의인의 삶에도 유혹이 없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의인은 죄의 교활한 속성에 유혹을 받고(시 141:2~4) 심지어 그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의 신실함(혹은 불충실함)이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시험의 시간을 허락하신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교훈과 훈계에 귀를 기울이면 그들의 믿음은 정결해지고 주님에 대한 신뢰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의로운 삶을 위한 지혜는 유혹과 도전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의 역동성을 통해 얻어진다. 따라서 하나님께 우리의 날을 계수하는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해 달라는 기도(시 90:12)는 주님께 신실한 삶을 살겠다는 변함없는 헌신을 다짐하는 기도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것이 지혜이며 행복이다.

느끼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 율법을 따르는 것이 사람의 복인 것을 느낀다. 

행하기: 유한한 사람에게 주신 말씀과 무한한 사랑을 경험하는 감사와 찬양이 가득한 삶을 산다. 

 

TMI 위로

2.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을 마음에 간직할 때 어떤 유익들을 얻게 됩니까?(시 119:1)

*답: 복을 받는다.

3. 시편이 말하는(특별히 시간과 관련된) 지혜로운 삶이란 어떤 삶을 의미합니까?(시 90:12) 

*답: 날 계수하는 것을 깨달아 그 날들을 바르게 사는 것이다. 

4.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십니까? 그분이 단련하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시 105:20~22) 

*답: 이 유혹의 세상에서 우리가 굳건한 믿음을 더하기를 바라신다. 

5. 유혹은 어떤 점진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것을 이기는 방법은 무엇입니까?(시 1:)

*답: 꾀(생각)로 유혹하고 동행하게 하고 함께 앉아 먹게 하는 방법이다. 

6. 의인에게는 어떤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까? 그것은 무엇을 통해 이루어집니까?(시편 128:) 

*답: 가정이 평안하고 행복하다.

7.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우리에게 주는 행복은 무엇이며 어떻게 묘사되어 있습니까?(시 25:14)

*답: 하나님의 언약을 보여주셔서 언약이 실천되는 약속을 나타내신다. 

 

결론  하나님의 말씀은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한 지침을 제공하며 우리를 시험에서 보호하고 지혜를 주어 자유와 평화 속에 살게 한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이런 복들을 누리는 것이며 주님과 살아 있는 관계 속에서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가 실패할 때도 그분은 은혜 주시며 시험에서 승리하도록 도우신다. 이런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힘을 얻고 유한한 우리를 도우시는 그분을 찬양하는 것이 사람의 지혜이며 행복이다.

 

2월 18일(일) 내 마음에 간직한 주님의 말씀 

 

시편 119:1~16, 161~168을 읽어 보라.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떻게 지켜야 하며, 그렇게 할 때 어떤 복을 받게 되는가?

[시119:1~16]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2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 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4 주께서 명령하사 주의 법도를 잘 지키게 하셨나이다 5 내 길을 굳게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6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 7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 8 내가 주의 율례들을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10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12 찬송을 받으실 주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13 주의 입의 모든 규례들을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14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15 내가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길들에 주의하며 16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시119:161~168] 고관들이 거짓으로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162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163 나는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율법을 사랑하나이다 164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166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들을 행하였나이다 167 내 영혼이 주의 증거들을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 168 내가 주의 법도들과 증거들을 지켰사오니 나의 모든 행위가 주 앞에 있음이니이다.

*답: 잊지않고 마음에 새기고 매일 온 마음으로 계명을 따라 생활하면 큰 평안과 장애물이 없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매일의 믿음의 삶을 하나님과 함께 그의 의의 길을 걷는 순례로 묘사한다. 믿음 생활은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시 119:1) "주의 얼굴 빛 안에서"(시 89:15) 행함으로써 유지된다. 이것들은 결코 두 가지 다른 행보가 아니다. 주의 얼굴 빛 안에서 걷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걷는다는 것은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을 말한다(시 119:1, 2, 10). 

