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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왕 같은 제사장(질문, 대답, 부가설명)04/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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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7-04-08 05:54 조회7,8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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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7분

 

● 연구 범위 : 벧전 2:1~3, 히 4:12, 벧전 2:4~8, 사 28:16, 출 19:3~6, 벧전 2:5, 9~10

 

● 기 억 절 :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유대 문화와 종교, 역사에 익숙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을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일컬었다. 여기서 그는 구약 성경이 고대 이스라엘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했던 언약적인 표현을 취하여 신약 교회에 적용한다.

예수님을 믿는 이방인 신자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 속으로 접붙여졌다. 그들도 이제 언약의 동반자이다.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롬 11:17~18).

베드로는 그의 독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으로서 그들에게 있는 거룩한 책임감과 높은 부르심을 주목하게 한다.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감람나무에 접붙여진 자들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책임은 고대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주 안에 있는 위대한 구원의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우리에게 있는 높은 부르심을 이해한다.

느끼기 :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 불러주심을 감사하게 여긴다.

행하기 :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로 결심한다.

 

➋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누리는 특권에는 어떤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 영생, 제사장, 하나님의 백성 등의 특권이 있다. 

➌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특권과 더불어 어떤 책임이 부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까?

※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➍ 벧전 2:9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특권과 책임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 특권은 책임을 수행하는 능력이라고 가르친다. 

➎ 하나님은 왜 우리를 개인적으로뿐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불러서 서로 협력하도록 하셨을까요?

※ 연합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힘이 있고 부름 받은 개인이 자기 신분을 항상 확인할 수 있고 사명을 수행하는 능력을 함께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➏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할 수 있을까요?

※ 말씀대로 생활하여 빛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결론 : 베드로는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의 독자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신분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들은 구약의 이스라엘과 동일한 기초 즉 메시아 위에 건설되었고 구약의 언약 공동체의 연속선상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첫째 날(일) 4월 9일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기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벧전 2:1은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한다. 이는 지금 하려는 말이 앞에 나온 말들의 결과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벧전 1장에서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행하셨으며 우리는 거기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매우 훌륭한 설명을 들었다. 벧전 2장에서 베드로는 이 주제를 더 심도 있게 전개한다.

 

1. 벧전 2:1~3을 읽어 보라. 베드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가?

[벧전2:1~3]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답: 악독, 궤휼, 외식, 시기,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라고 권고한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중의 의무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별도의 두 가지 심상을 사용하였다. 하나는 부정적인 것으로 거기에는 버려야 할 것들이 있고 다른 하나는 긍정적인 것으로 거기에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심상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악독과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고 촉구한다(벧전 2:1). 그렇게 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행하는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행할 것이다. 악독을 버림으로써 그들은 다른 사람을 해하려 하지 않고 대신 그들의 유익을 바라게 될 것이다. 또 기만을 버림으로써 그들은 다른 사람을 속이는 행위를 하지 않고 바르고 정직하게 행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보다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들을 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생활에 만족할 것이며 하나님의 섭리가 인도하는 곳에서 번성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이의 명성을 고의로 해하려는 증언을 하지 않을 것이다.

베드로가 사용한 두 번째 심상, 즉 젖을 사모하는 배고픈 아이의 비유는 긍정적인 측면의 지침을 제시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단지 부정적인 것을 단념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 삶은 공허할 뿐이다.

그것은 배고픈 아이가 젖을 달라고 우는 것과 같은 강도로 영적인 풍요를 추구하는 문제이다. 그는 독자들로 하여금은 영적인 번성의 근원 즉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 주목하게 한다(히 4:12, 마 22:29, 딤후 3:15~17 참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영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성장한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계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 섬기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품성과 본질의 훌륭한 모본을 발견할 수 있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에게 부정적인 권면과 긍정적인 권면을 함께 하신다. 십계명도 그렇게 구성되어 있다. 하지 말라는 것과 하라는 것이다. 먼저 하지 말라는 것을 말씀하시는데, 하지 말라 하신 것은 금하지 않으면 잘 하는 것들이다. 하라고 한 것은 권고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들이다. 거듭난 사람일지라도 지체 가운데 죄의 법이 도사리고 있지 않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때때로 세상의 유혹으로 썩어져가는 구습이 소리칠 때가 있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한 것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권고를 성령의 주장으로 열심히 수행하게 되면 또한 부정적인 것들은 도태될 것이다. 부정적인 것들을 날마다 순간마다 버리고 긍정적인 권면을 잘 따르면 우리는 말세에 나타낼 구원을 지금부터 잘 지키는 것이 된다. 얻은 구원을 잃지 않도록 잘 지키는 것이 바로 부정적인 것들은 단호히 버리고 긍정적인 것들은 감사함으로 바다 순복하는 것이다. 성령께서 이 일을 이루게 하실 것이다. 

