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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에스더와 모르드개(질문, 대답, 부가설명)08/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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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5-08-01 02:29 조회10,5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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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34분

 

기억절 :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 4:14).

 

연구 범위 : 에 1~10장, 고전 9:19~23, 요 4:1~26, 행 17:26, 마 22:21, 롬 1:18~20

 

에스더는 페르시아 제국의 정치 중심지에서 차원 높고 전문적인 선교 사명을 수행했다. 그녀의 삶은 극과 극을 달렸다. 그녀는 시대의 강대국에서 사는 종교적, 민족적 소수 집단의 고아였지만 페르시아 왕비에까지 올랐다. 이것은 가난뱅이가 부자가 되었다는 식의 동화가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무명의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매우 전문적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훈련을 받았다. 그녀는 은밀하고 위험한 작전을 수행해야 했다. 그러나 위험천만하게도 그녀는 자신의 출신 민족과 종교를 노출시키게 된다.

음모가 난무하는 페르시아의 궁중에서 사촌이자 수양아버지인 모르드개의 지지를 받고 나섰던 그녀의 담대한 증언으로 말미암아 유다 민족은 구원을 받았고 그들의 낮은 사회적 지위가 바뀌었을 뿐 아니라 그 일을 계기로 그들은 제국 전체에서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그녀의 믿음의 결과로 진정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이방인 지배자들 사이에 전파되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경험은 전형적인 선교 실화는 아닐지라도 특별한 환경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충분히 도움이 된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하나님이 그분의 나라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그 백성들을 특정 장소와 시간에 두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➋ 느끼기 : 다른 사람의 안녕을 위한 이타적인 사랑과 책임 정신을 기른다.

➌ 행하기 : 하나님의 선교를 확장시키기 위해서 재능과 은사를 사용하기로 결심한다.

 

A. 

❷ 페르시아의 유대인들에게 큰 위기가 닥친 경위는 무엇이었습니까?

※ 하만을 경배하라는 왕명이 선포된 것이다. 

❸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선교적으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 환경과 현실에 합당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❹ 선교적인 확장을 위해 우리의 용기와 헌신이 필요한 분야는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 상류사회에 복음을 전하는 일이 아닐까?

 

B. 

❷ 에스더가 민족적, 신앙적 정체성을 숨기다가 마침내 공개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 자기 민족이 죽음에 직면했을 때 자기의 신분을 걸고 정체를 밝혔다. 

❸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예를 통해서 볼 때 신앙과 사회에 대해 의무를 다하는 것은 선교적으로 어떤 이점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 올바른 인격적 생활적 감화를 끼치게 된다. 

❹ 우리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재림교회를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게 될까요?

※ 믿음으로 유유자적하는 삶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정직하고 사심이 없고 봉사하고 따뜻하면 성령께서 그들에게 역사하실 것이다. 

 

결론 : 하나님은 하늘나라의 삶과 가치를 전파하기 위한 그분의 대표자들이 되도록 지금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첫째날(일) 페르시아 속의 에스더

8월 2일

 

“왕후 와스디가 내시가 전하는 아하수에로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하니…”(에 1:15)

 

1. 에 1:2~20을 읽어 보라.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이 이야기 중에 오늘날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은 무엇인가? (구체적인 기록들이 많이 생략되었음을 기억하고 읽으라.)

