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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 부록 (안식일)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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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9-03-05 14:14 조회4,4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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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安息日)

1. 안식일의 제정
쉼을 주는 안식일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 중 하나이다.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 준수야말로 하나님을 경배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부분이라는데 동의한다. 안식일 제도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1) 누가 안식일을 제정하였는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요한복음 1:1-3, 10, 14을 읽으라.
☞ 히브리서 1:1, 2에 의하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분명하다.
그리스도는 창조의 능동적 주체였으므로 그가 안식일을 제정하셨다는 것이 분명하다.

(2) 언제 안식일이 제정되었는가?
창조시에. 창세기 2:1-3; 출애굽기 20:8-11을 읽으라.

(3) 안식일은 어떻게 제정되었는가?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였음이더라”(창 2:1-3).

(4) 안식일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하나님은 날 중에서 안식일을 만드셨다. 그가 사용하신 날은 일곱째 날이었다. 창세기 2:2, 3을 읽으라.

(5) 언제 창조주일의 날들은 시작하고 끝났는가?
창세기 1:5, 8, 13. 창조주일의 각 날은 어두운 부분인 해질 때 시작하였다. 여기서 어두움이 먼저 왔으므로 그 다음 해질 때 그날은 끝났다. 그러므로 제칠일 안식일은 해 질때로부터 해 질때까지 준수되어야 한다. 분명하게 모든 날을 해 질때로부터 해 질때까지 계산하였다.

(6) 누구를 위하여 안식일은 제정되었는가?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막 2:27).

(7) 누가 안식일의 주인인가?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8).

(8) 안식일은 얼마 동안 준수되어야 할 것이었는가?
안식일은 영원토록 준수될 것이다(사 66:22, 23).

◎ 결 론
제칠일 안식일은 창조시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제정되었다. 이것은 모든 시대를 통하여 준수될 것이었으며, 일몰로부터 일몰까지 준수되어야 했다. 레위기 23:32은 의문의 안식일 중 하나인 대속죄일 안식일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저녁부터 저녁까지” 지키라고 말한다.



2. 안식일 계명
(1) 제 4계명의 첫 말은 무엇인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
이것은 “기억하라”는 말로 시작되는 유일한 계명이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주실 때, 그는 그 가치를 아셨으며, 또한 많은 사람에 의하여 안식일이 무시당할 것도 아셨다. 하나님은 마귀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인간들로 안식일을 잊게 할 것을 아셨다. 그는 조만간 인간들이 이 계명이 요구하는 의무를 무시할 것을 아셨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이 계명에 특별히 유의하여 “기억하라”는 말을 사용하셨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2) 안식일 준수 계명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유를 제시 하였는가?
제시된 이유는 하나님의 모본에 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출 20:9-11).

(3) 사람은 일주일 중 6일간을 일해야만 하는가? 결코 휴가를 가져서는 안되는가?
계명은 “엿새 동안 일할지니라”는 명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하라”는 말이 연속되어 있다.(영어 성경은 엿새 동안은 일하라 그리고 네 모든 일을 행하라)고 되어 있다(출 20:9).
☞ 엿새 이내에 일이 끝마쳐지면 의문의 여지가 없다. 우리의 일을 엿새 이내에 끝내야 한다는 것이 요점이다. 오락을 즐기면서 우리의 의무에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된다. 엿새 이내에 자신의 일을 끝내게 되면 언제나 안식일에는 휴식을 취하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4) 안식일은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사 58:13).
☞ 하나님의 안식일은 거룩하다. 우리는 안식일을 발로 짓밟아서는 안된다. 이날 자신의 오락을 행치 말아야 한다. 안식일을 더럽혀서는 안된다(겔 20:13, 21).

(5) 안식일 계명에서 주요 요구는 무엇인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
☞ 돈버는 일에서 쉬기를 명령하고 있으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 날은 거룩하게 지켜져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어야”한다(히 4:10). 자기 일을 쉬게 될 때에 사람은 죄를 그칠 것이다. 그러한 사람만이 하나님이 기대하시는대로 안식일을 지킬 수 있다. 이 계명은 안식일에 나태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안식일의 정신과 일치되는 적절한 활동들이 있기 때문이다.

