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과 모든 전쟁의 배후에 있는 전쟁(질문, 대답, 설명) 04/06/24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1과 모든 전쟁의 배후에 있는 전쟁(질문, 대답, 설명) 04/06/24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4-03-28 22:47 조회3,949회 댓글0건

본문

제1과 모든 전쟁의 배후에 있는 전쟁 

(4월 6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59분)

 

연구 범위: 계 12:7~9, 겔 28:12~15, 사 14:12~14, 창 3:15, 요 17:24~26

 

기억절: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계 12:7, 8).

 

하나님이 정말 선하시다면 세상은 왜 이렇게 악한가? 하나님이 사랑이라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악이 존재할 수 있는가? 어째서 선한 사람에게 악한 일이 일어나는가? 이번 교과는 선과 악 사이의 오랜 전쟁을 연구할 것이다. 우리는 하늘에서 시작된 루시퍼의 반역에서부터 악의 근원과 죄 문제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놀라운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의 본성은 사랑이다(요일 4:7, 8).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도 사랑이다(렘 31:3). 사랑은 결코 강요되거나 강압, 혹은 법으로 규정될 수 없다. 엘렌 화잇은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만 일깨워진다"(시대의 소망, 22)고 아름답게 서술했다. 선택할 수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사랑할 수 없다면 우리는 진실로 행복해질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랑이며, 참사랑을 주시기에 우리는 그분에게 충성한다. 우주에서 죄가 다시는 일어날 수 없게 만들기 위해 하나님은 선과 악의 대쟁투 가운데서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분이 항상 피조물들의 최고의 유익을 위해 일하고 계시는 것을 온 우주 앞에 보여주는 것이다.

선과 악의 대쟁투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관점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선이 악을 영원히 이길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학습 목표

깨닫기: 세상의 악과 고통은 하나님이 아닌 죄 때문에 시작된 것임을 깨닫는다. 

느끼기: 사탄은 죄악과 고통으로 이끌지만, 주님은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주심을 느낀다. 

행하기: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활용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편에 서기로 선택한다. 

 

TMI 위로

2. 루시퍼가 하늘에서 전쟁을 일으킨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사 14:12-14) 

*답: 교만, 자기도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야망이다.

3. 대쟁투의 시작에서 사탄과 하나님의 방법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계 12:4)

*답: 사탄은 자기를 높였고 하나님은 희생으로 승리하셨다.

4. 하늘의 대쟁투가 지구까지 옮기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창 3:4, 5)

*답: 아담 부부가 사탄의 유혹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5. 우주의 창조주가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요 1:3)

*답: 창조주는 사랑이시라는 것을 드러낸다.

6. 나에게 십자가의 놀라운 은혜와 특권을 주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요 17:24)

*답: 사람이 구원받아 예수님과 함께 거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다. 

7. 대쟁투의 관점에서 십자가는 그대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히 2:14)

*답: 사망의 세력을 이기고 사망을 이긴 것을 말해준다. 

 

결론: 사탄에 의해 하늘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속성과 율법에 대한 도전은 하늘을 오염시키고 지구에도 죄와 그 참혹한 결과가 가득하게 했다. 천사와 인류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신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무한한 사랑을 통해서 우리가 선과 악의 대쟁투 가운데서 바른 선택 하기를 원하신다. 대쟁투가 치열하게 전개되는 세상 가운데 있지만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보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선택하고 선이 악을 영원히 이기고 승리할 것을 믿을  수 있다. 

 

3월 31일(일) 하늘의 전쟁

 

요한계시록 12:7~9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하늘에 존재했던 자유, 그리고 악의 기원에 대해 무엇을 알려주는가? 하나님은 루시퍼의 반역을 어떤 방식으로 대할 수도 있으셨는가?

[계12:7~9]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답: 하늘에서 용이 반역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고 그 자유를 자기를 위하여 남용한 용이 전쟁을 일으킴으로 악이 표면화 되었고, 하나님은 당장 멸하실 수도 있으셨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이 구절은 선과 악의 우주적 전쟁을 묘사한다. 사탄과 반역한 천사들은 그리스도와 전쟁을 벌였고, 결국 하늘에서 쫓겨났다. 천국처럼 완전한 곳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매우 이상해 보인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이 전쟁을 일으킨 천사, 마귀도 사랑의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인가? 이 천사는 반란을 일으킬 어떤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채로 창조되었는가? 성경은 악의 기원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한다. 성경은 우리의 닫혔던 눈을 열어 선과 악의 대쟁투를 분명히 이해하게 한다. 

