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제3기 2과 통치권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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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진 작성일16-07-04 23:01 조회3,958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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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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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명심할 주요 사항>
질문, 핵심, 적용
<핵심>
죄로 인해 잃어버린 인간의 통치권을 그리스도 안에서 되찾게 되었다.
*핵심어 : 그리스도 안에서
<토의 및 탐구를 위한 질문>
☆도입 : 당신이 대통령이라면 이 나라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가?
⇒
일~화. 통치권과 한계
1.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무엇일까?
1-1. 하나님의 영광은 통치권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2. 다스린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2-1. 성경상의 통치의 특권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3. 선하신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으면 죽게 된다는 법은 왜 만드셨을까?
3-1. 우리가 지켜야 할 경계선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수. 지구를 돌봄
4. 그리스도인은 환경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4-1. 하늘에 소망을 두고 있는 재림교인들이 이 땅의 환경을 보호해야 할 이유는?
목. 통치권을 회복함
5. 잃어버린 통치권을 되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5-1. 다른 사람의 통치권 회복을 위해 우리(교회, 안교반)가 할 일은?
<적용, 결심>
☆이번 과를 통해서 배운 교훈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적용하겠는가?
<답을 위한 도움>
1. ①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②지구를 통치하기 위해
1-1. 하나님은 인간을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시고(영광스러운 존재로 만드시고) 그분의 다른 피조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다(시 8:5, 6)
‘영광’의 원어적 의미는 ‘무거움, 풍부함, 존귀’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모든 선한 것들의 풍부함, 충만함이다.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로 충만하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러한 선한 품성을 심어주셔서 그 품성으로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다. 즉 인간이 세상을 다스릴 때 하나님의 품성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신 것이다.
*시대의 소망 20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비치는 영광은 자아 희생적(自我犧牲的) 사랑의 영광임이 드러날 것이다.
21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주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영광임을 안다.
217 그분의 영광은 우리와 같은 낮은 처지에까지 내려오신 그분의 겸비에서 나타났다.
「궁극의 영광과 통치권을 가지신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과 성품을 반사하는 그 첫 부부를 통로로 삼아 지구의 다른 모든 피조물들을 키우고 돌보며 관리하실 계획이었다. 죄가 생기지 않았다면 그들을 통하여 그리고 세상에 대한 그들의 통치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어떻게 드러났을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교육 21 아담과 하와에게는 에덴 동산을 돌볼 책임, 곧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창 2:15)는 일이 주어졌다.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풍족히 공급하실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게을러지도록 버려 두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축복으로서 그들에게 유익한 일을 하게 하심으로 그들이 몸을 튼튼하게 하고 마음을 넓히며 품성을 계발하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지구의 피조물을 직접 통치하는 대신에 인간의 향상을 위하여 통치권을 위임하셨다.
2.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피조물을 다스리도록 한 것은 분명 위계질서에서 더 높은 위치에 있음을 말한다. 그것은 지구 세계에서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요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에게 하위의 생물들을 인간의 욕망을 위해 함부로 취급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다스리다’는 말은 원어적으로 ‘봉사하다, 보살피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따라서 창조 기사의 문맥을 고려할 때에 지구를 관리하도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죄 없는 아담과 하와에게 지구를 정복하는 일은 창조주를 대신하여 피조물들에게 제공되는 자비로운 봉사로 특징지어져야 했다. 그것은 분명히 착취가 아니었다.」 성경상의 다스림=통치란 억압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 상대방의 복리를 위해 사랑으로 보살피고 섬기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스리라는 명령 속에 다스리며 지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의미들도 섬기고 보호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통치란 것은 하나님의 품성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본교주석(창 2:16) : 열매 자체는 무해(無害)했다(교육, 25). 그러나 그것을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은 이 나무를 인간의 충성과 순종을 시험하는 근거가 되도록 구별지었다... 하나님은 만물의 진정한 소유자였으며, 심지어는 아담이 위탁받아 가지고 있는 것들의 소유자였으며, 이러한 사실은 그 자신을 위하여 피조물의 어떤 부분이라도 확보해 둘 수 있는 권리를 그에게 부여하였다.
*선악과는 피조물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를 때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창조주와 인간의 경계선이었다. 그러나 사탄의 교만은 이 경계선을 넘고 말았으며 인간에게도 그 경계선을 넘도록 꾀어 그 결과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단절되어 멸망을 선고받게 된 것이다.
불행은 자신에게 주어진 통치의 경계를 넘어설 때 시작된다.
3-1. 십계명, 십일조, 건강법칙 등을 범하는 것도 경계선을 넘는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필요 이상으로 간섭하는 것도 경계선을 넘는 것이다.
4. 하나님이 사람으로 하여금 에덴동산을 지키도록 하셨다는 것은 환경을 파괴하라는 말이 아니고 보호하라는 말이다.(화요일 소지 참조) 오늘날 사자나 표범이 사람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자연재해가 일어나 인명을 앗아가는 것은 범죄후 인간이 동물들을 학대하고 자연을 파괴한 결과다.
4-1. 환경을 파괴하는 일은 대개 이기적인 욕망과 도시개발에서 비롯된다. 그리스도인은 이기주의를 극복해야 하고, 밀집된 도시문화보다는 온 땅에 흩어져 살라는 명령에 따라 자연친화적인 삶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과 더 가까워 질 수 있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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