◎ 결 론
안식일 준수는 단순히 날짜를 지키는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을 위하여 우리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죄로부터 쉬기를, 선한 일을 행하기를, 예배를 위하여 모이기를, 그리고 선한 일을 행하고 다님으로 예수의 모본을 따르기를 요구하신다. 그대 자신의 일을 그치고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라. 그렇게 안식일을 지키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 이르러 오는지!
3. 시내산에서의 안식일
이제부터는 애굽과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이 체험한 안식일을 살펴 보겠다. 안식일을 제정하시고 하나님께서 준수하신 것은 창세기 2:1-3에 기록되어 있다.

(1) 바로는 모세에게 무엇 때문에 불평하였는가?
“애굽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으로 역사를 쉬게 하느냐 가서 너희의 역사나 하라 또 가로되 이제 나라에 이 백성이 많거늘 너희가 그들로 역사를 쉬게 하는도다 하고”(출 5:4, 5).

☞ 바로는 백성들을 쉬게 만든다고 모세를 비난하였다. 그들은 왜 일을 중지하였는가? 본문에 사용된 “쉬다”의 히브리어는 안식일 휴식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모세는 안식일 개혁을 주장하고 있었다.

(2)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계속적인 보호를 기대한다면 하나님이 출애굽 후에 제시하신 무슨 조건을 받아 들여야 했는가?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 15:26).

(3)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림으로 하나님은 무엇을 시험하고자 하셨는가?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출 16:4).

(4) 하나님은 안식일 전날 음식에 관하여 무슨 지시를 하셨는가?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출 16:23).

☞ 안식일을 위하여 굽고 요리하는 일은 그 전날에 행해져야 하였다.
안식일에 관하여 모세가 그들에게 말한 바를 출애굽기 16:25, 26에서 읽어 보라.

(5) 백성들 모두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행하였는가?
“제칠일에 백성 중 더러가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출 16:27, 28).

(6) 안식일과 하나님의 율법은 백성들에게 새롭고 생소한 제도였는가?
출애굽기 15:26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과 유사하다.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창 26:5).

◎ 결 론
안식일은 시내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율법안에 명령되어 있다. 이것보다 앞서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에 대한 그의 관심을 눈에 보이게 나타내 보이셨다. 안식일 계명의 목적 중 한 가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자녀들을 여호와의 법도대로 교훈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이 계명에 대한 준수는 다른 모든 것들의 준수에 대해 영향을 미친다.







4. 구약(舊約) 성경(聖經)상의 안식일(安息日)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안식일을 주신 것은 유대인만을 위해서이며, 그리스도인을 위해서는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도적질하지 말지니라”는 계명 뿐 아니라 다른 모든 계명들도 오로지 유대인만을 위해서 주신 것이 된다. 만일 안식일이 유대적이라면 이 모든 계명들도 유대적일 것이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막 2:27).

(1) 광야 생활 동안에 안식일을 범한 자들에 대하여 어떤 규정이 이스라엘에 있었는가?
어떤 계명이든지 범하는 것에 대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율법이 일반적으로 적용되었다. “본토 소생이든지 타국인이든지 무릇 짐짓 무엇을 행하면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니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명령을 파괴하였은즉 그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쳐지리라”(민 15:30, 31).
☞ “무릇 짐짓 무엇을 행한다”는 것은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무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율법을 범한 자들에게 적용된 이러한 율법은 어느 계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이 당시에 이스라엘은 신정 정치였다. 곧, 정치와 종교가 일체였으며,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통치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공민적 율법은 물론 도덕적 율법을 범하면 직접 처벌되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보게 하며, 죄에 대한 궁극적 심판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2)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다른 계명들을 범하는 것 처럼 심각한 일이었는가?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의 앞으로 끌어 왔으나 어떻게 처치할른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온 회중이 곧 그를 진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 죽여서 여호와께서 명하신대로 하니라”(민 15:32-36).
☞ 이 사람이 처벌당한 것은 단지 안식일에 나무를 하였기 때문이 아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였기 때문이다(민 15:31). 그는 나무를 함으로 자신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음을 나타냈다. 모세는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그 사람을 가두었다. 많은 문제들이 걸려 있었다. 안식일은 다른 계명들과 동등한 자리를 차지할 것인지에 대하여 하나님은 결정을 내리셨다. 안식일은 다른 계명들과 마찬가지로 중요하였다. 우리에게 얼마나 큰 교훈을 주는가!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안식일에 대하여 경솔하게 말하거나 멸시적인 태도로 이 날을 범하지 말자.