[에1:2~20] 당시에 아하수에로 왕이 수산 궁에서 즉위하고 3 위에 있은 지 삼 년에 그 모든 방백과 신복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도의 귀족과 방백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 4 왕이 여러 날 곧 일백팔십 일 동안에 그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 5 이 날이 다하매 왕이 또 도성 수산 대소 인민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칠 일 동안 잔치를 베풀새 6 백색, 녹색, 청색 휘장을 자색 가는 베줄로 대리석 기둥 은고리에 매고 금과 은으로 만든 걸상을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 깐 땅에 진설하고 7 금잔으로 마시게 하니 잔의 식양이 각기 다르고 왕의 풍부한 대로 어주가 한이 없으며 8 마시는 것도 규모가 있어 사람으로 억지로 하지 않게 하니 이는 왕이 모든 궁내 관리에게 명하여 각 사람으로 마음대로 하게 함이더라 9 왕후 와스디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부녀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10 제 칠 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어전 내시 므후만과 비스다와 하르보나와 빅다와 아박다와 세달과 가르가스 일곱 사람을 명하여 11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왕후의 면류관을 정제하고 왕의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그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방백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12 그러나 왕후 와스디가 내시의 전하는 왕명을 좇아 오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중심이 불붙는 듯하더라 13 왕이 사례를 아는 박사들에게 묻되 (왕이 규례와 법률을 아는 자에게 묻는 전례가 있는데 14 때에 왕에게 가까이 하여 왕의 기색을 살피며 나라 첫 자리에 앉은 자는 바사와 메대의 일곱 방백 곧 가르스나와 세달과 아드마다와 다시스와 메레스와 마르스나와 므무간이라) 15 왕후 와스디가 내시의 전하는 아하수에로 왕명을 좇지 아니하니 규례대로 하면 어떻게 처치할꼬 16 므무간이 왕과 방백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왕후 와스디가 왕에게만 잘못할 뿐 아니라 아하수에로 왕의 각 도 방백과 뭇 백성에게도 잘못하였나이다 17 아하수에로 왕이 명하여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도 오지 아니하였다 하는 왕후의 행위의 소문이 모든 부녀에게 전파되면 저희도 그 남편을 멸시할 것인즉 18 오늘이라도 바사와 메대의 귀부인들이 왕후의 행위를 듣고 왕의 모든 방백에게 그렇게 말하리니 멸시와 분노가 많이 일어나리이다 19 왕이 만일 선히 여기실진대 와스디로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되 바사와 메대의 법률 중에 기록하여 변역함이 없게 하고 그 왕후의 위를 저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20 왕의 조서가 이 광대한 전국에 반포되면 귀천을 무론하고 모든 부녀가 그 남편을 존경하리이다.

 

답: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가 왕국의 위용을 뽐내려고 6개월이나 잔치를 했다는 사실도 이해하기 쉽지 않고, 왕후를 거기 나오라고 한 사실도 납득할만한 것도 아니고 또 왕후가 나오지 않았다고 폐위시켜야 한다는 모사의 주장도 그렇고 그 주장은 모든 여자들로 남자에게 전적으로 복종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고 왕후는 폐위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으니 납득이 안 가는 사건이다. 그러나 그런 납득 안 되는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유대인을 구원하는 섭리를 이루신다. 

 

아하수에로 왕이 7일이 넘도록 귀족과 신하들을 위해 배설한 잔치는 권력의 정점에 있는 자들에게도 사치스러워 보였을 뿐 아니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훨씬 넘어섰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행사에서는 대개 제한 없이 술의 소비가 이뤄졌다(에 1:7~8). 이런 선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별한 행사에 수천 명의 손님을 즐겁게 했다고 자랑하는 고대 왕들의 기록이 존재한다. 그런 상황에서 과도한 음주는 왕후 와스디에게 술에 잔뜩 취해 있는 손님들(모두 남자)을 즐겁게 하라고 명령할 정도로 왕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 그 명령은 결혼한 여자이자 왕실의 일원인 그녀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그녀의 반응이 무엇이든 그녀는 지위를 잃게 될 곤경에 처하였다. 그래서 독재자의 저급한 욕망에 맞서 자존심을 지키기로 한 그녀의 용감한 선택은 독자로 하여금 남성 본위의 왕궁에서조차 지조 있는 여인이 행사한 선의 능력을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반면 우리는 에스더의 행동을 다루어야 한다. 에 2:3을 보면 이 여인들이 자원자가 아니었다는 인상을 준다. 왕이 조서를 반포했고 에스더는 왕비 후보로 모집되었다. 그녀가 거절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아무도 모른다.

