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과 논쟁(질문과 대답과 부과설명)10/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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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7-10-07 06:08 조회7,079회 댓글0건본문
10월 14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57분
연구 범위 : 히 8:6, 마 19:17, 계 12:17, 레 23장, 행 15:1~29, 갈 1:1~12.
기억절 :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17).
초기 교회는 대부분 유대인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단 한순간이라도 그들이 예수님을 유대인의 메시아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조상의 믿음 또는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에게 하신 언약을 외면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그것이 맞았다. 초기 유대인 신자들의 현안은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이 될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 다수의 또 다른 현안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 유대인이 될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나중에 예루살렘 총회에서 확고한 답이 주어졌다. 그들은 중다한 규례와 율법으로 이방인들을 괴롭게 하지 말자고 결론을 내렸다. 즉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 먼저 유대인이 될 필요가 없었다. 그런 결론에도 불구하고 어떤 교사들은 이방인 회심자들이 할례를 포함하여 그러한 규례와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으로 교회를 괴롭혔다. 즉 그들은 이방인들이 언약에 참여하려면 이스라엘의 공동체의 일원들에게 요구되는 여러 규범과 율례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무엇이며 그런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되어야 했는가?
※ 학습 목표
깨닫기 : 로마서에 영감을 불어넣은 논쟁과 신학의 배경을 이해한다.
느끼기 :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의 율법이 개인의 구원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관하여 그 중요성을 인식한다.
행하기 :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은혜와 율법의 문제에 관하여 기도한다.
➋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기 전후에 이방인 신자들을 둘러싼 주된 논쟁의 주제는 무엇이었습니까?
※ 구원받기 위하여서는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과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주제였다.
➌ 초기 교회가 직면한 논쟁에 대하여 예루살렘 총회는 어떤 결정을 내렸습니까?
※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➍ 예루살렘 총회가 내린 결정에는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 교회에 발생하는 문제는 모두 모여서 바른 해결을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➎ 그러한 결정을 바탕으로 바울은 그의 서신들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신학을 제시했습니까?
※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신학을 제시했다.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서만 구원받는다.
➏ 바울이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 가장 많이 강조했던 교리는 오늘날 우리의 신앙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며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이다. 지금도 똑 같다.
결론 : 진정한 신자가 되려면 그의 신학이 성경을 기초로 해야 하며, 영적으로 진실해야 하고, 윤리적으로 건전하고 신뢰할만해야 합니다.
첫째 날(일) 10월 8일 더 나은 언약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히 8:6).
1. 히 8:6의 기별은 무엇인가? 우리는 더 좋은 언약을 무엇이라고 이해하는가?
[히8:6]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답: 더 좋은 약속이라고 이해한다.
아마도 구약과 신약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신약 시대가 메시아이신 나사렛 예수의 등장으로 도래했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그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구세주가 되셨다. 사람들은 그분을 부인하지 말고 구원받기를 바라야 했다. 그들은 오직 그분이 제공하는 속죄를 통해서 죄를 용서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삶을 그들의 것으로 받아야 정죄함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의에서 비롯된다. 다른 방법은 없다.
구약의 성도는 메시아 시대의 복락과 구원의 약속을 내다보았다. 신약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나사렛 예수를 그들의 구세주 곧 메시아로 영접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의 문제에 직면했다. 그들이 그분을 믿는다면 즉 그분의 진실한 모습을 보고 그분을 믿으며 그분께 자신들을 맡긴다면 그분이 값없이 베푸는 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될 것이었다.
반면 도덕적 요구 사항들은 신약 성경에도 변함없이 남아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품성에 존재해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도덕적인 법에 대한 순종은 구약 성경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약 성경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2. 마 19:17, 계 12:17, 14:12, 약 2:10~11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에 따르면 도덕법에 대한 신약 성경의 입장은 어떠한가?
