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과 통치권의 회복(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7/09/16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6-07-02 05:19 조회8,031회 댓글0건본문
7월 9일 안식일
일몰 : 오후 7시 56분
연구 범위
창 1:26~28, 시 8:3~8, 창 2:15, 롬 8:20~22, 출 20:1~17, 롬 1:25, 살후 3:10
기억절 :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
인류의 첫 조상이 타락했을 때에 그들은 고유한 하나님의 형상뿐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잃었다.
"인간뿐 아니라 지구마저 죄로 인해 악한 자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그래서 지구도 구원의 계획에 따라 회복되어야 했다. 창조 때에 지구의 통치권은 아담에게 위임되었다. 그러나 유혹에 굴복함으로 그는 사탄의 권세 아래 들어갔고 그가 소유했던 통치권은 그의 정복자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자기희생을 통해 죄의 형벌을 치르신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인류가 빼앗긴 통치권도 되찾으실 것이다. 첫째 아담이 잃은 모든 것은 둘째 아담에 의해 회복될 것이다"(영문 시조, 1908년 11월 4일).
그렇다. 인류는 타락한 뒤에 우리에게 부여되었던 통치권을 포함해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그런데 이 잃어버린 통치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 말은 오늘날 종종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지만 분명히 에덴에서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에게 처음 지구의 통치권이 부여됐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인류의 첫 조상이 에덴에서 잃은 것을 조금이라도 되찾을 수 있게 교회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창조세계에서 인류의 지위와 창조주 하나님의 지위를 인식한다.
➋ 느끼기 : 창조 앞에서 겸손해지며 동료 인간들과 세상을 돌볼 책임감을 느낀다.
➌ 행하기 : 인간들과 다른 피조물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다.
A.
❷ 하나님이 인류에게 지구의 통치권을 위임하셨다는 뜻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다른 피조물보다 뛰어난 이성을 가진 유일한 존재로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자라는 뜻이다.
❸ 지금 인류는 그 통치권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다.
❹ 우리는 어떤 영역에서 어떤 모습으로 위임된 통치권을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까?
※ 처해 있는 환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
B.
❷ 인류는 처음에 하나님이 주신 통치권을 어떻게 행사해야 했습니까?
※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섬기는 사랑으로 행사하야 했다.
❸ 비록 영향력이 심각하게 감소했지만 우리는 그 통치권을 어떻게 사용해야 합니까?
※ 예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는 봉사에 사용해야 한다.
❹ 교회는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 안에서 통치권을 회복하도록 어떤 일을 감당해야 합니까?
※ 전도, 구제, 봉사, 희생정신으로 예수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감당해야 한다.
결론 :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 속에서 인간의 적절한 지위를 상기시킵니다. 우리가 그러한 질서를 조정하려고 시도한다면 다른 모든 것이 자리를 벗어나게 됩니다. 우리의 임무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나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돌보는 방식에서 그분의 형상 을 반사하는 것입니다.
첫째 날(일) 7월 3일 통치를 위해 창조됨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 43:7).
자타가 공인하는 한 무신론자 친구에 대해서 최근 어떤 사람이 이런 글을 썼다. "그녀는 종종 심각한 질문들에 짓눌려 새벽에 잠에서 깨곤한다. '이 세계는 정말 우연히 발생한 우주적인 빅뱅의 결과인가? 어떻게 우리의 존재와 우주 전체에 아무 계획과 거대한 목적이 없단 말인가? 어떻게 나와 내 남편, 내 두 자녀의 삶을 포함한 모든 삶이 무의미할 수 있단 말인가? 내 삶에 아무 의미도 목적도 없단 말인가?'"
인류는 타락하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타락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 이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뿐 아니라 서로에게서도 멀어졌다. 심지어 지구와 인간의 관계도 변했다. 위의 한 여인이 제기한 질문들처럼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와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고뇌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삶이 창조주가 부여한 목적과 계획 없이 그저 우연히 발생했다는 지배적인 개념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의 입장에서 문제가 훨씬 악화되고 있다.