(3) 에스겔은 하나님이 왜 안식일을 주셨다고 말하는가?
“그러므로 내가 그들로 애굽 땅에서 나와서 광야에 이르게 하고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내 율례를 주며 내 규례를 알게 하였고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겔 20:10-12).
☞ 에스겔은 안식일이 성화의 표징이라는 중대한 사실을 말해준다.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다른 모든 계명들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징후이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거절, 또는 반역이다. 안식일을 적절하게 준수하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4) 유다가 70년간 포로 생활을 한 이유 중 하나는 무엇인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을 들어오지 말며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아무일이든지 하지 말아서 내가 너희 열조에게 명함같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그들은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귀울이지 아니하며 그 목을 곧게 하여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였느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만일 삼가 나를 청종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며 안식일을 거룩히 하여 아무일이든지 하지 아니하면 다윗이 위에 앉는 왕들과 방백들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되 그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거민들이 함께 그리할 것이요 이 성은 영영히 있을 것이며 사람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에 둘린 곳들과 베냐민 땅과 평지와 산지와 남방에서 이르러서 번제와 희생과 소제와 유향과 감사의 희생을 가지고 여호와의 집으로 오려니와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케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렘 17:21-27).

(5) 앗시리아와 바벨론 포로로부터 돌아온 후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안식일에 대하여 무슨 태도를 취하였는가?
“그 때에 내가 본 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식물을 팔기로 그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하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유다 자손에게 예루살렘에서도 팔기로 내가 유다 모든 귀인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너희 열조가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이제 너희가 오히려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함이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 하고 안식일 전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 갈때에 내가 명하여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라 하고 내 종자 두어 사람을 성문마다 세워서 안식일에 아무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매 장사들과 각양 물건 파는 자들이 한 두번 예루살렘 성밖에서 자므로 내가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 밑에서 자느냐 다시 이같이 하면 내가 잡으리라 하였더니 그 후부터는 안식일에 저희가 다시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또 레위 사람들을 명하여 몸을 정결케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로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옵시고 주의 큰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느 13:15-22).
☞ 느헤미야는 성 밖의 사람을 강요하여 안식일을 지키도록 하지 않았다. 그는 책임감에서 하나님의 성일에 성안에서 장사하는 일을 금지시켰을 따름이다. 강제로 안식일을 지키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안식일은 성화의 표징이기 때문에 성결한 생애 없이는 한 낱 공허한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공허한 의식은 결코 진정한 성화를 대신할 수 없다.

◎ 결 론
바벨론 포로가 끝난 후에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범한 것이 그들에게 재난을 불러온 한 이유가 됨을 깨달았다. 따라서 느헤미야 이후로 그들은 안식일을 결코 일상적인 일을 하는 날로 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전의 실수 만큼이나 지금의 실수도 심각하게 치명적이었다. 그들은 안식일을 성화의 표징 대신에 구원의 수단으로 간주하기 시작하였다. 거룩함이 실재 하지 않는 안식일은 거의 가치가 없다.
















5. 신약(新約) 성경(聖經)상의 안식일(安息日)

예수는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셨다(막 2:27). 안식일은 인간 가족에게 축복이 되어야 했다. 예수는 안식일을 지키는 모본을 보여 주시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합당함을 나타내셨다(마 12:10-12; 막 2:23-28; 3:1-5; 눅 13:10-17; 14:1-6; 요 5:9장을 읽으라). 신약 성경 어디에서고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이 폐기 되었다는 주장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산상 설교중에서 예수는 십계명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명백히 밝히셨다. 마태복음 5:17-19을 읽으라.

(1) 그리스도는 안식일의 제정과 관련이 있으신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어진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3; 골로새서 1:16; 히브리서 1:2을 읽으라.

☞ 그리스도는 창조의 능동적 주체였기 때문에 안식일은 창조주일 마지막에 그에 의하여 제정되었음에 틀림없다.
창세기 2:1-3을 읽으라.

(2) 어느날 그리스도는 예배를 드리셨는가?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눅 4:16).

(3) 그리스도는 안식일이 폐지되기를 기대하셨는가?
그는 자신이 승천한 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안식일이 계속 존재하실 것을 아셨다.
A.D. 70년에 있을 예루살렘 포위 때를 내다보시며 그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 24:20).

(4) 주일 중 첫날 이전에 어떤 날이 오는가?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마 28:1).

(5) 여인들은 십자가 사건 이후에 주일 중 어느 날을 지켰는가?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더라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눅 23:56).
☞ “계명을 좇아” 쉬게 된 안식일은 제칠일이다. 출애굽기 20:10을 읽으라.