또 시편은 의로운 삶을 “그 길에 더럽히지 아니한”다고도 묘사한다(시 119:1, 흠정역). 더럽히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는 "흠 없는" 제사를 의미한다(출 12:5). 이처럼 의인의 삶은 산 제물이며(롬 12:1) 죄를 사랑함으로 더럽혀지지 않아야 한다. 또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올바른 삶의 방향을 택한다는 의미에서 "완전한 길"이다(시 101:2, 6, 18:32).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규례를 율법주의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차이에 대한 "좋은 분별력"을 가지는 것이며(시 111:10, 대상 22:12, 쉬운), 단순한 외적 행동이 아닌 전인적인 것이다.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은 각각 분리할 수 없는 삶의 총체적인 태도이다(시 119:1, 2).

하나님의 계명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것이다. 계명은 사람을 지혜롭게 하고 자유와 평화 속에 사는 방법을 알려 준다(시 119:7~11, 133). 시편 기자가 율법을 기뻐하는 이유는 율법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신하게 하기 때문이다(시 119:77, 174).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들은 마음이 평안하여 아무도 그들을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시 119:165, 쉬운). 넘어진다는 것은 도덕적 실패를 의미한다. 어두운 세상에서 “발에 등”(시 119:105)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시험에서 보호해 준다(시 119:110). 

 

<교훈> 주의 말씀은 시험에서 보호하고 지혜롭게 하며 자유와 평화 속에 살게 한다. 좋은 분별력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고 순종하는 것이 의인의 삶이다. 

 

<부가설명>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거듭난 사람들이다. 거듭나지 않고 교회 출석만 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들은 교인이지만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세상에는 인종이 많다. 예수님을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세상에 새로운 인종으로 태어난다. 그 인종 이름은 그리스도인이다.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이 아니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인종이 새롭게 생겨난 것이다. 그들이 거듭났는데, 거듭난다는 말은 아담의 씨로 태어난 것이 처음 난 것인데, 예수님을 믿음으로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은 두 번째 나는 것이다. 두 번째 나기 위하여서는 첫 번째 난 사람이 죽어야 한다. 그것을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고 표현한다(롬6:4~8).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새 사람으로 창조되어야 한다(엡4:22~24, 고후5:17). 이 사람들은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난 사람들이다(벧전1:23). 그래서 그들은 말씀의 사람이다. 이 사람들은 말씀이 생리(生理)가 된다.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계명이다. 그래서 십계명을 생명의 도(生命의道)(행7:38)라고 했다. 그들은 거듭난 생명이 살아가는 길이 있다. 그것이 바로 계명이다. 시인은 이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계명이 그의 삶의 방식이 되었기 때문에 계명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켜지는 것이다. 그는 계명을 지킨다는 의식이 없다. 사는 것이 그냥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월 19일(월) 우리에게 우리의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시편 90:, 102:11, 103:14~16을 읽어 보라. 이 글은 인간의 곤경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시90:1~17]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5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7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8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1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13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14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15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16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17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시102:2]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시103:14~16]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15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16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답: 인생의 날은 괴롭고 덧없어서 날아가는 것 같이 곤고한 중에 지나갔다.

 

타락한 인간의 존재는 영원의 빛에 비추어 볼 때 한낱 안개에 불과하다. 하나님 보시기에 천 년은 잠시이며 "밤의 한 순간 같을"(시 90:4)뿐이다. 하나님의 시간에 비하면 인간의 일생은 날아가는 것과 같다(시 90:10). 가장 강한 사람이라도 연약한 풀과 같으며(시 90:5, 6, 시 103:15, 16) 그 짧은 인생은 수고와 슬픔으로 가득하다(시 90:10). 신에 대한 믿음이 없는 세속적인 사람도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애달파 한다. 이는 자신의 유한한 존재와 대조되는 영원의 시간이 그들 없이도 계속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시편 90편은 사람을 돌보시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눈으로 이런 사람의 곤경을 보고 있다. 하나님은 대대로 그 백성의 거처가 되어 주셨다(시 90:1, 2). "거처"라는 히브리어 마온(ma’on)은 주님을 그 백성의 피난처 또는 도피처라고 묘사한다(시 91:9). 

