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그릇 교과묵상] 제 2과 통치권의 회복(7월 8일 교과묵상/일~금 매일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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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작성일16-07-03 07:45 조회3,058회 댓글0건첨부파일
- 2과 통합-20160708.hwp (35.0K) 198회 다운로드 DATE : 2016-07-07 23:5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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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금) 2과 전체 요약
이번 주 교과는 ‘통치권’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최초에 주어졌으나 잃어버린 이 ‘통치권’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통치권 회복’을 위해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살피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이 지구를 다스리기 위해, 즉 통치하기 위해 창조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의 생각처럼 목적 없이 우연히 생겨난 존재가 아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로서, 하나님의 품성에 계시된 그 원칙대로 이 세상을 통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인간이 이 통치권을 상실함으로, 이 계획은 수정될 수 밖에 없었고, 인류는 자신들의 통치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인류에게는 예수님을 믿고, 순종함으로 내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목적 없이 사는 인생이 아니라,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의 뜻을 이루는 것을 존재의 목적으로 삼을 때, 이런 자들은 허무함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이들과 다른 기쁨과 소망으로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현재 우리는 통치권이라는 개념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받기 쉽지만,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통치권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것이었음을 창세기에 등장하는 통치권과 관련된 4개의 단어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스리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라다’는 인류가 다른 피조물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 권력이 자비에 바탕을 두어야 했음을 보여주고 있고, ‘정복하다’로 번역된 ‘카바쉬’는 ‘복종케 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그것이 파괴적이며 착취적인 정복행위와는 거리가 있음을, 폭력에 대해 불쾌감을 보이신 하나님의 모습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경작하며’로 번역된 ‘아바드’는 사역의 의미를 담고 있고, ‘지키게’로 번역된 ‘샤마르’ 또한 보호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통치권의 성격이 ‘착취’가 아닌 창조주를 대신하여 피조물들에게 제공하는 자비로운 봉사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창조 당시에 인간에게 주어진 통치권은 청지기로서의 권한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 안에서만 그들의 통치권이 행사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제한하신 것을 욕심냈고, 그 결과는 온 피조물의 고통이었습니다. 시내산에서 반포된 십계명도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경계를 정해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여전히 이 선을 지키는 일에 실패해 왔습니다. 많은 권력자들이 자신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권한까지도 억지로 빼앗아 사람들 위에 군림함으로, 지구의 통치권을 찬탈한 사탄의 길을 따르고 있고, 어떤 이들은 그들에게 맡겨진 ‘다스릴 권한’에 무관심한 모습으로 그들의 직무를 유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 청지기로 부름 받았음을 기억하며, 교만하지도, 태만하지도 않는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자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지구를 다스리는’ 일에 충성하는 사람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인간의 범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을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심지어는 사람과 천연계 까지도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인간은 식량을 얻는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고, 끊이지 않는 자연재해들은 인간의 삶의 기반을 위협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산업과 기술을 통해 천연계를 다스리고 이용하여 인간에게 유익을 가져오려는 인간의 시도는 계속되었고, 한 때 천연계를 정복했다는 자만에 빠지기도 하였으나, 극단적으로 천연계를 개발하고 이용해온 인간은, 파괴된 생태계의 균형으로 인해 야기된 ‘환경의 역습’ 이라는 새로운 과제 앞에 놓이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천연계 자체를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또 하나의 극단을 만들어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무분별한 천연계의 개발도, 그것들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빗나간 태도입니다. 천연계를 지으시고, 인간을 청지기로 삼아 관리의 사명을 맡기신 하나님의 뜻대로 이 세계를 관리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통치’의 사명을 이루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통치권의 회복은 시작되었고, 우리는 이 회복의 기별을 전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회복의 기별과 함께, 어려운 이들에게 손을 펼치는 실제적인 도움이 주어져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심으로 그들의 마음을 열고, 그 열려진 마음에 복음의 씨앗을 심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본을 따라 교회가 사람들을 향하여 도움의 손길을 펼칠 때에, 이러한 행위들은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길을 닦는 사역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역이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실제적인 봉사로 시작되어, 그 열린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심는 사역으로 발전할 때, 우리 안에 시작된 이 ‘통치권의 회복’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영향력이 되어 퍼져나갈 것입니다.
잃어버린 통치권을 회복하시기 위하여 예수께서 하신 그 일이, 교회의 섬기는 손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우리 주님의 계획입니다. 주님의 심정으로, 주님의 손이 되어 이 거룩한 사명을 이뤄가시는 주의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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