 

2. 고전 9:19~23을 읽어 보라. 우리는 이 말씀에 나타난 원칙들을 에스더에게 일어난 일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 또한 그 원칙들은 오늘날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

[고전9:19~23]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답: 에스더는 자기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왕비가 되었고, 기회가 왔을 때 과감히 자기의 본색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일을 했다. 오늘날 전도할 때에도 때와 장소와 사람들의 형편을 따라서 바울이 행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성경적이다. 그러나 성경적 원칙을 희생하면서 전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3. 현재까지 이 이야기의 진정한 영웅은 이후의 역사에서 사라진 와스디이다. 그녀의 단정하고 원칙에 입각한 태도는 에스더를 위해 길을 열어주었다. 원칙적인 입장이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결과를 알지 못할지라도 원칙적인 태도를 취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 원칙을 지키는 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받은 예수님의 생명의 생태이다. 이것을 거스르는 것은 생명을 거스르는 것이다. 

 

<부가설명> 에스더의 환경은 신앙을 고수하는데 좋은 환경이 아니다. 다니엘이 처한 환경보다도 더 힘든 환경이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르는 나라의 최고 권력자의 아내가 되어서 가정생활에서부터 신앙을 고수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에스더서를 읽으면 에스더의 사생활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죽음을 무릎선 사실을 보면 그가 일상생활에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하기에 넉넉하다. 그는 양부 모르드개의 지시를 잘 순종하였고, 또 자기를 드러내고 유대인을 구원하는 일에도 모르드개의 지시를 잘 따랐다. 그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신실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삶이 결정적 순간에 신실한 믿음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사건의 진행 경우를 따라서 합당한 처신으로 목적을 이루었다. 바울을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 상대를 배려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독자들이 오해하지 않기 위하여 자기가 신앙원칙을 결코 굽히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기록하였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이런 표현은 바울이 자기가 지켜야할 신앙의 원칙을 결코 저버린 일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준다. 우리는 바울의 전도 방법을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주색에 빠진 아하수에로 왕의 명령을 거절한 왕후 와스디는 원칙적인 삶의 모본을 제시했다. 그녀의 폐위로 인해 에스더가 왕비 후보자로 모집되었다.

 

 

둘째날(월) 왕궁에서의 에스더

8월 3일

 

“에스더가 자기의 민족과 종족을 말하지 아니하니 이는 모르드개가 명령하여 말하지 말라 하였음이라”(에 2:10).

 

1. 에 2:10, 20을 읽어 보라. 그녀가 단기적이지만 출신 민족과 종교를 감춰야 했을 법한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가?

[에2:10,20] 에스더가 자기의 민족과 종족을 고하지 아니하니 이는 모르드개가 명하여 고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20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명한 대로 그 종족과 민족을 고하지 아니하니 저가 모르드개의 명을 양육받을 때와 같이 좇음이더라.

 

답: 본문을 읽어서는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추측한다면, 페르시아 사람들이 당시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일신을 섬기던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하여 어느 정도 배타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던 것을 염려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일 ‘헤개’가 유대인에 대해서 나쁜 선입견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그는 에스더가 왕과 가까이 할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하도록 훼방할 것이 뻔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 요 4:1~26에서 예수님과 우물가의 여인의 일화를 읽어 보라. 본 백성에게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던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는 공개적으로 자신이 메시아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이 일화는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내린 지시를 이해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답: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나 제자들에게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직접 말씀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이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에 구속 사업에 막대한 지장을 줄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가 되었을 때 자신을 드러내신 것이다. 그러나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께서 메시아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사마리아 인들에게 담대히 전도할 수 있을 것을 아셨기 때문에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전도할 때 이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요긴할 것이다. 

