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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믿음의 거인: 여호수아와 갈렙(질문, 대답, 설명) 11/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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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5-11-13 18:22 조회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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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믿음의 거인: 여호수아와 갈렙

(11월 22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17분)

  

연구 범위: 민 13:6, 30–32; 수 14:6–14; 눅 18:1–5; 수 19:49–51; 고후 3:18; 롬 12:1, 2

 

기억절: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히 13:7).

 

모든 부모는 자녀들이 모본을 통해 배우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자녀들이 그들의 장점보다 단점을 따라하는 것을 보면서 걱정하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는 옳은 일을 하는 것보다 잘못된 일을 하기가 더 쉬운 것을 발견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롬 7:15). 이것이 타락한 인류의 본성이며 모두가 공감하는 문제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무언가를 모방하며 자신을 형성한다. 우리는 걷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같은 삶의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따라하며 배운다. 어른이 된 우리도 여전히 모본이 필요하며, 그들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들을 믿음의 거인으로 만든 영적 특성들을 존경하고 본받을 수 있다. 

이번 주는 여호수아서에 등장하는 두 믿음의 거인, 여호수아와 갈렙의 개인적인 모본을 더 깊이 살펴볼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 중 하나였던 이때에 그들이 자신의 시대에 두각을 나타내고 하나님 백성의 삶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학습 목표

깨닫기: 갈렙과 여호수아의 삶은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주님께 온전히 헌신한 위대한 모본이다. 

느끼기: 온전히 헌신한 지도자들의 삶과 모본을 통해 이스라엘은 땅을 정복하고 믿음을 전할 수 있었다.  

행하기: 성령의 도움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주님 닮아가며 한 걸음씩 하나님 나라를 확장한다. 

 

TMI 위로

2. 갈렙의 믿음은 얼마나 크며 그것은 어떤 모습으로까지 나타났습니까?(민 14:10) 

*답: 백성들이 돌로 치려고 해도 믿음을 지켰다.

3. 갈렙이 남다른 열매를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민 14:24)

*답: 하나님을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으로 살았다.

4. 갈렙의 용기와 모본은 후세대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습니까?(수 15:16)

*답: 그의 딸 악사가 아버지의 믿음과 같은 믿음으로 사는 것을 드러내었다.

5. 가나안 정복을 이끈 여호수아는 자신의 몫으로 어떤 땅을 받았습니까?(수 19:50)

*답: 성소 가까운 거친 산지를 받았다.

6. 우리는 어떻게 하면 믿음의 거인들의 선한 모습을 닮아갈 수 있겠습니까?(히 12:2) 

*답: 거듭나고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그렇게 된다.

7. 갈렙이 믿음의 모본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에는 어떤 동기와 마음이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답: 그는 그가 믿은 하나님을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다.

 

결론: 약속의 땅을 얻는데 큰 역할을 한 믿음의 영웅들은 본받을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갈렙은 불가능과 두려움이라는 큰 장벽 앞에서도 주님을 믿고 신뢰했다. 그는 어떤 것도 방해할 수 없도록 주님께 온전히 헌신하며 믿음을 따라 행동했고 그의 용기와 믿음을 후세대에게 전했다. 여호수아는 모든 과정을 지휘하고서도 자신의 몫은 마지막에 받는 겸손한 종으로 성전 가까이 거하기를 무엇보다 우선했다. 이와 같은 모본을 따라갈 때 성장할 수 있다. 우리의 가장 큰 모본은 예수님이시며 그분을 따라가기를 간구할 때 성령께서 우리가 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11월 16일(일) 충성

 

민수기 13:6, 30–32과 여호수아 14:6, 14을 읽어 보라. 갈렙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그는 어떤 위치에 있었는가?

[민13:6,30~32]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31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32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수14:6,14]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답: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는 이스라엘 지도자 중 한 사람이고 갈렙은 그나스 사람으로 야곱의 자손이 아니다. 그래도 그는 이스라엘 족속이 되었다.

 

갈렙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켈렙(keleb, 개)에서 유래했는데, 구약에서 이 단어는 항상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하지만 성경 외의 서신과 찬송에서 켈렙은 주인에 대한 종의 용기, 끈기, 충성을 표현하는 데 사용한다. 그런 점에서 갈렙은 자신의 이름에 충실한 삶을 살았으며 평생 주님께 변함없는 충성을 보였다. 