[마19: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계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계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약2:10,11]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답: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고 지켜져야 한다고 계시한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을 특징짓고 구약 시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모든 제사와 의식법은 장차 오실 예수님과 그분의 죽음 그리고 그분의 대제사장 봉사를 가리키다가 만료되었고 더 좋은 언약을 기초로 한 새로운 질서가 시작되었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유대교에서 기독교로의 전환을 둘러싼 문제를 이해시키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을 영접했던 많은 유대인들은 아직도 밀려오는 큰 변화들을 수용할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
<부가설명> 성경의 계시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을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이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문자로 기록하게 하셨고 사람 중에서 택함을 받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누구든지 성경이 보여주는 그대로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면 구원받을 수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상태를 성경이 보여주는 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데 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특별히 선택하고 그 후손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높이 쳐들고 성경의 계시를 자기들 위주로 읽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다. 지금도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들이 호흡하고 활동하면 다 살아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성경이 계시한 아담의 모든 자손은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람은 살아 있는데 선을 행하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선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그가 행한 선을 보고 그를 구원할 것이라고 착각한다. 아담의 후손으로서 아무리 도덕적으로 최고 경지의 선을 행한다고 해도 그것은 죽은 자가 화장하고 향수 뿌리는 것일 뿐이다. 그가 행하는 선이 아담 안에서 죽은 상태에서 생명을 얻게 하지 못한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구원의 첫 걸음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죄를 설명하면서 이것을 분명히 역설하는데 지금도 로마서를 공부하면서 예수님이 행하신 “그들은 오직 그분이 제공하는 속죄를 통해서 죄를 용서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이 그분을 믿는다면 즉 그분의 진실한 모습을 보고 그분을 믿으며 그분께 자신들을 맡긴다면 그분이 값없이 베푸는 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될 것이었다.”라고 말한다. 틀린 것은 아니겠으나 올바른 것도 아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분명히 드러낸 생명을 받으므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예수님이 믿는 자의 생명이 되었기 때문에 그분의 의가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내 안에 사시기 때문이다. 당연히 하나님의 계명이 이런 신자의 Lifestyle이 되는 것이다. 아멘.
교훈 : 신약은 구약보다 더 좋은 약속을 가지고 출발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유대인들은 도덕법을 제외한 율법의 역할이 만료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했다.
둘째 날(월) 10월 9일 유대인의 율법과 규례
1. 시간이 있다면 레위기를 훑어보라(예를 들어 레 12, 16, 23장을 보라). 이 모든 규범과 율례와 의식들에 관하여 읽을 때에 그대의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인가? 왜 이것들 대부분이 신약 시대에는 거의 준수될 수 없었는가?
답: 12장은 해산한 여자의 결례(潔禮)에 대한 것이고 16장은 대속죄일 봉사에 대한 것이고 23장은 일곱 절기에 대한 지시이다. 이것은 오늘날 인간 생활에서 시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전도 없고 제사장도 없다. 그러나 이 내용은 예수님 안에서 현재도 성도들에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하늘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약의 율법을 다음의 몇 가지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⑴ 도덕법, ⑵ 의식법, ⑶ 공민법, ⑷ 율례와 규례 ⑸ 건강법.
이런 분류는 인위적인 부분이 있다. 실제로 이 범주들은 상호 관련성이 있고 중첩되는 부분도 상당히 많다. 고대인들은 그것들을 분리되거나 구별된 것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도덕법은 십계명으로 요약된다(출 20:1~17). 이 법은 인간들의 도덕적인 의무를 간추린다. 이 열 가지 교훈은 성경의 첫 다섯 책 전체를 통해서 다양한 율례와 규례의 형태로 확대되거나 적용되었다. 이러한 확대는 다양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법을 준수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공민법도 마찬가지이다. 그것도 도덕법에 기초해 있다. 공민법은 공적인 권위들과 구성원들에 대한 공민의 관계를 정의한다. 그것은 여러 위반 사항에 대한 처벌을 규정한다.