 

에스겔 28:12~15와 이사야 14:12~14을 비교해 보라. 이 천사의 마음속 무엇이 그를 반역으로 이끌었는가?

[겔28:12~15]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13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14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15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사14:12~14]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답: 지혜와 교만.

 

하나님이 마귀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루시퍼라는 눈부시게 빛나는 존재를 창조하셨다. 이 천사는 완전하게 창조되었다. 완전한 창조는 선택의 자유, 즉 강압이 아닌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 원칙을 포함하고 있었다. 죄는 하늘에 있던 루시퍼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완전한 천사의 마음에 어떻게 교만과 질투가 뿌리내리고 결국은 창조주에 대한 반역으로 나타났는지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루시퍼는 피조물이면서도 오직 창조주만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를 받고자 갈망했다. 그는 하나님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분의 보좌를 찬탈하려 시도했다. 그의 반역은 하늘에서 공개적인 전쟁으로 이어졌다.

하나님은 루시퍼를 오래 참으셨지만, 그가 반역으로 천국을 망치는 것을 용납하실 수 없었다. "하늘의 회의는 루시퍼에게 간청했다. 하나님의 아들은 그에게 창조주의 위대하시고 선하시고 공의로우심을 알려주고, 그분의 율법의 신성하고 변치 않는 특성을 제시해 주셨다. 하늘의 질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셨다. 그러므로 루시퍼가 그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은 창조주를 모독하는 일임과 동시에 자기 자신을 파멸에 빠뜨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무한한 사랑과 자비로 주어진 경고는 반항심을 일으킬 뿐이었다"(각 시대의 대쟁투, 494).

 

<교훈> 하나님은 루시퍼를 완전한 존재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루시퍼는 하나님이 주신 선택의 자유를 잘못 사용하여 반역함으로 하늘에서 전쟁을 일으켰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사람보다 좀 더 낫게 창조하셨다. “그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8:5). ‘그’는 사람이다. 이 구절은 분명히 천사는 사람보다 더 낫게 창조되었다고 가르친다. 그 중에도 덮는 그룹으로 창조된 존재는 다른 천사보다도 뛰어나게 창조하셨을 것이다. 그 천사는 모든 길에 완전하고 지혜가 뛰어났는데 자신을 말씀 하나님과 비교하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 마태복음에는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사건이 있다. 마귀는 예수님께 말한다. 자기에게 절하라는 것이다. 마귀가 시험하는 사건에서 마귀가 하늘에서 예수님께 어떻게 도전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말씀 하나님 여호와를 자기에게 굴복시키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그랬을까?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추론할 수 있다. 루시퍼(히브리어 헬렐, 루시퍼는 라틴어)는 새벽별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계시록 22:16에는 예수님이 새벽별이라고 했다. 이름이 같다. 시편 45편에는 예수님에게 기름 부었다고 했다. 에스겔에는 루시퍼에게도 기름을 부었다. 용모도 비슷했을 것이다. 사람의 예로 말한다면 루시퍼 주니어가 될 것이다. 기름 부은 것은 예수님께는 즐거움의 기름을 부었으나 루시퍼는 덮는 그룹을 기름을 부었다. 덮는 그룹은 하나님의 보좌를 호위하는 직책이다. 기름 부었다고 같은 직무가 아니다. 그런데 표면적으로 보면 이름도 같고 기름 부음도 받았는데 왜 자기는 말씀 하나님께 경배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런 생각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그는 피조물이고 예수님은 창조주 여호와시라는 것이다. 루시퍼는 창조주 앞에서 자기가 피조물이기를 거부한 것과 같다. 그것이 반역의 본질이요 죄의 본질이다. 성경은 이것을 교만이라고 했다.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딤전3:6).

 

4월 1일(월) 속이는 루시퍼, 승리하시는 그리스도

 

다시 말하지만 왜 완전한 천사였던 루시퍼의 마음에 교만과 질투가 뿌리내리고 그것이 창조주에 대한 반역으로 자라났는지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사탄의 교만은 공공연한 반역으로 자라났다. 그는 하나님이 불의하고 불공평하다고 비난했다. 천사들에게 의심과 비난을 퍼뜨리는 것이 그의 방법이었다.

