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그릇 교과묵상] 제 14과 십자가를 자랑함(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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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작성일17-09-24 10:35 조회2,495회 댓글0건첨부파일
- 14과 통합-20170929.hwp (31.0K) 166회 다운로드 DATE : 2017-09-29 10:4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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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9일(금) 14과 “십자가를 자랑함” 전체 요약
각 시대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 과오로부터 돌이키기 위한 간절한 호소를 담아 서신을 기록했습니다. 구약의 예레미야와 신약의 사도 바울은 동일하게 “하나님을 자랑하라”는 기별을 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 앞에서 인간의 지혜와 부와 능력은 그 가치를 모두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바울 서신의 맺음말은 ⑴특정 개인들에게 대한 당부 ⑵마지막 당부 ⑶서명 ⑷마치는 축도라는 몇 가지의 공통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갈라디아서의 맺음말은 이런 전형적인 모습과는 다른 2가지의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먼저는 갈라디아서에는 개인적인 안부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그와 갈라디아 교회 사이의 소원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서신의 대부분을 대서자(代書子)에게 맡기고 바울 자신은 몇 마디의 말만을 직접 붓을 들어 기록했던 일반적인 모습과는 달리(고전 16:21), 다른 경우보다 더 많은 말을 직접 기록한 점입니다. 그는 잘못된 길에 빠진 신자들을 위해 ‘큰 글씨’에 자신의 요점을 담아 간절한 마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그의 반대자들을 묘사하면서 ‘육체로 자랑하고 싶어하는 자들’(갈 6:12~13)이라고 묘사한 것은, 그들이 마치 관중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배우처럼 유대인들 앞에서 갈라디아인들의 명예를 높여주기 위해 애쓰는 자들로 자신을 포장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갈라디아교회가 그들이 전하는 거짓 가르침을 받아들인 것은 유대의 종교지도자들과 지역의 유대인들, 예루살렘의 신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음으로 핍박을 피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비롯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이런 태도로 유대인들에게는 더 효과적인 증거를 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딤후 3:12)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십자가를 높였던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그의 모습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당연한 태도로 받아들여지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경멸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의 메시야와 십자가의 죽음은 결코 어울릴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이러한 주장을 굽힐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그를 세상에 대해 죽은 자로 여기게 할 만큼 엄청난 삶의 전환을 가져오는 위력을 가진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신자의 자아에 대한 관념뿐만 아니라 그의 세계관을 바꿔놓음으로 세상을 위해 살았던 옛 생애와 완전히 단절시켜, 그들을 진정으로 세상에 대해 죽은 자들이 되게 만드는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바울이 할례를 복음에 대한 역행으로 강조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무할례’라는 행위가 하나님께 기쁨을 준다고 가르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행위에 대한 금지나 용납으로 하나님께 가납되려는 시도 자체가 바로 그가 배척했던 율법주의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 다시 말해 ‘거듭남’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를 취해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하나님의 행위, 즉 ‘새 창조’를 통해 하늘의 법적인 지위만이 아니라 현재의 삶까지도 변화되는 것이 그가 전했던 ‘의롭게 됨’의 본질이었습니다. 이처럼 ‘새 창조’는 회개와 믿음을 끌어내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까지 지속적인 성장을 이끄시는 성령의 사역이며, 회심의 모든 과정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마무리하면서 “이 규례”를 행하라는 인사를 덧붙여, 인간의 전통이나 헛된 가르침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신앙을 가지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는 그의 말은 주목할 만합니다. 그는 핍박과 곤경으로 인해 자신의 몸에 남은 수많은 상처들을 ‘예수의 흔적’이라고 표현함으로, ‘할례’와 상대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어 누구에게 충성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충성했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수많은 원수들에게 핍박을 받았고, 많은 상처들이 남을 수밖에 없었으나, 그는 그것을 그리스도를 향한 충성의 표로 여겼습니다. 그는 진실로 ‘예수의 흔적’을 가진, ‘예수의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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