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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과 청지기 직분의 결실(질문, 대답, 부가설명)03/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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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8-03-23 03:34 조회8,0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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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53분

 

● 연구 범위 : 딤후 3:1~9, 겔 14:14, 빌 4:4~13, 잠 3:5, 벧전 2:11~12, 마 7:23, 25:21

 

● 기억절 :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개역에는 ‘권고하시는 날’로 되어 있다. ‘에피스코페’인데 이렇게 번역할 수 있다. 

우리는 청지기와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훌륭하고 선한 감화를 끼치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주변으로부터 격리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더 나은 삶의 방식을 보여주어야 한다. 청지기직이란 경건한 삶을 살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감당하면서 성장의 결실을 얻는 활동이다. 하나님은 지상의 방식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주신다(고후 6:17).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그 차이를 알아보고 궁금증을 갖는다. 그래서 이런 말씀이 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

우리는 마지막 과에서 청지기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개인적인 유익, 영적인 성과, 성공적인 결과, 우리의 감화력, 만족의 비결들을 살펴보면서 청지기 직분이 우리 안에 계시며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에 관한 것임을 이해하고자 한다(골 1:27).

 

학습목표

 깨닫기 : 청지기 직분의 결과와 유익을 깨닫는다.

 느끼기 : 신실한 청지기로 살아가는 신앙 공동체의 특권에 감사한다.

 행하기 : 이번 기에 배운 청지기 원칙을 토대로 한 삶을 일으켜 세운다.

 

➋ 성경에서 주님의 칭찬을 들은 청지기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마 25:21)

※ 착하고 충성되게 살았다. 

➌ 청지기들이 믿음의 삶을 살 때에 얻는 결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주께서 자신을 통하여 하신 주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생명의 빛을 발한다. 

➍ 우리가 가정이나 직장에서 ‘하늘의 빛’을 나타내야 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 삶의 태도를 통하여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➎ 신실한 청지기는 반드시 부자가 되리라는 주장을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 성경적이 아니다. 청지기 직분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경건에 이르는 것이다. 

 

결론 : 청지기 직분의 결과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명령에 때로는 완전하게 때로는 불완전하게 때로는 부분적으로만 따르고 때로는 전혀 따르지 않는 불완전한 인간 청지기에게 달려 있습니다. 인간의 요소가 변수입니다. 그래서 결과의 질을 개선하는 비결은 청지기로서의 삶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3월 25일(일) 청지기 직분과 경건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시 4:3).

 

경건은 방대한 주제이다. 경건한 백성은 헌신의 태도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동으로(시 4:3, 딛 2:12) 그리스도를 닮은 경건한 삶을 산다(딛 1:1). 경건은 참된 신앙의 증거이다. 그래서 경건한 삶에는 영생의 약속이 주어진다. 어떤 철학과 부귀와 명예와 권력과 출신 성분도 우리에게 그 같은 약속은 주지 못한다.

 

1. 딤후 3:1~9을 읽어 보라. 여기서 바울은 무엇에 대해 경고하는가? 그것은 충실한 청지기의 삶과 직접적으로 어떤 관련이 있는가?

[딤후3:1~9]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6 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7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8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저희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라 9 그러나 저희가 더 나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의 된 것과 같이 저희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니라.

 

답: 말세에는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는 자들이 많아서 진리를 따르지 않고 경건을 이익의 도구로 삼는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가르친다. 

 

욥기에는 욥의 성품과 행위가 묘사되어 있다. 욥기는 경건한 삶이 고난을 통해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예증한다. 그것은 또한 사탄이 경건한 삶을 얼마나 혐오하는지 보여준다. 하나님도 신앙과 현실의 삶에 있어서 욥과 같은 자가 없음을 인정하신다(욥 2:3).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욥 1:1). 말과 종교의식이 그의 삶의 일부이기는 했지만(욥 1:5) 그의 신앙은 그것들의 표현에 그치지 않았다. 끔찍한 시련을 당하는 중에서도 경건한 그의 온 생애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냈다. 경건하다는 것은 완전하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수준에서 온전함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2. 겔 14:14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그들의 성품은 어떠한가? 우리 각자에게도 있어야 할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겔14:14]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답: 생명을 건질만한 성품의 소유자들이었다. 우리도 예수님의 의를 소유해야 한다.

