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그릇 교과묵상] 제 13과 십자가와 부활(6월 24일 교과묵상/일~금 매일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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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작성일16-06-19 08:58 조회2,934회 댓글0건첨부파일
- 13과 통합-20160624.hwp (34.0K) 181회 다운로드 DATE : 2016-06-24 09:4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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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일(금) 13과 요약
이번 주 우리는 마태복음의 마지막 장들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진리, 그리고 그 두 사건이 우리에게 전하는 소망을 함께 연구했습니다.
2000년 전 유대인들은 십자가의 형벌에서 사면될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 예수님의 이름 대신에 어리석게도 ‘바라바’의 이름을 외쳤습니다. 바라바는 종교적 가면을 쓰고 온갖 악행을 저지른 흉악한 악인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그의 동료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되어 있었으나, 사면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과 바라바는 모두 구원자라는 이름의 뜻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인생은 어두움과 빛이라는 극명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대중의 선택은 어두움을 대표하는 바라바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또한 이 세상 역사의 최후에 예수님과 바라바로 표상되었던 생명과 사망의 사이에서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만이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겟세마네에서도, 십자가 위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고통스럽게 만든 것은 아버지 하나님과의 분리되는 고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어두움 속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홀로 죄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분노를 감당하셔야 했고, 이러한 고통 속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고통스러운 부르짖음이 터져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의 고통은 아들 하나님만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비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결탁되었”(창 44:30)다는 유다의 말처럼 이러한 고통은 아버지 하나님께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러한 고통 속에서도 아버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시며 믿음을 잃지 않으셨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아들에게 죄의 값을 치르게 하심으로 인간이 죄로부터 해방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러한 희생을 치르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영원한 감사의 이유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운명하시는 순간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 지극히 신성하게 여겨졌던 지성소가 드러났다고 기록합니다. 이러한 사건은 이스라엘에게 제사제도를 주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그 제도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시는 증거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십자가를 통해, 이 지상의 성소가 하늘의 참 장막, 하늘 성소로 대체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친히 제물이 되셔서 흘리신 당신의 피로,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께서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사역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운명하실 때에 바위가 깨지고 무덤이 열렸고, 이 열려진 무덤에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에 진리를 증거하던 무리들이 특별히 부활했다고 기록합니다. 이들은 예루살렘 도성에 들어가 예수 부활의 강력한 증인이 되었고, 승리의 기념으로 주님과 함께 승천하여 성도들에게 강력한 부활의 소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림자를 실체로, 소망을 현실로 바꾸신 놀라운 능력을 드러내는 역사적 사건이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가 전하는 복음과 그 믿음은 헛된 것이 될 수밖에 없고, 기독교가 단지 이 세상에서의 삶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이 믿음 위에 소망을 둔 사람은 정말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했던 사도 바울의 말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 요소입니다. 제자들의 변화와 성경의 분명한 증거, 그리고 그 광경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수십년 동안 모순됨이 없는 주장을 했던 점, 그리고 당시 증인으로서의 자격을 인정받지 못했던 여인들을 목격자로 내세운 점과 같은 예수 부활에 대한 많은 증거들이 이러한 믿음의 분명한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명한 증거 앞에서도 여전히 예수 부활 사건은 미화되고 부풀려진 허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결국 부활에 대한 태도는 그리스도를 어떠한 분으로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한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 근본적인 태도의 차이가 결국 영원한 생명과 사망을 가를 기준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어떠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마태는 그의 복음서를 마무리하면서, 예수님께서 승천 직전에 주신 ‘대사명’의 말씀, 모든 민족을 향해 나아가서 그들에게 침례를 베풀고, 내가 전한 모든 것들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을 결론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이러한 사명을 위탁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느끼셨던 그 행복을 공유하고, 그 성품을 닮아가도록 하시기 위한 계획 때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사명을 위해 헌신하는 자들에게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과 함께, 성령을 통해 능력을 주시겠다는 보증 또한 주셨습니다. 결국 이 ‘대사명’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신 축복의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 교회를 세우셨고, 그리스도의 동역자들이 저희 동료들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기 원하십니다.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이 사명을 붙들고 충성하시는 주의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
한 기를 마무리하는 이번 교과의 결론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셨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소망이 되셨으며, 이제는 이 구원의 감격을 땅 끝까지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이 복음 앞에서 견딜 수 없는 열정으로 주를 위해 일했던 것처럼 성령께서 우리에게도 이러한 뜨거운 신앙의 열정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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