1. 우리는 다음의 성경절들을 통해 인류가 창조된 목적에 관해 무엇을 알 수 있는가?(창 1:26~28, 시 8:3~8, 사 43:6~7)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사 43:7)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하나님의 영광'은 통치권과 무슨 관계인가?
[창1:26~28]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시8:5,6]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사43:6,7]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답: 이 지구와 지구에 모든 피조물들을 잘 관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존속하도록 돌보는 일을 맡긴 것이다. 그렇게 하여 창조주의 뜻을 이루면 창조주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창세기의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여러 목적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들은 지구를 통치하기 위해 창조되었다(창 1:26~28). 궁극의 영광과 통치권을 가지신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과 성품을 반사하는 그 첫 부부를 통로로 삼아 지구의 다른 모든 피조물들을 키우고 돌보며 관리하실 계획이었다. 죄가 생기지 않았다면 그들을 통하여 그리고 세상에 대한 그들의 통치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어떻게 드러났을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이제 예수님을 따르고 믿음과 순종과 협력을 통해 그분께 우리의 삶을 맡김으로 "여호와는 나를 위해 주의 목적을 이루실 것입니다"(시 138:8, 쉬운성경)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의 인생에 목적을 두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의 확신과 기쁨의 이유가 된다. 특히 우리가 그분께 순복함으로 그분의 뜻이 우리 안에서 성취될 때면 더욱 그렇다.
<부가설명>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신 것은 창조주를 대신하여 창조주의 목적과 뜻을 이 지구에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다스리는 자는 다스림을 받는 것들보다 높은 자리에 있다. 사람에게 다스리게 한 것은 지구상의 다른 모든 피조물보다 모든 면에서 다른 뛰어난 이성을 가진 유일한 존재로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자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각각 그 영역에서 완전하게 창조하셨다. 이 완전함이 영원토록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 루시퍼가 있기 때문에 이 완전을 훼손될 위험이 컸다. 물론 루시퍼의 반역이 없었어도 사람은 다른 피조물보다 높은 지위에서 피조물을 관리하는 일을 했을 것이다. 그것은 창조주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루시퍼의 반역이 있었으니 더욱 관리를 바르게 잘해야 했을 것이다. 결과는 오히려 사람이 루시퍼에게 당하게 되어서 온 지구가 사망이 되고 부패하게 되었지만. 그러나 원래 창조주의 뜻은 이 지구의 모든 피조물을 잘 관리하여 창조주의 창조 목적이 일그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모든 피조물은 그 자체가 창조주의 영광이 된다. 작가의 작품이 그 작가의 영광이 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교훈 : 인류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상실한 것 중 하나는 지구에 대한 통치권이다. 하나님은 그분을 대신하여 지구를 관리할 통치자로 인류를 창조하셨다.
둘째 날(월) 7월 4일 통치의 특권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1. 창 1:26~28에 따르면 지구를 다스려야 할 인류의 통치권이란 어떤 것인가?
[창1:26~28]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답: 지구상의 다른 피조물보다 뛰어난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다른 피조물들을 잘 관리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의 권위를 드러내고 그것이 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되었다.
성경에 기록된 '통치'라는 말은 히브리어 동사 '라다(radah)'에서 유래했다. 이 말은 통치의 권한과 책임을 가리킨다. 창세기 1장에서 이 말은 인류가 천연계의 다른 피조물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는 의미에서 권력과 권위의 위계를 암시한다. 구약의 다른 부분의 용례에 따르면 동사 '라다'는 통치권의 자비함이나 무자비함과 관계없이 그것이 어떻게 행사되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정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타락 이전의 죄 없는 세상을 고려한다면 그것은 필히 본질적으로 자비로웠을 것이다.
