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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 선지자들의 글들을 해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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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9-03-12 18:15 조회4,6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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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14일 안식일 (일몰 : 오후 6시 38분)

제11과 선지자(先知者)들의 글들을 해석(解釋)함

<기억절(記憶節)>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7)

(깨닫기) : 성경과 예언의 신의 증언을 바르게 이해하고 적용하는 법을 배운다.
(느끼기) : 더 깊이 있는 개인적 성경 연구에 대한 열망을 갖는다.
(행하기) : 깊이 있는 성경 연구를 위해 시간과 열정을 바친다.

<확대경(擴大鏡)>
◉ 선지자들의 글이라 함은 성경을 말한다.
즉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어떻게 해석(解釋)과 설교(說敎)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일들이 전혀 다른 해석과 설교가 될 수 있으므로, 그 중요성을 바르게 인식(認識)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엘렌 G. 화잇”의 저서(著書)들도 ① 해석(解釋)과 ② 설교(說敎)와 ③ 기록당시의 시간과 장소와 ④ 직접적으로 기록한 문맥(文脈)과 ⑤ 폭 넘은 문맥(文脈)들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도록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바라야 하며, 또한 절대적으로 따라야 한다.
특별히 이번 주 교과의 공부한 지침 외에도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영감(靈感)받은 글들을 해석(解釋)하기 위한 추가적(追加的)인 지침(指針).
(1)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할 때에 성령(聖靈)의 인도를 간구(懇求)해야 하고,
(2) 한두 개의 좋은 번역(飜譯)성경을 사용해야 하며,
(3) 모든 사람, 모든 장소, 모든 시대(時代)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원칙들을 살펴야 하고,
(4) 우리가 발견한 진리(眞理)에 순종(順從)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5)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견해를 기꺼이 굴복(屈伏)시키고자 하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하고,
(6) 극단적(極端的)인 해석(解釋)을 경계(警戒)해야 하며,
(7) 경험(經驗)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하고,
(8) 상식(常識)을 따라야 한다.

<요점(要點)>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해석 방법이 필요하듯이, 엘렌 G. 화잇의 글들을 해석할 때에도 진정한 의미를 깨닫기 위한 조심스런 연구가 필요하다.

일(日) (3월 8일)
<해석학(解釋學)(롬 2:14-16)>

◉ 해석학(解釋學)
해석학(解釋學)이라함은 = “해석에 대한 이론과 방법을 다루는 학문”을 말한다.
본디는 문헌 해석의 기술을 이르나 독일의 철학자 딜타이가 정신과학의 방법론으로서 새로 제창한 것을 해석학이라 한다.
☞ 해석학은 “본문의 저자가 최초의 독자(讀者)들에게 말하고자 했던 원래의 의미가 무엇이었느냐에 초점(焦點)을 맞추는 것”을 해석학이라 한다.

◉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경전(經典)으로 사용하고 있는 많은 신앙인들이 있지만 한 개의 기독교가 아니라 많은 종파(宗派)들이 생겨난 이유가 바로 성경의 해석(解釋)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 예(例)들어보더라도 개신교도들의 해석차이(解釋差異)로
① 안식일(安息日)을 → 일요일(日曜日)로,
② 죽음에 대한 해석(解釋)도 영혼멸(靈魂滅)을 → 영혼불멸(靈魂不滅)로 해석을 하는 것만 보아도 해석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 마태복음 1장18절의 해석(解釋)을 해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 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定婚)하고 동거(同居)하기 전에 성령(聖靈)으로 잉태(孕胎)된 것이 나타났더니”(마 1:18)

○ 비(非)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이 태어나기위해서는 여자의 난자(卵子)와 남자의 정자(精子)가 결합(結合)되어야 잉태(孕胎)가된다는 것으로 생물학적으로 배웠다.
그런데 모친(母親)마리아는 요셉과 동거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잉태(孕胎)할 수가 있을까? 생물학적 지식(知識)으로써는 해석(解釋)하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 또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이 성경말씀인 (마1:18)절을 해석(解釋)해 보시기 바랍니다.