의식법은 성소 제의의 규칙을 제공하고, 다양한 제사와 각 공민들의 의무를 설명한다. 여기에서 절기들이 명시되며 그것들의 준수가 규정된다.
건강법은 다른 율법과 중첩된다. 부정함과 관련된 여러 율법들이 제의적인 부정함을 정의하지만 그것 너머로 위생과 건강 원칙들을 포함하기도 한다. 정결하거나 부정한 육류에 관한 율법들은 육체적인 고려에 기초한다.
유대인들은 보통 이 모든 율법들을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하나의 꾸러미로 인식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개념적인 구별은 있었을 것이다. 십계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백성에게 직접 선포되었다. 이런 사실 때문에 그들은 십계명을 특별히 중요하게 취급했다.
그 외의 율법들은 모세를 통해서 전달되었다. 성소 제사는 성소가 운영되는 동안만 준수될 수 있었다. 대체로 공민법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주권을 잃고 다른 민족의 통치하에 들어간 뒤에는 더 이상 시행될 수 없었다. 성전이 파괴된 후에는 여러 제사법이 더 이상 준수되지 못했다. 또한 메시아가 온 뒤로는 여러 표상들이 원형을 만났으므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부가설명> 오늘날 개신교에서는 십계명까지도 십자가에서 폐하여졌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을 본다. 그렇게 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제7일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것을 변호하기 위한 것이다. 안식일은 의식법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의식법을 폐할 때 함께 폐하여졌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십계명의 다른 조항들은 다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안식일 계명을 십계명 속에 포함시킨 이유를 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다른 조항들을 다 지켜야 하는데 한 조문(條文)만 안 지켜도 되는 그런 법률은 세상에 없다. 어떻게 율법에 조문이 있는데 선별해서 안 지켜도 되는 그런 조문을 포함시킨다는 말인가? 사람들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에게 준 모든 율법은 그 기초가 십계명이다. 십계명을 올바르게 지킨다면 다른 것들도 다 지키게 된다. 그것은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는 말과 통하는 말이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산다면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은 하나님의 계명이 실현되는 Lifestyle이 되는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Lifestyle을 조사하여 간단하게 조문을 만들면 십계명이 되는 것이다. 십계명은 율법조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실현이다. 그래서 이것을 “생명의 도”(행7:38 개역)라고 하였다.
교훈 : 구약의 율법은 몇 가지의 범주로 분류될 수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도덕법이었던 십계명을 제외한 다른 율법들은 신약 시대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셋째 날(화) 10월 10일 모세의 법대로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행 15:1).
1. 행 15:1을 읽어 보라. 어떤 문제가 불화를 야기했는가? 왜 일부 사람들은 이것이 유대 민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믿게 되었는가?(창 17:10 참고)
[행15: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창17: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답: 모세의 법대로 하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는 가르침 때문에 불화가 일어났다. 구약에 하례가 하나님과 아브라함 후손의 언약이 된다고 한 말씀을 근거로 해서 그런 주장을 하였다.
사도들이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통해서 안디옥의 사역자들과 일반 신자들을 연합시키는 동안, 바리새파에 속한 유대 출신의 유대인 신자들은 곧 교회 안에 광범위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이방인 신자들을 경악시킬만한 문제를 제기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구원을 받으려면 할례를 받고 모든 의식법을 지켜야 한다고 자신 있게 주장하였다. 물론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의식들에 대하여 항상 자부심이 있었고 기독교 신앙으로 전향한 다수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한번 히브리식 예배를 명확하게 요약하신 이후에 그중 어떤 것의 변경을 인정하실 개연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유대법과 제사 제도가 기독교의 의식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모든 희생 제사가 단지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예표했으며 표상이 원형을 만나면 그 후로는 모세 시대의 의식과 제의들이 더 이상 구속력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 더뎠다.
2. 행 15:2~12을 읽어 보라. 이 논쟁은 어떻게 진정되었는가?
[행15:2~12]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9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답: 많은 변론을 마친 후에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행한 이야기를 듣고 진정되었다.