(6) 바울의 모본 - 어느 날을 바울은 안식일로서 지켰는가?
“저희는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저희가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행 13:14, 42; 16:13).
☞ 안식일에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바울의 습관이었다.

(7) 안식일과 비교해 볼 때 바울은 일하는 날에는 무엇을 하였는가?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행 18:3, 4).
☞ 그리스도는 물론 바울의 경우에도 제칠일안식일에 예배드리는 것이 규례였다.

(8) 요한은 어느 날에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았는가?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계 1:10).
☞ “주의 날”이라는 표현은 신구약을 막론하고 모두 제칠일안식일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이라고 말씀하신다(출 20:10). 이사야 58:13에서 하나님은 안식일을 “내 성일”이라고 부르신다. 주의 날은 그리스도가 주인인 날로서, 그는 자기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12:8; 마가복음 2:28; 출애굽기 20:11을 읽으라.



◎ 결 론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에게 안식일을 원상태대로 회복시켜주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일을 하셨다. 안식일은 속박 보다는 축복이 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 그리스도는 안식일의 진정한 목적은 선을 행하고, 환자를 고치고, 자비를 베푸는데 있음을 보여주고자 애쓰셨다.
히브리서는 제칠일 안식일을 언급한다.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히 4:4).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히 4:10).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영적인 안식, 자신들의 일로 부터의 안식, 죄 짓는 일의 중단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신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이러한 안식에 대한 상징이다. 하나님은 생애의 성결을 요구하신다. 이에 관하여 안식일이 표징이다. 표징을 거절하지 말며, 그 표징을 나타내는 것은 더더욱 거절하지 말자.

























6. 신약(新約) 성경(聖經)상의 일요일(日曜日)

신약성경은 안식일과 주일 중 첫 날, 이 둘을 다 언급한다. 그러나 토요일이라든가, 일요일과 같은 요일은 언급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이 기록된 그 당시에 이러한 이름들은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식일이 언급될 때마다 그것은 제칠일, 또는 토요일을 가리킨다. 첫 날은 오늘날로 말하면 일요일을 가리킨다.

(1) 신약 성경에 첫째 날은 몇 회나 언급 되었는가?
주일 중 첫 날은 8회 언급되었으며, 한번도 이 날이 안식일로 칭해지지 않았다.
다음은 그 8개의 성경절이다. <마 28:1; 막 16:1, 2; 16:9; 눅 24:1; 요 20:1; 20:19; 행 20:7; 고전 16:2 >

(2) 주일 중 첫 날에 열린 유일한 종교적 집회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는 구절은 어느 것인가?
“안식 후 첫 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행 20:7).

☞ “등불을 많이 켰는데”란 언급을 보아서 이 집회는 저녁에 열렸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한 밤중까지 뿐 아니라 “날이 새기까지” 계속해서 설교하였다. 성경에서 날은 일몰부터 일몰까지로 계산하였다. 엄밀하게 말하면 안식 후 첫 날 저녁에 모였다는 것은 토요일 밤에 모인 것이 된다. 이하의 사실들을 주목하기 바란다.
① 이 구절은 제자들이 첫 날에 떡을 뗀 것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다.
② 사도행전 2:46에 의하면 그들은 매일 떡을 떼었다.
③ 이 집회에 대한 설명은 안식일에 관하여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는다.
④ 이 집회는 바울이 여행을 떠나고자 하였기 때문에 열린 특별 집회이다.
⑤ 이 집회는 청년 하나가 떨어져 죽은 것을 되살린 것을 문맥으로 하고 있다.
⑥ 집회는 토요일 밤에 열렸다(The New English Bible, 사도행전 20:7 “토요일 밤에”).

(3) 바울이 안식일에 교회에서 모금을 하라고 말한 구절이 있는가?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 주일 첫 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전 16:1, 2).

☞ 하나님께서 축복하여 주신 정도에 따라 각 사람이 저축하여 두라고 성도들에게 바울이 말할 때에 어떠한 교회나 집회도 언급되지 않았음을 주목하라. 각 사람은 “저축하여 두어”야 했다. 이것은 각 사람이 그것이 요구될 때 까지 자기 집에 저축하여 보관해 두라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조직적인 연보를 격려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구절은 일요일의 신성성을 뒷바침하지 않는다. 바울은 공중 모금에 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교회 예배에 관해 말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매 주일의 “정규적인” 모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난한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하여 이방인 교회들이 모은 특별한 의연금에 관한 것이다. 바울은 각 집단에서 온 특정 대표들, 곧 사랑의 표시를 할 사람들과 함께 의연금을 가져갔다. 고린도전서 16:3, 4; 로마서 15:24-28을 읽으라. 이것은 고린도후서 8:1-4과 9:1-5에도 언급되어 있다.

