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과-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핵심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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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4-02-27 03:49 조회1,659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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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과 찬송(讚頌)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3월 2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26분)
<기억절(記憶節)>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시편 118:22, 23).
<핵심(核心)& 맥(脈)>
[1]. 시편(詩篇)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천국 사역과 그분의 재림(再臨)에 대한 더 넓은 관점(觀點)을 제공(提供)합니다. 이번 주(제9과)에 우리는 시편을 통해 예수님과 그분의 사역에 대한 이러한 관점 중 일부를 고려(考慮)해 볼 것입니다.
[2]. 제9과에서 우리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숭고한 주제인 우리의 주님이자 구원자(救援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공부할 것입니다. 성경 전체에 대한 예수님의 중심성(中心性)은 우리의 성경이해(聖經理解)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며, 이와 관련하여 시편(詩篇)도 예외(例外)는 아닙니다. 용서(容恕), 정의(定義), 보복(報復)을 찬양(讚揚)하는 다양(多樣)한 노래 중에서 예수님은 선(善)한 목자(牧者), 고통받는 메시아, 다윗의 자손(子孫), 영원한 왕(王), 하늘의 제사장(祭司長)으로 묘사(描寫)됩니다. 이러한 묘사는 우리가 구속(救贖)의 계획에서 그분의 탁월(卓越)한 위치와 우리 모두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더 잘 이해(理解)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⑴.시편은-"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증언합니다.
⑵.시편은-구원의 계획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거의 모든 측면에서 나타나 있다.
⑶.시편은-다양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이 예표 되고, 예언되어있다.
⑷.시편은-그리스도의 신성(神聖)과 인성(人性)이 예표 되고 예언되어있다.
⑸.시편은-예수님의 순종과 하나님의 성전을 향한 열심히 나타나 있다.
⑹.시편은-선(善)한 목자로서의 정체성과 그분을 배반(背叛)할 것과 고난(苦難)에 대해서
⑺.시편은-예수님의 뼈가 꺾이지 않음, 그분의 죽음, 부활, 승천, 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⑻.시편은-예수님의 제사장 직분(職分)과 왕권(王權) 등이 기록에 포함되어 있다
⑼.시편은-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시기 수세기전(數世紀前)에 이미 예측(豫測)된 모든 것이 기록되었다.
⑽.시편은-세상의 구원(救援)을 위한 그리스도의 기도(祈禱) 메아리를 시편기자(詩篇記者)들의 탄식(歎息)과 감사(感謝)와 찬양(讚揚)과 그리고 정의(定義)와 구원(救援)을 위해 부르짖음을 시편을 통해 들을 수 있다.
(02월 25일) (일) <자기(自己) 목숨을 버리는 거룩한 목자(牧者)>
(Q)~시편(詩篇)에 예수님의 다양(多樣)한 모습이 나타나 있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찾기를 원(願)하기 때문이며 선한 목자와 양(羊)의 비유(譬喩)에서 어떤 교훈(敎訓)을 주시는지요? (시 23:1~6, 100:3, 요 10:11~15, 눅 24:44)
(A)~<선(善)한 목자(牧者)가 자기 명예(名譽)를 걸고 양 떼를 잘 관리하듯이,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기 백성을 선(善)하게 이끄신다. 선한 목자 밑에 있는 양 떼가 목자의 돌봄에 완전히 만족하며 행복해하듯이, 하나님의 백성도 하나님의 돌보심에 만족하며 평안(平安)을 누릴 수 있다.>
⑴.목자(牧者)와 양(羊)-인도(引導)와 지속적인 돌보심이 필요하다
⑵.양(羊)은 이기적(利己的)이어서 목자가 없으면 양(羊)은 각자 자기 먹이 찾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멋대로 가버린다. (이사야 53:6)
⑶.양(羊)은 무력(無力)한 동물(動物)로써 시력(視力)도 약(弱)하고 보호 장비(保護裝備)가 없다.
(양은 강한 이빨을 가지거나 뾰족한 뿔을 갖고 있지 않음으로 자기 방어력(防禦力)이 없다.)
⑷.양(羊)은 세심(細心)한 관리(管理)가 필요한 동물이다.