◉ <마태복음 1장의 “마리아”에 관하여>해석(解釋)의 차이를 일례(一例)로 들어보자.
☞ 가톨릭교회가 마리아를 높이는 것은 성경적 근거가 없으며 가톨릭교회조차도 거룩한 정경에 넣기를 거부한다.
외경 복음서의 공상적인 전설에 기초하고 있으며 기독교초기 수백 년 동안 이 전설은 동방의 “하늘 황후”(참조 렘 7:18; 44:17-18 등) 신(神)들의 배우자 그리고 소아시아의 “마그나 마테르(Magna Mater) 즉 ”위대한 어머니“에 대한 이교 신화들과 결합되었다.
마리아를 “성모(聖母)”로 여기는 가톨릭의 개념은 근본적으로 이 이교(異敎) 여신을 기독교 용어로 옷입힌 것에 불과하며, AD431년 에베소 총회에서 교리로 확립되었다.
공교롭게도 에베소는 다이아나 여신(헬라어 “마르테미스(Artemis)의 본거지였다.
하지만 이 여신은 헬라의 처녀 신(神)인 아르테미스가 아니라, 때때로 “위대한 어머니”와 동일시되는 아시아의 모신(母神)이다. 전승(傳承)에 의하면 마리아는 만년을 에베소에 있는 사도 요한의 집에서 보냈다.
가톨릭교회는 천사의 인사말을 중보자 마리아에게 드리는 기도로 왜곡(歪曲)시켰다.
가톨릭 백과사전에 의하면 그것은 천사의 말로 구성되었는데
① 눅 1:42절에 나타난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한 영감(靈感)받은 인사의 서두(序頭)가 여기에 덧붙여졌고(1184년도 이전에)
② 기도(祈禱)를 위한 탄원(歎願)이 첨가(添加)되었으며(1493년도까지)
③ 후(後)에 더 첨가(添加)되어
④ 1495년까지 첨가가 이루어진 후 트렌트 종교회의의 교리문답에 포함되었고 그 전체형식이 1568년의 로마의 “성무일도서(Roman Breviery)”에 공식적(公式的)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와 같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아베마리아(Ave Maria)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①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② 여자(女子)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열매인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③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저희죄인들을 위하여 비소서,
④ 이제와 저희가 죽을 때에도. 아멘“ <S. D. A 성경주석10권 192-193p>
◉ 성경의 기자(記者)가 본래의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했던 원래의 의미를 밝혀내는 학문을 해석학(解釋學)이라 하는데, 이것은 성경해석(聖經解釋)의 기본(基本)이 되고 있다.

월(月) (3월 8일)
<설교학(說敎學) (막 1:15)>

◉ Ⅰ. 설교학(說敎學)이란.
① 종교(宗敎)의 교리(敎理)를 설명하는 것, 또는 그런 설명을 말하며.
② 어떤 일의 견해나 관점을 다른 사람이 수긍하도록 단단히 타일러서 가르치는 것을 설교학 이라 한다.

◉ Ⅱ. 설교학(說敎學)은
설교의 예술을 배우는 과목이다.
설교학 수업 시간에 학생들은 설교 준비 방법과 설교 시 성경을 사용하는 법을 배운다.
때때로 설교자는 설교의 핵심을 끌어내거나 호소를 위하여 본래의 의미에 주목하지 않고 본문의 표현만을 사용할 수도 있다.

◉ 예수님의 성육신(成肉身)에 대하여 설교학적(說敎學的)으로 말씀해보세요.
<참고(參考)>
☞ ◉ <성육신(成肉身)의 신비(神秘)(골 2:9)>
“신비(神秘)란” =
어떤 일이나 현상 따위가 사람의 힘이나 지혜 또는 보통의 이론이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묘함, 또는 그런 일이나 비밀(秘密)을 신비(神秘)라고 한다.

세상에는 신비(神秘)와 신묘막측(神妙莫測)한 것과 일들이 참으로 많이 있다,
그러한 일들은 유한(有限)한 인간의 지혜로는 당연히 무지(無知)할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셨다는 사실에는 성령의 도우심외에는 그러한 신비(神秘)를 이해(理解)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인간의 지식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자(尺)로 표현 하자면 초등학교를 나온 사람의 지식이 약10㎝ 정도로 간주하고, 중학교 정도의 지식을 20㎝ 정도로 간주하고, 고등학교는 30㎝ 정도로 간주하고, 대학교 나온 사람은 40㎝정도로 간주하고, 석사 박사 등의 지식을 1m정도의 지식으로 간주 해 본다면. 약간의 눈 끔은 더하겠지만 그리 많은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한 지식으로 무한(無限)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30㎝자(尺)로 서울서 부산의 거리를 재는 것과 같다고 할까? 요,
아니면 서울서 뉴욕까지를 30㎝자(尺)로 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잴 수도 없을 것 이구요.

