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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시온의 하나님을 사모하여 (질문, 대답, 설명) 03/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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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4-03-07 23:12 조회3,8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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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시온의 하나님을 사모하여 

(3월 16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40분)

 

연구 범위: 시 84;, 계 21:3, 시 122:, 87:, 갈 3:28, 29, 마 28:18~20, 시 46:, 125:

 

기억절: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 84:2).

 

시온의 노래는 시온의 아름다움과 그의 거룩한 산에서 통치하시는 주님의 주권을 찬양하는 기쁨의 찬송이다. 이 시편들은 주로 성전의 은총을 찬양하고 다른 시편에서도 볼 수 있는 성소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이 시편의 대부분은 성전 악사(대상 6:31~38)이자 성전 문지기(대상 9:19)로서 주님의 집의 은총을 직접 경험한 고라 자손이 지은 것이다. 

무엇이 시온을 희망과 기쁨의 근원으로 만드는가? 시온은 당신의 백성 가운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인 것처럼(신 7:6), 시온은 하나님의 택하신 산이다(시 78:68, 시 87:2). 하나님은 시온에서 통치하시고(시 99:1, 2), 또한 시온에 터전을 두셨다(시 87:1). 그러므로 시온은 하나님의 복과 피난처가 있는 곳이다. 시온은 자주 고대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중심지인 예루살렘 또는 성소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주님의 임재와 은혜는 성소의 경계를 초월하기에 시온의 복은 땅끝까지 흘러 넘친다. 시온은 온 세계가 하나님의 것임을 확증하는 온 땅의 기쁨(시 48:2)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시온의 노래는 그곳에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고 사모하는 노래이다. 

느끼기: 시온을 향해가는 순례자는 이 땅을 바라지 않고 고난에도 주님을 의지한다. 

행하기: 새 하늘과 새 땅을 노래하는 시온의 대리자가 되어 하나님을 위해 힘있게 일한다. 

 

TMI 위로

2. 시편 기자가 주의 성전에 거하기를 사모하는 이유는 어떤 것입니까?(시 84:2) 

*답: 영혼의 건강을 바라고 그곳이 생명과 안식의 곳이기 때문이다. 

3. 신자들은 왜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까?(시 122:6)

*답: 예루살렘이 평안하다는 것은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4. 왜 하나님은 시온을 영광스럽게 하십니까? 그것은 우리의 정체성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시 87:5)

*답: 그곳이 거듭난 사람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5.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시 46:10)

*답: 여호와 하나님이 가장 안전한 피난처이기 때문이다.

6. 시온은 왜 견고한 성으로 묘사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무엇을 말합니까?(시 46:1)

*답: 죄의 세상에서 안전을 누릴 수 있는 요새이기 때문이다. 

7. 고난 많은 세상에서 시온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계 21:1~5)

*답: 생명과 소망의 믿음을 노래하는 것이다. 

 

결론: 시온의 노래는 하나님의 통치하심에 대한 생생한 소망을 항상 기억하고 그것과 함께 살겠다는 결심과 약속이다. 시온을 잊지 않는 것은 순례자가 되어 이 세상을 고향으로 여기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며 회복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사는 것이다. 그 노래는 소망을 나누게 하고 우리가 시온에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어 힘있게 일하도록 돕는다. 

 

3월 10일(일) 주의 성전에서의 한 날이 다른 천 날보다 나은즉

 

시편 84:1~4을 읽어 보라. 시편 기자는 왜 성전에 거하기를 갈망하는가?

[시84:1~4]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답: 그는 하나님과 함께 살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시편 기자는 성전을 영원한 거처로 삼아 하나님과 영원히 가까이 있기를 “사모”하여 “쇠약”할 지경이다(시 84:1, 2). 하나님의 생생한 임재(시 84:2)는 성전을 특별한 장소로 만든다. 예배자들은 성전에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시 27:4, 63:2) "성전에서 온갖 좋은 복으로 만족"(시 65:4, 새번역)할 수 있다. 시편 84편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시 84:4), 그분 안에서 힘을 얻고(시 84:5), 그를 신뢰함으로(시 84:12) 예배자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할 데 없는 행복을 얻는다. 성전은 예배와 동료 신자들과의 교제를 통해 그러한 관계가 자라나는 곳이다. 성소에서 하나님의 생생한 임재는 예배자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나라와 영생의 맛을 어렴풋이 보게 한다. 

