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과 마지막 사건들(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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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6-06-04 06:18 조회7,634회 댓글0건본문
6월 11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53분
기억절 :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연구 범위 : 출 19:5~6, 마 23장, 요 12:20~26, 마 24장, 요 14:1~4, 살전 4:16
예수님의 재림은 기독교 신앙의 절정이다. 예수님의 초림과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재림을 위한 핵심 선행 조건이었다. 초림이 없는 재림은 없고, 재림이 없는 초림은 소용없다. 그 둘은 비록 시간상 떨어져 있지만 인류의 구원과 대쟁투의 종결이라는 목적에 있어서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초림의 목적은 완수되었고 우리는 이제 재림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님은 유대 지도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호소하신다. 그들은 회개하고 그들의 유일한 구원의 소망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라는 기별을 듣는다. 그다음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은 재림 전에 어떤 사건들이 전개될지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신다. 여기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분의 재림 직전에 있을 사건들을 연결시키면서 매우 엄숙한 장면을 제시하신다.
그러나 전쟁과 기아와 배도 등 아무리 상황이 어렵다 할지라도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마 24:30)리라는 약속이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어떤 고난과 슬픔이 있을지라도 기뻐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지나친 염려나 무관심을 지양한 균형 잡힌 예언 해석을 이해한다.
➋ 느끼기 : 변함없이 따뜻한 보호를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안심한다.
➌ 행하기 : 종말에 대하여 무관심과 공포의 확산을 피하고 합리적으로 접근한다.
A.
❷ 그대가 보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재림의 징조들은 지금 어떻게 실현되고 있습니까?
※ 기록된 대로 실현 되고 있다.
❸ 멸망이 이르기 전에 ‘산으로 도망하라’는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산으로 도망가라는 말은 피난처를 찾으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피난처는 오직 예수님이시다.(시46편 참고)
❹ 우리 소그룹이 재림의 징조에 유의하면서 복음전파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 가까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확신하는 복음을 전하면서 사귀어야 할 것이 아닌가?
B.
❷ 우리가 그림에서 보는 것보다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재림의 장면을 묘사해 보십시오.
※ 각자가 묘사해보자.
❸ 종말의 때에 깨어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삶은 어떻게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 분명한 말씀을 따라 사는 것과 방편적으로 교회 다니고 형식적인 종교인이 되는 차이이다.
❹ 우리 소그룹이 함께 재림을 기다리며 항상 깨어 있기 위해서 어떻게 서로를 도울 수 있을까요?
※ 자주 만나고 함께 말씀을 상고하고 서로 격려하며 함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닐까?
결론 :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예언은 걷잡을 수 없는 염려와 억제할 수 없는 낙관주의를 양산해 왔습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야기합니까? 영적인 사고를 하는 신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가라지에서 알곡을 분리해 내고 죄 없는 세상을 앞당기기 때문에 그것에 대하여 기대감을 가집니다. 종말의 사건들은 일시적인 손실을 야기합니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사탄의 패배와 죽음의 궁극적인 멸망을 선언합니다.
첫째날(일) 눈 먼 인도자들
6월 5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마 23:13, 16).
강한 손과 편 팔로 이스라엘 자손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신 분은 예수님 자신이셨다. 그분은 애굽에서 그들을 독수리의 날개 위에 업어 그분에게로 데리고 오셨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6).
예수님은 시내라고 불리는 멋있는 산 위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안하셨다. 출애굽기 24장에 따르면 지도자들과 장로들이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출 24:9~11)다. 남자가 결혼하여 행복한 미래를 주고 싶은 여자에게 잔을 내미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언약의 잔을 내미셨다. 이스라엘은 그 잔을 받고 ‘네, 우리는 약속의 땅에서 당신과 영원히 살기를 원합니다.’라고 고백했다.
1.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마태복음 23장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뭐라고 경고하셨는가? 그분이 특별히 책망하는 문제에 관하여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우리는 동일한 잘못을 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자신할 수 있는가?