☞ 설명(說明)을 하자면
인간의 생명은 난자(卵子)와 정자(精子)가 결합해야 사람을 낳게 되는데, 예수님은 그렇게 요셉의 정자(精子)와 마리아의 난자(卵子)가 결합해서 예수님이 탄생한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즉 정혼(定婚)하지 않은 몸으로, 더 자세히 말해서 마리아는 남자(요셉)와 관계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령(聖靈)으로 잉태(孕胎)하였기 때문에(마 1:18-21)
인간의 지식(知識)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이를 일컬어서 신비(神秘)라고 설명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성육신(成肉身)의 신비(神秘) (요일1:1-4 )
그 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 자신이셨는데 사람이 되신 분이다.
이 하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속(救贖)하시고 자기의 백성을 삼으시려고 사람이 되셨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나님이 이루신 세 가지 큰 사역이 있는데
첫째가 천지창조(天地創造)이며,
둘째는 성육신(成肉身)이요,
셋째는 성령(聖靈)을 부어주심인데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목표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그렇다.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 중에서 성육신(成肉身)은 신비(神秘)중의 신비요, 기적(奇蹟)중의 기적이다.

성경의 기사(記事)를 살펴보면, 마리아의 수태고지(受胎告知), 요셉에게 계시됨, 베들레헴의 한 사관(私館)에서 아기 예수가 탄생하셔서 구유 안에 뉘우심, 하늘의 천사들이 찬양(讚揚), 목자(牧者)들에게 알려지심, 동방박사들의 경배(敬拜)와 예물(禮物)드림 등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초림(初臨)의 신비를 더해준다.

그리스도의 출생은 수십 세기를 통하여 수백억의 사람의 입에서 경이(驚異)와 감탄(感歎), 감격(感激), 그리고
감사(感謝)와 찬송(贊頌)을 이끌어 왔고, 또 정반대(正反對)로 불신(不信)과 반대(反對)를 가져오기도 했다.
서글프게도 오늘날에는 성탄(聖誕)의 참된 의미가 왜곡되고, 변질(變質)이 되어 성경(聖經)에도 없는 날짜를 12월25일로 정하여 일 년에 한 번의 행사로 예수님의 탄생을 희석(稀釋)시키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1년365일 동안에 늘 주님의 탄생을 기리는 일에 기억하지 못하도록 변질시켜 놓았다.
그러므로 백화점이나 거리마다 성탄절에 장사하여 큰 몫을 챙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며, 술집마다 만취(漫醉)된 사람들의 모습이며, 마치 이 날만은 불의(不義)와 죄악(罪惡)을 즐기도록 허가받은 것처럼 죄악을 즐기는 자들의 세상으로 변질됨으로 성탄의 참된 뜻이 변질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는 현실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성경에도 없는 성탄일(聖誕日)을 언제부터 지금의 12월25일로 정하여 오게 되었는지 그 경위와 내막을 알고 신앙하는 것이 바른 신앙인이라고 생각이 된다.
안식일도 날짜(요일)의 변경(變更)과, 12월25일의 날짜가 성탄일(聖誕日)로 사람들의 마음을 고정시키고 있는 것 또한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는 이들에게는 중요하게 살피고 바르게 신앙하여야 할 문제이다.

◉ 무엇 때문에 말씀이 육신이 되는 사건이 생겼을까?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신비(神秘)에 대해서는 성경이 가르치지 않아도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목적, 혹은 동기는 성경이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다. 사도 요한은 본문에서 "기독교란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다.
요한은 자기 자신을 성육신(成肉身)하신 주 예수의 생애를 눈으로 본 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규정하면서 기독교의 핵심인 성육신의 육체적(肉體的) 실제(實際)성을 말하고 있다(요일 1:1,2).

◉ 또한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이 서신을 기록한다고 말하고 있다(요일1:3,4).
(Ⅰ) 하나님이 사람이 되심은 나를 죄(罪)에서 구속(救贖)하기 위함이다.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오신 그 영원한 생명, 그 말씀이 왜 나타나셨는가?
그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속(救贖)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다.
즉 인간의 죄 때문에 성육신(成肉身)이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죄인(罪人)을 구속(救贖)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이런 크고 놀라운 사건을 이루신 것이다.
나를 구원(救援)하시는 속전(贖錢)이 되시려고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
사도 요한은 말년에 쓴 요한복음 1장을 성육신(成肉身)의 신비(神秘)에다 초점을 두고 기록했다.
요한은 태초부터 계신 말씀, 곧 독생(獨生) 하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을 감탄하여 일생을 그 감격 가운데 살았다.

"태초(太初)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 도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이 생명(生命)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1:1-4;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獨生)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4,18; 말씀이 육신을 입으신 성육신(成肉身)의 사건).