지구를 정복하라는 창 1:28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도출된다. '정복하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동사 '카바쉬(kavash)'는 인류가 지구상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며 그것을 지배할 권세가 부여되었음을 암시하는 일종의 계급 관계를 묘사한다. 구약의 다른 용례를 보면 '카바쉬'는 '라다'보다 훨씬 강압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정복 행위 또는 다른 사람을 강압적으로 종속적인 지위로 예속시키는 실제적인 행위를 묘사한다(민 32:22, 29, 렘 34:11, 16, 에 7:8, 느 5:5). 그러나 이런 경우들은 대부분 권력을 남용한 예이며 하나님은 그것에 대해 불쾌함을 표현하셨다. 따라서 창조 기사의 문맥을 고려할 때에 지구를 관리하도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죄 없는 아담과 하와에게 지구를 정복하는 일은 창조주를 대신하여 피조물들에게 제공되는 자비로운 봉사로 특징지어져야 했다. 그것은 분명히 착취가 아니었다.
우리는 창 2:15에서 이러한 통치 개념 속에 있는 추가적인 차원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에 두시고 그것을 경작하며('아바드' : 일하다, 섬기다, 경작하다) 지키게('샤마르' : 울타리를 치다, 보호하다, 돌보다, 자세히 지켜보다, 관찰하다, 보존 하다, 주시하다, 보유하다) 하신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둘 때 우리는 통치라는 것이 사랑과 돌봄의 청지기 직분 또는 관리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의 첫 조상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통치권을 행사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자원과 권위를 소유할 것이었고 그들의 통치는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을 반사할 것이었다.
<부가설명> 예수께서 높은 지위를 요구하는 야고보와 요한을 두고 화를 내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태초의 사람들의 상태를 짐작하는데 이해의 도움을 준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5~28)고 하셨다. 에덴동산에서 아담부부는 하나님의 다른 피조물들을 잘 돌보는 봉사를 했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칙이고 사랑의 모습이다. 모든 피조물이 최선의 상태에 있도록 섬겼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원칙을 회복하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셨다. 우리는 지금 교회 안에서 가정에서 이런 통치 원칙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는가.
교훈 : 하나님이 사람에게 땅을 정복하고 생물들을 다스리라고 권한을 위임하신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따라 그것들을 관리하고 돌보라는 의미이다.
셋째 날(화) 7월 5일 경계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 라"(창 2:17).
그렇다면 인류에게 부여된 지구 통치권에는 한계가 없다는 뜻인가? 성경 역사에 따르면 통치권은 청지기 직분으로 이해될 수도 있기 때문에 분명히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금지되어 있다 고 말씀하셨다(창 2:15~17 참고). 그래서 첫 번째 죄는 청지기 직분의 범주에서 발생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그들의 통치권에 설정해 두신 경계선을 넘어갔다. 그때 경계선을 넘어간 일로 인하여 지구는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다(롬 8:20~22 참고)
1. 출 20:1~17을 읽어 보라. 하나님의 법 안에는 우리를 위한 어떤 종류의 경계선들이 있는가?
[출20:1~17]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7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 살인하지 말지니라 14 간음하지 말지니라 15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답: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경계선이 있다.
종말에 이를 때까지 인류의 역사에서 사탄의 지배를 받는 통치자들은 합법적인 지배권이 없는 것에 대해서도 그들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려고 시도한다(출 1~14장의 바로, 마 2장의 헤롯, 계 13장 참고). 그들은 세상의 권력을 장악하고 스스로를 "세상의 임금"(요 12:31)으로 삼은 사탄을 흉내 낸다. 빗나간 통치는 군림이 된다.
반면에 그들이 통치권을 가져야 하는 것들에 대한 통제를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도 있다(마 25:14~30, 눅 19:12~27).
인류가 비록 죄로 인하여 창조시에 부여되었던 통치권의 수준을 상실했지만 원래의 통치권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부여된 책임의 한계 내에는 여전히 많은 것들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개인 생활의 절제(고전 9:25~27, 갈 5:22~23), 지구와 생명체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보살필 책임들이 있다(약 1:17, 마 25:14~30 참고).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우리의 한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한계 내에서 신실한 청지기로 일해야 한다.