 

요한계시록 12:4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사탄의 속이는 능력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얼마나 많은 천사가 하나님에 대한 그의 거짓말에 넘어갔는가?

[계12:4]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답: 천사 1/3이 사탄편에 가담한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천사들은 예수님을 따를 것인지 루시퍼를 따를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다. 하늘에서 일어난 전쟁은 어떤 성격의 것이었는가?

물리적인 전쟁이었는가, 사상의 전쟁이었는가, 아니면 둘 다였는가?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사탄과 그의 천사들이 결국 "내쫓기"고,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계 12:8, 9)했다고 기록할 만큼 이 전쟁은 분명히 물리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든 천사가 그리스도의 편에 설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했다는 것이다. 누구를 따를 것인가? 그들은 과연 어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 충성스러운 천사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명령에 순종하기로 선택한 것과 달리 천사 중 3분의 1은 루시퍼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반역하여 천국을 잃어버렸다. 우리도 지구 역사의 중요한 선택의 시기를 살고 있다. 그리스도에게 속할 것인지 아니면 사탄의 길을 따를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창세기 2:15~17, 출애굽기 32:26, 여호수아 24:15, 열왕기상 18:20, 21, 요한계시록 22:17을 읽어 보라. 이 구절들은 대쟁투의 원리에 대해 무엇을 알려주는가? 

[창2:15~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출32:26]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수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왕상18:20,21]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계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답: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느냐 거절하느냐 하는 것이 대쟁투의 원리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우리 머리 속에 생각하고 추론하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심어주셨다. 

사람됨의 본질은 도덕적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우리는 로봇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는 도덕적 선택을 하고 영원한 영적 원리에 따라 살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피조물과 구별된다. 하늘에서 있었던 루시퍼의 반역과 타락 이후에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에 응답하고 그 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하는 당신의 백성을 부르고 계신다. 

 

<교훈> 사탄은 거짓말로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비난을 퍼트리지만 그분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는 자유의지를 활용해 하나님을 따르고 섬기기로 선택할 수 있다. 

 

<부가설명> AI 이전에는 로봇이 아니라는 말이 통했다. 그런데 이제는 AI가 나와서 로봇도 생각하고 선택하는 로봇이 되었으니 로봇 설명은 빛을 잃을 것 같다. 이것이 사람을 공격하고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런 시대에 로봇 예는 빛을 잃었다. 자유 선택에 관하여 성경적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자유 선택을 주셨다고 한 곳이 없다. 창조주께서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시고 사람에게 다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 사람에게 동산 안의 모든 나무의 실과는 마음대로 먹어도 된다고 했으니 실과는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선악과라고 말하는 그 실과는 먹지 말라고 했다. 금령이지 선택권이 아니다. 만일 자유 선택권을 줬다면 선악과를 먹는 것이 죄가 될 수가 있을까? 자유 선택에서 자기 자유에 의하여 선택했는데 왜 죄가 되고 죽어야 하는가? 이것은 분명한 금령이다.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것이 아니다. 신학과 철학이 이런식으로 성경을 왜곡해서 오늘날 신학은 창조주께서 사람에게 자유 선택권을 주셨다고 가르친다. 이 교과도 그렇게 설명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유 선택권을 주신 것이 아니라 제한하셨다. 금지 명령을 하신 것이다. 그렇기에 그 명령을 어겼을 때 그는 생명을 잃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은 영생의 생명이고 그것은 창조주께서 하신 약속이다(요일2:25). 사람이 이 약속을 자기에게 적용하려면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해야 한다. 그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래서 이제는 도덕적 선택이라는 논리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생명인가 사망인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만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주셨고 이 생명의 작용이 영생하는 것이고 그것이 선과 의를 생활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렸다(호6:7). 그러니 그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은 받을 수 없게 되었고 생명이 없어지니 사망이 되었다. 사람은 살기 시작하는 것과 죽기 시작하는 것이 동시다. 우리는 성경으로 주신 생명을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고 그것을 잘 유지하려면 생명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 

 

4월 2일(화) 지구로 옮겨진 전쟁

 