Ⅱ. 하나님이 사람이 되심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성육신 사건은 하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속(救贖)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육체(肉體)안에서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은 "Immanuel"(God with us)이라 불리셨다.
이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그리스도 탄생 전 700년경에 예언한 것이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이 이사야의 예언이 글자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밝히기 위하여 글자 그대로 마태가 인용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였으니, 이를 번역(飜譯)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救援者)가 되기 위하여,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동정녀(童貞女)에게서 성령으로 잉태(孕胎)되어 탄생(誕生)하셨다. 우리는 이 진리를 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을 믿는 믿음에 구원과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에 우리의 구원(救援)이 있다(요일 1:3).

에덴동산에서의 범죄 이후에 인간과 떠나 계시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육신(肉身)이 되셨다.
인간으로 탄생하신 이후 33년 반(半)동안 예수님은 육체로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셨으나,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우리 개개인 가운데 영(靈)으로 임재 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심의 완전한 완성으로 신약성경을 끝맺는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 갔음 이러라."(계 21:3,4).
바로 여기에 하나님이 육신이 되신 근본 목적이 있다.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셔서 정결케 하시므로 자신과 함께 사는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함이다.

예수님의 초림(初臨)은 육체로 오신 하나님을 말구유에 그냥 두지 않고 우리 마음 중심에 그리고 우리 생활에 모시고 살기로 작정하는 날이다.
동방박사들이 세상의 소망(所望)이신 아기 예수께 경배했던 것처럼, 하늘의 천사들이 그리스도의 탄생을 찬양했던 것처럼, 그리고 목자들이 듣고 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구주로 오신 예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눅 2:14).

◉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는 일련의 추상적 개념들이 있지 않고 구체적인 역사적 인물이 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역사적 인물을 그 중심으로 전개된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는 다른 관념이나 이데올로기의 창시자의 존재와 전혀 다른 성격을 띤다. 기독교 신앙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핵(核)으로 둘러싸며 존재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肉身)이 되신 말씀이다.

◉ 성육신(成肉身)이란 ?
요한복음 1장 14절에 있는 말씀에 근거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사건(事件)을 의미한다.
이 말씀은 세상의 창조 이전부터 계신 분이며,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을 뿐만 아니라
이 말씀 자신이 곧 하나님이시다.(요 1:1)
요한의 증언에 따르면,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이 말씀을 통하여 지음을 받았다.(요 1:3)
이 말씀은 이제 육신이 되어서 사람들 사이에 거하셨는데, 이 말씀은 참 빛이며 모든 사람들의 생명이다.
육신이 되신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서 우리에게 오셨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사건이 곧 성육신(成肉身)의 사건이다. 성육신(成肉身)의 개념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 곧 자기를 비워 모든 조건에서 인간과 같이 된 것을 의미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本體)시나 하나님과 동등(同等)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形體)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模樣)으로 나타나셨다."(빌 2:6-8)
성육신은 모든 만물을 지으신 분이 지음을 받은 존재 가운데 하나가 되었음을 뜻한다.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 인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는 주장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데, 이는 성육신 교리에서 그 분명한 모습을 드러낸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가 단지 위대한 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고 주장한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는 곧 하나님 자신이다. 예수는 하나님을 대표하여 행동한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를 경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며, 우리가 예수를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우리가 예수의 약속을 들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들으며, 우리가 예수와 마주칠 때, 우리는 하나님과 마주치는 것이다. 성육신의 개념은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省察)의 절정(絶頂)이다.
여기에서 성육신의 핵심은 예수 자신이 곧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 성육신의 신비(神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은 지금까지도 신비(神秘)요, 앞으로도 신비(神秘)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나타난 것은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을 위한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그리스도를 전혀 우리와 꼭 같은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지 못하도록 모든 사람에게 경고(警告)하라.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연합(聯合)한 정확한 때를 우리는 알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시(啓示)해 주신 대로 우리는 우리의 발을 반석(盤石)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계속 굳게 디디고 서 있어야 한다.”(재림교 성경주석, 5권, 1126)

◉ 예수께서 성육신하신 동안에도 그분의 신성(神性)이 유지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진리와 신비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속죄(贖罪)를 위해 하나님은 인간이 되셔야만 했다.

◎<하나님과 인간(人間)의 재결합(再結合) (고전 15:45)>
◉ 어려운 이야기를 가장 쉽게 예를 들어 이야기 해봅시다.
☞ 성경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비(非)그리스도인들로써 생각할 때 (2008년4월6일자 교과 (李奉周)인용)
(질문) : 왜 예수님은 인간 동정녀(童貞女)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고 하면서 “하나님”이라고들 하는가?