 

청지기 직분이란 진정으로 경건한 삶의 표현 방법이다. 충실한 청지기들은 경건의 모양만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 자체가 경건하다. 이러한 경건함은 그들의 삶의 방식과 하나님이 그들에게 위탁하신 것들을 취급하는 방식에서 나타난다. 그들의 신앙은 그들이 행하는 것뿐 아니라 그들이 행하지 않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부가설명> 당나귀가 호랑이 가죽을 쓴다고 호랑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솝 우화에 호랑이 가죽을 쓴 당나귀 이야기가 있다. 호랑이 가죽은 쓴 당나귀가 가만히 걸어 나오자 숲 속 동물들이 겁을 먹고 달아났다. 신이 난 당나귀가 한바탕 소리를 지르자 동물들이 다 되돌아온다는 이야기가 당나귀가 호랑이 가죽을 쓰고 소리 없이 걸을 때 호랑이인 줄 알았으나 소리를 치니 당나귀 소리라 정체가 폭로되었다. 경건의 가죽을 쓴 불경건한 사람들의 모습이 이와 같다. 바울이 딤후 3장 5절에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그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이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들을 유혹한다는 경고는 진리를 미끼로 이익을 낚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물과 성령으로 참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경건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는다.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은 거듭난 그 생명력이 경건한 삶을 살게 한다. 이 생명력이 없으면 비록 속이는 일은 하지 않을지라도 예수님의 아름다우심을 보여줄 수는 없다. 

 

교훈 : 청지기는 자신의 삶의 모든 요소에서 경건을 추구한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위탁한 모든 것을 통해 거룩한 삶의 방식을 나타낸다.

 

 

3월 26일(월) 만족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 4:11).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해야 한다면 그러한 만족은 궁극적으로 어디에서 비롯되어야 하는가?

 

답: 예수를 믿는 믿음과 경건에서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는 데서 비롯되어야 한다. 그것은 예수님께 받은 생명이 더욱 풍성하게 되는 경험으로 만족할 수 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딤전 6:5)에 대해 묘사했다. 오늘날 일부 TV 설교자들에 대하여 이보다 더 적절한 묘사는 없을 듯하다. 그들은 시청자들에게 그들이 정말 신실하다면 (자신들의 사역을 후원하는 것도 포함하여) 그들도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많은 돈을 벌고 있다. 신실함과 부를 동일시하는 것은 기독교의 탈을 쓴 물질주의의 또 다른 모습에 불과하다.

사실, 경건은 부와 아무 관계가 없다. 만약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자들이 경건하게 여겨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장 돈이 많은 부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오히려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 6:6)고 반박한다. 어느 상황에서도 만족하는 경건은 가장 위대한 부의 유형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경제적인 이득보다 훨씬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 먹을 것과 입을 것”(딤전 6:8)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소유가 얼마이든지 우리가 그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면 항상 얻을 것이 더 많을 것이다.

“모든 상황에서의 만족은 하나의 예술이자 영적인 신비와 같다. 그것은 학습되어야 하며 하나의 신비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만족은 하나님의 자비롭고 자애로운 처분을 달갑게 여기며 기뻐하는, 달콤하고 내적이며 차분하고 품격 있는 영성의 틀이다.… 그것은 곤경의 시기와 환경 속에 있는 불안한 심령에 큰 위로와 도움을 주는 값진 연고 상자와 같다.”—Jeremiah Burroughs, The Rare Jewel of Christian Contentment, pp. 1, 3.