[마23:1~39]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6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7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4 (없음)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16 화 있을진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7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9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21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22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답: 유대인들의 가장 심각한 허물은 외식과 위선이었다. 신앙인이 아니라 종교적이었다. 종교적이기 때문에 참된 신앙을 잃어버렸다.
마태복음 23장은 예수님이 자신의 사랑하는 백성들과 화목하기 위해 주신 마지막 간절한 호소였다. 그러나 그분이 사랑하는 백성들은 그분을 버렸다. 그분은 그 백성의 결정을 받아들이시고 최후의 시간을 위해 그들의 집, 곧 성전 밖으로 나가시면서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마 23:38)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성전을 떠나신 후에 그것은 예전에 주께서 그들을 구해 내셨던 광야처럼 황폐하고 처량하게 방치되었다.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일대전환이 일어날 때가 되었지만 이 지도자들과 그들의 기만에 이끌린 백성들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었다. 반면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많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에게 위탁된 거룩한 사업과 사명을 이어갈 것이었다. 그들은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갈 3:29)가 될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도 그와 같이 신령한 부름을 입은 백성의 일원이 되었다.
<부가설명> 성경의 신앙은 예수님을 닮게 하는 것이다. 진리를 아는 지식을 물론이요, 인격과 생활이 예수님을 닮은 것이다. 예수님이 그분을 믿는 신자들의 생명이 되기 때문에 예수님을 닮게 되어 있다. 예수께서 하시는 것을 신자들이 할 수밖에 없고 예수님이 하지 않는 것은 신자들이 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유는 예수님이 신자의 생명으로 신자 안에서 생활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이것이 예수를 믿는 신앙이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런 생활과 인격이 성경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의 문자로 스스로 해석한 조문을 주장하고 그것을 표준으로 겉으로 그 조문대로 실천하는 것을 종교의 진수라고 여긴 것 같다. 이 조문과 달리 보이는 것은 가차 없이 정죄하고 지탄하였다. 동정과 진정한 사랑이 없었다.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생활은 생명이 작용하여 나타는 것이다. 예수님이 신자의 생명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신자 안에서 생명작용을 하여 생활하는 것이 성경이 계시한 신앙생활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렇게 하지 않았다. 외식에 빠지게 된 이유이다. 우리는 어떤가?
교훈 : 역사의 중대한 전환점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고 성령의 인도를 거부한 백성들에게 주신 주님의 마지막 기별은 회개를 촉구하는 최후의 호소였다.
둘째날(월) 종말의 징조
6월 6일
예수님이 그분을 거부한 특정 유대교 지도자들을 책망하신 뒤에 요 12:20~26은 매우 흥미로운 요청을 기록한다. 예수님은 이방인들이 자신을 보기 원한다는 전갈을 받으신다. 그런데 그들은 먼저 예수님을 충성스럽게 따르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요청을 전했다. 어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거절할 것이었으나 어떤 이들은 이방인들이 그분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주요 통로가 될 것이었다. 예수님이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그들의 집이 황폐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신 직후에 이런 요청이 이르러 왔다니 참으로 흥미롭다. 진실로 옛 것이 새 것으로 대체될 것이었다.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구원하는 것이었다.
1. 마 24:1~14에서 예수님은 충성스러운 신자들과 일반 세상을 위해 어떤 그림을 제시하시는가?
[마24:1~14]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답: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 끝에 있을 사건들을 말씀하셨는데 환난과 핍박과 배도가 난무할 것을 보여주셨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어야 하면 천국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한다고 가르쳐주셨다.
