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과 광야에서의 승리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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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6-02-01 12:03 조회3,561회 댓글2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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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 6 과 광야에서의 승리
기억절: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첫째 날(일) 구원하러 오신 임마누엘
*도입질문: 예수님께서 임마누엘이란 이름으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임마누엘이란 이름의 의미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1:23)입니다.
임마누엘이란 이름을 사용하신 이유는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고 싶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지만, 사단이 주는 전파에 익숙한 우리들이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여 우리가 선택한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오해 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선택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시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임을 증거 하기 위해 이름을 사용하셨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떠난 이유는 사단의 거짓말에 속은 여자의 말을 선택함으로 여자와 같이 하나님을 창조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창3:4), 또한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였기(창3:5)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여 두려워하거나 떠나는 선택을 하는 것이 악이요 죄입니다.(마25:24-26, 렘2:13)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주고, 그 사랑에 감동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마20:28, 요14:9)
그래서 요한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정의한 것입니다.(요17:3)
둘째 날(월) 예수님의 침례
*도입질문: 침례 요한이 베푼 침례의 의미는 무엇이며, 예수님께서 침례 받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침례 요한은 예수님의 초림을 준비케 하는 선지자였습니다. 침례 요한은 메시야를 맞이할 백성들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침례를 통해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삶이 되길 원했습니다. 침례를 통해 하나님과 상관없었던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연결된 삶이 되도록 준비시켰고, 이 일을 통해 초림하시는 예수님을 구약의 메시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침례는 침례 요한이 베풀었던 의미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생명 그 자체로 오셨고, 하나님과 분리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침례식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에게 침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신 이유는 의를 이루는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마3:15)
침례는 죽고 장사지내고 다시 사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롬6:4) 침례를 통해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나면서부터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사단과 연결되어 태어남으로 죄인이 되었으므로 사망에 속한 모든 상태가 침례와 더불어 죽고 장사지내고, 이제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다시 생명 속에 사는 것이 의라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의 침례는 사단의 자녀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침례의 의미를 알고 침례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보증합니다.(마3:17)
셋째 날(화)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도입질문: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사단의 말이 예수님께는 시험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사단은 우리들에게는 절대로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시험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런 신적인 능력이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예수님께 시험거리가 된 이유는 예수님은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실 신적 능력을 가지신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는 두 번째 아담의 위치로 오셨기에 첫 번째 아담의 모습으로 오시고 살아야만 합니다. 첫 번째 아담은 온전히 인성만을 가지고 있었고, 예수님은 신성에 인성을 덧입으신 것(요1:14)이므로 예수님은 온전한 신성과 온전한 인성을 다 가지고 계셨습니다. 신성과 인성을 다 가지고 계신 예수님이 두 번째 아담으로서의 위치로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가지고 계셨던 신성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첫 번째 아담과 같은 위치로 되신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신성을 사용하셨다면 그것은 첫 번째 아담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므로 우리를 위한 구원을 이룰 자격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사단은 예수님의 신성을 사용하시도록 수많은 시험을 가한 것입니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온전히 둘째 아담으로서의 위치와 삶을 사셨다가 둘째 아담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첫 번째 아담의 선택의 결과인 영원한 죽음을 당하셨기에 죽음문제 즉 죄의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넷째 날(수) 두 번째 시험
*도입질문: 사단의 두 번째 시험의 핵심은 무엇이며 예수님은 그 시험을 어떻게 물리치셨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사단의 두 번째 시험 역시 예수님이 가지고 계셨던 신성을 사용하라는 시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신성을 사용하시는 순간 그것은 첫 번째 아담의 모습이 아니므로 우리를 위한 대속이 깨어져 버리게 됩니다.
신성을 사용할 수 있지만 구원을 위해 사용하지 않기로 선택하신 예수님에게 사단의 말은 시험거리가 되었지만, 그때마다 예수님은 성경 말씀에 대한 확신으로 사단의 시험을 단호히 물리치실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상고하고 선택할 때 날선 검 같은 예리함으로 나의 생각을 지켜주고 하나님에 대한 확신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선택하게 합니다.
다섯째 날(목) 마귀 숭배
*도입질문: 사단의 세 번째 시험의 요지는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사단의 세 번째 시험은 누구에게 경배할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사단은 그가 가진 조건적인 품성대로 자신에게 경배하면 이 세상의 모든 권력을 주겠다고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경배는 피조물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께만 할 수 있는 것임을 증거 하셨고, 예수님이 제시하신 하나님께 대한 경배는 구원이나 모든 권력을 갖기 위한 조건이 아닌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감동에 의한 감사와 기쁨의 경배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빌2:5-11, 계14:7)
하나님께 경배 드리고자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무서워서도 아니고, 경배해야만 구원을 주시거나 복을 주셔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섬기시고 죽기까지 섬기시는(마20:28) 창조주로서의 사랑에 감동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감동되지 아니한 경배, 두려움 속에 하는 경배는 창조주 하나님에게 하는 경배가 아닐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은 그런 경배를 강요하시거나 받으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경배나 예배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자신의 생명까지도 버리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에 대한 감동만이 감사와 기쁨의 경배 혹은 예배를 하게 합니다.
댓글목록
최규현님의 댓글
최규현 작성일매주 올려주신 말씀 감사합니다
박용범님의 댓글
박용범 작성일
감사합니다. 장로님
복된 안식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