(4) 마태에 의하면 안식일과 일요일의 관계는 무엇인가?
“안식일이 다 하여 가고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마 28:1).
☞ 마태는 두 날을 언급하고 있다. 한 날은 안식일이요, 다른 한 날은 주일의 첫째날이다.
안식일이 첫째날 이전에 온다. 안식일의 변경이 결코 암시조차 되어 있지 않다.
마태복음은 십자가 이후 30여년이 지난 다음에 기록된 것으로 믿어지는데 그 때까지도 제칠일을 안식일이라고 부른다.

(5) 주일 중 첫째날에 관하여 마가는 무슨 증언을 하고 있는가?
마가는 첫날을 2회 언급하였다.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 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예수께서 안식 후 첫 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막 16:1, 2, 9)
☞ 동일한 첫째날이 2절과 9절에 언급되어 있다. 9절은 그리스도가 첫 날 부활하여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셨다는 사실을 단지 확증할 따름이다. 2절은 여인들이 첫째날에 그리스도에게 향품을 바르고자 왔다는 것과 이 일을 하고자 왔을 때 안식일이 지나갔다는 것을 말한다. 마가는 안식일이 첫째날 바로 직전에 온다는 것을 언급한다. 그들은 첫째날에 그리스도의 몸에 향을 더 바를 것이었다. 이 일을 그들은 이일을 결코 안식일에 시도하지 않았다.

(6) 누가는 안식일과 일요일의 차이점을 어떻게 분명히 밝히는가?
“안식 후 첫 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눅 24:1).
☞ 이것은 다른 기자들이 기록한 사건을 언급하는 것으로 몇 가지 사항을 더 포함한다(누가복음 23:54-56을 읽으라). 그리스도는 예비일, 곧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는 안식일이 가까이 오고 있을 때 죽으셨다. 바로 그 금요일에 여인들은 그에게 바르기 위하여 향유를 준비 하였다. 그 다음날, 곧 토요일에 그들은 “계명을 좇아” 쉬었다. 그러므로 세 날들이 언급되어 있다. 즉, 예비일, 안식일, 주일 중 첫째날이다. 여인들은 예비일인 금요일과 주일 중 첫째날인 일요일에 일을 하였다. 그러나 안식일, 곧 토요일에는 쉬었다.

(7) 제자들은 첫 날 저녁에 왜 함께 모였는가?
첫째날이 언급된 마지막 두 경우는 요한복음 20:1, 19로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안식 후 첫 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이 날 곧 안식 후 첫 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1절은 다음 복음서 기자들이 기록한 것을 반복하고 있을 따름이다. 19절은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걸어 잠그고 모여 있었음을 지적한다. 그들은 예수가 무덤에 있지 않음을 알고 있었지만 부활을 축하하기 위하여 그곳에 모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예수가 부활 하셨음을 믿지 않았다.

◎ 결 론
신약에서 주일 중 첫째날을 언급하는 구절들을 지금까지 살펴 보았다. 이중 한 구절도 첫째날을 안식일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도리어 이 구절들은 제칠일 안식일의 신성성에 대한 강력한 증거들을 제시한다. 성서가 주일 중 첫째날을 언급할 때 통상적으로 안식일과 대조하면서 언급 한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있는 일이다.
때때로 첫째날을 안식일로 지지하기 위하여 계시록 1:10의 말씀,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을 들으니”가 사용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서도 첫째날이 주의 날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와는 아주 상반되게 주의 날은 제칠일이다(막 2:28을 읽으라).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고 있는 것만을 믿을 수 있다.





7. 안식일(安息日)의 변경(變更)

성경에는 주일 중 제칠일을 안식일로 지키라는 명령이 있다. (출애굽기 20:8-11을 읽으라. )
하나님의 안식일 계명은 지극히 명백한데도 성경을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계명에서 하나님이 언급하신 날과는 전혀 다른 날을 지키고 있는 것은 웬 일인가?
이것은 참으로 알쏭달쏭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안식일을 변경하셨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그 사건으로 새 안식일이 설립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변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는지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우리는 안식일에 관한 이런 문제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바를 알 수 있다. (시 119:18을 읽으라. )

(1) 하나님께 대한 경배의 의무는 어떤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가?
이방의 다른 신들 위에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경배하라는 주장을 할 때마다 하나님은 그의 창조적인 능력을 때때로 언급한다. (시편 96:5; 이사야 40:25, 26; 45:18; 시편 100:3; 95:6을 읽으라.)
하늘의 존재들은 그들이 하나님께 경배(敬拜)드리는 이유에 관해 요한계시록 4:11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 창조의 기념으로서 안식일은 왜 하나님이 경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인지를 언제나 말해 준다.-
그는 창조주요,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다.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이 경배 받으셔야 할 타당한 이유로 계속되는 한 안식일은 그러한 사실의 기념으로서 남게 될 것이다.