 

모르드개는 두 번이나 그녀에게 민족과 가정적 배경을 드러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런 사실은 일부 주석가들을 곤란하게 한다. 그들은 특별히 유대민족이 위협을 받지 않았던 시기에 이런 은폐의 필요성이 있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녀가 자신의 정체와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을 공개했다면 하나님을 알리는 증인이 되지 못했을까? 또는 유대인은 페르시아 왕실에 신뢰를 주지 못했거나 출신 민족을 드러내면 백성을 위해 탄원해야 할 시기에 왕 앞에 나아가는 일에 장애가 되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그런 위협이 발생하기 전에 에스더에게 정체를 밝히지 말라고 경고했다. 성경은 모르드개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님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가 항상 모든 것을 밝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신중함은 하나의 미덕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을 때에는 훨씬 더 제한된 말씀을 하셨다. 유대인들에게는 말씀하지 않으시고 후에 제자들에게 비밀을 지키라고 명하셨던 것이 그 여자에게는 계시된 바 되었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가 예수의 은혜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는 일에 그 지식을 활용할 것을 아셨다”(시대의 소망, 190).

 

<부가설명> 복음을 전하는 데는 숨길 때와 드러낼 때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드러내어서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가 될 때는 숨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계속 숨기는 것은 잘하는 것이 아니다. 드러낼 때와 숨길 때를 분별할 줄 알도록 성령의 지혜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이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유대인들에게는 숨기시고 이방인들에게는 드러내셨다. 유대인의 편견과 그릇된 기대가 예수님의 속죄사업과 생명을 복음을 전하는데 지극히 방해가 될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유대인 환자들을 고치실 때에는 예수께서 하셨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고 이방인 환자들을 고치시고는 가서 주께서 네게 행한 큰일을 전하라고 하셨다. 유대인들이 그만큼 예수님을 오해하고 있었고 그 오해는 복음에 결정적인 방해가 될 것을 아셨기 때문에 숨기신 것이다. 우리도 대하는 사람과 처지를 따라서 이 지혜를 활용하도록 배울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교훈 :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자신의 민족과 종교를 드러내지 말라고 경고했다. 예수님의 예처럼 때로 신중함은 중요한 요소이다.

 

 

셋째날(화) “이 때를 위함이 아니냐”(에 2:19~5:8)

8월 4일

 

에 3:1~5에서 이야기의 줄거리가 전개되기 시작한다. 유대인 모르드개는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계명에 따라 사람에 불과한 하만에게 절하기를 거부했다. 분노한 하만은 자신이 받은 모욕감에 복수할 방법을 찾고자 했다. 모르드개는 그러한 행동을 통해서 이교도들에게 진정한 하나님을 증언하고 있었다.

 

1. 하만은 어떤 핑계를 이용해 유대 민족을 제거하려고 했는가? 이는 우리가 문화적 차이로 인해 얼마나 쉽게 보편적인 인류애에 대해 눈이 멀 수 있는지 말해주는가?(에 3:8~13, 행 17:26도 참고하라)

[에3:8~13]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아뢰되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도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보다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 9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저희를 진멸하소서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부쳐 왕의 부고에 드리리이다 10 왕이 반지를 손에서 빼어 유다인의 대적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에게 주며 11 이르되 그 은을 네게 주고 그 백성도 그리하노니 너는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라 하더라 12 정월 십삼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어 하만의 명을 따라 왕의 대신과 각 도 방백과 각 민족의 관원에게 아하수에로 왕의 이름으로 조서를 쓰되 곧 각 도의 문자와 각 민족의 방언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치니라 13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부쳐 왕의 각 도에 보내니 십이월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노소나 어린아이나 부녀를 무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

[행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답: 하만은 유대인들이 페르시아의 법과 다른 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들어 왕에게 그들을 진멸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하나님의 법과 국가의 법을 대결구도로 몰아간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한 혈통으로 지었다고 가르쳐주셨는데, 우리는 이것을 아주 잘 잊어버린다. 