하나님은 의로운 진노를 누르시고 은혜를 또다시 베푸신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시 90:11)라는 시편기자의 외침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의 궁극적 결말을 경험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과 여전히 사람들에게 회개할 수 있고, 의로운 삶을 위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희망이 있음을 암시한다.

성경에서 지혜는 단순한 지성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는 "우리의 날 세는 법"(시 90:12)을 아는 것이다. 우리의 날을 셀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시간이 끝이 있다는 것, 즉 우리가 유한한 존재임을 안다는 의미이다. 지혜로운 삶이란 인생의 덧없음을 인식함으로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이 지혜는 회개(시 90:8, 12) 그리고 하나님의 선물인 용서, 긍휼, 자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시 90:13, 14).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인간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죄와 죄가 이 세상에 끼친 영향에서 비롯된다. 죄의 파괴적인 영향은 어디에나 모든 사람 안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궁지에서 벗어날 길을 만들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감사하자(요 1:29, 요 3:14~21). 주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전혀 희망이 없었을 것이다.

 

<교훈> 문제는 유한하고 덧없는 인생 자체가 아니라 죄가 끼친 파괴적인 영향력이다. 지혜는 이런 어려움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알고 믿음과 순종으로 따르는 것이다. 

 

<부가설명> 사람은 시간 열차를 타고 묘지를 향해 여행하는 존재다. 열차는 생각보다 급행이다. 태초에 하나님은 사람이 영생하도록 창조하셨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일2:25). 그런데 시조 아담이 언약을 어겨서 영생이 사망이 되었다. 그 후로 인생의 날이 날아가듯이 빨리 지나간다. 사람들은 시간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나는 시간은 영원함이 변질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원함에는 시간이 없다.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면 시간이 없을 수밖에 없다. 사람이 영원한 생명에서 사망으로 떨어지자 창조주께서는 그들에게 시간을 주셔서 수명을 주시고 그 수명이 있는 기간에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받도록 하셨다(고후6:1,2). 이 기간이 시간이다. 그래서 시인은 날 계수할 줄 아는 것이 지혜의 마음을 가진 것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우리는 아직 날 계수할 수 있는 의식이 있고 무덤에 이르기 전에 예수님 안에서 영생을 회복해야 한다. 이것은 은혜 받을 때, 구원의 날이라고 한 것이다. 아멘.

 

2월 20일(화) 하나님의 시험

 

시편 81:7, 8, 95:7~11, 105:17~22을 읽어 보라.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시험은 무엇과 관련되어 있는가?

[시81:7,8]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 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8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

[시95:7~11]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9 그 때에 너희 조상들이 내가 행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조사하였도다 10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11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시105:17~22]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20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함이여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롭게 하였도다 21 그를 그의 집의 주관자로 삼아 그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게 하고 22 그의 뜻대로 모든 신하를 다스리며 그의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

*답: 시험은 단련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이 더욱 굳건하게 하는 것이다.

 

므리바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능력을 의심하여 그분을 시험했던 곳이다(출 17:1~7; 시 95:8, 9). 시편 81편은 이 상황을 흥미롭게 반전시켜서 같은 사건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시험하셨던 때로 해석한다(시 81:7). 그들은 불순종과 불신(시 81:11)으로 므리바의 시험에서 실패했다.

므리바의 기록은 두 가지 기별을 전해준다. 첫째, 하나님의 백성은 지난 세대의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대신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길을 따라야 한다(시 81:13). 둘째, 비록 백성들이 시험에 실패했지만 그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해 주셨다(시 81:7).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새로운 세대에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확신을 준다.