 

<부가설명> 만족은 정신상태이다. 잠언에는 만족할 줄 모르는 것들에 대한 기록이 있다. 만족할 줄 모른 자를 거머리에 비유하였다. 피를 빨아먹는 생물이다. 이 세상에 사는 아담의 후손으로서 죽음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만족하기가 힘 든다. 사망이 그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언제나 있고 그 두려움을 잊기 위하여서는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을 생활에 도입하게 된다. 사망의 존재가 된 사람들의 본질이다.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하더라도 자기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정신이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르는 사망의 존재들의 본질상 진노의 자식의 성질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망을 정복한 생명력을 가진 사람들은 바울처럼 자족하는 만족감으로 감사하며 살 수 있다. 죽지 않는 생명력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그 생명 자체로 만족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만족은 여기서 나온다. 경건도 이 생명력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경건이라는 말은 ‘유세베이아’이다. 이 말은 하나님과 관련되어 사용되는 단어이다. 이방 사람들은 그들의 신과 관련하여 사용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신과 태도이다. 간단히 말하면 예배적 태도이다. 거듭난 생명력이 드러내는 모습이다. 만족도 이 생명력이 주는 열매이다. 이 생명을 가지고 있는지 항상 점검해야 할 것이다. 

 

교훈 : 만족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커다란 선물 가운데 하나로서 소유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는 마음이다.

 

 

3월 27일(화) 신뢰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 3:5).

 

1. 위 말씀에서 특별히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는 마지막 부분에 어떤 중요한 교훈이 있는가?(사 55:9, 고전 4:5, 13:12 참고)

[사55:9]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고전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고전13: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답: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라는 말씀이다. 사람이 감히 하나님과 지혜와 지식을 비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청지기들의 좌우명과 목표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며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잠 3:5).

물론 행위보다는 말로 그치기가 쉽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머리로는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과 돌봄을 믿으면서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을 가지고 끙끙 앓는가? 우리의 추측으로는 미래가 정말 끔찍하게 보일 때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청지기로서 어떻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알게 되는가? 우리는 믿음으로 발을 내딛고 현재 하고 있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그 방법을 알게 된다. 신뢰는 정신적인 행위로 사용한다고 해서 감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수록 우리의 신뢰심은 더 커진다. 이러한 신뢰심은 청지기 정신의 바탕이자 동력이며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를 통해 가시화된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성경에서 ‘(너의) 마음’이라는 구절은 항상 비유적으로 사용된다. 그것은 우리의 결정들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구성하고 있는 내부의 도덕적 자아로부터 비롯된다는 의미이다(마 22:37). 여기에는 우리의 성품뿐 아니라 우리의 존재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동기와 의도도 포함된다.

우리는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을 의지하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분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마음에서 비롯되는 진정한 신뢰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하여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또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심이 우리로 하여금 이쪽 아니면 저쪽을 선택하도록 할 때 생긴다.

사도들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본을 보였다. “그들도 본래는 오늘날 이 사업에 종사하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연약하고 무능한 자들이었으나 전적으로 주님을 신뢰하였다. 그들에게 있는 풍요는 마음과 영혼의 수양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나님을 모든 일에 처음과 나중과 최선으로 삼는 자는 누구나 이런 풍요를 누릴 수 있다”(복음교역자, 25).

 

<부가설명> 청지기는 오직 주인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일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청지기는 주인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드려야 한다. 그것이 굴복이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한 호흡도 하지 않는 정신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그가 비록 우리를 죽이시더라고 신뢰해야 하는 것이다. 바울의 고백대로 우리가 사나 죽으나 그분의 것이기 때문이다.(롬14:8) 호흡하고 있는 동안 예수님의 것이면 호흡이 끊어져도 예수님의 것이다. 그날 예수께서 자기 것을 찾으러 오실 것이다. 그때 신실한 청지기로 충성했을 때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큰 것으로 맡긴다고 하실 것이다. 자아가 죽지 않으면 전적인 신뢰는 어렵다. 전적인 신뢰에는 자아가 죽는 것이 필수적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이 이 사상이다. 이런 신뢰가 우리의 신뢰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교훈 : 하나님의 청지기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문제뿐 아니라 통제할 수 있는 문제까지도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3월 28일(수) 우리의 감화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바울은 마음의 변화를 공개적으로 나타나야 하는 어떤 것처럼 설명한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요일 1:7, 사 30:21), 우리가 매일 수행하는 청지기 직분의 증거가 어두운 세상에 감화의 빛을 비출 것이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요 8:12)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매일의 행위 속에서 우리의 견실한 성품을 나타내며 그 성품을 통해 하나님의 빛을 반사한다.