 

하만의 계략이 드러나자, 모르드개는 유대교 의식을 사용하여 그의 슬픔을 외적으로 표현하였다.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대성 통곡하며”(에 4:1). 그 사이에 에스더는 왕 앞에 나갈 준비를 한다. 그녀는 하만의 계략을 저지하려는 계획의 일환으로 대범하게 왕의 호출 없이 그의 앞에 나아감으로써 페르시아 궁중법을 위반한 유대인이 되려고 했다. 다행히도 왕은 그녀를 승낙했고 그녀의 식사 초대도 수용했다. 에스더는 페르시아 전국의 유대인 포로들이 직면한 드라마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이 일화에서 에스더는 자기부인과 영웅적 행동(에 4:16), 재치(5:8)와 용기(7:6)를 보여주었다.

“에스더 왕후를 통하여 주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한 큰 구원을 이루셨다. 어떠한 권세로도 그들을 구원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을 때에 에스더와 그와 교제하던 여인들이 금식과 기도로 그 문제와 부딪쳐 그들의 백성들에게 구원을 가져왔다. 구약 성경 시대에 하나님의 사업과 관련하여 부녀자들이 한 일을 연구해 보면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는 긴급한 사태를 대비할 수 있는 교훈을 배울 수 있다. 그토록 위험한 처지에 있지는 않을지라도 헌신한 여자들은 에스더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같이 낮은 지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화잇주석, 에 4:14~17).

 

<부가설명> 에스더서는 하나님이라는 말도 여호와라는 말도 없는 성경이다. 그래서 유대인 학자들 사이에 과연 성경인가라는 의논이 있었던 책이라고 한다. 하나님이라는 말이나 여호와라는 말이 분명히 나올만한 장면에서도 그 말을 고의적으로 쓰지 않은 표가 나도록 그 말을 쓰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4:14)에서 ‘다른 데로 말미암아’라고 하는 장면, 이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라고 당연히 나올 수 있는데 ‘다른 데로’라고 했다. 또 금식 기도하라고 할 때도 애써 하나님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만이 유대인을 걸고  넘어진 것이 하나님의 법과 국가의 법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다니엘서 6장에 율법에 대하여 고소할 틈을 찾은 것과 같은 사건이다. 에스더서는 중보자 없이 환난을 통과하는 사건의 표상이다. 예수께서 성소에서 나오시고 성고에 연기가 가득하게 될 때 성도들은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대제사장 예수님 없이 환난을 맞아야 할 것을 표상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하나님이나 여호와를 부르지 않은 것이 마지막 때 사건을 표상하기 위하여 기록하게 하신 성령의 영감이라고 믿는다. 

 

교훈 : 신앙 원칙을 고수하면 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황을 극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믿음과 용기와 재치를 주신다.

 

 

넷째날(수) 모르드개와 하만

8월 5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에 6:9).

 

1. 에 5~8장에 따르면 에스더는 어떻게 자기 백성을 구원할 수 있었는가?

 

답: 에스더 5장에서 8장은 에스더가 왕의 부름 없이 왕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장면부터 왕과 하만을 에스더의 잔치에 초대하는 내용과 첫 잔치에 참석한 후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않아 와의 실록을 읽게 하였는데 모르드개의 선행이 기록되어 있을 것을 문득 알게 되고 보상을 했는지 묻는 장면, 마침 그때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도록 허락을 받으러 일찍 왕궁에 왔다. 자기에게 보상이 올 줄 알고 자기가 주청한 사실을 모르드개에게 시행하게 되는 사건, 마침내 두 번째 에스더 잔치에 참석했다가 잡히게 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 모든 사건을 실제로 이끄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에스더가 배설한 두 번의 잔치 일화는 이야기를 절정에 치닫게 한다. 그리고 민족을 멸절시키려는 계획에 대반전이 일어난다. 이야기 속에서 진정한 영예와 자기 영예의 차이가 드러나고 악인에게 내려진 심판도 기록된다. 이러한 궁중 암투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우리는 여기서 절대 군주와 왕실의 은밀한 사무들을 엿보게 된다.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그들의 지위와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지식 그리고 구원을 가져다주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활용했다.