(설명)
1) 서울에 63빌딩이나, 삼성동 코엑스에 가면 대형 수족관에 다양한 바닷물고기들이 있다. 이 물고기들이 오래 살게 되는 비결이 있는데, 큰 수족관에 바닷물만 채워놓고 물고기를 넣어 놓는다고 하면 이 물고기들이 얼마 못가서 모두 죽게 된다고 한다. 즉 수족관(水族館)에 바닷물을 넣고 실제의 바다와 같은 조건으로 산소공급을 비롯해서 수족관의 환경을 인위적으로 자연의 바다환경과 여건이 똑같이 조성하여 관리를 해 줄때에 수족관 안에 있는 물고기가 실제의 자연 바다 속의 환경과 똑같이 될 때에야 수족관 안에 물고기들이 오래 산다고 한다.

2) 그런데 수족관 관리인이 수족관 유리 밖에서 물고기들에게 아무리 너희물고기들아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건강하게 잘살 수 있도록 수족관 환경을 잘 관리해주고 있고, 똑 너희들 먹고 사는 것 음식을 내가 매일 너희들에게 주고 있는데 너희 물고기들아 나에게 대하여 고맙게 생각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 생명이 내 손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들이 모르겠느냐고 매일 수족관 밖에서 물고기에게 아무리 이야기 한들 물고기들이 알아듣지 못한다.

3) 물고기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이는 물고기가 사람이 되든지, 아니면 사람이 물고기가 되어서 물고기와 같은 모양과 언어(言語)로 이야기를 하면 그 뜻을 알아들을 수가 있다.

4)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직접만나고 하였다, 그러나 불순종으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쫒겨나온 이후에도 하나님께서 친히 신정정치(神政政治)를 하셨다. 그런데 패역(悖逆)한 인간들이 눈에 보이는 이방인(異邦人)의 사람이 통치하는 왕(王)을 달라고 하여 사무엘 시대에 사울 왕을 시작으로 인간 왕정(王政)정치를 하게 되었다.
성경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얼마나 이 백성들이 패역(悖逆)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제사장을 통하여 용서해주시고 이러한 일이 계속 반복하였다. 그러나 이 패역한 백성들은 오히려 선지자(先知者)나 제사장(祭司長)들을 죽이고, 세월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였다. 이젠 죄의 온전한 회개도 없이 불쌍한 동물들의 희생제물(犧牲祭物)들만 죽게 되는 일이 계속 반복하였다........
도무지 세월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마음을 송두리째 망가트려 놓는 이 백성들에게 좋으신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인간과 똑같은 삶을 통하여 인간의 언어로 사람들에게 오셔서 우리인간들과 똑같이 지정의(知情意)를 갖고 우리와 같은 언어로 말씀하시고 인도하셨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5)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모양(형체)이시지만 사람과 다른 면이 있다면 곧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갖이신 분이시다.
가) 사람은 엄마의 난자(卵子)와 아빠의 정자(精子)가 만나야 세상에 태어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몸을 빌려(마리아)태어 나셨지만 마리아의 난자(卵子)와 목수 요셉의 정자(精子)로 태어나신 분이 아니시다.(전능(全能)하신분이시다)
나) 사람은 죄를 사(赦)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죄를 사(赦)하실 수가 있으시다.
다) 사람은 죽으면 부활(復活)할 수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승천하셨다. 그리고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실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 성경은 예수님을 “인간의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요 1:1-2, 14, 히 1:3)
예수그리스도 안에서의 인간과 하나님의 연합은 구속 사역에 있어 필수적인 일이었다.
◉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의 타락으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分離)되었다.
그 분리가 그들의 존재를 위협하므로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과의 재결합을 시도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이 되심으로 인간과의 재결합을 주도하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의 영원한 재 연합을 위한 결합의 장(場)이 되셨다.
성육신(成肉身)을 통해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은 신비(神秘)롭게 결합되었고,
인간과 하나님은 하나가 되었다" (영문시조, 1896년 7월 30일자).
이 결합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원래의 연합보다 더 심오(深奧)한 것이었다.