(방향 감각(方向感覺)도 없고 야생(野生)에서 살아남기가 힘들다)
⑸.목자(牧者)가 얼마나 양(羊)에게 필요한지 알 수 있다.
(푸른 초장으로의 인도나 맹수의 공격퇴치(攻擊退治)나 질병치료(疾病治療)와 돌보심이 없이는 자연사(自然死)까지 살아남기가 어렵다)
⑹.목자(牧者)가 얼마나 지혜롭고 부지런하며 용감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⑺.양(羊)은 주인의 음성(音聲)을 알아야 합니다. (요10:3-5)
⑻.이 세상 목자들이 자기의 양을 알듯이, 신령하신 목자(牧者) 예수 님께서도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양(羊)무리를 아신다. (복음 교역자 181)
⑼.목자(牧者)가 양(羊)을 한 마리씩 다정하게 돌보듯이,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백성을 그와 같이 돌보신다.
⑽.목자(牧者)이신 예수님과 양(羊)인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인도와 지속적(持續的)인 돌보심과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 의존하는 백성의 관계(關係)를 말씀한다..
목자(牧者)는 양(羊)의 인도자(引導者)로 지속적(持續的)으로 돌보며 죽음도 불사(不辭)한 자아희생(自我犧牲)으로 생애(生涯) 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생애(生涯)가 목자로서 저희 인간들이 양(羊)으로 비유(譬喩)된 것으로의 희생(犧牲)을 다 하신 그분이 이야말로 목자(牧者)를 절대적으로 의존(依存)해야 할 의존(依存)의 관계(關係)의 거룩한 목자이시다.
(02월 26일) (월) <고난(苦難)받는 메시아>
(Q)~시편(詩篇)은 예수의 고난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메시아는 자신이 구원(救援)하기 위해 온 사람으로부터 어떤 대접(待接)을 받으셨으며, 그분은 고난(苦難) 중에 무엇을 보여주셨습니까? (시편 221~31. 시편 118:22, 벧전 2:4)
(A)~<그는(예수님) 악인(惡人)으로서, 불경스러운 자, 안식일을 범한 자, 음주가, 거짓된 선지자, 가이사의 대적으로서, 그리고 마귀들의 왕과 동맹한 자로서 비방당했다.
그는 천(賤)하고 경멸(輕蔑)할 만한 자로서, 주목할 만한 가치도 없는 자로서, 그의 나라에서 명성이 없으며 초라한 목수(木手)의 혈통(血統)을 지닌 자로서 관원들이나 바리새인들이 아닌 어중이떠중이들을 추종자(追從者)로 갖고 있는 자로서 멸시(蔑視)당했다.>
⑴.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심으로 (시편 22편)은 인류의 죄를 위해 당하는 메시아의 고난에 대한 기록이며 이 예언은 모두 성취(成就)되었다.
⑵.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여러 세기 전에 구세주(救世主)께서는 그가 받으셔야만 할 대우에 대하여 미리 예언(豫言)하셨다.
⑶.그는 어리석은 자로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속이는 자로서 사람들에게 경멸(輕蔑)과 조롱(嘲弄)을 당하셨다.
⑷.하나님은 십자가(十字架)에서 예수님의 모든 부르짖음을 다 들으셨지만, 그리스도는 응답의 증거를 얻지 못하였다. (시대의 소망, 753).
⑸.그는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手足)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시 22:16-18)라고 말씀하셨다.
⑹.그의 옷에 관한 예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의 친구나, 원수(怨讐)와의 어떤 의논(議論)이나, 방해(妨害) 없이 가져간 바 되리라고 하였다.
⑺.그리스도의 옷은 그를 십자가에 달은 군병(軍兵)들에게 주어진 바 되었다.
⑻.그의 속옷은 꿰어 매지 아니하고 통으로 짠 것이었는데 저들은 말하기를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뽑자”라고 하였다. (소망 746).