하나님은 지구를 창조하실 때 완전하게 창조하셨다. 성경은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창 1:31)다고 말한다. 그 어디에도 악이나 죄의 흔적이 없었다. 하나님은 루시퍼에게 주셨던 것과 동일한 선택의 자유를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다. 하늘에서건 땅에서건, 하나님께서 자유의지가 없는 로봇을 원하신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하나님은 이 자유를 분명히 할 방법을 마련하셨다. 동산에 나무를 심으시고 이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부르셨다.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에 대해 말씀하신 이유는 그들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을 확실히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사탄은 하와가 그 나무 주변을 서성일 때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4, 5). 다시 말하자면, 이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존재의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너는 신나는 일을 경험할 것이다. 이전에 알지 못했던 황홀감을 느낄 것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이걸 숨기고 있었구나. 하와, 자 어서 금지된 열매를 먹어봐.’

하와와 그 뒤를 따라 아담이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이 영원히 닫아두길 원하셨던 문을 열었다. 그것은 죄의 문, 즉 고통과 아픔, 질병과 죽음의 문이었다. 

 

창세기 3:1~3, 로마서 3:23, 5:12을 읽어 보라. 이 구절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온 인류를 괴롭히는 죄의 궁극적인 결과를 말해 보라. 

[창3:1~3]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답: 죄가 한 사람으로부터 세상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결과는 사망이다. 

 

본질적으로 죄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킨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그분과 분리되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 또한 걱정, 불안, 아픔 그리고 질병을 마주하게 된다. 

이 세상에서의 고통은 궁극적으로 죄로 황폐해진 땅에 살면서 겪는 결과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고난이 직접적인 죄의 결과라는 의미는 아니며 우리 모두가 이 땅에 살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교훈> 사탄의 유혹을 따라 인류의 조상이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죄로 말미암아 세상은 고통과 아픔, 질병과 죽음이 가득한 땅이 되었다. 

 

<부가설명> 죄를 인간의 도덕적 행위 문제로 이해하면 “걱정, 불안, 아픔 그리고 질병을 마주하게 된다. 이 세상에서의 고통은 궁극적으로 죄로 황폐해진 땅에 살면서 겪는 결과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고난이 직접적인 죄의 결과라는 의미는 아니며 우리 모두가 이 땅에 살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이다”라는 식의 이해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세상에 있는 모든 불행은 성경의 설명대로는 아담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고전15:22) 썩어지는 현상이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엡4:22), 아담의 씨로 출생한 사람들은 다 썩어져가는 구습으로 살아간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롬8:21). 이 지구에 있는 피조물은 다 썩어짐의 종 노릇한다. 걱정 근심 질병 고통 전쟁 재난 이 모든 것은 썩는 현상이다. 사람은 이 땅에 출생할 때 썩어질 씨로 출생한다(벧전1:23). 그래서 거듭나야 한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다 썩어져 죽든지 불에 타서 죽든지 그 존재가 다 흙으로 돌아간다. 즉 창조되지 않은 것과 같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조를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인간 행위에 맞추고 성경을 읽으면 옛사람이 썩는 현상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완전주의도 나온다. 선택의 자유 이야기도 한다. 성령께서 성경을 성령님 시각으로 보도록 이 교회를 인도해주시기를 기도한다. 

 

4월 3일(수)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을 떠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그들은 수고와 고통을 겪어야 할 것이다. 고통 가운데 살다가 소망 없이 죽는 것이 그들의 결국인가? 그렇게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인가?

그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창세기 3:15에 기록되어 있다. 그분은 옛 뱀인 사탄을 직접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그 당시 그들은 이 말씀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다시 소망을 가질 수 있음을 알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여자의 후손'을 통해 그들의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자의 후손"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갈 3:16). 십자가에서 사탄은 그분의 발꿈치를 상하게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승리하셨고 이는 언젠가 뱀의 머리가 깨어질 것을 확증한다. 아담과 하와가 열었던 고통과 죽음의 문은 그날에 닫히게 될 것이다. 

 

히브리서 2:9, 갈라디아서 3:13, 고린도후서 5:21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치르신 막대한 희생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히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답: 천사보다 못하게 되는 경험, 저주 받으심, 죄가 되심, 사람이 상상도 못할 막대한 희생을 하셨다.