◉ 그분 예수님께서는
성령(聖靈)의 능력(能力)으로 잉태(孕胎)되셨고(눅 1:35)
성령(聖靈)의 능력(能力)으로 침례를 받으셨으며(눅 3:21~22)
성령(聖靈)의 능력(能力)으로 죄(罪) 없는 생애를 사셨고(딤전 3:16)
성령(聖靈)의 능력(能力)으로 마귀(魔鬼)의 시험에서 승리하셨으며(눅 4:1)
성령(聖靈)의 능력(能力)으로 귀신(鬼神)을 쫒아 내셨고(마 12:28)
성령(聖靈)의 능력(能力)으로 부활(復活)하셨습니다.(벧전 3:18)

예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 입니다 (요한복음 8:19; 14:7).
예수님을 보는 것은 하나님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요 12:45; 14:9).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과 같습니다. (요 12:44; 14:1).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가복음 9:37).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15:23).
예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과 같습니다. (요 5:23).

◉ <은혜(恩惠)의 왕국(王國)과 영광(榮光)의 왕국(王國)> 막 1:15절의 예수님께서 하신 왕국의 설교학적 해석(解釋)은 무엇일까 ?
“그분의 왕권은 그분의 두 왕국을 상징하는 두 보좌에 의해 묘사되고 있다.
‘은혜의 보좌’(히 4:16)는 은혜의 왕국을 대표하며 ‘영광의 보좌’(마 25:31)는 영광의 왕국을 대표한다. … ‘예수님은 이 왕국이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고 가르치셨다. 이것은 이 세상의 왕국이 아니라 진리의 왕국이라고 그분은 말씀하셨다. … ‘영광의 왕국은 천년기 끝에 지상에 최종적으로 세워질 것인데, 그때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올 것이다(계 20, 21).” (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79-81)

◉ 성경의 기자(記者)가 그 당시의 독자(讀者)들에게 전(伝)하고자 했던 본래의 의미를 뛰어넘어 오늘날 회중에게 적용하는 해석방법(解釋方法)을 설교학적(說敎學的) 해석(解釋)이라고 한다.

화(火) (3월 10일)
<시간(時間)과 장소(場所)(렘 4:23-26)>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否認)하리라”(막 14:30)

☞ 막 14:30의 “오늘 밤”이라는 중요한 단어가 나옵니다. → 시간(時間)이 나오고
마 26:69절에는 장소(場所)가 나오는데 → 구체적인 장소가 “바깥뜰”입니다.
베드로의 예수님을 세 번 부인(否認)한 사건은 시간과 장소가 한 장소(場所)에서 같은 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를 자세히 설명한 것을 원하신다면 “엘렌 G. 화잇”의 저서인 시대의 소망 710-712쪽을 참조 하세요.

성경 해석의 중요한 또 하나의 원칙은 그 본문이 누구에 의해, 그리고 어떤 시대와 상황 하에서 기록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 당시 상황으로는 첫째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예언이다. 그러나 이런 기록들을 다 종말 사건을 예표하고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이 복음의 진행을 예표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해석학적 접근으로 이 말씀들을 다루면 구속사적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된다.

주전 586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일어난 일은 미래에 있을 천년기의 표상이다. 따라서 예레미야 4:23-26은 해석학적으로 예루살렘의 멸망을 언급한 것이지만, 상징적으로는 천년기에 관한 언급이 된다. 엘렌 G. 화잇은 천년기 동안의 지구의 형편을 묘사하기 위해 이 구절을 인용하였다.(각 시대의 대쟁투, 659)

엘렌 G. 화잇의 글을 읽을 때에도 우리는 시간과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1897년에 화잇 여사는 “자전거와 의복과 기타 불필요한 것에 사용한 돈에 대하여 우리는 셈하여야 한다.(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398)고 기록했다. 19세기 후반에 자전거는 경제적인 교통수단이라기보다는 부자들의 장난감이었다. 초기에 좋은 자전거 한 대의 가격은 150달러를 호가했는데, 오늘날로 치자면 아주 값비싼 자동차를 사는 것에 비교될 수 있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자전거가 저렴한 교통수단이 되자, 화잇 여사는 더 이상 자전거를 반대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전거에 대한 화잇 여사의 생각은 선한 청기기에 관한 성경적 원칙에 기초하고 있었다.