시편 105편은 자신의 미래를 이야기한 하나님의 예언을 요셉이 신뢰하고 있는지 그분께서 시련을 통해 시험하셨음을 보여준다(창 37:5~10, 시 105:19). 19절에서 "단련"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차랍(tsarap)은 "제거", "정제" 또는 "정화"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요셉의 믿음을 시험하신 목적은 약속에 대한 의심을 제하고 인도하심을 더욱 신뢰하게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징계의 목표는(시 105:20~22) 하나님의 자녀들을 강화하고 약속의 성취를 위해 준비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훈을 거부할 때 그 마음은 고집스럽게 되고 완고하게 굳어진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에 신속하고 의심 없이 순종하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잠들어 있거나 사탄의 속임수에 마비되어 있는데, 사탄은 변명과 핑계를 제시하며 동산에서 하와에게 말한 것처럼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고 하여 주저하는 자들을 장악한다. 

불순종은 범법자의 마음과 양심을 강퍅하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믿음도 타락하게 한다. 처음에는 매우 그릇되게 보이던 것들이 계속 그들 앞에 있게 되면 차츰 그러한 모습을 잃어버리게 되어, 마침내 그것이 정말로 죄인지 의심하게 되고 무의식중에 동일한 잘못을 범하기까지 된다"(교회증언 4권, 146).

 

<교훈> 하나님의 시험은 주의 자녀들을 강화하고 약속의 성취를 위해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다. 시험에 실패해도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며 우리를 깨어 믿게 하신다. 

 

<부가설명> 시험은 유혹하는 시험과 단련하는 시험이 있다. 단련하는 시험은 유혹하는 시험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유혹하는 시험은 사탄이 에덴동산에서 여자를 꾄 것과 같은 종류이지만 단련하는 시험은 요셉의 경우이다. 하나님께서는 유혹하는 시험을 하지 않으신다(약1:13).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을 단련하여 그들이 더욱 굳게 믿음에 서도록 하는 시험은 허락하신다. 때로는 유혹하는 시험을 허락하실 때가 있다. 다윗이 그런 시럼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나단을 통한 하나님의 책망을 듣자 즉시 회개했다. 이런 경험으로 다윗은 평생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하나님의 시험은 연단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연단이 필요하다고 보실 때 허락하시는 시험이다. 그 시험이 힘들 것 같으면 피할 길도 주신다(고전10:13).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당신의 백성이 까닭없는 고통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시련이 닥치면 하나님의 이런 사랑을 경험하는 은혜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2월 21일(수) 악한 길의 속임수 

 

시편 141편을 읽어 보라. 시편 기자는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가?

[시141:1~10]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오시옵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2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3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4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악을 행하지 말게 하시며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말게 하소서 5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 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하지 아니할지라 그들의 재난 중에도 내가 항상 기도하리로다 6 그들의 재판관들이 바위 곁에 내려 던져졌도다 내 말이 달므로 무리가 들으리로다 7 사람이 밭 갈아 흙을 부스러뜨림 같이 우리의 해골이 스올 입구에 흩어졌도다 8 주 여호와여 내 눈이 주께 향하며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 영혼을 빈궁한 대로 버려 두지 마옵소서 9 나를 지키사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놓은 올무와 악을 행하는 자들의 함정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10 악인은 자기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나만은 온전히 면하게 하소서.

*답: 악한 길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시편 기자는 안팎의 유혹으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는 악인의 계략에 의해 위험에 처할 뿐만 아니라(시 141:9, 10) 악인처럼 행동하고픈 유혹도 받는다. 첫 번째 약점은 말의 자제력이며, 시편 기자는 주께서 입술의 문을 지켜 주시기를 기도한다(시 141:3). 이것은 고대 도시를 보호하는 성문을 지키는 것에서 유래했다. 

 유혹은 하나님의 자녀가 의인의 권고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악인의 진수성찬에 참여하는 유혹에 넘어갈 것인지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시 141:4, 5). 시편 기자는 자신의 마음을 실제 전투가 일어나는 전장으로 묘사한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자신을 드리는 끊임없는 기도만이 그의 자녀를 유혹에서 구할 수 있다(시 141:2).