 

시편 84:5~12을 읽어 보라. 또 어떤 이가 성전에서 축복을 받을 수 있는가? 

[시84:5~12]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6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셀라) 9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답: 마음에 시온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복은 성전에서 비추어 나가는 것으로 묘사되며, 먼저 성전에서 섬기는 사람들에게(시 84:4), 그리고 성전으로 가는 순례자들에게(시 84:5~10), 마지막으로 땅끝까지 도달한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뵐 것이라는 기대는 순례자들의 믿음을 굳세게 한다(시 84:7). 지속되는 피곤한 여행은 여행자를 힘들게 만들기 마련이지만, 성전을 향한 순례자들은 성전에 가까워질수록 활력이 넘친다. 

성전에서 멀리 떠나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자녀는 주님의 성전에 들어가는 의인의 특징인(시 15:1, 2) 주님 앞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으로 하나님의 성전의 축복을 지니고 다닌다(시 84:11). 

주님을 "해"라고 부르는 것은 성소의 복이 마치 햇살처럼 땅 끝까지 뻗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시 84:11). 따라서 믿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더라도 그분의 은혜를 받는다.

 

<교훈> 하나님의 생생한 임재와 동료들과의 교제를 통해 예배자들은 비할 데 없는 행복을 얻는다. 성소는 그분의 영광스러운 나라와 영생을 어렴풋이 맛보게 한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려고 성소를 지으라고 하셨다(출25:8,9).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양식(樣式)대로 지어야 했다. 히브리서는 모세의 성막이 하늘의 성전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했다(히8:5). 그래서 하늘에 그런 모습에 건물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우리교회 사람이 많다. 그중에는 학자들이나 목회자들도 있다. 그런데 히브리 9:9에는 이 성소는 비유라고 계시하였다. 지상 성소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구원의 도리를 설명해주는 시청각교재로 주신 것이다. 그래서 비유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밀씀하신대로 이해하면 성소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곳이다. 임마누엘이다. 그러므로 성소의 진짜 원형은 성육신하신 예수님이시다. 그 예수님을 믿음는 성도들도 성전이다(고전3:16).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거하시는 존재들이다. 옛날에는 장소인 성전에서 하나님을 뵙기를 갈망하는 말씀을 했으나 이제는 성도가 성전이 되었으니 성령께서 그를 주장하여 성도 자체가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찬송이 되어야(엡1:12)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이 사실의 절정이 계21:1~5이다. 성도인 우리는 눈을 예수께서 돌려 그분만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골3:1~4).

 

3월 11일(월)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한 기도

  

시편 122:1~5을 읽어 보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라는 말에 시편 기자는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무엇을 찾기를 기대하는가?

[시122:1~5]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2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3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4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5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답: 시인은 기뻐했다.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고 그곳에서 전례를 찾으며 심판의 보좌를 기대했다.

 

시편 122편은 예루살렘에 도착한 순례자들의 기쁨과 설렘을 표현하고 있다. 예루살렘 순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과거부터 오늘까지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배하기 위해 일 년에 세 번씩 모이는 기쁜 일이었다(신 16:16).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법규"(시 122:4, 쉬운)와 “심판의 보좌”(시 122:5)가 있는 국가 생활의 중심지였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법규"는 때때로 "증거의 장막"(민 1:50)이라고 불렸으며 거기에 "증거궤"(출 25:22)가 있는 성전을 가리킨다. 심판의 보좌는 예루살렘의 사법 제도를 의미한다(삼하 8:15). 따라서 순례의 길은 정의를 구하고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과 사람들에게 공의를 베푸는 일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시편 122:6~9을 읽어 보라.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주된 기도는 무엇인가?

[시122:6~9]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7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8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답: 예루살렘의 평안을 구하고 복을 구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도성과 주민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하고, 예배자들 사이에 평화가 있게 하여 그들을 하나로 연합하게 한다(시 122:8). 예루살렘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에 평화가 있을 때 평화의 도성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한 기도는 하나님과 그 백성이 또 백성들 서로가 평화롭게 살도록 호소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이 평안할 때 백성들은 번영할 것이다(시 147:12~14).