◉ <증언의 말씀을 해석할 때 주의할 점 >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남은 백성을 구성할 자들을 경고하고, 권면하고, 책망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기별들을 그릇 해석하고, 그릇 적용한다. 증언을 하나님의 기별로 받아들이는 자들은 그것에 의해서 도움과 축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단지 자기의 어떤 이론이나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또한 자기들의 잘못된 노선을 옹호하기 위해서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은 그들이 가르치는 것에 의해 축복이나 유익을 얻지 못할 것이다.”(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42)

◉ 우리는 성경이나 예언의 신을 해석할 때에 그 본문이 어떤 시간과 장소, 그리고 어떤 특수한 환경 하에서 기록되었는지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수(水) (3월 11일)
<직접적(直接的)인 문맥(文脈) (사 65:17)>

◉ 물건은 품질에 따라 가격(價格)이 정해지고 사람은 성품에 의해 인격(人格)정해진다.
사람은 고유하기 때문에 인격을 값으로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물건이 품질에 따라 가격이 높아지듯이, 사람의 인격도 사람에 따라 높낮이가 있는 것이다.
품질의 어떠함에 따라 물건의 쓸모와 값이 정해지듯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도 문맥(文脈)에 따라 저자(著者)인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문맥을 온전히 살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성경의 핵심인 구속(救贖)의 경륜을 설명할 때 구원자(救援者)이신 예수님을 하나의 위대한 인물정도로 피조물로 설명을 하고 십자가(十字架)가 마치 장식품(가톨릭)으로 알고 묵주나 가정에나 눈에 보이는 곳에 비치를 하고, 아니면 하나의 나무기둥으로(여호와의 증인들)간주하는 일들은 참으로 중요한 진리를 잘못 해석하는 것들의 한 예(例)다.

◉ 성경의 직접적인 문맥을 잘못 받아드려진다면 “성경에는 하나님이 없다”고 성경절(聖經節)을 해석할 수도 있다.

(예(例))
(시 10:4)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시 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53: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사 45:14)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애굽의 수고한 것과 구스의 무역한 것과 스바의 장대한 족속들이 다 네게로 돌아와서 네게 속할 것이요 그들이 너를 따를 것이라 사슬에 매여 건너와서 네게 굴복하고 간구하기를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 하리라 하시니라

◉ “엘렌 G. 화잇”은 실물교훈(155p)에서 “구주(救主)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아무리 진실하게 회개(悔改)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말을 해주거나 그런 생각을 갖도록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기록한 것이 구원(救援)의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화잇 여사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救援)받는다’는 교리에 빠져 있었으므로 그것을 경고한 말씀이다.

◉ <구원(救援)을 장담하지 말 것>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최초의 확신을 가지고 ‘나는 구원을 얻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의지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연약함을 볼 줄 모르며 항상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들은 사단의 음모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므로 시험이 올 때에 베드로처럼 매우 깊은 죄의 구덩이에 빠져 버린다.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권면이 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우리의 유일한 안전 책은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이다.”(실물교훈, 155)

◉ “성경(聖經)”이나 “예언의 신”인 영감의 글들을 해석할 때에 문맥을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직접적인 문맥을 무시할 때 그 구절을 곡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木) (3월 12일)
<폭넓은 문맥(文脈) (엡 2:8-9)>

◉ 도토리는 도토리나무에 달린다. 그러나 도토리 속에는 도토리나무가 들어있다
성경은 도토리나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 말씀은 즉 성경(聖經)속에는 하나님이 들어 계신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나무의 열매이며, 그 열매인 성경(聖經)안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께서 늘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성경을 주야(晝夜)로 묵상(黙想)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접(接)하게 되는 것이며, 그 하나님을 매일 만나고 있기 때문에 그분의 품성을 닮는 것이다.

◉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시각장애인(視覺障碍人)세 사람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나눈 이야기가 생각난다.
첫 번째 시각장애인(視覺障碍人)은 코끼리 다리만 만져보고 코끼리는 “기둥”과 같습니다. 라고 소개했고
두 번째 시각장애인(視覺障碍人)은 코끼리의 배만 만져보고 코끼리는 벽과 같습니다. 즉 코끼리는 벽입니다. 라고 소개했으며
세 번째 시각장애인(視覺障碍人)은 코끼리의 코만 만져보고 코끼리는 뱀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코끼리는 뱀입니다. 라고 소개했다.