(2) 그리스도는 안식일을 변경하셨는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 18)
☞ 예수는 유대인들이 지킨 그 날을 지키셨는데, 그 날은 모든 사람이 아는대로 제칠일이다. 이것은 그의 규례였다. 누가복음 4:16을 읽으라. 그는 또한 자신의 승천 이후에도 제자들이 그 날을 계속해서 지킬 것임을 보여주셨다(마 24:20).

(3) 사도들이 제칠일에서 제일일로 변경하였는가?
성경은 그들이 언제나 유대인들이 지켰던 제칠일안식일, 동일한 날을 지켰다고 기록한다.
사도행전 13:14, 42, 44; 17:1-3; 18:4을 읽으라.

(4)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고 주장할 한 세력이 일어날 것을 하나님은 아셨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사실을 어떻게 알리셨는가?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단 7:25).

☞ 다니엘은 이상 중에 “작은 뿔”이라고 일컬어지는 한 세력이 일어날 것을 보았다.
이 세력은 다른 세력을 뽑아 버리면서 무대에 등장할 것이었다.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다.”
(단 7:8을 읽으라). 바로 이 동일한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웠다.” (단 7:21을 읽으라).

(5) 이 세력의 특징은 무엇인가?
다니엘 7:25는 이 세력의 3대 특징, 그의 지상권 기간을 보여준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이 세력은 “말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대적하”게 될 것이다 - 참람(僭濫).

☞ 문자적으로 이 세력은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함으로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된 곳에 두었다. 개인이든, 종교 조직이든 간에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시도하는 것은 참람이다. 마가복음 2:3-12에는 중풍환자가 고침받는 이야기가 있다. 서기관들은 오로지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고 믿었다. 인간이 이것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참람된 것이다. 예수는 죄를 용서하고 고치실 수 있다.

② 이 세력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게 할 것”이었다­핍박.

③ 이 세력은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다 -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한 이 세력의 지상권을 위하여 할당된 기간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였다.
이 동일한 기간이 계시록 12:14에 언급되고 계시록 12:6은 “일천 이백 육십일”로 해석한다. 이것은 예언적 시간이므로 우리는 예언 해석의 원칙을 적용하여야 한다.--각 날은 일년을 의미한다(겔 4:6). 그러면 이 세력은 1260년간 지속될 것을 말한 셈이다. 작은 뿔 세력은 이 예언의 각 부분에 일치한다. 이것은 A.D. 538년에 3대 아리우스파 세력, 곧 헤룰리, 반달, 동고트를 멸망시킨 후에 지상권에 올랐다. 그리고 1260년간 지상권을 누렸다. 1798년 이 조직의 세력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2년 후에 하나의 중요 세력으로 존속하게 되었으나 한 때 소유하였던 세속적 권력은 상실당하였다. 요한계시록 13:3에서 요한은 이 세력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됨을 말하였다.

(6) 이 세력은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할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특별히 안식일을 변경할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였는가?
피터 가이에르만(Rev.Peter Geiermann)은 그의 교리 문답서에서 이 세력의 주장들을 언급하고 있다.