 

대부분의 정탐꾼들이 완전히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이 죽이겠다고 위협까지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갈렙이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한 것은 갈렙이 어떤 사람인 것을 말해주는가?(민 14:6–10, 21–25; 민 26:65; 민 32:12 참조)  

 

여호수아와 갈렙과 동시대를 살았던 이스라엘의 유력한 지도자들인 삼무아, 사밧, 이갈, 발디, 갓디엘, 갓디, 암미엘, 스둘, 나비, 그우엘을 생각해 보라. 이 이름들을 들어본 것 같은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 보냈던 다른 열 명의 정탐꾼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름은 기억할 가치가 없기에 잊혀졌다. 그들은 약속의 땅을 정복하기 불가능한 땅으로 묘사하고 보고했다. 그들은 그 땅의 일부 지역에 거하는 거인들에 비해 자신들이 메뚜기와 같다고 느꼈고, 가나안의 견고히 쌓인 요새같은 성읍들을 보자 그들의 마음은 두려움에 녹아버렸다. 

긍정적인 보고를 가져온 두 정탐꾼 중 연장자였던 갈렙은 믿음이라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반대에도 부딪히고, 심지어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민 14:10)는 죽음의 위험 앞에서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담대히 말했다. 

 

<교훈> 다른 이는 두려움에 불가능을 말할 때 갈렙은 믿음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앞장섰다. 반대와 죽음의 위험 앞에서도 그는 옳다고 믿는 것을 담대히 말했다. 

 

<부가설명> 갈렙은에서 족속이다. 그나스는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6명의 아들 중 하나다. 갈렙은 이 그나스의 후손이다. 그래서 그는 그나스 사람이라고 기록했다(민32:12). 그런 그가 유다 지파에 배당된 야곱 자손이 아닌 사람이었다. 이방인이 귀화하면 그가 사는 지역 지파에 소속시켰다. 그가 귀화인이었으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고 순종하는 믿음으로 지도자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다. 그는 순수한 야곱의 후손이다. 학자들은 갈렙이 여호수아보다 연장자라고 한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지만 여호수아는 모세의 수종자로 지도자로서의 훈련을 잘 받았고 또 야곱의 적통인데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의 후손이다. 아마도 그래서 모세의 후계자로 세우지 않았을까? 원래 이름은 호세아인데, 모세가 여호수아라고 고쳤다. 그는 예수님의 표상적 인물이다. 이 이야기는 어느 과에서 부가설명에 자세히 쓴 기억이 있다. 이 두 사람은 이스라엘 12 지파에서 계수받은 사람 중에 가나안에 들어간 유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전적으로 순복하고 믿음으로 행한 본이 된다.

 

11월 17일(월)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여호수아 14:6–14, 민수기 14:24, 민수기 32:12, 신명기 1:36, 누가복음 6:45을 읽어 보라. 갈렙과 여호수아의 태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주님을 온전히 따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수14:6~14]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7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9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13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민14: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민32:12] 그러나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온전히 따랐느니라 하시고,

[신1:36]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눅6: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답: 그들은 주님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쌓여있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생활하는 사람이었다. 

 

갈렙은 모세를 통해 주께서 주신 약속, 곧 그의 발이 밟았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실 것이라는(민 14:24) 약속을 결코 잊지 않았다. 40년이 지난 후 그는 자신이 했던 보고에 대해 “보고 느낀 사실을 정직하게”(수 14:7, 현대인) 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보고는 하나님의 인도와 도우심으로 이스라엘이 그 땅을 정복할 수 있다는 그의 확신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킨 다른 열 명의 정탐꾼들의 보고와 달리 갈렙은 주님의 약속에 대한 온전한 신뢰와 헌신을 보여주었다.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수 14:8)다의 히브리어 표현은 아마도 “내 마음은 온전히 주님을 따랐다” 혹은 “나는 주님을 따르려는 마음으로 가득했다”는 더 긴 관용구의 축약형 표현일 것이다. 이방 신들을 따라가며 주님을 온전히 따르지 않았던 다른 이들과 달리, 갈렙은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께 헌신했다. 