 

1.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으로 우리의 청지기 직분을 보여줄 수 있는가? 우리의 행위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감화를 끼치는가?(마 5:16, 딛 2:7, 벧전 2:11~12)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딛2:7]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벧전2:11,12]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답: 예수님의 이름을 행하는 선한 일들을 통하여 보여줄 수 있고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옳다고 인정하게 되는 감화를 받을 것이다.

 

청지기의 의무는 하나님의 소유를 관리하는 일 그 이상이다. 우리의 청지기 직분은 가족과 이웃, 세계와 우주 앞에 공개된다(고전 4:9). 우리의 직업 속에서 실현되는 청지기 직분은 천국의 원칙들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증명한다. 그래서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감화를 끼칠 수 있다. 우리는 창조주께서 인정하시는 친절과 도덕성으로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우리의 직업윤리도 청지기 직분의 가치와 일치되어야 한다. 우리의 직장은 의로운 청지기 정신이 드러나는 하나의 무대이다.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 37:6). 직장에까지 미치는 청지기의 감화는 “움 속에나 말 아래에”(눅 11:33) 있지 않고 산 위에 있는 동네처럼 훤히 보인다(마 5:14). 그대가 의도적으로 가정과 직장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산다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에 감화를 끼치게 될 것이다.

“천연계 속의 모든 사물은 각자 지정된 임무가 있되 자기의 위치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는다. 영적인 측면에서 모든 사람에게도 자신의 특별한 영역과 소명이 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이자는 그리스도의 은사의 분량에 따라 위탁된 자본의 양에 비례할 것이다.… 이제는 그대의 차례이다. 그대에게는 그대를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존재로 가꾸어주는 품성의 견실함을 보여줄 특권이 있다. 그리스도는 그대의 봉사를 요구하실 권리가 있다. 그분에게 진심으로 복종하라”(This Day With God, 243).

 

<부가설명> 감화력은 도덕적 능력이다. 사람들은 악한 감화를 끼치든지 선한 감화를 끼친다. 감화력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흔히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을 한다. 감화는 그와 같은 것이다. 함께 있으면 보고 듣고 움직이는 것들이 상대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것이 감화이다. 책도 감화력이 강하다. TV, 컴퓨터, 스마트 폰 이 모든 것이 사람들에게 감화를 끼친다. 그리스도인 선한 청지기는 주위에 예수님을 드러내는 감화를 끼쳐야 한다. 그들이 모습과 태도와 언어와 표정으로 감화를 끼친다. 예수님은 빛이 되어 그 빛을 비추는 것이 착한 행실로 나타난다고 하셨다. 선한 청지기는 생각, 말, 감정, 태도 등등으로 예수님이 어떠하심을 세상에 드러내는 자들이다.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4:17) 예수님이 세상에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서 그렇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우리의 모습에서 세상이 예수님을 보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청지기의 핵심적 상태이다. 아멘.

 

교훈 : 청지기의 의무는 자신에게 맡겨진 소유를 관리하는 것을 넘어서 의로운 삶을 통해 주변의 세계에 하나님의 성품과 천국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을 포함한다.

 

 

3월 29일(목) 우리가 듣기 원하는 말

 

우리는 완전하고 아름다우며 평화로운 하늘을 우리의 최종적인 목적지로 삼고 있는 이 땅의 나그네요 순례자들이다(히 11:13~14). 그때까지 우리는 여기서 살아야 한다. 대쟁투의 맥락에서 바라보는 기독교 세계관은 중간지대를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 아니면 원수를 위해 산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마 12:30).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가 어느 편인지 분명하고 확실하게 가려질 것이다.

 

1. 예수님이 재림하신 직후에 그분을 따른다고 주장했던 자들은 둘 중에 하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두 음성은 각각 무엇이며 어떤 의미인가?

 

※ 마 25:21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 마 7:23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예수께서 안다고 하시는 음성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는 음성이다. 

