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과 교차 문화적 선교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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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5-08-15 21:56 조회5,480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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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과 교차 문화적 선교
기억절: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마12:18)
첫째 날(일) 사마리아 여인
*도입질문: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유대인의 어떤 문화적 전통까지도 깨뜨리셨는가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사마리아인과 유다인은 혈통적으로 같은 사람들입니다. 둘 다 아브라함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사마리아인들과 유다 인들은 서로 상종하지 않았고, 특히 유다 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이방인처럼 대했습니다. 그런 문화적 전통은 어디에서 근거한 것일까요?
솔로몬이 죽고 난후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 르호보암은 친구들이 조언을 따라 이스라엘을 엄하게 통치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런 르호보암의 정책에 대하여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10개의 족속이 동조하여 새로운 나라를 만들게 되는데 그 나라가 바로 북방 이스라엘이고 북방 이스라엘의 수도가 사마리아입니다.
반면에 여로보암을 따르지 않았던 두 족속 유다와 베냐민이 합하여 남방 유다를 이루었고 남방 유다의 수도가 예루살렘입니다.
남방 유다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 들도 있었고, 하나님을 떠난 왕들도 있었습니다. 왕의 성향에 따라 남방 유다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가 되기도 하였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에 몰두하기도 하였습니다.
반면 북방 이스라엘은 여로보암부터 철저히 우상 숭배에 깊이 빠졌고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떠났습니다.
두 나라에 대하여 하나님은 동일한 사랑을 나타내셨고, 우상 숭배로 인해 생명이 단절된 상태가 되면 어김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생명 속에 있기를 호소하였습니다.
그러나 북방 이스라엘은 결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물러갔고, 마침내 하나님의 호소가 더 이상 영향력이 없어지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품성인 선택의 자유를 인정하실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은 이스라엘로부터 거두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 때에 앗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됩니다.(기원 전 722년)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은 멸망하였고, 앗시리아의 정책은 타 민족을 인종하지 않고 앗시리아화 하는 것이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결혼을 통해 앗시리아 사람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 후에 남방 유다도 하나님을 떠나 결국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침공을 당하고(기원 전 605년), 두 번째(기원 전 597년) 그리고 세 번째 침공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였습니다.(기원 전 586년)
그런데 신바빌로니아의 정책은 타 민족들의 고유함을 인정하였기에 신바빌로니아로 포로 잡혀 온 유다 인들은 신바빌로니아 사람과 섞이지 않고 그들만의 특별한 장소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앗시리아와 신바빌로니아의 다른 정책으로 인해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북방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와의 혼합으로 인해 메시아를 받아들일 순수성을 잃어버렸고, 남방 유다는 고유한 혈통을 유지하였으므로 메시아의 계보가 될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메시아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 고유의 혈통을 잃어버린 북방 이스라엘은 순수하지 못하여 이방인들과 같이 되었다고 생각하여 유다 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하여 이방인처럼 대함으로 대화도 하지 않았고,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유다 인들과 사마리아 인들과는 상종하지도 않았고 대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당시의 문화적 전통을 따르지 아니하시고 사마리아로 들어가셨고, 공공연한 죄인이었던 한 여인을 만나셨고, 그 녀와 대화하셨고 그녀에게 자신을 메시아로 소개하여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은 제자들에게도 이해되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당시의 문화적 전통을 파괴하셨고 문화적 전통보다 사람의 생명이 더 소중함을 몸소 증거 하셨습니다.
지금도 문화적 전통에 얽매어서 복음이 막히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구원에 방해가 되는 것들이라면 과감히 깨뜨릴 수 있는 믿음과 용기가 요청됩니다.
둘째 날(월) 로마 백부장
*도입질문: 로마 백부장의 모습이 문화와 전통의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에도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이었습니다. 독립 정신이 강하고 선민의식이 강했던 이스라엘로서는 로마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현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인들을 증오하였고, 로마를 위해 일하는 이스라엘 인은 로마인들보다 더 증오하였습니다.(세리들)
그런데 복음서에 나오는 로마 백부장은 이런 문화적 충돌을 새롭게 바꾼 특이한 사람입니다. 지배자의 나라의 군대 장교이면서도 피 지배자의 백성의 필요를 채워줌으로 서로 간에 마음으로 공유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하인의 질병 치료를 위해 예수님께 이야기 해 달라고 유대 장로들에게 부탁하였고, 로마 백부장의 부탁에 대하여 유대 장로들은 적극적으로 예수님께 그 필요를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런데 로마 백부장의 믿음은 유대 장로들의 믿음보다 컷습니다. 굳이 오실 필요 없이 말씀만 하셔도 자신의 하인의 병이 나을 것이라고 그는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생명이시고 창조주이심으로 말씀으로도 능히 이루 실 수 있다는 믿음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로마 백부장의 믿음은 표적을 구했던 유대인들과 대조를 이룹니다.