이후에 같은 표현이 두 번 더 반복되며 갈렙의 충성을 강조한다(수 14:9, 14). 갈렙에 대한 반복된 묘사는 주님께서 갈렙을 다른 열 명의 정탐꾼과 구별하시며 “다른 마음”(민 14:24, 우리말)을 가졌다고 하신 것과 일치한다. 8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갈렙은 주님과 그분의 뜻에 온전히 헌신하는 사람을 통해 주께서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본이 되었다. 

갈렙은 각 지파가 최종적으로 차지하게 될 영토는 그들이 주님의 약속을 얼마나 담대히 주장하고, 믿음으로 얼마나 많은 땅을 밟으려고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이해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결연한 행동이 동반된 믿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호수아 14:12의 “함께 하시면”에 사용된 히브리어 울라이(ulay, 아마도)는 두려움과 의심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보통 긍정적인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망과 기대를 나타낸다(창 16:2; 민 22:6, 11; 민 23:3). 

 

<교훈> 하나님의 약속은 행동이 동반된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갈렙은 온전히 주님께 헌신하며 그런 사람을 통해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 보이는 모본이 되었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에 관함 모든 것을 성취하시고 그것을 받으라고 하신다. 받는 것은 받는 사람의 몫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받으라고 하시는데도 내가 너무 부족해서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주저한다면 그것은 주시는 분의 권위와 자비를 무시하는 것이지 겸손이 아니다. 성경은 겸손을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것이라고 계시하였다(습2:3). 여호와 규례는 그분의 말씀으로 주신 모든 것으로 이해해도 잘못 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겸손을 자기가 부족하다는 핑계대고 선 듯 나서지 않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그들의 생각의 전부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그 생각대로 인격이 형성되었다.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爲人=사람 됨됨이)도 그렇다고(잠23:7)고 말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음에 쌓인 것을 말한다고 하신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이다(벧전1:23). 그들은 말씀의 사람이 되었으므로 말과 행동이 말씀대로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떤가?

 

11월 18일(화) 모본의 힘

 

여호수아 15:16–19, 사사기 1:13, 사사기 3:7–11을 읽어 보라. 이 이야기는 모본의 힘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갈렙의 자세는 젊은 세대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가?

[수15:16~19]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17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함으로 갈렙이 자기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18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그에게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19 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네겝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삿1:13]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하였으므로 갈렙이 그의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삿3:7~11]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10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11 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답: 갈렙의 딸 악사가 아버지의 믿음을 본받아 옷니엘과 결혼하고 윗샘과 아랫샘을 요청하고 얻었다.

 

갈렙은 드빌을 정복하는 자에게 자신의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옷니엘은 그 도성을 정복하고 악사를 아내로 맞았다. 이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갈렙의 용기, 믿음, 그리고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준비를 다시 한번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다음 세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의 거인, 갈렙과 여호수아의 모본을 따랐음을 보여준다. 나이든 세대가 사역을 마무리할 시점에, 새 세대는 도전을 감당하며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계속 이루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요청했던 것과 다르지 않게, 악사는 남편의 격려 가운데 아버지가 보여준 것과 같은 믿음과 결의를 나타낸다. 결단과 용기를 통해 악사는 땅을 차지하라는 약속의 성취를 보여준 갈렙의 모본을 이어간다. 

실제로 땅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선물이었지만, 이스라엘은 믿음과 용기로 주님의 약속을 주장함으로 그 땅을 차지해야 했다. 악사의 결단은 복음서에 기록된 여성들의 끈질긴 믿음을 미리 보여준다. 그들은 군중이나 제자들의 태도에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예수님의 축복을 받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누가복음 18:1–5을 읽어 보라. 이 구절에는 우리를 위한 어떤 교훈이 있는가? 

[눅18:1~5]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2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답: 우리의 진정한 필요를 알았으면 끈질기게 기도하여 얻기까지 구하라는 교훈이 있다.

 

믿음의 횃불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교훈> 악사는 땅을 차지하라는 약속의 성취를 보여준 갈렙의 모본을 잇는다. 땅은 주신 선물이지만, 믿음과 용기로 그 약속을 주장함으로 땅을 차지해야 했다.