한편 모르드개는 조용한 봉사의 생애를 살았지만 하만에게 절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신앙이 공개되도록 했다. 사람들이 이를 알아차리고 그에게 훈계했지만 그는 신앙적 타협을 거절했다(에 3:3~5). 이는 다른 이들에게 분명 하나의 증거가 되었다.

 

2. 에 6:1~3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모르드개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이 타국에서 생활하며 신앙을 증언하는 방법에 대해 어떤 교훈을 끄집어내야 하는가?

[에6:1~3] 이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2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 지킨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모살하려 하는 것을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3 왕이 가로되 이 일을 인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시신이 대답하되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

 

답: 어디서 살든지 하나님과 국가에 충성해야 한다. 다만 국가 제도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지 않는 한은 그렇다. 모르드개는 그렇게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보상을 전혀 바라지 않고 충성스러운 삶으로 하나님을 증거해야 한다. 

 

모르드개는 분명 여호와를 따르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의 군주에게도 충성과 충실함을 나타내 보였다. 비록 사람 앞에서 절하는 것을 거부했지만 역모를 폭로했을 만큼 그는 훌륭한 백성이었다. 하지만 역모를 밝힌 그의 공적에 대해 칭찬을 받았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봐서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 일을 한 뒤에 자신의 삶으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그의 선한 행위는 더 큰 보상을 받았다. 다음의 말씀은 그의 예를 가장 적절하게 설명하는 것 같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마 22:21).

 

<부가설명> 교과 저자는 모르드개의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익숙히 아는 내용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국가에 다 충성해야 한다. 정직해야 한다. 나라와 정치를 맡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가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고 신앙을 버리라고 하거나 성경과 다르게 국가가 정한 신앙을 하도록 강요할 때에는 오직 하나님께 충성해야 한다. 그 결과의 보상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보상을 기대하고 충성스럽게 사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사는 것이 생명의 법칙이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말세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진정 하나님의 백성으로 굳게 서도록 기도와 말씀으로 하루하루를 오직 말씀에 굴복하며 사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 : 모르드개는 사람에게 절하기를 거부했지만 과거의 역모를 폭로할 만큼 왕에게 충성하는 백성이었다. 결국 그의 행위는 큰 보상이 되어 돌아왔다.

 

 

다섯째날(목) 이방인들이 유대인이 됐을 때

8월 6일

 

“왕의 어명이 이르는 각 지방, 각 읍에서 유다인들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을 명절로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에 8:17).

 

1. 에스더 8장을 읽어 보라. 특히 17절을 자세히 읽어 보라. 우리는 이 일을 선교와 전도의 측면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답: 8장은 사건이 반전이 되어서 유대인들이 존귀하게 되었을 때 본토 백성들이 유대인으로 귀화하는 사건을 기록했다. 그리스도인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충성스럽게 준행하면 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려고 할 것을 보여주었다. 

 

물론 에스더서는 전형적인 선교와 전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종말을 향해 가는 현재, 우리는 이런 이야기와 유사한 일들을 본다. 유대인들을 위한 왕의 조서가 반포된 결과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에 8:17). 어떤 주석가들은 그들이 진정한 회심을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개종에 두려움과 염려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맞다. 그러나 처음 동기와 상관없이 그들이 이교 신앙과 참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의 큰 차이점을 발견한 뒤에 성령의 역사에 반응했을지 누가 알겠는가?

 

2. 롬 1:18~20을 읽어 보라. 여기서 가르치는 개념들은 유대인이 된 그들에게 어떻게 작용했을까?

[롬1:18~20]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답: 유대인들은 그들의 하나님께서 불의를 행하는 자들에게 진노로 응징하실 것을 간구하고 믿었을 것이다. 이방인의 마음에도 창조주를 알 만한 것이 있을 것도 알았을 것이다. 