<부가설명> 하나님의 형상대로 고귀하게 창조된 사람에게 주신 한계선이라는 것은 창조주께 온전히 붙어 있으라는 것이었다. 선악과를 만드시고 경계하신 것은 창조주를 떠나지 말고 창조주 안에 있으라는 명령이었다. 선악과를 먹는 것은 창조주이신 그리스도를 떠나는 것이었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11:3) 뱀이 하와를 미혹한 것을 그리스도를 향하는 깨끗함과 진실함에서 떠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선악과를 먹는 것은 그리스도를 떠나는 것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존재와 생명의 근원이다. 모든 피조물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만 존재하는 것이 창조주의 법칙이었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1:16,17) 피조물은 창조주 안에 있어야 한다. 지금도 동일하다. 예수께서 오셔서 창조주 밖으로 나가서 사망이 된 지구의 모든 것들을 다 예수 안에 있도록 부르신 것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 안에 들어가는 것이고 동시에 예수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생명이다. 이 생명이 있을 때 사랑이 실현된다.
교훈 : 인간에게 허락된 통치권에는 한계가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께 권한을 위임 받은 청지기의 범주 내에서 맡겨진 것들을 돌보고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다.
넷째 날(수) 7월 6일 지구를 돌봄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1. 지구를 돌봐야 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우리가 지구와 맺어야 할 관계에 대하여 이 말씀에서 깨달아야 할 원칙들이 있다면 무엇인가?
답: 지구를 창조주의 뜻대로 잘 보존하도록 관리해야 하는 것이 관계의 원칙이다.
죄 이전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위임하신 모든 것들을 관리할 청지기로 임명되었다. 그들은 지구와 동물의 생태를 다스릴 권한이 있었다. 그러나 범죄 후에는 그들이 하나님께 반역한 만큼 천연계의 모든 것들도 그들에게 반역하는 것같이 되었다. 인류는 날씨, 농업, 동물들의 세계와 같은 요소들 앞에서 그들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아담은 그보다 못한 피조물들 가운데서 왕이었으며, 그가 하나님께 충성하는 동안 천연계 전체는 그의 통치를 인정했다. 그러나 그가 범죄하게 되자 이 통치권은 박탈되었다. 아담이 스스로 물들게 된 반역의 정신은 동물들의 세계에도 점점 퍼져나갔다. 그리하여 사람의 생명뿐 아니라 동물의 성질, 삼림의 나무들, 들의 풀들, 심지어는 사람이 호흡하는 공기까지도 악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오는 슬픈 교훈을 말하게 되었다"(교육, 26~27).
오늘날 우리는 자연 재해와 생태계의 붕괴에 여전히 시달린다. 그래서 산업과 기술을 이용하여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쓴다. 하지만 우리를 보호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산업과 기술이 때로 지구를 파괴하기도 한다. 지구에 대한 무분별한 개발이 다른 이들에게 커다란 고통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생태학은 도덕적, 윤리적, 신학적 문제가 되고 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단순하고 건강한 생활방식을 옹호하며 그 신자들은 무제한적인 소비지상주의와 상품 구매 및 낭비 양산의 반복을 지지하지 않는다. 우리는 창조세계를 존중하고 세계 자원 활용을 자제하며, 개인의 필요를 재평가하고 생태계의 존엄성을 재확인하도록 호소하는 바이다." - '환경에 대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공식 성명', 1995.
2. 지구에 대한 선한 청지기가 되면서 동시에 지구와 환경이 우리의 경배 대상이 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가?(롬 1:25 참고)
[롬1: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답: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아 창조주 하나님을 올바르게 경배하고 찬양할 때 가능하다.