강하고 연합된 백성이 하나님의 평화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선포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시편은 신앙 공동체의 안녕을 위한 기도가 하나님의 자녀들의 기도의 주된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요 13:34, 35).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여전히 신자들의 특권이자 책임이다(사 52:7, 사 66:12, 13, 계 21, 22). 이 기도는 마지막 때에 임할 예루살렘만 아니라 온 세상을 품을 하나님의 평화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생생하게 만들 것이다. 

 

<교훈> 시편은 강하고 연합된 백성이 하나님의 평화와 구원의 소식을 전할 수 있기에 공동체의 안녕을 위한 기도가 그 기도의 주된 주제가 되어야 함을 가르친다. 

 

<부가설명> 예루살렘은 그뜻이 ‘평화의 마을(도성)’이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그 도성을 평화롭게 두지 않았다. 예루살렘과 대조되는 도시가 바벨론이다. 바벨론은 그 뜻이 ‘혼잡’인 것을 교인들은 잘 알 것이다. 혼잡은 안정을 주지 못한다. 평안과 혼잡은 섬뜩한 대조를 이룬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려야 하는데 세상이 예루살렘을 평화가 아닌 전쟁의 도시를 몰고 간 것처럼 예수님의 평안을 갈구하고 기도하며 그 평안을 다른이에게도 나누어주기를 바라는 성전인 성도들을 흔들고 혼잡하게 한다. 그러나 성도는 자신이 성령께서 거주하시는 성전인 것을 깊이 생각하며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예수님의 평안 간직한 사람 예루살렘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성도들 곁에 있으면 참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존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옛날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포위되고 포로가 되었듯이(단1:1,2) 오늘날도 세상이 성도들을 에워싸고 평화를 혼잡하게 한다. 절대적 평화만 있는 하늘 새 예루살렘이 한없이 그립다.

 

3월 12일(화) 시온, 열방의 본향 

 

시편 87:1, 2을 읽어 보라. 시온이 그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87:1,2]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 2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답: 하나님의 터전이 있기 때문이다.

 

시편 87편은 시온이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선택하시고 사랑하시는 도성임을 기뻐하는 찬송이다. 하나님 성전의 기초는 시온산에 있다(시 2:6, 시 15:1). 종말에 시온은 모든 산 위에 솟아오를 것이며 이는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의 주권을 상징한다(시 99:2, 사 2:2, 미 4:1). 시편 87편은 위엄을 강조하기 위해 시온을 "산들"이라고 부른다(시 133:3). 하나님은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시 87:2)며, 실로와 벧엘 같은 과거 하나님의 백성이 특별히 모였던 이스라엘의 다른 모든 장소보다 시온이 중요하다고 하신다. 따라서 시편은 하나님을 향한 참된 예배는 그분이 택하신 곳에서 정하신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확증한다. 

 

시편 87:3~7을 읽어 보라. 시온에 대해 언급된 영광스러운 일들은 어떤 것인가?

[시87:3~7]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 (셀라) 4 나는 라합과 바벨론이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5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고 말하리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는도다 6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 (셀라) 7 노래하는 자와 뛰어 노는 자들이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

*답: 모든 구원받은 자가 다 시온에서 출생하기 때문이다. 

 

시온의 영광은 모든 나라를 하나님께로 이끌며 그렇게 하나님 나라의 경계는 온 세계로 확장된다. 시온이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모든 민족의 영적 근원지로 묘사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다른 민족을 열등한 민족으로 대하지 않으심을 기억하라. 

개인의 호적은 그 출생지에 따라 이루어진다(느 7:5, 눅 2:1~3). 시편은 열방이 시온에서 태어났다고 세 번 기록하는데, 이는 주님께서 그들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주시고 시온의 자녀로 태어난 모든 특권을 합법적으로 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시 87:4~6). 

시편 87편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의 구원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그들이 한 교회로 연합될 것을 말한다(롬 3:22, 롬 10:12, 갈 3:28, 29, 골 3:11). 