 

‘잘했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청지기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다. 그분의 소유를 관리했던 우리의 노력에 대하여 표현된 하나님의 전폭적인 승인은 능력껏 최선을 다했던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을 가져올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그리스도를 위한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우리를 위한 그분의 행위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기 때문이다(롬 3:21, 4:6 참고).

충실한 청지기의 삶은 그에게 이미 있었던 믿음의 반영이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던 자들의 말에는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시도가 드러난다(마 7:21~22). 마 7:23은 자기합리화가 얼마나 무익한지를 보여준다.

결국 청지기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큰 계명이 그가 하는 모든 행위의 동기와 원동력이 되는 인생을 가리킨다.

 

<부가설명> 그날에 우리가 어떤 말을 듣기 원하는가? “잘하였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라는 음성이 아니겠는가? 그 말씀을 듣기 원한다면 지극히 작은 일에도 충성해야 한다. 이것을 보상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수행하는 선한 충성은 하나님께 빚을 지게 하는 것이 된다. 선한 청지기의 충성은 청지기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충성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전에 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였다.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산 사람이 되었다. 생명을 주신 분에게 감사할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생명을 유지하도록 공급하시니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충성하는 것이다. 날마다 예수님으로부터 성령의 역사로 생명을 공급받지 않으면 생명이 유지되지 않는다. 생명이신 예수님과 생명코드가 항상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주시니 우리는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생명력을 나타낼 수 있다. 이 생명력이 나타나는 것이 선한 행실로 비치는 빛이고 우리의 충성이다. 한 기 동안 청지기 정신 마음의 동기라는 제목으로 공부했다. 우리 모두 선한 청지기로 배운 모든 것이 실행되는 기쁨과 복을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

 

교훈 : 우리 모두가 비록 은혜로 구원을 얻지만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동기로 실행한 청지기 직분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칭찬을 들을 것이다.

 

 

3월 30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 그를 따르는 자들은 그가 시작하신 일을 계속해야 한다. 우리는 피차 서로를 도와주고 격려해야 한다. 남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참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길이다. 사람은 하나님과 자기 동료 인간을 사랑함으로 인하여 손해를 입지 않는다. 그의 정신이 이타적일수록 그는 더욱 행복해진다. 그 까닭은 그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고 있기 때문이다”(청지기에게 보내는 기별, 24~25).

“교회 안에 생명이 있게 되면 양적인 증가와 질적인 성장이 있게 된다. 거기에는 또한 받고 주며, 주님께 그분의 것을 되돌리는 끊임없는 교환이 있게 된다. 하나님은 모든 진실한 신자에게 빛과 축복을 나누어 주시며 그 신자는 이것을 주님을 위한 사업을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게 된다. 사람이 받은 것을 나누어줄 때 받는 용량은 증가된다. 우리의 마음의 방은 은혜와 진리가 항상 새롭게 채워지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더 밝은 빛과 증가된 지식을 얻게 된다. 이 주고 받는 데에 교회의 생명과 성장이 달려 있다. 받는 자가 전혀 주지 않으면 받는 것이 곧 그친다. 만일 진리가 그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지 않는다면 그는 받는 능력을 상실한다. 우리가 만일 신선하고 새로운 축복을 받고자 하면 하늘의 선물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청지기에게 보내는 기별, 36).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하나님을 신뢰함이 어떻게 만족으로 이어질까요? 지적인 차원에서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신뢰하기 위해 필요한 자세는 무엇입니까?(고후 10:5)

※ 신뢰하는 것은 나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의 능력이 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정말 능력이 있으신 분을 그렇게 믿으면 그 능력이 나의 것이 되기 때문에 만족해진다. 그렇기 위해 자기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님께 복종시켜야 한다. 

 

➋ 그대는 청지기를 어떻게 정의하겠습니까? 청지기 직분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청지기는 예수님과 같은 정신으로 예수님과 같은 삶을 실천하는 직분이다. 이런 정신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전부이다. 

 

➌ 그대의 교회와 교인들은 청지기로서 지역사회에 어떤 종류의 감화를 끼치고 있습니까?

※ 각 사람이 대답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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