문) : 안식일은 어느 날인가?
답) : 토요일이 안식일이다.
문) : 우리는 토요일 대신에 일요일을 왜 지키는가?
답) : 우리는 토요일 대신에 일요일을 지킨다.
왜냐하면 라오디게아 회의(A.D. 336)에서 그 신성성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옮겼기 때문이다.
죤 A. 맥휴(John A. McHugh)와 챨스 J. 칼런(Charles J. Callan)에 의하여 번역된 트렌트회의 교리 문답서는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안식일의 의식과 준수를 일요일로 옮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p.402).
성경적 안식일에 관한 문제는 날짜상의 문제를 넘어선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무엇을 요구하시든지 행하고자 하는 개인의 자발적 태도와 관련을 가진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순종을 강요하지 않으신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기라”는 지시를 받았다(대상 28:9). 솔로몬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거둘 때에 명백하고 단순하며 직접적인 호소가 있었다. “오늘 날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대상 29:5). 그리스도가 땅에 오셨을 때 그의 유일한 호소는 “나를 따르라”였다. 그는 모든 진리의 화신이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셨다(요 14:6). 예수는 안식일을 지키는 일에 우리에게 모본이 되신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눅 4:16).
문:그대는 교회가 절기들과 계명들을 제정할 권세를 갖고 있음을 입증하는 다른 방법을 알고 있는가?
답:교회가 그러한 권세를 갖지 않았더라면 현대의 모든 종교인들이 교회에 동의하는 일을 성취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제칠일 토요일 준수를 주일 중 첫째날인 일요일 준수로 대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변경들은 성경적 권위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 - Rev. Stephen Keenan, A Doctrinal Catechism, New York: Edward Dunigan and Brothers, 1851. p. 174.
문) : 누구에 의하여 이것(안식일)이 변경되었는가?
답) : 교회 지도자들과 사도들에 의해서이며, 그들도 역시 이 날을 지켰다. 성 요한은 주의 날(이것은 일요일이었다)에 성령에 감동되었다.
문) : 교회가 절기들과 성일을 명할 권세가 있음을 그대는 어떻게 증명하는가?
답) :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경한 바로 그 행동으로써이다. 이것을 개신교들도 허용한다. 그러므로 일요일은 엄격하게 지키면서도 동일한 교회가 명한 다른 절기들 대부분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그들은 어리석게도 자기 모순에 빠져 있다.
문) : 그대는 그것을 어떻게 입증하는가?
답) : 일요일을 지킴으로 그들은 절기들을 제정하고 그들을 죄 아래에 둘 것을 명할 수 있는 교회의 권세를 인정한다. 그런데 나머지(절기들)를 지키지 않음으로 그들은 사실상 동일한 권세를 재차 부인한다 -
Rev. Henry Tuberville, D.D.R.C., An Abridgment of the Christian Doctrine, New York: Edward Dunigan and Brothers, approved 1883. p. 58.

이러한 도전에 대하여 개신교는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그대는 나에게 토요일은 유대인의 안식일이었고,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은 일요일로 변경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 의하여 변경되었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명백한 계명을 변경할 수 있는 권위를 누가 가졌단 말인가? 하나님이 ‘제칠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셨는데 감히 누가 ‘아니다, 그대는 제칠일에 온갖 세속적 사업들을 행하며 일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대신에 제일일을 거룩하게 지킬지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으로서 나는 그대가 어떻게 답변할런지를 알지 못한다.
그대는 개신교도이다. 그리고 그대는 성경, 오직 성경에 의해서만 산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칠일 중에 하루를 성일로 지키는 이 중대한 문제에 있어서 성서의 명백한 글과 어긋나게 행동하며 성서가 명한 날 대신에 다른 날을 지킨다. 제칠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은 십계명 중 한 계명이다. 그대는 다른 아홉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믿는다. 누가 그대에게 넷째를 함부로 변경하도록 권위를 주었는가? 만일 그대가 그대 자신의 원칙에 일치한다면, 만일 그대가 성서, 오직 성서만을 참으로 따른다면 그대는 이 넷째 계명이 명백하게 변경되었다고 주장하는 부분을 신약성서에서 지적해낼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Library of Christian Doctrine: Why Don't You Keep Holy the Sabbath day? London: Burns and Oats. p. 3, 4.

여기에도 또 하나의 도전이 있다.
예수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눅 9:23). 누가복음 19:10은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말한다. 고대 선지자들은 “내가 왔나이다”라는 약속을 크게 울렸다(시 40:7; 슥 2:10; 히 10:7). 이제 “때가 찼을 때”(갈 4:4) 초점은 예수였다. 그의 생애의 매 주요 국면 마다 구속 사업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의 처녀 잉태를 통하여 소외된 지구 가족들은 하늘과 재결합 되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늘로 데려 가시기 위하여 땅에 오셨다. 그는 인간으로서 완전한 생애를 사심으로 우리들에게 순종과(요 15:10; 요일 2:6) 성화의(요 17:19) 모본을 주셨다. 예수는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그러한 분으로서 우리에게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공급하신다(롬 8:3, 4).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자신이 왔음을 말씀하셨음으로 예수는 인간 뿐 아니라 죄의 결과로 상실된 것도 회복하려고 오셨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어느 날 원래 에덴의 아름다움으로 회복되기로 정해져 있음이 분명하다. 무죄한 인류가 그 회복된 상태의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경배일이 그분의 영예를 위하여 준수될 것이며,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구속주 되심을 상기 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사 66:23; 겔 20:12, 20). 인간의 충성을 얻기 위하여 취해진 그리스도의 오심이 허지로 돌아갈 것인가? 오늘날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전 세계적 운동이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안식일을 지킬 뿐 아니라 범사에 즐겨 예수를 따르려는 운동이다. 예수께 의지하며 헌신하고자 하는 이러한 운동이 그대가 서 있는 지점에서 깨뜨려지지 말아야만 한다.