 

<부가설명> 요즘 어린이 매일 양식 아래는 재림신앙 이음이라는 홍보를 계속하고 기도 요청하는 어린이들 이름이 올라와 있다. 좋은 일이다. 신앙을 이어가려면 부모가 신앙의 본이 되어야 한다. 자라는 어린이는 부모의 언행에서 배우고 모방한다. 부모가 자녀들이 있는 가정에서 가족예배도 없고, 성경통독오 않으며, 안식일도 불성실하게 지키고 언어와 행동에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아이가 바른 신앙 이어받기를 기대하면다면 꿈을 깨야 한다. 요청한 기도를 온 성도가 다 하더라도 그 자녀의 가정이 신앙적으로 운영되지 않으면 기도 응답이 되겠는가? 엘리의 아들들을 보면 엘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섬겼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히스기야 아들 므낫세는 아버지의 독실한 신앙을 본받지 않았다. 히스기야는 그 아버지 아하스의 악한 것을 본받지 않았다. 이런 예가 성경에 여럿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신실하고 충성한 사무엘의 아들들은 신임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삭같이 악사같이 부모의 신앙을 본받았다. 오늘날 재림교회는 후세대에 진정한 진리의 신앙을 본보여야 한다. 가정과 교화와 삼육학교가 같은 방향으로 협력하여 바른 신앙을 서로 충돌하지 않고 보여 주면 후 세대가 재림신앙을 바르게 이어받을 것이다. 이점 유의해야 할 일이다. 

 

11월 19일(수) 겸손한 영웅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할당된 영토의 경계를 이루는 지명들이 길게 나열된 이 기록은 첫째 정탐대의 두 영웅인 갈렙과 여호수아에게 분배된 땅에 대한 보고로 시작하고 마쳐진다. 갈렙은 먼저 기업을 받았고, 여호수아는 마지막에 기업을 받았다. 이 시점까지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파들에게 땅을 분배했지만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그의 기업을 줄 차례이다. 

 

여호수아 19:49–51을 읽어 보라. 이스라엘 땅 분배를 담당했던 위대한 지도자가 제일 마지막으로 기업을 받았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수19:49~51]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경계를 따라서 기업의 땅 나누기를 마치고 자기들 중에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기업을 주었으니 50 곧 여호와의 명령대로 여호수아가 요구한 성읍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를 주매 여호수아가 그 성읍을 건설하고 거기 거주하였더라 51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의 족장들이 실로에 있는 회막 문 여호와 앞에서 제비 뽑아 나눈 기업이 이러하니라 이에 땅 나누는 일을 마쳤더라.

*답: 그는 지도자로서 백성을 위한 일을 마친 후에 남은 몫을 자기 몫으로 받았다. 그곳은 성막 가까이 있는 지역이었다.

 

여호수아가 받은 성읍은 “딤낫세라”로, 그 이름은 두 단어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단어 팀나트는 ‘셈하다,’ ‘분배하다’를 뜻하는 마나(manah)에서 유래했으며, '몫'이나 '영토'를 의미한다. 두 번째 단어는 동사 세라흐(seracḥ)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초과'나 ‘남은 것'을 의미한다(출 26:12 참조). 여호수아의 성읍의 이름은 '남은 부분'이나 '남은 영토'로 번역될 수 있다. 

여호수아가 남은 것 중에서 선택했음을 말해주는 이 성읍의 이름은 이스라엘 민족의 두 번째 지도자의 고귀한 성품을 증거한다. 무엇보다 여호수아는 모든 백성이 자신의 몫을 받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 다음 그는 인구가 밀집된 땅이나 가장 주목할 만한 도성을 자신의 유업으로 택하지 않고, 힘든 노력을 통해서 재건해야 할 소박한 성읍, 어쩌면 폐허가 되었던 곳을 선택했다(수 19:50 참조). 

또한 딤낫세라는 실로 인근, 곧 성소의 근처에 위치했는데, 이는 여호수아의 우선순위와 그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새로 탄생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약속의 땅으로 들어온 후, 각 지파와 족속의 유업을 확보한 뒤였기에, 여호수아가 그보다 훌륭한 유업을 요구하였다고 하여도 분명히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가장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춘 단순한 삶을 살았다. 