“바울은 직접적인 지도를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향하는 반면, 항상 교회의 교제를 통해 연합을 이룬 신도들의 몸, 즉 교회에 부여된 권위를 인정하였다. 그는 자문이 필요함을 느꼈고, 중대한 문제가 일어났을 때에는 이것들을 교회 앞에 제출하여 형제들과 연합하여 하나님께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혜를 간구하기를 기뻐하였다”(사도행적, 200).
흥미롭게도 바울은 자주 자신의 예언적인 소명과 예수님이 어떻게 자신을 부르시고 사명을 맡기셨는지를 이야기했음에도 오히려 더 큰 교회의 몸과 기꺼이 협력하려고 했다. 즉 그의 부르심이 어떠하든지 그는 자신이 전체 교회의 일부이며 최대한 교회와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부가설명> 사람이 어떤 사상을 받아들여 고정관념이 되면 새로운 사상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지게 되는 것 같다. 신앙적인 것은 더욱 그렇다.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해석해온 구약의 말씀이 뇌리에 꽉 차 있기 때문에 고난 받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현실적으로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으면서 메시아가 속히 와서 로마의 속박을 벗어나게 해 주시기를 소망했기 때문에 오신 메시아 예수님이 고난당하고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된 유대인은 이런 사상을 넘었으니 장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신앙을 벗어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바울은 이런 사상과 힘겹게 싸웠다. 성령께서 바울을 지도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에게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예수님의 그 생명을 받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다는 신학을 확립하게 되었다. 참 감사한 일이다. 만일 유대인 신자들이 이런 주장을 하지 않았으면 갈라디아서나 로마서 같은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다는 교리를 분명하게 가르치는 말씀이 없게 되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합력하여 선을 이룬 것을 알 수 있다.
교훈 : 이방인 신자들도 할례와 의식법을 지켜야 한다는 유대인 신자들의 주장은 복음에 맞지 않았다. 바울은 세계 교회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다.
넷째 날(수) 10월 11일 이방인 신자들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행 15:10).
1. 행 15:5~29을 읽어 보라. 총회가 내린 결정은 무엇이며 그 논리의 근거는 무엇인가?
[행15:5~29]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9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23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24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 25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 26 (25절에 포함되어 있음) 27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저희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답: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복음 전한 경험으로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받으신 것을 증거하였고 야고보는 그것이 선지자들의 말씀과 일치한다고 제시하여 바울의 가르침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그 결정은 유대교화자들(Judaizers)의 주장과 어긋났다. 그들은 이방인 회심자들이 할례를 받고 모든 의식법을 지켜야 하며 “유대인의 율법과 의식이 그리스도교의 의식 속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사도행적, 189).
흥미롭게도 베드로는 행 15:10에서 옛 율법을 그들이 질 수 없는 ‘멍에’로 묘사했다. 이 율법들을 제정하신 주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멍에를 지우려고 하실까? 그럴 리가 없다. 그럼에도 오랜 세월을 거쳐서 일부 지도자들은 그들의 구전을 통해서 축복이 되어야 할 율법을 짐이 되도록 바꾸어 놓았다. 총회는 이방인들에게 이러한 짐들을 면제해 주고자 했다.
반면 이방인들이 십계명을 준수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언급이나 문제 제기가 없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총회가 그들에게 피를 먹지 말라고 말해 놓고서 간음이나 살인과 같은 죄를 금지하는 십계명을 간과해도 좋다고 말했을 리가 없다.
2. 어떤 규례들이 이방인 신자들에게 주어졌으며(행 15:20, 29) 이런 구체적인 규례들이 제시된 이유는 무엇인가?
[행15:20,29]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답: 이런 규례는 건강과 정결한 신앙생활에 반드시 실천되어야 할 생활지침이고 또 유대인 신자들이 그렇게 살고 있고 주장하기 때문에 필요 없는 충돌을 피하는 것도 되었다.
