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그릇 교과묵상] 제 12과 영으로 살아감(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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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작성일17-09-10 10:31 조회2,783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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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4일(금) 12과 “영으로 살아감” 전체요약
어떤 이들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죄와의 투쟁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에게도 죄와의 투쟁과 갈등은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그들 안에 두 종류의 본성, 즉 영과 육체가 공존하고 있어,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을 멀리 떨어뜨리려하는 죄의 본성과, 그들을 붙드는 성령 사이에서 일어나는 투쟁이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께 굴복하느냐의 여부가 육체의 노예로 전락하느냐, 아니면 성령 안에서 여전히 자유자로 살 것이냐를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의 신자들에게 “성령을 따라 행하라(걸으라)”고 말했습니다. 구약 성경이 사람이 행할 도리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고,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갖기 전 ‘그 도(길)을 따르는 자들’로 불렸던 것에서도 발견되는 ‘길’의 은유를 그 역시 사용한 것입니다. 물론 구약이 말하는 ‘걸음’은 ‘율법을 따라 걸음’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바울이 말하는 ‘성령을 따라 걸음’과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울의 언급은 율법에 대한 순종과 상반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전한 “성령을 따라 걸으라”는 권면은 외적 강요에 의한 순종이 아닌, 성령으로부터 오는 내적 동기에 의한 자발적인 순종을 강조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삶, 그것이 바로 그가 평생 걸었던, 그리고 그의 영적 자녀들이 따라 걷길 바랐던 바로 ‘그 길’이었습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한 사람 안에서 육체와 성령이 서로 대적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갈 5:17). 인간은 육체의 소욕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롬 8:7), 육의 지배를 받던 한 개인이 영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지금까지 그를 지배하던 육에 대한 강력한 도전과 같은 것이어서, 필연적으로 영적 갈등이 시작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요 3:6). 이러한 투쟁은 모든 신앙인들이 재림 때까지 겪어야 할 운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 싸움은 결코 스스로의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회심한 심령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로는 육체를 저항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이 일을 가능케 하십니다. 바울이 강력하게 자신의 죗된 자아를 성령께 맡기고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영적 갈등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 바울은, 윤리적 선과 악의 목록을 나열하여 그 두 본성이 만들어내는 일들에 대한 대조로 영적 교훈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목록은 다른 성경에도 인용되는 것이긴 하지만, 갈라디아서에서 언급된 목록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먼저는 ‘선’과 ‘악’이라는 구분 대신에, 악의 목록을 ‘육체의 일들’로, 선의 목록을 ‘성령의 열매’라고 이름 붙여, 이러한 행위들 내면에 자리 잡은 근본적인 원인을 드러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육체의 일들’은 복수로 기록하여 우리가 육체를 따를 때에는 여러 가지 불행과 고통, 그리고 불일치가 따를 것임을 드러낸 반면에, ‘성령의 열매’는 단수로 기록하여 성령과 연합한 자들에게 나타나는 거룩한 내적 변화를 강조했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성령의 열매 전부는 고상한 덕목들로 채워져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언급되면서, 가장 강조되고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다른 덕목 중 하나가 아닌 모든 덕목의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듯, 사랑은 이미 갈라디아서에서 그 핵심적인 역할이 강조되었고(갈 5:6, 13), 바울이 작성한 선의 목록에도 빠짐없이 등장합니다(고후 6:6, 딤전 4:12, 6:11, 딤후 2:22). 그것은 유독 기독교적인 것으로 사랑만큼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태도를 정의하는 것은 없습니다(요 13:34~35). 따라서 사랑은 십계명과도 충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 바로 계명에 대한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으로 대표되는 성령의 열매 역시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들을 십계명에 대한 순종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바울은 5개의 동사를 동원하여 피할 수 없는 육체와 영 사이의 내적 투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따르다(동행하다, 16절)’라는 동사로 지속적인 성령과의 동행을 강조했고, ‘인도를 받다(18절)’라는 단어로 내 뜻이 아닌,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라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살다(25절)’라는 단어로 날마다 갱신되는 중생의 경험을, 또한 발을 맞춰 나아간다는 뜻의 ‘행하다(25절)’라는 군사용어로 성령의 인도에 철저히 따를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다(24절)’라는 충격적인 표현으로 영적인 삶은 풍성하게 배양시키고, 육적인 욕망은 굶주리게 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는 그의 설명에 매우 뚜렷한 마침표를 찍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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