 

하나님이 정말 당신을 사랑하는지 의심해 본 적 있는가? 십자가를 보라, 그가 쓴 가시 면류관을 보라, 그의 손과 발에 박힌 못을 보라. 예수님이 갈보리에서 흘리신 피 한 방울, 한 방울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 없는 천국이 어떤 의미가 있겠니? 그래, 너는 죄를 지었고, 죄에 미혹되어 사탄의 속박을 자청했기에 너는 영생을 얻을 자격도, 능력도 없다. 그러나 너를 되찾기 위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 하나님이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분명해진다. 

성경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겪는 것과 똑같은 아픔과 실망, 고통을 경험하셨다고 말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동일한 유혹을 직면하시면서도 당신의 생애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사망의 권세와 주관자들을 이기신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것을 바로 당신을 위해 이루셨다고 말한다. 

생각해 보라. 우주를 창조하신(요 1:3) 예수님이 하늘에서 이 땅에 오셨다. 단순히 타락한 세상에 오신 것 만이 아니라 그분은 우리 중 누구도 겪을 수 없는 고난을 당하셨다(사 53:1~5). 그것은 예수께서 그대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바로 당신을 위해 하신 일이다. 얼마나 소망에 넘치는 소식인가!

 

<교훈> 우주의 창조주께서 세상에 오셔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으신 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이 사랑이심은 십자가를 볼 때 분명해진다. 

 

<부가설명>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 하나님이시며(요1:1)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영존하시는 아버지시다(사9:6). 그런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한 위이신 분이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셨다. 신학 용어로 성육신(成肉身)이라고 한다. 아담의 죽음을 대신하여 죽으실 수 있는 상태로 세상에 탄생하신 것이다.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눅3:38, 신32:6) 그분도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으로 탄생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하셔서 거룩한 분으로 탄생하셨다(눅1:35). 그러나 우리와 같은 몸으로 오셨다. 그래서 맞으면 아프고 굶으면 시장하고 고되게 봉사하면 피곤하셨다. 피를 가진 몸으로 오셨다. 그분은 참으로 사람이 되셨다. 그러나 그분은 죄로 기울어지는 성향이 없었다. “예수는 자신의 사역이 지닌 거룩한 특성에 걸맞게 교육받았다. 언제나 의로 기울어지는 그분의 성향은 부모의 끊임없는 기쁨이었다. 예수의 질문에 부모는 위대한 진리의 요소들을 더 열심히 탐구했다. 자연과 하나님에 관한 그분의 영감적인 말씀은 부모의 마음을 열었고 그들을 일깨웠다.”(Youth’s Instructor), 1898년 9월 8일. 그래서 그분은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실 자격이 있으셨다.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죄가 되셨다. “죄를 짊어지신 그분은 거룩한 공의의 진노를 견디시고 그대를 위하여 죄 그 자체가 되셨다”(DA 755).” 참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희생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을 믿어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고 썩는데서 썩지 않는 영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인가! 감사합니다. 

 

4월 4일(목)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통해 그분은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실 수 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이시며,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 

 

히브리서 4:15, 16과 히브리서 7:25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유혹과 고통, 질병과 죽음이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확신을 주는가?

[히4:15,16]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답: 우리와 같은 환경과 경험으로 사셨기에 우리의 처지를 완전히 경험하신 사랑으로 우리에게 돕는 은혜를 주시고 언제나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 

 

그분은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히 4:15)신 분이시다. 그래서 본문은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히 4:16), 즉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자고 덧붙인다.

예수님은 우리를 우주 앞에 그분의 의로 옷 입고, 그분의 죽음으로 구원받았으며, 그분의 보혈로 구속받은 자로 나타내신다. 우리가 당해야 할 모든 것을 그분께서 대신 당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과거의 죄에 대한 정죄함은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죄는 사라졌고, 그분의 능하신 중보하심을 통해 우리의 삶을 사로잡던 죄의 속박에서 해방되었다. 우리를 묶고 있던 사슬이 풀리고 우리는 자유를 얻었다. 

 

요한복음 17:24~26을 읽어 보라. 선과 악 사이의 대쟁투에서 그리스도께서 간절히 바라시는 것은 무엇인가?

[요17:24~26]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답: 그리스도인 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을 간절히 원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큰 희생을 치르시고 승천하셨다. 그는 천사들의 경배받기를 거절하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요 17:24)기를 원하옵나이다고 먼저 간청하셨다. 그 때에 하늘 아버지의 보좌로부터 무한한 사랑과 능력으로 다음과 같은 대답이 나왔다.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히 1:6). 예수님께서는 한 점의 흠도 없으셨다. 그분의 겸비가 끝나고 희생이 이루어졌으므로 그분에게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주어졌다"(각 시대의 대쟁투, 501).