(7)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발견한 것과 동일한 발견을 어떻게 나도 할 수 있는가?
그대가 이러한 발견을 하게 될 때, 그대는 인생에 대하여 새로운 전망을 갖게 될 것이다. 여러가지가 변경될 것이며, 진정한 변화가 오게 될 것이다.
마태복음 24장에는 재림의 징조에 관한 예수의 위대한 설교가 실려 있다. 전쟁, 질병, 지진, 거짓 선지자들, 거짓 그리스도들, 해와 달과 별의 징조, 복음이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파되는 것들이다. 이러한 징조들에 부가하여 한 가지 징조가 있으니 곧 그리스도 재림 직전의 때는 노아의 때와 같게 되는 것이다(마 24:37-39). 노아는 믿음으로 움직였으며 신령한 두려움을 갖고 방주를 준비하였다. 노아가 그와 같이 행하는데는 진실된 신앙이 필요하였다. 그가 만일 신령한 두려움으로 동기가 유발되지 않았더라면 결코 메마른 언덕위에 방주를 짓지 않았을 것이며, 결코 지면에 비라고는 내려본 적이 없는 그러한 시대에 그 방주가 뜨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 되었느니라”(히 11:7).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종류의 믿음과 신령한 두려움이다.
봉사 초기에 예수는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였다. 아마 그 잔치는 수일간 계속되었을 것이다. 제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그곳에 있었다. 포도주가 다 떨어졌을 때 마리아는 예수께 곤경을 알렸다. 그곳에는 포도주는 전혀 없고 물만 가득한 물 항아리가 있었다. 그 때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위대한 발견을 했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요 2:5) 그녀는 영원한 원칙을 발견하였는데 우리는 그 원칙에 의하여 하나님편에 설 수 있으며 하늘에 들어가기를 소망할 수 있다. 마리아는 진정한 제자의 도와 성경적 그리스도교의 기초를 선언하였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그리스도께 대한 충성은 부분적이어서는 안된다. 마리아는 그리스도가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행하는 것이 중요함을 발견하였다. 그대는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싶은가? 그것은 간단하다. 예수와 사랑에 빠지라. 그리고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 결 론
안식일(安息日) 준수가 일요일 준수로 옮아간 일은 A.D. 150년경 이전으로부터 거의 3세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루어 졌다. 자신들이 유대인이 아님을 분명히 하려는 시도가 어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있었으며, 그 이후로 그들은 일요일을 높이고 안식일을 포기하였다. 그 당시에 가장 유명한 교회사가인 유세비우스는 그의 시편 92편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안식일에 행하여야만 할 의무가 그 무엇이든지간에 그 모든 것은 주의 날에 속하는 것이 더 적절하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주의 날로 옮겼다. 왜냐하면 주의 날은 우월성을 갖고 있으며, 제 1등급에 속하고, 유대인의 안식일 보다는 더 명예롭기 때문이다.” 일요일을 좋게 여기는 교회의 최초 의결은 4세기에 열린 라오디게아 회의에서 있었다. 그러나 일요일 준수와 관계있는 그 법은 안식일 준수를 거부하는 이유로서 유대화시키는 것(유대인처럼 되는 것)을 열거하였다.
왜 일요일 신성성이 발전하였는가?
첫째), 그것은 유대인과 달라지려는 노력이었으며, 그렇게 함으로 핍박을 피하고자 했다.
둘째), 로마가 세력이 확장됨에 따라 안식일 보다는 일요일 편을 들게 되었다.
셋째), 로마가 끼친 영향력의 결과로 일요일은 다른 수많은 비성서적 관습들과 함께 교회법상의 문제로 변해 버렸다. 안식일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나는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답변을 제시하도록 허용하라.(행 5:29; 수 24:15; 왕상 18:21; 사 56: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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