 

유대인을 멸하기 위한 처음 조서에 따르면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죽일 뿐 아니라 “그 재산을 탈취”(에 3:13)할 수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이 원수를 죽이도록 허용하는 조서도 그들의 재산을 탈취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했다(8:11).

그러나 에스더서는 세 번이나 유대인들이 원수의 재산에 손을 대지 않았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했다(9:10, 15, 16). 비록 그 이유를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세 번이나 그 점이 언급되었다는 사실은 이런 행위가 무엇을 강조하는지를 보여준다. 아마도 그들이 탐욕이 아닌 자기 방어 차원에서 이런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를 바랐기 때문에 자제했을 가능성이 있다.

 

<부가설명> 유대인들은 정당방위만 한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아간은 여리고를 정복했을 때 탐심을 실천했기 때문에 온 가족이 파멸에 이르렀다. 그리스도인은 정직하고 순수해야 한다. 보상을 받으려는 생각을 가지고 선을 행하지 않아야 한다. 그들은 하늘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순수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도움의 손길도 도움이 필요한 그 사실에만 마음을 두어야 한다.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작용하면 좋은 일을 하고도 순수하지 않게 된다. 어떤 경우든지 그렇지 않겠는가. 예수를 믿게 하기 위하여 선을 베풀지 말고 정말 그의 필요를 위하여 선을 베풀면 그 마음에 일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우리가 성령의 일까지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정로가 아니겠는가?

 

교훈 : 유대인들의 구원을 목격하고 개종한 이교도들의 진심을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들이 참 하나님께 굴복했다는 면에서 선교적인 의미가 있었다.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8월 7일

 

<선지자와 왕>, 598~606 “왕후 에스더의 시대”를 읽어 보라.

“하나님의 남은 백성에 대하여 최후에 공포될 법령은 아하수에로가 유대인들에게 내린 법령과 매우 비슷한 것이다. 오늘날 참 교회의 원수들은 안식일 계명을 지키는 적은 무리 가운데서 대궐문에서의 모르드개와 같은 사람을 본다. 당신의 율법에 대한 하나님의 백성의 경의는 여호와 경외하기를 버리고 당신의 안식일을 짓밟고 있는 자들에게 끊임없는 견책이 된다”(선지자와 왕, 60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유대인들을 멸하기 위한 조서와 ‘짐승의 표’의 문제가 세상의 주목을 받는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 사이에는 어떤 유사성이 있습니까?

※ 국가의 법으로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유사하다. 율법이 다른 민족이 국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해를 끼친다고 말했다. 

 

➋ 유대인과 기독교인 모두 에스더서를 구약 정경에 포함시킬지에 대한 문제로 논쟁했습니다. 에스더서는 사해 사본을 만든 공동체가 사용했던 구약 성경과 고대 터키와 시리아 교회가 사용했던 구약 성경에는 없습니다. 또한 에스더서에는 이방 왕의 이름이 190번 언급되는 반면 하나님의 이름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또한 기도와 금식은 언급되는 반면 제물, 성전, 예배와 같은 단어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용서와 자비 같은 언약적 강조가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에스더서가 정경에 포함되는 것을 적합하게 보셨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어떻게 일하시는지에 대해서 에스더서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강력한 영적 교훈은 무엇입니까?

※ 이미 부가설명에 쓴 것처럼 환난의 때에 있을 사건의 역사적 예표이며 하나님께 충성할 때에 결과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➌ 선교활동을 펼친 선교사나 그 밖의 인물들이 그들의 신분과 사역을 밝히지 않았던 시대의 사상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우리도 특별히 선교적인 맥락에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어떤 정당한 이유가 있을까요? 예를 들면 기독교 전도 활동에 적대적인 나라에서는 선교사들이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신분을 바로 드러내지 않아야 할 상황이라면 어떻게 부정직이나 기만이 아닌 방식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 생활의 정직과 충실성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선망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서로 의논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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