예수님은 재림과 종말의 징조에 대한 질문에 그렇게 답하셨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당신의 재림의 큰 날을 따로 분리하여 제자들에게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이 두 사건을 섞어서 말씀하셨다. 만일 예수께서 당신께서 보신 대로 장래에 일어날 사건들을 제자들에게 공개하셨다면 그들은 그 광경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그분은 두 큰 위기를 섞어서 설명하시고 제자들이 스스로 그 뜻을 연구하도록 하셨다.… 이 모든 말씀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장면에 살게 될 사람들을 위하여서도 주어진 것이다”(시대의 소망, 628).
예수님의 답변 중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분의 재림을 재촉하는 사건들이 전혀 매혹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지상낙원 또는 천 년간의 평화의 통치를 예언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전쟁, 배도, 자연재해, 박해, 거짓 그리스도, 심지어 거짓 형제들이 판을 친다. 여기서 묘사된 가장 긍정적인 요소는 “이 천국 복음이…온 세상에 전파되리”(마 24:14)라는 것이다.
<부가설명> 마태 24장은 말세 징조를 말씀하신 장이다.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세상이 어떤 상태에 있을는지를 가르쳐주신 것이다. 동시에 신자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는지도 가르쳐주셨다. 우리가 잘 표현하는 재림의 징조들인데 요약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난다(마 24:5, 11, 23, 24).
② 전쟁과 전쟁에 대한 소문이 끊임없다(마 24:6).
③ 처처에 기근이 있다(마 24:7).
④ 처처에 지진이 있다(마 24:7).
➄ 그리스도인을 핍박한다(마 24:9).
➅ 죄가 성하여진다(마 24:10~12).
➆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다.(마 24:15)
➇ 해, 달, 별의 징조가 있다(마 24:29).
➈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된다(마 24:14).
이외에도 노아의 때와 같다는 말씀도 있다. 누가복음에는 롯의 때와 같다는 말씀도 있고 온역이 처처에 유행한다는 말씀도 있고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함으로 기절한다는 말씀도 있다. 역사적으로 이런 징조들을 적용할 사건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더욱 이런 징조들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본다. 우리는 정신 차리고 바른 믿음으로 진리가 인도하는 그 길을 따라 신앙생활 하되 예수께서 내 생명이 되어서 그분이 작용하는 대로 생활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의 재림이 있기 전에 세상에는 여러 부정적인 징조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끝이 이르기 전에 모든 민족에게 천국 복음이 전파될 것이다.
셋째날(화) 예루살렘의 종말
6월 7일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마 24:15~16).
1. 마 24:15~22을 읽어 보라. 여기서 예수님은 어떤 말씀을 하시는가?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예수님은 어떤 종류의 그림을 제시하시는가?
[마24:15~22]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7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가지 말며 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9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답: 재림하시기 전에 세상에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설 것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선지자 다니엘이 예언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신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고 하셨다. 큰 환난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보호하실 것이다.
“멸망의 가증한 것”은 일반적으로 신성한 것에 대한 모독과 불경으로 이해된다. 예수님은 분명히 기원후 70년에 이를 예루살렘 멸망에 대해 말씀하고 계셨다. 어제 보았던 것처럼 예수님은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묘사와 재림 전 상황을 둘러싼 사건들을 섞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이 불신과 반역으로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하나님의 보응의 형벌을 재촉하고 있는 이 세상을 상징하고 있음을 보셨다”(각 시대의 대쟁투, 22).
그러나 주님은 그러한 폐허 속에서도 구원받아야 할 이들을 모두 구원하기 위해 힘쓰신다.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실제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기 전에 도망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눅 21:20~22).
예루살렘 신자들은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자 예수님이 지시하신 대로 도성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성 안에 남아서 멸망하였다. 예루살렘 포위 기간에 백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고 구만칠천 명 이상이 포로로 붙잡혔다. “그런데 로마 군인들이 예기치 않게 예루살렘 포위망을 해제한 일시적인 휴전 기간 중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도망쳤는데 이들 중 아무도 생명을 잃지 않았다. 그들이 피신한 장소는 갈릴리 호수 남쪽으로 27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요단강 동편 구릉지대에 있는 한 도시인 펠라였다”(성경주석, 마 24:16).