 

시편 1:1과 시편 141:4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유혹의 점진적이고 교활한 성격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시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141:4]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악을 행하지 말게 하시며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말게 하소서.

*답: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 마음이 기울어지고 행동으로 옮기고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도록 이렇게 점진적으로 이끌어간다.

 

시편 141:4은 유혹의 점진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첫째, 마음이 악을 향해 기울어진다. 둘째, 유혹은(반복하여) 악을 행하게 한다. 셋째, 그 마음은 악인의 진수성찬에 참여하고, 그들의 악행을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마찬가지로 시편 1:1에서 유혹은 하나님의 자녀로 하여금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마침내 오만한 자들과 함께 앉게 함으로써 주님의 길을 걷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악인, 죄인, 오만한 자들과 같이 되지 말고, 그들이 우리를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해서도 안 된다.

이 시편들은 유혹의 점진적이고 매혹적이며 교활한 특성을 묘사하며, 주님에 대한 전적인 의존만이 승리를 보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시편은 유혹 가운에서 듣는 말, 하는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악인과 의인의 종말은 모두 사람에게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도록 가르친다(시 1:4~6, 시 141:8~10). 

아직 두 시편 모두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최종적인 옹호하심은 미래에 이루어질 일이다. 이것은 신자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을 기다리라는 부름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교훈> 악의 유혹은 점진적이고 매혹적이며 교활하다. 유혹 가운데서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주님에 대한 전적인 의존만이 승리를 보장할 수 있다. 

 

<부가설명> 유혹은 태초 에덴동산에서 사탄으로부터 세상에 들어왔다. 이 시편의 기자는 그것을 염두에 두고 이 시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사탄은 여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의심을 품도록 꾀를 내어 말을 걸었고 그 말에 귀가 솔깃한 것을 보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가는 길을 열었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먹는 자리에 있게 하였다. 유혹자들이 음식공세를 잘한다. 초청하고 그럴듯한 담화를 하고 그리고 진수성찬을 차려서 먹게 한다. 그것을 먹으면 이미 유혹에 떨어진 것이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너더러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 네가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겠고 네 아름다운 말도 헛된 데로 돌아가리라”(잠23:7,8). 세상에서 유혹하는 자의 방법이 바로 태초에 사탄이 한 이런 방법을 조금씩 변형해서 사용할 뿐이다. 그래서 듣는 것을 조심하고 말하는 것을 조심하고 먹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뜻과 어긋나는 것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골3:1~3). 우리는 이 말씀을 명심하고 생활해야 할 것이다. 

 

2월 22일(목) 의로운 삶의 축복

 

시편 1:1~3, 112:1~9, 128:을 읽어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축복이 약속되어 있는가?

[시1:1~3]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112:1~9]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3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4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 5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 6 그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억되리로다 7 그는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8 그의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의 대적들이 받는 보응을 마침내 보리로다 9 그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 중에 들리리로다.

[시128:1~6]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답: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이 무성할 것이고 자녀들이 강할 것이며 범사에 형통하려 사람들에게 복을 줄 것이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약속된 많은 복 중에서 아마도 가장 큰 복은 평화일 것이다. 시편 1편은 의인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것에 비유한다(시 1:3, 렘 17:7, 8, 겔 47:12). 이 비유는 모든 복의 근원을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며 하나님과 중단 없는 사랑의 관계를 누리는 것으로 정의한다. 불안정하며, 거처도, 미래도 없는 겨로 묘사되는 악인과 달리 의인은 뿌리가 있어서 열매 맺는 나무처럼 하나님과 영생에 가까이 있다.

시편 128:2, 3에서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는 것은 평화와 번영의 상징으로 메시아 왕국의 축복을 떠올리게 한다(미 4:4). 예루살렘에 임하는 평화의 축복(시 122:6~8, 시 128:5, 6)은 악을 끝내고 세상의 평화를 회복하실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말한다. 