⑼.이 시(詩)에서는 죄의 고백(告白)이나 원한(怨恨)의 기색(氣色)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⑽.시인(詩人)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신약에서의 빈번한 언급들은 이 시(詩)가 적어도 부분적(部分的)으로는 메시아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입증(立證)한다. (마 27:35, 39, 43, 46; 막 15:24, 34; 눅 23:34, 35; 요 19:24, 28). 복합적(複合的), 이중적(二重的) 적용(適用)에 관한 원칙에 관해서는 (신 18:15) 참조
◉.죄악의 극심한 고통 중에도 그는 아버지를 온전히 의지(依支)하고 인류의 구원(救援)을 이루셨다.
(02월 27일) (화) <영원(永遠)토록 언약(言約)에 신실(信實)하심>
(Q)~다윗 언약은 무엇에 관한 것인가? 그 언약은 무엇 때문에 깨어졌는가? 하나님이 언약에 신실하신 것은 어떤 확신을 줍니까? 그는 왜 언약에 신실하십니까? (시 89:4, 시편 89:27~32, 38~46, 132:10~12)
(A)~<다윗에게 주신 언약(삼하 7:11~16)과 하나님의 언약(言約)은 다 영원(永遠)히 굳게 설 것입니다. 그러나 특별히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에 이처럼 영원하다는 단어가 강조되고 있기에 다윗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⑴.다윗에게 주어진 왕권(王權)이 자손(子孫)들에게 영원히 경고하게 주어질 것이다. (대하 7:13~16).
⑵.다윗 언약의 영원성(永遠性)은 다윗 자손의 신실(信實)함 때문에 좌우되지 않는다. (삼하 23:5).
⑶.영원히 왕위(王位)를 지속(持續)시키겠다는 하나님의 맹세(盟誓)이자, 언약(言約)입니다.
⑷.다윗 왕국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승귀(昇貴)와 하나님 나라의 모든 특성과 영광을 보여주신다.
⑸.(언약(言約)의 흐름) 여인의 후손(창 3:15)? 셈의 후손(창 9:27)? 아브라함에게서 날 자 (창 15:4)? 유다 지파 (창 49:10)? 다윗(삼하 7)? 다윗의 후손(後孫)→ 다윗의 자손(子孫) 예수그리스도 (마태 1:1).
⑹.다윗 언약에는 다윗 혈통(血統)을 영원히 지지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번영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삼하 7:5~16 시 89:1~4, 19~37; 시 132:12~18).
⑺.언약의 영속성(永續性)은 하나님의 엄숙(嚴肅)한 맹세(盟誓)와 하나님께 대한 왕의 신실하심 위에 세워졌습니다.
⑻.사람들은 그들의 불순종의 쓰라린 결과를 느끼고 그들의 죄의 심각성(深刻性)을 깨닫는다. (시 89:38~46).
⑼.언약(言約)의 인간적(人間的) 요소(要素)는 실패했지만, 백성은 이스라엘과 온 세상의 모든 의(義)와 구원(救援)을 구현(具現)하는 메시아를 통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목적에 대한 약속 안에서 안식(安息)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⑽.하나님은 승리(勝利)하실 것이며 그분의 영원한 왕국은 영원히 세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예수님 때문이지 하나님의 백성(百姓) 때문이 아닙니다.
(02월 28일)(수)<비교(比較)할 수 없는 권능(權能)의 영원(永遠)한 왕(王)>
(Q)~왕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며, 영원한 왕이 통치하실 것이라는 사실은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말하고 있습니까? (시편 2:1~12, 110:1~3, 89:4, 13~17, 110:1, 2, 5, 6시 89:27)
(A)~<아무것도 그분의 길을 방해할 수 없다. 그분의 능력은 절대적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그분의 약속을 분명히 성취시켜 주신다는 보증이 된다.>
⑴.다윗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의 위대(偉大)하심은 한 마디로 “비교불가(比較不可)”입니다
⑵.하나님을 경험(經驗)한 자들이 그 하나님을 향(向)하여 올려드린 고백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⑶.이스라엘은 광야(廣野) 길에서 엘림에서 그들을 치유(治癒)하시는 하나님을 만났고 “여호와 라파”의 이름을 높였다.