<부가설명> 지구의 통치자가 창조주 밖으로 나갔을 때 지구 자체도 통치자와 함께 창조주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되자 지구는 원래 창조한 법칙이 변질되었다. 위에 교육에 있는 말씀이 바로 지구의 환경이 변질된 상태를 묘사한 것이다. 오늘날 이 지구의 천연계는 창조된 원래의 법칙으로 운행되는 것이 아니다. 변질된 법칙으로 운행되고 있다. 성경은 이것을 변동(진동)되었다고 표현했다.(히12:26,27 참고) 오늘날 지구의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천연계 현상은 변질된 현상이다. 변질된 것을 연구해서 변질되기 전의 상태를 바르게 안다는 것은 가능한 것이 아니다. 소위 말하는 과학적 법칙이나 설명들은 변질된 것들을 연구하여 발표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것을 제자리로 회복하신다. 재림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때에 모든 것이 회복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지금 비록 변질 되었지만 사람이 살고 있는 지구 환경을 잘 관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청지기 직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야외에 놀러 나갔을 때에 그곳을 떠나면서 잘 정돈해야 할 것이다. 주위에 오물을 버리거나 파괴하거나 더럽게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청지기 직무는 가정과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환경에 대해서도 잘 수행하는 것이 합당한 삶의 모습이다.
교훈 : 지구에 대한 통치권을 잃은 인간은 변화된 환경을 제어하기에는 무력하다. 하지만 무분별한 개발이나 자원 낭비 등을 재고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섯째 날(목) 7월 7일 통치권을 회복함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우리의 첫 조상이 에덴에서 누리도록 부여되었던 통치권을 포함하여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잃었던 것을 되찾아 주시기 위해 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많은 것을 이루셨다. 그래서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통치권을 되찾도록 다른 사람들을 도우라는 부름을 받는다. 물론 이 일이 예수님의 재림과 그 이후의 과정이 마칠 때까지 완성되지는 않겠지만 이 세상에는 가난하고 버려지고 억압 받은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곤궁한 자들에게 찾아가 그들을 도울 때, 그러한 회복은 지금부터 시작될 수 있다.
1. 죄로 말미암아 잃은 '통치권'을 되찾도록 다른 이들을 돕는 일에 우리는 다음의 성경절들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신15:7~12]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 문자 그대로 도움의 손이 되어야 한다.
[눅14:12~14]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맹인들을 청하라..."
※ 가난한 자들을 잘 돌보도록 마음을 열어야 한다.
[벧전3:15]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 다른 사람들에게 소망의 복음을 증거 해야 한다.
[약1:27]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돌보고..."
※ 주변에 소외되고 약한 자들의 도움이 되어야 한다.
[사58:7]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헐벗는 자를 보면 입히며..."
※ 필요를 함께 하는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살후3:10]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 열심히 할 수 있는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의 몸으로서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접촉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다. 게다가 우리는 그 일들을 위해 부름을 받았다. 때로 그것은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음식과 의복, 쉼터를 제공하는 단순한 일이다. 물론 구제가 필수적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삶의 통치권을 되찾도록 도우려면 구제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우리 안에 있는 소망의 이유에 대하여 대답할 준비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든지 육체적 필요를 가진 자들에게 더욱 나은 삶의 방식을 제시해야 한다. 각각의 상황과 필요가 다를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사는 지역사회의 빛과 치유의 원천 그리고 희망이 되도록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다. 이는 우리가 사랑과 구원의 하나님을 세상에 알리는 증인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부분이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등대와 희망이 되기 위해 주님의 능력 안에서 우리의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섬김의 사역을 다할 때에 우리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육체적인 필요를 돌봄으로써 우리는 성령이 그들의 마음에 이를 수 있는 길을 닦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고, 우리도 그렇게 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부가설명> 교회가 수행해야할 일들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이 많은 것을 다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먼저는 교회의 임무를 숙지하는 것인데, 청지기 직분이 재정관리만이 아니고 그 범위가 넓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인들 개개인이 이 사실을 잘 이해하고 교회와 협력해서 이런 일들을 수행할 때에 지역사회에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전도하는 일과 구제하는 일고 소외되고 연약한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되는 것이 교회에게 주신 사명이다. 그런데 교회가 스스로 유지하는 일 자체가 힘이 들어서 이런 사명에는 거의 여유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 우리교회가 아드라를 통해서 일을 하고 교회에 지역사회 봉사회(도르가회)가 있지만 이런 봉사를 힘 있게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봉사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일깨우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교훈 : 우리는 다른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치권을 되찾도록 도우라는 부름을 받았다. 그런 일을 통해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에 들어갈 문이 열린다.