유대인 신자들이 그들의 규례와 전통을 이방인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되었지만 총회는 예수님 안에서 이방인 신자들이 그들과 연합한 유대인들에게 거슬릴 법한 일들을 삼가도록 분명하게 권고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사도와 장로들은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와 간음, 목매달아 죽인 동물과 피를 삼가도록 이방인 신자들을 가르치기로 결의했다.
어떤 사람은 안식일 준수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이방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거짓말이나 살인에 관한 계명도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주장은 의미가 없다.
<부가설명> 어느 시내나 그 시대의 사회를 지배하는 사조(思潮)가 있다. 이런 사조를 거슬러 살기는 쉽지 않다.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요즘 말로 왕따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교회도 역시 시대를 따라 교호와 신앙을 지배하는 신앙사조가 있다. 초기 교회 안에는 유대인의 전통적인 신앙사조가 막강하였다. 예수께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하셨지만 유대인은 옛 사상의 부대를 버리지 못했다. 우리는 예외 없이 옛 사상의 부대를 가지고 있다. 아담의 씨로 태어난 부대이다. 여기에는 사망과 육적 사상이 가득 들어있다. 우리는 이것을 쏟아놓는 것이 아니고 부대 자체를 버려야 한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부대를 메어야 한다. 거기에는 속죄가 있고 옛 언약에 대한 자유가 있고 생명이 있다. 베드로에게 보여준 보자기에는 새 사상이 담겼었다. 그가 예루살렘 총회에서 조상들과 자기들도 메지 못한 멍에를 이방인 제자들에게 메게 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안디옥에서 옛 사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여서 바울에게 책망을 들었다. 그만큼 사상은 무서운 것이다. 세포 가득히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예수 안에서 자아가 죽을 때만 이 부대를 벗고 예수 생명으로 살게 될 것이다.
교훈 : 유대교의 모든 종교적인 의무를 이방인 신자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복음의 정신이 아니었지만 율법의 사상은 여전히 존중되어야 했다.
다섯째 날(목) 10월 12일 바울과 갈라디아 신자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갈 1:7).
예루살렘 총회의 결의가 명백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생각을 고집하며 이방인들이 유대인 전통과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 옹호하는 자들이 있었다. 바울의 입장에서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사소한 문제들에 관한 시빗거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 자체에 대한 거부였다.
1. 갈 1:1~12을 읽어 보라.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직면한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보았는가? 이를 통해 우리는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할 수 있는가?
[갈1:1~12]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5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답: 갈라디아교회에 있었던 신앙사상은 그리스도를 떠나게 하는 다른 복음이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갈라디아의 상황은 바울이 로마서를 쓰게 된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갈라디아서의 주제를 더욱 발전시켰다. 일부 유대인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은 중요하기 때문에 이방인 회심자들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바울은 율법의 진정한 역할과 위치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그들이 로마에서는 갈라디아에서처럼 발판을 마련하지 못하기를 바랐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 의식법에 대해서 말하는지 아니면 도덕법에 대해서 말하는지를 묻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관건은 이방인 회심자들이 할례를 받고 모세의 법을 지켜야 하는지 그럴 필요가 없는지였다. 예루살렘 총회는 이미 이 문제를 해결했지만, 일부는 그 결정을 거부하며 따르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 도덕적인 법인 십계명(실제로는 넷째 계명)이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속력이 없다는 증거를 찾는다. 그러나 그들은 그 서신들의 요점과 역사적 배경 그리고 바울이 다루고 있는 사안들을 놓치고 있다. 바울은 율법, 심지어 도덕법을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도덕법을 지켜서는 안 된다는 말은 아니다.
십계명에 대한 순종은 전혀 이 문맥의 주제가 아니었다. 그것을 문제 삼는 자들은 바울이 다루지 않은 오늘날의 문제를 말씀 속에 대입시켜 성경을 읽고 있는 것이다.