 

교훈 :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단지 부정적인 것들을 버리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인 풍요를 추구하는 것이다.

 

 

둘째 날(월) 4월 10일 산 돌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벧전 2:4~5).

 

1. 벧전 2:4~8을 읽어 보라(사 28:16, 시 118:22, 사 8:14~15 참고). 여기서 베드로는 어떤 중요한 진리를 언급하고 있는가? 그는 우리가 예수님께 반응하여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가?

[벧전2:4~8]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답: 예수께서 모퉁이 돌 반석이 되신다는 것과 우리가 그 반석에 연결되면 산 돌이 된다는 진리를 가르치고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산 돌 반석이 거치는 돌이 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베드로는 그의 독자들에게 영적인 번영을 구하라고 말한 다음, 곧바로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그들의 시선을 돌린다. 그 돌은 예루살렘 성전을 연상하게 한다. 벧전 2:4~8에서 그는 주춧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세 곳의 구약 말씀을 인용한다. 여기서 모퉁잇돌은 교회 안에서 예수님의 역할을 상징한다. 베드로만 이 말씀을 예수님과 연결시킨 것은 아니다. 예수님도 한 비유의 끝에 시 118:22을 인용하셨다(마 21:42). 행 4:11을 보면 베드로도 유대 지도자들에게 예수님처럼 말했다. 바울 역시 롬 9:33에서 사 28:16을 인용한다.

베드로의 요점은 예수님이 비록 사람들에게는 거절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하나님께 선택을 받아 그분의 영적인 집의 주춧돌이 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영적인 집으로 지어져 가는 산 돌이 된다. 베드로는 주춧돌과 반석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교회의 이미지를 그린다. 교회는 예수님을 기초로 하며 그분을 따르는 자들로 구성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기독교 공동체 또는 지역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벽돌이 쌓여 큰 건물을 짓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떨어진 채로 예수님을 따르도록 부름을 받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배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침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교회와 연합하여 침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또한 교회의 기능에 대해 말한다. 교회는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직을 세워야 한다(벧전 2:5). 다른 신약의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베드로도 성전의 용어들을 사용하여 교회를 하나님의 산 성전으로, 신자들을 그 제사장들로 묘사한다. 그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며 행해야 할지에 관한 진리를 제시하기 위해서 구약의 제사 제도를 가리키고 있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다. 베드로는 돌이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반석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카톨릭의 영향일 수도 있다. 성경은 하나님을 반석이라고 했다. 하나님 외에 반석이 없다고 했다.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뇨”(시18:31) 여호와 하나님 외에 반석이 없다는 말이다. 신약에서 예수님을 반석이라고 했다.(고전10:4) 삼위일명 여호와 외에 반석이 없다고 성경이 단언했기 때문에 베드로는 반석일 수 없다. 그냥 반석과 성질이 같은 돌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생각한다. 여기 베던2:4에 돌이라고 한 말은 ‘리도스’이다. 베드로는 자기 이름을 주신 주님의 뜻을 잘 알았던 것이다. 그는 반석 되시는 예수님과 같은 성질을 받아 반석에 함께 쌓여서 산 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에게 연결되어 산 돌이 되어서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산 성전이 되어야 하고 산 교회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원하신다. 그래서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거룩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라고 권고하였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을 얻는 산 사람들이 되어 있는지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교훈 :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교회의 일원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에 다른 신자들과 연합해야 한다.

 

 

셋째 날(화) 4월 11일 하나님의 언약 백성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출 2:24).

 

베드로는 상당히 구약적인 관점에서 서신을 쓰고 있다. 이러한 관점의 핵심은 ‘언약’이라는 개념이며 이 주제는 유대교뿐 아니라 기독교 신학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언약이란 무엇인가?

언약(히브리어로 베리트)은 양쪽의 공식적인 합의나 조약을 뜻하는 용어이다. 그것은 두 개인(예를 들어 창 31:44에서 라반과 야곱) 또는 두 왕(예를 들어 왕상 5:12에서 솔로몬과 히람) 사이에 체결될 수 있다. 그것은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 사이에 맺은 언약처럼 왕과 백성 사이에 체결될 수도 있다(삼하 5:3).

그 가운데 하나님과 그분의 택함을 입은 백성 즉 아브라함의 자손 사이에 맺은 특별한 언약 관계는 성경의 지배적인 주제이다.

 

1. 창 17:1~4, 출 2:24, 출 24:3~8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창17:1~4]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4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출2:24]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출24:3~8]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십이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6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7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답: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셔서 시내산 아래서 백성들과 언약을 체결하셨다. 

 

성경의 첫 번째 책 창세기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어떻게 언약을 맺으셨는지를 자세히 묘사한다(창 15:9~21, 17:1~26). 하나님은 애굽에서 억압을 받는 이스라엘을 구출할 때 이 언약을 기억하셨다(출 2:24). 하나님은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십계명과 율법을 주실 때에 그 언약을 갱신하셨다(출 19:1~24:8, 특히 24:3~8을 주목하라).