시편이 묘사하는 시온의 번영은 하나님의 나라가 온 땅을 가득 채울 만큼의 큰 산이 되는 다니엘의 환상(단 2:34, 35, 44, 45)과 하나님의 나라가 공중의 새들이 깃들이는 거대한 나무로 자라난다는 예수님의 비유(마 13:32)를 떠올리게 한다. 

 

<교훈> 시온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의 주권을 상징하며 영적 본향으로서 온 세상의 백성을 이끌어 하나님의 백성인 시온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부가설명> 시온은 뜻이 요새(要塞)라는 뜻이다. 군사용어이기도 하다. 그곳은 예루살렘 성전을 지은 곳이고 다윗성이 둘러 있는 곳이다(삼하5:7). 하나님의 집은 세상을 이기는 군사들의 요새이다. 그곳은 하늘 예루살렘을 상징하기도 한다. 시87편은 하늘의 시온을 상징하는 시편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시온을 세우셨다고 감격한다(시87:5). 세상의 모든 민족의 근원이라고 고백한다(4~7절). 하나님의 백성들이 유대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면 하나님께서는 등록하신다. 생명책은 하늘 호적부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10:20)라고 하셨다. 진정으로 거듭나는 사람들은 하늘에서 나는 사람들이다. 거듭난다는 말은 ‘아노덴 게나오’인데 ‘아노덴’은 위로부터라는 뜻이다. ‘게나오’는 난다는 말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위에서, 즉 하늘에 난 사람들이다.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나기 때문에(요1:12,13) 하나님이 계신곳 하늘이 그들이 고향이고 거기 호적 등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고향이 하늘 시온이 된다. 우리 이름이 거기 등록되었는지 깊이 생각해보자.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 등록되도록 최선을 다해 돕도록 하자.

 

3월 13일(수) 시온의 안전과 평화

 

시편 46:1~7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어떤 모습의 세상을 그리고 있는가?

[시46:1~7]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4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5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6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렸더니 그가 소리를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 7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답: 세상에 자연재해가 넘치도록 심해고 전쟁이 일어나도 여호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은 사람은 안전하다고 고백한다.

  

이 시편은 전례 없는 강도의 자연재해로 혼란에 빠진 세상을 그리고 있다(시 46:2, 3). 요동하는 물은 빈번하게 패역한 나라들과 악인들이 세상에 일으키는 다양한 문제를 의미한다(시 93:3, 4; 시 124:2~5). 시편 46편에서도 자연재해의 모습은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뜻한다(시 46:6).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에는 평화가 넘치고 그분은 그의 백성 가운데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는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을 말하고 있다(시 46:4, 5). 그러나 세상이 그분을 거부할지라도 하나님은 세상을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 가운데 계심으로 세상에 임재하신다. 아무리 나쁜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은 여전히 세상 가운에 계시며 우리가 이 중요한 진리를 알 때 개인적인 희망과 격려를 얻을 수 있다.

완전한 피난처이신 주님은 시온의 변함없는 평화와 안전의 원천이다. 시편 46:3의 그래도("…든지, …지라도")는 시온의 안전을 강조하고 있다. 세상은 혼란스러울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은 안전하다. 그들의 평화는 시련이 전혀 없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신뢰하는 자녀에게 평화의 선물을 주시기 때문에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하나님의 자녀는 폭풍우 가운데서도 평안하고 안전할 수 있다(마 8:23~27). 그렇지만 파괴적인 경향과 악행 가운데 있는 세상을 하나님께서 영원히 이대로 두실 것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시편 46:6~11을 읽어 보라. 세상의 폭력과 파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무엇인가?

[시46:6~11]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렸더니 그가 소리를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 7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8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그가 땅을 황무지로 만드셨도다 9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11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답: 하나님이 소리를 내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전쟁을 끝내시고 세상에서 높임을 받으실 것이다. 

 

말씀으로 이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땅을 녹일 듯한 큰 진노로 말씀하신다(시 46:6). 그러나 그가 땅을 녹이는 것은 파괴로 끝나지 않고 재창조로 이어진다. 하나님께서 시온에서 땅끝까지 당신의 평화를 널리 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그치게 하시고 악한 나라들이 세상을 압제하기 위해 사용하던 파괴의 도구들을 소멸시키실 것이다(시 46:9).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큰 소망이다. 이 일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일어날 것이다.