<부가설명>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눅19:44)고 하셨다. 예루살렘이 권고 받는 날은 다니엘 9장 24절에 기록된 70 이레 기간이다. 이 기간에 메시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되었는데 이 기간을 이스라엘 민족과 예루살렘을 위하여 2300 주야에서 잘라낸 특별한 은혜 기간으로 작정된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 예언의 때가 찼을 때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고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셨다. 유대인을 이 권고 받는 날을 알지 못했다. 분명히 예언 되어 있는데 성경을 안식일마다 읽었고 집에서도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몰랐다. 바울은 안식일마다 성경을 외우면서도 성경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하여 탄식하였다.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행13:27) 우리는 성경이 계시한 말씀을 성경적으로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깨닫기를 원하는 대로 깨달아야 한다. 자기가 세운 해석의 표준에 맞도록 성경을 해석하면 안 된다. 이런 사람에 대하여 화잇 부인은 “가장 중요한 성경 진리를 승화시켜 설명해 버리는 것이 자신의 우월한 능력과 학식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그들은 생각한다.”(각 시대의 대쟁투 583)고 말했다. 우리가 경청해야할 경고가 아닌가.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이 시대의 징조를 확인하면서 진리의 정로를 따라 충성하는 신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사전에 예고하셨다. 그리고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여 구원 얻을 자들이 피할 길을 예비하셨다.
넷째날(수) 예수님의 재림
6월 8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사방에서 모으리라”(마 24:27~31).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이 주신 답변은 “주의 임하심”(3절), 곧 그리스도의 재림과 통치에 관한 것이었다.
1. 재림 전에 있을 사건과 관련하여 예수님은 또 어떤 경고를 주셨는가? 이는 역사를 통해 어떻게 나타났는가?(마 24:23~26)
[마24:23~26]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6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답: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미혹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역사적으로 이런 일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세상의 관점에서 봤을 때에 예수님은 적은 추종자들을 둔 떠돌이 갈릴리 설교자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분은 많은 이들이 그분의 이름으로 와서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주장할 것을 예언하셨다. 물론 그런 일이 과거뿐 아니라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단적으로 증언한다.
2. 마 24:27~31을 읽어 보라. 재림은 어떻게 묘사되었는가? 그분이 오실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마24:27~31]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2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 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답: 재림은 번개의 번쩍임 같이 온 세상이 알 수 있도록 있을 것이며 천연계에 징조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나타날 것이며 모든 족속이 예수님의 재림을 목격할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와서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주장할 것이라고 경고하신 후에 그분이 어떻게 재림하실지를 묘사하신다.
첫째, 예수님의 재림은 인격적이며 문자적이다. 예수님은 친히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다. “주께서…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살전 4:16)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이 하나의 이상향 또는 역사의 새로운 시대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정면으로 반론을 제기한다. 둘째, 그분의 재림은 하늘을 가르는 번개처럼 가시적일 것이다.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계 1:7). 셋째, 나팔의 이미지는 재림의 소리가 죽은 자를 깨울 만큼 크리라는 것을 나타낸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초림 때에는 겸손의 왕으로 오셨지만 재림 때에는 원수를 이기신 승리의 왕으로 오실 것이다(계 19:16, 고전 15:25).