이는 다윗이 이후에 기도한 내용을 몸소 실천한 것이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 27:4). 

 

<교훈> 여호수아는 마지막으로 남은 부분 중에서 유업을 받았으며 성소에 가까운 곳을 선택했다. 이것은 그가 나타낸 겸손과 마음의 우선순위를 알 수 있게 한다. 

 

<부가설명> 여호수아나 모세는 전혀 자기 영달에 관심이 없었다. 백성들의 안위와 상태를 우선으려 여겼다. 그보다 더운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삼아 언제나 그것을 먼저 생각하고 일했다. 이것이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지도자 상이다. 그들은 지도가가 되겠다고 나서지도 않았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 그 일을 맡아 하나님께 충성했다.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도 사명을 받은 자로 주님께 충성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지 교인들의 교회가 아니다. 교회 직분 맡은 사람들의 교회도 아니고 목사의 교회도 아니다. 그들은 다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이어야 한다.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일을 생각해서 성경의 정신과 상관없이 행동한다면 베드로를 책망하신 그 책망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명목으로 자기 명예와 지위에 연연한다면 그는 사탄에 내 뒤로 물러가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호수아처럼 모세처럼 그렇게 주님께 충성해야 할 것이다. 목회자들만이 아니다. 교회 직무를 맡은 사람은 누구가 이 정신으로 봉사해야 할 것이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을 충성이니라(고전4:2).

 

11월 20일(목) 바라봄으로 변화함

 

위대한 믿음의 영웅들의 삶의 모습을 묵상하는 것은 영적 성장에 필수적이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가장 궁극적인 모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이다. 예수님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집중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가?(히 12:1, 2; 고후 3:18 참조) 

[히12:1,2]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고후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답: 예수를 바라봄으로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하는 은혜를 누릴 것이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신경과학자 마르코 야코보니(Marco Iacoboni)는 거울신경세포의 기능을 연구했다. 이 작은 신경 회로는 우리가 웃거나 누군가를 안는 것과 같은 특정 행동을 할 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관찰할 때도 활성화된다. 이 세포의 활성화는 보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의 차이가 크지 않음을 말한다. 

엘렌 화잇은 예수님의 성품을 바라보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예수를 바라봄으로써 하나님에 대해 더 밝고 분명한 이해를 갖게 된다.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변화된다. 선함과 동료에 대한 사랑이 우리의 자연스러운 본성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하는 성품을 계발하게 된다. 우리가 그분의 형상을 닮아갈수록 하나님을 아는 우리의 능력도 커질 것이다. 하늘나라와 더 많이 교제하게 될수록 영원한 세상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점점 커지게 될 것이다”(실물교훈, 355).

 

로마서 12:1, 2을 읽어 보라. 우리 삶에서 서로 충돌하는 두 가지 형태는 어떤 것인가? 어떻게 올바른 것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 

[롬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답: 하나님과 이 세대를 따르는 두 가지 형태다. 우리는 이 세대에 눈을 감고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로 자기를 드려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의 내용을 요약하면서 우리 삶을 꼴 지으려는 두 가지 대립적인 세력에 대해 말한다. 한쪽에서는 주변 세상이 다양한 영향력을 통해 매일 우리를 자기 틀에 끼어 맞추려 하면서, 밖에서 안으로 작용하며 우리를 형성하려고 한다. 