"성경은 구원 얻은 자의 유업을 본향이라고 부른다(히 11:14~16 참조). 그곳에서 하늘의 목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양 무리를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신다. 생명나무는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는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다. 흘러 다함이 없는 강은 수정같이 맑고 그 가에 있는 나무들은 구속받은 주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준비된 길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넓은 평원이 아름다운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하나님의 산들은 높은 봉우리들을 뻗고 있다. 이 평화로운 평원에서, 이 생명 강가에서, 오랫동안 순례자요 방랑자로 살아온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들은 그들이 거할 집을 발견한다"(각 시대의 대쟁투, 675).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새 땅의 창조를 통해 그 소망이 성취되는 것을 묘사한다(마 26:29, 계 21:). 

그러므로 의인은 이 땅에서 누리는 많은 복보다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회복되는 마지막 때에 주시는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더 사모한다. 

 

<교훈> 불안정한 악인과 달리 의인은 뿌리가 있어서 열매 맺는 나무처럼 하나님과 영생에 가까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 가운데서 평화를 누릴 것이다. 

 

<부가설명> 이 세상은 사탄이 주장하고 다스리며(눅4:5,6)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는 곳이다(롬5:17,21). 이 세상에 살아갈 동안 이 왕의 간섭을 피할 수 없다. 비록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도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치외법권자가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과 그분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도덕적 법률적인 일들은 순응해야 한다. 예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라고 하셨다. 그러나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 서로 충돌할 때는 단호히 한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4:1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5:29).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상이이요 태도다. 이럴 때 핍박과 환난이 닥친다. 아직도 내가 사는 장소가 사탄이 왕 노릇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망 중에 즐거워한다. 이 소망이 성취될 때까지 인내로 주님을 올바르게 따라야 한다. 세상이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으나 주님을 의지할 때 성령님과 천사들이 보호하고 지킬 것이다. 낙심하지 말자. 십자가를 바라보자. 

 

2월 23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요즘 사람들은 지혜보다 행복을 더 원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 없이 진정으로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시편은 그럴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한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지혜와 행복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진정한 행복을 가져온다.

히브리어는 이것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다. 히브리어 "계단"의 복수형 '아슈리'(’ashurey)는 "행복"이라는 단어 '아슈레이'(’ashrey)와 매우 유사하게 들린다. 번역하면서 이런 연관성은 사라졌지만, 히브리어의 원문은 강력한 뜻을 전하고 있다. 그의 정로로 가는 "계단"은 "행복"한 삶으로 이끈다는 것이다(시 1:1, 17:5, 37:31, 44:18, 89:15, 119:1). 성경의 지혜나 행복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실제 경험이다.

지혜와 행복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하고, 그 안에서 힘을 얻고, 그분을 신뢰하는 관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시편 25:14은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하신 빛나는 장면들에 감사하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복된 보증들을 모으고 늘 바라보자.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을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의 신성을 인성으로 옷 입으시고 아버지의 보좌를 떠나신 것과, 우리를 위하여 승리하심으로 인류에게 하늘 문을 열어 주시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알현실(謁見室)을 사람에게 보여 주시는 것과, 타락한 인류가 죄로 인하여 빠진 그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사 다시 무한하신 하나님께로 연합하게 하시는 것과, 또 인류가 우리 구주에 대한 신앙을 시험하는 것을 견디고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고 보좌에 함께 앉기까지 높임을 받는 것,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깊이 묵상하기를 원하시는 장면들이다"(정로의 계단, 117)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단순한 교훈을 넘어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요 1:1, 요 15:5, 7)?

*답: 예수님은 그 이름이 하나님의 말씀이다(계19:13). 

2. 사람들이 의식적이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교훈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가(시편 81편, 시편 95편)? 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가?

*답: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신다. 그러면 하나님의 안식에 못 들어간다.

3. 왜 때때로 악인의 길이 의인의 계획보다 더 좋아 보일 수 있는가(시 141편)? 악인들이 종종 아주 잘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답: 세상을 악의 왕인 사탄이 다스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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