<부가설명> 예수께서 재림하신다고 친히 말씀하셨다. 재림하지 않으시면 초림해서 이룬 사실이 소용이 없게 된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 때문에 하늘에서 성소 봉사하는 일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다 이루셨으면 재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닌가? 재림하셔서 성도들을 하늘로 데려가시고 일천년 후에 다시 세상에 오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어야 구원사업이 완성된다. 그래서 재림하신다. 신천지를 재창조하실 때까지 구원사업은 진행형이다. 예수님의 재림은 구원사업의 절정이 아니겠는가? 그때 성도들은 부활하고 변화하여 공중에서 재림하신 예수님을 영접한다. 이것은 상징이 아니고 환상도 아니고 실제적인 사건이다. 이것이 실제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사단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다른 생각을 하게 한다.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를 시대마다 양산해서 택하신 사람들까지도 미혹할 수만 있으면 미혹한다. 우리는 스스로 잘 살피고 이것이 그런가 하여 성경을 면밀히 상고해서 스스로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화잇 선지자는 흔들림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영원한 구원의 가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회의론(懷疑論)의 침입을 받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바로 진리의 기둥들이 공격을 받을 것이다. 오늘날의 불신에 속한 풍자(諷刺)와 궤변(詭辯), 교활하고 치명적인 교훈의 공격권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쟁투 600) “장차 온갖 종류의 속임수가 일어날 것이며 우리는 든든히 설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이 요구된다. 또한 우리는 건물을 위하여 튼튼한 기둥들을 원한다. 주님께서 세우신 것은 단 한 가지도 옮길 수 없다. 영혼의 원수는 성소가 없다는 교리와 같은 거짓 교리들을 끌어들일 것이다. 성소 문제는 믿음에서 이탈하는 자들이 따지는 문제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주님께서 지난 50여 년 동안 우리에게 주신 진리가 아니고서야 우리가 어디서 안전한 길을 찾을 수 있을까?”(리뷰 앤 헤랄드, 1905년 5월 25일 Ev 224.3) 지금은 흔들림의 시대이다. 정신을 차리고 진리에 굳게 서야 한다.
교훈 : 세상에 거짓 재림 예수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재림을 다른 의미로 해석하려는 시도도 있다. 그러나 그분은 예언의 말씀대로 직접 다시 오실 것이다.
다섯째날(목) 깨어 있으라
6월 9일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 24:42).
예수님의 재림은 모든 기독교 소망의 정점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허락된 모든 약속의 성취이다. 재림이 없다면 어떨까? 우리는 모두가 그렇듯 죽어 땅에서 썩을 것이다. 재림과 그와 수반된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비평가들과 반대자들의 주장대로 우리의 신앙과 관련된 모든 것은 거짓과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반면 어떤 기독교인들은 그분의 재림을 너무도 고대한 나머지 재림의 날짜를 정하기도 했다. 아무튼 너무도 많은 것이 그분의 재림에 달려있다. 물론 알다시피 과거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짜를 정하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1. 마 24:36, 42은 재림의 날짜를 정하려는 자들이 잘못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마24:36,42,43]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답: 그 날과 그 때는 아버지 외에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정확히 그리스도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에게 준비하며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2. 마 24:42~51을 읽어 보라.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깨어서 재림을 준비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마24:42~51]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답: 깨어 있어서 주인이 맡긴 일을 잘 수행하라고 가르치셨다.
예수님의 요점은 분명하다. 우리는 그분이 언제 오실지 모른다. 사실 그분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할 때에 오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이 오실 때를 대비하여 항상 그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비록 우리는 그분이 언제 오실지 모르지만 그분이 어느 때든지 오실 것처럼 살아야 한다. ‘음, 그분은 오랫동안 오시지 않을 거야. 난 마음대로 할 수 있어!’라는 식의 사고방식은 정확히 예수님이 경고했던 태도이다. 우리는 그분이 언제 오시든지 상관없이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편에서 의로운 일을 행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신실하기를 구해야 한다. 게다가 특히 다른 사람을 부당하게 대하는 자들에 대하여 심판을 경고하는 모든 말씀에 따르면 재림의 시기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조만간 반드시 심판이 있을 것이다.
