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과 교차문화적선교(문화론적인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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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류의석 작성일15-08-17 12:51 조회2,662회 댓글0건본문
제8과 교차문화적선교
문화란 사회 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되고 학습된 행위의 총체입니다.(A.Hoebel)
인간은 살아가면서 모든 개별적인 사건에 대해서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럴 때 도움을 받는 것이 문화적 행동입니다. 전에 부모님이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 전에 선생님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떠올리며 그에 맞게 비슷하게 행동합니다. 즉, 패턴을 따라서 행동함으로 그 사회에 적합한 행동을 고민하는 고생이 없이 쉽게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룹 지어진 여러 문화가 서로 만나는 곳에서는 충돌이 일어나고, 서로 다름으로 인해 갈등이 생깁니다. 갈등으로 분쟁이 생기기도하고, 갈등을 잘 해결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여러 다양한 문화가 섞여서 접촉하는 지역에서 갈등을 잘 해결하면, 큰 발전이 있고, 풍요로운 새로운 문화가 꽃피었습니다.
문화의 충돌은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충돌한 십자군 전쟁, 현대 중동의 갈등까지 큰 의미로서의 충돌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게는 각 각 다른 문화 환경에서 자란 부부가 결혼을 하면 서로의 생활 방식(문화)이 달라서 갈등을 겪게 됩니다. 자녀을 키우다 보면 사춘기가 되면 사춘기 자녀들이 자기 주장을 하면서 서로 다른 문화적 세대간의 갈등이 일어나는데 이 또한 작은 가정내 문화의 충돌입니다.
교차문화란 영어로 Cross-culture입니다. 알다시피 cross는 십자가 입니다. 십자가는 세로 방향의 목재와 가로 방향의 목재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한 곳에서 충돌을 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나무 목재가 문화그룹이라면 두 그룹의 교차 충돌이 한 지점에서 생깁니다. 예수님의 방식을 따라서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야 할 것입니다.
또 문화란 내가 속한 그룹인 '내 편'과 속하지 않은 '네 편'을 가르는 이분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편은 편하고 좋고 익숙하고 '선'한 것인 반면에 네 편은 이와 반대되는 성격을 갖는다고 사회적으로 구분됩니다. 유대인들에게 유대인들은 내 편이고, 사마리아인들은 네 편이었습니다. 내편은 진리고 남의 편은 거짓이었습니다. 하지만 선한 사마리아인 예화를 보면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것이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이고,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은 말씀 하셨죠. 하나님 안에서는 내 편, 네 편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 안에서 같은 문화인 uni-culture가 되어야 합니다.
남에게 소외 받고, 무시당하고, 가난하고, 특권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들, 다른 문화그룹에 속한 사람들 , 예를 들면 이방인들. 이들을 향한 문화적인 우위에 있는 유대인으로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예수님께서 모본을 보이셨습니다. 현대에 사는 우리들도 다양한 문화적 조우를 하게 될때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아야 할지,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상대방을 변화 시키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 하시는 바일 것입니다.
문화의 영향으로 부터 자유롭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면, 누가 자유인 인가요? 필연적 흐름에 휩쓸려 흐리지 않는 사람, 과정의 사슬에 묶이지 않는 사람, 상황의 노예가 되지 않는 창조적인 사람입니다. 우리는 아주 드물게 자유롭습니다. 거의 모든 시간에 우리는 과정속에서 휩싸이고, 물려 받은 성질의 힘에 사로잡히며 외부의 상황에 굴복합니다. 물론 사람에게는 자유로 행동할 자유와 자유를 잃을 자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 모두가 항상 자유롭기를 바라십니다. 죄로부터도 자유, 문화적 타성으로 부터도 자유롭기를 바라시죠. 진정한 자유는 진리로 부터 오지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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