그러나 언약은 무조건적이지 않았다. “여호와께서 그들과 언약하시기를 만일 그들이 그분의 요구를 충성스럽게 준수하면 그분께서 그들의 산업을 증대시키며 그들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다”(교회증언 2권, 574). 그래서 선지자들은 종종 언약을 상기시키는 언어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율법에 불순종하는 위험성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복적으로 경고하였다.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성경 예언들은 조건적이다. 그래서 언약 관계에서도 순종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것이다. 언약의 축복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을 조건으로 예언되었고 멸망의 예언은 오직 불순종한 자들에게 적용되었다.

 

<부가설명> 성경의 언약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이라는 말은 언약을 이해하는데 더욱 어렵게 한다.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킨 것은 조상들과 하신 언약을 기억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출애굽할 때 그들과 언약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조상들과 하신 언약을 이행하시는 결과로 출애굽한 것이다. 그들에게 아무런 공로가 없다. 또 시내산 아래서 맺은 언약은 40일이 되지 못해서 파기되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백성이 언약을 어겼기 때문이다. 모세가 돌비석을 깬 것은 백성이 언약을 깨었기 때문에 하나님도 언약을 파기한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맺은 시내산 언약은 40일 만에 파기되었다. 두 번째 돌비를 만들었을 때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난 것은 언약이 성립되고 시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돌비를 만들 때 다시 백성에게 묻지 않았다. 두 번째 돌비는 아버지 하나님과 말씀 하나님 사이의 언약이었다. 이것이 계시록 1:5,6과 5:9,10에 예수 안에서 성취된 것으로 계시되었다. 베드로는 예수 안에서 성취된 언약을 말한다. 그래서 예수 안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다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는 것을 말한다. 예수 안에서 언약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다 이 언약의 수혜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새 언약이요 성취된 언약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언약의 백성이요 성취된 언약 안에서 성취된 그 사실대로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은 마치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학생노릇을 제대로 해야 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입학으로 약속이 성취되었고, 학생이 된다. 학생이 되었으니 학교의 규칙을 따라 학생노릇을 바르게 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 안에서 언약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언약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성취된 언약 안에 있기 때문에 언약생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마치 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학생노릇을 바르게 해야 하는 것과 같다. 

 

교훈 :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맺은 언약은 구약의 중요한 주제이며 하나님은 순종을 조건으로 언약 관계에 축복이 넘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넷째 날(수) 4월 12일 왕 같은 제사장

 

출 19장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3~6).

이것은 십자가 사건이 있기 수천 년 전에 계시된 복음의 기별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속량하시고 그들을 죄와 죄의 속박으로부터 구원하신 다음 그들에게 그분 앞과 세계 앞의 특별한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께 순종하도록 명령하신다.

 

1. 벧전 2:5, 9~10과 출 19:6을 읽어 보라. 베드로는 어떤 의미로 신자들을 왕 같은 제사장과 거룩한 나라라고 부르는가(벧전 2:9)? 이러한 표현에 따르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인 우리의 의무는 무엇인가?

[벧전2:5,9,10]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출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답: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을 때 얻는 영예로운 칭호들이다. 재림신자들은 전도하여 사람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장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할 것이다. 언약 안에 있지 않으면 이런 직분과 영예는 상관없다. 

 

영적인 집, 선택 받은 세대, 왕 같은 제사장직 그리고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는 표현은 모두 성경에서 하나님과 아브라함 자손 사이에 존재하는 특별한 관계를 묘사할 때 사용하는 명예로운 어휘들이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과 십자가 그리고 신약의 시대에 이르러 베드로는 동일한 언약 용어들을 사용하여 교회의 신자들에게 적용한다.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은 이제 확장되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 신자들까지 포함한다. 그렇다. 예수님을 통해서 이방인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출신이나 신분과 관계없이 누구나 그리스도를 통해 왕 같은 제사장이 될 수 있다.

 

<부가설명>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이름 안에 있다.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언약의 이름이다. 이름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루시는 이름이다.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그가 왕의 지위를 가진 존재였다. 사람이 뱀의 말을 듣고 따랐기 때문에 사망이 되고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언약의 하나님, 말씀하나님께서 여자의 씨로 세상에 오셔서 영원한 언약을 이루시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이 세상 사망에 앉은 자들을 사망에서 생명의 길로 불러내어 하나님께 드리는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롬15:16) 제사장이 된다는 것은 영예로인 직무이지만 또한 책임이 중한 직무이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성취된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으면 이런 지위와 책임을 함께 누리게 된다. 제사장 직무를 바르게 수행하는 것이 바로 전도하여 사람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존재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교훈 :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제사장 나라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나 그런 특별한 부름을 받을 수 있다.