이러한 영향에 맞서 성령은 안에서 밖으로 마치 애벌레가 아름다운 나비로 변하는 것처럼 우리 내면에 역사하심으로 변화된 사람이 되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분이 우리 안에서 시작하신 선한 일을 지속해 주시도록 간구해야 한다(빌 1:6). 결국 우리는 매 순간 성령 안에서 행하기를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교훈> 우리는 주님을 바라봄으로 닮아가고, 닮아갈수록 하나님을 아는 능력도 커질 것이다. 변화를 위해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속해서 역사하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부가설명>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나 의식적으로 그분 안에 있도록 선택하는 것이나 모두가 인간 쪽의 행위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때 이것을 먼저 생각하면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을 오해할 가능성이 크다. 사람은 부모로부터 생명을 얻어 출생해서 존재하게 된다. 아기가 사산(死産)되지 않으면 생명 존재로 출생한다. 그를 자라게 하는 것은 그 아기의 노력인가? 그 아기의 생명 작용인가? 당연히 그 아기에게 있는 생명의 작용이다. 그 작용이 노력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의 삶이 그렇지 않은가? 성경의 복음도 이것을 가르친다. 사람이 산 자로 출생해야 그의 생명이 그 안에서 작용하여 성장하게 하듯이 그리스도인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때 거듭난 생명의 작용이 생긴다. 거듭나는 것은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다(벧전1:23). 그래서 그는 말씀의 사람이 되고 말씀 생활하게 된다. 말씀이 생명이 되기 때문이다(요6:63). 거듭난 경험이 없는 사람이 세상 생명의 관점으로 노력해서 예수님을 닮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거듭나면 거듭난 생명 작용이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고 예수님의 형상으로 성장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어린아이 이야기를 한다(벧전2:2). 그래서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가르친다(고전3:7). 이 도리를 깨달을 때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랄 것이다(엡4:13). 이 기초적인 계시를 망각하고 이 세대의 자기 노력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를 모방하여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한다는 것은 마치 죽은 자가 자기 노력으로 생명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것이 있겠는가? 그래서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업다고 단언하셨다(요3:3~7).

 

11월 21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갈렙의 믿음은 지금도 정탐꾼들의 악한 보고를 반박하던 그때와 똑같았다. 갈렙은 당신의 백성들로 하여금 가나안을 점령하게 하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으며 그 믿음대로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광야에서의 오랜 방랑 생활을 견뎌내며 죄인들의 실망과 고난을 함께 겪었지만 이것에 대하여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고 오히려 광야에서 그의 민족이 끊어질 때에 자신을 보호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였다. 광야에서 방황하던 때의 모든 난관과 위험과 재앙 중에서는 물론이고 가나안에 들어와 전쟁하는 여러 해 동안에도 여호와께서 그를 보호하셨으며 이제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그의 기력은 쇠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이미 정복된 땅을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정탐꾼들이 정복하기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던 곳을 요청하였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그는 이스라엘의 믿음을 흔들어 놓았던 큰 힘을 가진 거인들의 요새를 빼앗고자 하였다. 갈렙의 요구는 명예나 세력을 얻으려는 욕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용감한 노전사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저희 조상들이 정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던 땅을 완전히 정복하도록 격려하는 모본을 보이고자 하였다”(부조와 선지자, 512). 

“갈렙에게 용기를 주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옳은 일을 위해 담대하고 흔들림 없이 설 수 있게 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그의 믿음이었다. 하늘 군대의 위대한 장군의 동일한 능력을 의지할 때, 모든 십자가의 참된 군사는 극복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이는 장벽들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리뷰 앤드 헤럴드, 1912. 5. 30).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또래나 동료에게서 받는 사회적 압박이 얼마나 강한지, 또 다른 사람이 침묵할 때 나서서 말하는 데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지 토의해 보라. 우리의 믿음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용기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우리가 옳다고 믿는 바를 주장하면서도 무례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답: 각각 깊이 생각해보자. 호흡마다 기도하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게 되도록 하나님께 굴복하면 성령께서 인도하실 것이다.

2. 당신의 삶과 인격에 영향을 준 교회나 지역 공동체에서 믿음의 본보기가 된 사람에 대해 반원들과 나누어 보라. 그들의 어떤 특성들이 본받을 만한 가치가 있었는가?

*답: 각 반에서 할 일이다.

3. 미디어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해 보고 논의해 보라. 미디어의 부정적인 영향은 피하고, 그 영향력을 선한 목적을 위해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답: 말씀 중심으로 산별하는 지혜를 활용해야 한다.

4. 지도자이면서도 겸손했던 여호수아의 모습과 성소 가까이에서 살기 원했던 그의 바람을 더 깊이 생각해 보라. 그의 모본은 당신에게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답: 우리도 그와 같은 정신으로 살도록 성령께서 전적으로 주장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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