 

<교훈> 세상이 혼란스러울지라도 하나님 백성이 평안할 수 있음은 주께서 시온의 평화와 안전의 원천이시며 말씀으로 세상을 새롭게 재창조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자연재해가 있든지 전쟁이 있든지 이 죄의 세상 상태다. 이런 것은 다 사망이 가지고 온 하수인들이다. 이런 세상에 하나님의 백성도 살고 있다. 앞 여러 과에서 성도들이 세상에 괴롭힘을 겪는 것에 관하여 말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시면 왜 이런 일을 그냥 두시느냐고 투덜거린다. 그것은 현재 이 세상을 누가 주관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하는 투덜거림이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눅4:5~7)라고 사탄 마귀는 감히 예수님 앞에서 떳떳이 주장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이 사탄에게 이 세상 통치권을 넘겨주었다. 그러자 아담은 생명에서 사망으로 타락했고 에덴동산, 곧 낙원으로 창조된 세상은 땅이 저주를 받아 창조의 원래 모습은 대단한 격변으로 변질되었다. 생명이 사망으로 변질했으니 다른 것의 변질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구주의 약속으로 사람이 구원, 곧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은혜받을 때와 구원의 날을 주신 것이다(고후6:1,2).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어도 재림하셔서 새 하늘 새 땅을 창조하기 전까지 이 세상에서는 46편이 표현한 환난과 재난이 있다. 그래서 주님이 속히 재림하셔야 한다. 아멘.

 

3월 14일(목) 요동하지 않는 시온산처럼 

 

시편 125:1, 2을 읽어 보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시125:1,2]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2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답: 시온산이 요동하지 않는 것처럼 흔들리지 않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둘러 영원토록 돌보신다.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견고함과 능력의 상징인 시온산에 비유된다. 예루살렘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의 장엄한 풍경은 시편 기자에게 하나님의 보호가 확실하다고 느끼게 했다(시 5:12, 시 32:7, 10). 악인들이 다스리는 산들이 바다에 던져지는 것과 달리(시 46:2), 예루살렘이 세워진 시온산의 놀라운 견고함은 확고한 신뢰를 준다. 악이 만연한 것 같은 고통스러운 현실 앞에서도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이라는 확신은 더 강해진다. 악의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백성은 소망을 가질 수 있다.

 

시편 125:3~5을 읽어 보라. 의인은 어떻게 시험을 받는가?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시125:3~5]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 4 여호와여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선대하소서 5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답: 악인들의 권력에 시험 받는다. 선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악인들의 성공으로 낙담할 수 있고 그들의 길을 따르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도 있다(시 73:2~13, 시 94:3). 시온산은 비할 데 없이 견고하지만 주님을 떠나는 사람들을 막을 수는 없다.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으로 여전히 “죄악에 손을 내”(시 125:3)밀고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시 125:5)친다. 주님은 공의로우시기에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과 함께 반역하는 상태에 있는 사람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시온산이 요동하지 않는 피난처인 것처럼 주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 가운데서 요동하지 않아야 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일 가운데 있을지라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온 것,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쓰신 것, 중생(重生), 부활, 그 외에 성경 가운데 있는 여러 주제들은 사람의 생각으로 해석하거나 충분히 이해하기에 너무 깊은 신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할 이유는 없다… 우리 지식 범위 이상의 신기한 것들이 도처에 있다. 

그러면 신령한 사물에 있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것들이 있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길 것인가? 문제는 순전히 인간의 생각이 좁고 약한 데 있다. 하나님께서 성경 가운데 그 신비가 신령한 것이라는 충분한 증거를 우리에게 주셨은즉 우리가 그의 섭리의 모든 신비를 깨달을 수 없다고 하여서 그의 말씀을 의심할 것이 아니다"(정로의 계단, 106).

 

<교훈> 시온산의 견고함은 고통스러운 현실 중에도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확신을 준다. 악인의 번영과 이해할 수 없는 일에도 의인은 그의 선하심을 변함없이 믿는다. 