<부가설명>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역사만큼 오래 산 사람이 없다. 가장 오래 산 므두셀라도 962년을 살았다. 지금은 창세 후 6000년이 지난 때이다. 에녹이 예수님의 재림을 예언했다.(유1:14) 그때도 사람들이 구주가 언제 오실까하고 생각했을 수 있다. 초림도 하시기 전에 재림을 예언한 것이다. 지금은 초림하시고 세상에 오셔서 이루실 일을 다 이루셨다. 이제 구원사업을 완성하기 위하여 재림하실 것이다. 것이다. 십자가에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는 그 일을 다 이루신 것이다. 그 사실에 의하여 그 후에 일어날 구원사업의 후속 사건들이 완성될 것이다. 우리는 역사만큼 오래 살 사람이 아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수명만 누리다가 잠들 것이다. 성경은 오늘이라는 매일을 산다고 가르친다.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의 시간이 ‘오늘’이다. 오늘을 주님 뜻대로 있고 살아야 한다. 예수께서 오실 역사적 시간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신자의 참된 믿음이다. 지금은 시간이 다시없으리라고 한 시대이다. 알 수 없다고 한 그것을 알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오히려 아버지 하나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기 때문에 우리가 알 바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행1:7) 오늘, 지금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을 수 있으면 역사적 그 시간에 분명히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영광 중에 맞을 것이다. 아멘.
교훈 : 우리는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늘 깨어서 그날을 준비하며 이 땅에서 믿음을 지키고 의를 행하며 살아야 한다.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6월 10일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 묘사된 사건들을 배경으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마 24:34)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명백하게 이 모든 일이 한 세대에 다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혼란을 초래했다. <The Handbook of Seventh-day Adventist Theology>에 기록된 리처드 레만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세대’라고 번역된 그리스어는 히브리어 ‘도르’와 상응하는데 그 말은 종종 한 집단이나 계층의 사람들을 지목하기 위해 사용된다. “완고하고 패역(한)…세대”(시 78:8)가 대표적인 예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 말을 시대나 날짜를 묘사하기보다 앞서 언급했던 악한 백성들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하셨다. “이러한 구약의 용례에 맞춰서 예수님은 시간적인 의미가 아니라 한 분류의 백성을 언급하기 위해 ‘이 세대’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을 것이다. 악한 세대는 악한 특징을 공유하는 모든 자들을 포함한다(마 12:39, 16:4, 막 8:38).”―Handbook of Seventh-day Adventist Theology (Hagerstown: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ociation, 2000), p. 904. 이러한 죄악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마지막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신자로서 우리는 명백하게 지연되는 것처럼 보이는 재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재림교회의 이전 세대도 예수님이 자신들의 세대에 오실 것이라고 믿지 않았던가요? 그렇다면 일정 기간 안에 그분의 재림을 기대하는 것도 시기를 정하는 것과 같은 형태가 아닌가요? 우리가 재림의 주제를 다룰 때에 어떻게 적절하게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악한 종들’의 태도를 피하는 동시에 온갖 뉴스를 종말이 임박한 징조로 보는 태도를 피할 수 있을까요? 우리 중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의 태도는 어떨까요?
※ 재림을 기다리는 태도는 오늘이라는 날만이 자신의 날이라는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실제로 오늘만 산다. 내일을 보장된 날이 아니다. 사람은 오늘을 살고 오늘 죽는다. 지금 내일이라고 하는 날이 자고 일어나면 또 오늘이다. 인간의 날은 오늘의 연속일 뿐이고 내일은 나의 날이 아니다. 오늘 죽으면 예수님 재림하시는 날 부활한다. 그날은 오늘 죽은 사람에게 내일 아침이다. 예수님은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에게 진실로 내일 오시기 때문에 속히 오시는 것이다.
➋ 재림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과 대중적인 개념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 예수님의 재림은 역사적 시간에 역사적 사건으로 실제로 오신다고 하셨다. 대중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상징적으로 여기는가? 나는 대중적 개념을 모르기 때문에 비교 차이를 말할 수 없다.
➌ 성경의 인물들은 어떻게 지연되는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며 살았습니까? 우리는 그들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 오늘을 충성하고 살았다.(히3:13 참고) 우리도 그렇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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