예수님은 그 무엇보다 우리가 천국에서 그분과 함께 있기를 원하신다. 그분의 간절한 소망, 또 죽으심과 중보하심의 궁극적 이유는 모두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그대의 생애 가운데 간절하게 바라는 소원이 있는가? 예수님께 말씀드리라. 주님은 슬픔이 있는 곳에 위로를 주시며 두려움이 있는 곳에 평화를 주신다. 예수님은 죄가 있는 곳에 용서를 베푸시고 약한 자에게 힘을 더해 주신다. 

 

<교훈> 예수님의 간절한 소망, 죽으심과 중보하심의 궁극적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그분의 중보하심으로 우리는 묶여있던 죄의 속박에서 해방되었다. 

 

<부가설명> 예수님이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것은 그분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드러낸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대제사장의 직무를 이행하신다. 그분이 부활하지 않았으면 승천할 수 없다. 그래서 부활과 승천과 대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시는 것은 같은 사실이다. 성경은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히8:4)라고 했다. 그분이 대제사장의 직무를 행하려면 하늘에 가셔야 한다. 하늘에 가시려면 부활하셔야 한다. 그래서 시2:7을 예수님의 부활의 예언으로 해석했고 또 대제사장 취임에 대한 예언으로 설명했다.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행13:33),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히5:5)라고 계시하였다.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신다는 것은 세상에서 이루어야 할 구속 사업을 완성하셨다는 뜻이다. 그 이루신 것으로 하늘에서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면서 당신께 나오는 자를 언제나 구원하시는 은혜와 사랑을 베푸신다. 우리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날마다 담대히 나아가자. 

 

4월 5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사탄을 하늘에서 추방시킴으로 당신의 공의를 드러내시고 당신의 보좌의 영광을 보존하셨다. 그러나 인류가 이 반역의 정신에 감염되어 죄를 범하였을 때 타락한 인류를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를 주어 죽게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의 증거를 보이셨다. 속죄를 통하여 하나님의 품성이 나타난다. 십자가는 루시퍼가 택한 죄악의 길에 대하여 하나님의 정부에 그 책임을 결코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온 우주 앞에 실증하는 강력한 증거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500).

"갈보리의 십자가는 율법의 불변성을 웅변하는 동시에, 죄의 값이 사망이라는 것을 온 우주에 선포한다. 구주께서 임종하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실 때 사탄의 멸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그토록 오랫동안 계속된 대쟁투는 이제 판가름이 나고 죄악의 최종적 도말이 확정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히 2:14) 멸하기 위하여 무덤의 문을 통과하셨다"(각 시대의 대쟁투, 503).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루시퍼가 반역할 것을 아셨다면, 하나님은 왜 처음부터 그에게 선택권을 주셨는가? 그분은 루시퍼가 반역했을 때 왜 즉시 멸망시키지 않으셨는가? 만약 하나님이 루시퍼를 즉시 제해 버렸다면 타락하지 않은 우주 세계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구원의 계획에 대한 우주 거민의 생각, 이해(벧전 1:12, 계 5:13, 계 16:7)라는 개념이 대쟁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답: 하나님께서는 루시퍼의 성질이 온 우주에 스스로 드러내도록 하셨다. 만일 즉시 멸하셨다면 우주가 창조주를 무서운 분으로 오해했을 것이다.

2.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유는 무엇인가? 단지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는가? 죄에 대한 대속의 값을 치르기 위해서였는가? 그렇다면 대속의 값은 누구에게 지불한 것인가? 당신의 생각을 나누고 그에 대한 성경의 근거를 제시해 보라.

*답: 대속의 값은 아버지 하나님께 드렸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도 온전히 드러났고 구원도 성취되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9:14).

3. "대쟁투"라는 용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쟁투의 다양한 측면과 이번 주 교과가 당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토의해 보라.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4. 대쟁투의 실체에 관해 기록한 성경 구절은 무엇인가? (예: 욥 1:, 2:, 엡 6:12).

*답: 계12:1~9, 창3:15, 시24:7~10, 시110: 등등.

5.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는 다른 기독교와 어떻게 다른가? 이 대쟁투의 주제에서 재림교인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어떤 것인가?

*답: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졌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