 

<부가설명> 죄와 사망의 세상의 현실은 냉혹하다. 백번 생각하고 마음을 다져도 갑자기 닥치는 위협과 고난은 백번 생각한 것을 한순간에 빼앗는다. 그 순간에 머리 속이 하얘진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감각적으로 당면한 위협과 고난을 면하려고 한다. 생각이 돌아오는 것은 머리 하얘지는 순간이 지난 다음이다. 이미 위협을 면할 인간적 방업을 실천한 후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저주하며 부인했던 사건이 바로 그런 사건이다. 죄는 사탄에게 속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16:9)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생명이다. 예수님이 없으면 생명이 없다(요일5:11,12). 생명이 없으면 죽은 존재다. 그들에게 나타는 현상은 썩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죽은 자들이 묻히지도 못하고 널브러진 광장에서 에스겔처럼 생기를 명하여 그들에게 들어가라고 외치는 산 자들이다. 산 자가 죽은 자들이 널브러진 광장에 있으면 견디기 쉽지 않다. 썩는 냄새도 나고 죽은 모습을 보고 느끼는 것도 괴롭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예수님의 생명으로 산 자가 된 사람들이 세상에 받고 느끼는 고난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의지하여 시온산이 견고한 것처럼 견고하다. 

 

3월 15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이사야 40장과 이사야 51:1~16의 기별을 묵상해 보라.

하나님의 성전의 풍성한 복은 이 세상에서 경험하지만, 시온에서의 충만한 생명과 기쁨에 대한 소망은 여전히 미래의 것이다.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눈물로 하늘의 시온을 사모하고 있다(시 137:1). 시온을 기억하는 것은 이따금 떠올려 보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생생한 기억과 항상 함께 살겠다는 의도적인 마음가짐과 결심을 뜻한다(출 13:3, 출 20:8).

그러므로 시온의 노래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와 새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회복될 것이라는 소망을 잃지 않겠다는 뜨거운 결심을 담고 있다(계 21:1~5). “거기서 죽지 않을 특권을 얻은 사람들은 창조력의 경이, 구속하시는 사랑의 오묘를 결코 사라지지 않을 기쁨으로 명상한다. 하나님을 등한히 하도록 유혹하던 잔인하고 기만적인 원수는 더 이상 없다. 모든 능력은 계발되고 재능은 향상된다. 지식을 얻는데 두뇌가 피로해지거나 정력이 소모되는 일이 없다. 가장 큰 계획도 실행되고, 가장 고상한 포부도 성취되며, 가장 높은 희망도 실현될 것이다. 그럴지라도 거기에는 여전히 올라야 할 새로운 높은 봉우리, 경탄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경이, 탐구할 새로운 진리, 마음과 몸과 영의 능력을 다 기울이게 하는 새로운 연구 대상들이 있을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77).

시온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은 결코 이 세상을 고향으로 여기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며 살겠다는 순례자의 변치 않는 맹세이다. 시온의 시편은 시온에서 살기를 갈망하는 모든 신자의 노래이다(계 3:12). 시온의 노래는 소망 가운데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대하게 하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대리자가 되도록 힘을 더한다.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고대의 예루살렘인 시온의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영적, 신학적인 원리를 어떻게 오늘의 교회와 세상을 향한 사명에 적용할 수 있겠는가?

*답: 그들이 자기 민족과 이방에 구원의 복음 빛을 비춰야 했던 것처럼 오늘의 진리교회도 그렇게 비추어야 한다.

2. 오늘의 신자들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성소에 거할 수 있는가(요 1:14~18, 히 12:22~24)?

*답: 진정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다. 

3. 시편 87편에 묘사된 것과 같이 시온은 어떻게 모든 민족의 도성이 될 수 있겠는가(롬 5:10, 엡 2:11~16, 골 1:19~23)?

*답: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어 그것을 받아들이면 된다.

4. 그대는 많은 "선한"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것과 달리 악인들은 세상에서 번영하는 현실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다 일지 못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

*답: 수, 목요일 부가설명을 참고하라. 그것을 인정할 때 하나님의 비밀을 믿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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