여섯째 날(금) 7월 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교육>, 202~206 "절제와 영양", 287~290 "훈련", <식생활과 음식물에 관한 권면>, 73~74 "자아를 제어할 필요", <청지기에게 보내는 권면>, 111~113 "청지기 직분의 원칙들", 348~350 "구원받은 자들의 기쁨에 참여함"을 읽어 보라.
심각하게 타락한 세상에 젖어 사는 오늘 우리의 관점에서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더라면, 그것이 우리의 기원과 죄의 시작 그리고 죽음과 죄악에 대해 계시하지 않았더라면 이 악한 세상은 우리가 아는 전부였을 것이며 우리는 그런 것들을 삶의 일부분으로 여기며 그냥 세상이 원래 그런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타락의 이야기를 보면 이것은 세상이 원래 지녀야 했던 그런 모습이 아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담과 하와는 세상을 다스려야 했다. 그런데 그들이 범죄한 뒤에 변했기 때문에 세상과 그들의 관계도 그리고 물리적인 세계 자체도 갑자기 변했다. 그들이 누렸던 통치권은 어느덧 상실되었고 그 영향은 엄청났다. "가시덤불과 엉겅퀴 (창 3:17), 홍수의 여파(창 7:12), 사막과 광야 그리고 구원을 바라는 지구의 탄식 (롬 8:19~22)은 죄가 이 세상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기 위해 성경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 묘사의 일부이다." ― Handbook of Seventh-day Adventist Theology (Hagerstown, Md.: Review and Herald Pub. Assn.), vol. 12, p. 254. 우리가 잃은 것을 회복시켜주고 과거와 현재보다 훨씬 좋은 미래를 약속하는 구원의 계획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출 23:10~12, 신 11:11~12, 20:19~20은 얼핏 생태학과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우리는 이 말씀들로부터 지구 환경의 선한 청지기가 될 필요성에 대해 어떤 원칙들을 배워야 합니까? 그리고 그런 직분과 자연숭배를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요?
[출23:10~12] 너는 육 년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11 제 칠 년에는 갈지 말고 묵여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너의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12 너는 육 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 칠 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신11:11~12]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신20:19~20] 너희가 어느 성읍을 오랫동안 에워싸고 쳐서 취하려 할 때에도 도끼를 둘러 그 곳의 나무를 작벌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먹을 것이 될 것임이니 찍지 말라 밭의 수목이 사람이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에워싸겠느냐 20 오직 과목이 아닌 줄로 아는 수목은 작벌하여 너희와 싸우는 그 성읍을 치는 기구를 만들어 그 성읍을 함락시킬 때까지 쓸지니라.
※ 우리에게 주어진 땅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진리의 원칙 안에서 수행할 방법과 그 의도를 배워야 한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원칙이 있다.
➋ 그대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우리의 대답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대답과 어떻게 다를까요?
※ 그리스도인의 삶의 의미는 창조주의 뜻을 수행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➌ 우리는 ‘통치권’이란 말을 원래의 의미대로 어떻게 복원할 수 있을까요? 처음에는 그것이 얼마나 좋은 의미였습니까? 어떻게 하면 지금도 그와 같은 의미가 될 수 있을까요?
※ 섬기는 통치권을 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