또한 로마 백부장은 유대교의 문화를 인정하는 사람이어서 유대 법에 의하여 유대인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집에 오시지 마시고 말씀으로만 치유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단일 민족으로서 단일 민족끼리만 살다보니 타 민족과 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화적 전통은 생각보다 중요하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그들과 친구가 될 수가 없습니다. 한국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문화 속에 살던 사람들과 결혼함으로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다른 문화적 전통을 배려해주는 인간관계, 다른 문화적 전통을 수용하는 사람 간의 관계가 되지 않으면 서로 간에 사귐이 있을 수 없고, 그런 상태는 복음의 길도 어렵게 됩니다.
타인의 문화를 아는 일은 복음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타인의 문화를 연구하고 이해하고 수용할 때 서로 간의 교제가 이루어지고 좋은 관계 속에서 예수님이 증거 됩니다.
셋째 날(화) 마귀를 다룸
*도입질문: 다른 나라 사람들을 대하는 성경의 태도는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예수님은 비 유대인이었던 거라사 인과 두로 인들, 시돈 사람들을 위해서도 봉사하셨습니다.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먼저 전하여 진 후, 유대인들을 통해 세계의 모든 백성들에게 복음이 증거 되길 원하셨던 예수님이지만 예수님은 당시의 비 유대인들에게 대하여서도 동일한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창조한 모든 백성들이 생명 속에 있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모든 백성들과 섞이셨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고, 그들의 신뢰를 얻은 후에 나를 따라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그들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해야 되는 지에 대한 지혜와 능력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께 구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세계인들의 구원을 위해 세계로 나아갈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에 온 이민족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습니다.
넷째 날(수) 열 명의 나병환자
*도입질문: 치유 받은 열 명의 나병환자 중 예수님께 찾아 온 한명의 사마리아인을 통해 우리가 깨닫기 원하는 진리는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유대인의 전통에 의하면 나병은 하나님의 저주 때문에 생긴 병이었습니다. 하나님께 큰 죄를 범하였기에 하나님께서 나병으로 그를 저주하였기 때문에 나병은 절대로 나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나병의 심각성과 더불어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오해로 인한 잘 못된 인식이었습니다.
나병이 낫기가 쉽지 않은 심각한 병이긴 하지만, 그 이유가 하나님의 저주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 못 해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무리 잘 못된 선택을 한다 할지라도 저주하시지 않습니다.(요12:47)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시는 분이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선택의 자유로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은 선택을 했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저주하신다면 그것이야말로 선택의 자유를 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병의 원인은 정확히 모르지만 모든 병과 죽음은 하나님과의 분리 즉 죄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분리를 선택함으로 하나님께서 나병으로 저주를 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분리의 결과가 병과 죽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병은 병으로서의 문제보다는 하나님과의 분리로 인한 결과이므로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필요함을 깨닫게 하는 귀중한 도구입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예수님에 의해서 나았습니다. 열 명의 환자들이 나았지만 아홉 명은 병이 나은 사실에만 만족하여 기쁨으로 집으로 돌아갔고, 단 한 명의 사마리안 인만 예수님께 다시 돌아옴으로 병에서의 구제 뿐만 아니라 생명과의 만남을 경험하였습니다.
병 낫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연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유대인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오지 않았지만 이방인 취급을 받던 사마리아 나병환자가 예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사건은 구원이 모든 민족에게 필요함을 깨닫게 합니다.
다섯째 날(목) 예수님과 헬라인들
*도입질문: 예수님의 십자가를 앞두고 방문한 헬라인들의 모습은 무엇을 가르쳐 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예수님이 탄생할 때에는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였습니다. 그들은 오랜 기간 동안 별을 연구하는 학자들이었고, 예언에 기록된 메시아의 탄생과 별이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그 별이 나타나길 기다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침내 메시아의 탄생을 가리키는 별(사실은 천사들의 무리)이 나타났을 때 그들은 메시아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베들레헴까지 왔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이 마쳐져가는 즈음에 유대인들을 위한 언약에 충실하여 유대인들의 구원과 그들에게 복음을 깨닫게 하는데 주력하셨지만, 끝까지 거절함으로 큰 아픔 속에 있던 예수님께 서방에서 헬라인들 몇 명이 찾아왔습니다.
헬라인들의 방문은 십자가를 앞 둔 예수님께 큰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거절하였지만 예수님에 대한 빛이 희미했던 서방 헬라인이 빛을 찾아옴으로 예수님은 큰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동방 박사들과 서방에서 온 헬라인들의 방문은 예수님의 사역이 유대에 한정되지 않고 전 세계를 향하고 있음을 강력하게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가진 복음은 우리 교회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계14:6-12의 기별은 전 세계 모든 백성들을 위한 기별입니다.
좀 더 시각을 넓혀서 한반도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인을 향하여 복음이 확산되도록 노력하고 또한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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