⑷.그들에게 승리(勝利)를 주신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
⑸.그들 가운데 머무시며 좌정(坐定)하셔서 함께하시는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 (겔 48:35)
⑹.부활(復活)하신 그리스도, 보좌(寶座)에 높이 앉아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은 하나님의 능력의 광대(廣大)하심을 가장 잘 보여준다.
⑺.결국,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원수(怨讐)들에 대해 절대적(絶對的)인 승리(勝利)를 거두실 것이다.
⑻.그리스도의 독보적(獨步的)인 통치(統治)를 묘사(描寫)하는 “지팡이”는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한다(계 2:27, 계12:5).
⑼.예수 님(王)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축복이 약속되어 있으며, 백성은 메시아의 주권(主權)과 의로운 통치(統治)를 기뻐합니다. (시 2:12. 시 89:15-17).
⑽.결국에는 선(善)이 악(惡)을 이기고, 정의(定義)가 실현되며, 고통과 고난이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02월 29일) (목) <멜기세덱의 계통(系統)에 따른 영원(永遠)한 제사장(祭司長)>
(Q)~시편이 말하는 왕 같은 제사장은 무엇이 특별하며 어떤 의미가 있으며,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어떻게 독특하며, 그리스도의 하늘 제사장직에서 우리는 어떤 큰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까“ (시편 110:4~7, 히 6:20)
(A)~<①이 세상의 제사장은 몇 년 동안이나 또는 일생 동안만 그 역할(役割)을 감당하였지만, 그리스도의 중보(仲保) 사역(使役)은 영원하므로 현재도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하실 수 있다. 즉,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은 우리 구원(救援)의 성취여부(成就與否)의 관건(關鍵)이 되는 지극히 중요한 사안(事案)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중보(仲保) 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②.시편기자는 멜기세덱이 그리스도와 유사(類似)한 점을 그려낸 후, 멜기세덱이 아브라함과 다르다고(그리고 그에 따라 레위 족속과 다르다고) 주장하며, 그로 의해 그리스도가 낡은 율법에 정해진 직분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나타낸다(히 7:4-10).>
⑴.”멜기세덱“이라는 명칭(名稱)은 (창 14:18)에서 멜기세덱은 살렘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祭司長)이라 한다.
⑵.예수님은 ”멜기세덱“의 서열(班次)을 따른 영원한 제사장(祭司長)이시다.
⑶.”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십일조를 받음으로써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의 제사장직(祭司長職)“의 특출(特出)함을 인정하게 된다.
⑷.(시편 110:4)이 구절(句節)은 구세주(救世主)로 기대되는 제사장(祭司長)인 왕이 아론의 반차(班次)가 아니고 옛 멜기세덱의 반차(班次)를 좇아 만들어진 새로운 사제직에 임명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⑸.랍비 주의(主義)의 유대교는 전통적(傳統的)으로 멜기세덱을 노아의 아들 중 가장 믿음이 깊은 셈과 동일한 인물로 간주했다.
⑹.(히7장) 에서 "멜기세덱의 반차(班次)를 좇는" 제사장직(祭司長職)의 새로운 개념의 세부적인 전개(展開)와 (히 7:1~10), 그것은 새로운 언약의 대제사장에 적용하는 것을 다루고 있다(히 7:11~28).
⑺.그분은 세상을 심판(審判)하시고 믿는 자들의 죄를 사(赦)하시고 의(義)로 통치하실 것이다.
⑻.(히 7:3)에서 멜기세덱은 제사장(祭司長) 족보(族譜)에서 완전히 독립된 제사장직을 행사했다. '멜기세덱의 부모(父母), 조상(祖上), 자식(子息)과 후손(後孫)은 레위 지파의 경우와 같이 레위의 후예(後裔)가 아니고 그들은 모세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⑼.(히 7:3)에서 멜기세덱은 그가 다른 사람을 계승(繼承)한 것도 아니고, 그 자신이 직분을 계승(繼承) 받은 것도 아니므로 항상 제사장(祭司長) 직분(職分)을 행사(行事)한다.
⑽.세상의 악(惡)의 통치(統治)를 폐(廢)하고 모든 나라와 통치자를 심판하시는 그리스도의 왕(王) 같은 제사장 직분은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仲保者)를 의미(意味)한다..
<첨부파일에 도표 부록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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