<부가설명> 갈라디아서를 기록한 때와 장소에 대하여서는 많은 학설들이 있다. 그러나 이 교과 저자는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같은 장소에서 같은 때에 기록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3차 여행 때에 고린도에서 3개월 머무는 동안 먼저 갈라디아서를 써서 보내고 곧 이어서 로마서를 기록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두 편지서의 주제가 같은 것으로 보아서 이 교과 저자의 주장이 합당한 것으로 보인다. 갈라디아교회가 유대주의 신자들의 주장에 미혹되어 복음을 떠날 뻔한 것을 본 바울은 로마에 그와 같은 주장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도록 사전에 방지하기 위하여 갈라디아서의 주제를 더 확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전화위복이 되도록 교회를 이끄신 것이다. 그런 주장들 때문에 이렇게 귀한 진리의 말씀을 우리가 가질 수 있게 하셨고 구원의 도리를 올바르게 깨닫게 하셨다. 우리는 갈라디아교회와 같은 시험에 들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말씀을 자세히 읽고 깊이 깨닫고 복음의 원리를 확실히 알아서 진리를 바르게 깨닫고 헛된 소리에 귀를 빼앗기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안식일에 대한 그릇된 주장이나 영혼불멸, 삼위일체에 대한 잘못된 주장들을 우리는 성경에 근거하여 분명히 이해하고 있어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아멘.
교훈 : 바울은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를 통해 율법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설명하면서 죄인이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섯째 날(금) 10월 13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사도행적>, 188~192, 194~197 “유대인과 이방인”, 383~388 “갈라디아에서의 배도”, <부조와 선지자>, 310~312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 370~373 “율법과 언약”, <시대의 소망>, 27~30 “선택된 백성”을 읽어 보라.
물론 교회는 논쟁과 불화의 시기를 맞이한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사탄은 교회와 항상 전쟁 중이다. 심지어 기독교의 초기에도 신자들 사이에 불화와 논쟁이 일어났다. 그 중 만약 해결되지 않았다면 초기 단계에서 교회를 파괴할 뻔 했던 논쟁도 있었다.
“예루살렘 신자들 중에서 일어난 거짓 교사들의 감화로 갈라디아 신자들 중에는 분열과 이단과 육욕주의가 신속히 유행하고 있었다. 이 거짓 교사들은 복음의 진리를 유대인의 유전과 혼합시키고 있었다. 그들은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을 무시하고 이방인 회심자들에게 의문의 율법의 준수를 주장하였다”(사도행적, 38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교회 또는 가정 또는 그대 자신은 어떤 방식으로 남에게 불필요한 짐을 지우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정말 그런 일을 저지르고 있다면 어떻게 그런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을 인식하지 못할 만큼 너무 나태해 있다면 어떻게 그런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 진리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서 깨닫도록 간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 남에게 짐을 지우는 경우가 많다.
➋ 사람들은 어떤 논리로 십계명이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속력이 없다고 주장합니까? 우리는 그런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대답하나요?
※ 안식일은 의식법이라는 생각으로 십자가와 성전 휘장이 찢어질 때 모든 의식법이 폐하였기 때문에 안식일도 폐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똑 같은 계명 조문 중에 선별적으로 어떤 조문은 안 지켜도 되는 그런 법은 세상에도 없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명인 십계명의 다른 조문은 폐할 수 없는데 그것은 폐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는 말이 아니다.
➌ 갈 1:1~12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바울이 복음에 대한 자신의 이해에 대하여 얼마나 비타협적이며 열정적이었는지 주목하십시오. 지금의 다원주의와 상대주의의 시대에서 우리는 우리의 신념에 대하여 얼마나 확고하게 서야 할까요? 이는 우리가 특정 교리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타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 바울처럼 확고히 서야 한다. 생활로 보여주어야 한다.
➍ 종교개혁을 불러 온 문제들에 대해 토의해 보십시오. 어떤 근본적인 차이점들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까?
※ 영혼불멸설과 안식일 폐했다는 오류는 아직도 개혁되어야할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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