 

 

다섯째 날(목) 4월 13일 아름다운 덕을 선포함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구약 교회와 마찬가지로 신약 교회도 그냥 구원받고 부름 받고 선택 받은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무엇을 위해 부름을 받고 선택을 받았느냐?’가 문제이다. 베드로는 즉각 그 답을 제시한다.

베드로는 이런 특별한 관계에는 어떤 목적이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벧전 2:9)해야 한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은 그분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증인으로 그들을 부르셨다. 하나님의 목적은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자신의 언약 백성을 통해서 온 세상에 복을 주시는 것이었다.

 

1. 다음의 성경절들을 읽어 보라. 모든 성경절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신 4:6, 26:18~19, 사 60:1~3, 슥 8:23)

[신4:6]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신26:18,19]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날 너를 자기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또 그 모든 명령을 지키게 하리라 확언하셨은즉 19 여호와께서 너의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 말씀하신 대로 너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사60:1~3]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슥8:2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답: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은 언약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과 복음의 소식을 세상에 전할 사명이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한 사명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세상에 무엇을 행하셨는지에 관한 그들의 경험과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도록 부름을 받았다.

 

2. 벧전 2:10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이 그리스도인 전체 사명과 목적에 매우 중요한 까닭은 무엇인가?

[벧전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답: 그리스도인들이ㅣ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복음을 듣고 받아들여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이것은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에게 들려주는 책임을 맡았다는 뜻이다. 

 

세상은 죄, 사망, 임박한 멸망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멸망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분의 생명을 주셨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랬던 것처럼 영광의 직책은 곧 책임의 직책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비범하고 높은 지위를 받았다.

이 지위에는 다른 사람도 이 지위를 누리도록 권유해야 할 책임이 따른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자신들의 백성을 형성한다. 그들은 이전에 백성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는 긍휼을 입었다. 성경에서 ‘거룩하다’라는 말은 예배의 목적으로 구별해 둠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거룩한 나라로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며 그들이 사는 삶의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야 한다. 그들은 또한 차가운 밤에 등불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따뜻함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참여한 영광스러운 구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할 책임을 부여받았다.

 

<부가설명> 베드로는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생명과 빛의 나라로 옮겨주신 아름다운 덕을 세상에 선전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그리스도인은 이 사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누구든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먼저 자신이 이런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항상 확인하고 그 확인이 바로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으로 수행되는 것이다. 교회를 세우신 목적도 이것이다. 부름을 받아 빛으로 나온 사람들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고 연합된 힘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자신의 신분과 위치를 항상 확인하고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며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빛을 볼 수 있도록 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하여 우리는 호흡마다 기도하여 성령의 임재와 주관을 간구하고 생활로 믿음을 드러내어야 할 것이다. 

 

교훈 : 그리스도인들은 구원과 언약의 특권을 누릴 뿐 아니라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눔으로 세상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할 거룩한 책임을 부여받았다.

 

 

여섯째 날(금) 4월 14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매우 귀중하게 보신다. 그분은 외적인 훌륭함을 가지고 교회를 높이 평가하지 아니하시고, 세상과 구별되는 참된 경건성을 인하여 교회를 귀하게 여기신다. 그분은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속에서 자라나는 정도와 그들의 영적 경험의 진보에 따라서 교회를 평가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포도원에서 성결하고 이타(利他)적인 열매를 얻고자 하신다. 그는 사랑과 선의 원칙을 찾으신다. 온갖 예술이 만들어 내는 어떠한 아름다움도 그리스도의 대표자들이 나타내는 품성의 아름다움과 전혀 비교할 수 없다. 믿는 자들로 하여금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게 하는 향기가 되게 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업에 복을 주시도록 하는 것은 믿는 자들의 심령을 두르고 있는 은혜의 분위기와 그들의 마음과 몸에 역사하시는 성령이시다”(실물교훈, 29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우리가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말씀은 어떤 뜻입니까? 그러한 부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대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이런 개념을 설명해야 한다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빛은 무엇이며 어두움은 무엇입니까?

※ 빛은 생명이고 어두움은 사망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서 빛이 되었고 어두운 세상 곧 사망의 세상과 사람들에게 이 생명의 빛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불신자들은 사망의 어둠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하고 생명의 빛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➋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 4:5~8). 이 말씀은 오늘날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에게 어떻게 적용됩니까?

※ 성경의 지혜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도를 따라 생활하면서 이 세상에 참된 생명의 빛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받은 교회이다. 

 

➌ 벧전 2:3에서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했는데 그대는 어떻게 그분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습니까?

※ 주의 인자는 십자가로 사망을 폐하시고 부활로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어서 우리가 예수를 믿게 하시고 믿음으로 영생을 확신하게 하신 것이 맛본 인자하심의 정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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