☞ 코끼리를 소개(紹介)하려면 최소한도 시각장애인(視覺障碍人)세 사람의 이야기를 종합해야 하듯이 성경의 문맥도 폭 넓게 살핌으로 균형(均衡)잡힌 견해와 해석으로 저자인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전달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 자기들만큼 성경위주로 사는 사람이나 종교가 없다고 장담하는 “여호와 증인”들은 돼지고기의 삼겹살에 소주(燒酒)는 물론 주정(酒酊)음료 등을 자유로이 당연히 먹고 있기에 그 연유(緣由)를 물어보았더니,
성경절(聖經節)→ (딤전 5: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는 말씀을 제시하고 있기에 다시 반문을 했지요
성경에는 술을 보지도 말라는 성경절(聖經節)이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어디 그런 곳이 있느냐고 하기에 잠언서의 말씀을 제시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잠 23:29-35)
29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30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31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32 이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33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34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35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 술은 믿음의 거장 노아도 술 취함을 인하여 하체(下體)를 드러냈고, 롯도 술 취하여 두 딸과의 불륜(不倫)으로 모압족속과 암몬족속의 조상을 이루는 과(過)를 범하게 되었으며, 술로 인하여 많은 잘못 실수(失手)들을 성경에는 많은 곳에 기록하고 있다.
(창 9:21-24; 창 19:31-38; 삼하 13:28; 잠21:17, 23:20, 23:21, 잠 23:29-35; 31:5; 전 2:3; 사 28:1, 49:26, 65:11; 겔 23:42; 단 5:2-4, 5:23; 나 1:10; 합 2:5, 2:15; 슥 9:15; 눅 21:34; 행 2:13; 롬 13:13; 고전 5:11, 6:10; 갈 5:21; 엡 5:18; 딤전 3:3, 3:8; 딛 1:7, 2:3; 벧전 4:3 등등)
일반 개신교도에서는 술이나 포도주(葡萄酒)등을 먹어도 좋다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특히 가톨릭에서는 포도주나 술을 즐기는 신앙들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 폭넓은 문맥이란 특정한 주제에 관해 말한 앞뒤 문맥 외에, 같은 책의 다른 장이나 그 책 전체나 성경책 전체의 흐름을 말한다.

◉ 우리는 엘렌 G. 화잇의 글을 읽을 때에도 폭넓은 문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령 육식(肉食)문제에 관한 진술을 보면 단호하게 말한 경우와 융통성 있게 말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채소와 과실과 곡식들이 우리의 음식물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약간의 고기도 우리의 위장(胃腸)에 들어가지 않게 해야 한다.
육식(肉食)하는 것은 자연법칙(自然法則)을 위반하는 것이다”(음식물과 식생활에 관한 권면, 380) 라고 말한 경우가 있다.

이 구절만 읽으면 누구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몇 페이지만 더 넘겨보면 “육식은 가장 건강적인 음식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모든 사람이 고기를 끊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소화 기관이 연약한 사람들이 채소와 과실 또는 오트밀 죽을 먹을 수 없다면, 가끔 고기를 사용할 수 있다”(음식물과 식생활에 관한 권면, 394-395).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도들은 반지(斑指)나 목걸이를 비롯하여 패물(佩物)착용을 하지 않고 생활을 한다.
“엘렌 G. 화잇”부인께서 그 당시의 자전거나 반지나 의복(衣服)등의 사치(奢侈)성에 대하여 하신 말씀들은 요즘의 현실로 볼 때에는 값어치가 얼마 나가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나
다시 말해서 반지나 목걸이를 금액으로 환산을 해 볼 때 그 값이 얼마나 나가겠는가?
“엘렌 G. 화잇”께서 당시에 하신 말씀은 품목에 관한 초점보다 사치(奢侈)와 허영(虛榮)에 관하여 초점을 두고 기록 한 것이다.
요즘의 재림(再臨)성도(聖徒)님들은 반지나 목걸이나 패물(佩物)을 착용하지는 않지만 고가(高價)의 자동차나 가전제품들이나 사치와 허영(虛榮)에 준하는 물건을 선호(選好)하는 사람들은 “엘렌 G. 화잇”부인께서 하신 권면(勸勉)의 말씀에 특별히 이번교과를 통해서 참조가 되고 적용하는 기회(期會)로 삼읍시다.

◉ 성경이나 예언의 신을 연구할 때에 폭넓은 문맥을 살핌으로써 우리는 균형 잡힌 견해(見解)를 갖게 되고 그릇된 해석에 빠질 위험에서 보호를 받는다.

<초점(焦點)>

◉ 해석학(解釋學)은 글로써 독자(讀者)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는 학문(學文)이고,
설교학(說敎學)은 입술로 즉 말로써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전달(傳達)하는 것이다.
그런데 해석학이든 설교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함에 있어서 시대와 장소와 그리고 어떤 특수한 환경(環境)하에서 기록되었는지를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며, 성경말씀의 문맥에 대하여도 직접적인 것과 폭 넓은 문맥(文脈)등을 잘 살핌으로써 균형(均衡)잡힌 견해(見解)를 전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곡해(曲解)하여 그릇된 해석으로 많은 백성들을 위험에 빠지게 만든다는 점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늦게올려서 죄송합니다 꾸-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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